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현·구혜선의 ‘신혼일기’, 평범해서 더 특별한 까닭

역할이 바뀌었는데 바뀌었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구혜선은 무거운 가구들을 혼자서 낑낑대며 배치하려 한다. 그러자 그걸 본 안재현이 그녀를 돕는다. 안재현은 있는 재료로 수제비를 만들어 내놓는다. 단촐한 식탁에 앉아 두 사람은 맛있다를 연발하며 식사를 한다. 구혜선이 차가운 바닥을 따뜻하게 해줄 이불가지들을 도처에 깔아놓는다. 안재현은 식사를 끝내고 남은 설거지거리들을 깨끗이 정리해놓는다. 

'신혼일기(사진출처:tvN)'

어찌 보면 남녀가 해야 할 일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너무 자연스럽고 또 상대방이 하는 일을 슬쩍 슬쩍 도와주는 모습은 남녀 간의 역할 구분 따위를 무색하게 만든다. 부부 간에 방귀를 트는(?) 일도 어찌된 일인지 구혜선이 먼저다. 안재현은 조금 쑥스러워 한다. 그것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녀관계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 촬영장에서 첫 키스를 자기가 다짜고짜 먼저 했다는 구혜선의 이야기가 듣는 이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모든 시간들이 ‘찬란할’ 수밖에 없는 신혼이니 성차에 따른 역할 구분이나 선입견 같은 것들은 마치 순수한 아이들의 행복한 놀이처럼 여겨진다. 안재현이 좋아한다는 과자를 차 트렁크에 잔뜩 실어놓고 ‘이벤트’를 꾸민 구혜선이 눈치도 없이 수제비 만드는 일에만 골몰하는 남편에게 뾰로통해 하는 모습조차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들은 설거지 내기로 배드민턴을 치면서 마치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한 장면처럼 까르르 웃음꽃을 피운다. 별것도 아닌 일이지만 아마 이런 순간은 이 부부의 함께 하는 삶 내내 기억의 한 자락에 남게 될 것이다. 

<신혼일기>라는 새로운 타이틀에 콘셉트를 갖고 왔지만 나영석 PD표 예능은 늘 그러했듯이 거창한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많이 봐왔던 <삼시세끼>의 산골 고향 같은 집에 시커먼 남자들 대신 꿀 떨어지는 부부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삼시세끼>에서도 그랬듯이 나영석 PD는 여기에 아무런 MSG를 치지 않고 그저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한다. 

그래서 사실 <신혼일기> 첫 회에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딱히 대단할 것들이 없다. 집기를 배치하고 밥 지어 먹고 함께 지내는 반려견, 반려묘들과의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여주고, 읍내에 나가 장을 보고 햇살 떨어지는 낮에 배드민턴을 치는 것. 그런데 <신혼일기>의 이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삶의 모습들에 시청자들은 눈을 뗄 수가 없다. 그건 그들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 이면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따뜻한 애정을 느끼기 때문이고,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 삶이 주는 훈훈한 정경들을 보는 이들 역시 그리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런 따뜻한 느낌 속에서 하루만이라도 지내봤으면...

<신혼일기>는 그래서 <우리 결혼했어요>나 <님과 함께2> 같은 결혼 버라이어티와는 완전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실제 부부가 등장하기 때문에 부부인 척 할 필요도 없고, 실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가장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 순간의 느낌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이 뾰로통해하고 미소를 짓고 하는 그 모습들 하나하나가 진심이니 말이다. 

사랑이 깊으니 부부 간의 삶에도 부딪침을 만들어내기 마련인 역할 구분에 대한 갈등 역시 그다지 큰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또 특별한 이벤트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아주 사소한 일상 속에서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물론 부부의 삶이란 좋을 때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신혼이라는 그 특별한 시간대는 모든 것들이 찬란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건 구혜선이나 안재현 같은 특별하나 존재들이어서가 아니다. 누구나 그 신혼이라는 시간대에는 그런 찬란함 속에 들어간다. 그 시간대로부터 한참 떠나온 중년들도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 때의 찬란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게다. <신혼일기>는 그래서 구혜선과 안재현의 부부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앞으로 그 시간을 보낼 예비자들은 물론이고, 그 시간으로부터 멀리 지나온 경험자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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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쿡방, 스타MC 집착, 슬럼프를 불렀다

 

2016년 한 해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보면 한 마디로 말해 슬럼프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 같다. 무언가 한 해를 대표할만한 새로운 예능이 탄생하지 않았고, 그저 과거의 명성을 이은 장수예능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 때 트렌드였다고는 해도 여전히 비슷비슷한 쿡방을 내놓고, 이제는 한 물 간 스타MC 중심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기획한다. 이래서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이 깊은 슬럼프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판타스틱듀오(사진출처:SBS)'

쿡방, 먹방 트렌드가 생긴 건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tvN <삼시세끼>가 나온 게 언제인가.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tvN의 경우 이 트렌드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쿡방, 먹방 트렌드를 이끌어낸 셈이니 그 수혜 역시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삼시세끼>를 빼놓고 보면 다른 프로그램들은 이제 식상해졌다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올리브TV에서 실험한 <8시에 만나><조용한 식사> 같은 프로그램은 나홀로족들의 문화를 반영한 참신한 시도였지만 <수요미식회><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들은 화제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tvN의 쿡방, 먹방에 대한 집착은 여전하다. 최근 등장한 <인생술집> 같은 경우 대놓고 음주 방송을 표방할 정도로 자극적이지만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래도 음주방송의 아슬아슬함을 인생이라는 묵직한 주제로 덮으려다 보니 재미로만 나가기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JTBCtvN의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상파로 가면 SBS <백종원의 3대천왕> 같은 프로그램은 먹방의 자극만 강조할 뿐, 너무 뻔한 이야기들의 나열이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 전체 예능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건 이른바 장수예능들이 그나마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KBS의 자존심을 살린 건 여전히 <12>이고, MBC는 명불허전 <무한도전>이 독보적이었다. SBS는 상대적으로 약화된 예능의 양상을 보였는데 그나마 상징적인 프로그램은 <런닝맨>이었다. 물론 최근 무리한 의욕으로 시즌2를 선보이려다가 종영을 예고하고 말았지만.

 

이런 사정은 tvN이나 JTBC도 마찬가지다. tvN의 간판예능은 여전히 <삼시세끼>이고 <집밥 백선생>도 계속 일정한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JTBC는 최근의 시국을 타고 <썰전>이 급부상했고, 이어서 <말하는 대로> 같은 프로그램이 주목받게 되었다. 결국 tvNJTBC도 올 한 해 자체적인 힘으로 새로운 예능을 성공적으로 내놨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트렌드를 그대로 가져온 안이한 기획도 예능이 슬럼프에 빠진 이유 중 하나다. 대표적인 것이 음악예능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다양한 변주를 통해 여전히 힘을 발휘한 MBC<복면가왕>이나, 뮤지컬, 성악까지 영역을 넓힌 JTBC <팬텀싱어>, 마지막을 상정하고 배수진을 침으로써 참신해진 SBS <K팝스타>가 있었지만, 상반기 음악예능들을 보면 <판타스틱 듀오>, <신의 목소리>, <듀엣 가요제> 같은 프로그램들은 너무 천편일률적이었다.

 

음악예능만이 아니다. 여행 소재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소재다. SBS <꽃놀이패>의 경우, 여행 예능이 이제 끝물에 도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마치 <12><런닝맨>의 중간 어디쯤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알다시피 <12><런닝맨>도 과거의 뜨거웠던 그 프로그램들은 아닌 게 지금의 현실이다.

 

또한 여전히 스타MC에 기대려는 속성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미 스타 MC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 시청자들도 좀 새로운 얼굴들을 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여전히 리스크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스타MC를 먼저 염두에 두는 기획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스타MC를 내세우게 되면 그들의 스타일을 반영하게 되고 결국 프로그램들은 비슷비슷해진다. 게다가 한 프로그램만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 동시다발적으로 출연하는 스타 MC들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예능프로그램들을 식상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슬럼프는 어찌 보면 도약을 위한 과도기적 상황일 수 있다. 즉 변화라는 것은 결국 저점을 찍었을 때 비로소 실행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의 달콤했던 성공의 기억들을 지워내야 한다. 그리고 열어보지 않은 새로운 영역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리스크일지라도 감수하지 않으면 슬럼프는 벗어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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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재미 요소 줄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거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득량도의 밤. tvN <삼시세끼>의 윤균상은 정말 술 마실 분위기가 나는 날이라고 했다. 빗소리에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릭은 문득 이서진의 다음 시즌이 궁금하다. “형은 만일 다음 시즌에 삼시세끼를 또 가면 어촌이랑 농촌이란 계곡이 있어 어떤 걸 원해?” 이서진은 엉뚱하게도 축산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윤균상은 재미있겠다고 맞장구를 쳐주고 에릭은 예전 꿈이 목장 하는 것이었다고 덧붙인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리고 이어지는 나이 이야기. 이제 서른을 맞은 윤균상이 스물다섯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자 에릭은 나이는 지나면 지날수록 빨라진다고 얘기한다. 이서진은 나이 마흔 다섯을 지나면 산 날보다 살 날이 작다는 걸 느낀다고 다소 쓸쓸한 소회를 꺼내놓는다. 술 한 잔이 곁들여진데다 윤균상의 말처럼 빗소리 장작소리에 고즈넉해지는 밤. 그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데 이상하게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번 득량도에서의 <삼시세끼> 어촌편은 지난 시즌들과 비교해 재미적 요소가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과거 만재도에서의 유해진과 차승원이 했던 <삼시세끼> 어촌편을 떠올려보라. 낚시에 피시뱅크에 화려한 요리와 게스트들까지 한 마디로 재미요소들이 버라이어티했다. 하지만 이번 득량도의 <삼시세끼>는 다르다. 거의 전 편이 에릭의 요리와 그 요리 때문에 조금씩 변해가는 이서진과 윤균상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사정을 가장 잘 보여준 건 그들 스스로도 재미요소가 적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뭍으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보통 이런 일탈이 벌어지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재미요소도 많아지는 게 정상이다. <삼시세끼> 정선편은 시장으로 마실만 한 번 가도 이야기들이 쏟아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들의 탈출은 돈을 챙겨오지 못한 사정 하나로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낚시도 재미의 중요한 요소지만 낚시는 그 특성상 물고기가 잡히는 장면까지의 기다림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유해진은 그 지루함을 특유의 정서와 너스레로 풀어내면서 채워넣어줬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 낚시의 재능을 새롭게 알게 된 윤균상이 물고기를 척척 잡아주는 장면과 이서진이 한 마리를 잡아 명예회복을 하는 장면을 빼고 나면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다. 기대했던 강태공 에릭의 낚시도 심지어 감성돔을 잡았지만 워낙 작아 풀어줘야 했기 때문에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빗소리 들려오는 밤, 에릭이 슬쩍 그 아쉬움을 꺼내놓는다. “전체적인 거는 다 잘 맞고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거는 웃음 포인트 하는 게 형밖에 없는 게 아쉬운 거지.” 에릭은 스스로 알고 있다. 자신이 그리 웃기는 캐릭터는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런 에릭에게 이서진은 말한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사람은 그찮아 정혁아. 그냥 진심인거야. 내가 보기에는.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게 돼있어. 나는 결국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실 이서진의 이 이야기는 <삼시세끼>가 왜 많은 예능의 MSG를 빼놓고도 그렇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예능이지만 웃음의 포인트에만 집착하지 않고 대신 그 상황과 그 속에서의 인물들이 말하는 진심을 전해준다는 것이 <삼시세끼>가 가진 놀라운 반전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예능적 의미로 보면 재미없는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됐다는 것.

 

그 진심의 힘은 신뢰를 만들고 그래서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재미라고 해도 기꺼이 맛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이들이 이야기하는 요리와도 같다. “봐봐 아무리 맛있게 요리를 해도 먹는 사람이 그걸 즐겁지 않으면 맛있지가 않아.” 우리는 어느새 <삼시세끼>라는 요리를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기꺼이 즐겁게 맛보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요리의 즐거움에 괜스레 우리도 즐거워지게 됐다. “요리는 정혁이형이 다 했는데 괜히 맛있다고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윤균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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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에릭의 정성과 신뢰에서 배워야할 것

 

에릭의 요리 속도가 늘었다? tvN <삼시세끼>의 에릭은 느림보 천재요리사라 불린다. 일단 만들어내는 음식은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없다. “맛은 어때?”하고 묻는 나영석 PD에게 이서진은 뭘 물어봐라며 에릭의 요리에 대한 무한신뢰를 드러냈다. 무려 7시간이나 저녁을 준비한 끝에 새벽에야 저녁을 먹고도 이서진이 뭐라 할 수 없었던 건 그 요리가 너무 맛있어서였다. 결국 그 맛으로 인해 기다린 시간들은 온전히 에릭이 채워 넣은 정성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도 문제는 요리 속도였지만 이제는 그 속도도 빨라졌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일단 에릭의 손 놀림이 달라졌다. 물론 미안할 일은 아니지만 에릭은 요리가 늦어져 식사도 늦고 또 그걸 찍기 위해 제작진도 고생하는 걸 보며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매 끼니마다 요리 하기 전이나 하면서도 고민하던 시간을 대폭 줄였고 회 뜨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에 직접 가서 아주머니에게 배우는 노력을 들였다.

 

씨알 좋은 농어를 여섯 마리나 잡아 온 저녁에 에릭은 회를 치고 매운탕을 끓이고 또 농어구이를 내놓으면서도 이를 일사천리로 해결했다. 그는 순서를 묻는 나영석 PD에게 먼저 회를 쳐서 숙성시키는 시간에 매운탕을 끓이고 그 국물을 내는 시간에 농어 구이를 하겠다고 했다. 이미 낚시에서 농어를 잡는 그 순간부터 에릭은 시간을 최적화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렇게 효율적인 시간배분이 가능했을 게다.

 

흥미로운 건 이서진과 윤균상의 움직임이다. 요리를 해주기를 막연히 기다리거나 에릭이 시키면 하는 식이 아니라 아예 자발적으로 척척 준비를 해나가는 모습은 놀라울 지경이다. 에릭이 회를 치고 있을 때 이서진은 알아서 마늘을 까면서 그에게 생강도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윤균상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생강을 준비하고 매운탕에 들어갈 간장이며 야채들을 척척 준비해놓는다.

 

이러니 일이 일사천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내놓은 회를 느긋하게 애피타이저(?)로 먹고는 오래 끓여 잘 우러난 매운탕과 이태리식으로 기름에 잘 구워낸 살이 두툼하게 오른 농어를 그들은 맛나게도 먹었다. 옆을 서성거리며 호시탐탐 요리를 노리는, 누가 보면 거지(?)라고 해도 믿을 법한 행색의 나영석 PD에게 국물과 농어구이를 맛보게 해주는 여유까지.

 

<삼시세끼> 정선편에서 이서진이 투덜대며 적응했던 시골생활을 생각해보면 이번 득량도에서의 그의 모습은 낯설 정도로 고분고분하다. “이런 날이 내게도 오는구나라며 밥상을 받을 때마다 보조개가 피어난다. 낚시하러 가자면 낚시하러 가고, 밭에서 따온 유자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유자청을 만들어놓는다. 물론 막내인 윤균상은 뭐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하는 인물이지만, 맛나게 음식을 해주는 에릭은 멋있는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따르게 되었다. 이게 다 에릭의 마법이다.

 

그런데 그 에릭이 부린 마법의 정체가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성실하게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한 것뿐이니까. 물론 요리 속도가 느리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자신도 노력하고 그런 에릭을 알아서 도우며 옆에서 보조해준 이서진과 윤균상이 있어 그런 문제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일이란 이렇게 하는 게 아닐까. 먼저 신뢰를 보여주고 그리고 그 신뢰 속에 정성이 담겨 있었다는 그 마음을 확인시키자 저절로 다른 사람들은 그를 중심으로 척척 움직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에 동참하게 하는 것.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이 풍족한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

 

정성은커녕 거짓으로 가득 차 결국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와 그래서 마비된 국정운영. 그 실망감과 상실감이 너무나 커서인지 에릭이 보여주는 놀라운 요리의 세계에서조차 거꾸로 왜 정부는 저렇게 일하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이 든다. 풍요롭게 해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이러려고...” 하는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말들이 회자되게 하지는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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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 시대, tvN이 보인 한계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렸던 걸까. tvN 드라마의 추락이 예사롭지 않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시청률이다. 월화드라마의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었던 <또 오해영>이 무려 9.9%(닐슨코리아)의 시청률로 종영한 이후, <혼술남녀>는 그나마 5% 최고시청률을 기록해 체면을 차렸지만 <막돼먹은 영애씨15>2.2%로 주저앉았다.

 

'안투라지(사진출처:tvN)'

물론 시즌15를 맞는 <막돼먹은 영애씨>가 가진 tvN에서의 상징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tvN 월화드라마가 <또 오해영> 같은 드라마로 확보한 이 편성시간대의 보편성과 화제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나름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지만 어딘지 마니아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

 

새롭게 시작한 <안투라지>는 시청자들의 혹평이 이어지며 시청률 0.7%까지 떨어졌다. 지금껏 tvN에서 최저시청률을 기록한 <잉여공주>를 밑 돌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나마 체면을 차린 건 종영한 <더 케이투>. tvN이 확고히 잡고 있는 금토드라마 시간대에서 5% 시청률을 유지했다.

 

tvN이 새롭게 기대를 걸고 있는 작품은 김은숙 작가가 쓰고 공유가 출연하는 <도깨비>. 하지만 이 작품은 122일부터 방영될 예정이다. 따라서 2주 간의 공백이 생기게 됐다. 이 빈 자리를 채우는 건 tvN의 변함없는 간판 프로그램인 <삼시세끼>. 이번 주 금요일은 이례적으로 아예 <삼시세끼>어촌편3를 정주행하는 편성표를 내보였다. 따라서 낮 12부터 밤 11시까지 <삼시세끼>어촌편31회부터 6회까지 계속 이어진다.

 

지금 tvN의 고민은 드라마가 최소한 지금까지의 tvN표 드라마 브랜드를 유지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원인은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시국과도 무관하지 않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시청자들의 눈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가 있다. 하지만 오락 채널인 tvN은 아예 이를 담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채널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른바 시사의 시대를 맞아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을 통틀어 가장 선전하고 있는 건 JTBC. <뉴스룸>은 연일 최고시청률을 갈아엎으며 9%를 유지하고 있고, <4시 사건반장>이나 <5시 정치부회의>까지도 각각 2.9%, 4.0%로 기존 시청률의 두 배 이상을 넘어섰다. <썰전>은 최순실 게이트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무려 9% 시청률을 냈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2%대를 유지하던 시청률이 6%까지 치솟았다.

 

JTBC가 거둔 성과는 단지 시청률만이 아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며 얻게 된 방송사의 신뢰도는 향후 JTBC의 드라마나 예능, 교양 같은 여타의 프로그램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때 TV 뉴스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JTBC <뉴스룸>은 이 시대에 맞는 선택과 집중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으며 역시 방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뉴스와 시사 같은 중차대한 사안들에 대해 국민의 귀와 입이 되어주는 것이란 걸 확인시켜줬다.

 

한 때 tvN의 승승장구는 평시에 그만한 재미와 의미를 담보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이 채널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하나의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현재, tvN은 속수무책이다. 오락으로 전문화된 케이블 채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게 보이는 한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tvN은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의 형식에 시사적 소재를 담아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청자들이 마음껏 웃기도 힘든 시국이 아닌가. 이럴 때 JTBC가 가진 <썰전>같은, 그 시국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하긴 최근 제기되고 있는 이번 정권의 CJ에 대한 압박의 증거들을 보면 왜 tvN이 이런 시사 소재의 프로그램을 예능의 형식을 통해서라도 갖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 이해가 된다. 심지어 <SNL코리아> 같은 예능에서의 시사풍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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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답답한 현실 속 힐링 타임이 된 까닭

 

나라 안팎을 시끌시끌하게 만든 현실이 못내 답답했던 걸까. tvN <삼시세끼> 어촌편3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진다. 첫 회부터 11%대의 높은 시청률을 찍은 후 순항하고 있고 방송이 끝나고 나면 그 대단할 것 없는 이서진, 에릭, 윤균상의 득량도에서 먹은 몇 끼가 화제가 된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런 행보는 이례적이다. 전체적으로 시사와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치솟은데 반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하긴 요즘 같은 시국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허허롭게 웃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물론 시사 풍자가 들어간 예능 프로그램들은 예외지만.

 

하지만 알다시피 <삼시세끼>에는 시사 풍자 같은 요소가 들어 있지 않고 또 들어갈 여지도 별로 없다. 사실 하는 일도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득량도에 들어간 이서진, 에릭, 윤균상이 세 끼 밥을 해먹는 것이 고작이니까.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요즘 같은 시국에 특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고 있다. 세상이 복잡하고 갑갑하고 화가 나니 이들과는 동 떨어진 곳에서 잠시 멈춰서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일이 그 자체로 힐링과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정성에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어내는 에릭, 투덜대면서도 뒤에서 그를 도우며 무엇보다 그가 만들어낸 음식을 맛나게 먹는 이서진 그리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시켜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자발적인 노예윤균상. 이들이 득량도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나 단순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삶의 본질 같은 걸 드러낸다.

 

결국 하루 세 끼 챙겨먹으며 사는 건 누구나 다 같다는 것. TV 뉴스에서는 입만 열면 수십 억 수 백 억이 옆집 개 이름처럼 나오고, 그걸 좀 더 갖겠다고 갖가지 부정과 청탁과 갑질을 한 정황들이 서민들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지만, <삼시세끼>는 정반대로 그런 사람들의 행태가 삶의 본질에서는 한참 벗어난 것이라는 걸 에둘러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이 양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을 가진 득량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넉넉한 가슴을 내어준다. 에릭이나 윤균상처럼 바다가 낯선 그들에게도 때 되면 갯벌을 열어 누구나 쉽게 채취해갈 수 있는 양식을 내놓는다. ‘키조개의 법칙따위는 없을 정도로 어디서나 쉽게 키조개를 채취할 수 있고, 운 좋은 날에는 갯벌 여기저기서 그저 주우면 될 정도로 많은 백합을 얻을 수도 있다.

 

그걸 주워다가 뚝딱 뚝딱 관자삼합을 만들어 먹는 이 섬의 세 사람을 보다보면 그 단순하고 소박한 한 끼가 그토록 넉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삼시세끼>는 전혀 의도하지 않고 있지만 그 자체로 현실에 대한 만만찮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래봐야 다 똑같은 삼시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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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에릭, 우리가 원한 건 그의 정성일 뿐

 

느려도 너무 느리다. tvN <삼시세끼>의 에릭이 하는 요리 이야기다. 그의 요리가 이전 어촌편의 차승원과 확연히 다른 건 속도. 차승원은 재료만 확보되면 척척 요리로 만들어냈고, 그 과정은 심지어 다이내믹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능숙하다는 얘기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하지만 에릭은 다르다. 그는 요리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들 듯이 아주 정성을 다하고 섬세하게 요리를 한다. 그러니 저녁 한 끼를 먹으려고 준비하는 과정만 7시간이 걸린다. 7시간 동안 만든 요리가 회 초밥 몇 점, 고구마튀김, 수육 그리고 그 육수로 만든 제주도식 돔베국수다. 일찍부터 준비했지만 새벽2시가 훌쩍 넘어서야 저녁을 다 먹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가 회 초밥을 만들기 위해 잡아온 물고기를 회치는 모습은 거의 정지화면에 가깝다. 이서진은 피곤한 몸을 뉘여 한 잠 자고 일어났지만, 그 때까지도 에릭은 정성을 다해 회를 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칼을 놀리는 모습은 그래서 마치 장인 같지만 성격 급한 이서진으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무슨 요리를 해먹자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두려울 만큼.

 

그런데 막상 요리를 먹어보면 그렇게 투덜대던 이서진의 얼굴에도 보조개가 피었다. 만일 맛이 없었다면 한참 투덜댔을 그는 그래서 그런데 또 맛은 있어하며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힘든 건 제작진들도 마찬가지. 나영석 PD는 새벽에야 저녁을 먹는 모습을 찍다가 좀 빨리 먹어줄래?” 하며 자신들도 퇴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웃음을 주었다.

 

이런 모습은 이미 그 날 아침부터 일찌감치 예고되었다. 그저 간단한 것처럼 호박죽을 아침 메뉴로 선정했지만, 믹서기도 없는 마당에 그걸 하나하나 잘라내 솥에 끓여서 흐물흐물한 죽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이서진이 따온 고구마 줄기 반찬을 만들기도 했다. 아침을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에 먹게 되었지만 역시나 맛이 좋아 이서진은 흡족해 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점심 준비에 들어간 에릭은 이번에는 짜장밥과 백합탕을 선보였다. 서두르고 서둘렀지만 역시 짜장을 기름에 볶아 직접 짜장 소스를 만들고, 익어서 뚜껑이 벌어진 백합을 하나하나 꺼내 속살만 빼어내고 조개껍질만 다시 넣어 국물을 우려내는 식으로 정성을 다한 백합탕을 만드는 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막상 만들어놓은 음식에는 이서진은 물론이고 나영석 PD까지 그 맛에 반색했다. 마치 도둑처럼 훔쳐 맛보던 나영석 PD는 혼자 먹기 아깝다는 듯 스텝들을 불러 먹이기까지 했으니.

 

에릭의 요리가 느린 건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그는 미안했던지 방송이 끝나고 수산시장까지 가서 생선 회치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 요리에 대한 노하우나 지식은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러니 백합탕 하나 끓이는 데도 너무 조개를 오래 끓이면 질겨지기 때문에 조갯살만 미리 빼놓는 것이고, 조개를 넣고 끓일 때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면 삼투압 때문에 육즙이 다 빠져 나간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충대충 절차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에릭의 요리다. 그래서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맛은 더 깊어지는 것. 그의 요리를 보면 실로 정성이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조금 느리면 어떤가. 하나하나 제대로 절차와 과정을 밟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진정한 요리의 맛을 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요리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요즘처럼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하수상한 시국에, 에릭이 한 끼를 만들어내는 그 정성스런 요리의 시간은 그래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능숙한 것도 아니고, 또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정성이다. 그 하나를 하는 것에 들어가는 마음. 느림보 에릭에게서 배워야할 그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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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수들에서 이젠 배우들로 채워진 속사정

 

박보검에 이어 유지태 그리고 이젠 김유정이다. 최근 정준영이 나가고 난 빈 자리 때문일까. KBS <12>의 게스트 출연이 부쩍 잦아졌다. 그게 특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12>처럼 오래도록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이 게스트를 활용하는 건 비슷비슷한 패턴을 벗어나는 데는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이런 사정은 간단하게 시청률이 반증한다. 박보검이 나왔을 때 <12>은 무려 19.9%(닐슨 코리아)의 대박 시청률을 기록했고 유지태도 17.4%를 찍었다. 그러니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유정의 출연 역시 기대되는 대목인 건 사실이다.

 

흥미로운 건 <12>의 구성원들이 초창기 가수들 중심으로 채워졌던 것과 비교해 지금은 배우들 구성이 훨씬 많아졌다는 점이다. <12> 초창기를 이끌었던 출연자들을 떠올려 보라. 웃음을 담당하던 강호동과 이수근을 빼놓고 나면 이승기, C, MC, 은지원, 김종민이 모두 가수들이었다.

 

이렇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어쨌든 리얼 버라이어티가 가진 리얼한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예능인이 아닌 다른 직업군의 출연자들이 필요했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연기를 직업으로 가진 배우들보다는 노래라는 또 다른 예능의 동력을 갖고 있는 가수가 훨씬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다채로운 재미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만 해도 여전히 배우들은 가수들보다 예능 출연하는 것 자체가 낯설고 꺼려지는 어떤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12>의 공기를 만드는 건 차태현이나 윤시윤 같은 배우들이다. 물론 웃음은 데프콘이나 김준호, 김종민에서 나오지만 프로그램의 색깔은 이들 배우들에게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이전 구탱이형 김주혁이나 잠깐 출연하기도 했었던 유해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배우들의 연기가 아닌 진솔한 모습은 오히려 더 시선을 잡아끌게 되었다. 가수들보다 훨씬 더 감춰져 있었기에 오히려 반전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건 나영석 PD의 영향이 크다. 그는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를 통해 일련의 배우들을 예능의 스타로 만들어낸 바 있다.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 그렇고, <꽃보다 누나>에 나온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이 그러하며, <삼시세끼>의 이서진과 차승원 그리고 최근 에릭까지 연달아 배우들을 성공적으로 예능 스타로 등극시켰다. 물론 이것은 tvN의 전략적 선택으로 드라마와 연계하는 예능의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늘 새로운 얼굴을 찾아내야 하는 예능의 특성상 배우군이 그 신천지가 된 이유도 있다.

 

<12>이 한 때 가수들에서 이제는 배우들로 채워지게 된 건 이런 예능 전체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최근 <무한도전>에 출연한 아수라 출연진들이나, <시그널> 김은희 작가가 합류해 만든 무한상사<곡성>의 쿠니무라 준이 등장하는 등 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이제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영화나 드라마 홍보가 아니라고 해도 배우들 스스로도 선호하게 된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능 출연은 배우들의 활동에 장애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걸 유해진 같은 배우는 확실히 보여준 바 있다. 물론 자기만의 연기 영역이 확실한 배우지만 유해진이 <삼시세끼> 어촌편에 출연하면서 좀 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것이 영화 <럭키>의 대박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차승원의 <고산자>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건 차승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작품 자체가 대중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소재였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차승원은 <삼시세끼>의 이미지를 <고산자>로 가져와 자칫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경쾌함을 부여한 바 있다.

 

한 때는 왜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는가 하고 고개를 저었던 배우들이 이제는 예능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의 지대이면서, 동시에 본업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에 연이어 출연하는 배우들은 바로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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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예능 <삼시세끼>, 에셰프 요리에 담긴 느림의 미학

 

나영석 PD의 안목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다시 시작한 <삼시세끼> 어촌편의 이서진과 에릭 그리고 윤균상이 만들어내는 판타스틱한 조합을 가능하게 한 걸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낯간지러운 걸 참지 못하며 툴툴 대는 이서진은 <삼시세끼>의 현실감을 만들어주고, 어떻게 자급자족하며 살아갈까 싶은 상황을 반전시켜 엄청난 음식의 향연으로 만들어내는 에릭이 판타지를 준다면, 막내 윤균상은 현실적 어려움을 몸으로 때우고 음식이 주는 그 힐링을 아무런 가식 없이 드러내준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잡히라는 물고기는 안 잡히고 통발에 가득 잡힌 게들 때문에 모든 음식에 게가 기본적으로 들어가자 나영석 PD는 에셰프 에릭의 요리를 게로 음식과 국의 톤을 맞추는 거지?” 하며 의미를 덧붙인다. 그러자 이서진은 그게 아니라 재료가 게밖에 없어서 그래라며 그것이 아주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걸 굳이 되새겨준다. 아침에 계란을 챙겨와 찬물에 넣는 윤균상에게 왜 그랬냐고 이서진이 묻자 너무 뜨거워서 병아리가 나올까봐그랬다는 조금은 동화적인(?) 얘기에 이서진은 얜 무정란이야라며 현실적인 멘트를 던진다.

 

활활 잘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고기 좀 구워먹자, 다음날 노동을 미끼로 고기를 주겠다는 나영석 PD악마의 제안일단 땡겨라며 선선히 받는 인물도 역시 이서진이다. 결국 이서진은 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의 현실적인 면들을 부각시키는 인물이다. 조금은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 있는 구석도 그는 특유의 깨는이야기를 통해 현실로 되돌린다. 그것은 마치 나영석 PD<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포장하려는 걸 거부하는 듯한 모습으로 느껴져 묘한 긴장감과 함께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이 현실적 바탕 위에 새로이 들어간 에릭과 윤균상의 존재들이 훨씬 더 부각된다. 에셰프라는 애칭이 붙은 천재 요리사(?)’ 에릭은 이처럼 깨는 현실에 다시금 판타지를 불어넣는 인물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던져 놓은 통발에 가득한 게를 가져오는 장면도 그렇고, 바다로 나가 겨우 작은 물고기 세 마리를 잡고서도 그걸 회덮밥으로 만들어 맛나게 먹게 하는 장면도 그렇다. 한편 윤균상은 의외의 낚시 실력을 보여주고, 의외의 장작 패는 재능을 확인하고, 점점 에셰프의 보조 일에 척척 손발이 맞아가는 착한 막내의 성장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들 세 사람의 조합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다. 이서진의 현실과 에릭의 판타지 그리고 윤균상의 성장이라니.

 

무엇보다 <삼시세끼>라는 일주일의 피로를 날려주는 힐링 예능에 에릭 같은 인물이 발굴됐다는 건 가장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에셰프의 요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주는 구석이 있다. 요리를 하기 전에 곰곰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들지만 그 작은 정성들이 하나하나 들어갔으니 맛은 놀라울 정도로 깊어진다.

 

그 깊은 맛은 지극히 현실적인 투덜이 이서진의 표정을 환하게 만들고 다음 요리를 위해 기꺼이 야밤에 조개를 잡으러 나가게 만들 정도다. 이서진이 특히 에셰프의 국물 요리를 극찬하는 건 그것이 다른 요리처럼 순식간에 뚝딱 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을 피워야 하고 먼저 갖은 재료로 국물을 내야하며 거기에 메인 재료의 맛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적은 재료라도 좀 더 편하고 맛나게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게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 게를 갖고 미리 살까지 발라내어 찌개를 끓이는 에릭의 요리는 단박에 그의 요리스타일은 물론이고 성격까지도 가늠하게 만들었다.

 

이 느릿느릿 만들어가는 에셰프의 요리는 바로 그 느린 속도가 바로 힐링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에서 우리가 매 끼니를 챙기기 위해 얼마나 빨리 빨리를 외치는가. 음식은 스피드가 되어버린 지가 오래다. 그래서인지 에셰프의 느긋한 요리는 요리에 담기는 정성과 맛도 그렇지만, 그 느림의 미학이 주는 푸근함, 따뜻함, 여유 같은 것들이 묻어난다. 이것이 그의 요리만 보고 있어도 힐링의 느낌을 갖게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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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부족한 <럭키>, 유해진의 엄청난 저력

 

영화 <럭키>의 진짜 행운은 유해진이 아니었을까. <럭키>는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아수라>가 개봉한 지 20일이 다 되어가지만 고작 250만 관객에 머물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결과다.

 

사진출처: 영화 <럭키>

영화에 들어간 공력을 보면 <아수라>가 압도적이다. 제작비도 <아수라>가 홍보비를 포함해 110억 정도가 들어간 반면 <럭키>40억이 투입됐다. 무엇보다 쟁쟁한 주연급 배우들만으로도 화제가 됐던 <아수라>의 캐스팅은, 지금껏 조연으로만 주로 서 왔던 유해진이라는 배우에 기대하고 있는 <럭키>와 너무나 비교된다.

 

그렇다고 객관적으로 말해 <럭키>라는 작품이 굉장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형적인 코미디 장르로서 기억상실이 된 킬러가 무명배우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대신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조금은 과장된 코미디 설정들이 웃음을 주며 후반부에 이르면 어떤 따뜻함 같은 걸 느낄 수 있는 영화.

 

물론 소소한 재미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대단할 것 없다 여겨지는 <럭키>라는 작품이 이만큼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요소는 결국 유해진이라는 배우다. 이 배우가 단독 주연으로 선 영화라는 점은 <럭키>에 대한 막연한 지지 같은 걸 하게 만든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그다지 크게 웃기다고 생각할 수 없는 장면에서조차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영화 속 캐릭터 때문이라기보다는 유해진이라는 이미 우리에게는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잘 알려진 인물이 주는 친근함 때문이 아닐까. 유해진이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인상을 쓰는 첫 장면의 비장함이 관객들에게는 먼저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배우가 가진 시골스러운 면면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일 것이다.

 

물론 <럭키>라는 영화 자체가 전혀 흥행에 기여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편에 깔려 있다. 즉 무명배우의 삶을 대신 살게 된 유해진이 구박받던 엑스트라에서 점점 주연에 가까운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은 우스우면서도 통쾌함을 준다. 어떤 배역을 맡느냐에 따라 멸시받기도 하는 무명배우들의 삶이 마치 우리네 삶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럭키>를 통해 그 무명배우의 삶을 연기한다는 점은 여러모로 영화와 현실 사이를 잇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건 어쩌면 <주유소 습격사건>의 단역으로 등장해 지금의 톱스타가 된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진짜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놓은 듯한 착시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럭키>는 제목 그대로 유해진이라는 행운이 있어 성공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물론 굉장한 기대는 금물이다. 하지만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친근하고 따뜻하며 본인이 진지할 때조차 웃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온전히 주인공으로 들여다보는 그 시간은 충분히 재미를 준다. 어딘지 부족한 영화지만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아우라는 그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채워주는 행운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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