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배종옥의 한숨에 깊이 공감하는 까닭

술만 마시면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하지만 정작 그의 아내는 남편의 폭력을 부인한다. 당장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폭력 때문에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집은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다. 도망치고픈 지옥일 뿐이다. 이제 신입경찰 한정오(정유미)는 어떻게든 설득해 그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이라도 지켜주고 싶지만,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부인하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가 최근 보여주는 사건들은 사실 너무 끔찍해 계속 들여다보기가 힘들 정도다. 피해자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은 피해사실을 숨긴다. 피해사실을 꺼내놓아도 당장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그 집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이 아이들은 산에 갔다가 연쇄 강간범에게 강간까지 당한다. 언니는 돌에 맞아 쓰러지고 동생은 묶인 채 성폭행을 당한 것.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도 피해사실을 부인한다. 집에서도 그러했듯이 피해사실을 말하고 신고해도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걸 연거푸 경험하고는 이내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이다. 

한정오는 그 강간사건이 남 일이 아니다. 자신도 과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한들에게 성 폭행을 당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피해사실을 숨겼다. 그저 기억을 지워내려 몸을 씻고 또 씻었을 뿐이다. 강간사건을 겪은 자매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동생의 몸을 씻어주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피해사실이 사라지거나, 기억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한참 세월이 지났어도 한정오는 여전히 그 날의 그 기억을 하나도 지워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실종된 줄 알았던 아이는 친구 집에 숨어 있었다. 알고 보니 양아버지가 아이의 몸을 만졌다는 것. 그게 싫었던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아이의 친구는 자기 집에 그를 숨겨주었다. 결국 양아버지는 붙잡혀 수사를 받게 됐지만 그는 과거에도 성추행 사건에 연루가 되었지만 폭행 흔적이 없다며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다. 강남일(이시언)의 말대로 “만진 것 자체가 폭행”이지만 처벌은 받지 않게 되었던 것.

가해자는 버젓이 살아가고 피해자는 힘겨워하는 현실은 경찰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정년퇴직을 한 달여 남긴 이삼보(이얼)는 지역 유지의 아들이 촉법소년들을 사주해 벌인 폭력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그건 몸에 난 상처보다 경찰 말년에 갖게 된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결국 지구대가 전부 나서서 폭력을 저지른 촉법소년들과 유지의 아들까지 잡았지만, 그 아버지는 자신이 누군지 아냐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다. 

어린 아이들이니 선처해달라는 가해자 쪽의 변호사의 회유에 이삼보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은 끝까지 간다는 것. 그래서 가해자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할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지역 유지는 자신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맞섰다. 그런데 이삼보는 오히려 그 유지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아이가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경찰인 자신들도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그러니 세상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것에 아이가 분노했을 거라고. 적어도 아버지만큼은 아들의 그 손을 잡아주라는 것이었다.

이삼보는 그렇게 그 아이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그러면서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사적인 감정 때문에, 복수심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진짜 따뜻한 이삼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사건의 끝은 어떻게 될까. 가해자는 처벌을 받게 될까. 피해자의 상처는 제대로 아물 수 있을까. 어찌 된 일인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어버린 분통터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단지 이건 감정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도대체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또 다시 생겨날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숨기게 되자, 오히려 강간범에 의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안장미(배종옥)의 한숨이 더 깊은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사진:tvN)

‘마더’ 가정폭력이 만든 비극, 그 비극을 넘어서는 법

tvN 수목드라마 <마더>는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똑같이 끔찍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는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진(이보영)은 엄마가 되는 선택을 했고, 설악(손석구)은 괴물이 되는 선택을 했다. 그 대물림은 어째서 이렇게 다른 선택으로 이 두 인물을 이끌었던 걸까.

그 다른 선택은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이 그 후에 누군가에 의해 사랑으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았는가 아닌가에 따라 나뉘어졌다. 수진은 영신(이혜영)을 만나 그로부터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수진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완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세상이 그렇게 모질지만은 않다는 걸 영신을 통해 느꼈을 게다. 

하지만 설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자살해버린 엄마가 남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처를 그에게 납치된 어린 윤복(허율)은 단숨에 들여다봤다. “삼촌 그 때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 엄마 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죠?” 윤복이 설악의 상처를 들여다 본 건 자신 또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설악의 그 깊은 상처와 자책감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자책감은 그가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동기로 작용했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용서하지 못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그 아이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엄마들에게서 자신의 엄마를 보는 것이다. 물론 그의 범행들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악독한 짓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괴물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마더>가 촘촘하게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바로 이 수진과 설악의 대결구도에서 나타난다. 애초에 작가는 이런 두 인물의 대결구도를 통해 가정폭력의 문제, 진정한 부모의 자격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상처를 겪었음에도 누군가는 엄마가 되고 누군가는 괴물이 된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그래도 남은 희망은 무엇인가를 드러내려 했다는 것이다. 

수진은 어느새 윤복의 엄마가 되어있고, 윤복의 친모가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수진에게 돈을 요구한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부모 자식으로 이어지는 혈연보다, 피는 달라도 진정한 사랑으로 엮어진 관계가 더 진정한 부모 자식의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윤복에게 읽어줬던 동화책의 내용처럼 수진은 끝까지 어디든 아이를 찾아가 꼭 안아주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를 거둬 사랑으로 키워준 영신을 통해 알게 된 부모의 사랑법일 게다.

그리고 윤복의 구원은 또한 수진 자신의 구원이 되기도 한다. 이미 친모로부터 버림받은 윤복의 상처를 수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그 아픔을 영신이 그래준 것처럼 보듬어 치유해주는 건 수진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신이라는 인물에게서 전해진 사랑은 그렇게 수진을 통해 윤복에게 대물림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사람이지만 이들은 그래서 그 어떤 부모 자식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된다. 

설악의 과거사까지 밝혀지면서 <마더>가 담으려는 이야기의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그것은 가정폭력이 만들어내는 비극이 어떤 결과로 대물림되는가 하는 것이고 그 비극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수진은 설악으로부터 윤복을 구해내고 이 비극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아이를 유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수진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게다.(사진:tvN)

<세결여>의 선택, 공감 받지 못하는 이유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이하 세결여)>에서 왜 태원(송창의)은 모든 짐을 지고 가게 되었을까. 자신의 딸에게 폭력까지 휘두른 계모 채린(손여은)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던 태원이 갑자기 돌변한 것은 엄청난 반전이었다. 채린이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연민을 느낀 태원이 마음을 바꾸게 되는 것.

 

'세 번 결혼하는 여자(사진출처:SBS)'

태원이 채린에게 이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부친의 폭력으로부터도 지켜주겠다고 하자 채린은 아이처럼 태원에게 안겨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개과천선한 채린은 슬기(김지영)와도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태원네 가족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순식간에 풀어버렸다. 또한 태원은 전처인 은수(이지아)를 만나 자신이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내겠다는 이야기로 둘 사이를 마무리 지었다.

 

태원의 용서라는 선택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김수현 작가가 생각하는 결혼관을 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남과 남으로 만나 한 가족을 꾸려나가는 결혼이라는 일에서 누군가의 희생과 용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일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 고치기 위해 파국으로 상황을 몰고 가기보다는 한 때의 잘못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주는 자세가 보다 성숙한 선택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청자들은 이 태원의 용서라는 선택에 쉽게 공감하지 못할까. 그것은 이 선택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지 않게 그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딘지 우유부단하고 미성숙하게 보였던 태원이 드라마 막바지에 이르러 거의 성인같은 선택을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결국 채린이라는 막장 계모라는 카드와 성인으로 돌변한 태원의 선택은 이 드라마가 가진 완성도의 흠결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드라마 중반에 채린을 다루던 이 드라마의 방식을 떠올려 보라. 거의 미저리에 가까운 막장 캐릭터로 채린은 일방적으로 몰아세워졌다. 친엄마의 육성동화를 듣는다고 녹음기를 발로 밟아 부숴버리는 장면이나 심지어 아이를 때리고도 그깟 한 대 때린 걸 갖고...” 운운하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극성을 한껏 높여놓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채린이란 캐릭터가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에 대한 이유나 근거는 애초에는 보여주지 않았다. ? 그것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작 2회 분량을 통해 갑자기 채린의 부친이 저질러온 상습적인 폭행이야기가 등장하고 그 때문에 태원이 마음을 바꿔먹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로써 채린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뀐다. 그리고 태원은 갑자기 피해자에서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 또한 가해자였음을 깨닫는다. 물론 손보살(강부자)의 말처럼 부처님 말씀 같은 결론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갑자기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하다가 성인군자의 말씀처럼 끝을 맺는 건 너무 허무한 느낌마저 준다.

 

태원은 이로써 모든 걸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희생하는 인물이 된다. 물론 인물의 성장은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인물의 변신은 그 선택의 이유를 의심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모든 갈등과 대립이 태원의 희생 하나로 급히 봉합되는 결말은 그래서 그 선택의 의미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공감 받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다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 걸까. 의도는 이해되지만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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