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음악인의 애티튜드로 남은 마왕

 

평소엔 안 그런 형인데, 쫓아 나와서 저를 불러 세워요. “왜요?” 그랬더니 해철아 잘해라”, “?” 그랬더니 잘하라고”, 그래서 했는데요. 나중에 보니 그게 작별인사였던 것 같아요.’ 신해철의 인터뷰집인 <신해철의 쾌변독설>에는 고 김현식에 대한 그의 마지막 기억이 담겨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은 이제 그가 고 김현식의 마지막을 기억했던 것처럼 그를 떠올릴 것이다.

 

'고인이 된 신해철(사진출처:KCA엔터테인먼트)'

어떤 이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방송에 나와 했던 말들에서 새삼 신해철을 떠올릴 것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 말은 그저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져 독설가의 이미지가 강한 그의 새로운 면을 느껴지게 할 것이다. 그의 독설은 타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지독히도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공격에서 나온 것이며, 고 김현식에게서 배웠다는 본받을만한 음악을 하는 애티튜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식이 형이 나한테 남긴 유언은 잘해라였어요. 그 형이 방송국 들어와서 PD한테 커피 잔 던지고, 마이크 던지고 그런 모습을 너무 사랑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 형이 제 인생의 빛이었어요.’ 아마도 지금은 그가 누군가의 빛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가요계에 남긴 애티튜드역시 남다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 대학생으로 신분을 속이고 음악다방 디제이로 일했고, 대학에 와서는 무한궤도라는 팀의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고 다음 해에 팀을 해산했다. 대마초로 입건되기도 했지만 다음 해 보란 듯이 솔로로 데뷔해 모든 음악상을 휩쓸었다. 넥스트로 마왕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음악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거머쥐었을 때, ‘개교 이래 최저 학점(?)’으로 서강대 철학과를 자퇴했으며 결국 잘 나가던 넥스트도 해산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국 멤버와 만든 앨범 모노크롬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음악적인 극찬을 받았고, 인터넷 방송으로 시작한 고스트스테이션은 이듬해 SBS라디오를 통해 <고스트스테이션>으로 빛을 보았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정치에서부터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악플들이 달렸지만 그것은 음악이 아티스트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많은 행적들보다 더 우리가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그의 1집에 수록된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나 넥스트 2집에 수록된 날아라 병아리의 얄리 이야기는 그래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기시감처럼 다가온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 왔네라는 가사는 이제 우리와 함께 해온 그를 두고두고 떠올리게 할 문구가 되었다.

 

조금은 여위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육교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1974년에서 어언 40년이 흘렀다. 그는 떠났고 이제 누군가는 얄리를 노래했던 신해철처럼 그를 노래 부를 것이다. 그가 고 김현식의 뒤를 따라갔던 것처럼. 시간은 그렇게 기억을 남기고 흘러간다.

 

퍼포먼서에서 아티스트로 돌아온 이효리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목소리가 남다르다고도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춤은? 물론 퍼포먼스는 화려하다. 하지만 춤만 놓고 봤을 때 굉장한 춤꾼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리가 하면 먼저 시선이 가고 귀가 열린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그녀의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이건 능력이 아니라 매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이효리의 모노크롬(사진출처:B2M엔터테인먼트)

3년 만에 돌아온 5집 ‘모노크롬’이 발표되기 전 선 공개된 ‘미스코리아’는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응축되어 있다. 그것은 첫 무대에서 과거 미스코리아 수영복 차림으로 나와 노래 불러도 여전히 아름답게 여겨지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노래에서 반복되는 가사는 ‘Because I'm a Miss Korea’다. 아마도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이라면(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이 후렴구가 자못 도발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 그리 중요한가요. 망쳐가는 것들 내 잘못 같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넌 Miss Korea” 마지막 가사가 전하는 것처럼 이 노래는 외부의 시선으로 뽑혀지는 미스코리아 타이틀 같은 ‘신기루’에 미혹될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을 ‘멋진 Girl'이라 여기라는 전언이다. 이 가사의 이야기는 이효리 자신의 이야기면서 미의 타이틀로 재단되고 가늠되는 세태에 대한 사회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수영복 차림을 하나의 패션으로 소화해내는 ‘미스코리아’는 여전히 섹시한 이효리를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음악적으로도 레트로풍의 복고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됨을 잃지 않고 있다. 마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고풍스러운 세련됨이랄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섹시미와 지성적인 면모가 공존하며, 음악과 자신의 삶이 하나로 통과하는 듯한 ‘미스코리아’는 그래서 강렬한 사운드를 구사하지는 않지만 담담해서 오히려 진솔한 이효리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집을 통해 이효리가 어떤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를테면 작곡가의 표절로 피해를 본 4집이나, 연인 이상순과의 만남 혹은 소셜테이너로서의 사회적인 활동들)의 영향이 크겠지만, 끊임없이 어떤 변신을 시도해온 그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핑클에서 이효리는 그저 요정이었지만, <해피투게더>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예능에서 이효리는 털털한 언니였고, 2003년 1집 <스타일리시 이효리>로 발표한 ‘10 Minutes’부터 이후 ‘U-Go-Girl’ 같은 일련의 곡들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장한 섹시아이콘이었다.

 

이렇게 일련의 성장과정을 거친 이효리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래는 편안해졌고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스토리텔러의 면모가 생겼다. ‘미스코리아’나 이번 5집의 타이틀곡인 ‘배드 걸스’는 그 자체로 음악과 퍼포먼스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그 안에 이효리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 5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이효리가 너무나 다양한 면들을(때로는 이질적인 것조차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가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여전히 섹시하지만 한편으로 소탈하고, 스스로를 ‘배드걸’이라고 도발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악녀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디부터 해외의 작곡가까지 또 심지어는 순심이 같은 동물까지 한없이 여유로워진 그녀의 세계 속에 자연스럽게 안겨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것’을 이제는 ‘당신도 할 수 있다’ 말해주는 이번 5집은 그래서 아티스트 이효리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녀는 남이 해준 옷을 억지로 꿰어 입기보다는 이제 자신의 솔직한 삶이 만들어내는 실로 직조된 음악의 옷을 입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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