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각까지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무실. 한 워킹맘이 아픈 아이의 화상전화를 받는다. 아이는 물수건을 이마에 대고 누운 채, “엄마 언제 와”하고 애처롭게 묻는다. 아이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가 “금방 갈 게”하고 말한다. 제 일처럼 걱정해주는 동료들에게 “많이 아픈가봐요”하며 회의실을 나선 워킹맘. 갑자기 표정이 180도 달라진다. 아이가 영상통화를 통해 말한다. “엄마 나 잘했지?” 아이와 엄마가 만세를 부르고 이어 “쇼를 하면 엄마의 퇴근이 빨라진다”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케이티에프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의 장면이다.
최근 새로운 영상시대를 예고하는 듯한 이 캠페인성 광고는 현재의 TV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주창하기 시작한 ‘리얼리티’의 실상을 보여준다. 화상전화처럼 영상이 생활이 된 세상에서 살게되면서, TV는 아이의 실제 같은 연기처럼 리얼리티를 주장해야 먹히게 됐다. 하지만 그 리얼한 화면으로 목적을 달성한 연후에 남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왜일까. 그것은 이 광고가 스스로 주장하듯, ‘쇼’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진짜가 아닌 쇼였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쇼를 하라!”고 권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리얼리티도 허용되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일까.
요즘 TV의 화두는 ‘리얼리티’다. UCC처럼 대중화된 영상시대 속에서 연출된 화면에 대한 식상함과 TV보다 더 리얼한 사건사고들이 가득한 사회가 요구한 결과다. 그것은 쇼 프로그램에서부터, 개그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 심지어는 광고에까지 광범위하게 침투해있다. 리얼리티쇼의 전조를 보였던 ‘몰래카메라’는 늘 터져 나오는 진실공방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표방하고 나선 ‘무한도전’의 성공으로 TV 쇼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리얼리티를 외치고 있다. 현장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등장한 무대개그프로그램들은 이제 정해진 대본조차 최소화시키며 애드립을 강조한 실시간 개그(애드리브라더스 같은)를 선보이고 있다. 케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가짜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가짜 다큐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주장하는 리얼리티는 진실일까. ‘무한도전’이 얘기하는 리얼리티는 거기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실제 맨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이미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캐릭터화된 개그맨들이 그 설정 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애드립을 구사하는 것일 뿐이다. 애드립을 강조한 ‘애드리브라더스’ 역시 완전한 실시간 개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정도의 포맷 안에서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케이블의 가짜 다큐들은 다큐가 가진 리얼리티의 현장성을 자극적인 장면들을 끌어내기 위한 연출의 방식으로 쓴다는 점에서 위험수위에 도달해있다.
TV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리얼리티를 표방한 쇼를 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실제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나 뉴스보도는 외면 받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것은 현장의 이야기가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UCC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뉴스의 영향이 크지만, 또한 리얼리티를 쇼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면서 TV 스스로 신뢰성을 훼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짜 리얼한 영상들이 매일같이 튀어나오는 인터넷(최근에는 여기에도 거짓영상들이 나오고 있지만)과 경쟁하면서 TV가 리얼리티쇼(진짜 리얼리티가 아닌)는 재미는 가져왔지만 방송 최대의 무기일 수 있는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리얼리티의 늪에 빠진 TV, 쇼하는 TV에서 이제 불거져 나오는 것은 진위 공방이다. 과거라면 그저 지나쳤을 연예인의 재미를 위한 거짓말 한 마디는 진실의 도마 위에 오르고 논란을 일으킨다. 이미 포맷이 다 드러난 ‘몰래카메라’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실제로 속은 것인지 아니면 속은 척 한 것인지에 대한 공방이 이어진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벌어진 무인도 설정은 그것이 진짜 무인도였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다. 가짜 다큐 속 성 추행범의 가짜 검거 사실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쇼하는 TV가 조심해야 할 것은 저 케이티에프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의 장면이 워킹맘의 상황을 희화화하고 왜곡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것처럼 자칫 거짓말 조장하는 TV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TV를 켜면서 시청자들은 그 영상이 갑자기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휴대폰에 입김을 불어넣어 뽀샤처리(포토삽 효과 처리)를 하고 최대한 얼굴을 멀리 둔 채 전화를 받는 에스케이텔레콤의 ‘영상통화 완전정복 - 화면조정 편’처럼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도 계속 울려 퍼지는 “쇼를 하라!”라는 명령어가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라!”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진자료 : KTF Show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
모든 것은 무대개그의 시작을 알린 ‘개그콘서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개그의 양대산맥으로 내려오던 ‘유머일번지’류의 콩트 개그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류의 토크쇼가 갖는 ‘안전함’의 틀을 깼다. 그 ‘안전함’이란 두 가지 측면을 말한다. 경쟁이 없다는 것과 일방향성 개그라는 것.
무대개그는 개그맨들의 무한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관객과 개그맨이 호흡하는 개그의 쌍방향 시대를 예고했다. 개그는 더 이상 스튜디오에서 안전하게 짜진 형태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연달아 ‘웃찾사’, ‘개그야’가 같은 형식으로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른바 개그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무대개그 역시 한계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개그를 쏟아져 나오게 했던 바로 그 무한경쟁에서 비롯된다. 경쟁하는 개그가 가져오는 개그 컨셉의 단명으로 인해 웃음은 있어도 웃기는 자는 부각되지 않는 상황을 맞게 된 것.
과도한 경쟁 속에서 참신하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이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자 너무 빠르게 소비되는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지금 무대개그 프로그램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들은 계속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진화 자체는 발전적인 것이지만, 너무 빠른 진화는 단명을 낳는다.
무대개그의 가장 큰 영향, 리얼리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무대개그들이 현재의 개그 프로그램들에 준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대개그가 갖는 현장성, 대전성격, 몸 개그 같은 요소들은 ‘무한도전’이나 ‘타짱’ 같은 개그 프로그램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 중 무대개그가 개그 프로그램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리얼리티’다.
만일 지금의 무대개그 이후, 포스트 개그 프로그램을 예측하면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할 요건을 말하라면 바로 ‘리얼리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그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닐 정도로 TV 전체 프로그램의 기본 요건이 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빼앗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리얼리티’에 의해 부각되는 것은 즉흥성(애드리브)이다. 짜진 틀 밖의 어떤 즉흥적인 대사가 순간적인 리얼함을 확보하면 웃음이 유발되는 것. 최근 개그 콘서트에 신설되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애드리브라더스’는 그 대표적인 형식이 될 것이다.
리얼리티와 연관되어 더 확장되어질 것으로 보이는 것은 ‘현장성’이다. 관객의 반응을 좀더 포착해내기 위해 좀더 관객 속으로 개그가 이동한다는 말이다. 무대개그 속에서 카메라가 공개홀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공감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대를 벗어나 현장 속에 뛰어드는 저 ‘막무가내 중창단’류의 현장개그가 가진 현장성이 중요해진다.
또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개그의 인해전술(한 코너에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했다)로 이것은 개그맨들의 희소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양적으로 팽창된 개그맨들은 또한 그 속에서 살아남은 몇몇 개그맨들의 개인 브랜드화를 부추긴다. 이렇게 스타가 되어 브랜드화된 개그맨은 저 ‘무한도전’의 경우처럼 리얼리티에 흠집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실제상황인지 아니면 브랜드화된 개그맨의 연기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개그맨들은 참신하지만 다수 속에 익명으로 존재하거나, 유명해졌지만 브랜드화되어 식상해지는 양쪽의 압박을 받게 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그 하는 층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개그맨 자체가 브랜드화 되자 그 사라져 가는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들(여기는 개그맨이 아닌 타 분야의 탤런트도 포함된다)의 개그 진출이 활발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UCC를 활용하는 쇼 프로그램(예를 들면 스타킹 같은)을 통해 전조를 보이고 있다.
개그맨의 자질, 순발력, 개인기, 연기력
이렇게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개그맨들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은 뭐가 있을까. 그 첫 번째는 순발력이다. 순간적인 촌철살인의 말 몇 마디와 행동 한두 개로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진다. 이 순발력과 함께 강조되는 것은 개인기다. 읽고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민감해진 세대들에게 말 개그는 아무래도 몸 개그가 가진 파괴력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게다가 몸 개그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점점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개그를 해야 하는 개그맨들의 필수무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리얼리티 개그의 또 한 측면은 그 반작용으로서의 콩트 개그를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꽉 짜진 틀 속에서 ‘정극을 하는 개그맨들’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 이것은 전통적으로 ‘개그맨은 연기자’라는 등식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개그맨이 만약 순발력과 개인기로 주목을 받고 점점 성장해 자체 브랜드화 된다면 그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해지는 것은 이제 연기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담 샌들러 같은 연기파 코미디언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개그 프로그램들은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그 진화 과정 속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것은 다양해진 개그 프로그램들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결과적으로는 좀더 공감을 넓혀갈 수 있는 웃음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도 실패라는 낙인을 쉽게 찍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개그 프로그램은 현재 승승장구하건, 혹은 주목받지 못하건 그 살을 깎는 노력들의 융복합으로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리얼리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