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마이웨이’ 김지원, 신데렐라 걷어차고 내 길 간다

“무빈 씨 생각엔 백마 태워 호강시켜 주길 바라는 여자들이 세상에 널렸을 거 같은가 본데 그 신데렐라는 이제 드라마에서도 안 먹혀요. 진짜 현실에선요, 자기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수두룩 짱짱하다고. 그니까 유리구두! 개나 주라고!”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최애라(김지원)은 박무빈(최우식)이 선물한 구두를 벗어던졌다. 사실은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도 자신을 사귀어온 박무빈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신데렐라가 되게 해주겠다며 그가 사준 구두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갔던 길을 돌아온다. 그녀를 걱정해 찾아온 고동만(박서준)은 떨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며 분노하고, 그런 그에게 그녀는 가슴이 떨린다.

KBS 월화드라마 <쌈마이웨이>의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보통의 멜로와 어떻게 결이 다른가를 정확히 보여준다. 최애라가 대사로 얘기했듯이 이제 더 이상 ‘신데렐라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도 먹히지 않는 시대다. 그렇게 된 건 ‘인생 피 터지게 사는 자수성가 또라이형 여자들’이 현실에는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에 신데렐라가 가당키나 한 판타지인가.

<쌈마이웨이>가 청춘멜로의 전형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그 안에 ‘갑질하는 현실’의 그림자를 제대로 드리워놓고 있어서다. 최애라도 고동만도 갑질을 당하는 건 ‘일’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아무렇게나 쓰다 버려지지만, 그런 갑질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박무빈이 최애라에게 이끌리게 된 계기를 보라. “걔가 좀 나대잖아요? 쥐뿔도 없는 놈이 항상 신나 있고. 그게 거슬린다.”고 말하는 박무빈에게서 느껴지는 건 가진 자의 오만과 독선이다. 그는 단지 고동만처럼 ‘없는 놈’이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꼴이 거슬려 그의 것을 빼앗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 

일터에서 청춘들이 일상처럼 만나는 갑질은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도 끼어들었다. 과거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부자들에 의해 신데렐라가 되는 여주인공을 통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했다면, <쌈마이웨이>는 보기 좋게 그 유리구두의 판타지를 부숴버린다. 그렇게 드러난 실체는 달달하기는커녕 너무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은 고동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몇 차례 헤어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를 반복하며 그 지독한 현실의 신데렐라가 된 박혜란(이엘리야)은 뻔뻔하게도 다시 고동만 앞에 나타나 그를 자기남자로 만들려 한다. 그녀는 이제 고동만을 위해 뭐든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에서 느껴지는 건 그녀가 이제 돈이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이 그랬으므로.

하지만 고동만도 최애라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고동만은 박혜란에게 자꾸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최애라는 박무빈이 만들어주겠다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벗어던진다. 그래서 그들은 오롯이 맨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지켜낸다. 이 맨발의 청춘이 현실에 치여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줄 모르는 그 모습이 못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건 그래서다. 

일도 사랑도 갑질 투성이인 세상, <쌈마이웨이>는 쌈마이 취급을 받아도 마이웨이를 걷는 청춘이 더 당당하다고 말한다. 그 당당한 <쌈마이웨이>에 대한 지지의 마음이 깔려 있어 이 청춘멜로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들이 갑질 세상에 날릴 통렬한 돌려차기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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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카터의 ‘원더우먼’과 갤 가돗의 ‘원더우먼’

사실 슈퍼히어로물의 세계에서 여성 히어로의 지분은 낮았다. 마블이 탄생시킨 블랙위도우(스칼렛 요한슨) 정도가 두드러진 여성 히어로의 존재감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DC가 탄생시킨 영화 <원더우먼>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리고 개봉된 <원더우먼>에 대한 국내외 반응들은 물론 호불호가 나뉘는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편이다. 

사진출처:영화<원더우먼>

갤 가돗 주연의 <원더우먼>이 그 시대적 배경을 1차 세계 대전으로 삼은 건 실로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싶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대적할 수 있게 탄생된 여성영웅이라는 설정과 1차 세계 대전의 그 빗발치는 총탄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이 여성 히어로의 모습은 상징과 실감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장면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가 남성으로 그려져 있고, 그 남성성과 대항하는 여성성으로서 원더우먼 다이애나 프린스가 무고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을 위해 전장 한 가운데로 뛰어드는 장면은 마치 신화를 담은 그림처럼 선명하다. 다이애나는 그래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파괴와 폭력에 맞서는 슈퍼히어로로 세워진다. 

게다가 1차 세계 대전의 전장 속에서 싸우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처음부터 초인적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날아오는 총알을 손목의 팔찌와 방패로 막아내고 놀랄만한 점프력과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으로 그 힘을 인지시키고, 차츰 후반부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레스와의 대결로까지 이어놓는다. 황당할 수 있는 장면을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조금씩 그 힘을 납득시키면서 차츰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건 다분히 전략적이다. 

여성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이애나 같은 여성 히어로가 전장에 뛰어들어 전쟁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그 액션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하다. 갤 가돗은 다이애나가 가진 그 강인함과 순수함을 연기로 잘 표현해냈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만들어낸 멜로 상황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폭력과 맞서게 하는 힘으로 그려내기 위한 설정으로서 담아낸 것도 이 영화가 꽤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해준다. 

하지만 <원더우먼>의 발목은 잡은 건 의외로 갤 가돗이라는 배우에게 갑자기 터진 시오니스트 논란이다. 이스라엘 출신으로서 군 복무 경험이 있는 갤 가돗은 2014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민간인 대피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했을 때, SNS에 이스라엘 군을 독려하는 글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됐다. 이런 전적을 가진 그녀가 전쟁과 맞서 싸우는 원더우먼을 연기한다는 것이 맞지 않다는 논란이 생겨난 것. 그래서 영화와 배우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원더우먼>의 갤 가돗 논란이 생겨나면서 갑자기 부각된 인물은 과거 동명의 TV 시리즈로 우리에게 영원한 원더우먼으로 남아있는 린다 카터에 대한 관심이다. 물론 당시의 TV 시리즈는 원더우먼을 다소 성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소비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를 연기했던 린다 카터는 현재 재즈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페미니스트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과거 TV시리즈가 그려냈던 원더우먼 캐릭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바 있다. 그녀는 원더우먼의 본질이 ‘슈퍼파워’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지성, 선의’라고 밝히며, 작가들이 “남자 슈퍼히어로에 여자 옷만 입혀놓았을 뿐 다른 고민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현재 영화화된 <원더우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과거 TV 시리즈에 대한 불만의 토로다. 그 린다 카터가 꿈꾸던 여성 히어로의 모습을 현재 영화 <원더우먼>은 잘 그려냈다고 보인다. 물론 갤 가돗 논란이 그림자를 드리우곤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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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웨이’, 이 짠한 청춘들에게 기꺼이 빠져드는 까닭

이건 우정일까 사랑일까. 저건 쌈일까 썸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과 최애라(김지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사이.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남녀로서의 연애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보인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기 일쑤고, 쏘아붙이는 건 일상이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그런데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듯 보이지만 상대방에 곤경에 처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걸 보면 그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나선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고 절망할 때도,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가 그녀의 실체가 발각되어 남자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도 최애라는 고동만을 찾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고동만은 귀찮아하면서도 최애라에게 달려간다. 그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주는 우정처럼 보이지만, 슬쩍 슬쩍 선을 넘어 사랑 같은 감정이 뒤섞인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 둘 다 꿈에서 멀어진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있고, 그래서 상대방이 현실 앞에서 무시당할 때 마치 자기가 무시당하는 것처럼 화를 낸다.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라고 상대방에게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마치 자기에게 하는 말처럼도 들린다. 

<쌈, 마이웨이>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현실이 ‘쌈마이’라도 ‘마이웨이’를 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슨 일인지 과거에 저지른 한 번의 실수로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에서 멀어져 버린 고동만은 근근이 살아가지만 여전히 태권도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코치의 도장 주변을 뱅뱅 돈다. 태권도에서 격투기로의 전향을 생각하며. 

한 때는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를 꿈꿨던 최애라는 어쩌다 보니 백화점에서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안내 일을 하고 있다.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이크를 잡고 싶지만 이 청춘에게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고동만의 돌려차기와 최애라의 마이크. 그들이 꿈꿨지만 주어지지 않은 이 두 가지는 <쌈, 마이웨이>가 깔아놓고 있는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낸다. 

짠한 현실 앞에서 이 청춘들은 서로를 지지해준다. 눈물 흘리는 친구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히 우정이라 생각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는 결코 우정의 차원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쌈, 마이웨이>가 갖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에 덧붙여진 멜로가 피어나는 곳이다. 

<쌈, 마이웨이>는 특별한 소재나 대단히 놀라운 이야기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범해 보이는 이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건 아마도 이 청춘들을 지지하고픈 마음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는 저마다 큰 꿈을 꾸고 있었지만 어쩌다 현실에 날개가 꺾인 청춘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은 마치 고동만과 최애라가 서로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빙의하게 해준다. 이것이 짠하지만 설레는 이 청춘멜로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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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타자기’에는 먼저 간 청춘들의 넋이 어른거린다

“니가 틀렸어. 너 때문에 내가 죽을 뻔 한 게 아니라 내가 죽을 뻔 한 위기의 순간마다 니가 날 살려줬던 거야. 니가 없었으면 나는 사제 총에 맞아죽고, 차 사고로 죽고, 오토바이에 치어서 죽었을 지도 몰라. 당연히 작가로서의 생명도 끝났을 지도 모르고.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닐 거라고 했잖아. 내가. 그 이유 이제 알 것 같아. 전생에 못 지켰으니까. 이번 생에 지키라고. 그리고 또 아마도 전생에 내가 너를 사랑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닫았던 것 같은데 내가. 해방된 조국에서 만나 마음껏 연애하라고. 죗값이 아냐. 면죄야. 그래서 내가 오늘 조국을 위해 뭔 짓 좀 해보려구.”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 한세주(유아인)가 전설(임수정)에게 하는 이 말은 자못 비장하고 절절하다. 전생과 후생으로 얽힌 인연. 아마도 자신이 전생에 그를 쐈을 거라는 자책감으로 인해 현생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 역시 그 악연이 이어지고 있는 거라 믿는 전설. 하지만 그녀에게 한세주는 그것이 악연이 아니라 인연이고, 그 때 지켜주지 못한 걸 이번 생에 지키라는 뜻이며 따라서 죗값이 아니라 면죄라고 말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전설이 보게 되는 전생의 장면들은 자신이 그를 향해 총을 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게 어떻게 된 것인지는 나중에 밝혀질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그 비극적인 사건은 그들의 의지에 의해 비롯됐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조작이나 함정에 의해 빚어진 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사적인 사랑의 감정조차 그 대의 앞에 접어두고 있었다. 

그러니 한세주와 전설,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당시 밀정으로 활동했던 백태민(곽시양)이나 전생에 카르페디엠의 마담이었던 현 전설의 엄마(전미선)와 관련된 어떤 사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비극적인 삶은 그래서 일제강점기 그 시대의 총칼에 맞서 싸우다 스러져간 이름 없는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세주와 전설의 멜로가 그저 현대식 사랑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훨씬 절절해지고 비장해지는 이유는 이처럼 전생으로서 일제강점기의 청춘들의 넋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에서 한세주와 가까워진 걸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전설이 말하자 친구인 방진(양진성)이 독립운동을 한 이들은 오히려 더 어렵게 살게 된 현실을 꼬집으며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고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은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떵떵 거리며 살고 있지만 젊은 청춘을 희생해 독립운동을 하던 그들은 곤궁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전생에 이어 후생까지도 죗값을 받고 있다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삶이라니. 

이러한 시대적 안타까움과 비장함이 담겨있기 때문일까. <시카고 타자기>에 깔리는 OST 중 SG워너비가 부르는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라는 곡은 마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는 것처럼 듣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여기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 가끔 그대는 먼지를 털어 읽어주오.’로 시작하는 그 목소리는 그대로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이름도 얼굴도 알려지지 못한 채 청춘의 그 어떤 즐거움도 유예하고 싸우다 스러져간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기억해달라는 것. 심지어 전생과 후생을 이어 붙여서라도, 나아가 전생에 죽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청춘의 유령의 입을 통해서라도 그 먼지 덮인 얘기를 다시금 할 것이라고. 그러니 그 얘기를 들어달라고 <시카고 타자기>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한세주와 전설이 엮어가는 사랑이야기가 특별한 무게감으로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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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순’, 어째서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걸까

본격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격 장르물에도 멜로나 가족극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멜로의 틈입에 대해 시청자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최근 방영됐던 <피고인>이나 <보이스> 같은 본격 장르물이 멜로 없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그래서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경우는 멜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본격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장르들, 이를 테면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와 코미디, 게다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과 멜로까지 복합적인 장르를 보인다. 

그래도 그 메인으로 깔려 있는 건 여자들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코패스와 맞서는 강력계 형사 인국두(지수)와, 재벌가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테러 앞에서 위협을 느끼는 안민혁(박형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도봉순(박보영)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로 서 있는 구도. 

이미 도봉순은 자신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각성했고, 안민혁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그 힘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니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이 드라마 상의 어떤 악역들에게도 없다. 수십 명의 조폭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며 모두를 병원 중환자실로 몰아넣는 그녀가 아닌가. 백탁(임원희)은 그래서 그녀 앞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는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도봉순에게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의 결핍을 욕망으로 삼아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에 따라 동력을 얻기 마련이다. 물론 여자들을 감옥 같은 철창에 가둬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가 버젓이 살아있지만 그를 잡는 건 이 드라마의 한 과정일 뿐, 목표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순은 사실 정의의 실현 같은 것에 목을 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을 그녀는 숨기며 자라왔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것을 마치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인 양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멜로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건 바로 그것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숨기고 왔던 괴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남자의 등장은 바로 도봉순이 꿈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멜로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별로 나뉘어지는 역할이나 선입견들을 깨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남녀의 성역할에 따라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려내려는 것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스릴러 장르물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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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일기' 구혜선·안재현,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거나

구혜선은 요리가 서툴다. 칼질도 능숙하지 못해 묵 하나를 써는 것도 들쭉날쭉하다. 게다가 손이 크다. 재료든 양념이든 듬뿍듬뿍 넣는다. 그리고 요리의 순서라는 것도 별로 없다.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는데 한꺼번에 프라이팬이 넣고 그냥 볶는다. 심지어 국수를 삼는데도 끓지도 않은 물에 면을 넣어 비쭉 튀어나온 면에 마치 성화처럼 불을 붙인다. tvN 예능 프로그램 <신혼일기>가 그간 구혜선의 요리를 그리 많이 보여주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요리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일 게다. 

'신혼일기(사진출처:tvN)'

그런데 이건 요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구혜선은 요리를 마치 그녀가 집안에서 혼자 있을 때면 이것저것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런 작업처럼 해낸다. 집안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그래서 그녀가 만든 철사로 만든 꽃도 있고 종이를 접어 오려 만든 꽃도 있으며 실타래로 패턴을 엮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 문짝도 있고, 하다못해 벽 구석에 박혀 있는 못에 실들을 이리저리 당기고 엮어 거미줄 모양으로 만든 조형작품(?)도 있다.

그녀는 요리도 그렇게 한다. 이것저것 재료들의 특징을 생각하고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상상한 걸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만든다.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론 ‘의외로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녀의 요리는 그녀의 성격을 닮았다. 부부로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도 혼자만의 시간에 빠지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타인을 챙기기 전에 자신에게 솔직해지려 한다. 그것이 조금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그건 어쩌면 더 오래도록 진심으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안재현은 그런 점에서 보면 구혜선과는 너무 다르다. 그는 <신혼일기>에 초반부에 인터뷰를 통해 슬쩍 밝힌 것처럼 부부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말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챙기려는 노력을 해야 서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던 남남이 함께 살을 부비며 부부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구혜선이 선뜻 재료들을 꺼내놓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자신만의 요리를 할 때, 안재현은 그녀 모르게 그녀가 하는 작업들을 돕는다. 

돼지고기와 김치, 야채를 한꺼번에 넣어 가득 채워진 프라이팬을 조금 큰 걸로 바꿔 요리하게 편하게 해주고 재료들이 골고루 익게 해준다. 또 그것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 두부를 데워 내놓고, 자기만의 요리에 빠져 있는 구혜선 대신 펄펄 끓어오르는 국수에 찬물을 끼얹어 면발을 더욱 쫄깃하게 만들어준다. 다 익은 국수를 찬물로 빨아 더 탱글하게 만들고, 장독에 넣어뒀던 동치미를 가져와 국수에 부어 냉면처럼 시원한 동치미 국수를 만든다. 

그러면서 안재현은 끊임없이 그것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구혜선이 한 것이라는 걸 상기시킨다. ‘칭찬봇’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그는 아내가 한 하나하나에 칭찬을 단다. 다 만들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마치 요리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처럼 이 재료와 이 재료가 섞이니 밋밋한 재료의 맛이 더 살아났다는 식으로 진지하게 칭찬한다. 그런 말에 구혜선은 “거짓말”이라고 겸연쩍어 하지만 그 기분 좋음을 숨길 수는 없다. 

요리에서 보여주는 안재현의 이런 모습은 그가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해나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진심으로 아내 구혜선의 진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 그녀가 하는 어떤 요리든, 그녀가 만드는 어떤 것들이든, 게임을 하다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때론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 있어 타인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때도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법은 지극히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그가 부부생활을 통해 성장시켜 나가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구혜선이 보여주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채워 넣지 못하면 무조건적인 이타적 사랑은 자칫 고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법은 달라도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그래서 이 안구커플은 서로 너무나 다르면서도 그 다른 점 때문에 서로가 보완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안재현이 말하듯 그녀의 색깔과 자신의 색깔 그리고 이 서로 다른 색깔이 중첩될 때 나오는 예쁜 색깔이 공존할 때 이상적인 부부의 삶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달라도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실패를 겪지 않는다. 그들의 요리가 새로이 실험을 해나가면서도 그걸 도와주고 인정해주는 모습으로 하나도 실패한 것이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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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심청전의 재해석

 

심하게 멍청해서 심청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온 인어에게 허준재(이민호)는 그렇게 반 농담을 섞어 심청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바다와 관련 있는 심청이란 고전소설의 인물이 인어의 이름으로 떡하니 붙여진다는 건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바다로 뛰어든 효녀. 하지만 용왕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인물. 인어란 가상의 존재가 결국은 그렇게 바다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청 역시 그 부활의 기저에는 비슷한 맥락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저 코미디의 하나로 농담 반 진담 반 심청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건 그녀가 사랑하는 허준재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 처한 위기가 하필이면 눈이 멀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희대의 악녀인 강서희(황신혜)가 바꿔치기한 약으로 인해 서서히 눈이 멀어간다. 허일중이 심봉사의 재해석이라면, 강서희는 뺑덕어멈의 재해석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그래서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담령과 얽힌 인어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심청전의 모티브들을 상당 부분 끌어와 재해석한다. 허일중과 그 가족이 처한 위기가 인어 심청(전지현)이 처한 위기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된다. 허일중과 허준재 그리고 모유란(나영희)의 단란했던 집안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강서희와 그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이다. 강서희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유산을 가로채는 꽃뱀에 가까운 인물. 친구였던 모유란과 그 아들까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아들 허치현을 세웠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허준재의 진짜 가족이 다시금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건 아들 행세를 하고 아내 행세를 하며 사실은 허일중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가짜 가족을 몰아내야 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마대영(성동일)이라는 인물이 강서희, 허치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반 이 연결고리는 의문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차츰 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점점 확증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보면 허일중-허준재-모유란이라는 진짜 가족과, 마대영-허치현-강서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드러난다. 허준재의 가족이 사랑으로 얽혀있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욕망으로 얽혀있다. 허준재의 가족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그 연결고리들이 욕망으로만 이어져 있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가족 대 가족의 대결을 그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인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생의 좋은 인연은 현생의 좋은 인연으로 또 이어진다. 하지만 전생의 악연은 현생에서도 또 다른 악연으로 반복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가르는 건 그 관계가 무엇에 의해 형성되었는가에 의해서다. 단순한 구도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내세우는 그 두 개의 관계 축은 사랑과 욕망이다.

 

인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허준재가 있는 반면, 인어를 물욕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은 마대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심청전에서 심청의 효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물질이 등가를 이루는 그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인어가 어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면, 우리 식으로 그런 사랑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보여준 인물이 심청이 아닌가.

 

그래서 <푸른바다의 전설>은 서구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어유야담의 담령과 인어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고는 이제 심청의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심청의 자기희생적인 도움으로(허준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뭍으로 나온 그녀의 자기희생은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허준재는 잃었던 자신의 가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설이 담고 있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더 간절한 진짜 가족의 회복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 더 간절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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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이 영화의 마법 속에 빠져버린 까닭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마법 같은 영화다. 생각하고 곱씹어보면 볼수록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둔중한 울림이 점점 커진다. 그건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음악이나 연극, 영화 같은 예술이나 상처받은 아픈 영혼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위로받으며 커나가고, 궁극에는 어떤 마법 같은 사랑의 완결을 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라라랜드>라는 뮤지컬 영화에는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져 때론 강렬하고 때론 감미로운 재즈 음악 속에 흐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그리고 그 둔중한 깨달음은 삶이 얼마나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것들을 찾아내는가를 알게 해준다.

 

사진출처:영화<라라랜드>

“<라라랜드>를 통해 음악과 노래, 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뮤지컬은 꿈과 현실 사이의 균형 잡기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이 이야기는 이 영화가 가진 마법적인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일 게다. 도로를 가득 메운 정체된 차들 속에서 저마다 길이 뚫리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오프닝 장면은 현실에서 꿈으로 넘어가는 마법장치 같은 뮤지컬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말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음악으로 표현되는 장면들은 현실적 상황이 예술적 장치를 통해 마치 마법 같은 꿈으로 변화하는 순간들을 제대로 잡아낸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재즈 음악을 추구하지만 이제 젊은이들은 누구도 그런 고전적인 재즈를 듣지 않는다며 제 꿈을 펼치지 못하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연거푸 연기 오디션에서 떨어지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미아(엠마 스톤)가 그 정체된 도로에서 서로 으르렁대는 그 첫 만남이나, 견인되어버린 차 때문에 길거리를 헤매다 흘러나오는 재즈 피아노 소리에 마치 홀린 듯 들어간 카페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 그리고 어느 수영장 파티장에서 다시 마주치는 그 순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우연적 사건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이 파티장에서 나와 도시의 밤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언덕길에서 당신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그러면서 두 사람이 어우러지는) 걸 서로 강변하듯 노래하는 장면은 다시 현실을 훌쩍 벗어난 마법 같은 순간으로 다가온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영화를 연기 연구 차원에서같이 보기로 한 두 사람이 극장에서 만나 조금씩 서로에게 이끌리고, 키스를 하려는 순간 영화 필름이 끊어지자 그 영화 속 로케이션 장소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직접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은 현실이 판타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들을 극적으로 연출해 보여준다. 그들은 마치 영화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처럼 그 마법적인 사랑의 시간 속에서 물리적인 중력을 뛰어넘는다. 진자가 움직이는 그 곳에서 허공으로 붕 떠오른 두 사람이 구름 위에서 함께 왈츠를 추는 풍경이라니. 이만큼 사랑의 순간을 잘 표현한 장면이 있을까.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비현실적인 사랑의 순간만을 그려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전작이었던 <위플레쉬>에서 우리가 봤던 것처럼 예술이란 그저 달콤한 환상이 아니다.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은 재즈를 설명하며 그건 악기와 악기가 서로 대결하는 치열한 현장이라고 말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애초부터 각각의 다른 악기였다. 그래서 저 마다의 소리를 냈던 것이고, 처음에는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며 으르렁댔다가 어느 순간에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서로의 소리에도 매료되었고 그 힘겨운 현실 속에서 서로를 위로해주는 사랑으로 피어났던 것. 그것은 마치 치열하지만 아름다운 재즈 연주의 한 대목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사랑이 확인되고 자신들의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들은 다시 각자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북돋으며 그 누가 뭐라 해도 서로에게는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최고의 배우인 그들은 각자의 길로 달려가며 서로의 길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사랑이 식은 것도 아니고 또한 서로에 대해 실망한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나서 했던 가는 데까지 흘러나게 해보자는 말은 그래서 이들의 사랑이 단지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고 멀리 있어도 평생 마음 한 구석에 그 사랑을 남겨둔 채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각자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들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대신 음악은 그들 사이를 여전히 이어주는 마법이 된다. 남편과 함께 우연히 찾아간 세바스찬의 재즈 클럽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그녀는 짧은 순간 상상한다. 각자 꿈을 이루고 또 그와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가정을 이뤄 함께 살아가는 상상. 그것은 즉흥 재즈 음악이 갖고 있는 변주처럼 달콤하고 강렬하게 그려진다. 그 재즈 음악 속에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각의 악기처럼 부딪치며 뒤섞인다. 세바스찬의 음악이 흘러나오면 미아는 그 상상 속에서 그와 함께 마치 연기하듯 꿈을 그려낸다.

 

<라라랜드>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들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원스>, <비긴 어게인>, <싱스트리트>로 각인된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들과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전작인 <위플래쉬> 같은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확실히 우리네 감성적인 관객들은 음악영화들에 특히 더 마음을 빼앗기는 경향들을 보인다. 하지만 <라라랜드>를 단순히 그 음악영화의 성공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마치 삶과 예술의 비의를 들여다본 듯한 그런 기분. 참 웃을 일 없는 시절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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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 그 많은 경계들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가슴에 칼이 박힌 채 바로 그것 때문에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 간단해 보여도 이런 캐릭터를 도깨비에 부여한 건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참신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른 무게감을 이 캐릭터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의 이미지가 뭔가. 혹부리 영감에게 속아 혹과 도깨비 방망이를 바꿀 정도로 아둔한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 도토리 깨무는 소리에 집 무너지는 줄 알고 줄행랑을 치는 겁많은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토대로 보면 도깨비는 인간을 살해할 만큼 악독하지 않고, 인간의 꾀에 넘어가 초자연적 힘을 이용당하는 미련함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신이지만 조금은 희화화되어 인간적인 면면을 가진 캐릭터가 바로 도깨비다. 김은숙 작가가 다른 시도 아닌 도깨비를 선택한 건 실로 탁월했다고 보인다. 도깨비라는 존재는 서구로 보면 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캐릭터일 수 있지만 또한 우리네 고유의 개성을 가진 신이라는 점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 점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이 콘텐츠가 보편적으로 먹혀들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가슴에 박힌 칼로 인해 영겁을 살지만 그것이 또한 죽지 못하는 것으로서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는 희비극 설정은 자칫 허황될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실어준다. 설화 속의 도깨비는 그래서 희화화된 존재지만 이 드라마 속의 도깨비는 비극성을 껴안은 진중한 면면과 동시에 도깨비 특유의 장난기와 가벼움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된다. 이 설정을 통해 김은숙 작가는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그것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걸 캐릭터로 구현해낸다.

 

<도깨비>는 고려시대의 전쟁의 신이었던 김신(공유)의 이야기가 현재로까지 이어진다. 김신은 죽지 않는 존재로 계속 살아 현재까지 무려 9백년을 넘게 살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지은탁(김고은)이나 써니(유인나), 유덕화(육성재) 같은 인물들은 현생에 태어나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연기설 같은 것들이 끼어들면서 과거 고려시대의 김신과 그를 질투해 죽인 어린 왕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역시 죽음을 당한 왕비(김소현)가 현재 어떤 인물로 태어났는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도깨비>는 자연스럽게 사극과 현대극을 뛰어넘는 장르적 퓨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설정이 더 흥미로워진 건 과거의 악연이 현재의 악연으로 이어지는 단순구도가 아니라 과거에는 악연이었지만 현재는 인연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구도가 예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저 도깨비 캐릭터가 가진 희비극적 요소가 어른거린다. 즉 인연은 설렘을 동반하지만 그렇게 가까워진 사랑은 동시에 비극이 될 때 그 강도도 커지는 법이다.

 

이런 선택은 김은숙 작가가 마치 신데렐라 구박하듯 지은탁을 괴롭히는 이모네 집 사람들을 도깨비 김신이 벌주는 독특한(?) 방식에서 슬쩍 드러난다. 도깨비는 엉뚱하게도 벌이 아닌 금덩어리를 준다. 그래서 이모네 집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금덩어리에 좋아하지만 그것은 금세 지옥으로 바뀐다. 욕심이 상황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

 

이런 소소한 데까지 뻗어있는 이야기들의 면면들은 다름 아닌 김은숙 작가가 이제 인생을 좀 아는 고수라는 증거다. 행복은 비극과 연결되어 있고, 슬픔은 또한 행복이 되기도 하며 그래서 악연으로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굉장한 진중함이 사실은 가벼움과 공존할 수 있고, 시간이나 공간의 한계는 이야기라는 장치 안에서는 쉽게 그 경계가 무너진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이론적인 말일 뿐,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도깨비>라는 작품을 보다보면 너무나 쉽게 희극이 비극으로 또 비극이 희극으로 이어지고, 어떤 즐거워 보이는 욕망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뀌어 버리며, 사랑이 주는 설렘이 다가오는 비극의 불안감으로 변화하는 걸 느끼게 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삶의 진짜 양태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는 것. 멜로 한 장르를 깊게 파왔던 김은숙 작가가 그간 꽤 많은 작품들과 세월을 통해 어떤 경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심증이 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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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그저 인어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기억 모티브

 

도대체 이 인어라는 존재의 진짜 능력은 무엇일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을 보다 보면 슬쩍 드는 의문이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게 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먼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인어가 그려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삶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한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물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어의 관점으로 보면 뭍에서 잘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역시 능력이라 부르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이 세다? 이건 능력일 수 있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스페인 바닷가 마을에서의 추격전 정도다. 그것도 코미디로 처리된.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인어의 진짜 능력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존재. 이것은 실로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다. 중간에 살짝 에피소드를 들어간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아픈 기억을 가진 예은 엄마 이야기가 그렇다.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아이가 싸늘하게 돌아왔을 때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기억은 너무나 아파 지우고 싶지만 또한 지울 수도 없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인어가 기억을 지우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드라마가 설정하고 있지만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은 아파도 결코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예은 엄마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가 내세우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마찬가지다. 인어는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지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랑을 지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기억 모티브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시 허준재(이민호)의 아픈 기억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허준재는 계모 강서희(황신혜)로부터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가 떠나버리고 남은 자리에 계모가 들어서더니 그녀가 데려온 배다른 형 허치현(이지훈)이 그의 자리마저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 최면술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그는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훨씬 좋았다. 홀가분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포기한 건 미련 갖지 말고 잊어버려라아버지에게서 아무것도 안 받고, 안 엮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그는 청이(전지현)에게 진짜 보고팠던 아버지에 대한 속내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청이는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언제든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허준재는 또한 꿈속에서 전생의 자신이었던 담령을 만난다. 담령은 이미 과거에 인어와 인연을 맺었고 동시에 그녀를 죽이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악연을 맺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담령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허준재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남기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다. 허준재는 담령의 거처에서 발굴된 유물 속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자화상 속의 자신의 얼굴을 목도하며 놀란다.

 

허준재는 그래서 두 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이고 또 하나는 전생의 담령이다. 그 과거의 두 자신들은 모두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허준재는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왔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인어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인어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기억을 상기시키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픈 사랑이란 망각으로 지워지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기도 하니 말이다.

 

오랜 세월을 묻혀 있던 유물들이 발굴되어 허준재의 지워진 기억을 깨운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결국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 했지만 결코 지워서는 안되는 기억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이 똑같은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그렇게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유물로서 자신의 눈앞에 돌아온 것을 마주하게 됐다. 묻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묻어서는 또 다른 아픈 일들이 우리 앞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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