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아내의 유혹'의 정신분열, 상태 심각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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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의 정신분열, 상태 심각하다

D.H.Jung 2009. 3. 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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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민소희(채영인)의 살기어린 눈빛을 보는 순간,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내의 유혹'은 죽었던 망자들을 하나씩 다시 되살려서 현실에 복수를 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구은재(장서희)였죠. 가장 가까운 남편과 친구에 의해 차가운 바닷물 속에 버려진 그녀는 그 순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민소희로 부활하죠. 부활한 그녀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교빈(변우민)과 그 가족, 그리고 애리(김서형)를 파멸로 이끌죠. '전설의 고향'의 억울하게 죽은 귀신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그 순진한 권선징악적 구도가 막가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그저 봐줄만 했죠. 이러한 처절한 복수극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저 '전설의 고향'의 귀신들이 그러하듯이 초반부 그네들의 울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억울한 사연들을 전제로 충분히 깔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유혹'의 초반부에 구은재가 보여주었던 착하기만 했던 그 모습과 그럼에도 버려지는 그 과정이 후반부의 귀신으로 부활한 구은재의 상황을 긍정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민소희의 부활은 이러한 공감의 포인트가 없습니다. 그녀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의붓남매인 건우(이재황)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죠. 수차례 자살시도를 한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 상태입니다. 돌아온 자리에 은재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박탈감에 그녀는 거의 미쳐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그녀의 모습이란 눈을 치켜뜨고 꽃다발을 마구 흩뿌리거나 소리를 빽빽 지르는 정신병자의 그것입니다.

드라마에서 캐릭터는 반드시 저마다의 역할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역할은 공분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고(애리), 가련한 주인공을 감싸안아 주기도 하고(건우), 억압된 감정을 풀어내게 만들기도 하고(교빈),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품게(강재) 하기도 합니다. 그런 감정들의 부딪침과 해결이 사실상 드라마를 구성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부활한 진짜 민소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 현대판 '전설의 고향'에서 민소희와 은재는 사실상 아무런 감정적 연원이 없습니다. 부활한 귀신 소희가 은재의 앞길을 가로막거나 복수한다는 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물론 정신병자의 눈으로 보면 그건 이해가 됩니다. 자기 것일 수 없는 것을(의붓남매 관계의 건우) 자기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누군가 빼앗아 갔다며 발악을 하는 것이죠. 드라마 상으로 진짜 소희는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진짜 소희의 역할은 말 그대로 드라마 상의 대립구도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사실상 은재의 복수는 거의 끝이 났기 때문에, 이제 새로운 대립구도가 필요해진 것 뿐이죠. 이것은 이제 쉬지 않고 달려온 '아내의 유혹'이 가진 강박증에 가깝습니다. 끝없이 새로운 적들을 양산해내야 드라마가 굴러간다는 강박. 그것이 멈추면 바로 쓰러지고 만다는 강박이 죽었던 인물까지 다시 끄집어내게 만드는 것이죠. 말도 안되는 이유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라도 드라마의 극적구성을 위해 부활시키는 이 태도는 실로 이 드라마가 가진 심각한 강박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설의 고향'의 귀신들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존재들입니다. 현실의 억압을 귀신이라는 존재로 부활시켜 대리충족해주는 역할을 해내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유혹'이 답답한 현실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었다면 일정부분 그런 역할을 부활한 귀신들(?)이 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소희는 그런 기능이 없습니다. 의붓남매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현실의 억압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정신분열증입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그 끝없는 극적상황에 대한 강박으로 스스로 정신분열에 빠져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