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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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주상욱, 유서로도 웃기는 이 남자

D.H.Jung 2016. 10. 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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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주상욱 판타지가 통하는 까닭

 

나 우주대스타 류해성 유서를 남긴다. 이소혜와의 지난 100년은 행복했다. 12명의 자식들과 50여명의 손주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너희들과 함께 한 시간 즐거웠다. 100편이 넘는 훌륭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기뻤고 특히 시작과 끝을 갓소혜 작가의 작품으로 할 수 있어서 우주 최고로 행복했다. 30여개의 남우주연상 감사합니다. 특히 오스카는 기억에 남네요. 아 칸느와 베니스 영화제도 좋았습니다... 제니퍼 로렌스, 스칼렛 요한슨을 비롯한 할리우드 여배우들 이제 나 좀 그만 미워해. 나한테 이소혜 뿐인 걸 어떡해.’

 

'판타스틱(사진출처:JTBC)'

유서라고 하면 어딘지 침울해질 것 같지만 이 남자 유서로도 웃긴다. JTBC 금토드라마 <판타스틱>의 류해성(주상욱)은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소혜가 쓴 유서를 보고는 자신도 유서를 남긴다. 그런데 그 유서 내용이 엉뚱하다. 그건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유서를 빙자해 앞으로 올 미래를 마음껏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서를 통해 현재를 정리하기보다는 미래를 계획한다. 향후 100년은 이소혜와 행복하게 살 것이고, 우주대스타라는 칭호에 걸맞게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라고.

 

물론 그건 꿈같은 이야기고 현재의 발연기를 살짝 넘어서 그나마 손연기정도를 하고 있는 류해성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한 바탕 마음껏 상상해보는 건 자유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읽어본 사랑하는 사람이 유서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류해성의 말도 안 되는 유서는 그래서 말이 된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비장함을 한결 덜어내는 일이 유서를 미리 써보고, 관 체험을 하는 이른바 웰다잉의 전제조건이니.

 

<판타스틱>이 암 선고를 받은 이소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어두워지고 무거워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녀가 쓰러지고 상태가 안 좋아지만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여기 류해성이라는 발연기 자칭 우주대스타라는 캐릭터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긍정적이고 밝은 데다 심지어 자기애가 우주적이라 함께 있는 사람들을 결코 비장함이나 진지함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마음 아파하고 힘겨워 할 수 있는 상황들을 그는 애써 밝게 만들어낸다.

 

이소혜의 무거움을 류해성의 가벼움으로 중화시키는 <판타스틱>의 균형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이 깨지게 되면 지나치게 무거움 속으로 가라앉거나, 혹은 너무나 가벼워 들여다볼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류해성을 발연기 액션 배우로 세운 점은 꽤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가 만약에 이토록 심각한 상황을 정극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한없이 죽음이라는 무거움 속으로 침잠하지 않았을까.

 

만일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고 우리가 거기 주인공들이라면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떤 연기를 할 것인가. 물론 그것은 진지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일일 수도 있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어떻게 진지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죽음이라는 상황에서는 발연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무거움을 깨는 류해성의 발연기는 그 어떤 정극의 그것보다 더 유쾌하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판타스틱>의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류해성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죽음으로 상정되어 있지만 그 같은 절박하고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해성처럼 웃음을 주는 존재는 판타지가 될 수밖에 없다. 힘겨워 유서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 유서조차 미래에 대한 황당하지만 낙관적인 계획들로 채워주는 인물. 류해성이 가볍고 발연기를 하는 캐릭터라도 판타지로 다가오는 이유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