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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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이게 진짜 박정현, '비긴어게인2'가 끄집어낸 그녀의 진가

D.H.Jung 2018. 6. 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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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아닌 일상, ‘비긴어게인2’ 박정현의 진면목

우리는 그동안 박정현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 아닐까. <나는 가수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놀랐던 건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소름 돋는 가창력이 뿜어져 나오는가 하는 점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건 진짜 박정현의 절반도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연에서 경쟁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을 담은 노래가 낯선 이들의 마음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부르는 진심이 담긴 노래. JTBC <비긴어게인2>가 포르투갈 리스본의 어느 지하철역 앞에서 보여준 장면은 박정현의 진가가 드디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주어진 음악선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리스본의 어느 낯선 거리, 지하철역 앞에서 아델의 ‘썸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를 부른 박정현은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곳이고, 그래서 다소 소음이 있을 법한 그 곳에서의 버스킹은 그 스스로도 말했듯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조용히 흐르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읊조리듯 부르던 ‘썸원 라이크 유’가 차츰 고조되며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지나던 행인들은 발길을 멈춰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느낌. 그가 말했듯 ‘느닷없는 음악선물’은 리스본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런 순간은 이미 전날 있었던 첫 버스킹에서 박정현이 ‘꿈에’를 불렀을 때부터 예고됐던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그 노래를 열창하는 박정현의 모습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 바 있다. 완벽한 음향에 연주자들 그리고 완벽한 관객까지 준비된 무대. 그래서 마치 콜로세움에 들어선 검투사처럼 가창력을 무기로 들고 나와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그 놀라웠던 박정현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음향도 또 무대도 완벽하지 않고 심지어 관객들도 그저 지나치는 행인인 그 낯선 거리에서 박정현이 부르는 ‘꿈에’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밖으로 질러대는 목소리가 아니라 안으로 꾹꾹 눌러 담는 절제된 감성 속에서 ‘꿈에’가 전하는 그 아련하고 아프지만 그래서 예쁘기까지 한 노래의 정조가 더 절절하게 전해졌다. 가사는 모르지만 때론 속삭이고 때론 울먹이며 때론 폭발하다가 때론 처연해지는 그 목소리는 외국인들의 가슴에도 파고들었다. ‘꿈에’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노래였다는 걸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그런 노래. 

‘느닷없는 음악선물’이라는 표현은 사실 <비긴어게인2>가 지향하는 음악의 색깔이기도 하다. 어째서 프로 가수들이 버스킹을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늘 존재했지만, 박정현의 노래는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 수천 명의 관객 앞에 부르는 노래보다, 때론 단 몇 명 앞이지만 그들을 위해 진심을 다해 부르는 노래가 더 진짜일 수 있다는 걸 그의 노래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긴어게인2>는 완벽히 준비된 무대가 아닐 때 더 진가가 드러난다. 이를테면 첫 날 버스킹을 하고 찾아간 어느 라이브 카페에서 외국 밴드의 요청으로 무작정 무대에 오른 헨리가 바이올린으로 그들과 즉석으로 맞춘 음악이 그렇다. 그런 ‘느닷없이’ 벌어지는 사건 같은 음악이야말로 어쩌면 <비긴어게인2>가 추구하는 음악일 것이다. 

그건 우리가 무대 위로 올려놓았던 음악을 이제 무대 아래 일상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음악은 본래 더 이상 신들의 무대 같은 오디션에서 찬양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음식을 하면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흥얼대던 일상 속의 어떤 것이었을 뿐. <비긴어게인2>가 제목에 담고 있는 ‘다시 시작한다’는 뜻은 그래서 이렇게 음악을 다시 일상으로 되돌린다는 의미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진짜 박정현의 진가가 무대를 내려오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