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왕과 나’, 클로즈업 미학이 가진 양면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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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클로즈업 미학이 가진 양면성

D.H.Jung 2007. 10. 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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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한 스토리 없는 클로즈업, 자칫 자극으로만 흐를 수 있어

‘왕과 나’는 김재형 PD 특유의 클로즈업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똑같은 대본이라도 김재형 PD가 연출하면 좀더 집중력이 높아지고 극중 인물의 감정 선이 폭발하는 것은 바로 이 클로즈업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줌 인으로 들어가면서 잡아주는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얼굴 표정의 미세한 떨림 같은 것까지 놓치지 않으면서 사극이 흘러가는 기본적인 힘, 즉 갈등을 증폭시킨다. 여기에 심장을 쿵쾅대게 만드는 배경음악이 깔리면 극은 무언가 대단한 사건이 벌어진 것 같은 진풍경을 연출하고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클로즈업은 어찌 보면 TV라는 매체가 가진 속성이기도 하다. 영화와 같은 대형스크린에서는 원경의 그림 구도를 잡아놓고 그 안에 들어있는 인물묘사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다채로운 볼거리를 잡아넣을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주변 배경의 표정들 역시 인물 감정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미학적인 감정처리가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TV는 화면이 작다. 따라서 롱샷으로 처리할 경우, 인물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TV는 기본적으로 클로즈업으로 인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TV가 영화와 매체의 성격이 다른 데서도 기인한다. 돈을 지불하고 집중해서 보게 되는 영화와 달리, TV는 집안 일을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그저 틀어놓고 보는 매체이다. 그만큼 집중도도 떨어지고 중간중간 끊어지면서 보게되는 경우도 많아진다. 그러니 지나치게 미학적인 화면은 오히려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이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쇼 프로그램, 그리고 심지어는 뉴스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클로즈업은 TV라는 매체가 가진 특징을 가장 정확하게 말해주는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이러한 TV의 클로즈업 공식은 유효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것은 장담할 수 없다. TV 화면이 점점 대형화되고 고화질화되면서 TV 영상에 대한 기대치가 과거보다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왕사신기’나 ‘로비스트’ 같은 블록버스터는 영상 자체만으로 볼 때, 거의 영화에 가깝다. 과거 드라마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와이드한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서 ‘로비스트’나 ‘태왕사신기’의 제작진이 키르키즈스탄까지 날아가는 것은 이제 드라마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되었다.

여기에 HD급 화질과 거기에 부응하는 CG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TV는 말 그대로의 안방극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변화되는 상황에서 클로즈업의 공식은 깨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매는 방식보다는, 뛰어난 미학적 화면을 통해 시청자가 스스로 눈과 귀를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적인 방식이 TV 화면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 우리네 사극역사에 한 획을 그은 김재형 PD의 연출방식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이제는 새로운 사극들에게 자리를 내줘야하는 상황이다.

물론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클로즈업의 연출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과거와 달리 높아졌다는 점이다. 클로즈업의 연출방식이 유효하려면 그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즉 극적인 스토리 구조가 기본이 되어야 납득이 된다는 점이다. 평이한 스토리에 과도한 클로즈업은 자칫 연출에 대한 신뢰성을 깨뜨릴 수도 있다.

‘왕과 나’는 왕과 나를 동등한 위치에서 보는, 시대를 앞서가는 기획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앞선 기획과 달리, 신파적인 스토리 구성과 인물구도 등의 드라마 진행은 김재형 PD만의 강점인 클로즈업의 연출방식조차 자칫 구태의연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초기 기획처럼 과감하고 혁신적인 스토리 진행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