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누나’ 서정연과 ‘라이브’ 배종옥, 이 멋진 언니들

‘예쁜 누나’ 위에 ‘멋진 언니’가 있다?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예쁜 누나’ 윤진아(손예진)가 있다면, 그 위에는 은근히 무뚝뚝한 척 그를 돕는 ‘멋진 언니’ 정영인(서정연) 부장이 있다. 깐깐하고 빈틈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인물은 이 막돼먹은 회사 남자 상사들로부터 윤진아를 은근히 보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해 다른 남자 상사들(심지어 대표까지)도 쉽게 대하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회식자리에서 윤진아를 위해 보인 모습은 그 속내를 드러낸다. 늘 그러했듯 ‘개저씨’ 공철구(이화룡) 차장이 와서 윤진아를 부르며 고기를 구우라고 지시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를 거부해 싸해진 분위기. 공철구가 회사 내 위계질서가 엉망이라고 대표에게 성토하자, 정영인은 남자 직원을 불러 고기를 구우라 지시하면서 이런 위계를 말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서준희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변화한 윤진아. 회식자리에서 늘 보이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인 윤진아에 대해 정영인은 오히려 “윤진아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자신이 더 고맙다고 말한다. 그는 윤진아에게 “훌륭하다”며 눈치 빠르게 “너 요즘 연애하지?”하고 묻는다. 예뻐졌다는 것. 정영인이 말하는 예쁘다는 표현은 그래서 중의적으로 들린다. 하나는 실제로 연애하는 사람이 보이는 예뻐짐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달라진 삶의 자세가 보여주는 예뻐짐이다. 

정영인이 윤진아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미루어 그가 이 성차별이 가득한 회사에서 어떻게 버텨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남다른 철저함과 빈틈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일처리, 게다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 얼굴은 그가 부장 자리까지 오면서 겪었을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든든하게 서 있는 정영인이 윤진아에게는 하나의 버팀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의 안장미(배종옥) 역시 정영인 같은 ‘멋진 언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경찰생활에서 악착 같이 일해 여청계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 되었다. 관내에서 벌어지는 연쇄 성범죄를 수사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항상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이제 막 새로 들어온 한정오(정유미)가 그래서 마치 자신의 옛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일 수 있다. 그래서 한정오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면서 안장미는 “너랑 호흡이 잘 맞았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안장미의 ‘멋진 언니’ 역할은 경찰로서만이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도 톡톡하게 드러난다. 그건 이미 과거 한정오가 성폭행을 당했을 시절부터 그를 알고 있던 안장미가 툭툭 던지는 인생 조언 속에 담겨진다. 한정오는 자신이 당한 성폭행으로부터 이제는 멀쩡하다며 트라우마가 없는 자신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자, 안장미는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가 꼭 생겨야 돼? 사건 당한 것도 억울한데 꼭 괴롭기까지 해야하냐고. 난 그것도 다 편견 같은데. 심플하게 생각해. 넌 그냥 그 일이 벌어진 걸로 받아들인 거야. 사건이 났고 넌 잘못이 없고 시간은 지났고 현재 넌 경찰이 된 거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나 <라이브>는 모두 여성 주인공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만큼 시선이 가는 건 그들 위에 먼저 그 현실을 살았던 선배 언니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한 만큼 부하 직원에게 똑같이 되돌려주는 경우가 현실에는 더 많다. 하지만 자신이 당한 일을 후배들은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어떤 롤 모델이 되어주는 선배 언니들도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그들의 쉽지 않은 노력들이야말로 진짜 세상을 바꿔가는 힘일지도.(사진:JTBC)

아저씨, 소통하는 아재, 불통하는 개저씨

 

10여년 전만해도 아저씨라고 하면 화를 내거나 심지어 서운해 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흔했다. 누가 봐도 중년의 아저씨지만 여전히 오빠로 불리고픈 모습들. 그래서 걸 그룹들은 일제히 오빠를 가사로 연호하며 아저씨들을 팬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최근 들어 아저씨라는 표현은 이중적인 의미로 갈라지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무개념 중년 남성을 가리키는데 쓰이는 개저씨가 있는 반면, 어딘지 옛날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친근하고 여전히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귀여운 의미가 덧붙여진 아재도 있다.

 

개저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아마도 tvN <미생>에서 마부장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 손종학이 아닐까. 그는 그 강렬했던 개저씨, 마부장의 이미지 덕분에 <SBS스페셜> ‘어쩌다 보니 개저씨라는 아이템에 직접 나와 직장 내 개저씨의 행태들을 재연해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JTBC <욱씨남정기>에서 김상무 역할로 여전히 탁월한 개저씨 연기를 보여준다.

 

개저씨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직장 내 여직원에게 툭하면 성희롱 발언을 일삼고, 아무데서나 막말을 던지는 일상이다. 하청업체에게 갑질 하는 건 당연한 관행정도로 여기고 접대 받는 일은 거의 생활이다. 여자 시청자들로서는 비명이 나올만큼 끔찍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 개저씨를 향해 물 싸대기를 날리는 옥다정(이요원)은 사이다 캐릭터가 된다.

 

하지만 개저씨로 불리는 아저씨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완전히 상반되는 아재라는 호칭이 동시에 인구에 회자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재개그라는 개그 트렌드는 아재라 불리는 아저씨에 대한 젊은 세대들까지의 호감을 잘 보여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와 요리보다 아재개그를 더 많이 던진 오셰득 셰프가 대표적이다.

 

아재개그란 사실 웃기지 않는 아저씨들의 옛날 개그를 뜻한다. 예전 남희석이 많이 했던 말 장난 개그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 웃기지 않다는 의미로 아재개그로 캐릭터화되자 기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웃지 말아야 된다(웃으면 자신이 옛날 사람이라는 뜻이 되므로)는 강박이 생기지만 희한하게 이 개그가 반복되다보면 그 강박 때문에 웃음이 터진다. 사실 아이러니지만 웃기지 않는 캐릭터는 요즘 같은 예능 상황에서는 웃기다.

 

아재개그에 한정할 필요 없이 좀 더 확장해서 아재라 불리는 긍정적인 이미지의 아저씨상을 보여주는 남자 예능인들은 넘쳐난다. 이경규를 필두로 유재석이나 강호동, 신동엽, 김구라 모두 따지고 보면 아저씨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젊은 세대까지 폭넓게 사랑받는다. 대표적인 아재들인 셈이다.

 

최근 이경규는 눈에 띄는 아재. 그는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예능인이지만 지상파에서 가장 젊은 예능에 해당하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연달아 1위를 차지했다. 그가 했던 눕방, 낚방, 말방은 그 시도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젊은 친구들도 시도하지 않은 예능에서는 거의 금기라고 말하는 것들을 이경규는 마치 대놓고 넘어보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어색하긴 하지만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자의 자격>이후 <아빠를 부탁해>도 또 <힐링캠프>도 폐지되면서 이제 끝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겨날 때 이경규는 가장 뜨거운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손종학씨가 하는 건 개저씨 캐릭터이고 연기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손종학의 연기를 통해 구축된 개저씨 이미지가 대표적인 악역으로 그려지고, 대신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 노력하는 아저씨들을 아재라 부르는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시대에 중년들에게 무엇이 요구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난다. 소통할 것인가 아니면 불통할 것인가. 여전히 얘기가 되는 아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개저씨가 될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욱씨남정기>의 세태풍자, 웃기지만 눈물 난다

 

<욱씨남정기>는 아마도 조선후기에 김만중이 쓴 사씨남정기에서 따온 제목일 것이다. 내용적으로 유사성은 없으나 두 작품이 모두 당대의 세태를 풍자했다는 것만은 같다. ‘사씨남정기가 인현왕후를 내몬 장희빈의 패악을 풍자했던 고전소설이라면 <욱씨남정기>개저씨들이 수시로 갑질 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드라마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남정기(윤상현)는 중소기업 러블리 코스메틱 마케팅 본부 과장. 그에게 황금화학은 자신은 물론이고 회사 동료들의 밥줄을 쥐고 있는 절대 갑이다. 황금화학의 김환규(손종학) 상무는 전형적인 갑질 하는 개저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러블리 코스메틱 사장 조동규(유재명)는 그의 밥인 절대 을이다. 어떻게든 김환규 상무의 줄을 잡고 신제품 납품을 하려는 조동규에게 김 상무는 그 제품의 라이센스 자체를 넘기라고 한다.

 

괜찮아 보이는 중소기업의 제품을 갈취해 자사 제품으로 둔갑시켜 파는 행위는 대기업들이 해왔던 관행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갑의 권력으로 갈취해가는 것도 계약은 계약인지라 김환규는 노골적으로 접대를 요구한다. 속으로는 울고 있지만 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 라이센스도 넘기고 심지어 그것이 마치 기쁘다는 듯 접대까지 해야 하는 상황. 갑자기 황금화학 마케팅 팀장인 욱다정(이요원)이 그 판을 깨고 나선다.

 

특유의 당당함으로 김환규 상무가 상사의 권위를 내세우며 얼굴에 물을 뿌리면 그에게도 얼굴에 물을 뿌리는 그녀다. 그녀는 갑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을의 입장을 탐탁찮게 여긴다. 억지로 끌려간 접대자리에서 욱다정은 남정기에게 왜 이런 계약을 하냐고 묻는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제품 생산 시작하라고 한 거 아닙니까? 완제품 찍어서 다른 데로 넘길 수도 없게 만들어놓고 불리한 계약조건 들이밀면 저희 같은 을들은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 다음에도 황금화학이 계약을 해줘야 저희가 살아남으니까요. 아니 왜 모르는 사람처럼 그러실까? ? 허허 참. 지금 저희 심정이 어떤 줄이나 아세요? 자식 넘기는 부모처럼 가슴이 너덜너덜하니까 너희가 선택한 거니까 후벼 파지 마시라구요.”

 

아마도 남정기의 이 말은 사업 현장에서 무수한 을의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주는 얘기일 것이다. 결국 밥줄을 쥐고 있는 대기업에 질질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그들이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문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욱다정은 그런 을의 항변을 듣고만 있지 않는다. 그런 불공정 계약과 싸우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을들은 갑의 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자식이면 지켜야 부모 아냐? 이런 개 같은 계약을 요구하면 당연히 던질 줄 알았지. 협상할 생각도 못하고 호구노릇 계속 해주니까 매번 당한다는 생각은 못합니까?”

 

접대 자리에서 도장을 찍은 계약서를 찢어 던져버리는 욱다정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판타지겠지만 그것이 답답한 을의 현실에 속 시원한 사이다 한 방을 전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황금화학을 때려 치고 나와 러블리 코스메틱 본부장으로 오게 된 욱다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건 그래서다. 향후 그녀는 과연 을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이다 캐릭터가 될 것인가.

 

실로 세상은 넓고 갑질 하는 개저씨들은 많다. 그 답답한 세상에 드라마를 통한 잠깐 동안의 통쾌함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잠깐의 유쾌함이 갑과 을의 부조리한 관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라는 점에서 <욱씨남정기>는 그저 우습기만 한 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웃고 있지만 눈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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