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개그맨 이수근과 김병만이 '승승장구'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 '개그콘서트'에 출연하고 있으면서도 공채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지자, 개그를 포기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돌아간 이수근. 그와 콤비를 이뤄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김병만. 하지만 개그맨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웃기는 일밖에 없었던 그들이지만, 세상은 웃음을 주는 그들의 현실을 바라봐주지 않았다. 웃음을 주기 위해 사실은 남모르게 울고 있는 그들을.
"아마 전세가 다섯 명 정도 밖에 안될 걸요." 이수근이 프로그램에서 밝힌 듯이 개그맨들은 대부분 사글세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들에게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 프로그램은 생계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생계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천안함 사태가 벌어졌을 때, 거의 한 달 여 동안 '금지된 웃음'은 이 사글세를 전전하는 개그맨들에게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개그맨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개그야'에 이어 '하땅사'도 폐지되었고, '웃찾사'는 시청률에 고전하며 결국 토요일 심야시간대로 편성되었다. 예능의 대세가 되어버린 버라이어티쇼는 더 이상 개그맨의 설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몇몇 유명한 MC들이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고, 신예들은 가수들이나 연기자들인 경우가 다반사다. 이렇게 된 것은 버라이어티쇼가 그 웃음을 주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무대개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개그맨들이 무대에서 해왔던 방식은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1년 여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수근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상황이 이렇지만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승승장구'에 함께 출연한 박성호는 "'개그콘서트' 같은 무대가 있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수근은 "연기자들은 쉬면 충전이지만 개그맨들은 방전"이라며 쉬는 것조차 위기상황이 되는 개그맨의 현실을 토로했다. 김병만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마음이 몹시 힘들 때조차 무대에 올라 웃겨야 하는 상황이 개그맨이라는 숙명임을 에둘러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개그맨들이 그렇겠지만 이수근과 김병만은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개그맨으로 정평이 나있다. '1박2일'에서 웃기기 위해 옷을 벗는 이수근은 "그것이 사람들을 웃기게 한다"는 것 때문에 창피하지 않다고 말했고, 김병만은 '달인'을 하기 위해 진짜 달인 수준의 연습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품도 거의 직접 제작한다고 한다.
깜짝 출연한 김석현 '개그콘서트' PD의 말대로 개그맨들은 위대하지만 지나치게 평가절하 되어 있다. 웃음 없는 세상, 우리의 입가에 피어하는 한 순간의 웃음을 위해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들은 진정 위대하다. 예능의 대세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지만, 그 기초는 실험적인 개그맨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설 수 있는 무대나 공간이 좀 더 만들어지고, 합당한 가치로 평가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썰렁한 분위기에도 유독 활활 타는 코너가 있다. 이른바 '자기 계발 서적' 코너다. 성공에 관한 저마다의 방법들이 실용적으로 담겨진 그 책들은 언제 갑자기 도태될 지 모르는 경쟁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불안한 현대인들을 유혹한다.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자기 계발을 해준다'는 책들의 주장들은 정말 달콤하다. 아침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고, 사회생활 속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며 전술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것이 성공을 보장해줄 것이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이라는 말은 그 뉘앙스만 보면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을 성장시켜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그 책 코너 속에 몇몇 책들은 실제로 이런 기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사회를 상정하고 그 사회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지침처럼 내세운다. 즉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을 통제하는 것으로 그 사회의 기존 질서에 부합하는 성공을 열매로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계발'이란 이제는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통제하게 만드는 보다 견고해진 사회의 통제 시스템으로 보이기도 한다.
불안하기는 방송사 같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어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송사도 새로운 사장을 뽑고, 조직을 새로 짜고, 매번 방송 개편을 하면서 자기계발을 한다. 사실 개인이야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심각한 자유의 침해로 여겨지지만, 방송사 같은 거대 권력 조직이 어떤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통제 없이 달려 나가는 방송사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지뢰처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중요한 건 그 통제가 누구에게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방송사가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계발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방송사가 존립하는 이유인 대중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대중들의 눈높이, 사회 윤리적 잣대, 볼 권리, 알 권리... 굳이 공익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늘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만일 이 통제가 대중들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나온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 군사정권 하의 우리네 방송을 돌이켜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지금은 군사정권처럼 시시콜콜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하면서 방송을 통제하는 시대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국민들도 아니다. 문제는 누가 지시하거나 압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자기 통제를 하는 방송사다. 늘 자기 계발을 위해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해 했다고는 하지만, 대중들에 의해 논란이 야기되는 건 그것이 혹 자기검열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한다는 명분의 자기 계발은 그 통제가 대중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자기검열은 권력으로부터 통제되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외압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하차와 정관용씨의 시사 프로그램 하차, 그리고 계속해서 외압의혹을 낳고 있는 김제동씨의 결국 불발된 '김제동쇼'. 그 밖에도 '개그콘서트'의 몇몇 코너들에 대한 외압설 등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아마도 직접적인 외압은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방송사가 스스로 단행하는 자기 통제 방식의 압력은, 그것이 대중들의 논란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볼 때,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대중들을 위한 자기 통제라면 논란이 나올 까닭이 없지 않은가. 자기 계발 시대의 통제 시스템은 이처럼 더 견고해졌고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천안함 사태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이 거의 한 달째 결방되었다. 26일부터 29일까지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어서, 파업 중인 MBC를 제외하고 KBS나 SBS는 이번 주말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방영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우리네 젊은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애도하는 마음을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과 연결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존재한다.
먼저 예능 프로그램의 웃음이 애도하는 마음 자체를 해칠 만큼 무의미하고 몰가치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힘겨운 현실에 예능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웃음은 그 자체로 공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억압을 웃음이라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 속에 들어가는 풍자정신이나 사회비판적인 요소들은 갑갑한 세상에 작은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는 점에서 건강하다.
게다가 작금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까지도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과거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때만 해도, 저마다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현지로 내려가 태안 살리기에 동참하는 내용을 방영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은 국내의 숨겨진 여행지를 발굴하고, 또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오지를 조명해준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 '개그 콘서트'는 개그 프로그램으로서 웃음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풍자정신으로 사회적인 맥락을 잊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은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나 불경기에 힘겨워하는 서민들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저버리지 않고 있고, 때론 우리 음식을 알리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아예 공익을 내걸고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단비'는 국내외를 넘나드는 기부 프로그램이고, '우리 아버지'는 힘겨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조명해주는 착한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이런 '의미 있는' 웃음을 전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이라는 그 잣대 하나로 모조로 결방시키는 것은, 웃음이 가진 사회적인 의미를 너무 낮게 바라본 처사라고 볼 수 있다. 혹자들은 이런 비극적인 사태 앞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웬 말이냐고 말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방영이 TV의 애도 분위기를 해치는 일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적인 애도를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다. 웃음도 눈물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형평성 문제다. 단적으로 말해 '개그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이 거의 5주째 결방된 반면, '승승장구'나 '강심장' 같은 토크쇼나 '우리 결혼했어요2'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에 대한 형평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예능은 안 된다고 하면서 코미디 영화로 대체한다거나, 로맨틱 코미디를 담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는 상황도 쉽게 납득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개그 콘서트'는 안 되고 '7급 공무원'은 되는 상황, '동이'에서 심지어 왕이 깨방정을 떨며 웃음을 주고, '개인의 취향'에서는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가 말 그대로 빵빵 터지게 만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처럼 드라마나 (예능을 닮아있는) 교양프로그램은 되면서,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상황은 그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형평성 문제를 낳는다. 특히 '개그 콘서트' 같은 경우 몇 주 동안 결방되는 상황 속에서 개그맨들의 힘겨움은 현실 그 자체다. 또한 가수들 역시 음악 프로그램 자체가 방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활동할 무대가 사라져버렸다.
오랜 결방은 또한 프로그램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예능으로 분류되어 있는 시트콤의 경우, 매일 방영되던 것이 몇 주 동안 계속 결방되면서 대중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져버렸다. 이것은 점점 더 스토리텔링화 되어가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도 마찬가지다. 과거처럼 예능 프로그램은 단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연속적인 스토리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박2일'은 봄을 맞아 전국투어를 시작했지만, 잦은 결방으로 그 시의성을 놓쳐가고 있다. 몇 주 결방된 후 방영된 '우리 결혼했어요2'에서는 2월에 찍은 영상이 방영되었다.
이런 기준 없는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은 심지어 다양한 음모론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유독 오랫동안 결방되어 온 '개그 콘서트'의 경우, 그간 해왔던 풍자개그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심지어 MBC의 파업으로 인한 방송 프로그램의 결방을, 타 방송사들의 천안함 사태로 인한 결방으로 덮어버리려는 의도라고도 말한다. 나아가 장차 있을 선거에 맞춰 남북 관계의 긴장관계를 높이려는 의도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그저 음모론에 불과한 것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추측들을 양산한 것 역시 바로 그 형평성 없는 기준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런 국민적인 애도가 필요한 시점에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국민적인 여론과 그 여론을 읽는 제작자에 달려있다. 이 말은 해외의 사례들, 예를 들어 미국의 911 테러사건이 벌어졌을 때 예능 프로그램들이 결방되었는가, 하는 그런 예시들은 우리의 상황에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전적으로 우리네 정서가 어느 쪽으로 가느냐의 문제이고, 그것을 제작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다. 따라서 만일 이렇게 제작자들이 여론을 읽은 결과로서 예능이 결방을 결정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예능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웃음이 그다지도 의미 없는 것이라 판단하는 것인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지면 안되는 것인가.
무한도전 결방, 금단현상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 1... 먼저 오해 없으시길... 혹여나 천안함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나라를 위해 한 몸을 희생하신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살아오신 분들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유족들과 남아있는 분들의 상처가 속히 치유되기만을 기도 드립니다. 무한도전이 언제야 정상적으로 방영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요. 드..
잔인한 4월-무도+놀러와 결방, 무한재석교 신도의 이중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T.S. 엘리어트의 황무지 앞부분- 1... 제가 황무지라는 유명한 시를 부족한 제 글에 인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이제 4월은 2주를 남겨두고 계절의 여왕이신 5월님께 바..
"씁쓸하구만.." 작년 이 한 마디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준호. '개그콘서트'와 '희희낙락'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그는 안타깝게도 도박사건에 연루되어 진짜 말 그대로 '씁쓸한 인생'을 맞았습니다.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 부문 수상자 명단에도 올랐지만 자숙하는 의미로 참석하지 않았고, 자신의 개그 인생과 맞닿아 있는 '개콘'이 10주년 특집 방송을 녹화하는데도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씁쓸한 인생'으로 이제 씁쓸했던 그 인생을 훅 날려버리나 싶었는데, '씁쓸한 인생'이 말이 씨가 되어 진짜 씁쓸한 인생이 되어버렸던 거죠.
지난주 개콘 PD와 만난 자리에서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하류인생', '같기도', 그리고 '달인' 이전에 최장수 코너였던 '집으로'에서도 발군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준 김준호는 '개콘'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코미디쇼 희희낙락'에서는 자료영상을 합성해 만들어낸 '김준호쇼'를 통해 국내외 유명인사들과의 가상 인터뷰(?)를 보여주었죠. '웃음충전소'에서는 가장 화제가 되었던 '타짱'의 진행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김준호는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죠. 그는 천상 코미디언이었으니까요. 개콘의 김석현 PD는 코미디는 연기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버라이어티쇼는 코미디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는 것이지요. 개그맨들이 버라이어티쇼에 가서 적응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했습니다. 즉 아무리 개그맨이라 하더라도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김준호는 버라이어티쇼에는 잘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토크쇼에서도 '적응이 안되는 모습'을 오히려 컨셉트로 삼곤 했습니다.
김준호는 대신 드라마쪽에서 오히려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죠. '에어시티'에서 감초연기로 가능성을 보인 김준호는 '뉴하트'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연기자로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즉 희극 연기자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던 참이었죠. 한편 '개콘'에서 이제 고참으로서 후배들의 든든한 비빌 언덕 역할을 자처했던 김준호는 '씁쓸한 인생'에서 아낌없이 망가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한 순간의 실수로 씁쓸한 인생을 맞았던 거죠.
김석현 PD는 김준호의 복귀 소식을 말하면서 '씁쓸한 인생'도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준호의 복귀와 '씁쓸한 인생'의 끝. 이 두 개가 얼키면서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김준호의 자리를 메워주었던 김대희가 김준호를 보며 "너 때문에 (못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 이제 뭔가 해보겠다고 올라온 김준호에게 알려지는 코너 폐지 선언은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이었습니다.
'씁쓸한 인생'이라는 코너 자체가 그 중심에 앉아있는 인물을 씁쓸하게 해서 웃음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간 그 씁쓸한 역할을 대신해온 김대희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한 그 모습이 우스웠고, 불운한 실수로 씁쓸한 인생을 지내다 다시 씁쓸한 역할을 통해 개그맨으로 복귀하려 '씁쓸한 인생'이란 코너로 돌아왔지만 코너 폐지를 듣게되는 그 씁쓸한 상황이 우스웠습니다. 어찌 보면 김준호는 이 코너의 시작과 마지막을 잘 장식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즉 마지막까지 (코너 폐지라는 소식으로) 자신을 망가뜨려 웃음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모쪼록 '씁쓸한 인생'이라는 코너의 폐지가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김준호가 겪어온 씁쓸했던 나날들의 종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연기자로서의 희극인이 귀해지는 요즘, 김준호가 한 때의 실수로 인한 씁쓸한 인생을 접고 다시 활기찬 인생을 맞기를 기대합니다.
'개그콘서트' 김석현PD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개콘' 코너 중 '달인'이 최장수 코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주 걸리다가도 재미없으면 퇴출되고 마는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서 '달인'의 장수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큰 건 그 단순한 몸개그가 가진 힘이었을 것입니다. 김병만은 몸개그에 관한 한 독특한 자기 영역을 갖고 있는 개그맨이죠. 저는 무엇보다 과거 '웃음충전소'에서 김병만이 했던 '따귀맨'을 가장 인상깊게 기억합니다. '따귀맨'은 따귀를 때리는 그 몇 장면들, 우리가 육안으로 보면 그냥 지나쳤을 그 장면을 고속촬영을 통해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습니다. 살이 막 떨리는 그 장면들이 주는 포복절도의 웃음이란..
당시 '웃음충전소'를 연출했던 김석현PD는 그 몇 장면을 찍기 위해 뺨을 백 번 가까이 때리고 맞았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짧고 굵직한 그 한 장면을 위한 제작진과 출연진들의 노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김병만은 '김병만은 살아있다'를 통해 이 초정밀 카메라의 시대와 몸개그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실험했습니다. '달인'은 어쩌면 김병만의 실험적인 몸개그 중, 가장 대중적인 코너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김석현PD는 김병만이 '달인'에서 어떤 장면, 예를 들면 체조의 링을 할 때, 그것을 하기 위해 몇 주씩 체육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곤 했다고 했습니다. 온 몸에 온통 파스를 붙이고 나타나서는 파스 자국이 난 몸을 보여서는 안된다며 녹화 몇일 전에 파스를 떼고 무대 위에 오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제 아팠냐는 듯, 혼신의 개그를 펼쳐보인다는 것이죠.
물론 '달인'이 최장수 코너가 된 데는 단지 김병만의 '특별한 몸개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달인'만이 가진 장점들이 있었죠. '달인'은 먼저 전문가인 양 나서는 '스스로를 달인이라 자처하는'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통쾌함을 선사했습니다. 권위의 해체. 이것은 어쩌면 '달인'이 등장하던 그 시기에 가장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소재는 무궁무진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없었던 전문가 집단들이 나타나고 있는데다, '달인'은 아직은(?) 없는 전문가들까지 소재로 쓸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달인'이 가진 속성들, 즉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김병만의 몸 개그, 무궁무진한 소재, 전문가라는 권위를 해체하는데서 나오는 현실공감 등이 이 코너의 장수를 만들었던 것이죠.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달인'의 캐릭터도 조금씩 변해왔다는 것입니다. 김석현PD는 초창기 '달인'은 실제 달인이 아니면서 달인이라 우기는 캐릭터였지만, 최근에는 진짜 달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기대를 배반'하는 데서 웃음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즉 초기에 관객들은 달인을 우기지만 달인이 아닌 그 기대의 배반에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차츰 김병만이 실제 달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익숙해지면서 기대감은 떨어지게 되었죠. 그러자 김병만은 여기서 다시 허를 찔러 그 떨어진 기대를 저버리는 진짜 달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평균대 위에서 누군가를 목마 태우고 걷거나, 앞으로 구르기를 하는 것은 실제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김병만은 보기좋게 그걸 해냅니다. 그 순간 거꾸로 관객들은 탄성과 웃음을 터뜨리죠.
'달인'의 김병만이 진짜 달인이 된 사연은 이렇듯, 결국 웃음을 지속적으로 주기 위해 스스로 체육인처럼 몸을 단련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달인'이라는 코너의 장수를 바라보며서 김병만이라는 개그맨의 장수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요.
"대학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마치 마당놀이에서 광대들이 세상사를 그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요리를 할 때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그 경험. 장동혁은 그렇게 '동혁이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자체의 호화청사에 대해 "거기가 무슨 베르사이유 궁전이야?"라고 비판하고, 고층 시청사에 대해 "수익을 낼 거라는데 시청이 무슨 복덕방이야?"하고 꼬집었을 때는 국민의 세금 받아 정작 국민을 위한 일은 좀체 하지 않는 그 답답한 행태에 대한 신랄함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물론 이것은 개그다. 우리는 '동혁이형'의 샤우팅을 보면서 억울함에 부들부들 떨거나, 그 말에 선동 당하지는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말 그대로 빵 터진다. 그것은 이 개그가 웃음의 장치를 충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촌철살인의 적절한 비유에서 나온다. '대학등록금'이 '아빠 혈압'과 만날 때, '호화청사'가 '베르사이유 궁전'이 될 때, '고층 시청사'가 '복덕방'이 될 때, 명절 고속도로 정체 속에서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하는 귀향객이 "하루 종일 운전하는 이수근"이 될 때, 웃음은 빵 터진다.
게다가 이렇게 세상에 쓴 소리를 던지는 존재가 깔깔이에 교련복을 차려 입은 후줄근한 모습의 낮은 인생이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즉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 같은 엘리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혀 그런 얘기하고는 상관없을 것만 같은 불만투성이 청년이 '저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마구 쏟아내기 때문에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이 쓴 소리는 '동혁이형'이 스스로 말하듯,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그저 분노를 폭발시키기 위한 헐뜯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억눌렸던 감정이 터지며 그 분노가 웃음으로 전화된다는 점에서 '동혁이형'은 그 말을 입증하는 셈이다.
'동혁이형'이 부조리한 세상을 직설어법으로 풍자해낸다면,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그 형식이 갖는 간접어법을 사용한다. '남보원'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갖지만 이것만으로 이 개그는 웃음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시위처럼 붙여진 과장된 형식이 붙으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문제제기-구호-사연설명-상황반전. 이것이 '남보원'의 간단한 형식이지만 이 형식은 많은 현실의 부분들을 공감으로 끌어안는다. 즉 남성들의 공감대는 물론이고 시위조차 하나의 통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정치권에 대한 풍자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한편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으로 잘 알려진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은 취객의 목소리라는 희극의 단골소재를 통해 알 수 없는 그 더러운 세상을 풍자해낸다.
방송개혁시민연대(방개혁)는 '동혁이형'이나 '남보원' 같은 풍자개그가 선동을 함으로써 '개그를 개그로 볼 수 없게 만든다'고 하지만, 바로 그 풍자 속에 담겨진 현실 공감이 있기 때문에 이 풍자개그는 개그가 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풍자개그는 '개그콘서트'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세상에 대한 하소연을 담아낸 안상태 기자가 그렇고, 잘못된 상흔에 대해 꼬집는 황현희 PD가 그렇다. 또 '분장실의 강 선생님' 같은 코너에서 늘 당하면서도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 신참들은 88만원 세대들의 고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현실공감은 '개그콘서트'가 꾸준히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방개혁은 심지어 이 개그를 보고 있으면 "국민이 천민(賤民) 혹은 폭민(暴民)화"된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풍자개그를 개그로 보지 못하고 선동으로 보는 그 과잉된 시선 때문이다. 개그가 선동으로 매도되는 세상. 아마도 '동혁이형'이 불만을 개그에 담아 풍자한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바로 이런 세상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램의 질만큼 중요한 것이 편성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편성이 만사"라고까지 말한다. 한 프로그램의 성공은 다음 시간대 프로그램의 성공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각각 하나로 떼어보는 것보다는 한 덩어리, 즉 라인으로 생각하면 거기서 편성의 묘가 보인다. 이것은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현재 최강의 편성라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요일 밤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KBS2의 프로그램 편성라인이다. 5시20분에 시작하는 '해피선데이'에 이어서 '솔약국집 아들들', '개그콘서트', 그리고 '천추태후'가 끝나는 11시30분까지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저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AGB닐슨의 지난 30일자 시청률표를 보면 1위의 '솔약국집 아들들'이 35.6%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2위가 '개그콘서트(20.1%)', 3위가 '해피선데이(19.1%), 그리고 '천추태후'는 4위인 '스타일(18.9%)'에 약간 뒤진 18%로 시청률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주간시청률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주간 시청률에서 '솔약국집 아들들', '개그콘서트', '해피선데이'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덕여왕' 다음으로 2,3,4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각각의 프로그램이 갖는 높은 대중적인 지지도를 말해주는 것이지만, 라인을 형성한 편성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주말 시청률에서 KBS2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SBS의 '스타일'과 '천만번 사랑해' 역시 하나의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치게 만든다. 한편 일요일 시청률에서 참담한 결과에 머물고 있는 MBC는 어떤 라인은커녕 중심을 잡아주는 프로그램조차 형성되지 않음으로써 점점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일요일 시청률표에서 20위 권에 들어간 MBC프로그램은 14위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9위의 '해피타임' 두 프로그램뿐이다. 즉 저녁 시간대의 라인이 무너져버린 형국이다. '일밤'을 중심으로 주말드라마까지 이어지는 황금의 편성라인은 이제 옛 얘기가 되어버렸다.
TV라는 매체는 집중적으로 보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저 틀어놓고 슬쩍슬쩍 보는 시청행태가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틀어져 있는 채널은 그만큼 유리한 면이 있다. 하나의 좋은 프로그램이 따라서 이어지는 다른 프로그램을 살리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요일 밤 KBS2로 고정되는 채널은 라인을 형성한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던 시기, 주말은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그랬다. 주말이면(금요일 저녁부터) 야외로 나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문화는 주말 시청률을 반 토막 내곤 했다. 특히 봄에 찾아오는 상춘객들의 급증이나 여름 바캉스 시즌에,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독한 불황의 여파일까. 아니면 점점 여가로 정착되어가는 영상문화의 영향일까. 이제 주말은 계절을 불문하고 시청률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먼저 드라마 시청률 경쟁의 불을 댕긴 것은 시청률 47%라는 괴력을 보인 ‘찬란한 유산’이다. 주말 드라마들이 주로 고정적인 시청층에 소구하는 가족드라마를 내세우며 평균적으로 20%대에 머물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찬란한 유산’이 남긴 유산은 실로 찬란하다고 할 수 있다. 47%라는 수치는 좋은 작품에 그만한 시청자층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찬란한 유산’은 가족드라마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미니시리즈적인 특징을 끌어안는 것으로 오히려 시청률 상승에 기폭제를 만들었다. 이것은 주말드라마하면 가족드라마라는 공식의 균열을 의미한다. ‘친구’나 ‘탐나는도다’ 같은 지금까지 주말에는 보기 어려웠던 드라마들이 주말에 포진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찬란한 유산’의 종영 후 전체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선덕여왕’으로 그 바톤을 월화로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주말은 드라마 시청률의 밭이라고 할 수 있다. KBS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찬란한 유산’의 후속으로 들어온 ‘스타일’은 3회 만에 20% 시청률에 도달하고 있다. SBS 주말극장 ‘사랑은 아무나하나’ 역시 15% 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고,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는 떨어진 시청률에도 12%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20위 권에 들어있는 주말드라마가 총 네 편으로 전체 순위에 있는 아홉 편 중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주말 시청률 경쟁은 점점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격전지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개그콘서트’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전체 예능프로그램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KBS의 ‘해피선데이’가 따르고 있다. SBS의 ‘패밀리가 떴다’가 그 다음이고,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는 한 때 이 경쟁의 대열에 있었지만 현재는 주춤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이 일요일에 집중되던 시청률 경쟁은 이제 토요일로 번져갈 조짐이다. 토요일 예능의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이 20%에 육박하는 시청률 상승을 맛보고 있으며, 토요일 저녁으로 자리를 옮긴 MBC의 ‘세바퀴’ 역시 16%대의 시청률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KBS의 ‘천하무적 토요일’은 아직 9%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지만 잠재력이 있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때 ‘무한도전’의 시청률을 위협하던 ‘스타킹’은 조작과 표절 시비로 가라앉고 있지만 절치부심 재기의 발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MBC가 ‘무한도전’ 앞자리에 ‘스친소’를 폐지하고 대신 ‘우리 결혼했어요’를 포진시킨 점이다. 타 프로그램과의 경쟁 때문에 약화되긴 했지만 ‘우리 결혼했어요’의 시간대 변경은 어쩌면 토요 예능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할 지도 모른다. 토요일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 경쟁은 이로써 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주간의 시청률 성적표를 말해주는 주중시청률 표를 들여다보면 분야를 막론하고 20위권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무려 9편에 이른다. 만일 주말의 의미를 금요일 저녁부터 계산한다면 ‘절친노트2’를 포함해 전체 주중시청률 20위 권에 든 프로그램의 반이 주말에 포진한 셈이다. 주5일 근무제 도입과 함께 주말이 시청률의 무덤이 될 것이라 예측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말은 오히려 시청률의 밭이 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그만큼 경쟁적이고 피곤해진 주중의 사회 풍경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주말의 TV는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진 지친 현대인들의 여가로 자리하고 있다.
건드리면 툭 부러질 것 같은 개그맨 한민관의 부실해 보이는 몸은 그 자체가 개그의 강력한 소재다. ‘대포동 예술극단’은 남한 상황을 역으로 패러디 하는 북한인 역할로 한민관을 주목받게 해준 코너였다. 본격적인 불황의 실감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에 맞춰 나왔던 ‘로열 패밀리’에서 한민관은 거지 가장으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가난을 달고 살지만 그 와중에도 허세에 가까운 당당함으로 웃음을 주는 모습은 한민관의 가난한(?) 외모와 그럼에도 꼿꼿한(?) 태도를 그대로 캐릭터화 했다.
바로 이 점은 한민관이 부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한 동명의 코너에서 윤지후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된 이유다. 한민관이 패러디하는 ‘부실한 몸에도 도도함을 가진 윤지후’는 그 상반된 성격 때문에 그 자체로 웃음을 준다. 처음에는 앙상한 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웃음을 주더니 이제는 아예 이동침대에 누워 출연하고, 온풍기에 오징어가 오그라들 듯 몸이 배배 꼬이는 다양한 부실 개그로 점점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봉숭아 학당’에서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를 외치는 매니저 역할 역시 이 부실한 몸 개그의 연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매니저라면 어딘지 연예인 지망생을 보호해줄 만큼 듬직해야 하는데, 이건 거꾸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몸이라니. 게다가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개그맨인 그가 명함을 던지는 인물들은 이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연예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것 역시 그의 몸 개그가 가진 역발상의 확장판으로 읽을 수 있겠다.
한민관 같은 개그맨들과 마찬가지로 개그우먼들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몸을 개그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못생긴 얼굴과 뚱뚱한 몸을 가진 개그우먼들은 그래서 박지선이 하듯, “참 쉽죠 잉”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어찌 그게 그리 쉬운 일 일까마는). 그런 면에서 보면 안영미는 꽤 불리한 입장이다. 초창기에 강유미와 함께 나왔을 때 강유미의 포스(?)에 안영미가 밀려 보였던 것은 상대적으로 개그우먼답지 않은(?) 그 평범한 외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안영미는 분장을 선택함으로써 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은 코너명에서 알 수 있듯이 강유미를 중심으로 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안영미가 더 주목을 받는다. 물론 강유미도 여전히 큰 웃음을 주지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망가졌을 때 그 효과가 두 배라는 것을 안영미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그맨 분장실이라는 상황이다. 만일 이 상황이 설정되지 않고 그저 분장으로 망가진 몸을 보여주기만 했다면 안영미는 그만큼의 주목을 받기가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개그 코너지만 여자로서 골룸 분장을 한다는 것은 어떤 합당한 의미가 없다면 자칫 지나친 의욕으로만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그맨 분장실이 갖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과, 그 강박 속에 긴장감을 주는 선후배 관계 속에서 안영미의 골룸 분장은 맥락을 갖는다. 아프다는 후배에게 “너 허락 받고 아팠어?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하고 던지는 안영미의 멘트는 웃음을 주면서도, 그 맥락의 처절함을 공감하게 만든다.
물론 한민관과 안영미는 이런 몸 개그가 아닌 스토리 텔링 개그에도 분명 능수능란한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불황을 맞이해 그들이 주목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몸이 주는 처절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민관의 부실 개그, 안영미의 분장 개그에 대한 주목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그콘서트’의 두 직업으로 기자와 PD가 떴다. 황당한 현실을 전달하는 안상태 기자와 소비자를 우롱(?)하는 과장 과대 광고를 가차없이 고발하는 황현희 PD가 그들이다. 물론 이건 개그일 뿐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그저 개그에 머물지만은 않는 모양이다. 황현희가 실제 소비자들을 위해 잘못된 상흔을 고발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소비자 고발’에 고정출연하고, 안상태가 케이블 경제 전문 뉴스 채널 mbn에서 ‘안상태의 거꾸로 뉴스’ 진행을 맡게 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개그 코너에서 실제상황으로 까지 끌어오게 한 것일까.
일단 제일 먼저 주목해야할 것은 이들이 코너에서 갖고 있는 기자와 PD라는 직업이다. 현재처럼 다변화된 복잡한 사회 속에서 매체가 갖는 힘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선택한 직업군의 무게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현 상황 속에서 이 직업군이 갖는 의미는 신뢰와 불신을 동반한다. 복잡한 상황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런 정보도 얻기가 어려워지는 직업군인 반면, 그 실망감, 즉 불신에 대한 배반감도 큰 직업군이다. 같은 경제상황을 가지고 서로 다른 입장차가 난무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어쩌면 기자와 PD는 믿음과 불신을 동반하는 가장 핫한 직업인지도 모른다.
‘개콘’의 코너들은 이 직업군이 갖는 상황을 뒤집으며 웃음을 주었다. 안상태 기자는 기자로서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감정 섞인 말투로 자신의 처지와 신세를 한탄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그 사건을 전달해줘야 할 기자가 오히려 그 세상의 황당함에 포로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웃음을 주는 식이다. 한편 황현희 PD는 믿지 못할 세상에 대한 조금은 병적인 집착을 드러낸다. 이것은 흔히들 예술작품에서 활용되는 ‘미친 자의 목소리’다. 조금은 엇나간 지적들을 하는 미친 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오히려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내는 식이다. 황현희 PD가 하는 지적은 병적이지만, 그 지적하게 되는 상황(믿지 못할 세상)은 현실이다.
하지만 안상태 기자와 황현희 PD라는 조금은 엇나간 캐릭터가 가진 의미는 단지 잘못된 세상에 대한 대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매체에 대한 불신 또한 들어가 있다. 기자와 PD가 전달하는 세상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가, 하는 의문 제기. 물론 모든 뉴스와 고발 프로그램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이제 TV가 전달하는 뉴스나 정보란 이제 하나의 진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해석으로 읽힌다. 진실 자체가 쉽게 왜곡되는 매체적 상황 속에서 기자와 PD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개그라는 테두리를 안전장치로 가진 안상태 기자와 황현희 PD는 오히려 더 쉽게 진실에 접근하는 힘을 보인다. 즉 내용(거기서 하는 말)보다는 형식(토로하는 형식과 다그치는 형식)이 오히려 진실에 쉽게 접근시킨다는 말이다.
안상태 기자와 황현희 PD가 개그 코너를 넘어서 실제 뉴스나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 나오는 이 상황은 물론 이 캐릭터들이 가진 재미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뉴스나 시사교양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가진 말에 대한 신뢰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말 그 자체보다는 그 말이 가진 형식이 때론 더 신뢰가 가고, 또 공감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개콘’의 이 두 직업을 캐릭터로 가진 개그맨들은 보여준다. 말이 아닌 온 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