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과 ‘변혁의 사랑’이 그리는 금수저 판타지 깨기

재벌가의 삶이 판타지를 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버린 모양이다. 재벌3세가 등장하고 그 상대역으로 신데렐라, 남데렐라, 줌마렐라 같은 인물들이 주는 판타지는 최근 드라마에서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물론 재벌3세라는 특정 캐릭터는 여전히 등장하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과 tvN <변혁의 사랑>을 보면 지금 대중들이 바라보는 재벌가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황금빛 내 인생>에 등장하는 재벌가 해성그룹은 그 부유함이 막연한 판타지를 주는 그런 곳이다. 서지안(신혜선) 같은 흙수저에게는 특히 그렇다. 어떻게 해서라도 마케팅팀에 들어가기 위해 인턴으로 갖가지 잔심부름까지 기꺼이 도맡아 하는 곳. 하지만 드라마는 애초부터 그런 판타지는 흙수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어느 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금수저 친구에게 밀려나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곳. 그것이 굴지의 재벌가에서 일이라도 해보려는 흙수저에게 떨어지는 씁쓸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흙수저가 하루아침에 해성그룹의 잃어버린 딸이 되어 금수저가 되자 이 모든 닫혔던 문들이 열린다. 그래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하루에 천만 원씩 쓰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닌 집안이지만 사실 사는 모양이 영 불편하다. 지켜야할 것도 많고 보는 눈도 많고 구설에 오를 일도 넘쳐난다. 재벌3세인 최도경(박시후)은 입만 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외치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가 모두 결정된 인물이다. 심지어 누구와 거래하듯 정략결혼을 해야 할 지까지.

서지안은 동생 서지수(서은수)가 진짜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게 힘겨운 지옥의 삶을 경험한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해성그룹의 사모님 노명희(나영희) 같은 인물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실감한다. 게다가 이 재벌가 사모님은 입만 열면 ‘특권의식’이 철철 묻어나는 말들만 늘어놓는다. 서민들과는 말도 섞지 말라는 식이다. 서지안이 뒤바뀐 출생의 비밀 때문에 겪게 된 재벌가는 판타지가 아니라 지옥이다. 되도록 빨리 도망치고픈 그런 곳.

<변혁의 사랑> 역시 재벌가의 풍경은 그리 다르지 않다. 변혁(최시원)이라는 낭만주의자 재벌3세는 그 낭만적인 성격 때문에 집안에서 밀려난다. 형인 변우성(이재윤)은 동생을 영구히 밀어내기 위해 변혁이 일으키는 사건들을 은밀하게 더 키우는 그런 인물이고, 아버지 변강수(최재성)는 아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폭력적인 인물이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백준(강소라)이라는 프리터족 흙수저의 현실은 더 참담하다. 직업 갖는 걸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는 겉으로 명랑해보여도 속은 문드러져 있다. 늘 돈을 빌려달라는 엄마에게 자신도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다달이 모았던 적금통장을 깨서 주려고 가져가는 그런 딸. 그런데 철없게도 돈 쓸 줄만 아는 변혁은 그런 그가 안타까워 척척 돈으로 그걸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백준은 그런 변혁의 행동이 오히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돈만 많았지 세상 사람들의 아픈 현실은 잘 모르고, 그렇게 돈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인물이 바로 변혁이기 때문이다. 재벌3세라면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 것 같지만 변혁은 오히려 정반대다. 집안에서도 제대로 기를 피지 못하고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해도 한 사람의 마음 하나를 얻지 못한다. 

흔히 드라마가 재벌가 판타지를 담곤 했던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가진 권력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당대의 정서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갖가지 재벌가의 특권의식이 점철된 갑질 사건들이 주는 현실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지 금수저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황금빛’ 인생을 살아가는 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황금빛 내 인생>이나 <변혁의 사랑>은 물론이고, <품위 있는 그녀>가 그려냈던 불륜과 치정으로 얼룩진 재벌가의 삶이나, <부암동 복수자들>에 담겨진 저들만의 세상에 대한 분노 같은 반감들은 최근 드라마들이 재벌가를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을 담고 있다. 어차피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그런 판타지는 애초에 ‘꿈 깨’라고 드라마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변혁의 사랑’, 강소라는 좋은데 기내난동·재벌가 이야기는 좀

당당한 알바걸 백준(강소라)과 찌질한 재벌3세 변혁(최시원) 그리고 어떤 모욕도 견뎌내며 신분상승하려는 권제훈(공명). tvN 새 토일드라마 <변혁의 사랑>은 이 세 사람이 만들어가는 청춘멜로다. 여기서 주인공은 제목에도 들어있듯 재벌3세 변혁이다. 그런데 변혁보다 주목되는 캐릭터는 백준과 권제훈이다. 어딘지 뻔해 보이는 재벌3세보다 프리터족 백준과 젊은 야심가 권제훈이 더 현실감을 주기 때문이다. 

'변혁의 사랑(사진출처:tvN)'

특히 강소라가 연기하는 백준이라는 캐릭터는 요즘처럼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 비정규직 인턴으로 버텨내도 낙하산에 밀려 정규직이 되는 건 쉽지 않은 현실에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 잃어버린 귀걸이 때문에 다짜고짜 강짜를 부리는 호텔 고객 앞에서 버티다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모습은 ‘고객은 왕’이라는 이유로 무릎 꿇리는 갑질 사회에 대한 일침을 보여줬다. 결국 <변혁의 사랑>은 바로 이 백준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버리는 변혁의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변혁의 사랑>에서 백준 만큼 주목되는 캐릭터는 권제훈이다. 백준과도 친구이고 변혁과는 부모 세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연이자 악연이다. 변혁의 아버지 변강수(최재성)의 운전기사인 그의 아버지 덕분에 부족하지 않게 살았지만 친구이자 상사인 변혁의 비서역할을 해내는 일은 모든 굴욕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다. 변혁이 잘못한 일을 자신이 대신 나서 막아줘야 하고, 심지어 변강수의 방망이 세례를 변혁 대신 맞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신분 상승을 하려는 그에게서는 이러한 자본으로 계급이 나뉘는 현실에서 백준과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 청춘의 면면을 보게 된다. 

이처럼 백준과 권제훈의 캐릭터는 <변혁의 사랑>이라는 드라마에 눈길을 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작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변혁이라는 재벌3세는 어딘지 너무 뻔해 보인다. 아쉬울 것 없이 자란 재벌3세답게 온갖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 캐릭터가 가진 특별함이란 생각 외로 순수한 면이 있고 낭만주의자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첫 회에 들어간 에피소드들은 다소 정서적 불편함을 주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특히 기내 난동 에피소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재벌가의 기내 난동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코믹하게 캐릭터를 세우기 위해 그려낸 것이지만 그 장면은 마치 중대한 범죄인 기내 난동을 미화하고 변명하는 듯한 뉘앙스로 비춰질 위험성이 다분했다. 

게다가 이 기내 난동 사실이 밝혀지고 그래서 분노한 그의 아버지 변강수 회장이 골프채를 휘두르며 그를 체벌하려다 마침 야구방망이를 가져온 권제훈에게 대신 엎드리라고 한 후 그 엉덩이를 가격하는 장면 역시 보기에는 불편할 수 있었다. 그것 역시 이른바 재벌가의 사건 중 종종 뉴스에 등장했던 맷값 폭행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어서다. 

물론 <변혁의 사랑>이 앞으로 그려낼 이야기는 이러한 변혁이라는 재벌3세가 백준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 하는 점일 게다(그러니 이름이 변혁일 테고). 그리고 그건 충분히 드라마의 재미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재벌가에 입성하는 신데렐라의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재벌3세가 프리터를 통해 청춘이 가진 현실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깔려진 재벌가 이야기가 주는 다소 뻔하고 나아가 불편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주는 식상함은 이 드라마가 넘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변혁이라는 인물이 백준이나 권제훈 같은 참신함을 줄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생겨나는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이 드라마가 가진 힘이 생겨날 것이니 말이다.

<미생> 신드롬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이제 <미생>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끝날 때가 다 됐지만 정작 주인공인 장그래(임시완)의 위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물론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겨우겨우 계약직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그에게 아직 정규직 소식은 없다. 오히려 그 정규직을 억지로라도 만들려고 위험성 있는 사업을 덜컥 하려는 오차장(이성민)과 그 사실을 알고는 퇴사를 고민하는 장그래가 갈등을 일으키는 중이다.

 

'미생(사진출처:tvN)'

그나마 만년 과장이었던 오과장이 오차장이 된 게 이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인물들의 성취다. 물론 풋내기 신입사원이었던 장그래나 안영이(강소라), 장백기(강하늘), 한석률(변요한) 같은 인물들이 이제 제법 회사에 적응해 척척 자기 몫을 해내는 건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그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미생들일 뿐이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성취나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는 <미생>이 왜 그토록 신드롬을 만들었는가를 의아해 한다. 하지만 <미생> 신드롬은 바로 그 커다란 성취나 판타지를 말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다. 사실 직장생활이라는 현실 속에서 커다란 성공이나 성취를 말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던가. 그들은 그저 그 힘겨운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섣부른 판타지는 헛웃음을 만들 수밖에 없다. <미생>은 그런 점에서 보면 헛된 희망을 얘기하지 않은 드라마다. 거기에는 그 흔한 멜로적 성취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사회현실 속에서의 성취가 불가능하다면 멜로 같은 사적인 성취라도 취하는 것이 기존 드라마들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미생은 그런 곁가지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사원과 대리, 팀장 사이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냄으로써 그 미생으로서의 삶에 자그마한 숨통을 만들었을 뿐이다.

 

멜로도 없고 가족도 그렇게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 이 일중독자들의 세상이 그토록 우리를 잡아끌었던 건 거기에 직장인들의 디테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직장인이란 유리지갑월급쟁이과로과음으로 점철된 어떤 존재들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이렇게 일 속에 푹 빠져 살아가는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미생>은 달랐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뻔하게 치부해 왔던 직장인들의 면면을 깊숙이 들어가 자세한 디테일로 그려냈다. 거기에 특별한 판타지는 없었지만, 바로 이 디테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위안과 위로를 주는 힘을 발휘한다. 누구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았던 삶을 조명해준다는 것. 그리고 그 미생의 삶에 나름의 가치 부여를 한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왜 직장인들에게 그토록 큰 공감을 일으켰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미생>의 인물들은 그 드라마의 시작과 끝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변함없음을 보여주지만, 이런 헛된 판타지보다 이 드라마가 선택한 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직장인들의 삶이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 바둑에는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오차장의 이 말에서 방점은 우린 아직 다라는 단어에 찍힌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다 아픈 현실에 대한 공감. 그것이 <미생>이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미생>, 멜로, 지상파, 스타가 아니어도

 

요즘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을 만나면 한결 같이 나오는 얘기가 <미생>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미 밝혀진 것처럼 <미생>은 지상파에 모두 제안되었다가 결국 tvN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지상파 관계자들은 이때만 해도 과연 그게 드라마로도 성공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대성공을 거둔 <미생>을 놓친 것에 대해 지금은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생(사진출처:tvN)'

<미생>의 성과는 단지 한 드라마의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 제작자들이 해왔던 관습적인 접근을 대부분 깬 데서 나온 성과이기 때문이다. <미생>을 통해 배워야할 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멜로 없이도 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미생>이 지상파에서 제작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멜로의 부재때문이었다. 지상파 관계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멜로를 넣어달라고 주문했지만 멜로 없이 해달라는 윤태호 작가의 강력한 요구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수락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tvN에서 방영된 <미생>에 만일 멜로가 들어갔으면 그 집중력이 상당부분 흩어졌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직장동료로서의 장그래(임시완)와 안영이(강소라) 그리고 장백기(강하늘)가 각각 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 각자가 가진 직장생활의 고충들과 성장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삼각 멜로에 허우적대게 하지 않은 건 윤태호 작가의 말대로 작품의 성패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로 <미생>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건 리메이크도 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다. 사실 <미생>은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부터 이미 1백만 부가 팔린 만화였다. 이것은 그만큼 인지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제작자들에게는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는 장애요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리메이크했다가 실패한 <내일도 칸타빌레>를 보라. 그만큼 원작의 무게감은 리메이크에게는 짐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미생>은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고 평가받았다. 그것은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기보다는(물론 약간 다른 내용들이 있지만), 드라마적인 극적 구성을 강화했다고 보는 편이 낫다. 이 극적 구성 때문에 웹툰이 가진 마치 바둑을 두는 듯한 지적인 흐름은 감정선이 묻어나는 장면들로 보여질 수 있었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미생>은 실증해보인 것.

 

세 번째는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미생>이 만일 지상파에서 했다면 그만한 성과를 얻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즉 지상파는 상대적으로 시청층의 연령대가 높고 드라마 소비에 있어서도 패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파가 <미생>에 멜로를 요구한 것은 기획적인 패착이 아니라 바로 이런 플랫폼적인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떤 드라마는 지상파보다는 아예 케이블 같은 비지상파가 훨씬 더 플랫폼으로서 우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플랫폼에 끼워 맞추는 콘텐츠가 자칫 바로 그 점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플랫폼보다 우선되는 것이 콘텐츠라는 점이다. 콘텐츠가 먼저 완성되고 거기에 맞는 플랫폼을 선택한 <미생>은 그래서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미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미 발굴된 얼굴들이 오히려 낫던이 드라마의 캐스팅이다. 김대명, 변요한, 박해준, 류태호, 김희원, 손종학, 정희태, 최귀화, 전석호, 오민석, 태인호, 황석정, 이승준... 우리는 <미생>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무수한 배우들이 이토록 많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봤던 얼굴들이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그림이다.

 

이렇게 미 발굴된 얼굴들은 이미지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품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웹툰에서 지금 막 걸어 나온 것 같다는 평가는 바로 이 미 발굴된 얼굴들의 미친 존재감 덕분이었다. 즉 지상파 드라마들도 새로운 얼굴의 발굴이 드라마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미생>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생>의 성공은 드라마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만들었다. 기존의 틀을 고집하며 깨지 못했던 지상파들로서는 한번쯤 숙고해야할 부분이다. 멜로가 없어도 지상파가 아니라도 또 스타가 아니라고 해도 작품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미생>은 보여주었다.

 

매회가 공감, <미생> 수직상승의 비결

 

아이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워킹맘은 죄인이다. 회사에서는 야근시간에 아이를 챙겨줄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사정하기 바쁘고, 그도 안 되면 잠깐 나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놓고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회사에서도 눈치를 보지만 워킹맘은 집에서도 눈치를 본다. 맞벌이 하는 남편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슈퍼우먼이어야 하고, 아침부터 바쁜 업무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엄마를 보내는 아이의 슬픈 눈빛을 마주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tvN <미생>이 보여준 워킹맘의 비애다.

 

'미생(사진출처:tvN)'

첫 회부터 장그래(임시완)를 통해 스펙 없는 청춘의 비애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미생>, 2회에서 인턴 장그래가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진실이 한 가장을 곤란하게 만들 것을 알고는 술자리 푸념으로 풀어내는 팀장으로서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중년의 비애를 오과장(이성민)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3회에서는 부하직원의 징계를 막기 위해 싫어하는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오과장을 통해 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4회에서는 인턴들의 PT를 통해 경쟁과 협력이라는 직장생활의 양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5회는 여자로서 회사생활을 한다는 것의 비애를 선차장(신은정)과 신입사원 안영이(강소라)가 겪는 차별과 모욕을 통해 보여주더니, 6회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비즈니스를 위해 친한 친구를 접대해야 하는 오과장의 이야기와, 착하고 여린 심성 때문에 거래처에게 오히려 휘둘리는 박용구 대리(최귀화)와 그를 돕는 장그래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었다.

 

회사 생활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미생>이 담아내는 건 완전히 새로운 사건들이 아니라 바로 그 우리네 샐러리맨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회사 생활의 편린들이다. 거기에는 부하직원으로서의 괴로움도 있지만 팀장으로서의 고충도 있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기 마련인 사회적 차별의 시선도 있다. 갑을 관계라고 하면 무조건 을에게 갑질 하는 것만을 떠올리지만 <미생>은 때로는 갑을 두고 을질 하는 거래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그들이 그래서 저녁 시간에 너 나랑 술 한 잔 할래?”하고 물어보는 그 말에는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미생>에서 종종 나오는 팀장과 부하직원 간의 선술집에서의 소주 한 잔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 소소한 한 잔만이 하루를 견뎌낸 그들이 갖는 유일한 위안과 위로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 취한 체 돌아온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은 늘 사직서를 책상 한 귀퉁이에 넣어두고도 그 하루를 버텨내는 힘이 된다.

 

이것은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매 회 수직상승하는 비결이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카메라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포착해내고, 그 이면에 담겨진 소소한 기쁨과 커다란 아픔들을 공감하게 해준다. 이 샐러리맨들의 하루하루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다거나 극적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좀 더 가까이 그 이야기에 다가간 바로 그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다.

 

<미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길거리에서 회사에서 혹은 집에서조차 지나치고 마는 샐러리맨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그들의 일상이 그저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가치 없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드라마의 디테일은 그래서 그 자체로 샐러리맨들에 대한 이 작품의 태도를 담아낸다. 그러니 이제 주변에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그들의 삶에서 특별함이 발견될 것이니. 밥벌이 앞에 그 누구도 위대하지 않은 이는 없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45)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34)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110,015
  • 357755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