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꽃할배', 나 PD가 아무리 구박해도 이서진은 이서진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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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 나 PD가 아무리 구박해도 이서진은 이서진이다

D.H.Jung 2018. 7. 1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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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짐꾼 이서진 없다면 ‘꽃보다 할배’ 가능했을까

“미쳤지? 미쳤어.” 이서진이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하자 나영석 PD가 짓궂게 몰아댄다. 이동하는데 특히 힘겨운 <꽃보다 할배>였다. 지하철 타는 곳을 잘못 찾아가 되돌아 나와야 했고, 내리는 곳을 잘못 알아 다시 급하게 타야 했으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돌아가야 했으니 나영석 PD의 짓궂은 한 마디는 무안해할 이서진을 위한 질책이었을 게다. 그러자 어쩔 줄 몰라 하던 이서진은 그제서야 머쓱해진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 상황을 넘겼다. 어르신들은 질책을 하기보다는 허허 웃으며 그런 실수가 오히려 “재밌다”고 해주셨다.

그런 이서진이 ‘고장났다’고 제작진들이 말했지만, 베를린에서 프라하로 가는 길을 통해서 보니 그의 존재감이 남달랐다. 한 차례 실수를 해서 어르신들을 힘겹게 했으니 자신은 더 긴장했는지도 모른다. 베를린 중앙역까지 가는 지하철표를 사는 것 하나만 봐도 이서진의 중압감이 느껴졌다. 한 차례 해봤던 경험이라 혼자서라면 쉽게 했을 테지만 그만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시선이 못내 그를 긴장하게 하지 않았을까. 이서지은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에 맞춰 간신히 표를 끊는 긴박감을 만들었다. 

베를린에서 프라하까지 가는 기차 여정은 ‘건건이’ 김용건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번 여정에서 김용건은 ‘분위기 메이커’로서 또 다른 어르신들을 든든히 챙겨주는 조력자로서 이서진에게는 천군만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김용건은 그래도 막내로 더 어린 사람이 와서 이서진을 도와야 하는데 자신마저 부담을 지워준 것 같다며 몹시 미안해한다. 다른 어르신들이야 이서진의 역할이 얼마나 큰 가를 여러 차례 여행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김용건은 처음 겪는 일이라 그의 부담감을 누구보다 무겁게 느꼈을 것이다. 

프라하에 도착하자 또다시 이서진의 고행(?)이 시작됐다. 숙소까지 가야 하는 일이 그에게는 ‘대모험’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택시로 이동한다”는 말에 반색하는 백일섭이었지만, 택시 타는 곳을 잘못 나와 다시 찾아가야 했고, 그 곳에서도 콜택시로 예약을 해야 택시를 잡을 수 있어 연실 전화를 하며 택시를 기다려야 했다. 혼자라면 별 일도 아니겠지만 어르신들 모두를 통솔해야 하는 입장이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두 대의 택시를 간신히 잡아 숙소까지 모두 무사히 도착하게 했지만, 이제 또 예약한 아파트먼트의 키를 받으러 가야 하는 길이 멀었다. 그런데 찾아간 그 곳에서 예약한 아파트먼트가 한 군데가 아니라 두 군데로 나뉘어 있고, 주소조차 택시를 내린 곳에서 떨어져 있다는 말을 들은 이서진은 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엘리베이터도 없이 계단을 올라야 하는 한 아파트먼트는 포기하고 겨우겨우 찾아간 다른 아파트먼트. 다행히도 그 곳의 숙소는 꽤 넓고 쾌적했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여행경로를 미리 파악해 어르신들이 헛걸음 하는 일이 없도록 만들고, 편안한 숙소를 찾아내고 그 곳까지 가는 이 모든 일들이 <꽃보다 할배>에서는 대모험이었다. 그런데도 이 여행이 가능했던 건 이제 보니 나영석 PD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웃으며 일처리를 척척 해낸 프로 짐꾼 이서진 덕분이었다. 이서진이 호텔 키를 받으러 갔을 때 어르신들이 “이서진 없으면 이 여행 안돼”라고 했던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호텔이 아니라서 이서진의 용돈(?)을 받아 어르신들이 각자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그 과정에서도, 이서진의 부재가 가져온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가 없으니 식사 주문 하나 하는 것도 영 쉽지가 않았던 것. ‘젊은 짐꾼’ 하나 더 붙여서 이서진도 좀 편하게 해줘야겠다는 어르신들이 이야기가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이서진은 늘 툴툴대고 조금 엉뚱하게 되어버린 일 앞에서도 “내 잘못 아냐”라고 얘기하는 그런 캐릭터다. 그래서 그는 어르신들과의 여정에서 사실 굉장히 힘겨운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게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꽃보다 할배>가 쉽지 않은 여정에도 즐겁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숨은 힘이 아닐까. 실로 어르신들 말대로 이서진이 없다면 이런 여행도, 이 프로그램도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