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 꽃보다 예쁜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딸

“어머니 꽃 같으세요. 꽃 같아요.” 시어머니 김말선씨의 105세 생신날, 며느리 박영혜(68)씨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곱게 단장하신 시어머니에게서는 젊어서 특히 단정했을 그 모습이 그려진다. 그 생신을 축하하듯 영혜씨의 친정엄마 홍정임씨가 구성지게 노래를 불러준다. “청춘을 돌려다오-” 이제 웃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나이지만, 시어머니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다시 돌아온 MBC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이 예쁘게도 담아낸 사랑과 사람의 풍경이다. 

며느리이자 딸 영혜씨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니 그 나이에 엄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신도 혼자 하지 못하시고 밥숟가락도 혼자 들기 버거워 하시는 시어머니는 그 깔끔한 성격 때문에 기저귀에 대변을 보고 자꾸만 손으로 파고 뭉개놓는다. 그런 삶을 벌써 10여 년째 살아내고 있는 며느리지만, 속상한 마음이 자꾸 시어머니의 속을 긁는 소리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105세의 연세라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또 며느리가 고생하는 걸 안타까워하는 시어머니는 밥을 더 이상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래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 결국 시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와중에 항상 뒷전이 되어버리는 친정엄마가 나선다. 친정엄마는 당신도 허리가 안 좋으시지만 시어머니의 입에 연신 숟가락을 넣어주고, 기분 좋아지라고 노래도 불러준다. 

물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사이가 늘 좋은 건 아니다. 친정엄마의 사소한 말 몇 마디에 시어머니는 아이처럼 토라져 대꾸 한 마디 않고 돌아눕는다. 하지만 그럴 때 마음을 풀어주는 건 흥 많고 쌓아두지 않는 성격인 친정엄마다. 친정엄마는 들꽃 몇 개를 꺾어 병에 꽂아 가져와서는 “할머니꽃은 어떤 거야?”하고 묻는다. 그 화해를 신청하는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에서 특히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건, 이 세 사람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영혜씨는 한 때 몸이 아파 요양원에 시어머니를 맡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 결국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시어머니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영혜씨에게서는 인간으로서의 어떤 숭고함 같은 것마저 느껴졌다. 

그런 딸을 보는 친정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친정엄마는 가타부타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대신 딸의 부담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까 생각하고, 시어머니와 말동무도 되어주고 딸처럼 챙겨주기도 하면서 마음을 쓴다. 그런 친정엄마를 시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의지하고 있었다. 

며느리와 사돈이 자신 때문에 고생한다는 걸 알고 있는 시어머니는 자꾸만 ‘죽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사라져야 저 두 사람이 그래도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게 일상인데다, 표정조차 별로 드러내지 않는 시어머니지만 그래서인지 며느리와 사돈에게 종종 높임말이 흘러나온다. 그 마음이 또한 먹먹하게 다가온다.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 이렇게 세 사람은 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느껴진다. 그들은 젊어서 어쩌면 친정엄마, 시어머니, 딸, 며느리 같은 호칭으로서 살았을 게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런 호칭이 중요하지 않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서 있다.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삶을 축약해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운신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친정엄마가 뒤에서 밀어주지만, 어찌 보면 허리가 좋지 않은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의 휠체어에 의지해 함께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서 딸이자 며느리인 영혜씨가 지팡이를 집고 함께 걸어간다. 그 장면은 마치 함께 지지하며 걸어가는 동행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그 무엇보다 예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사진:MBC)

‘키스 먼저’, 김선아는 잊어버린 걸 감우성이 기억한다는 건

‘그는 기억하고 그녀는 잊어버린 것.’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매회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런 제목의 짧은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 이야기에는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의 이미 과거에 얽혔던 사연들이 소개된다. 둘 다 이혼을 하고난 후 흔들리는 기내에서 처음 마주하던 때와, 그 날 아무도 없는 한겨울 동물원을 찾은 순진을 무작정 따라갔던 무한과, 거기서 자살 시도를 했던 순진을 구해냈던 무한의 이야기 등이 그 에필로그에 담긴다.

그 에필로그가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 속에는 무한과 순진이 왜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들이 제시된다. 무한은 이혼 후 세상과 거의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이제 병들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고, 순진은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들을 방치한 채 오랜 법정싸움으로 지게 된 사채 빚 독촉을 받으며 자포자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에필로그에는 순진이 본래 아이가 있었고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사망하게 된 사연이 더해진다. 공원묘지에서 무한은 아버지의 묘소를 방문했다가 아이의 장례를 치르며 오열하는 순진을 보게 된다. 순진이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방치해놓고 있는 건 바로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남편인 은경수(오지호)가 집을 나가자 순진을 찾아왔을 거라 의심한 백지민(박시연)이 그 집안에 들이닥쳐 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다 문득 발견한 아이를 담은 비디오테이프 앞에 멈춰서게 된 건 그 역시 순진이 미우면서도 부채감 같은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경수는 스스로 말했듯 자신은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지민을 만나 빠져나왔지만, 아직 순진은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경수가 지민과 재혼하고도 순진을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너무 아파서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순진은 아이의 죽음이 주는 그 거대한 상처만을 기억하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자신을 바라보던 무한의 눈길은 기억하지 못한다. 눈 내리던 동물원 어느 한 켠에서 눈을 맞으며 오열하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우산을 받쳐주던 무한이 있었고, 버리고 간 캐리어를 대신 끌며 따라왔던 무한이 있었다. 그리고 무한은 어느 벤치에서 순진이 손목을 그었을 때 달려와 그를 응급실까지 데려갔다. 무한은 선명히 그것을 기억하지만 순진은 잊어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들이 무한 같은 새로운 사람과의 기억을 담을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위층 남자 아래층 여자로 만나게 되고, 점점 가깝게 되어 이제는 “자러 올래요?”라는 말에 야릇한 감정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순진은 여전히 무한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런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채 이제 직장에서도 잘리고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 처지의 순진을 지금도 무한은 뒤에서 바라본다. 순진은 그 모든 아픔 앞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를 바라봐주고 다가와주며 손을 내밀어주는 무한이 있었다.

아마도 이 구도는 <키스 먼저 할까요?>가 가진 사랑에 대한 시각이다. 이제 나이 들어 딱히 설렐 일이 있을까 싶은 마음들이지만, 이들은 육체적인 욕망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그 시선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서 아마도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 붙었을 게다. 이들에게는 스킨십이나 함께 자는 것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을 들여다봐주는 것이니. 순진은 잊어버렸지만 기억해주는 무한이 보여주는 그 마음.(사진:SBS)

‘무도’로 돌아온 이효리, 보기만 해도 힐링 됐던 까닭

이효리가 돌아왔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는 3년 만이지만 사실 대중들이 느끼는 체감은 더 길다. 물론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어도 그녀의 제주에서의 삶이나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들로 그녀가 그리 멀리 떠나 있다고 느끼는 대중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말만 해도 촛불집회에 전인권, 이승환과 함께 ‘길가에 버려지다’를 불러 대중들의 입가에서 맴돌던 이효리가 아니었던가. 너무 멀리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항상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 그 자리에 있어서일 게다. 이효리가 복귀하기까지 기간이 길게 느껴지고 또 그만큼 반가운 까닭은.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에서 이효리는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과거에 보였던 독보적인 예능감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솔직함이야 예나 지금이나 그녀가 가진 매력의 원천이지만, 어떤 무거움을 조금은 내려놓고 편안해졌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이효리가 만나는 그 광경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멤버들은 그녀의 강한 캐릭터 앞에 주눅 드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고 이효리 역시 특유의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그 웃음에 호응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랐던 점은 줄곧 예전처럼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모습을 보이며 합장을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장면을 보여줬던 점이다.

물론 그런 장면 역시 간간히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욱하는 모습으로 인해 웃음이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진정으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요가 동작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일이었다. 요가가 그저 몸의 유연성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라며, 아픔을 피하지 않고 견딤으로써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으로서 요가를 설명했다. 

그녀의 진심이 가장 느껴진 대목은 “천천히 내려가는 것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톱스타로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접고 사라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그렇게 내려오는 과정들을 하나하나 겪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것. 과거에도 또 현재도 여전히 톱스타의 위치에 있는 그녀지만 이제 내려가는 일을 선선히 받아들인다는 그 말은 아마도 누구나 나이 들어가는 우리들 모두를 공감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효리는 스스로도 그걸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실은 “잊혀질까봐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했고, 때론 욱하는 옛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만큼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다만 그녀는 그것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이런 부분은 득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현실감 있게 우리를 공감시키는 면이 있었다. 

이효리는 나이 들었고 또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웃을 때 눈가의 잔주름도 보이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기보다는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사실 빵빵 터지는 예능감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그녀가 <무한도전>에서 시청자들에게 전한 진짜 선물은 그렇게 자연스레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 자신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힐링을 받는 느낌의 이유였다.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걸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걸 인정하는 데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젊은 연예인에게보다도 오히려 찬란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을까.

‘목소리의 형태’가 들려주는 진정한 사과와 진정한 소통이란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목소리의 형태>는 그 제목이 마치 미디어 이론의 제목처럼 이색적이다. 목소리는 청각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지만, 형태란 시각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담아내려는 것이 커뮤니케이션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진출처:영화<목소리의 형태>

영화는 니시미야 쇼코라는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와 이시다 쇼야라는 왕따 경험으로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년이 진정한 사과와 용서 그리고 소통에 이르는 그 과정을 담고 있다. 어느 날 전학 온 소녀 쇼코는 청각장애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런 쇼코를 쇼야는 짓궂게 괴롭힌다. 

왕따 경험을 가진 쇼야가 쇼코를 왕따시키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을 그대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쇼야는 쇼코에게서 자신이 왕따 당하던 그 때의 경험을 떠올리고, 그래서 그런 왕따에도 늘 웃고 먼저 사과하는 쇼코를 보며 참을 수 없게 된다. 쇼코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그 무기력했던 시절의 자신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쇼코가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을 가게 되고 쇼야가 왕따의 주동자로 내세워지면서 그는 이제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더 이상 삶의 의미 같은 걸 찾지 못하는 쇼야는 모든 걸 정리하고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그 마지막 정리를 위해 쇼코를 찾아간다. 쇼코는 도망치지만 소야가 수화를 하자 쇼코는 마음이 돌아선다. 수화를 통해서 소통하려는 쇼야의 진심을 읽게 됐기 때문이다. 

<목소리의 형태>는 쇼코와 쇼야라는 두 인물의 소통이 이뤄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두 사람은 마치 한 사람의 두 자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쇼’라고 똑같이 불리는 이름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게 되고, 똑같은 왕따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고통(죄책감이든 상처든)에서 벗어나려 한다. 쇼야가 자살하려 했던 것처럼, 쇼코 또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쇼야는 쇼코라는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이 가진 절망감의 손을 잡아주고 그녀를 구하는 동시에 자신과의 화해에도 이르게 된다. 

<목소리의 형태>가 굳이 이렇게 딱딱한 연구 논문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건 소통이라는 것이 단지 목소리나 시선 같은 감각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 쇼코와 쇼야 사이에 놓여진 소통의 장벽은 듣지 못한다는 청각 장애를 가진 쇼코만의 문제가 아니다. 쇼야 역시 쇼코가 전하는 마음의 소리를 보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마음이 진정으로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자신에 대해 마음을 여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그걸 가로막고 있는 건 두려움이다. 처음으로 쇼야가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즐거움을 느끼며, “내가 이렇게 즐거워도 되는 건가”하고 자문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는가를 말해준다. 그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 친구는 두려움에 대해 말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은 굉장히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지만 그래도 즐기려 한다고. 그녀는 고공에서 뚝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에서 양손을 활짝 벌리고 즐거움을 만끽한다.

겉으로 나오는 목소리나 시선만으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영화는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쇼코는 결국 왕따 피해자였고 쇼야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왕따의 가해자였다. 그들은 모두 상처를 숨기고 또 죄책감을 숨긴 채 친구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 놓인 이 과거의 기억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청산되지 않는다.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과가 이뤄지지 않는 한 과거를 덮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는 것이 그 무엇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쇼코를 둘러싼 쇼야와 그 친구들 사이의 변하지 않는 관계가 보여준다. 쇼코를 구한 쇼야는 자신이 그녀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사과를 구하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진정한 소통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영화 첫 도입부분에서 자살하려던 쇼야가 이제는 자신의 분신같던 쇼코를 구하고 자신을 구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목소리의 형태>는 추락의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쇼야는 자살하기 위해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리려 하다가 물가에서 누군가 날리는 폭죽을 보며 그걸 포기한다. 쇼코는 불꽃놀이를 하는 축제 때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그 불꽃을 바라보며 난간에서 뛰어 내리려 한다. 마침 그걸 목격한 쇼와는 쇼코를 구하고 대신 자신이 떨어진다. 쇼야와 친구들은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고, 쇼코의 필담 노트가 다리 밑으로 떨어지자 쇼코와 쇼와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 노트를 찾는다. 또 쇼와는 친구와 롤러코스터를 타며 그 뚝 떨어지는 순간의 두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러한 추락의 이미지가 가장 상징적으로 반복되는 장면은 쇼야와 쇼코가 늘 다리 위에서 만나 물고기에게 빵을 뜯어 던지는 장면이다. 물고기의 시각으로 날아온 빵은 물 위에 떨어지고 물고기는 그 빵을 기막히게 찾아 먹는다. 물고기는 빵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그 형태를 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물 위로 떨어지는 그 진동을 느낌으로서 그걸 찾아 먹는다. 듣는다고 보인다고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진심이 전달되면서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어떤 순간 소통의 문이 열린다. 

<목소리의 형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때문에 그 ‘가해자’의 자기변명처럼 오인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오해일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진정한 사과와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해자에게도 그렇지만 피해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요즘처럼 소통이 화두가 된 적도 없고, 또 냉각된 국제관계 역시 소통의 문제라는 점을 두고 보면 <목소리의 형태>는 그저 단순하게 바라볼 청춘 로맨스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국가 간의 정서로 읽어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많은 소통 단절의 문제들을 그 안에서 발견하고 단지 말뿐인 사과가 아닌 진심어린 사과가 열어 놓는 진정한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삼시세끼> 에릭, 우리가 원한 건 그의 정성일 뿐

 

느려도 너무 느리다. tvN <삼시세끼>의 에릭이 하는 요리 이야기다. 그의 요리가 이전 어촌편의 차승원과 확연히 다른 건 속도. 차승원은 재료만 확보되면 척척 요리로 만들어냈고, 그 과정은 심지어 다이내믹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가 능숙하다는 얘기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하지만 에릭은 다르다. 그는 요리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만들 듯이 아주 정성을 다하고 섬세하게 요리를 한다. 그러니 저녁 한 끼를 먹으려고 준비하는 과정만 7시간이 걸린다. 7시간 동안 만든 요리가 회 초밥 몇 점, 고구마튀김, 수육 그리고 그 육수로 만든 제주도식 돔베국수다. 일찍부터 준비했지만 새벽2시가 훌쩍 넘어서야 저녁을 다 먹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가 회 초밥을 만들기 위해 잡아온 물고기를 회치는 모습은 거의 정지화면에 가깝다. 이서진은 피곤한 몸을 뉘여 한 잠 자고 일어났지만, 그 때까지도 에릭은 정성을 다해 회를 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칼을 놀리는 모습은 그래서 마치 장인 같지만 성격 급한 이서진으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무슨 요리를 해먹자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두려울 만큼.

 

그런데 막상 요리를 먹어보면 그렇게 투덜대던 이서진의 얼굴에도 보조개가 피었다. 만일 맛이 없었다면 한참 투덜댔을 그는 그래서 그런데 또 맛은 있어하며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힘든 건 제작진들도 마찬가지. 나영석 PD는 새벽에야 저녁을 먹는 모습을 찍다가 좀 빨리 먹어줄래?” 하며 자신들도 퇴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웃음을 주었다.

 

이런 모습은 이미 그 날 아침부터 일찌감치 예고되었다. 그저 간단한 것처럼 호박죽을 아침 메뉴로 선정했지만, 믹서기도 없는 마당에 그걸 하나하나 잘라내 솥에 끓여서 흐물흐물한 죽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이서진이 따온 고구마 줄기 반찬을 만들기도 했다. 아침을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에 먹게 되었지만 역시나 맛이 좋아 이서진은 흡족해 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점심 준비에 들어간 에릭은 이번에는 짜장밥과 백합탕을 선보였다. 서두르고 서둘렀지만 역시 짜장을 기름에 볶아 직접 짜장 소스를 만들고, 익어서 뚜껑이 벌어진 백합을 하나하나 꺼내 속살만 빼어내고 조개껍질만 다시 넣어 국물을 우려내는 식으로 정성을 다한 백합탕을 만드는 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막상 만들어놓은 음식에는 이서진은 물론이고 나영석 PD까지 그 맛에 반색했다. 마치 도둑처럼 훔쳐 맛보던 나영석 PD는 혼자 먹기 아깝다는 듯 스텝들을 불러 먹이기까지 했으니.

 

에릭의 요리가 느린 건 익숙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그는 미안했던지 방송이 끝나고 수산시장까지 가서 생선 회치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 요리에 대한 노하우나 지식은 충분히 갖고 있었다. 그러니 백합탕 하나 끓이는 데도 너무 조개를 오래 끓이면 질겨지기 때문에 조갯살만 미리 빼놓는 것이고, 조개를 넣고 끓일 때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면 삼투압 때문에 육즙이 다 빠져 나간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충대충 절차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에릭의 요리다. 그래서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맛은 더 깊어지는 것. 그의 요리를 보면 실로 정성이 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조금 느리면 어떤가. 하나하나 제대로 절차와 과정을 밟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진정한 요리의 맛을 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요리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요즘처럼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하수상한 시국에, 에릭이 한 끼를 만들어내는 그 정성스런 요리의 시간은 그래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능숙한 것도 아니고, 또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는 그런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정성이다. 그 하나를 하는 것에 들어가는 마음. 느림보 에릭에게서 배워야할 그것 하나.

<질투의 화신> 공효진, 어떻게 양다리를 설득시켰을까

 

두 남자 사이에서 대놓고 간을 보는 여자. 여타의 멜로드라마라면 이런 여자 캐릭터는 비난받기 일쑤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SBS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공효진)는 다르다. 그녀는 내놓고 이화신(조정석)과 고정원(고경표)에게 자신의 마음이 두 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이화신이 양다리를 제안(?)했고 고정원도 그걸 수락함으로써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 두 남자 사이에서 대놓고 양다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캐릭터. 어떻게 이 드라마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었을까.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사실 드라마의 앞부분을 보지 않고 세 사람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이 기묘한 상황부터 보게 된 시청자라면 이 장면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고 나아가 그 관계를 허용하는 표나리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처음부터 들여다본 시청자라면 다르다. 그들이 어쩌다 그런 복잡 미묘한 관계가 되었는가를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이건 이 드라마를 쓴 서숙향 작가가 관계가 어쩌다 이렇게 흘러왔는가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뤘는지를 말해준다.

 

이화신을 짝사랑하지만 늘 퇴짜만 맞고 구박받던 표나리가 고정원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차츰 이화신의 질투를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이화신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지피는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졌으며, 뒤늦게 이화신의 사랑을 확인한 표나리가 이미 고정원과 가까워짐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을 위해 둘 다 포기하려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도 담겨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화신과 고정원이 지금의 동거 상황까지를 만들어낸 것.

 

그 속에서 표나리는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양다리에 있어서 최소한의 예의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저 스스로는 두 사람을 비교하며 어느 쪽이 나은가를 가늠해본다. 여기서 표나리의 미묘하고도 섬세한 내면이 드러난다. 즉 자상하고 배려심 많고 돈도 많은 데다 젠틀하고 성숙해 보이는 고정원이 사실상 모든 면에서 이화신보다 나아보이는 게 사실이고 정반대로 이화신은 투덜대고 자기 위주인데다 툭 하면 싸우기 일쑤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이화신쪽으로 기울어가는 것. 그걸 증명하는 건 다름 아닌 질투.

 

밤마다 고정원의 집을 무단으로 찾아오는 금수정(박환희)을 그가 집까지 바래다주는 걸 알게 된 표나리는 그러나 이렇다 할 마음의 동요를 갖지 않는다. 질투의 마음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양다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졌다는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어머니와 식사를 하자고 애원했음에도 표나리가 고정원의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제 관두자며 집을 나가버리자 그녀는 마음이 쓰인다. 부랴부랴 방송국을 찾은 표나리는 마침 이화신에게 키스하는 홍혜원(서지혜)을 목격하며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어찌 보면 간 보는 여자 캐릭터로 지탄받을 수도 있고, 또 생각과 마음이 달리 움직여 두 남자를 괴롭게 만드는 그녀가 민폐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표나리의 갈팡질팡은 그런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감정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크다. 생각으로는 고정원이 여러 모로 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마음은 이화신을 향해 가는 그 심리가 이해된다는 것.

 

<질투의 화신>은 질투가 사랑을 증명한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러니 사랑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연기보다 이렇게 질투를 하고 화를 내고 지질하게 굴며 아이처럼 투정부리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연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이라는 연기자를 새롭게 보게 된 이유다.

 

하지만 두 남자 사이에서 생각은 고정원을 향해 가지만 마음은 이화신을 향해 기울어지는 그 복잡 미묘한 표나리의 감정을 연기하는 공효진 역시 그 연기가 조정석만큼 섬세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질투는 그래서 두 감정 사이에서 사랑을 확인시키는 증표가 된다. 그러고 보면 질투로 사랑을 표현해낸 조정석만큼, 생각과 마음이 갈라지는 그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공효진 역시 이 작품의 하드캐리였던 것이 분명하다

미래는 바뀔 수 있다...<또 오해영>의 사랑론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 그토록 많이 들었던 그 목소리가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도 들려온다. 물론 <시그널>이 과거를 고쳐 미래를 바꾸는 설정이 판타지를 통해서였다면, <또 오해영>은 도경(에릭)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 혹은 기시감을 통해서다. 도경은 이미 본 미래와 다른 말과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그 미래를 바꾸게 됐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기시감 속에서 도경은 오해영(서현진)에게 미안하다. 아는 척해서라고 속내를 숨긴 채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실제로는 신발 바꿔 신어. 발소리 불편하게 들려라는 말로 슬쩍 자신의 걱정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항상 속내를 감추며 살아왔던 도경이 변화를 선택했다는 걸 보여준다.

 

도경이 변화하자 그 다음의 일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시감 속에서 오해영이 한태진과 손잡고 가는 장면은 두 사람이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병원에서 오해영을 재회한 도경은 또 기시감과는 다른 말을 건넸다. 늘 해왔던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는 미안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반갑다. 나만 아프면 억울할 뻔 했는데 너도 아파서 반갑다. 시간을 다시 돌려도 난 네 결혼을 깰 거고 옆방에서 다시 만날 거다. 정말 미안한데 네 결혼 깬 것 하나도 안 미안하다. 미안한데 이게 진심이다. 너 안고 뒹굴고 싶은 것 참느라 병났다.” 이 말은 결국 오해영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병원을 나선 도경의 뒤로 한 달음에 달려오는 그녀의 발이 보였다. 두 사람은 결국 키스하며 다시 사랑을 확인했다.

 

<또 오해영>이라는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며 헤어 나올 수 없게 한 장치는 도경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사실 그건 능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에 가깝다. 그가 정신과의사 박순택(최병모)을 찾아와 상담을 하는 건 그래서다. 교통사고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도경의 모습이 그 기시감을 통해 보여지면서 시청자들은 그가 죽어가고 있고 그 시점에서 오해영과의 사랑을 회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시감이 생겨난다고 추측하게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새드엔딩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

 

하지만 <또 오해영>은 이런 이미 결정된 운명에 수동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바꾸었다. 도경의 선택에 의해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식이다. 결국 도경의 기시감이 말해주는 건 미래가 마음이 그리는 그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미래를 구성한다는 것. 도경의 기시감이 주는 비극적인 상황들은 사실 그가 상처를 받을 지라도 속내를 드러내고 부딪치지 않고, 그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예단한 미래 때문에 생겨난 일인 셈이다.

 

주치의인 박순택이 도경에게 인생은 마음에 대한 시나리오라고 말하듯 <또 오해영>은 우리의 마음과 그 마음이 선택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런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로맨틱 코미디가 과연 있었던가. 사랑을 두고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만을 논하던 로맨틱 코미디가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마음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마음을 통해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이건 마치 멜로판 <시그널>을 보는 듯하다

<꽃청춘>이 봐야할 아름다움, 풍광이 아닌 사람들

 

tvN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에서는 이 여정의 최종 목적지인 빅토리아 폭포에 도달한 청춘 4인방의 이야기를 보여줬다. 실로 놀라운 풍광의 빅토리아 폭포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멀리서 보면 물안개가 끊임없이 피어나고 무지개는 무시로 걸려있어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그걸 목도한 청춘들의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압도적인 풍광 앞에 말을 잇지 못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치 동화에 세계에 들어간 것만 같은 풍광 속에서 폭포를 옆에 두고 걸어오는 네 사람의 모습은 한 마디로 그림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거기까지 달려가면서 봐왔던 장면들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막과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키는 사파리 그리고 도시를 거쳐 물의 축제가 벌어지는 빅토리아 폭포까지.

 

아마도 시청자들이 이런 느낌을 가질 정도니 거기 직접 여행에 참여한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 아름답고 심지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광은 압도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풍광들보다 더 아름다운 청춘들의 모습이 있었다. 류준열, 안재홍, 고경표 그리고 박보검. 이 네 사람의 마치 형제처럼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마음은 청춘의 고단함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으니.

 

경표형이 텐트 쳐주시지 재홍이형이 밥 먹여주시지 준열이형이 운전해가지고 이곳저곳 다 데려다 주시지 저는 아무 것도 해드리는 게 없는 거예요.” 박보검은 인터뷰에서 형들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실로 류준열은 6백 킬로가 넘는 거리를 괜찮다며 홀로 운전했고, 안재홍은 변변찮은 재료로도 최고로 맛나는 음식을 매번 챙겨줬으며, 고경표는 뚝딱뚝딱 텐트 치고 접는데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하는 박보검 역시 형들을 알게 모르게 챙기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모르게 옷을 개어주고, 설거리를 하거나 정리정돈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카메라 곳곳에서 잡혔다. 게다가 피곤할 형들을 위해 차에서 잠을 자는 걸 자청하기도 했다. 그런 동생을 위해 형들은 숙소 침대를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러고 보면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아름답게 여겨진 건 이들 네 사람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총무를 덜컥 맡아 남들은 즐길 때 홀로 돈 계산에 걱정을 하는 고경표나, 학교 선배이기도 한 안재홍이 그런 고경표가 부담 때문에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모습. 운전이 미숙해 번번이 사고를 낸 박보검에게 짐짓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줬던 류준열이나 그런 형들이 고마워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부터 글썽이는 박보검.

 

압도적인 풍광이나 도로 위로 지나가는 기린, 가까이서 보이는 코끼리와 온통 분홍빛으로 호수를 물들이는 홍학 떼들의 비현실적인 장면들.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 편에는 그 어떤 여행보다 그런 이국적인 장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눈에 더 띄고 공감하게 되는 건 어떤 청춘들보다 더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컸던 네 청춘이 아니었을까.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힘겨웠던 시절을 겪었기에 더 절절했을 그 마음.

아이유의 질문, 가수는 무릇 어떠해야 하나

 

<무한도전>이 또 음원을 낸 줄 알았다. 음원차트에 1위부터 7위까지 아이유의 새 음원 전곡이 올라 있었다. 그저 화제성이겠지 했다. 하지만 웬걸? 노래를 들어보니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물론 마음같은 시적 가사를 써낼 때부터 어딘가 일을 낼 것 같은 아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23일 발매된 네 번째 미니앨범이자 그녀의 첫 프로듀싱 앨범인 챗셔(CHAT-SHIRE)’의 타이틀곡인 스물셋을 들어보니 그 가사가 농익었다.

 


아이유(사진출처:로엔트리)

어느 쪽이게? 뭐든 한 쪽을 골라. 색안경 안에 비춰지는 거 뭐 이제 익숙하거든.’ 그녀는 스물셋 먹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수수께끼처럼 내놓고는 끊임없이 이런 모습일까 저런 모습일까를 추론하게 만든다. 물론 답을 주지 않는다. 사랑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는 아니 돈이나 많이 벌 것이라고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아이유는 이제 이런 모순되고 어찌 보면 다양한 모습들이 사실은 사람의 진짜 실체라는 걸 알아차린 듯하다. 많은 이들은 색안경 안에 한 가지 모습만을 담으려 하지만.

 

스물셋의 나이에 다양한 얼굴들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당당하게 드러내는 아이유는 이제 더 이상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하고 부르던 그 아이 같던 소녀가 아니다. 물론 여전히 풋풋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삶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여자의 테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징적인 시어로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푸르던의 가사는 대단히 시적이면서도 감각적이다. ‘너는 조용히 내려 나의 가물은 곳에 고이고. 나는 한참을 서서 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그 밤.’

 

이미 장기하와의 사랑이 알려졌지만 그게 뭐 어때서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는 아마도 이런 노래의 가사가 전해주는 것처럼 그녀 스스로 이미 성숙한 데서 나오는 것일 게다. 과거 국민 여동생이라는 색안경에 갇혀 있을 때 그녀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스물셋의 아이유는 그래서 그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그대로의 그녀를 드러내는 노래를 한다. 노래는 그래서 아이유의 마음이자 언어다.

 

아이돌이나, 그게 아니라도 연예인이라는 위치는 늘 이런 저런 소문과 논란으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나이 어린 소녀가 그 살풍경한 연예계 속에서 자라나며 차츰 단단해졌다. 그게 가능했던 건 아이유가 여느 아이돌들이 그렇듯이 콘셉트부터 춤 동작까지 완벽하게 기획된 노래를 그저 인형처럼 부르는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많았던 성장통과 이야기들은 그래서 그녀의 노래 속으로 들어가 담담해졌다.

 

그저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무릇 아티스트라면 해야 할 행보가 바로 이것이다. 삶이 묻어나고 경험이 축적되어, 때로는 깊은 아픔까지도 한 곡조의 노래 가사로 뽑아내는 일. 아이유는 이제 겨우 스물셋이지만 그걸 해내고 있다. 물론 그건 스물셋의 경험치에 해당하는 풋풋하고 귀여운 심정의 토로다. 하지만 이것이 솔직하게 음악에 담기는 작업이 계속될 때 우리는 아이유라는 아티스트의 온전한 성장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화점으로 스물셋의 아이유가 있었다는 걸 떠올릴지도



<배달의 무도>, 그 어떤 역사 교육보다 효과적이었던 까닭

 

그저 전 세계로 떠나는 배달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기획한 배달의 무도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일단 배달하는 것이 음식이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머나먼 이국 생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고향의 음식이 아닐까. 거기에는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고향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 가족과 친지가 보낸 음식을 먹으며 그 마음을 나누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그저 배달이상의 의미를 담아냈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의 감동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달의 무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본 우토로 마을의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곳 우리 동포들의 삶이 하하와 유재석에 의해 담겨진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을 일으켰던 하시마섬의 묻혀지고 있는 아픈 역사가 하하와 서경덕 교수의 두 차례에 걸친 방문으로 소개됐다.

 

파고가 높아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굳이 다시 찾아가 하시마 섬에 직접 발을 딛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제 징용되어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네 동포들의 아픈 이야기가 삭제된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어 그저 일본 근대화의 상징처럼만 포장되어 있는 그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 아픈 역사를 까마득히 모른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당시 하시마 섬의 일본인 광부들은 제복을 차려입고 당시 무려 50만엔에 달하는 봉급을 받으며 풍족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제 90줄을 넘기신 하시마섬의 생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당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팬티 한 장 입고 온 몸에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탄광에서 일했던 어르신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배고픔에 대한 호소로 당시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하시다 돌아가신 어르신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도저히 닿기 어려운 외진 곳에 초라하게 합장되어 있었다. 합장되기 전, 그들의 인명부조차 모조리 태워버려 그 분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덮여진 채, 쓸쓸한 비석 하나로 남아있는 그 곳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아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그 곳을 찾은 하하와 서경덕 교수가 챙겨 간 그분들이 그토록 먹고 싶었다던 쌀밥 한 그릇과 뜨끈한 고깃국은 저 우토로 마을을 찾았던 유재석이 했던 말처럼 너무 늦어 죄송한 배달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하시마 섬의 아픈 역사는 여러 차례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하시마섬이 아픈 역사를 숨긴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당시만 해도 신문지상에서는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매체를 통한 이런 보도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입시경쟁 속에서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이 몇 주에 걸쳐 한다고 해도 과연 이번 배달의 무도가 불러일으킨 관심만큼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라는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이번 우토로 마을이나 하시마 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즐거움과 재미를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즐거움과 재미 역시 그저 휘발되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할 때 지속 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무한도전>은 계속 해서 새로운 도전들을 즐겁게 추구해야하겠지만, ‘배달의 무도라는 아이템은 일회적으로 끝내기에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상시적으로 방송이 해줘야 하는 아이템이 아닐까. ‘배달의 무도는 분명 다큐보다 시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중대한 사안들과 가치들을 일깨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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