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김태호 PD 하차선언 아쉽지만 이해되고 기대되는 이유사실 MBC <무한도전>처럼 한 프로그램을 10여년 넘게 계속 한다는 건 여러모로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물론 40년 가까이 하는 KBS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건 같은 포맷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니 <무한도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도전해왔고, 그 도전들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에게 영향을 줘왔던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공력이 많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김태호 PD가 하차 의사를 밝힌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서 이해되는 면이 있다. 그토록 시즌제를 외쳐왔고 휴지기와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왔지만 받아들여진 적이 별로 없었다. 물론 딱 한 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바 있고, 때때로 파업이 오히려 휴지기를 만들어주기도 했었지만 김태호 PD가 원한 건 그런 종류의 일시방편적인 해법이 아니었다. 시즌제를 통해 좀 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어 했고, 그 역시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 했다.

가끔 나눈 전화통화를 통해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을 해나가는 일이 예전보다는 쉽지 않아졌다는 걸 은연 중에 드러내곤 했다. 가장 큰 건 출연자들이 나이 들어가고 또 가정을 꾸리다보니 ‘도전’에도 나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체력이 다를 수밖에 없고, 한 집안의 가장이니 무작정 하고 싶다고 아무 도전이나 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건 자연스러운 상황이고 팬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한도전>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새로운 팬들 또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양세형과 조세호 같은 젊은 피가 간절했던 것이고, 그들의 수혈을 통해 기존 멤버들과의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려 시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건 김태호 PD가 가질 수밖에 없는 창작자로서의 답답함일 게다. 연출자들은 결국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하나를 계속 해오면서 다른 시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의 창작자가 10년 넘게 한 프로그램에 머물며 그저 매주 돌아오는 방송일에 맞춰 방송분량을 채워 넣는 작업을 한다는 건 자칫 소모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리얼리티 예능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캐릭터쇼의 시대를 구가했던 <무한도전>의 틀이 한계를 보이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리얼리티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점점 일정한 캐릭터를 갖고 상황극을 보여주는 캐릭터쇼가 식상해질 수밖에 없다. 생화를 이미 본 사람은 조화로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김태호 PD 같은 가능성이 무한한 연출자를 <무한도전>에 계속 묶어두는 일은 어쩌면 예능 전체로 보면 손실일 수 있다. <무한도전>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인물들과 작업하는 김태호 PD가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하는 모습이 더더욱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

물론 아직 모든 것이 확정된 일들은 아니지만, 김태호 PD의 <무한도전> 하차는 당장은 아쉽지만 향후에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상 <무한도전>의 제작에 있어서 김태호 PD는 전반에 걸쳐 관여하고 있지만 많은 후배 PD들이 실질적으로 연출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무한도전>은 어느 정도 협업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것.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에 드리우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만, 그럴수록 그가 원하는 더 큰 바다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여러모로 예능계 전체에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이로운 일이 될 수 있다. 그의 하차가 아쉽지만 그래도 그가 어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사진:MBC)


이영애의 ‘사임당’, 첫 방이 남긴 가능성과 문제들

SBS 새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굳이 타임슬립 설정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임당>은 그저 사극으로서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지 않고, 굳이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이영애)이 여러 사건을 통해 과거 사임당이었던 때로 돌아가는 설정을 갖고 있다. 서지윤은 펀드매니저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로서 교수임용을 간절히 바라는 워킹맘. 그녀는 교수를 시켜주겠다던 지도교수 민정학(최종환)으로부터 버려진 후 사임당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일기와 미인도를 발견하면서 점점 사임당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교통사고 후 무의식중에 사임당 시절로 돌아간 그녀는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이렇게 현재의 서지윤과 사임당이 타임슬립 설정으로 묶여지게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명백하다. 서지윤이 처한 현모양처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과거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통해 되돌아보려는 것이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우리에게 현모양처 이미지로 5만원권에 박제된 사임당을 깨워 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가이자 워킹맘으로서의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금 쓰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History’가 아닌 ‘Herstory’로. 

그러니 이렇게 굳이 타임슬립 설정을 사용한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들을 깨기 위함이다. 현모양처 사임당이 아닌 자신의 예술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당당한 예술가로서의 그녀를 재조명하겠다는 것. 또한 서지윤이 사임당 시절로 돌아가는 그 이야기는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이 스스로 현모양처이자 워킹망으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그 삶 자체를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통해 되돌아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즉 타임슬립 설정은 판타지지만 사임당이란 인물에 대한 재조명과 현재의 여성으로서의 삶 양측을 함께 들여다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의도는 의도일 뿐,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몰입할만한 스토리의 개연성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임당>이 먼저 해야 하는 건 이 갑자기 등장한 서지윤이 과거로 돌아가 사임당이 되는 타임슬립이 부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걸 밝히는 일이다. 만일 이 부분이 그럴듯하지 않으면 그 의도는 자칫 너무 자의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나아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남편 사업이 망하고 초라해져버린 집안의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로서의 삶과 또 그토록 교수가 되기를 바랐지만 이용해먹을 대로 이용해먹고 버린 지도교수로 인해 시간강사 자리조차 빼앗기게 된 워킹우먼으로서의 삶, 여기에 지도교수가 주장했던 안견의 ‘금강전도’가 진품이 아니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묵과했던 학자로서의 삶. 이런 것들이 서지윤이라는 인물의 절박함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과거 사임당 시절로 타임슬립하는 것이지만, 그 계기가 교통사고 같은 지극히 평이하고 어찌 보면 다른 타임슬립 장르에서 무수히 써온 방식을 답습한 건 조금 안이한 느낌을 준다. 이 부분이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타임슬립 설정을 설득시키는 중요한 신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좀 더 개연성에 신경 써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타임슬립이란 설정은 파격이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사임당은 특히 최근 들어 주목되는 인물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곡해되기도 쉬운 인물이다. 게다가 사임당을 연기하는 배우 이영애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굳이 현대적 인물이 사임당이 되고, 그 사임당 역할을 이영애가 연기하는 그 사실들 역시 곡해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오해들을 뛰어넘으려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지만 그러려면 타임슬립 같은 파격적인 설정보다는 그저 그 인물을 정면으로 재조명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이제 겨우 2회가 끝났을 뿐이다. 그러니 향후 현재의 인물인 서지윤의 삶과 사임당의 우리가 몰랐던 삶이 겹쳐지면서 만들어낼 이중적 효과, 즉 과거 사임당에 대한 재조명과 현재의 여성 서지윤의 각성이 어쩌면 의외의 몰입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시금 이 타임슬립 설정이 왜 필요했는가를 인물의 심리적 개연성을 통해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운빨로맨스>, 이미지 반복한 황정음과 새 이미지 만든 류준열

 

MBC <운빨로맨스>가 종영했다. 성적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첫 회 10.3%(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마지막회에는 6.4%까지 떨어졌으니. 이렇게 된 건 운에 기대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던 것과, 이야기 전개 상 밀고 당기는 멜로는 많았지만 신선하다고 여겨질만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빨로맨스(사진출처:MBC)'

웹툰 원작이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드라마 리메이크에도 큰 기대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역시 웹툰 리메이크는 좀 더 드라마적인 현실성을 바탕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생각보다 난관에 부딪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빨로맨스>의 힘이 그나마 끝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황정음과 류준열이라는 연기자들 덕분이다. 특히 류준열의 경우, 이번 작품을 통해 확실히 매력적인 연기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응답하라1988>에서 류준열이 연기한 정환 역할은 끝까지 자제하는 캐릭터였다.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지만 그 속내를 좀체 표현하지 않는 인물. 이것이 팬들에게는 오히려 강력한 츤데레매력으로 어필되기도 했다.

 

<운빨로맨스>의 제수호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응답하라1988>에서 꼭꼭 숨기고 있던 류준열의 다양한 얼굴들을 끄집어내준 인물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모태 솔로에 극도의 이성으로 자기보호를 위해 오히려 까칠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지만(이 모습은 어딘지 <응답하라1988>의 정환을 닮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차츰 심보늬(황정음)를 통해 각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속내를 숨기지 않고 때론 화를 내고 때론 고백을 하는 캐릭터로 변화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류준열이 제수호 캐릭터를 확실히 잘 소화해냈다고 여겨지는 건 이런 변화를 잘 계획해 그려냈다는 점이다. 초반의 제수호의 모습과 마지막에 이르러 보여주는 제수호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변화는 다름 아닌 시청자들이 이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류준열이 꽤 괜찮은 준비된 배우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기존 작품의 이미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 류준열과 달리, 아쉽게도 황정음은 이번 작품이 그다지 그녀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연기한 심보늬라는 캐릭터가 기존 작품들의 캐릭터와 그리 다른 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운에 지나치게 기대는 모습은 처음에는 코믹하게 다가왔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는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가 되었다.

 

결국 이번 작품에서 황정음의 공적이라면 아쉽게도 류준열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끄집어내준 점 정도에 머물렀다. 물론 그것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연기를 위해 이 작품에서 보여준 열성에 비하면 캐릭터가 그것을 너무 받쳐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래도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확실히 빛났다는 건 이 작품이 남긴 작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무도>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런닝맨> 좀비특집

 

SBS <런닝맨>좀비특집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무한도전>의 레전드로 남은 망작 좀비특집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런닝맨> 측은 아예 이 <무한도전>이 실패했던 좀비특집<런닝맨>이 다시 한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비교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런닝맨> 좀비특집은 <무한도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이 좀비특집을 했던 시기와 지금은 그 예능의 환경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고, <런닝맨><런닝맨> 나름의 특성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좀비특집을 했던 당시만 해도 그것이 리얼이냐 아니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좀비가 출몰한다는 그 자체는 상황극일 수 있지만 그 안에 투입된 출연자들의 행동은 전혀 사전에 준비된 게 아니라 리얼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예능이 지켜야할 룰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참을 달려와 이제 한편에서는 리얼리티쇼가 등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콩트적인 상황극이 재미로 만들어지는 지금, 이런 리얼과 가상의 경계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졌다. 그것이 상황극이든 아니면 리얼 그 자체이든 목표만 분명하면 된다. 즉 웃음이든 긴박감이든 어떤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100% 리얼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런닝맨> 좀비특집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바로 이 상황극과 리얼 사이에서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끌어안을 수 있는 그 여유였다. 건물 안에 감염된 좀비들과 그들 속에 숨어있는 시민들을 구출하는 런닝맨들의 활약은 마치 하나의 게임처럼 그려진다. 게임은 가상이지만 그 게임을 하는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의해 결론이 달라지는 건 리얼이다.

 

처음에는 좀비들이 득시글대는 그 곳이 마치 귀신의 집체험을 하듯 그 무시무시함과 그로인해 벌어지는 호들갑으로 웃음을 주지만, 차츰 좀비들과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긴박감이 생겨난다. 그러다 역시 게임스타터인 지석진이 좀비가 되면서 좀비들 사이에 왕코를 연호하게 만드는 장면이나 그 지석진의 좀비 분장과 연기를 웃으며 스마트폰에 담는 광수의 모습은 하나의 상황극 코미디에 가깝다.

 

즉 적당한 선에서 <런닝맨>은 상황극의 가상으로 빠져나와 웃음을 주다가, 또 게임에 집중하면서 리얼한 리액션의 재미를 선사한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 방식은 쉬워보여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즉 상황극을 하려고 했는데 리얼 반응을 하게 되면 웃음은 사라지게 된다. 과거 <무한도전> 좀비특집이 그 거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단 몇 분만에 망하게 된 까닭은 박명수가 어떤 상황극이 아니라 극도로 리얼한 반응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런닝맨>이나 <무한도전>처럼 꽤 오래도록 서로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좀비특집같은 상황극과 리얼을 넘나드는 형식은 소화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쉬지 않고 5년 넘게 달려오면서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가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리얼한 출연자들의 리액션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좀비특집 같은 특유한 게임이 가능해진다. 그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광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좀비가 되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능력자 김종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비들조차 그를 피하려 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만들어진다.

 

물론 <런닝맨> 좀비특집은 거창한 시작에 비해 조금은 평이한 결말로 감으로써 아쉬움을 남겼지만 또한 그 시도가 어떤 가능성을 찾아낸 것만은 분명하다. 즉 그간 게스트를 초대해 비슷비슷한 게임만 반복하는 방식은 <런닝맨>이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좀비특집처럼 가상과 리얼을 넘나드는 게임은 <런닝맨>이 아니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런닝맨>이 어떤 정체된 모습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유의 독자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런닝맨> 좀비특집은 따라서 더 정교해져야 하는 숙제를 남겼지만 그래도 이 프로그램만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잉여들><능력자들>, 소재가 아까운 청춘 예능

 

잉여 혹은 덕후. 우리네 청춘들에게 익숙한 두 단어는 어떻게 MBC의 파일럿 예능의 키워드가 되었을까.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잉여라 비하되기도 하는 청춘들의 무일푼 유럽 여행기를 다루는 것이었고, <능력자들>은 이른바 덕후라고 불리는 마니아들을 스튜디오로 소환해 그들의 덕질이 의외로 놀라운 전문가적 식견과 결과들을 만들어낸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이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사진출처:MBC)'

물론 이 두 파일럿 프로그램은 안타깝게도 괜찮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결과를 보여줬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콘셉트와 맞지 않는 출연자들이 나와 그 진정성이 애매해졌고, 무엇보다 노홍철의 복귀작이라는 점이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다. <능력자들>은 오드리 햅번 마니아, 치킨 마니아 그리고 사극 마니아 같은 흥미로운 일반인 출연자들을 등장시키고도 예능적인 재미를 뽑아내지 못했다. 물론 파일럿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하나의 결과를 향한 과정일 수 있다.

 

어찌 보면 정규화되기 힘든 파일럿 프로그램의 결과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그 소재가 지금껏 지상파 예능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청춘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잉여와 덕후. 사실 약간의 비하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그것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청춘의 긍정으로 그려질 수도 있는 소재였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좀 더 깊게 이 단어들이 가진 의미를 되새겼다면 프로그램의 공감대는 커졌을 수 있다.

 

잉여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느껴지지만 사실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긍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즉 잉여는 어떤 기준점이나 중심점을 세워뒀을 때 그 자투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중심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다. 하지만 애초에 기준과 중심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가하는 의구심을 갖는다면 잉여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뀔 수 있다. 기성사회가 세워놓은 성공의 시스템과 기준점들이 있기 때문에 잉여라 치부되는 것이다. 그것 자체를 무시하거나 무너뜨리면 잉여란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단어가 된다.

 

이것은 덕후도 마찬가지다. 물론 <능력자들>은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이 덕후들을 전문가 못지않은 능력자로 담아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무언가 현실과 유리된 채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게 덕후라는 단어라면, 이제 그것은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것처럼 청춘들의 삶의 열정이 되어주고 심지어는 삶 자체를 바꿔놓기도 하는 힘이 된다.

 

만일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보다 진정성을 살려 진짜 잉여로 내몰린 청춘들의 긍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능력자들>이 그 좋은 기획의도를 잘 살려내 청춘들을 긍정하면서도 그저 이런 인물들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예능적인 포인트들을 잘 살려냈다면? 아마도 이 두 프로그램의 성취는 다른 평가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능력자들>은 실로 소재가 아까운 파일럿 예능이다. 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은 소재만으로 프로그램이 세워질 수는 없다는 걸 잘 보여주었다. 잉여의 긍정성을 담으려던 의도도 그 진정성을 담지 못하니 프로그램의 잉여가 되어버리고, 덕후들을 능력자로 담아내려는 의도도 그 보편적인 재미를 담보하지 못하니 마니아 프로그램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 프로그램들이 정규화 된다면 청춘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이 좋은 소재와 기획의도가 갖고 있는 의미들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세세한 노력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나영석 PD가 밝힌 기획의 원칙, ‘뚝심

 

나영석 PD에게 물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그게 뭐냐고. 그랬더니 대뜸 돌아온 답변은 뚝심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나영석 PD(사진출처:tvN)'

처음 기획을 할 때는 모든 게 각이 서 있기 마련이잖아요. 흔히 말하듯 엣지가 세워져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 얘기 듣고 또 저 사람 얘기 듣고 이건 된다 이건 안된다 하다보면 그 각이 닳아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주 둥글둥글해서 밋밋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죠. 그러니 조언을 듣더라도 본래 기획에서 갖고 있던 그 세워진 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실제로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뚝심의 소산이 아닌가 싶었다. 스스로도 밝혔고, 이 프로그램의 주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서진도 첫 회에 이 프로그램 망했어!”라고 얘기했으며, 게스트로 찾아온 윤여정씨도 망한 프로그램이라고 얘기했던 게 바로 <삼시세끼> 아닌가. 프로그램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필자에게도 나영석 PD<삼시세끼>를 처음 찍고 와서 이번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반신반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애초에 가졌던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하루 정도 도시를 떠나 어딘가 콕 박혀 아무 것도 안하고 밥이나 챙겨먹으며 유유자적하고 싶다, 그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지금의 <삼시세끼>가 가능해졌다. 애초에 망할 거라던 프로그램은 대박을 쳤고, 의외의 그 유유자적하는 어른들의 소꿉놀이는 갈수록 흥미진진해졌다.

 

사실 <삼시세끼>는 기존의 예능에서 흔히 말하는 되는 조건들에서 한참 벗어난 프로그램이다. 적당히 출연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곤혹스런 게임을 하게 하며, 때로는 굶기기도 하고 때로는 굴욕을 감수하게도 하는 식의 이른바 예능의 법칙들은 예능 PD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들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게 거의 없었다. 시커먼 남자 둘이 산골에 콕 박혀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안하는 걸 보여주는 예능이라니! 그러니 얼마나 뚝심을 건드리는 걱정어린 목소리들이 많았을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되는 조건들의 틀을 빠져나오자 <삼시세끼>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별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지만, <삼시세끼>의 집과 그 주변에 자라는 작물들 또 동물들, 하다못해 갑자기 내리는 비나 불어 닥치는 바람까지도 하나하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나영석 PD<삼시세끼>의 출연자는 이서진과 옥택연, 김광규와 게스트들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집과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출연자들이죠.”

 

실로 망할 권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다. 사실 누가 망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저 모든 사람들이 이토록 성공만을 외치다보니 안전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초에 그토록 창대했던 기획이 차츰 둥글둥글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망할 조짐이 아닐까. 나영석 PD의 뚝심이 만들어낸 <삼시세끼>라는 외계 예능의 성공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무도>, 예능 위의 예능임을 또다시 입증하다

 

이들이 이토록 재미있는 친구들이었던가. <무한도전> ‘식스맨은 물론 다섯 명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이 프로그램이 여섯 번째 멤버를 찾기 위한 자구책으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식스맨에 대한 검증과정이 진행되면서 이제 누가 최종 멤버가 될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미 다섯 명으로 압축된 광희, 홍진경, 강균성, 장동민, 최시원이 누가 돼도 괜찮을 법한 저마다의 캐릭터를 확고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욕망의 폭주기관차광희는 아이돌에 걸맞지 않는 솔직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다시금 주목되었고, ‘장동민은 역시 박명수와는 다른 거친 매력(?)을 선보였으며, ‘변신의 여왕홍진경은 갖가지 민속춤을 개인기로 장착해 스스로 표현하듯 자웅동체(?)’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신 돌+I’ 강균성은 특유의 모창 개인기를 바탕으로 다중인격 캐릭터의 진수를 보여주었고, ‘미국 리액션최시원은 동작과 표정 하나만으로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이들 다섯 명 이외에도 8인의 후보에 올랐던 유병재, 서장훈, 전현무 역시 확고한 자신들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검증 과정을 통해 드러내주었다. 어딘지 어눌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유병재는 즉석 상황극에 능한 모습이었고, 서장훈은 일단 그 큰 키가 예능에 적합한 그림을 만들어주었다. 전현무는 역시 발군의 혀를 가진 MC능력자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2차 검증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이미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만든 것만은 사실이다.

 

<무한도전>식스맨을 뽑는 미션과정을 통해 사실상 국내 예능계의 기대주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무한도전> 특유의 캐릭터화 능력이 덧붙여지니 금상첨화였다. 단 몇 회 출연한 것만으로도 식스맨 후보로 오른 인물들은 저마다의 캐릭터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실 유병재가 <SNL>을 통해 조금 웃긴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어눌한 듯 하면서도 때로는 상대방을 공격함으로써 억눌린 서민 정서를 대변하는 캐릭터라는 것은 <무한도전>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된 느낌이다. 강균성이 대세인 건 알았지만 그 신 돌+I적인 다중인격 캐릭터가 확고해진 것도 <무한도전> 덕분이다. 의외의 병맛 웃음을 계속 만들어낸 홍일점 홍진경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는 식스맨의 성과다.

 

결국 식스맨을 통해 <무한도전>이 꺼내 놓은 건 우리 예능의 다양한 가능성들이다. 최시원을 덧붙이니 갑자기 우리 예능이 글로벌해지고, 강균성이나 유병재 같은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니 우리 예능은 새로운 활력이 생겨난다. 발군의 진행능력에 독특한 자신만의 개인기 영역을 가진 전현무나, 거친 욕을 해도 매력이 생기는 장동민 같은 인물에 대한 조명은 이들이 왜 지금 현재 우리 예능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무한도전> ‘식스맨<무한도전>만의 식스맨을 뽑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예능의 새얼굴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코트 바깥에서 식스맨으로 벤치를 지키고 있던 그들을 코트 안으로 끌어들여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게 한 것. 이를 통해 우리 예능의 숨은 잠재력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식스맨특집은 실로 <무한도전>이 왜 예능 위의 예능인가를 증명해준 시간이 되었다.

 

설 연휴 파일럿, 어떤 프로그램이 가능성이 있을까

 

설 연휴는 끝났지만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남았다? 방송사들은 이제 설 연휴 기간 동안 방영되었던 파일럿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어떤 것들이 정규 가능성이 있는가를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되는 시간을 맞았다. 이제 명절 연휴는 파일럿 프로그램들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 올 설 연휴에는 특히 가능성 있는 몇몇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SBS<아빠를 부탁해>, <썸남썸녀>, MBC<복면가왕>, <마이 리틀 텔레비전>, KBS<왕좌의 게임>, <스타는 투잡중>이 그것이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먼저 이 중 가장 두드러진 프로그램은 단연 <아빠를 부탁해><복면가왕>이다. 명절이라는 특수한 시간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수 있지만 이 두 프로그램은 첫 방송에도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특히 <아빠를 부탁해>는 첫 방송에 무려 13.5%의 시청률을 기록해 정규가능성을 거의 확정하고 다만 편성의 문제만을 남긴 프로그램이 되었다.

 

<아빠를 부탁해>50대 아빠들의 일상과 가족 간의 관계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기존 관찰 예능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신선함을 보였다. 육아예능이 봇물을 이룬 현재 어른 예능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지금껏 주목하지 않았던 50대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공감대가 프로그램의 가장 큰 파괴력으로 작용했다.

 

<복면가왕>은 마치 영화 <복면달호>를 예능화한 것 같은 독특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 장을 열었다는 호평을 얻어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만들어내는 선입견을 지워버리고 대신 노래의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다가간 이유다. 다만 명절 특집 프로그램에 좀 더 어울리는 포맷이라는 점이다. 정규화를 위해서는 좀 더 레귤러한 포맷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썸남썸녀>40대를 전후해 결혼 적령기에 도달한 남녀 연예인들의 연애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관찰카메라 형식의 이 프로그램은 마치 <>의 연예인 버전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연예인들이 주는 판타지와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정규 가능성을 높였다. 다만 시청률이 조금 낮게 나왔다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일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짝짓기 프로그램이라는 전통적인 소재가 부여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묘안이 있다면 충분히 정규화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참신한 시도다. 인터넷 개인 방송과 지상파의 연결은 그 자체만으로 요즘 같은 SNS 시대에 앞서가는 느낌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인터넷 개인 방송이 갖는 묘미를 살려내면서도 이것을 지상파에 걸맞는 형식으로 끌어안았다는 점이다. 개인방송들 간의 시청률 대결은 향후에는 어쩌면 시청자들의 직접적인 참여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확장 가능성을 엿보게 만든다. 심야시간에도 6%의 시청률을 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반면 KBS의 파일럿 프로그램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았다. <왕좌의 게임>은 애초 <슈퍼맨이 돌아왔다>팀과 <12>팀의 대결이라는 형식에 관심을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주요 출연자들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 만들어진 특유의 명절 스튜디오 게임 프로그램에 머물렀다. <스타는 투잡중>은 스타가 자신의 남다른 재능을 타인들과 나눈다는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만듦새에 있어서 너무 구태의연한 느낌을 주었다. 만일 스튜디오물이 아니라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프로그램이다.

 

그나마 이번 명절에는 가능성이 있는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꽤 나온 편이다. 하지만 명절에 호평을 받았다고 정규 프로그램으로 들어와서도 반드시 성공할 수는 없다. 만일 명절에 가능성을 보여 정규 프로그램화 된다면 거기에 걸 맞는 구성에 대한 고민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호동보다 최대리, <투명인간>의 가능성

 

대중들은 특히 강호동에게 인색하다. 한 때 국민 예능이라고도 불렸던 <12>로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그 기억이 여전히 그에게는 꼬리표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첫 회 4%를 기록한 강호동의 <투명인간>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급한 이들은 강호동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을 그대로 실패로 단정하곤 한다.

 

'투명인간(사진출처:KBS)'

이것이 강호동의 딜레마다. 다른 출연자가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첫 회에 4%를 기록하면 요즘 같은 지상파 상황에서는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강호동은 다르다. 이것은 그와 쌍두마차를 이뤄 한 시대를 구가해온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한때 최고의 시청률로 기억되던 그들을 시청자들은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 이들을 섭외하려고 줄을 섰던 방송가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이들에 대한 매력은 분명하지만 또한 부담감도 그만큼 크다는 걸 일선의 제작진들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은 올해 강호동이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으로서 주목됐다. 하지만 첫 회에 4%, 2회에 3.5%(닐슨 코리아)로 떨어지면서 벌써부터 실패를 단정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 회와는 조금 달라진 2회의 변화를 통해서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첫 회가 문제가 됐던 것은 웃음과 재미의 포인트가 약했다는 점이다. 웃음을 잃은 직장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준다는 그 취지와 의도는 대중들이 공감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회사에서 억지로 웃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진짜 웃음의 포인트들이 별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문제로 지목되었다. 웃음은 상당부분 리액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웃지 않으려 작정한 직장인들을 웃긴다는 건 전문 예능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2회는 첫 회와 달리 그냥 무작정 웃기는 게 아니라 어떤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약간의 준비를 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호동에게 김우빈의 극중 대사를 하게 하고, 강남에게 노래를 통해 반응을 이끌어내게 하며 또 게스트로 출연한 이유리에게 국민 악역 연민정의 연기를 하게 하는 설정은 확실히 준비 없이 웃기는 맨땅의 헤딩식의 첫 회보다는 더 많은 웃음의 포인트를 찾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를 떠나서 그 과정 자체가 훨씬 나아졌다는 점이다. 웃기려는 투명인간과 웃음을 참으려는 직장인의 대결 그 자체를 통해 보는 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성패는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빛난 건 로션 최승진 대리가 하하와 정태호의 로션 공격을 막아내면서 준 큰 웃음이다.

 

소개에서부터 학창시절 부처라 불렸다는 최승진 대리는 삼둥이를 닮은 외모에 어딘지 초탈한 듯한 평정심을 보이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최대리의 얼굴부터 머리까지 로션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하하와 정태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콩트 코미디를 구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웃음은 하하나 정태호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래 그 와중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최대리에게서 나온다.

 

이것이 <투명인간>이 발견해낸 새로운 웃음의 포인트다. ‘부처 핸섬이 된 최대리의 모습은 <투명인간>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만들어낸다. 우스운 상황에서 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웃긴 일인가. 그 사실을 묵묵히 버텨내는 직장인들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도 재미도 거기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4%에서 3.5%로 떨어진 시청률의 수치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또 지나친 강호동에 대한 의지는 강호동 본인에게도 또 프로그램에도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연예인과 직장인이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 대결과정 속에서도 하나의 팀이 되어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호동보다 더 최대리가 <투명인간>의 가능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런닝맨>, 딱지왕으로 새로운 전기 마련하나

 

SBS 주말 예능 <런닝맨>이 마련한 전국 딱지 대회는 사실 꽤 오래 전부터 기획된 아이템이다. <런닝맨> 제작진은 일반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작년부터 고민해 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전국 딱지 대회다. 오랜 고민의 결실인 듯 <런닝맨>의 전국 딱지 대회는 딱지 하나로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가 이 게임 버라이어티의 새로운 전기이자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이 재밌는 게임을 하는 당사자가 연예인들에 국한되고 있다는 것이었을 게다. 이것은 게임이 제아무리 기상천외하고 재밌다고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느낌보다는 저들끼리 웃고 즐기는 느낌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런닝맨>이라는 게임 버라이어티가 가진 특성도 한 몫을 차지했다. 일반인과 함께 뛴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그렇게 참여를 시킨다고 해도 누구와 함께 어떤 공간에서 할 것인가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런닝맨> 전국 딱지 대회는 이런 고민에 대한 괜찮은 해답을 보여주었다. 무작위로 뽑은 전국의 일반인들이 아니라 그 대상을 대학과 대학생으로 좁힌 것은 프로그램의 집중도를 높여주었다. 이미 <캠퍼스 영상가요>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 가능성이 입증된 공간이 대학이다. 대학생들의 리액션과 끼, 에너지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온다. 딱지를 치고는 넘어가지 않자, “시간을 거스르는 자!”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계속 딱지를 쳐 하하를 포복절도하게 만든 대학생도 있었고, 마침 학원이 휴강이라 달려왔다는 유재석을 닮은(?) 입담 좋은 여학생도 있었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프로그램에 담아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 게다가 우승자에게 장학금을 상금으로 줄 수 있다는 것도 프로그램의 취지를 살려주기에 충분했다. 취업 전쟁으로 지쳐 있는 그들에게 잠시 간의 숨 쉴 틈으로서의 놀이의 장을 마련해 준다는 것. 요즘처럼 경쟁에 내몰려 놀이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에게는 이 <런닝맨>이 마련한 전국 딱지 대회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갔을 것이다.

 

이렇게 전국 대학에서 대표로 뽑힌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마치 이종격투기 경기를 벌이듯 딱지 대회를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다. 초대가수로 에이핑크가 나와 학생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자 유재석이 딱지치기가 이렇게 큰 규모로 진행될 줄 몰랐다고 한 말은 이 아이템이 가진 웃음의 가능성과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종격투기만큼 흥미진진하고 그 어떤 예능보다 큰 웃음을 준 딱지치기라는 단순한 놀이 하나가 가진 힘을 말해주는 것이다.

 

끝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딱지치기 대회의 우승은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지석진 팀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 딱지치기 대회라는 아이템은 부지불식간에 <런닝맨>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저들끼리 노는 것보다 함께 놀 때 더 재미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우습게 봤던 딱지치기 같은 놀이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토록 재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쟁사회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놀이문화를 그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아이템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미 수년 간 달려온 길을 통해 <런닝맨>과 출연자들은 놀이의 고수들이 되었다. 이제는 그 노하우를 일반 대중들에게 나누어주고 함께 노는 방법을 알려 줘야할 때다. 우리 사회에 놀이가 필요한 곳은 대학 이외에도 끝없이 많을 것이다. 생업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허리 펴고 놀까 말까한 농어촌의 어르신들도 좋고, 매주 월요일마다 월요병을 토로하는 직장인들도 좋으며, 아이들 가르치느라 본인은 놀 겨를이 없는 선생님이나, 군 복무에 여념이 없는 군인들도 좋을 것이다. 그 어디든 놀이가 필요한 곳이면 나타나 그들과 함께 즐거움의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슈퍼히어로, 놀이의 고수 <런닝맨>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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