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이 끄집어낸 숨은 공력의 연기자들

저 배우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던 그 돌담병원 원장이 맞아? 연기자 김홍파의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의 변신은 놀라웠다. 돌담병원 원장의 이미지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귓속말>에서 그가 연기한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의 그 강렬함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대기업 총수 중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 

'귓속말(사진출처:SBS)'

건들건들 대며 걷는 모습이나 로펌 태백의 최일환(김갑수) 대표와 각을 세울 때 빙글빙글 비웃음을 치며 눈에는 살기가 가득한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귓속말>의 치고 박는 복마전을 흥미롭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강유택 회장과 최일환 대표라는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대립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갑수와 마주 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라니.

<귓속말>이 끝없이 상황이 바뀌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전투구의 상황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안정감을 갖는 이유는 바로 김홍파 같은 연기자가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권율 역시 그런 연기자들 중 한 명이다. 물론 <싸우자 귀신아>에서도 의외로 섬뜩한 캐릭터 연기를 잘 소화해낸 그였지만 <귓속말>에서는 강유택의 아들 강정일 변호사 역할로 과거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얼굴은, 창백한 낯빛과 무표정으로 ‘악마의 형상’ 같은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최일환과 강유택의 대립구도가 위에서 조종하는 권력다툼이라면 이동준(이상윤)과 강정일의 대립구도는 그 밑에서 직접 실행을 통해 부딪치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악역으로서의 권율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드라마에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김홍파와 권율이 그래도 과거 작품들을 통해 어느 정도 연기 공력을 감지할 수 있었던 배우라면 <귓속말>에서 스폰서 검사로 낙인찍혀 검사복을 벗어 최일환의 비서가 되었지만 그 사건이 결국 최일환의 사주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고는 분노하는 송태곤 역할의 김형묵이라는 배우는 갑자기 시청자들 앞에 나타난 ‘미친 존재감’이다. 물론 목소리를 들으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뮤지컬배우로서 김형묵은 잘 알려져 있지만 배우로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 최일환과 강유택 회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송태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는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드라마의 힘은 악역이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귓속말>이 발견해낸 김홍파, 권율, 김형묵은 이 드라마가 끝없이 요동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주인공들보다 더 강렬한 존재감이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 캐릭터가 가진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만만찮은 연기 공력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향후 이들이 보일 연기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될 만큼.

‘귓속말’, 이들의 폭주가 보여주는 통쾌함과 씁쓸함

“법대로 살 수 없어 사는 법을 배웠죠.” 이동준(이상윤)이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던진 이 말은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긴장을 늦추고 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없는 대결구도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또한 끝없이 새로운 판이 그 때마다 짜지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다시 내일의 적이 된다. 

'귓속말(사진출처:SBS)'

이들이 대립하는 가장 큰 골격은 로펌 태백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최일환과 보국산업 강유택(김홍파)의 패권다툼이다. 하지만 이 대결구도 속에 틀어 앉은 또 하나의 사건이 방산비리다. 보국산업과 태백이 얽혀 있는 이 비리를 캐던 기자가 최일환의 딸 최수연의 사주로 인해 살해당하고 그녀의 연인인 강정일(권율) 역시 그 살해에 동조한다. 그리고 살인범으로 대신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 신창호(강신일)가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여기에 판사였던 이동준은 최일환의 위협에 못 이겨 신창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잘못된 판결을 내게 된다. 

비리 기업이 있고 그 비리에 동조하고 있는 로펌이 있으며 그걸 취재하다 죽음을 맞이한 기자가 있다. 그 기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딸 신영주가 나선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관계들은 사건과 비리와 권력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은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연인 관계보다도 더 앞서있다. 

최일환은 태백을 집어 삼키려는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과 맞서기 위해 딸 최수연(박세영)이 사랑하는 강회장의 아들 강정일(권율)을 밀어내고 대신 이동준과 정략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최일환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이 딸이다. 강정일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딸은 모든 죄를 자신이 내린 것이라고 증언하라며 오히려 아버지 최일환을 겁박한다. 

이런 상황은 강정일과 강유택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강유택은 아들 강정일을 태백에 심어놓고 결국 그 태백을 집어삼킬 야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강정일을 밀어내려는 최일환의 공격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아들이 최일환의 딸 최수연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은 탐탁찮은 일이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강정일을 직접 도와주지 않고 대신 그에게 최수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라고 제안한다. 

가족도 믿지 못하는 얄팍한 인간적 관계인데다, 법이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귓속말>의 세계는 그래서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법 역시 정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귓속말>이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냉혹한 세계가 거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경수 작가가 <황금의 제국>이나 <펀치>를 통해 지금껏 그려온 권력자들의 세상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흥미진진함이고 속 시원함이며 동시에 씁쓸함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세계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고, 한껏 몰렸던 누군가가 하나의 키를 새롭게 쥐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나 이 싸움판을 보게 되면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법 정의와는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귓속말>은 법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는 법에만 능숙한 이들의 대결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풍자적 관점 또한 들어 있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들인가.

대립-공조-공감, ‘귓속말’이 담는 특별한 멜로 방정식

신영주(이보영)와 이동준(이상윤)은 과연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찮다. 조폭들에게 추적당하며 죽을 위기에 처한 이동준과 그를 구하러 온 신영주. 자신을 놔두고 가라며 조폭에게 소리를 내려하는 이동준의 입을 막은 신영주의 입. 그것은 키스였을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에 불과했던 걸까. 

'귓속말(사진출처:SBS)'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 변화는 이 드라마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거대 로펌 태백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 속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같은 편이 되었다가 또 다른 상황을 만나면 적으로 맞서게 되는 게 이 권력 시스템의 적자생존 구조다. 그것은 부모 자식 관계인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과 그 딸인 최수연(박세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그 태백의 권력 시스템 안에서 유일하게 다른 관계를 가진 이들은 강정일(권율)과 최수연이다. 그들은 단순한 이익관계나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의한 관계와는 다른 연인관계다. 어디서 어떤 배신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이 살벌한 시스템 안에서 이런 인간적 관계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단순한 이익을 위한 선택 그 이상의 선택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는 대립관계로부터 시작했다. 즉 판사시절 소신을 버린 이동준에 의해 신영주의 아버지가 감옥에 가게 되었고, 신영주 역시 형사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신영주는 술 취한 이동준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 그를 협박한다. 대립관계지만 이동준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사면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신영주는 그래서 그와 각을 세우면서도 공조하는 입장이 된다. 

이동준의 비서로 태백에 들어온 신영주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돕게 되고 또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두 사람 관계는 조금씩 바뀐다. 이동준이 자신이 판사시절 소신을 버렸던 일을 차츰 후회하게 되고 그래서 단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공조하던 관계를 넘어서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속죄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폐암 3기를 판정받은 신영주 부친의 형 집행정지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사지에 들어가는 것. 이 선택은 이익이나 생존과는 상관없는 인간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자 신영주 역시 비슷한 인간적 선택을 하게 된다. 부친의 형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미 자신이 얻을 건 얻은 상황이지만 이동준을 구하기 위해 그 위험한 곳으로 뛰어든 것. 칼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동준과 그 상처부위를 손으로 누르며 그를 지지하는 신영주. 그리고 그 순간 신영주가 한 키스는 그래서 단순히 상대방의 입을 막기 위함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신영주와 이동준의 이런 인간적 관계의 바탕이 되는 건 ‘공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인정하며 참회하는 이동준은 그녀가 처한 입장을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한 이동준의 입장을 또한 신영주 역시 공감하고 그 위험에 같이 뛰어든다.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대립관계에서 시작해 공조관계 그리고 공감의 관계로까지 바뀌게 되면서 <귓속말>의 로펌 태백에서 벌어지는 권력 시소게임은 더 팽팽한 상황으로 접어들게 됐다. 강정일과 최수연의 관계와 이제 제대로 맞서게 될 신영주와 이동준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귓속말>은 굳이 주인공들 사이에 이런 관계의 변화를 그려 넣으려 했던 걸까. 그것은 물론 그저 치고 받는 권력의 시소게임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을 함께 잡아내려 하는 것이고, 또한 이 복마전 속에 그래도 인간적인 면을 만들어내는 멜로 관계 같은 걸 집어넣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그보다는 살벌한 생존경쟁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적 관계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드러내기 위함은 아닐까.

‘귓속말’ 권력게임, 이것이 바로 박경수표 드라마의 맛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이 드디어 본 매력을 드러냈다. 사실 3회까지 <귓속말>의 전개는 빠르긴 했지만 너무 많은 인물들과 상황들이 동시에 보여지면서 혼돈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던 건 시청자들이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이렇게 된 건 드라마를 사실상 이끌어가는 이동준(이상윤)이 너무 상황에 질질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귓속말(사진출처:SBS)'

하지만 4회는 <귓속말>에 드리워졌던 이런 불안감과 답답함을 단번에 지워내기에 충분한 긴박한 이야기 전개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된 건 역시 이동준이 반격을 시작하게 되면서 생겨난 확실한 대결구도 때문이다. 3회 마지막에 강정일(권율)이 친 덫에 걸려 마약 상습복용자로 입건될 위기에 처했던 이동준은 신영주(이보영)의 도움으로 위기상황을 모면한 후 강정일과 그와 내연관계인 그의 아내 최수연(박세영)에게 통쾌한 일격을 가했다. 

<귓속말>의 이야기가 쫄깃하게 된 건 이처럼 이동준을 둘러싸고 신영주, 강정일, 최수연 그리고 장인인 태백의 대표인 최일환(김갑수)과 권력 게임 속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치고 박는 반전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역시 박경수 작가는 <펀치>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권력 시스템 안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치고 박는 전개를 그려나갈 때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맛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쫄깃함은 사실 태백의 대표인 최일환과, 부모 대부터 주인과 하인으로 이어졌던 악연을 가진 강유택(김홍파) 사이의 로펌 태백을 둘러싼 경영권 싸움에서 비롯된다. 강유택은 자신의 아들 강정일이 태백을 먹어치우기를 원하지만 최일환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딸 최수연이 능력이 부족해 태백을 이어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최일환은 촉망받던 판사 이동준을 사위로 들여 그걸 막아내려 한다. 

최일환과 강유택 그리고 이동준과 강정일의 선명한 대결구도가 드러나면서 <귓속말>의 권력 게임은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권력을 쥐지 않으면 권력에 의해 생존이 불가능해지는 살벌한 게임은 시청자들에게는 한 번씩 치고 맞을 때마다 쫄깃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일종의 싸움 구경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싸움이 아니고 권력과 관계되어 있으며 그 권력의 연원이 과거 주인과 종 사이의 계급관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워진다.

그러고 보면 지난 3회는 이러한 본격적인 전개를 위한 밑그림이었다는 게 명확해진다. 이동준의 싸움은 그들 사이에서는 권력 투쟁이지만 신영주의 입장에서 보면 덮여진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되돌리는 일이 된다. 그래서 신영주가 이동준에게 말하듯 이 싸움의 끝에 진실이 밝혀지면 자신과 가족들은 다시 그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이동준은 태백의 주인이 될 것이라며 갈수록 혼탁해질 세상에 혀를 차는 대목은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메시지와 재미 부분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드라마적 재미는 권력 투쟁의 밀고 당기는 게임에서 나올 것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미는 신영주가 말하는 ‘쓸쓸하지만 그래도 추구되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문제에서 찾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수표 드라마가 늘 쫄깃한 재미와 함께 동시에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를 파헤쳐 들어가는 그 지적인 의미들을 보여줬던 그 연장선 안에 이 작품 역시 서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 전제 되어야 할 절대적인 캐릭터가 바로 이동준이다. 이동준은 권력 게임의 냉철한 대응을 통해 재미를 주면서도 동시에 신영주와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나 진실에 대한 고민들을 찾는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욕망의 화신인 아버지 이호범(김창완)과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 정미경(김서라)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드디어 그 이동준이 깨어났고 따라서 <귓속말>은 이제 본격적인 드라마의 맛을 내기 시작했다.

‘귓속말’, 첫 회만 봐도 우리 시국의 밑바닥이 보인다

“법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도적을 법비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법률회사 태백은 법비라고 하더군요. 도적떼나 되려고 법 배운 게 아닙니다.” 대놓고 시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라도 하려는 걸까. SBS 새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첫 회는 현 탄핵 시국을 맞은 우리네 현실의 적나라한 시스템을 화두로 던졌다. ‘법비(法匪)’. 지금 이 단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 치면 우리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이른바 ‘법꾸라지’로 지칭되는 이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귓속말> 첫 회 대쪽 같은 판사 이동준(이상윤)은 자신을 회유하려는 로펌 태백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바로 이 ‘법비’라는 표현을 썼다. 

'귓속말(사진출처:SBS)'

법비 로펌 태백은 정관계까지 광범위하게 권력을 뻗치고 있는 시대의 악. 태백의 최일환은 방산비리가 드러날 위기에 놓이자 그 진실을 추적하던 기자를 살해하고 그의 선배 해직기자였던 신창호(강신일)를 살인범으로 몰아 사건을 덮으려 한다. 그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증거도 나왔지만 태백의 힘은 막강하다. 판결을 맡게 된 대쪽 같던 판사 이동준마저 그 신념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일 만큼. 판사 임용을 저지하고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겠다는 위협 앞에 이동준은 결국 소신을 저버린다. 

이 과정에서 신창호 살인죄로 형이 확정되고, 그의 딸인 형사 신영주(이보영)은 형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법이 무고한 서민들을 지켜주기는커녕, 권력자들이 마구 휘두르는 칼날이 되어 서민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현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네 참담한 법비들이 활개치는 현실이 드러난다. 아버지의 도움마저 물리칠 정도로 소신 있던 이동준 판사가 결국 무너지는 그 과정은 우리네 사회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말 안 듣는 소신 있는 판사는 재임용 심사에서 누락시켜버리고, 그 싹마저 밟아버리기 위해 사찰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선 일을 판사의 권력 남용으로 몰아세운다. 갖가지 비윤리적인 일들을 해온 법비는 이동준 같은 판사를 끌어들여 이미지 세탁을 하려 한다. 위협과 함께 회유책도 따라온다. 태백에 무릎을 꿇으면 이동준을 사위로 삼고, 그의 아버지를 대통령 주치의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소신을 버리는 순간, 권력을 쥐게 되는 시스템의 구조. 게다가 충격적인 건 이들의 악행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까지 보여준다는 점이다. 

“악은 성실하다.” 탄핵 시국 속에서 법망을 피해가려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하는 그 과정들 속에서 대중들은 이 대사가 실감났을 게다. <귓속말>이 첫 회에 보여준 건 그래서 이토록 성실하게 악행을 준비하고 처리해가는 그 우리네 현실의 밑바닥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을 첫 회에 드러낸 이유 또한 명백하다. 그 곳에 내버려져 더 이상 잃을 것조차 없는 신영주 같은 인물들이 온 몸을 던져 법비와 대항해가는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귓속말>이라는 제목에 담겨진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거꾸로 우리네 현실이 이런 소소한 서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이 없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저들이 방산비리를 일삼으며 자신들의 권력의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소소한 서민들이 쓰러져 나갔다는 사실을 큰 소리로 듣지 못하고 그저 작은 소리로 치부하는 현실. 하지만 그 작은 귓속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우리는 또한 이번 시국에서 느끼지 않았던가. 드라마 <귓속말>이 보여줄 시국과의 한판 승부에서 과연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몽땅 내 사랑', 진짜 막장 시트콤이 되지 않으려면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의 시청률은 평균 10%(agb 닐슨) 정도. 그렇게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성적도 아니다. 그럭저럭 시청을 할 만하지만 보고나면 그다지 여운이 남질 않는다. 확실한 웃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시청률보다 더 안 좋은 건 화제성이다. 그다지 확실한 반응이 별로 없다. 관성적인 시청이 많다는 얘기다.

'몽땅 내 사랑'의 출연진만을 놓고 보면 이런 상황은 사실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연기 지존으로 불리는 김갑수가 있고, 예능돌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조권과 가인이 있다. 박미선 같은 이미 시트콤 경험이 있는 베테랑 코미디언도 있는데다가, 비스트의 윤두준 같은 시트콤을 활기 있게 만드는 신선한 얼굴도 있다. 그런데 왜 별 화제를 만들어내지 못할까. 왜 확실한 팬층을 확보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몽땅 내 사랑'은 재미 포인트로서 '막장 시트콤'을 주창했다. 한 마디로 스토리가 팔자 고치기 위해 김원장(김갑수)을 속이고 결혼하는 박미선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 황옥엽(조권)이 하도 사고를 치는 통에(김원장하고도 얽힌다) 박미선은 가짜 아들을 김원장에게 보여주고 결혼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사기 결혼인 셈이다. 그래서 옥엽은 미선과 함께 살지 못하고 승아(윤승아)네 집에 얹혀산다.

'몽땅 내 사랑'이 아무리 작금의 세태를 비판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주인공들의 행동에 대한 근거 제시는 필요한 법이다. 세태 비판은 사회적 환경을 비판하는 것이어야지 인물 비판에 머물러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이런 세태의 문제가 그 사람만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저 아무에게나 빌붙는 박미선네 가족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다. 주인공들의 행동에 근거나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악행(?)은 그저 인물의 매력을 떨어뜨리게만 만든다.

매력 없는 캐릭터가 제대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 것이다. 캐릭터가 구축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아무리 김원장이 길바닥에서 똥을 싸고, 금지(가인)가 작은 눈 때문에 성형을 고민하며, 옥엽이 승아만 보면 자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오버를 한다고 해도 거기에 합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캐릭터는 세워질 수 없다. 캐릭터가 없으면 웃음은 그 때 그 때 임기웅변적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결국 시트콤 같은 연속적으로 방영되는 장르에서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면 지속적인 시청은 어렵게 된다.

현재 '몽땅 내 사랑'의 설정들이 대부분 멜로관계로 점철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김원장과 박미선 사이의 멜로는 이 시트콤의 설정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옥엽과 승아, 승아와 전태수 같은 멜로 설정은 시기상조다. 멜로는 결국은 가장 쉽고도 뻔한 장치로 흐를 수 있다. 오히려 다른 아이디어들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물들의 캐릭터가 좀더 분명하게 세워져야 할 시간에 멜로 라인을 만드는 건 시트콤을 더 고리타분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시트콤은 말 그대로 시추에이션 코미디다. 즉 상황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그 상황은 희극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희극은 비극만큼이나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황과 웃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쩌면 희극이 아니고 비극인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몽땅 내 사랑'은 시트콤이라고는 하지만 어쩔 때는 그저 조금 과장된 드라마로 보일 때가 많다. 시트콤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라는 얘기다.

'막장 시트콤'이라고 주창하고 나왔을 때 솔깃했던 것은 막장 드라마가 갖는 비현실성을 패러디함으로써 오히려 현실을 돌아보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김갑수 같은 명배우가 자리한다는 것은 그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저 말 그대로의 엉성하다는 의미로서의 막장 시트콤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몽땅 내 사랑'이 잃어버린 존재감을 다시 찾으려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아이디어로 캐릭터 하나하나를 다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미 각자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출연진들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한다면 너무 늦은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어떤 공감대가 앞으로라도 형성되기를 바란다. 그래도 10% 정도의 시청률을 꾸준히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회는 있는 셈이다.

고슴도치 같은 '신데렐라 언니'의 사랑법

"옛날에 나 이집 떠날 때. 기차역에 왜 안 나왔어? 편지 못 받았어? 기차역으로 나와 달란 편지. 효선이한테 전하랬는데. 효선이가 혹시 안 전했었니? 응?" '신데렐라 언니'의 이 대사는 전형적이다. 이 부분만 들어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기훈(천정명)의 질문에 대해 은조(문근영)가 "받았어"하고 말하는 장면은 그 전형성을 벗어난다. 사실 받지 못했고, 당시 그 편지 한 장이 은조에게 어떤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 은조의 독한 말에서 다양한 뉘앙스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읽고 나서 찢어버렸는지 태워버렸는지도 생각 안나는 데, 내가 그걸 여태까지 기억해야 돼? 거지 같이 굴지 마. 누구한테 뭘 구걸하고 있는 거야. 나한테 옛날 일을 얻어가겠다고? 줄 거 없어. 나한테 옛날 일 같은 거 묻지 마. 그딴 거 없어. 없다고 했잖아." 이 말투는 그녀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말투다.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 눈물을 쏟아내는 그녀는 왜 이다지도 독하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받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고 하는 걸까.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남자가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진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건 새아버지 구대성(김갑수)이다. 엄마가 "뜯어먹을 게 많아서 좋다"는 그 남자. 그래서 엄마의 부채감까지 혼자 짊어진 은조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대성도가의 일에만 몰두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려 한다. 심지어 그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 효선(서우)까지 돌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 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면서도, 그 편지를 전하지 않은 것이 효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봐주려고 한다.

"편지 안 전했다는 거 그게 유치하다는 거지? 그럼 그 유치함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라는 게 그건 뭔데?" 효선의 추궁에 은조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처음으로..."하며 끝내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떨군다. 이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 편지 시퀀스는 '신데렐라 언니'라는 드라마가 가진 힘을 잘 보여준다. 은조가 "유치하고 끔찍하다"고 표현한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 있는 상황은 유치할 정도로 전형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섬뜩할 정도로 끔찍하다.

많은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있는 편지는 그깟 편지 한 장이 아니다. 늘 사랑받으며 사는 것이 당연한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그 일이,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하며 살아온 은조에게는 끔찍한 결과였을 테니까. 유치함이 끔찍함이 되는 상황.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신데렐라 언니'가 보여주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은조의 그 독함에서조차 마음이 끌리게 된다. 드라마가 그 독함 이면에 숨겨진 그녀의 가녀림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을 독하게 밀어내고,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기훈이 떠나자 다시 마음을 닫아 버린 은조. 그래도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깊은 부채감으로서 일의 세계에 몰두해온 은조에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래서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온다. 이로써 그녀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준 이들은 모두 떠나버리게 된 것이니까.

유치함마저 끔찍함으로 바라보는 그 섬세한 시선은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독한 사랑을 보여주면서도 그 독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이 깊이 있는 시선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말투, 말 그 이면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드라마가 인간에 대한 어떤 깊은 이해와 공감을 추구한다면, '신데렐라 언니'는 거기에 가장 잘 부합하는 드라마일 것이다. 다가갈수록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세워진 은조의 가시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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