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줍쇼’가 그 중심에 동네 사람들을 세우는 방식

이경규와 연정훈에게 한 끼의 식구가 되어준 집에는 아빠와 두 아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빠가 능숙한 솜씨로 계란말이를 하고 소고기를 재료로 무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연정훈이 소고기뭇국이 먹고 싶다고 하자 뚝딱 요리를 만들어낸다. 아들은 아빠를 도와 저녁 상차림을 준비한다. 아직 퇴근하지 못한 엄마와 익숙한 아빠와 아들들의 저녁 준비 속에 그들의 평상시 삶의 모습이 슬쩍 투영된다.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JTBC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가 일원동의 어느 평범한 집을 찾아가 보여준 한 가족의 일상이지만, 그 속에는 달라진 우리네 가족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담긴다. 저녁 준비는 당연히 엄마들의 몫처럼 여겨져 왔던 우리네 삶이 이제는 남녀 역할 구분 없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양성평등에 대한 무수히 많은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 만큼 쉽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담아내는 풍경도 없을 게다. 

이경규는 역시 베테랑답게 예사롭지 않은 아빠와 두 아들의 저녁 상차림하는 모습을 보며 이 집의 주도권은 주로 엄마한테 있지 않냐고 묻는다. 90%는 엄마에게 있다고 말하는 답변에 빵 터지고, 함께 간 연정훈은 스스로 자신의 집은 아내인 한가인이 100%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일원동 이 가족의 풍경과 연정훈네 가족의 풍경이 이경규의 질문 하나로 오버랩되고 어떤 공감대 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한끼줍쇼>가 시청자들에게 그토록 흐뭇한 느낌을 주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경규가 누군가. 예능에 있어서는 이미 대부가 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게다가 연정훈처럼 연기자로서 폭넓게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가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이경규와 연정훈 같은 스타들을 중심에 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온전히 그들이 찾는 집 가족들을 중심에 세워두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자신들 사이의 공감대를 찾아낸다. 그 과정 속에서 평범해 보이던 동네 사람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삶들이 부각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녁을 아이들과 차려 먹으며 푸근하게 웃는 아빠가 그 어떤 유명인들 보다 더 위대해 보인다. 

강호동은 특유의 끝없이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들 때문에 종종 이경규에게 지적을 받는다. 물론 그건 일종의 구분된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강호동과 박해진이 어느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의 집에서 짜장라면으로 조촐한 한 끼를 먹을 때 강호동의 목소리 데시벨은 낮아진다. 낯선 이들이 익숙지 않은 아이에게 친해지기 위해 장난을 치고, 조촐한 짜장라면이라도 그 어떤 몇 첩반상 만큼 맛나게도 먹어준다. 그 평범한 저녁의 일상 속에서 젊은 부부의 성실한 삶이 묻어난다. 설거지를 하며 박해진과 젊은 엄마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는 집안 일을 하는 이들의 수다 같은 평범한 어우러짐이 스민다. 

<한끼줍쇼>의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해진 건 이경규와 강호동이 MC지만 중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날 함께 할 밥동무들에게 중심을 내어주고, 또 한 끼를 함께 할 어느 집에 들어가면 그 집 가족들에게 온전히 중심을 내어준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거기서 사람 사는 똑같은 풍경들을 전해주는 것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채운다.

<한끼줍쇼>가 좋은 건 바로 이런 낮은 시선 때문이다. 유명한 스타들이지만 온전히 자신을 낮추고 평범함 사람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어우러지는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푸근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한끼줍쇼>가 그 한 끼로 채워주는 포만감은 거기 제공되는 한 끼 밥상만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 따뜻한 풍경이 주는 포만감 역시 결코 작다 할 수 없으니.

‘맨투맨’의 브로맨스, 멜로와는 다른 휴머니즘이 보인다

다크데스 여운광(박성웅)과 김가드 김설우(박해진). 닉네임만으로 보면 이 조합은 B급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배우로서 영화 속에서는 ‘나쁜 놈’으로 불리는 다크데스지만 실제로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와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남자 여운광.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특명을 받고 접근한 코드명 K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의 조합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두 남자들을 중심에 세우고 있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대놓고 브로맨스를 그려보겠다는 건 <맨투맨>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지할 수 있는 일. <맨투맨>은 보디가드와 배우라는 직업적 관계로 만난(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만난 것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여운광이 방문하기로 한 러시아의 빅토르 저택에서 목각상을 빼오는 것이 김설우의 임무지만,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며 조금씩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운광이 연기 연습을 하겠다며 김설우에게 여자 역할을 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코믹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져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의외로 여자 역할을 잘 연기해내는 김설우는 연기 연습이 끝난 후에도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몰입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이건 웃음을 위한 코미디 설정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또한 연기로 시작한 김설우의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과도하게 몰입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에서 멜로 관계는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운광의 1호팬이며 그의 매니저인 차도하 실장(김민정)은 물론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관계처럼 보인다. 여운광이 살뜰하게 차도하를 챙기지만 거기에 사랑의 감정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광은 한 때 그가 사랑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이별통보도 없이 모승재(연정훈)와 결혼을 해버린 송미은(채정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지만 아직도 그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광과 이미 결혼한 송미은 사이에 멜로 관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맨투맨>에서 집중되는 건 멜로가 아니다. 대신 여운광과 김설우의 관계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김설우를 처음부터 스토커로 오인했던 차도하가 여운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된다. 또 여운광과 차도하 사이에 흐르는 오누이 관계 같은 훈훈함이나, 김설우와 그의 국정원 담당관인 이동현(정만식) 사이의 형제 같은 모습도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이동현과 목각상 프로젝트의 국정원 팀장인 장팀장(장현성)의 관계도 사무적 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국밥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맨투맨>은 그래서 멜로 관계를 살짝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느껴지게 하는 그 훈훈함이 드라마의 중요한 정서로 깔려 있다. 멜로를 넘어선 휴머니즘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의 의미는 단지 여운광과 김설우라는 ‘남자 대 남자’의 의미에만 머무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혹 형식적 관계를 벗어버린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반기 JTBC드라마 라인업, 그 기대감

 

<미생>, <시그널>, <기억>, <디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또 오해영>까지. tvN이 최근 내놓은 드라마들의 성취는 놀랍다. 거의 영화적인 영상미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엣지 있는 메시지, 게다가 톱 배우들의 인생연기라 할 만큼 돋보이는 연기까지 높은 완성도를 가진 드라마들을 이렇게 연달아 내놓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tvN 드라마 때문에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이 너무 비슷한 패턴에 묶여있는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tvN 드라마는 확실히 브랜드를 쌓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이러한 흐름에 따라 최근 눈에 띄는 것이 JTBC드라마의 하반기 라인업이다. 사실 <밀회>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JTBC지만 최근 1년 동안 JTBC드라마는 이렇다 할 한 방을 보여주진 못했다. 드라마 편수도 1주에 한 편으로 줄였고 그렇게 라인업된 드라마들도 어떤 건 너무 과해서 어떤 건 너무 약해서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엔 어려웠다. 그나마 <송곳>이나 <욱씨남정기> 같은 드라마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찌르며 자존심을 세워줬을 뿐이었다.

 

이렇게 된 건 JTBC드라마가 그간 일종의 숨고르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달라지고 있는 드라마 트렌드에 맞춰나가기 위해 인력을 보강하고 작가와 배우들을 차근차근 섭외해나가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하고 있었던 것. 최근 나오고 있는 JTBC 하반기 드라마 라인업은 그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청춘시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힘쎈 여자 도봉순>, <맨 투 맨> 등이 그 작품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마녀보감>의 후속으로 들어오는 <청춘시대>. 우리에게 <연애시대>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박연선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작년 방영되어 호평을 이끌었던 <사랑하는 은동아>의 이태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연애시대>가 이혼 후 연애라는 당대의 달라진 결혼풍속도의 일단을 감각적인 대본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면, <청춘시대>는 셰어하우스에 동거하는 다섯 명의 청춘들의 연애담이 담겨질 예정이다. 무엇보다 박연선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큰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이선균 캐스팅에 유명한 일드 리메이크로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송곳>을 연출했고 <조선명탐정> 같은 영화 연출로도 유명한 김석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10년 차 PD의 이야기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SNS를 통한 고민상담 같은 트렌디한 요소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게감 있는 주제지만 가벼운 코미디 스타일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박보영 캐스팅으로 내년 1월 방영을 예정하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여성들의 히어로를 담아낼 이 작품은 그 캐릭터가 박보영이라는 배우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질 것인가가 주목되는 드라마다. <사랑하는 은동아>로 감각적인 필력을 인정받은 백미경 작가가 대본을 쓰고 <욱씨남정기>의 이형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연기자 박보영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드라마.

 

<맨 투 맨>은 메가히트를 거둔 <태양의 후예>를 공동집필한 김원석 작가의 작품으로 <치즈 인 더 트랩>으로 중국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박해진이 주연을 맡았다. 배우와 경호원의 이야기로 <태양의 후예>가 보여줬던 액션과 멜로의 또 다른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를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아직 확정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7급공무원>을 쓴 천성일 작가의 <더 패키지>가 기획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현지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성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스토리라인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연희가 출연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JTBC 하반기 드라마 라인업에서 주목을 끄는 건 박해진, 이선균, 박보영 같은 캐스팅과 박연선 작가, 김석윤 감독, 김원석 작가 같은 스타 제작진들의 면면이다. 드라마를 성공시키는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결국 드라마의 성패는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JTBC 드라마의 하반기 라인업은 확실히 시선을 끄는 면이 있다. 만일 tvN 드라마들이 거둬가고 있는 성과들처럼 JTBC 드라마가 결실을 가져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네 드라마 판도는 또다시 새롭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치인트>, 어째서 끝까지 웃을 수 없었을까

 

소통의 실패는 콘텐츠의 실패가 될 수도 있다. 초반부 놀라운 화제를 이끌었던 tvN <치즈 인 더 트랩>이 후반부에 이르러 논란의 논란을 거듭하고 심지어 막장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끝을 맺게 된 건 그 소통의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치즈 인 더 트랩>은 원작자 순끼와의 소통에도 실패했고, 배우 박해진과의 소통에도 실패했으며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불편함을 토로했던 시청자들과의 소통에도 실패했다. 이윤정 PD가 내놓은 열린 결말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답답한 결말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엔딩에서 주인공 유정(박해진)이 모든 걸 감싸 안으려는 홍설(김고은)에게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는 장면이 그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홍설이 보낸 메일을 유정이 열어보았다는 것으로 그들이 다시 만날 가능성을 열어놓았지만 그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 물론 원작자 순끼가 원한 결말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째서 좋은 시작을 보였던 <치즈 인 더 트랩>은 끝까지 웃을 수 없었을까.

 

물론 후반부에 가서 여러 문제점들을 도출했지만 사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콘텐츠 자체가 그리 큰 흠결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청춘 멜로의 틀 속에 우리네 대학가 청춘들이 겪고 있는 치열한 현실을 투영시켜 놓았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치즈 인 더 트랩>은 청춘 멜로의 겉면을 갖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른으로 표징 되는 유정의 아버지 유영수(손병호)로 인해 심지어 정신병적으로 뒤틀어진 청춘들이 고통스러워하고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유정은 아버지로 인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고, 백인하(이성경)는 정신병동에까지 들어가게 됐지만 사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이들 청춘이 아니라 유영수라는 어른이라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이 의도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었다. 이 얘기가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되려면 유정의 상황이 좀 더 디테일하게 다뤄졌어야 했다. 그가 왜 그토록 모든 걸 안아주고 감싸주는 홍설에게 절실하게 기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들이 드라마를 통해 납득됐어야 했고, 그래서 스스로 서지 않으면 계속 홍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어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유정의 입장이 공감됐어야 했다.

 

이러려면 유정의 이야기가 더 나왔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는 오히려 그 분량이 별로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홍설이 교통사고까지 당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게 되는 건 그런 정도의 충격을 통해서만이 유정이 스스로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드라마가 찬찬히 이야기를 쌓아가며 전개했다면 이런 과잉된 설정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사전제작이 드라마 제작방식에 있어서 궁극의 대안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전제작이라고 해도 이번 <치즈 인 더 트랩>의 후반부 논란들을 통해 드러난 허점은 분명 시사 하는 바가 클 것이다. 사전제작은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만일 필요하다면 추가분의 촬영 또한 보완되어야 한다는 걸 이번 사태는 말해주었다. 제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고 해도 소통에서 실패하면 끝까지 웃을 수 없다는 걸 <치즈 인 더 트랩>은 보여줬다

<치인트>, 도대체 이 잡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잘 나가던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이 막바지에 이르러 복병을 만났다. 그간 수면 아래 있던 잡음들이 동시에 터져 나온 것. 그 문제는 두 가지 차원으로 압축된다. 하나는 원작자인 순끼 작가가 제기한 드라마 엔딩에 대한 불편함이고 다른 하나는 시청자들이 제기했던 드라마 주인공 박해진의 분량이 의도적으로 편집됐고 상대적으로 서강준 분량이 많아진 것에 대한 의혹이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먼저 첫 번째 부분은 아직 엔딩이 방영되지 않은 상황이라 확실하게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원작자인 순끼 작가의 불편함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만큼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즉 아직 끝이 나지 않은 원작을 드라마가 종영한 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작가로서는 원작과 다른 드라마의 엔딩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순끼 작가가 토로한 내용을 보면 어찌 된 일인지 드라마의 엔딩이 원작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이미 순끼 작가가 드라마 제작진에게 원작의 엔딩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차라리 원작의 엔딩을 얘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원작자가 다른 엔딩을 요구했다면 드라마 제작자는 충분히 그걸 수용하는 게 예의일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드라마의 엔딩이 나온 이후에야 정확히 논의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치즈 인 더 트랩>에 발생하고 있는 더 큰 잡음은 사실 주인공인 박해진의 분량이 너무 적다는 두 번째 문제다. 한 연예 매체가 입수해 공개한 대본에서는 실제로 대본과 달리 분량이 사라진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는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물론 김수현 작가나 김은숙 작가처럼 확고한 작가 파워에 의해 대본의 토씨 하나 빼뜨리지 않고 연출하는 상황도 있지만, 드라마는 때로는 연출자 파워에 의해 완성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윤정 PD는 특유의 감성적인 연출로 주목받아온 연출자다.

 

이런 대본까지 유출되면서 문제가 비화되고 있는 걸 보면 어느 쪽의 이야기가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아도 제작진과 박해진 측이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란 것이 분명해진다. 연출의 의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제작진은 박해진의 분량을 상당 부분 줄였고, 박해진 측은 거기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유정 선배 역할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박해진 쪽에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다를 수도 있다. 배우와 제작진의 갈등은 그 내부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그 실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 문제들을 촉발시키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반 사전제작제로 찍혀져 이미 촬영이 끝난 상황이라는 점이다. 만일 막바지까지 촬영을 하게 됐다면 이런 문제들은 엔딩이 되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을 상황이다. 물론 섭섭함이 있다고 해도 엔딩이 된 후에는 이미 지난 일이니 문제 삼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즉 사전 제작이 됨으로써 드라마가 끝나기도 전에 그 섭섭함이 토로되고 있어 그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잡음은 과연 제작진 때문인가 아니면 배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사전제작이라는 시스템의 또 다른 문제점 때문인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좀 더 명쾌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들어 예단하고 속단하는 건 피해야 한다. 아직 엔딩은 방영되지도 않았다. 그것을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치인트>,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뒤틀어지게 했나

 

왜 홍설(김고은)은 누군가의 요청에 대해 노(No)라고 자신있게 거절하지 못할까. tvN <치즈 인 더 트랩>에서 홍설이 걸린 덫은 다름 아닌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가장 크다. 그녀는 좋게 보면 마음에 걸리는 것을 못견뎌하는 오지라퍼지만 나쁘게 보면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진 양다리녀처럼 보인다. 물론 거기에 그녀의 의도가 들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어쩌다 보니 그녀의 성격이 그렇게 자신을 만든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많은 이들이 이미 유정(박해진)과 공개적인 연인 사이를 선언한 그녀가 백인호(서강준)에게 선을 긋기를 바란다. 그것이 유정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또 백인호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정과 연인 사이이면서 그녀는 동시에 백인호라는 친구(?)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건 욕심이다. 백인호가 그녀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 바라보고 있는 한.

 

홍설의 이런 성향은 단지 남자관계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그녀의 대학생활에서도 똑같은 성향이 나타난다. 유정이 자신만 보라며 준 노트를 본 선배들은 그것을 복사해 공유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유정도 자신도 그것이 영 탐탁찮다. 그런데 그녀는 똑 부러지게 그건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한다. 물론 그들이 나누는 뒷얘기를 듣고 선배에게 처음으로 노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본래 성향은 아니다.

 

왜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라 그녀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절친인 보라(박민지)마저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성실함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있는 집의 전세를 빼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엄마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동생을 위해 희생해온 그녀는 결국 폭발하고 말지만 그건 오래도록 그녀에게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이 얼마나 힘겹게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면 <치즈 인 더 트랩>의 삼각구도를 이루는 홍설, 유정, 백인호 모두 저마다의 뒤틀어진 내면들을 갖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유정은 과거 친구들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 때문에 극도의 자기 보호 본능을 갖고 있고 그것은 때로는 공격성을 띄고 누군가를 파괴하기도 한다. 백인호는 자신이 유정에게 당했던 일 때문에 끝없는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꿈마저 억압하는 것이지만 그 자기 파괴적인 삶은 빚을 갚으라는 깡패들이 등장함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멈추지 않는다. 주변까지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

 

<치즈 인 더 트랩>은 이토록 조금씩 뒤틀어진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걸까. 그들의 중심에 서 있는 홍설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유정의 공격성과 백인호의 자기 파괴적인 삶과 연결되어 어떤 기폭제가 되어간다. 시청자들이 불편한 지점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조금은 편안하고 달달한 유정과 홍설의 멜로를 기대하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로 인해 뒤틀어진 성격들은 그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치즈 인 더 트랩>은 기묘한 대결구도를 갖는다. 멜로와 현실이 대결하는 것만 같은 그 구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판타지와 그걸 거스르는 현실의 살벌함의 대결. 물론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기를 시청자들은 바라지만 <치즈 인 더 트랩>은 그걸 쉽게 내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물론 덫은 바깥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그로 인해 각자의 내면에 생겨난 덫이고, 그것을 넘어서야 비로소 타인과의 온당한 관계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 과연 이들은 자신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치인트>, 왜 하필 고슴도치 세대의 사랑을 그릴까

 

고슴도치의 사랑이다. 누군가 다가서면 잔뜩 가시를 세우며 경계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마저 찔리게 하는 그런 사랑.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의 유정(박해진) 이야기다. 홍설(김고은)에게는 그토록 다정할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차갑고 때로는 그 치밀함에 두렵기까지 한 존재 유정.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가 없다는 홍설의 마음처럼 시청자들 역시 그가 왜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는지가 못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백인호(서강준)와 있었던 과거사를 홍설에게 털어놓는 유정의 이야기에는 왜 그가 그토록 가시를 세우며 살아야했는가에 대한 이유가 들어 있었다. 관계 장애를 겪고 있는 유정이 유일하게 믿고 있던 백인호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깊은 배신감을 느꼈던 것. 게다가 아버지가 백인호를 입양하려고 하자 유정은 다른 친구들을 이용해 그가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유정의 이야기는 그가 지금껏 해온 이상한 행동들, 때로는 너무 과해서 폭력적이라고까지 느껴지게 하던 그 행동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공격성이 아니라 거꾸로 자기 보호 본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무표정 역시 차갑게 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약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안간힘처럼 느껴진다. 친구처럼 다가왔지만 결국은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사람들. 자신의 아버지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고 친구들을 붙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이런 과한 자기 보호 본능을 만들어낸 큰 상처다.

 

홍설 앞에서 드디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유정은 한 마리의 상처 입은 고슴도치였다. 다행스러운 건 그 유정 앞에 홍설이라는 마치 그의 모든 걸 끌어 안아주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홍설이 유정을 끌어안고 많이 좋아 한다고 털어놓는 장면은 그래서 아프면서도 아름답다. 이상한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존재가 심지어 가시를 세우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끌어안아줄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니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치즈 인 더 트랩>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일 것이다. 유정은 홍설에게 넌 처음부터 다른 사람하곤 달랐다고 말한다. 사실 홍설은 처음 유정 같은 완벽해 보이는 선배가 자신에게 사귀자고 할 때 도대체 왜 자신인가에 대해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유정이 홍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그런 그를 끌어안는 홍설의 모습에서 사랑이란 그런 겉면으로 드러나는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서로의 가시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유정이 바랐던 사랑이니 말이다.

 

그런데 왜 <치즈 인 더 트랩>은 유정 같은 상처투성이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는 것일까. 그 이중적인 캐릭터가 갖는 멜로드라마에서의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또한 작가는 작금의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상처들과 그로 인해 고슴도치처럼 자기 보호 본능으로 가득해진 그들 세대의 아프지만 절절한 사랑법을 얘기하고픈 것은 아닐까. 친구조차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적인 현실을 살아오며 그들은 어쩌면 모두 고슴도치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던 그들에게 가시를 뛰어넘는 사랑은 구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유정을 끌어안아주는 홍설이 그러한 것처럼.

<치인트>가 그리는 경쟁적인 대학생활의 단상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암 유발자들얘기다. 4학년 선배인 김상철(문지윤), 스토커처럼 홍설(김고은)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찌질이 오영곤(지윤호), 홍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하는 손민수(윤지원), 유정(박해진)을 좋아하지만 마음이 홍설에게 가있다는 걸 알고 취객을 보내는 충격적인 짓을 저지르는 남주연(차주영), 하는 일도 없이 유정의 집안에 빌붙어 살아가는 무대책의 빈대 백인하(이성경) 등등. 이들이 하는 짓은 막장드라마의 한 대목을 연상시킬 정도로 충격적이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물론 <치즈 인 더 트랩>은 막장과는 거리가 멀다. 대본, 연출,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성도가 높은데다, 이 드라마가 주는 느낌은 청춘 멜로의 밝음과 아픔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막장적인 인물들과 대척점에 있는 홍설, 백인호(서강준), 장보라(박민지), 권은택(남주혁) 같은 인물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더 전면에 배치되어 있어 풋풋한 청춘 멜로의 균형을 맞춰준다.

 

<치즈 인 더 트랩>의 막장적인 인물들은 자극을 위해 의도적으로 들어간 인물이라기보다는 이 드라마가 가진 주제의식과 무관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 우리네 대학사회의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고 보면 유정이라는 어찌 보면 사이코 패스 같은 섬뜩한 느낌을 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언가 상처받은 짐승 같은 측은지심을 이끌어내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역시 이 주제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연이대학교 학생들의 모습은 과거 8,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들에게는 대단히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그 때라고 경쟁이 없었겠냐마는 그렇다고 이 드라마 속 대학생들처럼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다. 홍설은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야 아르바이트의 압력을 덜어낼 수 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강교수(황석정)의 수업에서 팀 과제를 수행하면서 홍설이 겪는 괴로움은 과제의 어려움이 아니라 지나치게 이기적인 팀원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오영곤이라는 찌질이에 스토커인 인물이 같은 과에서 저토록 버젓이 범죄행위에 가까운 짓들을 벌이고 다녀도 선배들이나 동기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홍설과 둘도 없는 절친인 장보라나 말만 하면 뭐든 들어줄 것 같은 착한 후배 권은택을 빼놓고 보면 이 학과의 학생들은 홍설이 당하고 있는 괴로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니 나아가 오영곤의 말만 듣고는 홍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 이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홍설이 이 학과에서 꽤 공부를 잘해 학점이 우수한 학생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무존재감으로 살아오다 홍설을 따라하게 된 손민수는 자신의 거짓말들이 발각되자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건 네가 다 가졌잖아. 학점도 친구도 남자친구까지 다 가졌으면서 너 뭐가 그렇게 억울해.” 그러자 홍설은 이렇게 자신의 오래도록 숨겨왔던 속내를 드러낸다. “니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학점도 친구들도 그 어느 하나 쉽게 얻은 거 없다고.”

 

즉 대학사회에 깔려 있는 경쟁적인 분위기와, 가진 자는 쉽게 사회로 나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는 처절하게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 부조리한 구조는 이들의 관계를 친구나 동기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인간관계로 놓아두지 않는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른바 암 유발자들이 대학생이라고는 보기 힘든 놀라운 행위들(심지어 범죄에 가까운)을 하고 있는 건 그들이 본래 그런 악한 존재였다기보다는 이런 경쟁적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부추기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고 보면 유정의 이중적인 캐릭터도 이 사회의 경쟁적인 분위기와 인간적인 관계가 깨져버린 삶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그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는 목적을 갖고 다가왔다는 점은 유정이 때때로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지는 이유가 아닐까. 그 차가움과 살벌함은 그래서 이 인간적 관계들이 깨져버린 삶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려는 처절한 보호본능처럼 읽혀지기도 한다.

 

<치즈 인 더 트랩>이 그리고 있는 대학생활의 풍경은 물론 극화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풍경이 지금의 우리네 대학현실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도대체 우리네 사회의 어른들은 이 순수하고 풋풋하게 피어나야할 청춘들에게 무슨 짓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원치 않는 무한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태생이 모든 걸 결정하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시 돋친 경쟁자로 여기게 만드는 짓.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치인트> 이윤정 PD 연출의 마법

 

홍설(김고은)이 혼자 사는 자취집은 좁고 허름하다. 한두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다. 그래서인지 유정(박해진)이 홍설의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공간은 더 좁아 보인다. 홍설이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따라주는 장면은 그래서 꽤 불편해 보인다. 물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아마도 욕실 같은 곳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데 그 좁고 불편해 보이는 공간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더 설레게 한다.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바닥에 매트리스 하나 깔려 있고 앉은뱅이책상이 하나, 옷장이 하나 정도 놓여진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좁은 공간이 너저분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가난한 여대생의 자취방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만, 어찌 보면 꽤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마저 든다. 아마도 실제라면 사뭇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tvN 월화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에 나오는 공간들은 현실적인 요소들로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웹툰이 그려내듯 예쁜 느낌을 주는 걸까.

 

자취방은 문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와야 되고 창문 방범창이 걱정될 정도로 그 밖은 으슥하다. 실제로 속옷 도둑 같은 변태가 출몰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입구에서 유정이 처음 홍설에게 우리 사귈까?”라고 묻는 그 장면의 배경을 보면 초록빛의 나무 이파리들이 드리워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초록빛의 색감은 이제 파릇파릇 피어나는 유정과 홍설의 사랑을 더 풋풋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런 같은 장면이라도 거기서 어떤 따뜻함이나 설렘을 특유의 색감과 연출로 풀어내는 건 이윤정 PD의 대단한 재능이다. 이미 MBC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우리는 그녀가 드라마 공간들을 어떻게 마치 잡지 화보처럼 구성하고 연출해내는가를 목도한 적이 있다. 물론 이건 배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 배경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때론 세련되고 때론 정이 가며 때론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홍설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설정 상 굉장한 미인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김고은이라는 배우 역시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미모의 연기자로 세워진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그런 미적인 것을 깨고 털털함을 드러내온 것이 김고은의 필모그라피였다. 그런데 <치즈 인 더 트랩>이 회를 거듭할수록 홍설이란 캐릭터가 점점 예쁘게 느껴지고 그것이 김고은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매력으로까지 여겨지는 건 아무래도 이윤정 PD의 연출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결국 좋은 PD란 캐릭터든 배우든 그 안에 숨겨져 있으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매력을 끄집어내는 연출자가 아닐까.

 

홍설의 부모가 하는 국수집은 동네 어귀에 있을 법한 작은 음식점에 불과하지만 이윤정 PD의 카메라에 잡힌 그 집은 마치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미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 미닫이문을 열고 나온 백인호(서강준)가 쓰레기를 들고 나와 옆 골목 쓰레기통에 툭 던지는 장면에서 그 동선 뒤편으로 보이는 국수집 외관이나 화장실처럼 보이는 문짝의 무심한 듯 칠해진 페인트 색깔까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연출은 조명이 상당부분 역할을 할 것이지만 그 이전에 아기자기한 소품 하나까지 신경 쓰는 데서 가능해지는 것들이다. 사실 드라마라고 하면 모든 게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드라마는 결국 스토리와 캐릭터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재료들이 있어도 그걸 제대로 느낌 있게 만들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일 게다. <치즈 인 더 트랩>의 이윤정 PD는 그 연출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다못해 굴러다니는 쓰레기조차 예뻐 보일 지경이니.


영화 같은 <시그널>, tvN 드라마의 거침없는 행보

 

tvN의 새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첫 회만으로도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의문의 과거로부터 온 무전에서 비롯되어 이제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미제사건을 추적하는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과 형사 차수현(김혜수)의 폭풍전개와 소름돋는 반전은 한 편의 영화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 회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얼마나 쫄깃한 이야기 전개가 펼쳐질 것인가. 기대감은 한없이 높아지고 있다.

 


'시그널(사진출처:tvN)'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에 디테일이 돋보이는 연출력 그리고 그 위에 극에 대한 몰입감을 한없이 높여주는 이제훈, 김혜수, 조진웅의 미친 연기가 얹어졌다. 마치 미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이런 완성도보다 더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적인 자극이다. <시그널>은 결국 정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을 건드리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 하지만 본인의 실적에 흠이 가지 않기 위해 이를 그저 덮으려는 수뇌부. 그렇지만 어떻게든 진범을 잡아 정의를 실현하려는 형사들. 이 구도는 진범에 대한 갈증으로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이제훈 같은 인물에 시청자들이 빙의하게 만드는 이유다.

 

엄청난 화제와 열풍을 일으키고 종영한 <응답하라1988>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데 이만한 드라마가 있을까. <응답하라1988>이 복고의 틀에서 따뜻한 정과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적셔주었다면, <시그널>은 본격 장르물로서의 탄탄한 완성도 위에 사회 정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을 제대로 잡아내고 있다. 만일 <응답하라1988>의 대성공이 <시그널>로도 이어지게 된다면 tvN 드라마에 대한 막연했던 대중적 기대감은 이제 확신으로까지 나아갈 전망이다.

 

이미 <응답하라1988>의 종영으로 류준열, 박보검 같은 심쿵유발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tvN 월화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의 박해진과 서강준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해진이 연기하는 유정이란 인물은 달콤 살벌한 독톡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고 있고, 서강준이 연기하는 백인호는 여주인공 홍설(김고은)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조금씩 그 숨겨진 매력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홍설에 빙의된 시청자들이라면 유정과 백인호라는 이 두 자석같은 캐릭터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 들어 tvN 드라마의 행보가 심상찮다는 게 느껴진다. 그간 나영석 PD를 중심으로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 시리즈는 물론이고 <집밥 백선생> 같은 주중 레귤러 예능 프로그램으로 tvN이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면 올해는 그 힘이 드라마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느낌이다. <응답하라1988>이 그 스타트를 끊어주었다면 그걸 이어서 <치즈 인 더 트랩> 그리고 <시그널>이 주초와 주말에 포진해 쌍끌이를 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3월에는 <부활>, <마왕>, <상어> 3부작으로 마니아적인 팬들을 갖고 있는 박찬홍 감독 김지우 작가 콤비의 <기억>이 준비되어 있고, 오는 5월에는 노희경 작가가 쓰고 고현정이 출연하는 <디어 마이 프렌즈>가 라인업되어 있다. 오는 3월에 방영될 신하균 주연의 <피리 부는 사나이>도 기대작이다.

 

이제 10주년을 맞은 tvN은 아마도 올해 탄탄한 기반을 다진 예능에 이어 드라마까지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 때는 케이블 채널로서 지상파의 그림자에 가려 있던 tvN. 이제는 지상파들이 오히려 뒤따라올 정도로 콘텐츠 우위의 방송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더 이상 마니아적인 채널이 아닌 보편적인 시청자들까지 확보한 채널로의 진입. 올해 tvN을 주목해서 봐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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