'시카고 타자기', 임수정에 더 집중해야 산다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져가는 시청률이다. 2.4%(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tvN <시카고 타자기>. <해를 품은 달>과 <킬미 힐미>의 진수완 작가의 신작인데다, 유아인이 출연했다는 소식만으로도 기대감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수준이었다. 하지만 2회에 잠깐 2.8% 시청률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시청률이 빠지더니 5회에는 1.9%까지 떨어졌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작품의 완성도나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의 연기 모두 명불허전인 건 사실이다. 특히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지금껏 드라마 소재로는 잘 다뤄지지 않은 세계를 담는 실험을 하고 있다. 1920년대 경성과 현재를 넘나들고 타자기와 회중시계가 일종의 판타지 장치처럼 활용되며 작가인 한세주(유아인)와 진짜 유령인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라는 존재의 관계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마저도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가상과 현실을 말 그대로 ‘종횡무진’하는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굉장한 야심작이다. 그 안에는 스릴러에 판타지 로맨스 같은 다양한 장르들의 편린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일반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종을 잡을 수 없는’ 드라마처럼 다가온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는 그 목표의식이 5회가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다.

이건 5회에 이르러 유진오가 그저 유령작가가 아니라 실제 유령이었다는 사실을 깜짝 밝히는 반전을 보여주는 그 장면에 잘 드러나 있다. 드라마는 지나치게 반전에 집착하며 어떤 이야기로 튈지 알 수 없게 현재 상황을 숨기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이 궁금하기보다는 다소 복잡하고 나아가 답답하게 여겨진다. 드라마에서 반전 장치란 터트릴 때는 효과가 있지만 터지기 전까지 숨길 때는 이야기 전개의 원활한 흐름을 오히려 막아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유진오가 유령일 거라는 추측은 이미 대부분 시청자들이 알고 있었던 사안이다. 이러니 반전의 효과는 줄어들고 대신 반전을 보이기 위해 그간 숨겨놓고 눌러놓았던 이야기 전개만 더 복잡하게 보이는 역효과가 생길 수밖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의 몰입 포인트를 드라마가 제대로 콕 집어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세주라는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세워져 있지만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 소설가가 겪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지점은 그다지 큰 공감대를 만들지 못한다. 물론 창작자들에게는 이 드라마의 문제의식이 흥미롭게 다가올 테지만 말이다. 

대신 이 드라마에서 대중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은 바로 한세주의 뮤즈로 나타난 전설(임수정)이라는 평범 속에 비범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째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는지’ 늘 하던 일이 어그러지는 그런 인물. 그러면서도 끝까지 한세주 작가의 초심을 믿고 신뢰함으로서 그를 진정한 창작자로 살게 하는 존재. 

한세주와 전설의 관계는 그래서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가 지금 현재 어떻게 역전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과거의 창작자와 독자의 관계는 창작자에서 독자로 향하는 일방향적 힘이 더 우세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독자가 창작자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는 뮤즈가 되기도 한다는 것. 

<시카고 타자기>가 좋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이 ‘몰입의 대상’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생각된다. 창작자의 고민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시청자들이 관심을 갖는 사항은 아니다. 대신 시청자들이 더 주목하는 건 독자의 확장된 역할이 아닐까. 전설의 활약이 중요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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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의 설렘은 없고 경쟁만 가득한 현실이란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을 보며 우리는 한번쯤 생각했을 겁니다. 저런 곳에서 저런 가게를 열면 얼마나 좋을까. 인도네시아 발리, 그 곳에서 또 배를 타고 들어가야 있는 외딴 섬. 이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이진주 PD는 바로 그 섬에서 휴가를 보내며 이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죠.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잠시 짬을 내 가게 되는 휴가. 기껏 해봐야 3박4일 정도의 꿈같은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면 어느새 돌아가야 한다는 그 우울함. 문득 이런 곳에서 가게를 열며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그 바람이 이 프로그램을 탄생하게 했다는 거죠. 

'윤식당(사진출처:tvN)'

사실 가게를 오픈한다면 가장 먼저 중요한 건 입지조건일 것입니다. 하필이면 이진주 PD가 이 외딴 섬이 최적지로 여기게 된 건 놀랍게도 그 섬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외부에서(그것도 해외에서) 진행되는 방송 촬영에서 가장 큰 난점은 팬들이 몰리는 사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서유기> 같은 아이돌이 게스트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은 촬영 당일까지도 어느 곳으로 간다는 정보를 꼭꼭 숨길 수밖에 없다고 하죠. 만일 그게 유출되면 해외에서의 촬영은 몰리는 팬들 때문에 어려워질 수밖에 없게 되죠. 

하물며 여행을 하며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한 곳에 가게를 오픈하고 정착하는 <윤식당> 같은 프로그램은 팬들이 없는 공간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죠. 나영석 PD는 그래서 <윤식당>은 국내에서는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하더군요. 생각해보세요. 배우들이 개업을 했다고 하면 아마도 엄청난 팬들이 몰려 자연스러운 가게 오픈의 풍경들을 잡아내기 어려울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윤식당>이 가게를 연 섬은 호주인들과 유럽인들이 많고 가끔 중국인 관광객 정도가 있는 정도였죠. 그래서 윤여정, 신구, 이서진, 정유미 같은 배우들이 버젓이 가게를 열어도 크게 촬영에 방해가 되는 점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섬에는 한식당도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니 <윤식당>의 불고기 단일 메뉴만으로도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거죠. 이 점 역시 국내와는 완전히 다른 지점입니다. 국내에서 가게를 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조금만 잘 된다 소문이 나면 비슷한 레시피를 가진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결국은 자본 게임으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보다 많은 자본을 가진 가게가 처음 새로운 아이템을 내걸고 연 가게를 먹어버리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 섬에는 그런 경쟁업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불고기 단일 메뉴를 하다가, 라면, 만두, 치킨 이런 식으로 메뉴를 넓혀갈 수도 있었죠. 

방송에서 이미 화제가 된 것이지만 <윤식당>은 오픈한 지 하루 만에 철거당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만일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이건 그저 가상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철거의 문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다시 일어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윤식당>은 가까운 곳에 2호점 자리를 내고 철거된 가게에서 미리 집기와 소품들을 꺼내와 단 하루만에 2호점을 꾸며 오픈하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이 정도 되면 <윤식당>이 보여주는 해외의 외딴 섬에서의 창업이 로망으로 느껴질 만한 대목입니다. 물론 이건 방송이지 실제 창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방송이 끝나면 철수되는 곳이고, 그 곳은 또 다른 이들이 들어와 장사를 이어가겠죠.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설렘과 씁쓸함은 고스란히 우리네 창업 환경과 맞닿아 있습니다.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수명은 점점 길어져 퇴직한 고령층들도 갈수록 늘어갑니다. 그 많은 이들이 모두 취업을 목표로 한다는 건 이제 불가능한 사회에 접어들고 있죠. 일본이나 유럽의 거리를 걷다보면 작지만 꽤 오래도록 전통을 이어오는 단단한 가게들이 있는 걸 보며 부러움을 느낀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작은 상점들조차 대자본이 들어와 프랜차이즈로 밀어내 사라져버리고, 그래서 작은 상점들이 당장 살아남기 위해 그들끼리 피튀기는 경쟁에 내몰리는 그런 현실과는 너무나 다른 낭만 같은 것이 거기서 느껴지기 때문이죠.

가게를 연다는 건 설레는 일이 아닐까요. 그것은 단지 장사의 차원을 넘어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한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네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확고한 뜻과 꿈이 있다면 그것을 창업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은 <윤식당> 같은 예능 프로그램 속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 낭만을 꿈꾸는 사회는 어째서 요원하기만 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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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시카고 타자기’라는 현실과 판타지의 미로를 읽는 법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판타지인가. 또 무엇이 소설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는 그 모호한 경계 사이에 놓여 있다.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유아인), 어느 날 시카고에서 보게 된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타자기, 그 타자기를 배달하며 그와 가까워진 전설(임수정) 그리고 슬럼프에 빠진 그에게 전속출판사 대표 갈지석(조우진)이 은근히 제시한 유령작가 유진오(고경표).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걸쳐 있어 모호한 느낌을 준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슬럼프에 글이 써지지 않는 한세주가 마감 스트레스에 차를 몰고 나왔다가 사고를 당하고, 그를 마침 전설이 구해주는 이야기는 현실적인 느낌이 별로 없다. 그런 큰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있는 게 놀라운 데 마침 그 시각에 하필이면 아버지 기일에 맞춰 별장을 찾은 전설이 그를 발견해 구해내는 것도 지나친 우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한세주의 첫 번째 팬이었던 전설이 그 미스터리한 타자기를 다름 아닌 한세주에게 직접 배달하게 되는 상황도 우연이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세주의 집 앞에서 커다란 개를 만나고 그 개로 인해 그의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전설의 이야기 역시 개연성이 아닌 우연적인 사건이다. 

드라마는 이런 우연적 사건들을 계속해서 터트리면서 코미디를 통해 그 우연을 봉합하려 한다. 즉 전설이 한세주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 시퀀스는 개가 소설파일이 있는 USB를 먹는 상황이 만드는 왁자지껄하고 과장된 코미디로 처리되어 있다. 또 자동차 사고를 당한 한세주를 전설이 구해내는 장면 역시 영화 <미저리>의 패러디를 덧씌워 우스운 장면들로 연출된다. 

이런 우연적 사건들의 반복은 그 비현실성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 벌어진 현실인지 아니면 한세주의 판타지거나 상상 혹은 환상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즉 한세주와 전설 사이에 계속 벌어지는 우연은 마치 오래 전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엮어진 운명처럼도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슬럼프에 빠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작가 한세주의 환상이나 판타지처럼도 보인다. 

유령작가 유진오의 등장 또한 마찬가지다. 사고를 당해 마감을 할 수 없었던 한세주 대신 유진오가 ‘시카고 타자기’의 첫 회 소설을 내보내지만 한세주는 그것이 자신이 쓴 것이고 자신은 잠시 단기기억상실을 겪은 것이라 합리화한다. 물론 갈지석이 유령작가 이야기를 운운한 건 맞지만 그것이 실제 유진오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결국 한세주는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그 의문의 타자기로 소설을 쓰고 있는 유진오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 역시 실제인지 아니면 한세주의 환상인지가 애매하다. 

그것은 한세주가 문득 문득 보게 되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전설과 유진오가 엮어가는 어떤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진짜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과거부터 엮어진 어떤 운명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세주의 환상이며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시카고 타자기’의 소설 내용일 수도 있다. 

이런 현실과 환상 사이의 애매함은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안개처럼 시청자들의 시야를 가린다. 시청자들은 그 안개 속에서 호기심을 느끼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상인가를 궁금해 하지만, 동시에 그 낯선 이야기의 미로 속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 이것은 <시카고 타자기>가 가진 신선함이면서 동시에 대중성의 한계로 지목된다. 

사실 이 안개 같은 흐릿한 미로의 끝이 어디로 갈지 전혀 종을 잡기가 어려운 드라마가 바로 <시카고 타자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매모호한 걸음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건 다름 아닌 한세주라는 인물과 그를 연기하는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몰입 덕분이다. 사실 논리적으로 접근해 해석해보려 하면 이 드라마는 한없이 복잡한 미로를 들이밀지만, 한세주라는 캐릭터가 가진 심리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 길을 걸어 나갈 수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자존심과 막막함 그리고 창작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그럼에도 창작자이기에 어디서든 튀어나오는 뮤즈 같은 창작의 단초들. 그런 의식의 흐름들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 걸쳐져 있지만 그래도 한세주라는 인물에게는 모든 것이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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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아이디어 넘쳐난 ‘무한도전’, 이대로만 된다면...

“교육 관련법은 저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직접 뽑을 수가 없어요. 직접 뽑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에서 청소년 참정권을 제안한 한 여학생은 적어도 교육감 선거에는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녀는 자신들이 원하는 건 자신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며 그런 자신들이 배제된 선거권에 대한 불합리함을 지적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한 임신부는 평소 차량을 주차할 때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임신부 주차 편리법’을 제안했다. 임신부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너무 힘들고 그래서 차를 끌고 나가면 주차할 때 공간이 너무 좁아서 내릴 때 배가 끼거나 긁힌다는 것. 그녀는 장애인 주차공간에 임신부도 포함시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법안 제안에 담았다. 

한 국민의원은 항상 정치인들이 ‘국민의 뜻’이라고 말하는데 자신은 그런 뜻을 밝힌 적이 없다며 지역구 주민들과 국회의원이 만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른바 ‘국회의원 미팅법’을 제안했다. 국민의 의견을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하고픈 마음이 그 안에서는 느껴졌다. 

‘국회의원 4선 방지법’도 눈에 띄는 법안 아이디어였다. 오래도록 연임하는 국회의원들과 새내기 의원들이 공정하게 선거를 하기가 쉽지 않고, 또 이렇게 새로운 의원들이 들어와야 다양한 의견이 담겨진 법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또 한 대학생은 학비도 어마어마한데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해야 하는 학생들의 경우 주거비 역시 감당하기 어렵다며 ‘청년 주거 지원법’을 제안했다. 감옥 독방보다도 작은 고시원에서 청춘을 버텨내고 있는 청년들의 현실이 절절히 담겨진 법안 아이디어였다. 

국민들의 이러한 제안에 그 자리에 참여한 현역 국회의원들은 적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주민 의원은 “마지막쯤 되니까 꼭 한 마디씩 하고 싶어하시더라”며 평소 국민들이 얼마나 하고픈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이용주 의원은 “200분의 국민의원들이 300명의 국회의원보다 더 많은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말했고, 이정미 의원은 법안이 자신들을 위한 필요보다는 타인들을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음을 짚어내며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꾸신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고 했다.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은 예능이라는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정치에 대한 문턱을 대폭 낮춰주었고 법안이라는 것이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들이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국민들 역시 함께 머리를 모을 때 더 좋은 사회를 위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무한도전> 국민의원 특집이 특별하게 다가온 건 그 자리가 현 국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법안이란 사실 국민들이 느끼는 힘겨움이나 갈증, 불만 같은 것을 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정미 의원이 밝힌 것처럼 우리네 국민들이 자신만의 문제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가 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그 진심들이 느껴진 부분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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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일기’ 안구커플, 어째서 갈등도 예뻐 보일까

두 사람은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안재현은 모든 것이 완벽하길 원한다. 주방도 설거지거리 없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저녁 준비도 미리미리 해둬야 한다. 집이 추워지는 새벽에는 일어나 난로에 장작을 더 넣어둬야 한다. 그래야 아내 구혜선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르다. 하다못해 산책하는 걸음걸이마저 다르다. 안재현이 성킁성큼 걷는다면 구혜선은 느릿느릿 걷는다. 

'신혼일기(사진출처:tvN)'

두 사람은 ‘다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안재현은 삐친다고 한다. “부부는 똑같아야 되는 거 아냐? 생각도 같아야 되는 거 아니야?”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부부이기 때문이다. 구혜선은 남편이 딴에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가 결혼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결혼을 했고, 당신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고 그렇기 때문에 난 계속 노력할거야.”

tvN <신혼일기>는 첫 회 그들의 알콩달콩함을 보여주더니 다음 회에는 역시 신혼이면 빠질 수 없는 갈등을 다루었다. 신혼을 지낸 부부들은 모두가 공감할 내용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어느 날 한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으니 서로의 다른 점들은 타인에게 불편을 만들 수밖에 없다. 또 늘 두 사람이 똑같은 느낌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날 구혜선처럼 침잠해 혼자 있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그런 그녀의 다른 모습이 화를 내는 것처럼 여겨져 안재현처럼 계속 “왜 그러냐”고 묻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오히려 화를 풀어주려던 사람이 화를 내게 되는 경우까지. 

가사 분담 문제는 신혼생활에서 가장 먼저 흔하게 부딪치는 일이다. 누가 밥을 하고 청소를 하며 빨래를 하는 생활의 문제들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으니 누가 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처음이냐 구혜선이 그랬다는 것처럼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두 달이 지난 후 그녀는 안재현에게 자신의 힘겨움을 토로했고 그래서 그는 가사분담을 시작했다. 최근 2개월간은 아예 자신이 맡아서 가사 일을 전담하고 있다고. 안재현은 구혜선 말대로 최선을 다해 그녀를 이해하려 하고 있고 자신이 한 얘기대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힘겨움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노력을 한다는 것은 어쨌든 ‘힘겹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으니까. 똑같이 식사 준비를 해도 나오는 설거지 양에 대해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 안재현에게서 그걸 느낄 수 있다. 어쨌든 그는 노력하고 있고, 그런 노력에 담긴 진심이 아내 구혜선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믿는다. 

<신혼일기>가 보여주는 두 사람에게 굉장히 진지한 갈등은 결혼생활이 오래되어 이제 신혼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베테랑 부부들에게는 그 자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 것이다. 물론 이들처럼 신혼 초기의 가사 분담 같은 걸로 벌어지는 갈등이란 정말 심각한 일처럼 다가오기 마련이고, 또 결코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참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른바 ‘안구커플’의 갈등은 알콩달콩한 모습이 아니라도 여전히 예뻐 보인다. 갈등들을 서로 얘기하고 그 소통을 통해 힘겨움을 공감하며 또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인정하고 그것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모두 부부의 ‘사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저런 때가 있었다. 각자 우리는 서로 달랐고 그래도 그 다른 것들을 받아들였으며 서로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걸 <신혼일기>는 새삼 되새겨준다. 그래서 그들의 갈등을 보며 미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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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고구마 시국 날려준 사이다 낭만 드라마

 

그냥 닥치고 조용히 내려와! 추하게 버티지 말고 내려와서 네가 싼 똥 네가 치워. 됐냐?” 어째서 이 평범해 보이는 대사는 이토록 다른 뉘앙스로 들리게 된 걸까. 이 대사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한석규)가 도윤완(최진호) 원장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도원장은 과거 자신이 조작한 대리수술의 증거들을 김사부가 내놓자, 자신이 병원장직을 유지하게 되면 돌담병원을 외상전문센터로 해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하자 그럼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도 원장에게 김사부가 던지는 속 시원한 한 마디.

 

이 대사 한 마디에는 어째서 우리가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에 그토록 빠지고 열광했던가가 들어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지금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퍽퍽해진 고구마 시국에 잠깐이라도 속 시원함을 안겨준 사이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드라마 안의 스토리에 맞게 돌아가는 대사이고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현 시국에 바라는 마음 그대로였다. 탄핵 국면과 특검 상황 속에서도 버티기에 돌입한 그들에게 던지는 일갈. 갈수록 추하게만 느껴지는 그 모습들로 더더욱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들을 향한 김사부의 한 마디.

 

그러고 보면 <낭만닥터 김사부>는 의학드라마의 탈을 쓴(?) 현실 비판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낭만을 소환해온 건 자본과 권력으로 움직이며 낭만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그래도 끝까지 지켜야 가치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낭만 없는 세상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던진 김사부는 그 스스로 붙인 이름처럼 세상의 사부가 되었다.

 

그런 사부 밑에서 제대로 된 제자들이 생겨난다. 강동주(유연석)는 과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의사가 되고 그래서 성공해 권력을 잡으려 했지만 김사부를 만나 변화한다. 진정한 의사의 길을 깨닫게 된 것. 그저 금수저 경쟁자로만 생각했던 도인범(양세종)에게 함께 수술하자고 손을 내밀며 그 스스로 변화하자, 그 변화의 힘은 도인범 또한 변화시킨다.

 

아버지 도윤완의 권세 밑에서 자라온 도인범은 돌담병원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찾았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거대병원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에게 그는 돌담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낭만닥터 김사부>가 전하는 잘못된 권력에 대한 가장 큰 복수일 게다.

 

아직 세상에는 의사 사장이 아니라 의사 선생이 되고 싶은 애들이 많다. 인범이를 포함해서 말이다.” 김사부가 도윤완에게 던지는 이 한 마디는 실로 낭만적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건 의사의 본분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만 어느 샌가 생명을 담보로 돈 버는 일이 되어버린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의사라는 직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게다. 검사도 판사도 심지어는 장관도 대통령도 곱씹어야할 이야기.

 

콘트롤 타워가 부재한 우리네 현실에 김사부는 하나의 해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흔히들 잘못된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진정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 먼저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저마다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노력하는 것. “세상 바꿔보겠다고 이 짓 하는 것 같냐. 난 사람 살려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는 거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사람이 산다.” 드라마를 뚫고 나와 현 시국에 대한 일갈로 들리게 된 김사부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여전히 귓가에 쟁쟁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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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힙합의 콜라보, <무도>의 역대급 도전

 

역시 고수는 고수다. 이 어려운 시국에 이런 도전을 기획으로 내놓는다는 건 역시 <무한도전>이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역사와 힙합의 콜라보는 그 의미와 재미에 있어서 역대급이었다. 역사 교육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현재가 아닌가. 그러니 역사를 다시 배운다는 의미만으로도 이 도전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여기에 힙합이 일종의 교육적 도구로서 활용된 건 신의 한 수였다. 힙합 장르의 특성상 가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용이하고, 또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 교육과 인식이 상대적으로 더 요구되는 젊은 세대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힙합이 또한 갖고 있는 저항정신은 역사를 통한 현실 인식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점이 주효했다.

 

개코와 광희 그리고 오혁이 피처링한 당신의 밤같은 곡은 윤동주 시인의 삶에 빗대 현재의 우리들을 되돌아보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던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개코는 자신의 부끄러운 머뭇거림과 두려움을 털어놨다. ‘비판이나 비아냥이 싫어 머뭇거리던 입가 뒤돌아 걸어가는 시대 뒤에 고개 숙인 내가 밉다같은 가사나 오늘 밤은 어둡기에 당신이 쓴 시가 별이 돼. 광장 위를 비추는 빛이 돼.’ 같은 가사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힙합을 통해 역사의 한 자락을 소환해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가사들.

 

이는 또한 세종대왕의 삶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 지코와 정준하 그리고 넬의 김종완이 피처링한 지칠 때면이란 곡에서도 그대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시력을 포기하며 모두 눈 뜨게 했어. 난 글도 읽을 줄 알면서도 보지 못 했어. 눈앞에 놓인 현실을 말이야.” 같은 가사는 역사를 등한시해왔던 우리를 반성하게 했고, “명령보단 대화를, 회피 대신에 책임을... 통치가 아닌 보살핌을같은 가사들은 세종대왕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현재의 국정운영을 꼬집었다.

 

<무한도전>의 이번 위대한 유산특집이 역대급이라 여겨지는 대목은 그것이 예능적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안겨주면서도 동시에 역사 교육과 현실 인식 그리고 힙합이라는 장르까지도 끌어안은 종합 예술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 때문이다. 무대 하나하나는 그래서 숙연함을 느낄 만큼 진지함을 담고 있었지만 또한 힙합 특유의 흥이 넘쳐흘렀고 그러면서도 같은 시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있는 대중들의 간절한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려운 시국을 맞아 예능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날선 풍자들을 쏟아내 놓고 있다. <개그콘서트>가 그렇고 <SNL코리아>가 그러하며 또한 <웃찾사>가 그랬다. 하지만 여러 모로 <무한도전>이 이번 내놓은 위대한 유산만큼 이 시국을 정조준하면서도 예능적으로 완성도 높은 성취를 보여준 아이템이 있었을까.

 

2016년의 마지막 날, <무한도전>이 쏘아 올린 이 도전은 그래서 현 시국에 지친 많은 분들을 위로하고, 또 실망과 좌절을 느끼는 분들에게는 역사적 영웅들을 소환해옴으로써 다시금 자긍심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되면서도 또한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까지 담고 있었다. 역시 어려운 시국일수록 더욱 빛나는 고수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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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 어디까지 갈까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초현실적인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반영할까.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올 한 해 드라마의 한 경향이라고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가 초현실적인 판타지를 만난 멜로다. tvN <또 오해영>이 사랑하는 여자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고, MBC <W>는 웹툰 속 주인공을 사랑한 여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으며, JTBC <마녀보감>이나 tvN <싸우자 귀신아>는 마녀, 귀신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고 보면 올해의 대미를 인어가 등장하는 SBS <푸른바다의 전설>과 도깨비가 등장하는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장식하고 있다는 건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멜로드라마가 초현실적인 존재들을 등장시켜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하게된 건 우선 드라마의 이야기성이 점점 더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웹툰 같은 현재 드라마의 원천적 소스가 되고 있는 장르는 드라마가 이러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성을 극대화하게 된 기폭제가 되고 있고, 여기에 훨씬 좋아진 CG 기술은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를 허용한 건 시청자들이다. 이미 드라마 경험이 풍부해진 우리네 시청자들은 이런 판타지를 용인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결국 판타지라는 걸 공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판타지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저 비현실적인 허황된 이야기로만 남아서는 곤란하다. <W> 같은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수용한 건 그 이야기가 마치 우화적인 느낌으로 에둘러 현실을 이야기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현실을 갖고 현실을 얘기하는 방식. 초현실적 판타지가 들어가는 드라마에서는 바로 이 우화적 기능이 그래서 중요해졌다. <W>가 제시한 작가와 작품 속 캐릭터의 문제는 신과 인간의 철학적인 질문은 물론이고, 독자의 개입으로 작가 개념이 점점 흐릿해져가는 현재의 변화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인어 이야기를 현대로까지 끌어오게 된 건 인어라는 백지 상태의 리트머스지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보기 위함이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인어가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 것. <도깨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는 과연 행복할까. 죽음은 과연 불행일까.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은 사랑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결국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에 빠져든다는 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잠시 잊고픈 욕망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을 드라마를 통해 채워보려는 안간힘. 그런 관점에서 보면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나 <도깨비>의 도깨비가 우리의 어떤 갈증들을 채워주는가가 드러난다. 인어가 순수한 사랑같은 조금은 추상적인 갈증을 추구한다면, 도깨비는 우리네 설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욕망들, 이를테면 부에 대한 욕망이나 영생에 대한 욕망 혹은 초능력에 대한 욕망들을 건드린다.

 

<별에서 온 그대>가 촉발시킨 이질적 존재와의 로맨스는 그래서 이들 작품들로 이어지며 다양한 욕망들을 수용하는 중이다. 답답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바꿔주는 존재에 대한 희구. 그건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판타지가 유독 올해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건 그저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현재 처한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하다는 반증은 아닐는지. 그 답답한 현실은 그래서 인어에 도깨비까지를 현재로 소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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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의 낭만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들

 

도로 위로 사고가 난 자동차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 사고 현장에는 차에 끼인 사람, 차가 뒤집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 차에 튕겨져 나가 다리를 다친 사람, 충격으로 내상을 입은 아이 등등.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의사들, 강동주(유연석)와 윤서정(서현진) 그리고 도인범(양세종)이 응급조치를 하고 급한 환자부터 돌담병원으로 이송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돌담병원의 콘트롤 타워는 다름 아닌 김사부(한석규). 본원에서 내려온 감사팀에 의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김사부지만 그는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와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한 환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그럼에도 감사팀에서 파견 온 직원은 규정을 내세우며 김사부를 가로막는다. 마침 그 사고현장에서 그 감사팀 직원의 딸이 위급한 상황으로 실려 오지만 그 앞에서도 그는 바보처럼 규정만을 얘기한다. 김사부는 결국 자신의 룰을 이야기한다. 그 병원에서의 룰이란 반드시 살린다라고.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 도로 위 연쇄교통사고와 이에 대처하는 김사부의 이야기에서 어떤 뭉클함을 느꼈다면 그건 우리가 이미 이런 일들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 김사부 같은 리더십을 보지 못했다는 회한 때문일 게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위중한 상황, 김사부의 선택은 즉각적이고도 명쾌했다. 자신은 의사이고 그러니 사람을 살리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걸 명확히 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글쎄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런 이야기가 당연한 것이 되지 않았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환자를 끝까지 살리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한 윤서정은 과잉진료혐의로 감사팀의 조사를 받았고, 심지어 과거의 사고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받았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감사팀이 김사부의 의료 행위 자체를 막아버린 건 그를 제거하려는 거대병원 도윤완(최진호) 원장의 지시 때문이다. 정략적으로 움직이는 도윤완의 행태 앞에서 김사부의 선택은 그래도 결국 환자의 생명이었다.

 

돌담병원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의 축소판이라면 그 병원을 좌지우지하려는 도윤완 원장 같은 인물들이 그 피폐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다. 돈이 없어 심지어 치료를 포기하는 서민들을 바로 돈이 없기 때문에 규정을 내세워 밖으로 내모는 인물. 그래서 병원이 본래 목적인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돈을 버는 곳이라는 걸 공공연히 내세우는 그런 인물이 도윤완이다.

 

그 속에서 뜻있는 의사 김사부 같은 리더의 일갈은 그래서 그저 드라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우리네 마음을 건드린다. 결국 딸을 살려낸 김사부에게 감사팀 직원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딸을 치료해줬는지 원하는 게 뭔지를 묻는다. 그에게 김사부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살려는 건 좋은데 못나게 살진 맙시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 결국 가장 소중한 건 생명이고 사람이다. 그런데 열심히 산다는 이유로, 또 성공하겠다는 이유로 그 본질을 잃어버리는 순간 못난 삶이 되어버린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왜 낭만적인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휘어잡는가는 이 우화 같은 드라마가 환기시키는 리더십 부재의 현실이 이 이야기에 대한 판타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우리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리더가 있는가. 아니 최소한 콘트롤 타워는 존재하는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진중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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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과잉도 설득 시킨 이철민의 연기

 

조폭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윤서정(서현진) 목에 낫을 들이대고 수술실에 난입한 사내(이철민)는 김사부(한석규)가 수술을 강행하려고 하자 그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자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범한 강간범이라고 말했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와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응급환자 사이, 김사부는 짐짓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마음의 동요를 느꼈다. 사내의 이야기가 너무나 처절했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내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늦게까지 택배 돌리는 사이에 우리 와이프랑 딸애가 있는 집안에 들어와서는... 그 때 우리 와이프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내 딸은 내 딸은 겨우 11살이었는데 저 새끼가... 근데 저 새끼 형량이 얼만 줄 알아? 겨우 3년이야 초범이라고. 심지어 2년 만에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초범에 모범수라고. 이게 말이 돼? 그 일로 우리 와이프는 유산을 했고 내 딸 아린이는 평생을 대변 줄을 옆에 차고 살아가야 되는데 근데 저 새끼는 가석방까지 받고 나왔대 이게 말이 되냐고 이게.”

 

사실 이전 회에서 이 사내는 조폭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응급실에서 영양제를 놔달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아 깨끗이 처리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조폭이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그리고 수술실까지 들어와 낫을 들고 위협하며 수술을 멈추라고 하는 대목이나 이런 시골병원에서 총으로 중무장한 기동타격대가 들어오는 장면들은 너무 과한 느낌을 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과잉을 털어 내준 건 그 과잉된 스토리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사내의 목소리를 통해 강렬하게 전해지면서다.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는 사내에게 김사부에게 그래서 당신이 직접 벌을 주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사내는 울분을 토해낸다. “이 나라 법이 개떡 같은 걸 어떡해. 나라도 해야지. 내가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돈도 못 벌고 가난하고 힘도 없고 무능한 아빠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나라도 나서서 저 새끼 죗값을 받아내야 할 거 아냐? 나라도!”

 

여기서 이철민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겨우 10분 남짓의 시간만으로 과잉된 비현실적 상황을 훌쩍 뛰어넘어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핏발이 선 눈빛과 분노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대는 모습은 물론이고 땀을 철철 흘리며 그 긴장된 상황을 연기하는 이철민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단역이라고 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연기가 우리네 서민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공감대를 갖게 만들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과잉된 설정으로 인해 한 편의 우화나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건 그 우화나 만화 같은 상황이 지향하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가 존재할 때다. 이철민이 연기한 부분은 분명 개연성으로만 보면 어딘지 앞뒤가 잘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가 전하려는 가난한 아빠의 울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잉을 덮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철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낭만닥터>에 탑승하게 된 게 행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낭만닥터> 제작진 측에서는 이철민을 캐스팅한 게 행운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한 아버지의 치료를 중지하라는 가난한 집안의 한 아들이 하는 토로 역시 마찬가지 느낌을 준다.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윤서정의 말에 사내는 지극히 현실적인 절망을 이야기 한다. “그건 있는 사람들 팔자 좋은 소리고 우린 돈이 없다고.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저러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남은 가족은 평생 병원 치료비 갚다가 죽으란 소리야 뭐야. 어차피 깨어나지도 못할 거 저렇게 힘들 게 살아서 뭐하냐고?”

 

거기 누워 있는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닌 아버지고 그렇게 치료를 중단하라고 말하는 이가 바로 아들이라는 점은 이 비극적 상황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분명히 해준다. 결국은 돈이다. 생명보다 우선하는 돈. “네 아버지 평생 니들 위해 뼈 빠지게 고생하셨어. 근데 마지막 가는 길에 이것도 못해드려? 네 아버지 그 정도 대우도 받을 자격 없는 거야 니들한테? 그래 돈 없지. 그 원수 놈의 돈.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 그래도 네 아버지 눈이라도 한번 뜨게 해드리고 싶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과장된 상황들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는 마치 게임적인 느낌마저 주기 때문에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결국 이런 비현실을 채워주는 건 갖가지 사연들을 갖고 들어오는 서민들이 전하는 현실적 공감대가 아닐 수 없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관건은 결국 이 과장된 상황과 현실적 공감대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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