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김수현·설리 노출조차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괴작

이 정도면 어쨌든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게 되지 않을까. 영화 <리얼>의 평점은 4,5점대에 머물러 있다. 보통 영화가 개봉 후 바로 이런 평점을 받게 되면 흔히들 ‘평점 테러’를 염두에 두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제목 그대로 ‘리얼’ 반응이 그렇다. 영화에 따라붙는 댓글들에서 좋은 평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 

사진출처:영화<리얼>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이 두 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버티기가 못내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몇몇 관객들은 헛웃음이 섞인 “대박”이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물론 그건 영화가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 반대의 의미로서의 ‘대박’이다. 물론 관객 중에는 자기 돈을 내고 들어왔지만 못내 못 버티고 중간에 박차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리얼>은 시에스타라는 카지노 오픈을 앞둔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나누는 첫 시퀀스까지만 해도 흥미로웠다. 두 개의 인격이 그에게 존재하고, 그래서 다른 인격인 르뽀 작가를 제거하기 위해 의사는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식물인간에게 그 르뽀 작가의 인격을 집어넣은 후 살해함으로써 장태영이 하나의 인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식물인간에게 투입된 르뽀 작가의 인격이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서 두 명의 장태영(보스 장태영과 르뽀 작가 장태영)이 서로 자신이 리얼임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려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고 또 실제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은 마치 원펀맨(원펀치맨)처럼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그러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영화는 마약에 의한 환상인 것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더 큰 그림 안에서 들여다보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태영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두 인격의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재력을 통해 성형수술을 하고 시에스타의 지분 절반을 갖게 된 르뽀작가 장태영은 보스 장태영의 짝퉁처럼 인식되지만, 차츰 그 자리를 장악해나가고 결국 짝퉁과 실제가 뒤바뀌는 상황까지 나간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누가 리얼이고 누가 짝퉁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들어간다. 

시에스타라는 카지노가 의미하는 자본이라는 상징과, 카지노 칩에 들어있는 마약이 의미하는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욕망의 힘. 그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영화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자못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의도일 뿐, 영화는 그 의도를 관객에게 전혀 설득시키지 못한다. 이렇다 할 내적 개연성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는 그래서 그 표피적인 것들만 남게 되었다. 마약, 노출, 섹스, 폭력이 그것이다.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에 110억이라는 제작비만으로도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게 만드는 영화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된 내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게 되자 결국 남게 된 건 자극들뿐이다. 하지만 그 자극들조차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도드라져 보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전라의 노출이 있어도 그다지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사실 김수현의 팬이라고 해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들이 전면에 나오지 않고 대신 김수현과 설리의 파격 노출 같은 이야기만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1인2역을 소화해내는 김수현의 연기력이 아깝지만 어쩌랴. <리얼>은 그 과함이 독이 되어 문제작이 되지 못하고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괴작으로 남게 되었다.

게임에 집착하는 동안 ‘1박2일’이 잃게 되는 것들

“이래도 되는지 몰라. 공원에서.” 아마 자신들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원에서 팬티까지 벗고 있는 것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경남 통영에서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이 이른바 ‘옷벗기 강강술래’ 게임을 하면서 생긴 일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순신공원에서 김준호, 차태현, 데프콘은 배(먹는 배)와 점심식사를 걸고 옷을 더 많이 벗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을 했다. ‘노출왕’으로 불리는 김준호는 수건으로 가린 채 팬티까지 벗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창피하다. 동네 주민들도 계시는데.” 한편 김종민, 정준영, 윤시윤은 같은 시간 서피랑 99계단에서 입고 있던 옷들을 벗어 이어 붙여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그들 역시 팬티만 남기고 남김없이 옷을 벗으면서도 어딘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건 다름 아닌 공공장소가 아닌가. 제아무리 방송 중 게임이라고 해도 너무 과했다는 건 그들도 느꼈을 대목이다. 이들의 노출로 인해 이순신공원과 서피랑 99계단의 풍광들은 퇴색되어 버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두 팀은 스마트폰 화상 전화로 통화를 하며 이 게임에 얼마나 걸 것인가에 대한 베팅을 했다. 그런데 데프콘은 장난삼아 자신들이 얼마나 벗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팬티까지 벗고 수건으로 중요부위만 가리고 있는 김준호의 수건 안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상대팀은 헛웃음을 짓고 김준호는 이거 찍히는 거 아니냐며 화를 냈다. 그건 장난처럼 진행된 것이었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준영이 여자친구와의 사적인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되었다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상황이다. 너무 경솔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순신 공원에서 옷을 벗은 채 김준호, 차태현, 데프콘은 농담을 했다. 그 곳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금지한 푯말에 ‘노출금지’라는 새로운 항목이 생길 것이라고. 제작진은 그 농담을 또한 친절하게 보여주기 위해 ‘노출금지’ 푯말을 CG로 편집해 집어넣었다. 제작진들도 그것이 ‘금지 항목’이 될 정도로 볼썽사나운 일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것이 버젓이 방송에 나왔다. 

결국 팬티까지 벗었지만 김준호, 차태현, 데프콘은 게임에서 졌다. 그러자 차태현이 “역시 올인은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고, 김준호는 “왜 그랬을까” 후회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상황이 오면 또 하게 된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물론 거기서 무엇을 지목해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다분히 그 이야기의 뉘앙스는 ‘도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배’를 걸고 하는 게임 자체가 도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공공장소에서 팬티까지 벗고, 매번 후회하면서도 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과연 주말 가족들이 둘러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적절했을까. 그것도 하필 김준호의 입에서?

어째서 <1박2일>은 이런 무리수를 내보내게 된 것일까. 그건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준호가 던진 그 말은 사실 <1박2일>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후회다. “왜 그랬을까.” 웃음을 주겠다고 복불복 게임을 하는 것까지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거기에 너무 경도되어 수위를 넘겨버리는 순간 <1박2일>은 본래 갖고 있던 정감이나 토착적인 색깔, 여행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린다. 게임에 빠져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1박2일> 제작진은 이번 이 방송분을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과도했는지 그래서 무엇이 본질을 흐트러트리고 무엇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했는가를 하나하나 점검해봐야 한다. 이게 무슨 문제냐며 재밌지 않느냐고 강변하는 듯한 방송 편집을 보면 제작진 역시 이 과도해진 게임에 둔감해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 집착하는 동안 <1박2일>이 잃게 되는 것들을 다시금 고민해 봐야할 시점이다. 저지르고 후회하는 걸 반복하지말고.

<동상이몽>, 아빠는 왜 딸 보호에 집착하게 됐을까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에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딸의 옷차림에 집착하는 아빠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핑크색 옷이 남자들을 자극한다며 딸이 입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막기도 하도, 핫팬츠를 입은 딸에게 심지어 그런 건 쓰레기들이나 입는 것이라고 폭언을 하는 아빠. 통금시간도 8시로 정해놓고 1분만 늦어도 잔소리를 늘어놓는 그는 제아무리 보호 차원이라고 해도 과도하다 싶었다.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사진출처:SBS)'

하지만 <동상이몽>이 늘 그러하듯이 아빠의 입장을 대변하는 화면에서는 그가 왜 그렇게 과도하게 딸의 보호에 집착하게 됐는가가 드러났다. 딸이 핫팬츠 차림으로 찍어 SNS에 올린 사진을 누군가 캡처해 인터넷에 게시해놨는데 거기에 입에 담지 못할 악플과 음란한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는 것. 그걸 보게 된 딸이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아빠가 그토록 딸의 옷차림에 신경 쓰고 통금시간을 정해 잔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는 바로 그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물론 성격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처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아리따운 딸이 노출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큰 불안으로 자리했던 것.

 

<동상이몽>은 물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너무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짧게 방영된 딸의 사진이 게재된 SNS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이른바 투명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저변을 타고 우리에게 일상화되어 있는 셀카 문화는 이 투명사회가 작동하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다. 스스로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과시하듯 드러내는 것이 마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 사회. 이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전시되는 가치로서 매겨지기 마련이다. 즉 전시되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끼는 사회라는 것.

 

하지만 이렇게 부추겨진 전시는 <동상이몽>이 보여주듯 그 자체로 이상하게 소비되거나 심지어 범죄행위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사생활이 공개된 이도 피해자로 만들지만 누구나 그런 사진 아래 버젓이 자극적인 댓글을 달아야 될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댓글을 단 이들 또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어낸다.

 

<동상이몽>의 아빠는 심지어 이런 내막을 모르고 봤을 때는 너무나 집착이 과도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아빠의 잘못인가. 그런 과도한 집착을 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불안함이 그 진짜 원인이 아닐까. 그 모습이 심지어 병적이라면 정상적인 아빠를 그렇게까지 몰고 간 사회 역시 병적이라는 얘기는 아닐까.

 

<동상이몽>은 결국 아빠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딸 역시 아빠를 사랑한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다면 이들의 갈등을 만들어낸 건 도대체 뭘까. 우리가 매일 같이 당연한 듯 하고 있는 투명사회의 무수한 강령들, 즉 자신을 과시하듯 전시함으로써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그런 전시된 것에 자극적인 코멘트를 다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불안 요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노출만 보이는 스텔라, 노출 마케팅의 함정

 

노출만 보지 마시고 다양한 시선으로 봐 주셨으면 한다.” 스텔라의 여섯 번째 싱글 떨려요언론 쇼케이스에서 막내인 전율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노출이라고 해서 너무 안 좋게만 보일까봐 사실 걱정이 된다.” “여자가 섹시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스텔라는 쇼케이스에서 줄곧 노출에 대한 우려와 입장을 드러냈다.

 


사진=디엔터테인먼트파스칼

쇼케이스에서 보여준 무대 역시 보이는 건 안무였다. 이미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이제는 식상할 만도 할 안무들이 이어졌다.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쑥 내밀고 가슴을 손으로 쓸어 모으는 듯한 동작들이 반복됐다. 아예 무대에 누워 유혹하는 듯한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다. 노래가 끝났지만 무슨 노래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노출의상과 야릇한 동작들만 아른거릴 뿐이다.

 

스텔라의 뮤직비디오는 티저와 스틸컷이 올라온 것만으로도 그 파격적인 노출에 대한 논란이 터져 나왔다. 끈 팬티를 밖으로 드러낸 치파오 의상을 보여준 자켓 이미지가 논란을 일으켰고, ‘떨려요뮤직비디오에서는 전라처럼 중요부위만 가린 여성의 신체가 보여지기도 했다. 쇼케이스에 대해서는 이른바 엉밑살(엉덩이 밑의 살)’ 노출이 화제가 되고 있다.

 

노출만 보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은 마치 노출을 보라는 말처럼 달리 들린다. 실제로 반라의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여성 신체의 중요 부위들이 춤 동작이라는 미명 하에 전시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노래가 귀에 들어올 리 만무다. 그것은 마치 선정적이기를 작정한 무대에서 배경음악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노출이 가진 양면성은 그 한계 또한 명확히 드러낸다. 물론 스텔라가 이런 화제가 되는 건 2011년 데뷔해 별다른 주목을 못 받다가 작년 마리오네트가 소개되고 나서부터다. ‘마리오네트는 그 노출과 선정성 때문에 세간에 논란을 일으켰다. 스텔라로서는 이런 결과가 무시 못 할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번 과감하게 보여준 노출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그러니 파격은 계속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노출이 만들어내는 논란과 화제로 주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걸 그룹으로서의 존재감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시선은 잡아끌었는데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노출은 그저 노출로서 끝날 뿐이다.

 

걸 그룹들이 여름철만 되면 저마다 노출을 콘셉트로 들고 나오는 건 이제 이상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너도 나도 노출을 하다 보니 오히려 그렇지 않은 콘셉트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노출을 해도 결국 살아남는 걸 그룹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음악적인 실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씨스타나 걸스데이, AOA, EXID 같은 걸 그룹을 보면 노출 콘셉트를 갖고 있어도 음악이 들린다. EXID위 아래가 음원차트 역주행을 한 건 그들의 파격적인 안무동작 때문이 아니다. AOA짧은 치마사뿐사뿐같은 곡이 대중들의 귀에 달라붙은 것 역시 마찬가지다.

 

스텔라에게서는 안타깝지만 그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일단 나오기만 하면 노출 논란으로 시끄럽긴 한데 남는 음악이 없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스텔라의 절실함은 이해하지만, 그래서 일단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노출 또한 감수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데도 노래가 주목되지 않는 건 치명적이다. 이러니 노출만 보지 말라는 말이 이해가 갈 수 있겠는가.



<간신>이 노출을 쓰는 방식은 에로티즘이 아니다

 

파격. 아마도 영화 <간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그것은 파격이 될 것이다. 지금껏 연산군의 폭정을 다룬 사극들이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왔어도 이처럼 폭력적이고 광기에 휩싸인 연산군은 심지어 낯설게 다가올 정도다. 갑자사화를 짧게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방식은 마치 <글래디에이터><300>의 한 장면처럼 핏빛 폭력을 심지어 경쾌한 터치로 그려낸다. 연산군은 발가벗은 궁녀들이 기묘한 포즈를 취하게 하면서 그걸 그림으로 담아놓는다. 목이 날아가고 팔이 잘려지는 폭력은 살벌할 정도로 리얼하고, 음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노출은 놀라울 정도로 과감하다.

 

사진출처: 영화 <간신>

거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듯한 폭력과 노출은 그래서 서로 그 살을 뒤섞으며 기묘한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낸다. 육체와 살은 이 두 감정을 하나로 보여주는 오브제가 되어 피를 튀기거나 흥건한 땀에 젖는다. 때로는 고통의 원천으로도 보이고 때로는 쾌락의 끝으로도 보이는 이 살들은 그래서 어느 비등점을 넘어서면 기묘한 슬픔 같은 걸 드러내기도 한다.

 

연산군이 채홍사를 통해 1만 명의 궁녀들을 끌어 모아 실제로 꾸렸다는 흥청이 망청이 되어가는 과정은 육체에 쓰여진 쾌락과 고통의 기록처럼 보인다. 채워지지 않는 모성에 대한 결핍을 1만 명의 여성들의 살을 통해 채워 넣으려는 연산군의 광기. 그 폭정에 휘둘려 억지로 끌려오거나, 채홍사의 사적 복수에 의해 끌려온 누군가의 여식들, 그리고 가난한 부모가 먹고 살기 위해 팔아치운 자식들은 이 광기 아래 살아가는 백성들의 분신들처럼 보인다. 연산군에 의해 자행되는 육체의 유린은 그래서 권력이 착취하고 유린하는 백성들의 고혈을 떠올리게 한다.

 

흥미로운 건 폭력과 노출이 거의 끝까지 밀고 나갈 정도로 파격적이지만 그것이 그리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파격적인 성행위를 선보이지만 그것은 마치 현대무용의 한 장면처럼 육체의 퍼포먼스로 보이고, 실제로 이런 장면들 앞에서 연산군은 그것을 화포에 그림으로 담아내는 예술적 행위에서 오히려 더 쾌감을 느낀다. 즉 이들의 성적 행위들은 에로틱하다기보다는 무언가 예술적인 표현을 위해 구성된 행동처럼 다뤄진다.

 

그래서 그 동작들은 힘겨운 백성들의 삶을 표현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자 앞에서 피를 튀기며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검투사들처럼, 온 몸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파이널 매치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왕의 여자가 되려 싸우는 여자들의 육박전은 슬픔이 묻어나고 때로는 그들을 각성시키기도 한다. 검투사들이 그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과정을 거치며 반란을 꿈꾸게 되듯이.

 

<간신>은 그래서 폭력과 노출 수위만을 두고 보자면 대단히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 폭력과 노출이 에로티즘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 상업적인 영화라고 보기가 힘들어진다. 19금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생각보다 야하지 않았다는 느낌은 그래서 두 갈래 평가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별로였다거나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는. 어쨌든 <간신>은 그런 점에서 독특한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토록 강렬한 폭력과 노출을 보여주면서도 그리 자극적으로만 치닫지 않는 그런 작품. 그래서 나아가 누군가의 쾌락을 위해 바쳐지는 고통의 몸들이 지금의 민초들과 겹쳐지는 어떤 지점에 이르게 하는 그런 기묘한 작품.

 

섹시 이미지면 다 통용되는 사회의 위험성

 

“SNS에 올리고 기사 안 된 적 없어요. 항상 메인에 뜨고요.” 디스패치가 공개한 클라라의 메시지 내용 중에는 이런 글이 들어가 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녀를 그 자리에까지 순식간에 올린 것이 다름 아닌 섹시 이미지라는 걸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클라라 시구(사진출처:SBS)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몸에 딱 붙는 줄무늬 레깅스를 입고 시구를 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시구를 잘 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대단한 발언을 해서도 아니다. 착 달라붙는 옷이 만들어내는 섹시 이미지의 힘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노이즈도 따라붙었다. 시구라는 기능적인 일에 어찌 보면 전혀 무관할 듯한 섹시 이미지의 등장은, 이후 너도 나도 섹시한 의상을 입고 시구를 하는 연예인들로 이어졌다. 섹시한 이미지로 단 한 번의 눈도장이 그만한 파괴력을 갖는다는 걸 인지한 까닭이다.

 

클라라의 사례는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섹시와 노출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잘 드러내준다. 일단 섹시라는 단어가 붙은 기사는 우선 들여다보게 되는 본능적인 욕망을 생산하지만, 동시에 불쾌감도 만들어낸다. 뭐 특별한 능력이나 준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이미지만으로 영화에 덜컥 캐스팅되거나 가수로 음원을 발표하는 걸 보면, 오랜 시간동안 엄청난 노력과 준비를 하면서도 캐스팅되지 못하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클 것인가.

 

클라라는 시구 하나로 주목받은 후 최근에는 영화도 찍고 음원도 발표했다. 그러다가 이중계약으로 소속사와의 분쟁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사적인 메시지들이 공개됐다. 클라라가 주장한 성적 수치심의 진위를 떠나서 그 메시지들 속에는 우리 사회가 섹시 이미지 하나면 얼마나 손쉽게 일들이 처리되는가에 대한 단초들을 읽어낼 수 있다.

 

걸 그룹들의 노출경쟁에 대한 논란과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끊임없이 터져 나옴으로써 오히려 그 비판마저 홍보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이제 쩍벌에 엉덩이를 실룩이는 장면들은 노출경쟁속에서 심지어 식상한 이미지가 될 정도다. 그들의 노래가 가진 감흥보다도 섹시 이미지가 우선되는 사회다.

 

심지어 나인 뮤지스 같은 걸 그룹은 앨범 재킷 표절이라는 사안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바로 다음날 란제리룩의 티저를 내보냈다. 그 후로 이어지는 건 얼마나 뇌쇄적인가를 강조하며 공개하는 안무동작이다. 이런 일련의 행보에서는 표절이라는 사안의 심각성도 섹시 이미지라면 쉽게 덮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과연 이건 합당한 일일까.

 

최근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클라라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 속에는 그래서 섹시노출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함이 깔려있다. 메시지에 삽입된 란제리 화보를 두고 유혹이다 업무다 라는 공방이 오고가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엿보이는 건 우리 사회에서 섹시 이미지가 갖는 파괴력이다. 때로는 심각한 문제나 사건들도 가려버릴 수 있는 그 힘.

 

<마담 뺑덕>, 제 아무리 정우성이 벗어도 안 되는 까닭

 

<마담 뺑덕>심청전을 현대적인 치정멜로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심학규(정우성)는 성추행 루머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왔다가 거기서 덕이(이솜)를 만나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욕망에 눈 멀다, 집착에 눈 뜨다라는 포스터 문구가 보여주듯이 심학규는 점점 욕망에 빠져들어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이고, 덕이는 집착에 눈을 떠 파괴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여자다.

 

사진출처: 영화 <마담 뺑덕>

심학규의 설정이 소설가인데다 영화가 그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있어 영화는 다분히 문학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문학적 표현이 너무 지나치게 인물의 심리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치명적인 오류다. 만남에서부터 갑자기 눈이 맞아 버리는 심학규와 덕이의 이야기에는 치밀한 심리 묘사가 빠져 있다. 그래서일까. 인물들은 살아서 움직인다기보다는 마치 감독이 정해놓은 길 위에서 역할 연기를 하는 것처럼 관객에게 몰입감을 주지 못한다.

 

그저 내레이션이 욕망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으로 인물은 욕망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심학규나 덕이의 심정에 똑같이 동화되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영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심청전이라는 고전이 정해놓은 길을 억지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갑자기 심학규의 아내가 죽고, 갑자기 그가 눈을 멀어가고, 갑자기 그의 딸이 팔려가는 상황들은 만일 심청전이라는 텍스트를 우리가 모른다면 지극히 인위적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마담 뺑덕>심청전이라는 텍스트를 가져오긴 했지만 완전한 재해석이라기보다는 마치 텍스트를 이용하는 듯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것은 굳이 <마담 뺑덕>이라는 제목을 내세워 현대적인 재해석을 하고는 있지만 그 새로운 주제의식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춘향전을 방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해낸 <방자전>을 떠올려보라. 거기에는 방자의 시선이 갖는 서민적인 시각이 현재의 관객들로 하여금 그 재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반면 <마담 뺑덕>은 그저 치정극에 머물렀을 뿐, 현대적 의미를 되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전반부의 정조와 후반부의 정조가 너무나 다르다. 전반부의 학규와 덕이의 빗나간 사랑은 무언가 벌어질 듯한 기대감을 한껏 만들어내지만 후반부는 급격히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미진하게 마무리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의 잔상에 남는 것은 어떤 정조나 정서가 아니라 정우성과 이솜의 벗은 몸뿐이다. 그것이 어떤 아련함이나 아픔, 강렬함으로 여운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색계> 같은 작품이 성공하면서 중년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노출 수위가 높은 작품들이 자주 상영되곤 했다. 송승헌이 노출연기를 선보인 <인간중독>은 물론 그 하려는 이야기는 달라도 <색계>를 다분히 염두에 둔 작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노출 수위가 높다고 하더라도 관객들이 바로 그것 하나 때문에 영화관을 찾았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노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년들에게 걸맞는 사랑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수준 높은 시각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마담 뺑덕>심청전이라는 텍스트를 끌고 와 그저 노출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듯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노출만이 이 작품의 목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노출 이외에 그다지 남지 않는 메시지나 여운은 이 작품의 목적이 결국 그런 자극에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어디 관객들이 그리 단순할까. 영화가 무언가를 전해주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정우성이 벗어도 안 된다는 걸 <마담 뺑덕>은 보여주고 있다.

 

진흙탕 싸움과 노출경쟁에 가려진 영화제

 

영화제로 부산이 들썩들썩하는 건 알겠는데 정작 어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지, 어떤 행사가 어떤 의미로 치러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산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 하는 국제영화제이기 때문에 부산까지 가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터넷이나 신문 혹은 방송에 잠깐씩 나오는 기사들이 영화제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쳐보라. 거기에 정작 영화에 대한 정보들이 얼마나 있는지.

 

사진출처:YTN

제일 많은 것은 역시 레드카펫의 여배우 노출 경쟁을 말 그대로 경쟁하듯 올린 사진들이다. 매회 그러하듯이 이번에는 등을 훤히 드러내다 못해 엉덩이골까지 드러낸 의상을 입고 레드카펫에 올라온 강한나와 가슴을 거의 드러내다시피 한 드레스를 입은 한수아가 주역이 될 모양이다. 여기 저기 연관검색어로 떠 있고 모음 사진에 동영상 서비스는 기본이다.

 

어딜 가나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키는 클라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단연 기사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인물이다. 하지만 클라라가 무슨 영화에 출연하는지 알 수 없고, 이것은 강한나나 한수아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수아는 올해 <연애의 기술>이라는 영화가 개봉예정중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레드카펫 노출을 통해 얻어진 홍보일 것이다. 영화 홍보하겠다는 데야 무에 잘못된 것이 있겠냐마는 막무가내 노출로 정작 영화제의 영화와 연기자에 대한 시선을 빼앗는 건 민폐가 아닐까 싶다.

 

아이돌들이 연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영화제에 의도치 않은 폐를 끼치는 상황도 발생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비프 빌리지 야외무대에서 국외의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열렸던 행사에서는 몇몇 아이돌 연기자들이 빠져나가면서 관객들까지 뭉텅 빠져나가 남은 해외 스타들에게는 민망한 행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나친 팬덤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이를테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돌 연기자들이 함께 하는 배려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이러니 행사에 참여했던 배우들 중 일부는 화를 낼 법도 하다.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18년이라는 영화제의 역사를 만들어온 영화인들과 영화들이 저 뒤로 묻혀 버리고 대신 일부 아이돌들이나 레드카펫 노출 연예인들 이야기만 무성하게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현수와 이켠이 SNS상에 토로한 씁쓸하고 답답한 심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영화제 행사가 연예인들의 홍보 수단이 되거나 팬 미팅 현장이 되어서야 될 말인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제 소식보다 더 뜨거웠던 이슈는 강동원측과 남동철 프로그래머 사이에 벌어진 진흙탕 싸움이다. “레드카펫에 서지 않으려면 센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 진위와 상관없이 자극적이다. 마치 영화제 측에서 갑질을 한 뉘앙스를 보이기 때문이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여기에 맞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강동원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잡음이 터지면서 영화제의 이야기는 저 뒤로 훌쩍 물러나 버렸다. 누가 잘못했든 쌍방이 미꾸라지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흙탕 속에 영화제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18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명실공히 아시아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영화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판이 제대로 영화인들의 축제가 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은 점점 사라지고 화제와 이슈만 난무하고 있는 듯한 영화제 풍경은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물론 선정적으로 화제만을 좇는 언론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제측이 좀 더 세심한 준비와 배려를 했다면 이처럼 논란과 가십성으로만 흐르는 영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게다. 매체를 통해 들어오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에 왜 영화 얘기를 찾는 건 이리도 어려운 걸까. 이것은 이제 역사와 전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스플래시>, 클라라의 탈락이 안타까운 이유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에서 클라라는 출연한 이유에 대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방송에서 그녀가 말한 대로 ‘몸매’ 혹은 ‘노출’이 그것이다.

 

'스플래시(사진출처:MBC)'

실제로 <스플래시>에서 그녀의 수영복은 여타의 연예인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의상에 신경을 썼다고 미리 말했고, 옆쪽이 터져 있어 골반 부분이 훤히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눈에 띌 정도로 긴 속눈썹을 붙이고 나온 것처럼 비주얼에 특히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것은 <스플래시>라는 프로그램이 클라라에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적당한 노출이 있는 만큼 비주얼로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클라라는 거기에 적임자인 셈이다. 출연자 소개 장면에서도 ‘섹시’를 유달리 강조한 모습들이 나온 건 당연한 일이다.

 

이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는 MC들 역시 클라라의 노출 부분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 게다. 신동엽은 가운을 굳이 벗어달라고 요청했고 클라라는 수영복의 골반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가 포인트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MC인 전현무도 마찬가지다. 다이빙대에 올라온 클라라에게 그가 제일 먼저 한 말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였다.

 

제 아무리 노출이 포인트가 아니라고 해도 ‘노출의 아이콘’인 클라라를 출연시켰을 때부터 이런 전개(?)는 이미 예상된 일이다. 노출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클라라의 강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스플래시>라는 다이빙 콘셉트 리얼리티쇼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선정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몸에 대한 찬사는 문제될 것이 없다.

 

즉 클라라가 <스플래시>라는 프로그램의 출연을 수락했을 때 이제 그 열쇠는 클라라에게 넘어온 것이 된다. 중요한 것은 클라라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노출만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닌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일이다.

 

물과 고소에 대한 공포가 있는 이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건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클라라는 노출 그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절실했을 수 있다. 하지만 연습 도중 당한 허리 부상으로 부상 트라우마를 겪음으로써 훈련부족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1차 심사위원 점수에서 24.5점이라는 최하 점수를 받았다. 현장 관객 투표에서 가까스로 샘 해밍턴을 이겨 살아남았지만 2차 도전에서 결국 심사위원 결정으로 탈락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녀는 스스로 갖게 된 기회를 놓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중들이 여전히 그녀를 노출의 아이콘으로 소비하고 있고, 방송 역시 그것을 활용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다이빙대에 섰을 때는 어떤 반전의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한계를 넘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그 한 걸음이 클라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많았다는 점에서 이번 <스플래시>의 첫 회 탈락은 그녀에게 너무 안타까운 결과가 되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클라라는 ‘노출’로만 소비된 채 다이빙대를 내려오게 되었다. 클라라가 주목해야 할 이들은 이 날 <스플래시>에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준 임 호와 여홍철의 투혼일 게다.

 

사극을 찍다가 익사의 공포를 느끼고는 물 공포증이 생겼다는 임 호는 훈련 때문에 온 몸이 멍 자국 투성이었다. 그는 공포를 이겨내고 10미터 높이에서 멋진 자세로 뛰어내려 박수갈채를 받았다. 모두가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말했지만 체조와 다이빙의 쓰는 감각이 달라 오히려 고생한 여홍철은 심지어 고막 염증을 일으킬 정도의 귀의 통증을 이겨내면서 멋진 다이빙을 선보였다.

 

바로 이런 점은 현재 노출로만 소비되는 게 두려워 심지어 눈물을 쏟아냈던 클라라가 스스로도 밝혔듯 여배우로서 온전히 서기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일 게다. 임 호의 온 몸에 난 멍 자국처럼 말이 아닌 실제 결과로서 보여줄 때 그 진정성은 대중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

 

최고의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자신의 영역을 확연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클라라는 지금 어떤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한계를 넘어 여배우로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길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이미 소비되고 있는 노출의 아이콘으로 주저앉을 것인가. 실로 어려운 일이지만 클라라로서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클라라와 <SNL코리아>, 섹시에 품격을 얹어야

 

노출이 화제가 되어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클라라는 스스로 밝히길 훌륭한 연기자가 진짜 목표라고 했다. 물론 여타의 노출로 주목받은 연기자들도 목표는 같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는 같다고 결과도 같을 수는 없다. 노출이 화제가 되었던 여배우 오인혜나 이소은, 하나경은 당시 잠깐 주목받았을 뿐 지금은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클라라는 어떨까. 그녀도 반짝 노출 스타로 끝나버릴까. 아니면 그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일까.

 

'SNL코리아(사진출처: tvN)'

확실히 클라라의 존재감이 여타의 노출 여배우들과 비교해 더 큰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여배우들이 영화쪽에서 활동하는 반면, 클라라는 드라마나 예능 같은 방송쪽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현재 SBS 주말극 <결혼의 여신>에서 TV 앵커인 유부남 노승수(장현성)의 불륜녀인 신시아 정(클라라)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썩 연기를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육감적인 캐릭터와 클라라의 이미지는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다지 이물감이 있다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클라라의 존재감을 확실히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은 <SNL 코리아>다. 그녀가 노출로 주목받는 시점에 마침 <SNL 코리아> 같은 19금 예능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SNL 코리아>는 클라라를 새로운 크루로 합류시킨 이후 훨씬 더 노골적인 19금 콩트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 첫 출연에서 그녀는 김완선과 간단한 섹시대결을 벌이더니, 조동혁과 한정수가 호스트로 출연한 두 번째 방송부터는 훨씬 더 빛나는(?) 활약을 선보였다.

 

그녀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패러디를 통해 신동엽으로 하여금 베드신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했고, ‘아찔한 요가 학원’에서 특유의 몸매를 선보이고는 조동혁에게 이상한 동작을 하게 만들고 그것을 관찰하는 콩트를 하기도 했다. 또 ‘우리는 하나다’에서는 감독 신동엽의 여자 친구로 등장해 팀을 순식간에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마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클라라의 활용도가 높은 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섹시함 혹은 섹시한 이미지가 19금 콩트 코미디에는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안영미가 가끔 노출을 통해 섹시 이미지를 드러내고 때로는 김슬기나 서유리가 여기에 가세하지만 클라라만큼 확실한 섹시 아이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SNL 코리아>로서도 클라라의 크루 합류는 그만큼 괜찮은 선택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클라라에게도 마찬가지다. 최근 MBC 에브리원 시트콤 <무작정 패밀리 시즌3> 제작발표회 도중 갑자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클라라는 스스로도 자칫 섹시 이미지로만 굳어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노출과 섹시 이미지로 주목받은 클라라인 만큼 그것을 벗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을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정면돌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그렇다고 더 노출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출이나 섹시 이미지 역시 연기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부정하기보다는 좀 더 원숙하게 해내고 그 안에서 다른 면들까지 끄집어낼 수 있다면 클라라는 섹시 이미지만이 아닌 연기자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섹시한 것을 단지 몸으로만 보여줄 때 노출 이미지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굳이 몸을 드러내지 않아도 섹시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연기의 영역으로 소화될 때 노출로만 이미지 메이킹된 클라라의 출구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을 게다.

 

<SNL 코리아>는 그런 점에서 클라라에게 최적의 프로그램인 셈이다. <SNL 코리아>는 19금으로 대변되는 선정성이 있으면서도 시사 풍자 같은 개념이 동시에 탑재되어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프로그램이다. 즉 19금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좀 더 과감한 표현이 가능하면서도 그 표현 속에 풍자 같은 개념을 장착한다면 클라라의 이미지는 훨씬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SNL 코리아>가 과연 클라라를 그런 방식으로까지 소비할 것인가이다. 클라라 투입으로 19금 콩트는 확실히 과감해졌지만 그로 인해 시사 풍자가 약화된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SNL 코리아>도 클라라도 상생하기 위해서는 섹시에 어떤 품격을 얹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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