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 여자 도봉순’, 박보영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드라마는 끝났지만 박보영이 남긴 잔상은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마지막회 시청률 8.957%(닐슨 코리아). JTBC로서는 이제 종영한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다. 그간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그다지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던 JTBC 아닌가. 그러니 이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난공불락으로만 여겼던 시청률의 성을 깨버린 건 JTBC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리고 이 드라마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박보영이라는 독보적인 연기자 덕분이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게다. 생각해보라. 어찌 보면 만화 같은 슈퍼파워걸 도봉순이 보여주는 엄청난 괴력의 장면들은 자칫 잘못하면 유치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살짝 치기만 해도 사람이 날아가고, 문짝을 통째로 뜯어내거나 달리는 버스를 맨 손으로 멈춰 세우며, 수십 명은 될 조폭들을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그 장면들은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좀체 성공하기 어렵다는 B급 정서까지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을 드라마는 그간 범행의 대상으로만 주로 다뤄지던 여성 히어로를 세움으로써 심정적 지지로 바꾸었고, 그 B급 정서가 코미디적으로 연출되면서 믿기 어려운 액션들마저 웃어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난관들을 모두 허용시킨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배우 자체였다. 어른들에게는 복스럽고, 남녀 모두에게 귀엽게 다가오는 이 대체불가의 배우는 액션이면 액션, 멜로면 멜로, 코미디면 코미디 등등 뭐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한 장르들을 떠올려보라. 스릴러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 코미디, 청춘 성장드라마 등등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다. 마치 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볼 때는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만들고, 조폭들을 한꺼번에 때려눕힐 때는 그간 억눌렸던 감정들이 시원하게 풀어지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개인적 성장을 통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고, 웃을 일 찾기 힘든 현실에 잠시 동안 모든 걸 잊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액면대로 보면 드라마가 굉장한 메시지나 형식미 혹은 내용적 완성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조금씩 있는 흠결들을 채워 넣어준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다. 그녀가 하기 때문에 용서되는 장면들도 있었고, 그녀가 있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됐던 허술한 이야기 설정들도 적지 않았다. 

이 배우가 놀라운 건 보통 우리가 ‘국민 여동생’ 같은 표현으로 지칭할 때 생기는 어떤 이미지의 장벽 같은 것들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귀여운 여동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 이건 배우로서 박보영이 가진 가장 큰 독보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작년 방영해 큰 성공을 거뒀던 tvN <오 나의 귀신님>은 박보영이라는 배우의 꽃길이 이미 시작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확실히 입증된 그 힘은 벌써부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제 자신의 힘을 자각한 박보영의 또 다른 비상을 기대한다.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이 결국 자각했던 그 힘처럼.

‘도봉순’, 어째서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나

결국 힘쎈 여자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남자의 구원을 받아야 될 존재여야만 할까.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이 예상과 달리 엉뚱한 전개를 보이는 것이 대해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대로 된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은 드라마라는 생각과 달리, 슈퍼히어로인 도봉순이 여전히 남자에게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여성들을 감금해 사육하는 엽기적인 사이코 김장현(장미관)은 도봉순을 유인해 선량한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시켜 다치게 함으로써 그녀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그런 설정이야 김장현과 도봉순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으로서 필요했던 장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위기 상황에 나타난 안민혁(박형식)과 인국두(지수)가 결국은 무력화된 도봉순을 구한다는 설정은 너무 쉬우면서도 안이한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 장면은 결국 도봉순처럼 힘쎈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안민혁이나 인국두 같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되는 존재처럼 비춰진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지금껏 해오려던 이야기의 긴장감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힘쎈 여자는 과연 예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할까라는 드라마가 화두로 던진 문제의식은 끝없이 도움을 갈구하고 남성 캐릭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도봉순의 각성 없는 모습 앞에 조금씩 휘발되고 있다. 

사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어떤 통쾌함을 주었던 장면들은 동네 조폭들을 단신으로 대적해 모두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결국 애초부터 도봉순이라는 괴력을 이겨낼 수 있는 적수는 찾기 어려웠다는 것. 그것은 여성들만 범행대상으로 삼아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러온 김장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꼼수를 쓰게 되는 것이지만 이런 꼼수로 슈퍼히어로가 무너질 리는 없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도봉순이 가진 진짜 문제는 이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들이었다. 힘쎈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주체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그러니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에 종속되어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걸 갈구하는 모습에서 나아가 스스로 가진 자존감을 바탕으로 대등한 관점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도봉순으로 깨어나길 시청자들은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3회 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도봉순은 한 걸음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애초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보다는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드라마가 지나치게 갈등을 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도봉순과 안민혁의 멜로가 주는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멜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물론 남은 3회 분량을 봐야 결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멜로 구도는 너무 전형적이다. 위기에 상황에 몰린 여성을 구하러 달려오는 왕자님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멜로 상황을 거꾸로 뒤집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위기 상황의 남자들을 오히려 구해내는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도봉순이었다면.

‘도봉순’, 어째서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걸까

본격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격 장르물에도 멜로나 가족극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멜로의 틈입에 대해 시청자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최근 방영됐던 <피고인>이나 <보이스> 같은 본격 장르물이 멜로 없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그래서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경우는 멜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본격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장르들, 이를 테면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와 코미디, 게다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과 멜로까지 복합적인 장르를 보인다. 

그래도 그 메인으로 깔려 있는 건 여자들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코패스와 맞서는 강력계 형사 인국두(지수)와, 재벌가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테러 앞에서 위협을 느끼는 안민혁(박형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도봉순(박보영)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로 서 있는 구도. 

이미 도봉순은 자신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각성했고, 안민혁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그 힘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니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이 드라마 상의 어떤 악역들에게도 없다. 수십 명의 조폭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며 모두를 병원 중환자실로 몰아넣는 그녀가 아닌가. 백탁(임원희)은 그래서 그녀 앞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는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도봉순에게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의 결핍을 욕망으로 삼아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에 따라 동력을 얻기 마련이다. 물론 여자들을 감옥 같은 철창에 가둬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가 버젓이 살아있지만 그를 잡는 건 이 드라마의 한 과정일 뿐, 목표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순은 사실 정의의 실현 같은 것에 목을 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을 그녀는 숨기며 자라왔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것을 마치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인 양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멜로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건 바로 그것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숨기고 왔던 괴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남자의 등장은 바로 도봉순이 꿈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멜로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별로 나뉘어지는 역할이나 선입견들을 깨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남녀의 성역할에 따라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려내려는 것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스릴러 장르물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그래서다.

'도봉순' 박보영, 이 슈퍼히어로가 던진 진짜 메시지

“너 왜 이렇게 치마가 짧아?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지마.” 인국두(지수)의 이 말에 도봉순(박보영)은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다. 젊은 여자들만 폭행 납치하는 사이코가 출몰하는 동네, 형사 인국두의 그 말은 물론 도봉순이 걱정 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비뚤어진 여성관을 담고 있다. 세상에 벌어지는 여성관련 성폭력 사건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성 때문인가.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기 때문인가.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놀라운 건 인국두의 이런 말에도 도봉순은 아무런 자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짝사랑해온 인국두의 이 말 속에 담겨진 “너무 예쁘게”라는 말에만 집중하며 행복해한다. 이런 상황은 시청자들이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의 인국두와 도봉순의 관계를 보며 어딘지 잘못됐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두 사람은 너무나 순수해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에 빠져 있다. 인국두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처럼, 도봉순도 사회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여성들에게 부가하는 ‘예뻐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그래서 도봉순은 그녀가 안민혁(박형식)과 술을 마시다 만취해 클럽에서 봉을 뽑아 흔든 것이 카메라에 찍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에 창피해하며 책상 아래로 들어가 우울해한다. 사실 이 장면은 여성을 성적으로만 소비하는 세태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다못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봉 하나를 세워두고 여성들이 봉춤을 추는 장면을 내보내는 시대가 아닌가. 그 봉을 뽑아 휘두르는 도봉순의 모습은 그냥 넣은 장면이 아닐 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극중 캐릭터 도봉순은 이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힘쎈 여자 도봉순>이 그 로맨틱 코미디의 포장 아래 숨겨둔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이 드라마는 그래서 도봉순이 동네에 출몰하는 사이코를 제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그녀가 스스로 각성하는 일이다. 사이코가 젊은 여성들을 유괴해 자신의 은신처에 가둬두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도봉순도 또 인국두도 마치 공기처럼 되어버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여성을 성추행하는 치한의 손가락을 비틀어 응징하면서 “내가 힘을 제대로 쓴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도봉순은 그래서 이러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지만, 자기가 만든 편견에 갇혀 그 힘을 공공연히 세상에 드러내는 걸 창피하게 여기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봉순 스스로가 이것이 여성으로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나아가 그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은 그녀가 놀라운 힘을 가진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된다. 그것은 이 땅의 여성들이 힘이 없어서 때론 핍박받는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존재하는 힘을 스스로 인정하거나 각성하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이 도봉순이 ‘힘쎈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될 인국두를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멋진 남성으로서의 자각이 될 테니 말이다. 

이 드라마가 이러한 캐릭터의 함의를 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역시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길 수밖에 없다. 힘과 여자를 이토록 멋지면서도 귀엽고 러블리하게 봉합해낼 수 있는 이 연기자의 결이야말로 이미 시청자들에게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얼마나 예쁜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봉순’ 박보영, 복스럽고 러블리한 데다 걸크러시까지

도대체 박보영의 무슨 마력이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을 펄펄 날게 만드는 걸까. 4회 만에 8.3%(닐슨 코리아). 애초 3% 시청률 돌파 공약을 내세웠던 것이 무색해져버렸다. 이 정도라면 두 자릿수 시청률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최근 JTBC가 드라마로 낸 최고의 시청률을 최단 기간에 경신하고 있다. 그간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왔지만 시청률에 유독 갈증을 느껴왔던 JTBC로서는 박보영을 업고 다니고 싶을 지경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런 놀라운 기록이 그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단연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가진 팔색조 매력이다. 이미 <과속스캔들>, <늑대소년> 같은 영화를 통해서 가능성을 보였던 박보영은 tvN <오 나의 귀신님>으로 드라마에서도 ‘시청률 보증수표’로 등극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힘쎈 여자 도봉순>은 박보영을 만나면서 일찌감치 성공의 발판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보영이 가진 매력이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그녀가 가진 남녀노소 거의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울러 호감을 만들어내는 그녀만의 면면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클럽에 놀러간 도봉순이 술에 취해 봉을 잡고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춤을 추다가 갑자기 봉을 뽑아서 놀라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도무지 박보영이 아니면 그만큼 자연스럽게 소화가 될 수 있을까 싶은 면이 있다. 

또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왔지만 마음속으로 짝사랑해온 인국두(지수)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동네 깡패들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어 천연덕스럽게 그들을 제압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어찌 보면 가녀리게만 보이는 그녀가 공기총 테러로 다친 사장 안민혁(박형식)을 영화 <보디가드>의 한 장면처럼 안고 뛰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귀엽고 또 한 편으로는 남녀 관계의 역전이 만들어내는 어떤 기존 관념을 깨는 시원함까지 전해주는 것 역시 그녀가 아니면 이만큼 잘 소화됐을까 싶은 장면들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그래서 그 때론 한없이 러블리하고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는 힘센 슈퍼 히어로로 변신하는 그 다채로운 변신이 캐릭터가 가진 핵심적인 매력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에게는 마치 제 옷을 입은 것처럼 딱딱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박보영이 가진 매력의 실체는 나이든 세대에게는 ‘복스러움’으로 다가오고, 남성들에게는 귀엽고 러블리한 매력이며, 여성들에게는 귀여우면서도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그런 워너비의 면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지나치게 여성적인 이미지를 보이면 오히려 여성들에게는 비호감이 되기 쉽고, 걸크러시를 강조해서 드러내면 나이든 세대에게는 너무 ‘나댄다’는 얘기를 듣기 쉬운 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박보영은 이런 세대와 남녀를 통틀어 호감을 갖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배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렇게 좋은 매력을 가진 배우라고 해도 그것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그 매력을 제대로 끄집어낼 수 있는 작품의 캐릭터를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보영과 <힘쎈 여자 도봉순>의 만남은 연기자와 캐릭터의 시너지라는 점에서 하나의 정답 같은 느낌을 준다. 4회만에 시청률 8%. 그것이 그저 우연이 아닌 이유다.

‘도봉순’이라는 여성히어로의 탄생이 의미하는 것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KBS <김과장>을 잇는 사이다 드라마가 될까. 밤길 다니기가 무서운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캐릭터가 행패를 일삼는 동네 깡패들을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그 장면만으로도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까. 취업준비생으로 무시를 당해본 이들이라면 그녀가 아인소프트의 젊은 사장 안민혁(박형식)의 보디가드 겸 개인비서로 고용되었지만, 오히려 그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살짝 안민혁의 발을 밟아서 뼈에 금이 가게 되자, 도봉순이 함께 간 병원에 온통 그녀로 인해 심한 부상을 입은 이들이 넘쳐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빵 터지는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안민혁의 비서였던 공비서(전석호)는 꼬리뼈가 깨져서, 동네깡패 김광복은 이가 다 빠져서 또 안민혁은 발에 금이 가서 같은 병원에서 끙끙 앓는 광경이라니. 마침 그녀의 남동생 도봉기(안우연)가 레지던트로 있는 상황에, “누나는 병 주고 동생은 약 준다”는 식의 동네깡패 김광복(김원해)의 대사 역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김광복의 보스인 백탁(임원희)이나 백탁의 오른팔인 아가리(김민교)의 등장은 또 다른 통쾌한 웃음을 예고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 출연하고 있는 전석호나 김원해, 임원희, 김민교는 누가 뭐래도 이렇게 당하고 깨지는 역할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연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자들이다. 박보영이라는 대체불가 러블리와 터프함을 동시에 가진 연기자 앞에 이런 리액션이 남다른 명연기자들을 상대역으로 붙여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의 캐릭터는 물론 여성주의적인 입장에서 완전히 각성한 인물은 아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냈던 인국두(지수)에게 일편단심이다. 엄청난 괴력을 갖고 있지만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봐 그걸 숨기며 지내온 그녀를 인국두는 ‘가녀린 여자’라며 보호 받아야 할 존재로 취급한다. 인국두는 만나는 여자친구가 따로 있지만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안위를 늘 걱정한다. 도봉순과 인국두의 남녀관계는 그만큼 전형적이다. 일편단심의 사랑을 하는 여성 캐릭터와 여성을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 캐릭터다. 

그래서 <힘쎈 여자 도봉순>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한계를 지목하는 비판적 시선도 존재하지만, 사실 그건 너무 이른 판단이다. 이미 그녀가 괴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인국두가 도봉순의 안위를 걱정하는 말에 웃음이 나오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도봉순은 막 그간 숨기고 있던 괴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단계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잔혹한 살인마와의 일전을 그녀는 예감하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인국두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만을 갈구하던 도봉순이 차츰 각성하고 자신의 ‘힘쎈’ 그 특별함이 숨길 일이 아닌 능력이라는 걸 인정하며 오롯이 자신의 실체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그 편견과 선입견을 깨주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힘쎈’ 여자가 어때서? 하고 오히려 되묻는 드라마.

그래서 <힘쎈 여자 도봉순>은 이러한 폭력적이고 편견과 선입견에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유쾌한 전복을 꿈꾸는 블랙코미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과장>식의 블랙코미디를 닮았다. <김과장>이 조직의 폭력적인 시스템을 독특한 김과장이란 돈키호테를 통해 뒤집는 이야기라면, <힘쎈 여자 도봉순>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역할 구분으로 나누고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폭력에 맞서는 도봉순이라는 여성 히어로의 전복이니 말이다. 답답한 세상, 또 한편의 통쾌한 사이다 드라마의 탄생이다.

귀여운데 통쾌한 ‘도봉순’, 박보영의 저력이다

JTBC 새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제목에 들어가 있듯 캐릭터가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도봉순(박보영)은 행주대첩의 여전사 박개분으로부터 남다른 유전자를 물려받은 주인공이지만 누군가에게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그 괴력을 숨기며 살아가는 인물. 그래서 그저 겉으로만 보면 평범하고, 심지어 아이 같은 귀여움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 도봉순이 한번 힘을 쓰기 시작하자 갑자기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은 광경들이 펼쳐진다. 밀치기만 해도 장정 하나쯤은 쉽게 날려버리고, 뺨 한 대에 깡패의 치아 몇 개가 부러진다. 타이어가 터진 채 폭주하는 버스를 간단히 멈춰 세우고 논두렁에 처박힌 경운기를 한 손으로 들어 길 위로 세워 놓는다. 

러블리한 귀여움과 살벌하게까지 느껴지는 괴력.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 이질적인 면면을 하나로 엮어놓자 기묘한 색깔이 생겨난다. 한없이 귀여워 달달한 멜로의 향기가 묻어나지만, 동시에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괴력으로 그걸 일거에 해결해버리는 통쾌함이 덧붙여진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는 굳이 이런 러블리와 괴력이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요소를 도봉순이라는 캐릭터에 녹여놓은 걸까. 그건 다분히 멜로라는 틀을 그려내되 동시에 사회에 숨겨진 폭력, 사고, 사건들에 맞서는 액션과 스릴러까지 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선입견으로 남아있는 남녀의 성차에 따른 어떤 역할구분 같은 걸 뒤집어본다는 점이다. 

도봉순과 엮어지는 게임회사 대표 민혁(박형식)은 남녀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민혁은 그녀의 괴력을 목격한 후 그녀를 자신의 개인경호원으로 채용한다. 계속해서 오는 협박전화 때문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것. 그리고 아마도 이 개인경호원과 대표는 그 직업적 관계 이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보통의 보디가드 설정의 이야기라면 남녀가 정 반대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도봉순이라는 ‘힘쎈여자’에 의해 보호받는 남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코미디를 장르로 채용하고 있지만 그래서 <힘쎈여자 도봉순>은 우리 사회의 성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즉 남성은 어떠해야 하고 여성은 어떠해야 하는 식의 통념들이 이 괴력을 숨긴 도봉순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어떤 식으로 깨지는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은 때론 사회 폭력과의 대결이 된다는 점에서(물론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폭력이 대부분 드라마에서 다뤄지지만)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사회적 성적 차별에 대적하는 ‘쎈여자’의 면면을 통쾌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을 ‘힘쎈여자’라는 캐릭터로 친근하게 만든 면이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이 역할을 다름 아닌 믿고 보는 배우 박보영이 맡았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첫회만으로도 실로 귀엽고 통쾌한 이 도봉순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는 저력을 보였다. 

최근 들어 사회 문제에 대해 심지어 만화적인 톤의 코미디가 주목을 끌고 있다.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 같은 작품이 그렇다. 도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해내지만 그것이 그토록 통쾌할 수가 없다. 아마도 <힘쎈여자 도봉순>도 그 캐릭터나 장르적 성격으로 볼 때 <김과장> 같은 계보를 이어가지 않을까. 물론 이 작품에는 박보영이 연기하는 귀엽고 러블리한 멜로도 덧붙여질 것이지만.

‘화랑’, 문제는 사전제작이 아니라 완성도다

KBS 월화드라마 <화랑>은 결국 7.9%(닐슨 코리아)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지상파 경쟁에서 꼴찌를 기록하며 쓸쓸히 종영했다. 사실 시작부터 그리 좋은 출발은 아니었다. 첫 회 시청률 6.9%. 100% 사전 제작에 중국과의 동시방영 등을 내걸었던 작품인지라(물론 이건 틀어져버렸지만) 기대감이 높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청자들은 그리 반색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갈수록 식어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화랑(사진출처:KBS)'

혹자는 <화랑>의 추락의 이유로 사전제작이 가진 한계를 지목한다.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없는 게 아니다. 즉 문제가 초기에 발견됐을 때 100% 사전 제작 드라마는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화랑>의 경우 만일 사전 제작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첫 회 시청률이 6%대가 나왔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문제를 인식하고 대본 수정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화랑>은 안타깝게도 100% 제작이 완료된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사전 제작 드라마의 한계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사실 <화랑>의 이야기구조를 보면 100% 사전 제작 드라마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느슨하게 드라마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된다. <화랑>은 안지공(최원영)의 아들 막문(이광수)이 죽자 대신 그의 친구인 무명(박서준)이 그가 되어 살아가면서 차츰 화랑으로 거듭 난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신라의 골품제도라는 틀이 있고 천민 출신인 무명이 실력으로 다른 화랑들의 귀감이 된다는 이야기는 금수저 흙수저로 얘기되는 현재의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런 태생으로 결정되는 계급 시스템과 대결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그려졌을까. <화랑>은 이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악역들이 제대로 서지 못했고, 그러니 이 주인공이 대결구도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주제의식도 잘 드러내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이야기는 소소해지고 틀에 박힌 멜로가 빈자리를 채웠다. 여기에 천민인 줄 알았던 주인공이 본래 성골이었다는 출생의 비밀까지 등장하면서 시스템과 대결하는 문제의식은 퇴색해버렸다. 결국은 잘난 출생이 숨겨져 있었다는 귀결은 얼마나 허탈한 이야기인가. 

주인공인 선우가 이렇게 제 캐릭터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이 드라마의 또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삼맥종(박형식)은 어미이지만 이상하게도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키지 않고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려 하는 왕비 지소(김지수)로 인해 전혀 캐릭터가 전면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왕이면서도 왕임을 밝히지 못하는 그 설정 때문에 늘 뒤편에 숨어 있게 됐던 것. 이런 캐릭터는 마지막에 진짜 자신이 왕이라는 게 밝혀지는 그 순간 잠깐 주목되지만 그 과정들에는 대부분 묻히게 될 수밖에 없다. 

<화랑>의 문제는 사전제작으로 인해 수정을 할 수 없었다는 점도 컸지만, 애초에 만들어진 작품이 너무 안이했다는 걸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의 설정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하게 구성됐고, 드라마의 전개과정은 너무 느슨했으며 애초의 주제의식도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사실 이건 사전제작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 드라마가 가진 완성도 부족의 문제라고 해도 될만한 사항이다. 

연달아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고배를 마시는 상황이라, 마치 그 사전제작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전제작 시스템은 어쨌든 과거 쪽대본 시절을 떠올려 보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제작 환경이다. 다만 중요한 건 그 사전제작을 제대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안전장치들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하고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그 자체가 리스크일 수 있다. 그러니 그럴수록 더 많은 사전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대본, 그리고 촬영 후 갖는 1차 편집본 등등 단계별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다면 사전제작은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화랑>의 쓸쓸한 종영은 그래서 사전제작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애초에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완성도 부족이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화랑', 도대체 언제까지 사랑타령만 하고 있을 건가

방영 전 KBS 월화드라마 <화랑>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작품보다 높았다. 중국과 동시방영을 추진했고, 따라서 100% 사전 제작된 작품이다. 한류를 노리는 드라마였다는 것. 게다가 신라의 화랑을 본격적인 소재로 삼아 꽃미남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도 시선을 잡아끌었다. 박서준과 박형식은 물론이고 도지한이나 김태형 같은 새 얼굴들도 기대되는 지점이었다. 

'화랑(사진출처:KBS)'

그리고 첫 회는 이런 기대감이 실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저 꽃미남들의 화랑이라는 소재를 빙자한 연애담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무명(박서준)의 등장과 그의 친구 막문(이광수)의 죽음이 전하는 골품이라는 신분제에 억눌린 청춘들의 현실이 단박에 날려주었기 때문이다. <화랑>은 현재의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신라의 골품제도 안에서 숨막혀했던 청춘들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막문의 죽음으로 그를 대신해 선우라는 이름을 갖게 된 무명은 그 신분을 뛰어넘어 화랑에 들어왔고 성골인 삼맥종(박형식)과 많은 진골 출신 화랑들 속에서 남다른 재능과 생각을 드러낸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신분이 그러한 것처럼, 골품제의 틀에서 훌쩍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이 갈수록 꺾어지게 된 건 드라마가 확실한 추동력을 잃어버리게 되면서부터다. 결국 드라마의 힘은 극적 갈등에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화랑>은 그러한 갈등이 그다지 절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확실히 도드라지지 않는 악역 때문이다. <화랑>에서 선우와 삼맥종이 가려는 그 길을 막아서는 존재는 바로 왕비이자 삼맥종의 모후인 지소(김지수)와 그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권세가 박영실(김창완)이다. <화랑>의 추동력이 나올 수 있는 건 바로 이들 악역의 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들의 존재감은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강한 대립자가 서지 않기 때문에 선우와 삼맥종이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간절함 같은 것이 생겨날 수 없다. 바로 이 핵심적인 드라마의 추구점이 잘 보이지 않게 되면서 드라마는 소소하고 잔잔한 사랑이야기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로(고아라)를 사이에 두고 미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선우와 삼맥종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게다가 강렬한 악녀의 모습을 보여야 될 지소가 어째서 안지공(최원영)에게 멜로 감정을 드러내는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힘이 실릴 수 있는 상황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극적 상황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맥이 빠진다. 

백제 남부여에 화랑사절단이 가는 에피소드에서 선우가 “자신이 왕”이라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그 이유가 단순히 붙잡힌 아로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은 그래서 <화랑>의 이야기가 왜 소소해졌는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국의 왕임을 거짓말로 하는 장면의 근거가 ‘사랑’이라는 단순한 이유라면 <화랑>이 그리는 세계는 삼한일통을 꿈꾸거나 아니면 골품 같은 신분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런 것과는 다른 소소한 것으로 전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화랑>이 미지근해진 건 그 본래 하려던 이야기에서 한참 벗어났거나 너무 잔잔한 가지들을 재미요소로 많이 끼워 넣다보니 그 본래의도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회를 보고나면 결국 사랑타령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으로는 이 드라마가 회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꽃미남들의 면면을 보는 것만으로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화랑>이 유골무죄 무골유죄 청춘을 보듬는 방식

 

유골무죄 무골유죄.” 골품이 있으면 죄가 없고 골품이 없으면 죄가 있다? 이 조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삼국시대 신라의 골품제도에 빗댄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흙수저의 신라 버전쯤 될까. KBS 월화드라마 <화랑>이 그려내는 청춘들은 당대의 골품제도라는 태생적인 틀에 묶여 꿈이 있어도 펼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화랑(사진출처:KBS)'

무명(박서준)은 그 골품제도에 의해 많은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인촌에서 함께 자라온 둘도 없는 친구 막문(이광수)이 그 신분제의 틈바구니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누이를 찾기 위해 왕경을 넘었다는 죄로, 또 절대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 성골 삼맥종(박형식)의 얼굴을 봤다는 죄로 막문이 죽음을 맞이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무명은 본래 안지공(최원영)의 아들이었던 막문의 진짜 이름 선우를 자신이 대신 쓰기로 한다.

 

꽃다운 청춘들, 화랑이 모이는 선문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이 골품의 차별이 없다는 건 그래서 흥미로운 대목이다. 물론 그 안에서 뼛속까지 골품의 틀에서 살아왔던 진골들이 선우 같은 반쪽(반만 진골)을 집단적으로 따돌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오로지 실력으로 판단하는 것 같은 기준들이 제시되는 건 <화랑>이라는 드라마가 현재에 어떤 판타지를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골품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하나의 화랑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해야 하는(하다못해 빨래까지) 상황은 진골들에게는 힘겨운 일이지만, 애초에 천인으로 살아왔던 선우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건 여전히 귀천을 따져 자신을 능멸하고 나아가 여동생인 아로(고아라)까지 희롱하는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류(도지한)는 마치 현재의 비뚤어진 상류층들의 갑질 행태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선우 역시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반류가 선우에게 너 같은 반쪽이 시궁창이라고 말하자 선우는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시궁창은 너지. 스스로 뭘 해본적도 없고. 그 자리에서 썩고 있는 너 같은 고인 물.” 이 대사가 말해주듯 이 귀족 자제들이 화랑으로 모인 선문에서 선우라는 이질적인 인물은 그래서 향후 이들 화랑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귀족이라는 골품의 틀에서 썩어가고 있는 그들을 다시 흐르게 만들어줄.

 

선우가 온 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는 인물이라는 건 이런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반영한다. 흥미로운 건 그에게 마음이 설레는 아로가 의원 아버지인 안지공에게 곁눈질로 의술을 배운 인물이라는 것. 아로의 캐릭터는 다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이다. 아로를 구하다 손바닥을 칼에 베인 선우를 치료하면서 다치지 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건 그것이 마치 상처받은 청춘을 보듬는 치유의 손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문에서 벌어진 화랑들의 집단 난투극으로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로가 나서는 장면은 그래서 이 캐릭터를 보다 명확히 해준다. 또한 잠 못 드는 삼맥종을 옆에서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치유의 캐릭터 아로는 선우의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보듬어주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삼맥종을 잠시 쉬게 해준다.

 

이것은 <화랑>이라는 사극이 신라의 화랑들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청춘들을 보듬는 방식일 것이다. 물 수()를 보여주며 이것의 성격을 묻는 위화공(성동일)에게 삼맥종은 물은 선하다고 말한다. 늘 자신을 낮추고 밑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선우는 물이 고단하다고 말한다. 물은 몸속에서 금이면 금, 물고기면 물고기를 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위화공이 물 수()자와 함께 내놓은 표제어 왕()의 역할을 묻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우의 심경이 담겨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춘들의 고단함. 그 고단함을 없애줄 수 있는 건 더 고단하게 백성들을 위해 일하는 왕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그런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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