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온 마스’의 특별한 해피엔딩, 시즌2도 가나요?

역시 엔딩도 <라이프 온 마스>다웠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함께 공존하는 마무리. 의식을 찾고 현실로 돌아왔던 한태주(정경호)는 내내 무의식 속 코마상태에서 만났던 1988년 동료들을 구해내지 못하고 왔다는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무의식을 향해 달려갔다. 그것은 건물 옥상에서 저편으로 뛰어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만, 조폭들에 둘러싸여 맞아죽을 위기에 몰린 동료들을 구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렇게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는 결국 동료들을 구했고, 그들과 계속 그 곳에 남아있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여전히 의식 저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들이 있었고, ‘서울 전출명령’이 내려지면서 그것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한태주는 잠시 망설였지만, 마치 자신이 만든 또 다른 분신처럼 등장한 의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는 건가요?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한태주씨가 웃으면서 살아가는 곳이 바로 현실이에요.” 결국 그는 의식 저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들을 무시했고 강력3반 동료들과 계속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 곳이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시간을 오가는 설정의 장르물들이 꽤 많이 등장했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타임리프 판타지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독특한 설정의 장르물이었다. 사고로 의식을 잃은 동안 무의식 속에서 1988년을 겪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그 무의식을 그저 빠져나와야 할 망상으로 치부한 게 아니라, 그 곳에 머물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1988년에서 만난 강동철(박성웅), 이용기(오대환), 조남식(노종현) 그리고 윤나영(고아성)이 한태주를 의식이 아닌 무의식 속으로 끌어들인 장본인들이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지만 그래도 그 누구보다 의리와 정이 넘치는 강동철은 마치 형처럼 한태주를 챙겼고, 늘 투덜대며 명령조차 무시하곤 했던 이용기는 한태주에게 술을 따라주며 풀어진 마음을 드러냈다. 경찰보다는 미스 윤이라 더 많이 불리며 커피 타는 일을 더 많이 했던 윤나영은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줬던 한태주가 마음을 조금 열자 반색하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있어 이 드라마의 의식보다 더 끌리는 무의식의 이야기가 가능했다. 물론 <라이프 온 마스>는 수사 장르물로서의 결을 보여준 드라마지만, 또한 별 감흥이 없는 의식세계와 행복감을 주었던 무의식 세계 사이에서 한태주가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를 통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웃지 않고 무표정하게 살아가는 삶이 코마에 빠져 행복감을 느끼는 삶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니 말이다. 

워낙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들이 쏟아졌기 때문일까. <라이프 온 마스>는 시즌2에 대한 암시를 에필로그 속에 담아 두었다.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가 강력3반 동료들과 사건현장을 향해 떠나는 장면과 함께 에필로그는 죽은 줄만 알았던 김현석(곽정욱)의 전화를 받는 모습을 담았다. 시즌2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리메이크 작품이었지만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라이프 온 마스>는 우리 식의 해석들이 참신하게 채워졌던 드라마다. 리메이크라면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대본과 연출의 완성도가 돋보였고, 무엇보다 정경호, 박성웅을 위시해 오대환, 고아성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몰입감을 높였다. 이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함께 시즌2로 돌아올 수 있기를.(사진:OCN)

‘라온마’의 미친 몰입감, 정경호의 망상이 깨지 않길 바란다는 건

뭐 이런 미친 몰입감의 드라마가 다 있나 싶다. OCN 주말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촘촘하게 짜인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반전 스토리의 쫄깃함은 기본이고, 그 밑바닥에는 그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한태주(정경호)라는 형사의 상황이 깔려 있다. 지금껏 중간 중간 삽입되어 보여준 복선들을 이어보면 그는 사고를 겪고 의식을 잃은 상태다. 그래서 갑자기 1988년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강동철(박성웅)을 만나 함께 일련의 사건들을 수사해온 그 과정들이 모두 그 무의식 속에서 벌어진 일이 된다. 

갑자기 TV 속 인물들이 한태주에게 말을 걸어오고, 응급한 상황인 듯 의사가 긴급히 응급처치를 하는 소리들이 그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에게 무시로 틈입해 들어온다. 그래서 그는 조금씩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타임리프를 한 게 아니고, 의식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망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저편에서 “이제 곧 끝난다”며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의 주인공 안민식(최진호)이 한태주의 눈앞에 나타나면서 의식과 무의식은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 서게 된다. 

김경세(김영필)와 신철용의 살해 용의자가 되어 도주한 강동철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한태주와 그 팀원들이 남모르게 수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이 사건을 맡은 안민식이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한태주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그 안민식이 의식을 잃은 자신을 수술해 깨어나게 해줄 수 있는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한태주가 갖게 되는 딜레마다. 그는 안민식이 무의식 혹은 망상이라고 부르는 이 1988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연분을 부정하지 못한다. 긴박하게 한태주를 부르는 윤나영(고아성)과 조폭들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두드려 맞고 쓰러져 가는 강동철과 동료들을 향해 그는 달려간다. 안민식은 이제 거의 다 됐다며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지만.

그 장면은 그래서 현실의 안민식이라는 의사가 한태주의 뇌를 수술함으로써 그 무의식 속의 망상을 제거하는 장면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달려가며 하나씩 꺼져가는 불빛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기막힌 연출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눈을 뜬 한태주는 과연 의식을 깨고 현실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그 무의식 속에서 동료를 구하러 갔다 구사일생으로 깨어난 것일까. 

<라이프 온 마스>가 놀라운 작품이라는 건, 한태주가 겪는 그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갈등을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끼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 1988년도의 강동철과 윤나영 같은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다. 한태주가 조금씩 느끼게 되는 감정선의 변화를 시청자들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태주가 이대로 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딘가 못내 아쉽게만 느껴진다. 

즉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의식을 잃은 형사라면 의식을 되찾고 깨어나는 것이 해피엔딩이 되는 것이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의식을 잃고 가졌던 무의식의 시간들과 그 곳에서 만난 인물들과의 사건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차라리 이 망상이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한태주가 망상에서 깨어나는 걸 아쉬워하는 대목은, 아마도 이제 2회만을 남겨 놓고 있는 <라이프 온 마스>를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과 겹치는 부분일 게다. 어느 새 마지막회를 향해 가는 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망상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것. 원작 자체도 명작이지만, 리메이크가 하나의 새로운 창작처럼 여겨지는 <라이프 온 마스>의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사진:OCN)

‘라이프 온 마스’, 쌍팔년도를 보니 성차별이 확실히 보이네

“그리고 미스 윤은... 커피 좀 타와.” 인성시 서부경찰서 강력계 계장 강동철(박성웅)은 다른 형사들에게는 범인을 잡기 위한 탐문 등을 지시하고는 윤나영(고아성)에게는 커피나 타달라고 지시한다. 가택침입을 당했다는 한말숙(김재경)이 겪은 것과 비슷한 사건이 4개월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낸 장본인이 윤나영이었지만 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은 바뀌지 않는다. 

만일 지금이라면 그렇게 대놓고 벌어지는 성차별에 순순히 수긍하는 분위기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988년도로 되돌아간 OCN 토일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의 시점은 당대에 심지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퍼져있던 성차별의 풍경들을 담아낸다. 윤나영은 이 서부경찰서에서는 윤순경이 아니라 ‘미스 윤’으로 불린다. 사건수사에 동참하기보다는 커피 타주는 일이 진짜 그가 하는 일이 되어버린.

하지만 이 드라마는 1988년을 다루고 있어도 그걸 보고 있는 우리들은 2018년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 그 해로 되돌아가게 된 한태주(정경호)가 느끼는 서부경찰서의 성차별적 분위기의 부당함과 불편함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 그려진다. 커피 타오라는 강동철에게 한태주는 굳이 윤나영과 함께 조사를 하러 가겠다고 말한다. “윤순경하고 같이 가겠습니다. 남자인 저보다도 피해자 조사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라이프 온 마스>는 1988년도로 돌아간 그 복고적 감성이 주는 아날로그 수사의 묘미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물론 현재 한태주에게 벌어진 사고로 인해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가 전편에 깔려 있지만, 사실상 드라마가 가진 재미의 핵심은 물론 주먹구구식이기는 하지만 어딘가 인간미가 묻어나는 형사들과 아날로그적인 사건 수사 방식에 있다. 

용의자와 혈액 대조를 하기 위해 조서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한태주의 말에 강동철이 그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며 용의자의 머리를 책상에 들이받아 피를 흘리게 하고 바로 혈액 대조를 하게 하는 장면이나, 약국에서 제조한 약에 수면제 성분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에 보내기보다는 막내 조남식(노종현)에게 직접 먹이는 장면 같은 게 그렇다. 물론 코믹한 설정이지만 그 주먹구구식 수사가 당시의 상황에 비춰보면(국과수에 의뢰하면 너무 오래 걸린다는 현실) 이해가 되고 또 효과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아날로그 수사의 묘미를 포착해내면서도, 당대의 성 차별적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윤나영이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1988년도의 상황을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관점으로 들여다봄으로써, 윤나영의 성장과 그 성장을 은근히 지지하는 한태주의 훈훈한 관계를 볼 수 있게 만든 점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수사에 힘을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서부경찰서에서 유일하게 프로파일링을 하고 용의자의 심리까지 파고 들어가는 윤나영의 사건 해결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유사한 사건을 겪은 두 피해자가 모두 아팠다는 사실을 발견해내고, 두 사람이 같은 약국에서 약을 조제해먹었다는 걸 밝혀냄으로써 그 약사가 범인임을 찾아낸 것. 

“박영근씨는 어릴 때부터 가까운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살았어요. 아마 그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응어리로 남아서 계속 유사관계를 반복했을 지도 몰라요. 점점 관계에 집착하고 강박증세가 심해질수록 망상도 더 커졌을 거예요. 이주영씨를 갑자기 공격한 건 자기만의 망상이 깨졌기 때문일 거예요.”

윤나영의 이런 프로파일링에 근거한 추리는 사실상 현재에서 과거로 간 한태주에게는 당연한 수사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한태주는 윤나영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가 수사에 참여할 수 했게 해줌으로써 그 가치를 끄집어낸다. 사사건건 성차별적 발언을 해대는 어딘지 무능해 보이는 이용기(오대환)가 열성적으로 수사에 뛰어든 윤나영에게 “제법 경찰 흉내 낸다”고 비아냥거리자, 한태주가 정색하며 “이미 경찰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어떤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자꾸만 윤순경의 성장을 응원하게 되는 것도.(사진:OCN)

볼게 없는 수목극에서 드러난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들

볼게 없다. 제 아무리 퐁당퐁당 연휴라고는 하지만 현 지상파의 수목드라마들에 대한 관심은 바닥이다. 시청률부터가 그렇다.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 <추리의 여왕>은 조금씩 추락하며 9%에 머물렀고, 같은 날 종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와 MBC <자체발광 오피스>는 각각 8.2% 그리고 7%로 고만고만한 수치로 끝을 맺었다. 사실 이 정도 수치면 순위를 말하기가 무색해진다. 두 자릿수 시청률도 못 내고 있고, 화제성도 뚝 떨어졌으니.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시청자들은 제발 tvN이나 OCN 같은 채널의 드라마들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현재의 수목극에서 누구 할 것 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나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추리의 여왕>은 물론 일상 소재의 추리극이라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건은 등장하지 않고 너무 서설이 긴데다 인물들의 장황한 신변잡기들만 늘어놓고 있어 심지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가 흐려질 정도다. 

9회는 팬티 도둑이 강도로 돌변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마지막 장면이 갑자기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사실 설옥(최강희)과 완승(권상우)의 이야기는 굳이 드라마에서 다뤄져야할까 싶을 정도로 소소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일상의 이야기와 거기서 드러나는 아줌마 셜록, 설옥의 면면들이 초반만 해도 재미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어느 정도가 아닐까. 이제 10회를 넘어선 상황이면 본격적으로 사건전개를 해나가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높여야 하는 게 정상이다. 이 작품은 16부작으로 이제 겨우 6부를 남기고 있을 뿐이 아닌가. 시청자들이 OCN의 <터널> 같은 밀도 있는 작품과 이 드라마를 비교하는 이유다.

종영한 <사임당, 빛의 일기>는 역시 기획 단계부터 현재와 과거를 엮는 그 구성이 만들어낸 한계점을 마지막까지 지우기 힘들었다. 결국 현재 이야기를 상당부분 덜어내고 과거의 사임당 이야기를 중심으로 재편집하면서 후반에는 내보낼 분량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애초 30부작에서 28부작으로 축소했지만 28회의 분량을 보면 전반부는 사실상 과거 영상들을 짜깁기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결말도 갑작스럽게 개과천선한 갤러리선의 관장(김미경)이 기자회견으로 진실을 밝히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점도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결국 이영애의 복귀작이었지만 실패작으로 남았다. 200억이 넘는 투자가 된 작품이고, 100% 사전 제작되었지만 완성도도 담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도대체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왜 주인공으로 세웠는가가 무색한 이야기 전개는, 역사왜곡의 차원을 차치하고라도 문제를 남겼다. 결국 양류지소라는 고려지를 만드는 과정이 드라마의 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그것이 사임당이라는 실존인물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애초 워킹맘으로서 혁신적인 여성상을 그리겠다던 포부는 현모양처의 보수적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날 종영한 <자체발광 오피스> 역시 지상파 드라마에서 항상 문제로 제기되던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 이 드라마가 애초의 흐름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고 그저그런 드라마로 전락하게 된 시발점은 서현(김동욱)이라는 회장 아들의 갑작스런 흑화에서부터였다. 서현이 본부장으로 하우라인에 들어와 인사권을 쥐고 ‘농단’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뻔해졌다. 서현으로 인해 고질적인 회사의 라인문화가 전면에 등장하고, 이러한 악역을 통해 은호원(고아성)과 서우진(하석진) 캐릭터를 세우려 한 것.

결국 은호원과 서우진은 이러한 핍박에 맞서 싸우는 인물로 서게 되고 또 두 사람은 멜로관계로 얽히는 연인이 되었지만 서현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갑자기 변화한 것에 대해서 드라마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억지로 악을 세워 선을 구축하려는 드라마의 방식은 너무 단선적이라 그다지 감흥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애초 여성판 <미생>이라던 이 드라마는 그래서 오히려 <미생>을 통해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수목극은 사실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이나 다를 바 없다. 다른 시간대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가장 트렌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수목극들을 보면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들만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이러니 케이블 드라마로부터 배우라는 이야기가 나올 밖에.

드라마 여주인공을 보는 관점, 무엇이 달라졌나

<대장금> 시절 이영애는 단연 당대 최고의 여배우의 위치를 구가했다. 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펼친 <대장금>으로 인해 확고한 스타덤을 구축한 이영애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연기력으로도 우뚝 섰으며 ‘산소 같은 여자’라는 문구로 기억될 정도로 광고 모델로서도 최고의 위치를 구가했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하지만 SBS <사임당, 빛의 일기>로 돌아온 이영애는 여러모로 옛 영광의 흔적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가 가진 완성도 미숙과 사임당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현재적 관점에서 그만큼 매력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 등은 이를 연기하는 이영애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영애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만한 과거의 명성에 비추어 두각을 나타낼 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역시 오랜 만에 드라마 KBS <완벽한 아내>로 복귀한 고소영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완벽한 아내>는 꽤 완성도가 높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심재복을 연기하는 고소영보다 오히려 그 대립구도를 이루는 이은희 역할의 조여정이 더 눈에 띈다.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의 힘이 이은희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재복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문제가 크지만 역시 연기의 문제도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영애는 1990년부터 활동해 현재 27년째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고, 고소영 역시 1992년부터 시작했으니 25년차 연기자다. 사실 이 정도의 연배라면 주연급보다는 주연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주변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울릴 법 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한 여전한 외모는 이들이 지금도 주연을 맡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주연 여배우에게 외모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에서 우리는 이제 꽤 멀리 와 있다. 출중한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드라마 배역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연기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 되었다. 

이영애와 고소영 시절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현실감 없는 외모를 보여줬던 것과 달리 지금의 여주인공들은 훨씬 더 공감 갈 만한 외모의 소유자들로 바뀌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친근한 이미지가 훨씬 대중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나란히 수목드라마에 들어와 있는 MBC <자체발광 오피스>의 고아성과 KBS <추리의 여왕>의 최강희 같은 여배우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굉장한 외모로 주목을 끌기 보다는 친근한 외모가 오히려 만들어내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체발광 오피스>의 고아성을 보면 실로 이 작고 어린 여배우가 가진 잠재력에 놀라게 된다. 그녀는 이 드라마가 가진 코미디적 설정을 통한 웃음은 물론이고, 그 이면에 깔린 청춘들의 아픈 정서를 동시에 풀어내고 있다. 게다가 직장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오피스물의 엉뚱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면서도 동시에 판타지를 자극하는 멜로에도 능수능란하다. 고아성이라는 배우가 향후 얼마나 대성할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자질이 아닐 수 없다. 

<추리의 여왕>의 최강희는 이미 독특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여배우로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발랄함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적 정서까지 끌어내는 배우다. 어찌 보면 평범한 얼굴이지만 그녀가 가진 독특한 매력은 멜로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가진 개성을 연기의 영역으로 잘 살려낸 배우가 바로 최강희다. 

확실히 드라마의 여주인공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여전히 이영애와 고소영에 대한 향수를 가진 시청자들이 있지만, 그보다는 고아성이나 최강희 같은 지금의 세대에 소구하는 여주인공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 이것은 또한 연기자를 훨씬 더 직능적으로 바라보게 된 지금의 시청자들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자체발광 오피스’, 당신은 어떤 회사를 원합니까

“회사란 게 꼭 자식 같습디다. 작은 것을 키울 땐 내 것 같지만 크고 나면 내게 아니에요. 직원들 거고 우리 제품 찾는 소비자 거고.”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허구동 과장(김병춘)이 주선해 서우진(하석진)이 만난 하우라인의 회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건 이 드라마가 진짜로 하려던 이야기일 것이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사실 <자체발광 오피스>가 지금껏 포커스를 맞춰 온 건 은호원(고아성)을 중심으로 한 인턴들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청년 실업에 대한 갈증들이 첨예하게 담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어쨌든 하우라인이라는 회사에 들어와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한 이들이 처한 새로운 문제는 회사 자체의 시스템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이 청년 실업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저는 뭐 누구 라인 이런 거 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저한테 하우라인은 사주의 전횡 없는 좋은 회사란 이미지가 있고 제가 일한 만큼 인정받고 제 동료직원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상식적인 직장이길 바랄 뿐입니다.” 회장이 회사를 “자식 같다”고 표현하자 서우진은 “상식적인 직장”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언제 직원들이 회사에 대단한 것을 바랐던가. 적어도 상식이 지켜지는 회사를 바랐던 것이 아니었던가. 

회장을 만나고 온 서우진에게 허구동 과장은 자신이 그를 회장과 만나게 한 이유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허구동 과장은 옛날 직장생활의 이야기를 꺼낸다. “부장님은 모르시죠? 월급날 누런 봉투에 월급 받아 이번 달에는 얼만지 침 묻혀가며 세고 속 주머니에 월급봉투 들어앉은 그 뿌듯하고 든든한 기분.” 계좌로 직접 입금되는 요즘과는 달리 어딘지 정이나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그 때의 회사.

“월급날 그 봉투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한텐 그 때가 회사는 내 집 같았고 동료들은 내 식구 같았고 그런 회사로 다시 되돌리고 싶습니다.” 허구동 과장이 말하는 회사는 지금은 너무 멀리 와 기억에서도 가물해진 그런 과거의 회사다. IMF 이후 칼바람에 사라져버린 ‘사람 냄새 나는 회사’. <자체발광 오피스>가 은근슬쩍 꺼내놓는 새로운 판타지. 

“부장님 지금까지 비겁하게 도망만 치지 않았습니까. 맘에 안 들면 사표내고 더러운 꼴 피하시고 그래서 우리 회사로 오신 것 아닙니까. 이젠 바꿔보시죠. 맘에 안 들면 고치고 더러운 건 잘라내고 좋은 직장 자랑스러운 회사 만들어서 열심히 일해요. 여기서 왜 사장까지 못합니까. 집이 더러우면 자기가 치우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우라인 우리가 그렇게 한번 만들어 보십시다.” 

허구동 과장의 이 말과 그 말을 음미하며 어떤 각성을 하는 서우진. <자체발광 오피스>는 이제 은호원을 중심으로 하던 청년 실업 문제에서 나아가 서우진을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좋은 회사 만들기라는 새로운 직장인들의 판타지를 건드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젊은 세대의 공감은 분명했지만 중년층의 공감대가 애매했던 이 드라마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자체발광 오피스>라는 제목은 애초에 그 이중적인 의미로 좋은 회사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었다고 보인다. 즉 발광할 정도의 미쳐 돌아가는 비상식적인 회사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회사로의 변신. 서우진의 각성은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자체발광’ 고아성, 호모인턴스 현실의 자화상

스펙이 이게 뭐냐는 노골적인 면접관 앞에서 그녀는 말문이 막힌다. 성적은 좋지만 면접관은 ‘성적만’ 좋다고 폄하한다. 즉 성적은 기본이라는 것이고 그 위에 갖가지 스펙이 더해져야 비로소 면접 볼 자격이 있다는 식이다. 매일 같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느라 또 다른 스펙을 쌓는다는 건 언감생심이고 그나마 그 와중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는 걸 봐주는 면접관은 없다.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의 은호원(고아성)은 그렇게 무려 100번째 면접을 보고 떨어졌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그런데 101번째 면접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필이면 이전 면접에서 그녀의 스펙을 노골적으로 비하한 면접관 서우진(하석진)이 옮긴 회사에서 또다시 그와 면접을 보게 된 그녀는 사실상 포기상태로 할 말을 하고는 면접장을 빠져나온다. 그대로면 결코 합격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회사의 2세이자 의사인 서현(김동욱)이 그녀를 계약직 인턴으로 뽑아준다.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 이야기를 듣고는 탈출한 그들에게 왠지 모를 정을 느꼈다는 것. 

이런 일은 사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취업전선에서 거의 죽고 싶을 정도의 절망감을 느끼는 은호원이라는 인물이 주는 공감대는 이러한 비현실적 판타지마저 지지하게 만든다. 인턴으로 들어와 갖가지 잡무로 하루를 뛰어다니고 그러면서도 계약직이라며 정규직과 비교되고 비하되는 상황. 게다가 회사에서는 하청업체를 불러다 버젓이 접대를 하게 만들고 성희롱에 가까운 술자리에서조차 버텨내야 그나마 인턴직이라도 유지되는 상황. 

그래서 비장하게 사직서를 쓰지만 왜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직서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부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턴. 은호원은 그간의 일들을 하나하나 메일에 담아 상사에게 보내지만 전체 메일로 잘못 보내 온 회사가 발칵 뒤집힌다. 부장이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적혀 있었던 것. 내부자 고발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러나 은호원은 또다시 절망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건 같이 인턴으로 들어온 장강호(이호원)가 그녀의 고발을 모두 부인하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둘도 없이 챙기던 인턴끼리도 어쩔 수 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은호원이라는 인턴이 스스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시한부라 생각함으로써 회사의 갖가지 갑질과 부당한 대우에 똘끼를 발휘하는 모습은 그래서 의외로 통쾌하면서도 슬프다. 결국 그렇게 부당한 대우에 엉뚱한 똘끼로 대적하는 장면은 속이 시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죽음이라는 끝을 상정해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무거운 현실이 거기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청년 실업을 말해주는 다양한 신조어들이 탄생하고 있다. ‘호모인턴스’, ‘호모알바스’라는 신조어가 그것들 중 하나다. 인턴만 거듭되는 인생. 심지어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계속되는 인턴생활로 부장만큼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인턴을 ‘부장인턴’이라 부르기도 하고, 휴지처럼 쓰다 버려지는 처지를 빗대 ‘티슈인턴’이라는 지칭도 나온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은호원이라는 좌충우돌 똘끼 충만 인턴을 통해 우리네 청년 실업의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그 절절한 절망을 그리면서도 그것을 코믹한 풍자에 담아냄으로써 그 무게에 짓눌리게 하지 않는 방식은 이 드라마가 발랄해지는 이유다. 하지만 웃고 나면 남는 어떤 먹먹함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한껏 제 뜻을 펼쳐나가야 할 은호원이라는 인물이 느끼는 현실의 벽 같은 것에 대한 깊은 공감대에서 비롯되는 일일 게다.

‘자체발광 오피스’, 청춘 희비극이 제대로 먹히려면

웃프다. 아마도 MBC의 새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이것이 아닐까. 시작부터 한 회사 건물 창을 부순 채 돌진해 들어가 소화기를 쏘며 “왜 그랬어요!”를 외치는 취준생 은호원(고아성)의 모습은 그녀가 처한 절실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만 어딘지 과장된 절실함은 이 비극적인 청춘의 현실을 담은 드라마가 그 겉면으로는 코미디를 차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결국 한 바퀴 휘돌아 다시 그 건물 앞으로 돌아온 그녀는 창을 부수며 돌진하는 것이 그저 그녀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100번째 면접시험에서 면접관 서우진 팀장(하석진)에게 “백번이나 떨어지면 병신 아냐?”라는 말까지 들으며 굴욕을 참아냈던 은호원이 결국 그 시험에서도 떨어졌다는 걸 확인한 후 한강 다리 위에서 “삐뚤어질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슬프기 그지없다. 남들 스펙 준비할 때 생활고에 시달리며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그녀에게 돌아온 말이 고작 “졸업한 지 3년이나 됐는데 뭐하셨나 그래”라는 비아냥이다.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그녀에게는 그래서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 살아가는 일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취업현실은 누구에게나 취업 자체가 평범 그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런데 중심을 잃고 의지와 상관없이 한강물에 빠졌다 구조되어 한 응급실에서 깨어난 그녀의 귀에 들리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린다. 기껏 살아남았는데 시한부라는 것. 하지만 그 날 응급실에 자살시도를 하고 들어온 청춘이 자신만이 아니라 기택(이동휘)과 장강호(이호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시한부의 확률이 3분의 1이라는 상황은 이 비극 속에 희극적 요소를 심어놓는다. 병원비가 없어 기택과 함께 응급실에서 도망치고 바깥에서 만난 세 사람이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절망 속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웃음을 준다. 

청춘들의 취업 현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미생>의 장그래(임시완)가 떠올려지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미생>의 진지함과는 달리 조금은 가벼운 코미디적 요소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나 인물들의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인 무게감을 주면서도 조금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그 웃픈 현실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게다. 특히 비극적 현실을 희극적 상황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너무 처질 수 있는 드라마를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자체발광 오피스>의 첫 방 시청률은 고작 3.8%(닐슨 코리아)에 머물렀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부족했던 걸까. 물론 가장 큰 건 경쟁작인 KBS <김과장>이 떡 하니 버티고 있고 SBS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중장년층 시청층을 넓히고 있는 상황일 게다. <자체발광 오피스>만 놓고 보면 공감 가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경쟁작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그 시청층을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아 끌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나 상황이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생>은 장그래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상식 과장(이성민)이라는 중년층이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다. 하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적어도 첫 회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김과장> 역시 김과장(남궁민)은 물론이고 추부장(김원해) 같은 중년들이 공감할 캐릭터가 세워져 있고, <사임당, 빛의 일기>는 초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을 최대한 줄이고 사극에 집중함으로써 중장년 시청층을 끌어들였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그래서 그 작품 자체로는 빛이 나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보편적인 시청층을 끌어들이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면들이 많이 드러난다. 웃픈 청춘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가지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세대의 이야기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캐릭터나 상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오피스>가 겨눈 회사의 경쟁 시스템에 대한 칼날

 

회사의 경쟁 시스템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승진과 과락, 인턴과 정식사원. 밥줄을 쥐고 있는 회사는 트레이닝과 선발 과정이라는 명분으로 몇 개월씩 싸게 부려먹고는 입맛에 맞지 않고 내치기도 한다. 또 성실하게 일해 온 사원을 실적이 조금 안 나온다고 무능하다며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밀려난 인물들이 심지어 죽음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도 회사는 눈 하나 까닥 하지 않는다. <오피스>가 웬만한 공포물보다 더 무섭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일 게다.

 


사진출처:영화<오피스>

영화 <오피스>는 회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다. 워낙 진중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 질문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사회극에 가깝지만 영화는 웬만한 공포물을 뛰어넘는다. <미생> 같은 작품이 회사생활이 가진 비애를 휴먼드라마에 가깝게 그려낸다면 <오피스>는 그 비애의 차원을 넘어선 분노와 그 분노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담는다.

 

인턴으로 들어와 4개월 차에 접어든 이미례(고아성)는 늘 불안하다. 정식사원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동료들과 어우러질 수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유일한 인물이 김병국(배성우) 과장이다. 그 김병국 과장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회사로 숨어들어왔다. 착하디 착한 심성의 그를 왕따 했던 동료와 상사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오피스>가 포착하는 공포는 그러나 김병국 과장이 뿜어내는 그 살벌한 살인자의 느낌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그저 일하는 공간으로서 공유하고 있던 회사라는 곳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공간인가를 드러낸다. 한밤 중 모두가 퇴근한 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느껴지는 그 서늘함이라니.

 

회사에서 잠시 스트레스를 벗어나 숨을 돌리는 공간들은 그래서 <오피스>에서는 소름 돋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잠시 숨을 돌리듯 담배를 피우며 회사 뒷담화를 하곤 하는 계단 흡연 장소나, 그래도 혼자만의 공간이 될 수 있는 화장실 같은 공간이 그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놓는 공간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어가는 장면을 바라본다는 건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 공간이 그토록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람들 때문이다. 경쟁적인 현실. 누군가는 승진하고 누군가는 뒤로 밀려나며, 누군가는 정식사원이 되지만 누군가는 인턴의 끄트머리에 쫓겨날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이 경쟁적인 시스템 안에서 인간적인 관계 따위는 존재하기 어렵다. 혹여나 인간적인 관계를 드러내려 할 때면 그것은 자칫 무능함으로 낙인 찍히는 게 시스템의 법칙이다. 그래서 <오피스>에서는 뒤에서 수근 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소름 돋는 일이 된다.

 

그래서 <오피스>는 사회극처럼 그려졌지만 결과물은 공포물이 되었다. 시스템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 상황은 <오피스>가 그려내는 우리네 경쟁적인 사회의 단면이지만, 영화는 그 안에 서슬 퍼런 칼 한 자루를 던져 넣음으로써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들여다본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하지만 그 참혹한 결과가 보여주는 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 멀쩡하게 시스템으로 위장한 채 보여지는 회사의 실체이기도 할 것이다. 과연 거기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는가. <오피스>의 서슬 퍼런 질문은 우리네 일터의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아낸다.

 

어쨌든 조금 무거울 수밖에 없는 영화이고 또 공포물의 특징을 갖고 왔기 때문에 대중적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라는 공간에서 누구나 한번쯤 비애감이나 분노를 느꼈던 분들이라면 이 무시무시한 공포물이 한 편으로는 무의식 깊숙이 밀어 넣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표정을 가장하며 숨겨두었던 금기를 터트리는 쾌감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포물보다 더 무시무시한 회사의 풍경이라니.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는 현실은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닌가.



<풍문> 고아성, 정성주 작가의 깊이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캐릭터가 탄생했을까.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고아성)은 놀라운 캐릭터다. 한인상(이준)의 아이를 가져 그의 아버지 한정호(유준상)라는 상류층 괴물의 집에 포획된 존재처럼 보였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이 세상에 적응했고 괴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의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주무르는지를 터득해간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언니 서누리(공승연)가 상류층 자제를 잡아 그 세계에 입성하려 했다가 그 소문이 찌라시에 퍼지고 망신만 당하게 되자 서봄은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 서누리를 만나 따끔하게 현실을 인식시켜주고 최연희(유호정)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서정연)을 시켜 한정호의 업무 비서인 양재화(길해연)에게 그 물의를 빚게 만든 상류층 자제의 집안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한정호에게 이야기를 흘리게 한다.

 

결국 한정호가 그 상류층 자제의 집안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태는 반전된다. 즉 서누리가 그 상류층 자제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거꾸로 그 상류층 자제가 서누리를 쫓아다닌 사실로 이야기가 둔갑한 것. 이 소문은 다시 찌라시를 타고 퍼져나감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 집안의 비서들은 아주 조금씩 이 작은 사모인 서봄의 존재감에 압도당한다. 최연희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에게 자신은 시어머니와 달리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무릎 꿇리고 나아가 그녀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런 섬뜩한 면을 보이면서도 시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리숙한 듯 행동한다. 이선숙이 무릎 꿇고 있는 걸 목격한 최연희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서봄은 제가 뒤끝이 좀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마치 아이가 하는 행동인 것처럼 위장한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초반부에 보여준 것이 한정호라는 괴물을 블랙코미디식으로 풍자해낸 것이라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드라마는 이 슈퍼갑의 세계에 들어온 평범한 서민 을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은 자신을 대접해주는 척 하는 한정호 때문에 우쭐해하며 갑 행세가 주는 권력놀이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고, 서누리는 동생을 질투하며 자신도 그 욕망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유일하게 서봄의 엄마 김진애(윤복인)만이 이런 가족의 변화를 감지하며 불안해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 서봄이다. 그녀는 시부모 앞에서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하지만 뒤에서는 엄숙한 어른의 얼굴로 비서들을 혼쭐내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 또한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보여주는 지적 능력을 통해 최연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인 한인상에게는 여전히 연인 같은 풋풋함을 보여주고 친정에는 애틋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서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그녀는 섬뜩하면서도 애잔하다. 그 변화가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의 생존본능이라는 데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강해져야 친정 가족들도 보호해줄 수 있다는 자각은 서봄의 변화를 만든 동력 중 하나다. 그리고 자기가 결국은 기대야할 한정호와 최연희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티를 낸다. 고졸이라는 사실을 굳이 일깨우는 최연희에게 . 고졸 딸께요.”라고 말하는 어른 아이.

 

정성주 작가가 그리는 갑과 을의 세계는 거기 서 있는 인물의 태생적 문제가 아니라 그 위치와 시스템이 만드는 권력적 관계로서 그려진다. 즉 서봄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양가적 감정의 정체는 그녀가 을의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갑의 시스템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실로 정성주 작가가 가진 세계의 깊이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를 서봄이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고아성의 놀라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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