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에 이은 도리스 레싱, ‘이번 생은’이 품은 문학들

드라마에 문학이 더해지자 그 울림이 커진다. tvN 월화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인용해 남세희(이민기)와 윤지호(정소민)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시구가 어쩌다 계약 결혼을 하고 한 집에서 살게 된 두 사람의 우연적 만남이 사실은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는 걸 암시해줬던 것. 

그리고 이번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가 드라마에 울림을 더했다. 윤지호가 20대에 읽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소설 속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결국 모텔을 찾게 된 주인공이 그게 들키자 바람을 피웠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처음부터 현실적인 문제로 내세웠던 집, 즉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생각을 이만큼 환기시켜주는 작품도 없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당신의 방은 처음이라’라는 부제를 갖고 저마다 가진 19호실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남세희와 윤지호는 같은 집에 살지만 서로의 19호실을 지켜주며 살아간다. 그것은 계약결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함께 지내는 것과 혼자 사는 것 사이에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양가적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남세희와 윤지호는 처음으로 같은 방에서 함께 잠을 청하고 그것이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또한 자신만의 19호실을 버릴 수가 없다. 

마침 윤지호에게 드라마 작업을 같이 하자는 제작사의 제안이 오자 그는 더 이상은 글을 쓰지 않는다며 그 이유로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윤지호는 이내 느끼게 된다. 그렇게 결혼 핑계를 대는 것이 자신 안에 있는 19호실을 부인하고 안주하려는 것이라는 걸. 남세희는 결혼이 윤지호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결혼을 했지만 그의 19호실을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걸크러시의 면면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듯 보였던 우수지(이솜) 역시 자신만의 19호실을 갖고 있다. 그것은 불편한 몸으로 억척스레 일을 해 자식을 잘 키워낸 엄마라는 존재다. 그가 결혼을 부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몸이 불편한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그는 바로 이 사적 비밀을 담은 자신만의 19호실에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의 19호실을 보게 된 남자친구 마상구(박병은)는 그 방으로 들어와 그의 엄마와 인사를 한다. 우수지는 숨기고픈 사적 비밀을 들킨 일로 화를 내지만 마상구는 그를 위로해주며 오히려 그 현실을 피해 19호실을 숨기려 하지 말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라고 해준다. 자신이 항상 옆에 있어주겠다며. 

오랫동안 함께 같은 집에서 살아온 양호랑(김가은)과 심원석(김민석)은 이별을 준비한다. 결혼을 요구하는 양호랑과 그래서 노력을 해봤지만 서로의 불행만을 확인하게 된 심원석은 어찌 보면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19호실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심원석의 이야기에서 남세희가 항상 주어가 자신이라는 걸 알려주자, 심원석은 비로소 깨닫는다. 양호랑의 19호실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헤어져야 한다는 걸. 

결혼이라는 것은 결국 그 19호실을 여는 것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19호실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남세희의 19호실은 과거 첫 사랑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그는 그 곳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중이지만 우연히 윤지호의 제작사 대표가 된 그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남세희의 19호실에는 이제 첫 사랑도 있지만 윤지호도 새로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그 시작을 집을 가졌지만 하우스푸어인 남자와 홈리스인 여자가 동거하게 되는 이야기로 열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담아낸 블랙코미디에 멜로드라마가 섞인 형태였던 것.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느새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깊은 의미를 말하기 시작했다. 공간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깊어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 드라마가 인용하고 있는 문학적 감성들이 더해져서가 아닐까. 삶에 대한 통찰까지 엿보이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는 정말 최근 들어 처음이다.

‘어서와’, 어째서 ‘1박2일’에서는 못 보던 걸 볼 수 있을까

정말 우리는 많은 것들의 소중함이나 가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불쑥불쑥 들며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외국인 친구들의 시선으로 보는 모든 신기한 것들을 사실 우리가 정말 대수롭지 않게 대해왔다는 사실이 주는 부끄러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사진출처:MBC에브리원)'

독일청년 다니엘이 한국을 찾은 친구들을 데리고 경주로 간 까닭은 “서울이 아닌 한국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사실 우리에게 경주에 대한 기억은 부박하기 그지없다. 기껏해야 수학여행 때 단체로 가서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같은 유적들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이 그 대부분의 기억일 테니. 

물론 이런 편견을 깨고 경주가 가진 놀라운 아름다움을 보여줬던 tvN <알쓸신잡> 경주편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인문학적 접근이 주는 ‘생각할 거리 많은’ 경주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일상적 풍경 속에 담겨진 낯선 시선이 주는 특별함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는 담겨 있었다.

경주에 내려 차를 타고 불국사를 향해 가는 길 문득 다니엘이 한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그렇다. 우리야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지만 다니엘은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가를 설명해줬다. 그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다양한 소리와 의미를 담아내는 한글이 마치 퍼즐 같다고 했고, 그의 독일친구는 쉽게 “나는 ○○○입니다”를 따라하더니 이를 응용해 “너는 ○○○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스튜디오에서 보는 패널들이 친구가 응용력이 대단하다고 말하자, 다니엘은 한글이 그만큼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 그렇다고 말했다.

불국사에 가서도 독일친구들의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풍경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하다못해 전통적인 지붕 하나도 신기해하고, 그 곳의 자연 풍광들이 “유럽정원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정원들은 인공적으로 꾸며진 부분들이 많지만 우리의 사찰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찰에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는 단청들을 보며 감탄하고, 교과서에서 그토록 우리가 많이 봐왔던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며 거기에 들어갔을 노력들을 생각한다. 

대릉원의 이색적인 풍경 속에서도 모든 게 신기한 독일친구들은 연실 대능 앞에서 김치를 외치며 사진을 찍었고, 천마총에 들어가서는 그 정교한 세공이 들어간 금관 같은 유물들에 감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구조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면서 경주의 이런 유적지에 영어 설명이 없는 부분이 많아 아쉬웠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지만, 경주 같은 우리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공간에 외국인에 대한 이런 배려가 없었다는 건 또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곳곳을 여행하는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은 아마도 KBS <1박2일>일 것이다. 지금껏 10년이 훌쩍 넘게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으로 전국 곳곳에 거의 족적을 남겼을 프로그램이지만, 어쩐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는 똑같은 경주를 가서도 <1박2일>에서는 볼 수 없던 것들이 보인다. 물론 <1박2일> 역시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네 풍광들을 보여줘 온 좋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마치 그들이 가는 곳을 우리가 처음 가는 듯한 낯선 설렘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것이 모두 가능해진 건 외국인이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하지도 또 느끼지도 못했던 둔감한 것들이 이들 타자들의 시선에서 보니 새삼 느껴진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그래서 우리의 사는 모습과 여행지를 새롭게 발견해내는 차원을 넘어서는 또 다른 가치를 일깨워준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감수성’이다. 타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볼까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는 이 가치야말로 지금의 우리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는 아닐까.


<개그콘서트> 서수민 PD, 왜 위기감을 느꼈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감사합니다' 같은 인기 코너가 사라졌고, '감수성'과 '사마귀 유치원'도 폐지 논의에 들어갔다. 파업이 끝나고 복귀한 서수민 PD가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칼을 뽑아들었고, 코너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물론 아직까지 새 코너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과감한 폐지 선언에 대한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실제로 무리한 점이 없잖아 있다. 만일 서수민 PD가 파업으로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었다면, 코너들의 물갈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탔을 것이다. 잘 나가는 대표코너들이 있을 때, 새로운 코너들이 준비되고 그 중 몇 개가 두각을 나타내면 몇몇 반복되고 식상해지는 코너들을 폐지시키는 과정들을 서수민 PD는 물 흐르듯 진두지휘해 왔었다.

 

하지만 복귀해서 그간 변하지 않고 있던 <개콘>을 본 서수민 PD는 아마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 고여 있는 듯한 코너들, 긴장감 없는 분위기에서 사라져가는 헝그리 정신, 게다가 몇몇 개그맨들은 최근 들어 너무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광고를 찍고 음원이 차트에 오르고 하는 건 물론 개그맨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자칫 그 본래 터전인 <개그콘서트>만의 긴장감이나 헝그리 정신을 희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서수민 PD가 칼을 든 것은 아마도 개개 코너들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결과는 코너들이 재미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거기에는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개그콘서트>라는 경쟁 시스템이 느슨해질 때, 코너들도 식상해지고 프로그램도 어려워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개그맨들에게도 위기로 이어진다. 즉 당장의 편안함이 이 <개그콘서트>라는 시스템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서수민 PD의 칼날은 코너들을 살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로 경쟁 시스템 자체를 복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보면 웃기기는 하지만 이미 반복적으로 굴러간다 싶은 코너들은 그래서 <개그콘서트>에는 그 자체로 독이 될 수 있다. '애정남'은 그 폐지 수순이 너무 늦었다 싶을 정도로 반복적이었다. 이 부분은 서수민 PD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시청자분들이 챙겨준 아이디어들을 그저 버릴 수가 없어서 존속시키고 있었다고 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역시 그 패턴이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안돼!"와 "고뤠!"의 반복인 셈이다. '불편한 진실' 역시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패턴 반복의 고리에 빠져 있다.

 

'사마귀 유치원'도 신선함이 사라져버렸지만, 그나마 그 안에서 일수꾼 최효종이 브로커로, 쌍칼 조지훈이 작두 아저씨로 캐릭터를 바꿔 변화를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코너도 큰 틀은 그대로인 셈이다. '생활의 발견'은 아이디어적으로는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는 코너지만(지금껏 남녀 사이로만 국한된 아이디어에 머물러 왔다) 좀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게스트를 통해 넘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감수성'도 마찬가지다. 다만 '감수성'은 엔딩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복안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새 코너들은 어떨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까지 빈 자리를 제대로 채워줄 핫한 코너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섭지 아니한가'나 '아빠와 아들' 같은 코너는 너무 과거에 무수히 써먹었던 개그의 반복처럼 여겨지고, '호랭이 언니들'은 개그우먼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기획적인 안목은 좋지만 개그로서는 너무 약한 게 흠이다. '박부장'은 공감은 가지만 한방이 부족해보이고, '하극상'은 너무 말장난으로 가는 느낌이다.

 

그나마 주목되는 것은 '희극지왕 박성호'다. 박성호를 전면에 내세운 이 코너는 예상과 반전으로 웃음을 만든다. 이 개그는 박성호가 하는 개그를 평가하면서 그것이 개그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웃음의 틀이 탄탄하게 여겨진다. 즉 박성호가 웃기지 않으면 웃기지 않다는 걸 내세워서(그는 <개콘>의 최고참이다) 웃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박성호 특유의 언변이 돋보이는 개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코너마저 내린다고 한다. 그만큼 <개콘>의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어쨌든 <개콘>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코너들보다도 먼저 경쟁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그 팽팽한 긴장감과 경쟁구도가 살아난다면 코너들은 자연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시 서수민 PD는 명장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20%라는 시청률에 현혹되지 않고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변화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조만간 더 강력해진 <개콘>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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