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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삶도 연기도 일단 파봐야 안다

D.H.Jung 2024. 3. 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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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의 풍수사로 돌아온 연기 장인 최민식

파묘

“땅이야 땅. 우리 손주들이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라고!”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에서 김상덕(최민식)은 그렇게 말한다. 9백만 관객을 넘기고(20일 현재) 1천만 관객 돌파가 거의 기정사실이 된 이 영화는, 상덕의 이 말에 담긴 뉘앙스처럼 공포 가득한 오컬트 영화에서 무언가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영화로의 확장을 꾀했다. 

 

묘를 파낸다는 ‘파묘’의 의미는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집안에 생긴 우환의 원인으로 묫자리를 잘못 썼기 때문에 이를 파내서 이장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그저 땅을 파는 게 아니라 묘를 파낸다는 그 상황이 주는 공포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사적인 차원에서 우환을 없애기 위한 파묘일 때 생기는 공포감이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 그 사적인 차원의 파묘는 보다 공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일제가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범의 형상을 한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혈자리에 쇠말뚝을 꽂았다는 음모론을 상상력으로 확장한 이 작품은 바로 파묘를 하려는 이들에게 그 쇠말뚝을 뽑아내는 미션을 부여한다. 

 

이들의 행위는 그래서 끊어졌던 민족 정기를 잇는 의미를 갖게 되고, 공포감과 맞서는 일 또한 우리 민족이 힘겨워도 마주하고 넘어서야 할 일제의 과거사 문제들이라는 은유를 담게 된다. ‘파묘’가 오컬트 장르라는 다소 마니아적 한계를 넘어 천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대중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작품에서 묫자리를 봐주고 잘못된 건 바로 잡아주는 풍수사 상덕은 사적인 동기로 시작했던 파묘를 공적인 동기로 넘어서게 해줌으로서, 사실상 두 개로 끊어져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내는 인물이다. 즉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에 담긴 것처럼, 범의 형상을 한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곳에 꽂힌 쇠말뚝을 뽑아내는 이야기에 걸맞게, 앞뒤 두 개의 이야기가 끊어져 있는 것을 대사 한 마디로 이어내는 인물이다. 

 

그건 풍수사라는 직업이 땅을 보고 다루는 전문영역을 갖고 있어서 가능해진 일이다. 전문적인 직업의 영역은 그래서 사적인 욕망이나 생계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 경험들이 응축되어 무언가 뒤틀어진 것을 바로잡음으로서 모두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공적인 역할이 되기도 한다. 상덕이 그러하듯이. 

 

이건 최민식이라는 배우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가 걸어온 연기 인생을 들여다 보면 배우라는 전문영역에 그가 얼마나 일생을 던져 노력해왔는가가 엿보인다. 그는 엇나간 학생들을 엄하게 꾸짓는 선생님(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고, 조폭들과 맞짱뜨는 검사였으며(넘버3), 바람난 아내 때문에 분노하는 남편이자(해피엔드),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순박한 시골남자(서울의 달)였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역할들 또한 그는 연기했는데, 남파 공작원(쉬리), 장승업(취화선), 수십 년을 갇혀 지내다 복수를 꿈꾸는 인물(올드보이), 연쇄살인마(악마를 보았다), 정재계 인사들과 연결된 비리로 점철된 브로커(범죄와의 전쟁), 심지어 이순신(명량) 역할까지 소화했다. 

 

그가 메소드 연기의 일인자라는 걸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인물들을 진짜 그 인물이 되어 연기로 풀어냈는가가 불가사의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의 메소드 연기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래서 때때로 인터뷰를 통해 회자되곤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악마를 보았다’에서 연쇄살인마 연기를 했을 때 있었던 일화다. 

 

영화 촬영 중 동네 피트니스 센터 엘리베이터에서 평소 친근하게 다가오곤 했던 한 아저씨가 반말로 “어디 최씨냐”고 물어봤을 때 저도 모르게 “근데 이 XX가 왜 반말을 하지?”하는 생각이 들어 엘리베이터 비상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최민식이 어떤 연기를 할 때 얼마나 그 인물 깊숙이 들어가는가를 잘 말해주는 일화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살인자의 ‘살’자도 다신 안하고 싶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고 한다. 또 <명량>으로 이순신 장군의 역할을 할 때도 그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건 이 인물이 홀로 짊어졌을 무게가 고스란히 자신을 짓눌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메소드 연기는 최근 들어 배우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연기 방식이다. 진짜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기 위해 실제 생활을 해보는 등 완전히 그 사람이 되어 연기를 하는 것인데, 요즘은 이렇게 빠져서 하는 연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서 하는 생활연기법이 많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라이벌로 불리는 송강호가 바로 그런 스타일의 연기를 한다. 역할을 연구하는 건 같지만, 완전히 그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것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절제된 연기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다르다. 이 차이에 대해서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최민식이 ‘고전주의자’라면 송강호는 ‘자연주의자’라고. 어느 쪽이 옳거나 낫다고 말할 수 없고 다만 스타일의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최민식에게 연기란 끝없이 새로운 인물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걸 연구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는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 작업이 죽어야 끝나는 작업이에요. 사람을 연구하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인데 사람에 대해서 뭐 답이 있어요? 이 인생에 답이 있나요? 삶이 답이 있어요? 세상이 변하고 사고방식도 변하고 가치관도 달라지고 이게 졸업이 어디 있어요? 이걸 하나하나 알아나간다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이건 죽을 때까지 하는 공부예요.” 

 

그런데 그 공부에 임하는 태도가 흥미롭다. 무언가 새로운 세계를 하기 위해 우리는 뭐든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일단 뛰어들라고 말한다. “그냥 뛰어들어서 하면 돼요. 아니 이게 냄비 솥이 뜨거운지 알려면 만져봐야 뜨겁죠. 그러니까 한번 뜨거운 맛을 봐야... 만져보지도 않고 뭐 어떻게 알겠어요.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 않나요? 내가 좋아하고 호기심이 있고 하고 싶다 그러면 한번 해봐야지 알지. 뭐... 방법이 없죠.”

 

‘파묘’의 상덕이 그러하듯이 땅 속에 뭐가 있는지는 일단 파 봐야 안다. 무엇이 나올지 두렵기도 하지만 파보지 않으면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 땅을 파보듯이 최민식은 여러 역할들을 팠을 게다. 그리고 그 역할들이 동시대의 대중들에게 줬던 여러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게 분명하다. 무언가를 파다 보면 전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건 때론 꽤 거창하고 의미있는 일들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걸, ‘파묘’의 상덕이 아니 그 역할을 연기하는 최민식이 우리 앞에 꺼내 보여주고 있다. (사진:영화 '파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