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보다 과정, ‘하트시그널2’가 깨어나게 한 연애세포란

채널A <하트시그널2>는 벌써 10회가 방영됐다. 시즌1은 13회 분량이었지만 시즌2는 이보다 훨씬 길어질 전망이다. 아직 이들이 ‘시그널 하우스’에서 지낼 시간이 10일 정도가 남았기 때문이다. 시즌1과 비교해 꽤 방영이 된 회차이고, 아직 10일이 남았다면 향후의 방영분량도 꽤 있을 걸로 보이지만, 시청자들도 또 출연자들도 벌써부터 남은 날들이 얼마 없다며 아쉬워한다. 김현우와 함께 장을 보러 간 임현주가 계란의 유통기한을 보며 “우리가 함께 지낼 시간이 이 유통기한보다 짧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것처럼.

1회 시그널 하우스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그들을 떠올려보면 이제 서로가 익숙해지고 또 그 마음속에 들어선 이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게 된 지금의 상황이 한 편의 팽팽한 멜로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첫 만남에서 긴장한 듯 말없이 앉아 눈치만 보고 있던 김도균이나 그 어색한 분위기를 환한 웃음과 호응으로 풀어내주던 임현주. 아나운서인 줄 착각할 정도로 털털한 성격과 달리 우아한 느낌을 줬던 오영주나 뒤늦게 합류해 모든 출연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으로 여성 출연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김현우. 

하지만 이들은 10회 분량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겉보기에는 친한 친구들의 생활처럼 보였어도, 그 안으로는 감정의 격랑을 겪었다. 김현우가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다시 느끼게 해줬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한 공간에서 지내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설레는 감정과 그 감정이 전달되지 않아 느껴야 했던 아픔,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전달됐을 때 느껴지던 기쁨 같은 것들을 느낀다.

그 과정을 스튜디오에서 바라보며 마치 제 일처럼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또 가슴 설레하는 연예인 패널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들이 그 하우스에 들어가 그 감정들을 똑같이 느끼는 것 같은 몰입감을 드러낸다.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앉아 그들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하고 누가 누구에게 마음이 가고 있는가를 맞추는 것이 그들의 표면적인 역할이지만, 실제 그들의 역할은 출연자들의 감정을 공감하는 면이 더 커 보인다. 그들이 몰입하는 만큼 시청자들도 그들과 똑같이 이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의 감정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10회 분량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를 포착해냈다. 첫 만남에서부터 과거 자신이 일할 때 우연히 봤던 오영주를 기억해냈던 김현우. 하지만 적극적인 임현주의 대시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오영주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던 그가 다시 오영주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렇다. 첫 번째 봤던 사람에 대한 확고한 마음이 있다고 김현우가 얘기했을 때, 그 사람이 자신인 줄 모르고 오해하고 홀로 눈물 흘리는 장면은 드라마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실제 상황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커플이 마음을 확인하고 나면 그로 인해 마음을 줬던 누군가를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김현우에게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했던 임현주는 그래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버리는 그에게 아픈 상처를 갖게 되지만, 그의 옆에는 오래도록 그만을 바라보며 서 있던 인물이 있었다. 김도균이 바로 그 인물이다. 말도 별로 없고 표현도 잘 안하는 그가 데이트에 임현주가 준 이병률 시인의 시집의 ‘사람이 온다’라는 시를 통째로 외워 종이에 적어 건네주는 장면은 그래서 또 하나의 리얼 멜로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렸던 김현우와 달리 조금씩 옆에서 노력하며 마음을 주었던 김도균이라는 인물은 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이제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지만, <하트시그널2>는 또 어떤 변수가 이들의 관계를 바꿔놓을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김장미가 적극적으로 김도균에게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와 임현주의 단단해 보이는 관계를 확인하며 ‘타이밍’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그 관계가 그렇게 공고하게 끝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가 누구와 이뤄지느냐 하는 그 결말만큼, 그 과정이 일깨워준 잊고 있던 그 감정들이 아닐까. <하트시그널2>는 그래서 그 하트가 누구에게 시그널을 보냈는가보다 아직도 시그널에 가슴 설레 하는 하트가 있다는 걸 확인하게 해주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연예인도 아니고 멜로드라마도 아닌 일반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이토록 몰입하게 될 줄이야.(사진:채널A)

망하거나 멘붕이거나, ‘강식당’의 기묘한 관전 포인트

내놓고 <윤식당>을 패러디했다고 밝혔고 <신서유기>로부터 탄생해 외전을 내세웠지만 tvN<강식당>은 ‘자기복제’가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했다. 하지만 3회가 방영된 지금 <강식당>은 <윤식당>의 그림자를 지웠다. <윤식당>과 비교되기보다는 <강식당>만의 색깔이 뚜렷하다는 게 증명되고 있어서다. <윤식당>이 윤여정이 가진 푸근한 느낌을 주는 힐링 예능에 가깝다면, <강식당>은 강호동이 가진 다소 거칠지만 웃음만은 빵빵한 리얼리티 예능에 가깝다.

실로 <강식당>이 <윤식당>을 이겨내는 방식은 기발했다고 보인다. 그것은 아예 처음부터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했고(물론 그것도 쉽지 않지만), 처음 경험하는 식당 개업에서의 어떤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이를 테면 손님들의 반응 같은) 물밀 듯이 밀려드는 손님들과 다양한 주문 때문에 멘붕에 빠져버리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주는 리얼한 웃음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화내지 말아요. 우린 행복한 강식당이니까요.” 이 말이 이토록 웃긴 멘트인지 새삼 놀라게 되는 건 강호동이 그간 갖고 있는 자신만의 캐릭터 덕분이다. <1박2일> 시절부터 버럭대기 일쑤고 심지어 주먹질(?) 앞서는 모습으로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 캐릭터를 세우고, 바로 그 캐릭터가 주는 두려움을 다른 출연자들과의 케미를 통해 웃음으로 만들어오는데 익숙한 그다. 굉장히 세보이지만 은지원 같은 어린이 캐릭터(?)에 쉽게 무너지고, 이수근 같은 은근히 놀려먹는 여우 같은 캐릭터에 당하는 모습이 주는 웃음. 강호동은 자신이 어떻게 소비될 때 빵빵 터지는 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강식당>에 처음 등장한 강호동은 “내가 무슨 요리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황당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도전하는 게 중요한 가치라는 걸 내세우며 백종원 스승에게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특별 레시피를 전수받고 제주도에 강식당을 열게 된다. 첫 날 식당 운용이 만만찮다는 걸 경험하고 둘째 날 준비되지 않았던 포장 손님에 수프가 다 떨어지는 사태를 맞으며 혼이 나가버리는 출연자들이 서서히 감정이 피어오르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만들더니, 그 순간부터 강호동은 ‘화를 다스리려는’ 모습으로 포복절도의 웃음을 꺼내놓는다.

끝없이 ‘침착’을 외치고 ‘행복’을 주장하지만 실상은 속에서 강호동은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드러내고, 그 포인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수근은 대놓고 강호동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토를 달며 그의 부아를 끌어올려놓는다. 결국 마음의 안정을 위한 ‘화면 조정 시간’이라며 제주도의 풍광 속에 묘한이가 놓여 있는 장면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그 가려진 장면 뒤에 벌어졌을 강호동의 이수근 응징(?)을 상상하며 웃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그간 이들이 해온 관계를 통한 캐릭터쇼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들은 제주도에서 강식당을 연 것이고, 그 곳을 찾은 분들은 실제 손님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 리얼리티 카메라 속에서 그들은 식당 영업이 갖는 ‘어려움’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워낙 예능감이 좋은 이들이라 그 어려움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웃음의 포인트를 알고 있을 뿐. 여기서 이들의 캐릭터쇼와 리얼리티 카메라는 절묘한 조합을 만들어낸다.

결국 <강식당>이 <윤식당>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었던 힘은 ‘식당 개업의 어려움’이라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를 <신서유기>를 통해 단단히 다져진 캐릭터들과 관계 속에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망할 걸 뻔히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그걸 실행하는 모습이나 정신없는 영업의 리얼한 현장 속에서 감정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윤식당>과는 다른 관점에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아마도 식당 개업이라는 현실은 <윤식당>이 보여주는 것처럼 말랑말랑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백종원이 <푸드트럭>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더 살벌한 세계이고 망해서는 절대 안 되는 그런 간절함과 절실함이 존재하는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강식당>은 그런 성공의 강박과는 상관없는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낮은 기대치로 시작한다. 성공보다는 손님과 직원의 ‘행복’을 주장한다. 세상에 이런 식당이 있을까. 그 곳의 현실은 멘붕의 연속이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을 주는 그 곳이 마음에 끌린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강식당>은 그 희비극을 리얼하게 담아낸다. 누가 봐도 괴로운 멘붕 상황이지만 그것을 슬쩍 틀어 우스운 상황으로 보여준다. 이런 희비극을 틀어 보여주는데 있어서 그 누구보다 확실히 주목되는 건 강호동과 이수근의 존재감이다. 역시 오래도록 해온 코미디 공력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이들은 <강식당>을 통해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추리의 여왕’, 어째서 스릴러 아닌 휴먼드라마를 선택했나

“뒤통수치는 사람만 있는 거 아냐. 목숨 걸고 당신 구하려던 사람도 있어. 당신 인생 그렇게 후지지 않아.”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에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생매장될 위기에 처했던 호순(전수진)을 구해낸 완승(권상우)은 그녀에게 설옥(최강희)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마음을 줬던 사람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에 황망해하는 호순을 위로하는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끔찍한 살인사건이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이 갖고 있는 정서는 어찌 보면 너무나 편안하다. 물론 사람을 생매장하는 범죄자의 범죄 행각은 소름끼치는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그 자극적인 사건에 그다지 카메라를 집중시키지 않는다. 대신 호순을 구하기 위해 살인범의 동선을 추리하는 설옥과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고 호순을 구해내는 완승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그렇게 만조가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작은 섬에서 열린 바닷길로 두 사람이 호순과 연쇄살인범을 손수레에 싣고 나오는 장면은 금세 이 스릴러적인 장르를 코미디로 바꿔놓는다. 완승은 은근히 자신이 설옥을 구해줬다는 생색을 내고, 설옥은 뭐하러 구했냐고 툴툴 대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살인사건이 터지는 드라마지만 긴장감보다는 인물들이 추리과정에서 엮어지는 알콩달콩한 관계가 드라마 전체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면서 호순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완승과 설옥은 ‘사랑의 감정’의 정체에 대한 언쟁을 벌인다. 완승은 사랑은 알면서도 속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옥은 사랑이란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또한 은근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자기도 모르게 완승은 설옥에 대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고, 설옥은 완승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어떤 완강한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점도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밝혀내는 그 자체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는 양상이다. 그리고 사건 속에서 피해 당사자들이 겪는 어떤 인간적인 감정들이 <추리의 여왕>에서는 더 많이 드러난다. 바로 이전에 다뤄진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건의 끔찍함만큼 주목됐던 것은 남겨진 아이와 아들의 허물까지 덮으려 하다 결국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 부모의 그 감정들이다. 

<추리의 여왕>이 이러한 편안한 범죄물의 기조를 유지하는 건 KBS라는 보편적 시청층을 갖고 있는 플랫폼에 잘 어울린다. 끔찍한 사건들을 자극적인 틀로 보여주는 건 케이블에서는 통해도 지상파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고 사건 수사보다는 ‘추리’라는 요소를 넣어 훨씬 더 게임적인 재미를 부가하려 했다는 건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변화나 관계변화를 보여주려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늘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첫 번째 사건으로 등장했던 장도장(양익준)의 마약사건이나 그 이후에 등장했던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아내 살인사건은 어떤 긴박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옥의 시누이이기에 더 몰입될 수밖에 없는 호순의 납치사건은 사건 이야기보다 설옥과 완승의 밀고 당기는 부차적인 이야기들에 너무 많이 집중하다보니 긴장감을 전혀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러한 긴장감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려는 방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늘어지는 전개는 너무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편안한 전개는 나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시누이가 납치되어 생매장 당할 위기에 처하는 사건마저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닐까. 휴먼드라마의 방향성을 선택했다고 해도 작품은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추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윤식당’이 연 새로운 드라마틱 리얼리티의 세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의 사장 윤여정은 주방보조 정유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비와 함께 갑자기 몰려든 손님들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는 재료가 동나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어 문을 닫는 그 기분. 아마도 새로이 가게를 연 식당이라면 이런 날이 꿈 같을 수밖에 없을 게다. 윤여정이 한 말이 실감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실제상황이 아닌가. 

'윤식당(사진출처:tvN)'

돌이켜보면 <윤식당>이 이 발리의 작은 섬에 들어와 보낸 일주일은 드라마틱하기 그지없었다. 첫날 오픈하자마자 몰려든 외국인 손님들이 불고기 메뉴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줘 모두를 한껏 들뜨게 만들었지만, 바로 다음 날 접한 철거 소식에 아연실색했던 그들이었다. 화도 나고 허탈하기도 했을 그들은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다시 2호점을 여는 ‘기적’을 맛봤다. 

하지만 2호점을 열고도 손님 한 명 지나가지 않는 그 곳에서 <윤식당> 식구들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간간이 오기시작한 손님들로 신메뉴 개발에도 들어가고 라면에 만두 그리고 치킨까지 성공시키며 마침 단비가 내려 몰려든 손님으로 이제는 ‘손님이 너무 많아’ 일찍 문을 닫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은 아침 댓바람부터 문도 열지 않았는데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고 패들보드가 인기를 끌면서 손님들도 덩달아 몰려들었다. 

정말 일주일도 되지 않은 그 짧은 기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그 사건들 속에서 식구들의 감정도 때로는 뛸 듯이 기뻤다가 때로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까워 했다를 반복했다. ‘드라마틱하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런 상황에 딱 어울리는 표현일 게다. 그러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밖에.

그런데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리얼리티 예능이다. 대본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고 캐릭터 설정 같은 것도 애초에 없다. 그저 발리의 외딴 섬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한식당을 연다는 그 한 가지 미션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윤식당>이 보여준 며칠 간의 기록은 웬만한 드라마를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해외의 경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화는 드라마와의 경계를 허물만큼 실험적인 단계로까지 접어들었다고 한다. 어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진짜 동네에 있는 가게의 주인과 그 곳의 단골이 매일 들락날락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찍어 편집해 내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윤식당>이 이번에 보여준 세계는 바로 그 드라마틱 리얼리티 세계가 갖는 독특한 맛이다. 

드라마적 관점으로 이 세계를 보면 이 자그마한 섬은 금세 누구나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어주고, 그 안에 세워진 윤식당은 하나의 세트장 같다. 그리고 거기 들어와 가게를 운영하는 인물들도 하나하나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갖고 있다. 물론 그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 캐릭터들이 주는 진정성과 공감대는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겠지만 <윤식당>이라는 드라마틱 리얼리티 세계에 들어온 인물들이 모두 배우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마치 드라마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그 경계를 허무는 지점에서 배우들 역시 또 다른 경험과 역할을 부여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식당>은 어떤 면에서 보면 예능의 신세계를 연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지점에 생겨난 신세계. 그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세계다.

해군특집 <진짜사나이>의 드라마틱한 반전, 그 이유

 

MBC <진짜사나이>가 해군특집을 시작한 지난 821일 그 첫 시청률은 10%(닐슨 코리아)였다. 이전 개그맨 특집의 시청률이 8.3%에 머물렀던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이 해군특집은 그 기획 자체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 후 이 해군특집은 2회 만에 12%를 넘어섰고 시청률만이 아니라 화제성까지 이어지며 13%를 넘기면서 마무리 되었다. 도대체 해군특집의 무엇이 시들해져 가던 <진짜사나이>의 드라마틱한 부활을 가능하게 한 걸까.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진짜사나이>는 사실 그 리얼리티 상황의 강도에 있어서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따라오기가 힘들다. 경쟁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12>이 가진 야생성이 야외취침이나 공복을 만드는 복불복 정도라면 <진짜사나이>는 땀이 철철 흐르고 눈물이 나며 심지어 부상의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할 정도다. 게다가 여군특집이 합쳐지면 그 강도는 더 높아진다. 여군으로 투입된 출연자들은 눈물, 콧물은 물론이고 강도 높은 작업으로 겨드랑이에서 철철 흐르는 땀까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진짜사나이>가 갈수록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떨어졌던 건 그 강도 높은 훈련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이 그 야생성에 점점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자극은 보다 높은 자극으로 갈 때만이 계속 집중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진짜사나이>의 군대 체험에서 강도 높은 훈련이란 어느 선이 있기 마련이다. 보는 이들을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조교나 선임들의 등장도 반복되다보면 긴장감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자극으로만 계속 치달을 수도 없는 것이 <진짜사나이>가 가진 딜레마였다.

 

하지만 이번 해군특집은 독특한 지점에서 <진짜사나이>가 가진 이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하게 됐다. 그건 훈련 상황의 강도가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출연자들의 독특한 캐릭터가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시영과 솔비다. 이시영은 여군특집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녀 출연자 전체를 통틀어 독특한 출연자로 자리매김했다.

 

남자들도 힘겨워하는 훈련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실제로도 남자들 이상으로 잘 적응해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었다. 암기면 암기, 체력이면 체력 또 정신력이면 정신력, 무엇하나 빼놓을 게 없는 말뚝 박아도 잘 적응해낼 그런 캐릭터. 게다가 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것이 식탐이다. 그녀는 연예인이라는 입장 따위는 접어둔 것처럼 먹고 또 먹는 것이 군 생활에서의 즐거움이라는 걸 여지없이 보여줬다. 그렇게 먹어서 심지어 뱃살이 나왔다는 걸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캐릭터라니.

 

솔비는 엉뚱한 방식으로 군 생활의 강도를 무화시키는 면면을 드러냄으로써 <진짜사나이>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다. 늘 진지하게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는 이 강도 높은 해군의 훈련 상황 속에서도 긴장을 풀어주는 웃음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물론 이런 식의 엉뚱함을 보여준 출연자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솔비가 독특했던 건 그런 엉뚱함에 지청구를 날리는 교관들 앞에서도 그녀는 전혀 주눅 드는 모습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솔비 특유의 해맑음 때문이었다. 못해도 순수하게 진심을 드러내는 데야 교관들이라고 어찌할 도리가 있을까.

 

여기에 제2 갑판장의 캐릭터를 선보인 투머치토커 박찬호나 뜬금없이 갑판에서 사투리 <개그콘서트>를 하는 양상국 같은 인물들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며 <진짜사나이> 해군특집은 드라마틱한 부활의 반전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훈련 강도보다 중요한 건 어떤 출연자가 등장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가라는 걸 이번 해군특집은 잘 보여줬다. 이시영과 솔비가 보여준 것처럼.

<W>, 어째서 이 만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까

 

말도 안 되게 재밌다? 아마도 이 말은 <W>라는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평가일 듯싶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한 마디로 만화 같기때문이다. 만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여주인공이나, 현실 세계로 나와 자신을 만든 작가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만화 속 주인공이나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W(사진출처:MBC)'

그런데 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게 재밌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거기에는 송재정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해주는 판타지의 욕망이 작용한다. 말도 안 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상상. 그것을 눈앞에 던져주고 나름의 법칙들을 세워둠으로써 마치 게임 같은 몰입을 만들어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설득되게 된 건 송재정 작가의 치밀한 전략이 깔려있다. 처음 만화 속 세계로 들어온 오연주(한효주)가 빨리 그 회의 연재를 끝내기 위해 강철(이종석)의 뺨을 때리고 키스를 하는 설정은 하나의 유머처럼 처리되지만 그것이 하나의 법칙이라는 걸 은연 중에 인지시킨다. 즉 만화 속에는 그런 법칙들이 존재한다는 걸 유머를 통해 슬쩍 제시해 놓은 것.

 

그러면서 차츰 차츰 다양한 법칙들을 소개한다. 즉 만화 속 세계의 시간은 현실과는 다르며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전개된다는 것이나, 만화 속으로 들어간 오연주는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 같은 법칙들이다. 이렇게 마치 게임 같은 법칙들이 조금씩 소개되고 그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자 <W>의 상상력은 더 과감해진다. 이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지만 여기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그다지 개연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그동안 많은 만화 속 세계의 법칙과 설정들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일 그만한 적응 기간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강철이 현실로 빠져나오는 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들이 나왔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만화 같다는 건 드라마로서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타 장르들보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가 더 크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건 그 자체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리스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건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전하려는 함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시그널>에서 시청자들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허용한 건, 그 함의가 진실이나 정의의 실현 같은 이야기의 메시지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W>는 아직 그 함의를 온전히 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흥미롭게 여겨지는 메시지들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것은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말하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고, 혹은 판타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신과 관계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이야기의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송재정 작가의 도전은 박수 받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네 드라마가 가족과 멜로와 몇몇 장르물들 사이에서 마치 도돌이표처럼 어디서 봤던 설정들을 뱅뱅 돌리며 반복하고 있었다면, <W>의 상상력은 그 바깥으로 어디든 나갈 수 있다고 도발하는 듯하다. 늘 되는 드라마의 법칙에만 매몰되지 말고 끝까지 상상력을 밀어붙이라고 <W>는 우리네 드라마들에 말하고 있다

<피리부는 사나이>, 우리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손에 땀을 쥐고 봐야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tvN 월화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그다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어도, 시위현장에 한 사내가 가스통과 기름을 가득 채운 차로 돌진해도, 심지어 형사인 공지만(유승목)의 아들 정인(곽동연)이 피리부는 사나이의 전화를 받고, 지만이 그 피리부는 사나이가 보낸 아들을 찾으러 오라는 협박사진을 받았어도, 또 알고 보니 그것이 정인의 자작극이었고 또 그 뒤에는 피리부는 사나이인 척 한 성찬(신하균)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어도 그리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피리부는 사나이(사진출처:tvN)'

도대체 왜 이럴까. 화면 상에서는 긴박하게 인물들이 움직이고 사회의 부조리가 만들어낸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제 몸을 내던지며 그 부조리를 토로하고 있는데도 그다지 큰 공감대가 생겨나지 않는다. 또 그들의 이면에 피리부는 사나이가 휘파람을 불며 나타나 배후조종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다지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고, 이를 막기 위해 치밀한 두뇌싸움으로 협상을 벌이는 성찬과 명하(조윤희)의 고군분투가 그리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혹시 종영한 <시그널> 탓이 아닐까. 워낙 긴장감도 높았고, 또 그 간절함이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던 <시그널>이었다. 사실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다는 판타지가 들어 있는 <시그널>이 이토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기 뛰고 또 뛰는 형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시켰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에는 그런 판타지 설정도 없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몰입이 안 되는 걸까.

 

그 첫 번째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한 실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행강도 사건은 물론 우리에게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건의 정경은 미국 어디쯤에서 벌어질 법한 그런 장면을 보여준다. 일단 강도가 어디서 구한 것인지 총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분노를 가진 누군가를 배후조종해 폭력을 일으키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존재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다. 만화에는 어울릴 법 하지만 드라마처럼 좀 더 리얼리티를 보여줘야 하는 장르에는 어딘지 너무 만화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그널>이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들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위해 그들이 처한 저간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다. 은행강도가 출연하지만 그가 왜 은행을 털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뒤에 피리부는 사나이의 조종이 있었다는 것이 있을 뿐, 그 은행강도가 어떤 사회적 분노를 터트리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대신 이 드라마는 협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성찬과 명하에 더 집중하고 있다. 협상을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멋진 협상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마치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 이상을 주지 못한다. 피해자와 희생자가 겪는 고통을 마치 내 일처럼 여기며 심지어 목숨을 거는 휴머니스트 이재한(조진웅) 같은 형사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현실감이나 정서적 공감대 같은 것들이 잘 느껴지지 않는 <피리부는 사나이>는 우리 이야기 같지가 않다. <시그널>이 가장 잘 했던 그 부분이 빠져 있는 것. 이것이 <피리부는 사나이>가 가진 취약점이 아닐까. 그게 없어서 사건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도 그다지 긴장감이나 놀라움이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닐까. <피리부는 사나이>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무도>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런닝맨> 좀비특집

 

SBS <런닝맨>좀비특집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무한도전>의 레전드로 남은 망작 좀비특집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런닝맨> 측은 아예 이 <무한도전>이 실패했던 좀비특집<런닝맨>이 다시 한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비교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런닝맨> 좀비특집은 <무한도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이 좀비특집을 했던 시기와 지금은 그 예능의 환경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고, <런닝맨><런닝맨> 나름의 특성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좀비특집을 했던 당시만 해도 그것이 리얼이냐 아니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물론 좀비가 출몰한다는 그 자체는 상황극일 수 있지만 그 안에 투입된 출연자들의 행동은 전혀 사전에 준비된 게 아니라 리얼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예능이 지켜야할 룰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참을 달려와 이제 한편에서는 리얼리티쇼가 등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콩트적인 상황극이 재미로 만들어지는 지금, 이런 리얼과 가상의 경계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졌다. 그것이 상황극이든 아니면 리얼 그 자체이든 목표만 분명하면 된다. 즉 웃음이든 긴박감이든 어떤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100% 리얼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런닝맨> 좀비특집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바로 이 상황극과 리얼 사이에서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끌어안을 수 있는 그 여유였다. 건물 안에 감염된 좀비들과 그들 속에 숨어있는 시민들을 구출하는 런닝맨들의 활약은 마치 하나의 게임처럼 그려진다. 게임은 가상이지만 그 게임을 하는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의해 결론이 달라지는 건 리얼이다.

 

처음에는 좀비들이 득시글대는 그 곳이 마치 귀신의 집체험을 하듯 그 무시무시함과 그로인해 벌어지는 호들갑으로 웃음을 주지만, 차츰 좀비들과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긴박감이 생겨난다. 그러다 역시 게임스타터인 지석진이 좀비가 되면서 좀비들 사이에 왕코를 연호하게 만드는 장면이나 그 지석진의 좀비 분장과 연기를 웃으며 스마트폰에 담는 광수의 모습은 하나의 상황극 코미디에 가깝다.

 

즉 적당한 선에서 <런닝맨>은 상황극의 가상으로 빠져나와 웃음을 주다가, 또 게임에 집중하면서 리얼한 리액션의 재미를 선사한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 방식은 쉬워보여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즉 상황극을 하려고 했는데 리얼 반응을 하게 되면 웃음은 사라지게 된다. 과거 <무한도전> 좀비특집이 그 거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단 몇 분만에 망하게 된 까닭은 박명수가 어떤 상황극이 아니라 극도로 리얼한 반응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런닝맨>이나 <무한도전>처럼 꽤 오래도록 서로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좀비특집같은 상황극과 리얼을 넘나드는 형식은 소화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쉬지 않고 5년 넘게 달려오면서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가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리얼한 출연자들의 리액션들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좀비특집 같은 특유한 게임이 가능해진다. 그간 배신의 아이콘이었던 광수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좀비가 되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능력자 김종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좀비들조차 그를 피하려 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만들어진다.

 

물론 <런닝맨> 좀비특집은 거창한 시작에 비해 조금은 평이한 결말로 감으로써 아쉬움을 남겼지만 또한 그 시도가 어떤 가능성을 찾아낸 것만은 분명하다. 즉 그간 게스트를 초대해 비슷비슷한 게임만 반복하는 방식은 <런닝맨>이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좀비특집처럼 가상과 리얼을 넘나드는 게임은 <런닝맨>이 아니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런닝맨>이 어떤 정체된 모습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유의 독자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런닝맨> 좀비특집은 따라서 더 정교해져야 하는 숙제를 남겼지만 그래도 이 프로그램만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풍문>, 드라마에 조명이 왜 필요한가를 묻다

 

조명이 너무 어두워 답답하다? SBS 수목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화면이 너무 어둡다는 시청자 의견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조도는 여타의 드라마들과 비교해볼 때 확실히 낮다. 무언가 명확하게 보고자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이처럼 조도를 낮춰 피사체를 불명확하게 만들어내는 조명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조명을 단지 어둡다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거기에 담겨진 많은 미학적 의미들이 상쇄되는 느낌이다. 그것은 제작진이 밝힌 것처럼 어둡다기보다는 실제 우리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조명에 가깝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적당히 밝고 적당히 어두운 게 우리가 실제로 현실에서 느끼는 밤의 풍경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조명은 리얼리티를 추구할 뿐, 그저 어둡게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 조명에는 그만한 작품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대부분 그 이야기가 한정호(유준상)의 집에서 전개된다. 그러니 이 집이 가진 흡인력이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즉 모든 걸 다 드러내 보여주는 집은 더 이상 흡인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잘 드러나지 않고 문으로 겹겹이 막혀 있어 그 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가 계속 궁금하게 여겨질 때 이 집은 계속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소 흐릿한 조명이 주는 효과는 지대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수군대고 벌어지고 있는 듯한 그 느낌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드라마가 8회를 지났지만 한정호의 집이 여전히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건 그래서 의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집은 마치 RPG게임의 던전처럼 저 앞으로 걸어 나가야 비로소 거기 무언가가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긴장감을 유발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흐릿한 조명은 그 던전 효과(?)’를 만들어낸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이러한 보통 드라마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조명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사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 우리네 드라마가 처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사실 조명이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건 거꾸로 말하면 그간 드라마에서 조명은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조차 생각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신기한 일이지만 드라마 제작에는 조명 감독이 있기 마련이다. 조명 감독이라면 단순히 빛을 쏘아 피사체들을 잘 보이도록 하는 것만이 그 역할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결국은 빛의 예술이다. 그 빛이 어떻게 음영을 만들고 그 음영이 입체감을 만들어내 작품의 이야기와 맞닿게 하는가는 조명감독이라면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들을 보라. 거기 어디 조명이 존재하는가. 그저 노출 과다처럼 보일 정도로 확연히 드러내는 조명만 있을 뿐, 무언가를 가리거나 감추거나 음영을 만들어 그것이 하나의 영상을 통한 이야기가 되는 조명은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런 조명은 마치 포르노처럼 피사체의 구석구석을 드러내기만 할 뿐 거기에 빛의 언어를 담아내지 못한다. 막장드라마에서 조명은 사실상 불필요하다. 그저 환하게 비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안타까운 건 이러한 막장드라마의 포르노적인 조명에 점점 시청자들이 적응되어 간다는 점이다. 뭐든 잘 안보이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정도라면 막장드라마의 조명이 얼마나 우리의 성급한 감각을 자극해왔는가를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다소 흐릿한 조명에 대한 반응들은 그래서 지금 현재 막장드라마들이 얼마나 드라마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가를 에둘러 말해주기도 한다.

 

사실 막장드라마는 조명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포르노적이다. 그 안에 어떤 문학적인 뉘앙스나 상징적인 의미 같은 걸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극적인 대사들만 오갈 뿐이다. 결국 막장드라마의 시퀀스란 만나면 드잡이하듯 한 판 붙는 것이 대부분이 아닌가. 가려지거나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사라지고 그저 직설적으로 툭툭 뱉어내기만 하는 대사들의 연속은 그 포르노적 속성으로 시청자들의 조급증만 점점 키워놓는다.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은 바로 거기서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건 단지 포르노적인 자극만을 얻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무언가 세계를 발견하고 싶어 하고 또 우리가 사는 삶과 현실을 공감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출만이 아닌 감춤의 미학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사실 막장드라마 같은 노출증 양상을 보이는 드라마에는 조명이 필요 없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다소 흐릿한 조명은 그래서 거꾸로 조명이 왜 드라마에 필요한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래픽노블 속으로 들어간 <씬시티2>의 흥미로운 경험

 

아마도 이렇게 영화 내내 벗고 나오기도 어려울 듯싶다. <씬시티2>의 팜므파탈 에바 그린은 그 캐릭터가 노출이라고 해도 될 만큼 시종일관 전라로 출연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옷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등장하는 장면이 더 많고,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그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기이한 감각체험(?)을 하게 만든다.

 

'사진출처: 영화 <씬시티2>'

흥미로운 건 전라로 출연하지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느낌이 덜 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것은 프랭크 밀러와 로드리게즈 감독이 만들어낸 예술적인 영상 경험 때문이다. <씬씨티2>는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감독이 꿈꾸었던 세계, 즉 그래픽 노블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세계를 영화로 구축해낸 작품이다.

 

흑백 영화 위에 얹어진 컬러 포인트들은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과 감추려는 것을 흑백의 명암 위에 펼쳐놓는다. 에바 그린이 전라로 나와도 그 장면이 육감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포르노 같은 자극으로 흐르지 않는 건 그래서다.

 

다크 히어로의 부활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여기 등장하는 씬시티는 흑백이 더 잘 어울리는 어둠의 공간이다. 절대적인 팜므파탈 에바 그린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어둠이 그녀를 잉태해냈고, 또 어둠이라는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느낌을 준다.

 

<씬시티2>는 폭력성에 있어서도 그 수위가 높다. 여전사의 칼에 댕강댕강 목과 팔과 몸통이 잘려나가는 장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진다. 하지만 이것 역시 흑백이라는 어둠을 상징하는 씬시티의 음영 속에서 마치 그림자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된다.

 

유혈이 낭자하고 그렇게 거리는 피로 물들지만 모노톤 속에서 그 피는 마치 죽음과 폭력을 통해 하나가 되는 이 어둠의 세계의 일상처럼 보여진다. 감독은 모노톤으로 세워진 스크린이라는 캔버스 위에 때로는 검게 때로는 원색으로 덧칠을 하는 것만 같다.

 

<씬시티>의 전작이 워낙 파격적이었던 데다 스토리도 꽤 탄탄했던 면을 생각해보면 <씬시티2>는 그만큼의 감흥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스토리가 잘 짜여진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영화는 씬시티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캐릭터들의 스타일리쉬한 액션만을 보여주는 인상이 짙다.

 

하지만 이런 <씬시티>만의 독특한 느낌, 즉 마치 그래픽 노블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한 그 느낌에 환호하는 관객이라면 영화는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캐릭터들은 여전히 강렬하며 그들이 보여주는 액션 역시 압권이다. 또 그러면서도 폭력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연출은 예술적이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고 CG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리얼리티가 아닌 오히려 가상성을 더 부각시킨 이 영화는 그래서 전라로 나오든 유혈이 낭자하든 그 자극이 불편하기보다는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한 오락성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아마도 영화를 스토리로 보는 관객이라면 어딘지 스타일에만 머문 듯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스타일 자체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씬시티2>는 빼놓지 않고 봐야할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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