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츠’, 장동건과 박형식의 진가를 확인한 시간

KBS 수목드라마 <슈츠>가 종영했다. 성공한 미드 원작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슈츠>는 성공적인 리메이크를 만들어냈다. KBS 드라마로서 본격 장르물로 10.7% 시청률(닐슨 코리아)로 화제 속에 종영했다는 사실은 사실 흔한 일은 아니다. 자칫 원작과의 비교에 무너지거나, 본격 장르물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의 이탈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슈츠>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제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렸고, 엔딩에 있어서도 유종의 미를 거뒀다. 

워낙 대본이 탄탄하기 때문에 뭐가 어려웠을 것인가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 <슈츠>는 우리네 장르물들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의 압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드라마는 아니었다. 사건 하나를 가지고 2회 정도의 분량을 뽑는 우리네 법정물을 생각해보라. <슈츠>는 한 회에 심지어 사건 3개가 동시에 돌아가는 숨 쉴 틈 없는 전개를 보여주기도 했다. 

너무나 이야기가 압축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또 액션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법정물로서의 대사가 중심이 되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그 치열한 두뇌게임과 반전은 깊이 빠져 보기 전에는 묘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슈츠>는 매 회 하나의 주제를 여러 사건들을 통해 그려내는데 성공적이었다. 마치 잘 짜여져 있어 보기만 해도 설득되는 처세서 한 편을 읽는 듯한 즐거움.

이 어려운 걸 해낸 일등공신으로 장동건과 박형식이라는 사실상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두 배우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끝없이 쏟아내야 하는 법률 지식들과 사건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의 심리를 읽어내고 대처하는 최강석이라는 로펌의 대표 변호사 역할을 장동건은 제대로 소화해냈다.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드라마에 안정적인 흐름과 긴장감 그리고 이완까지를 쥐락펴락한 건 역시 장동건이었다. 

물론 2012년 방영됐던 <신사의 품격>에서도 확실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선보였던 그였지만, <슈츠>에서의 면모는 확실히 달랐다. 그건 최강석이라는 캐릭터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고연우(박형식)라는 변호사 자격도 스펙도 없는 인물을 어소로 기용하는 이 인물은 그 ‘선택’에서부터 그가 겉으론 냉철하지만 속으로는 따뜻한 변호사라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최강석이 후반에 이르러 자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함대표(김영호) 앞에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은 그가 고연우를 만나 변화하고 성장한 과정을 제대로 담아냈다. 

한편 이번 드라마를 통해 확고한 배우로서의 자기 색깔을 만들어낸 박형식의 성장은 ‘즐거운 발견’이었다. 최강석에 의해 기용되지만 실제로는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를 구해준 건 바로 고연우였다. 고연우는 자신을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최강석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인물이었던 것. 이를 연기한 박형식은 무엇보다 장동건 같은 대선배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슈츠>는 낯선 법정의 사건들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여 다소 복잡해보일 수 있는 드라마였지만, 그 미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되었던 건 든든한 드라마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 장동건과 박형식이 있어서였다. 두 사람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과정과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브로맨스는 시청자들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런 의미에서 <슈츠>는 장동건과 박형식의 진가를 확인한 시간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싶다.(사진:KBS)

‘슈츠’, 장동건도 박형식도 결국 서로를 성장시켰다

종영을 2회 남기고 KBS 수목드라마 <슈츠>는 최강석(장동석) 변호사에게 닥친 최대 위기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과거 비리에 연루되어 물러났던 함대표(김영호)의 복귀는 그 신호탄이었다. 그의 계략에 의해 가짜 증거를 발견하고는 최강석을 위해 그 증거를 입멸해버린 홍다함(채정안)은 결국 해고됐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 증거입멸의 책임이 결국은 최강석에게 돌아와 그의 해임과 변호사 자격 박탈이라는 요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홍다함이 해고되고, 최강석까지 해임되게 되면 그 다음 타깃은 강&함 로펌을 이끌고 있는 강하연(진희경) 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 ‘재신임’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연쇄적으로 강&함을 이끌던 최강석과 그 주변사람들을 모두 위기에 몰아넣었다. 

이 모든 것이 함대표의 음모라는 걸 알고 있는 최강석은 분노했다. 그래서 평소 좀체 드러내지 않던 감정을 드러냈다. 자신의 방을 도청한 채근식(최귀화)의 멱살을 잡았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상대측 변호사인 데이빗킴(손석구)이 자신의 부모 이야기까지 꺼내며 조롱하자 결국 주먹을 날렸다. 최강석의 흥분은 <슈츠>라는 드라마 속에서는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 사안이 얼마나 그들에게 위기인가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모두가 무너지고 위기에 몰리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냉정을 지키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고연우(박형식)였다. 그가 늘 타인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다가 일을 그르칠 뻔하기도 했던 과거를 떠올려보면 그의 이런 냉정은 그가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함대표가 ‘살모사 같은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최강석으로부터 들었던 고연우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함대표에게 접근했다. ‘제 어미까지 잡아먹는 살모사’라는 존재는 어쩌면 고연우에게는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해답처럼 다가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의심하는 함대표를 설득시키며 고연우는 그의 편에 서서 최강석을 피고로 세우는 모의법정의 검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모의법정에 증인으로 홍다함을 세운 후, 그에게 최강석을 “사랑하냐”고 몰아붙였다. 여기서도 최강석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다. “내가 시킨 걸로 할 테니까 그만하라”고 소리친 것. 어째서 고연우는 이토록 냉정하게 최강석과 홍다함을 몰아붙였고, 거기에 그들은 왜 그토록 감정을 드러낸 것일까. 

모의법정에서 최강석을 변호하기 위해 나선 강대표(진희경)는 토스트 트럭과 최강석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며 그의 성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면 약점이 늘기” 때문에 본래는 인간적인 최강석이 사건에 있어서는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 배심원들에게 설득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인간적인 모습이나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약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감정이 드러나더라도 진심을 끄집어내는 것이 오히려 이 위기를 넘을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건 아닐까.

만일 고연우가 그런 걸 의도하고 있고, 그래서 냉정하게 악역을 자처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최강석의 인간적인 진심을 끄집어내려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두 인물의 성장이 흥미로워진다. 즉 공감능력이 뛰어나 오히려 감정적이 되던 고연우는 어느새 냉정 또한 갖춘 인물이 되었고,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던 최강석은 그를 통해 사실은 따뜻한 심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남은 2회가 담아낼 결말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역전된 고연우와 최강석의 면면이 보여주는 성장과정은 충분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결국 냉정함과 따뜻함을 균형 있게 갖춰나가는 것이 진정한 변호사로서의 성장이라면, 고연우와 최강석은 처음 만났던 그 시점부터 서로를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선택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게 된 것이고, 각자의 운명을 바꾼 것이니.(사진:KBS)

미드 원작의 영향일까, ‘슈츠’라는 법정물의 특이함

이 법정물은 확실히 특이하다. 지금 현재 다뤄지고 있는 요양병원 간호사 파업이라는 소재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보면 KBS 수목드라마 <슈츠>가 지금껏 우리네 법정물이 그려내던 풍경과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사회 정의에 대한 갈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져서인지, 법정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파업’ 같은 소재에서 드라마가 손을 들어주는 건 대부분 노동자들이다. 사측이 하려는 인력감축에 맞서 오히려 인력을 확충해달라고 요구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라면 응당 그 노동자들인 간호사들의 요구가 관철되는 과정을 담는 게 우리네 법정물들이 보여줬던 이야기의 방향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츠>는 다르다. 물론 간호사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래서 고연우(박형식) 같은 인물이 그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고 어떤 합의안을 도출하려 애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고연우는 마침 그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할머니를 통해 그 곳의 간호사들이 인력이 부족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또 이른바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라는 잘못된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본래 타인에 대한 남다른 공감능력을 가진 고연우는 그래서 간호사들이 원하는 건 임금인상이 아니라 인원 확충이라는 걸 간파하고 이를 사측과의 협상안으로 내놓는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이런 고연우의 해결책이 관철되고 간호사들도 사측도 고개를 끄덕이는 결과로 끝나겠지만, <슈츠>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측의 변호인일 수밖에 없는 강&함 로펌의 입장으로서 사측의 본래 목적이 인원 감축이었다는 사실을 들며 고연우의 협상안을 파기해버린다. 협상 테이블에 나타난 최강석(장동건)은 협상안 대신 파업 주동자들에 대한 해고통지를 알린다.

<슈츠>는 애초부터 파업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주는 단순한 판타지를 그리기보다는 그 사건을 두고 강&함 로펌 내에서 벌어지게 된 권력 다툼에 더 초점을 맞춘다. 새로이 등장한 함기택 대표(김영호)가 최강석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이 사건에 손을 댔고, 타인에 대한 남다른 공감 능력을 가진 고연우를 이용해 간호사들과의 협상안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내려 했던 것. 결국 최강석을 물 먹이기 위해 고연우까지 이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강석 역시 그저 당하기만 할 인물은 아니었다. 애초에 함기택이 고연우에게 손을 뻗칠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슬쩍 자신의 어쏘인 고연우 이야기를 흘림으로써 함기택이 그를 이용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나오게 된 협상안이 사실은 병원측의 요구와는 상충된다는 사실을 들어 오히려 함기택을 몰아붙이려 했다는 것이다. 고연우는 그 중간에 끼여 이리저리 이용되는 인물이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요양병원 간호사들의 파업이라는 사건은 애초에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중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그것 역시 어찌 보면 이 드라마가 진짜로 그리려는 강&함 로펌 내부의 권력 싸움을 본격화하기 위한 소재의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연우가 함기택과 최강석의 권력 싸움에 이용당했듯, 그 사건 케이스도 드라마가 담으려는 갈등구조에 이용됐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선택은 최근 그 많은 법정물들이 저마다의 사회 정의에 대한 갈증을 판타지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놀랍고 과감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선택은 미드 원작이라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쿨한 드라마 정서가 작용한 것일 게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로펌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싸움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녹여내기 위한 과감한 선택이라는 점이다. 막연한 판타지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이전투구의 장을 보여주는 <슈츠>는 확실히 특이한 면이 있다.(사진:KBS)

‘힘쎈 여자 도봉순’, 박보영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드라마는 끝났지만 박보영이 남긴 잔상은 꽤나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마지막회 시청률 8.957%(닐슨 코리아). JTBC로서는 이제 종영한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다. 그간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을 꾸준히 만들어왔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그다지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던 JTBC 아닌가. 그러니 이 <힘쎈 여자 도봉순>이 난공불락으로만 여겼던 시청률의 성을 깨버린 건 JTBC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리고 이 드라마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박보영이라는 독보적인 연기자 덕분이라는 것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게다. 생각해보라. 어찌 보면 만화 같은 슈퍼파워걸 도봉순이 보여주는 엄청난 괴력의 장면들은 자칫 잘못하면 유치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살짝 치기만 해도 사람이 날아가고, 문짝을 통째로 뜯어내거나 달리는 버스를 맨 손으로 멈춰 세우며, 수십 명은 될 조폭들을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그 장면들은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좀체 성공하기 어렵다는 B급 정서까지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을 드라마는 그간 범행의 대상으로만 주로 다뤄지던 여성 히어로를 세움으로써 심정적 지지로 바꾸었고, 그 B급 정서가 코미디적으로 연출되면서 믿기 어려운 액션들마저 웃어넘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런 난관들을 모두 허용시킨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배우 자체였다. 어른들에게는 복스럽고, 남녀 모두에게 귀엽게 다가오는 이 대체불가의 배우는 액션이면 액션, 멜로면 멜로, 코미디면 코미디 등등 뭐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한 장르들을 떠올려보라. 스릴러는 물론이고 액션, 멜로, 코미디, 청춘 성장드라마 등등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다. 마치 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올려다볼 때는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만들고, 조폭들을 한꺼번에 때려눕힐 때는 그간 억눌렸던 감정들이 시원하게 풀어지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는 개인적 성장을 통한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고, 웃을 일 찾기 힘든 현실에 잠시 동안 모든 걸 잊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액면대로 보면 드라마가 굉장한 메시지나 형식미 혹은 내용적 완성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조금씩 있는 흠결들을 채워 넣어준 건 다름 아닌 박보영이다. 그녀가 하기 때문에 용서되는 장면들도 있었고, 그녀가 있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게 됐던 허술한 이야기 설정들도 적지 않았다. 

이 배우가 놀라운 건 보통 우리가 ‘국민 여동생’ 같은 표현으로 지칭할 때 생기는 어떤 이미지의 장벽 같은 것들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귀여운 여동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 이건 배우로서 박보영이 가진 가장 큰 독보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작년 방영해 큰 성공을 거뒀던 tvN <오 나의 귀신님>은 박보영이라는 배우의 꽃길이 이미 시작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제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확실히 입증된 그 힘은 벌써부터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제 자신의 힘을 자각한 박보영의 또 다른 비상을 기대한다.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이 결국 자각했던 그 힘처럼.

‘도봉순’, 어째서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나

결국 힘쎈 여자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남자의 구원을 받아야 될 존재여야만 할까.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이 예상과 달리 엉뚱한 전개를 보이는 것이 대해 시청자들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대로 된 여성주의적 관점을 담은 드라마라는 생각과 달리, 슈퍼히어로인 도봉순이 여전히 남자에게 의존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여성들을 감금해 사육하는 엽기적인 사이코 김장현(장미관)은 도봉순을 유인해 선량한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시켜 다치게 함으로써 그녀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그런 설정이야 김장현과 도봉순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드는 것으로서 필요했던 장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위기 상황에 나타난 안민혁(박형식)과 인국두(지수)가 결국은 무력화된 도봉순을 구한다는 설정은 너무 쉬우면서도 안이한 해결책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 장면은 결국 도봉순처럼 힘쎈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안민혁이나 인국두 같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되는 존재처럼 비춰진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지금껏 해오려던 이야기의 긴장감을 일시에 무너뜨렸다. 힘쎈 여자는 과연 예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할까라는 드라마가 화두로 던진 문제의식은 끝없이 도움을 갈구하고 남성 캐릭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도봉순의 각성 없는 모습 앞에 조금씩 휘발되고 있다. 

사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어떤 통쾌함을 주었던 장면들은 동네 조폭들을 단신으로 대적해 모두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결국 애초부터 도봉순이라는 괴력을 이겨낼 수 있는 적수는 찾기 어려웠다는 것. 그것은 여성들만 범행대상으로 삼아 엽기적인 범죄를 저질러온 김장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꼼수를 쓰게 되는 것이지만 이런 꼼수로 슈퍼히어로가 무너질 리는 없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도봉순이 가진 진짜 문제는 이런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들이었다. 힘쎈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주체성의 결여가 그것이다. 그러니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에 종속되어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걸 갈구하는 모습에서 나아가 스스로 가진 자존감을 바탕으로 대등한 관점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도봉순으로 깨어나길 시청자들은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3회 분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도봉순은 한 걸음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애초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보다는 멜로와 여성주의 사이에서 드라마가 지나치게 갈등을 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도봉순과 안민혁의 멜로가 주는 힘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멜로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물론 남은 3회 분량을 봐야 결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의 멜로 구도는 너무 전형적이다. 위기에 상황에 몰린 여성을 구하러 달려오는 왕자님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멜로 상황을 거꾸로 뒤집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위기 상황의 남자들을 오히려 구해내는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도봉순이었다면.

‘도봉순’, 어째서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걸까

본격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격 장르물에도 멜로나 가족극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멜로의 틈입에 대해 시청자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최근 방영됐던 <피고인>이나 <보이스> 같은 본격 장르물이 멜로 없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그래서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경우는 멜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본격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장르들, 이를 테면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와 코미디, 게다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과 멜로까지 복합적인 장르를 보인다. 

그래도 그 메인으로 깔려 있는 건 여자들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코패스와 맞서는 강력계 형사 인국두(지수)와, 재벌가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테러 앞에서 위협을 느끼는 안민혁(박형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도봉순(박보영)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로 서 있는 구도. 

이미 도봉순은 자신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각성했고, 안민혁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그 힘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니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이 드라마 상의 어떤 악역들에게도 없다. 수십 명의 조폭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며 모두를 병원 중환자실로 몰아넣는 그녀가 아닌가. 백탁(임원희)은 그래서 그녀 앞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는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도봉순에게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의 결핍을 욕망으로 삼아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에 따라 동력을 얻기 마련이다. 물론 여자들을 감옥 같은 철창에 가둬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가 버젓이 살아있지만 그를 잡는 건 이 드라마의 한 과정일 뿐, 목표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순은 사실 정의의 실현 같은 것에 목을 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을 그녀는 숨기며 자라왔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것을 마치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인 양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멜로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건 바로 그것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숨기고 왔던 괴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남자의 등장은 바로 도봉순이 꿈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멜로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별로 나뉘어지는 역할이나 선입견들을 깨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남녀의 성역할에 따라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려내려는 것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스릴러 장르물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그래서다.

'도봉순' 박보영, 이 슈퍼히어로가 던진 진짜 메시지

“너 왜 이렇게 치마가 짧아?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지마.” 인국두(지수)의 이 말에 도봉순(박보영)은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다. 젊은 여자들만 폭행 납치하는 사이코가 출몰하는 동네, 형사 인국두의 그 말은 물론 도봉순이 걱정 되어 하는 말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비뚤어진 여성관을 담고 있다. 세상에 벌어지는 여성관련 성폭력 사건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여성 때문인가. 너무 예쁘게 하고 다니기 때문인가.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놀라운 건 인국두의 이런 말에도 도봉순은 아무런 자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짝사랑해온 인국두의 이 말 속에 담겨진 “너무 예쁘게”라는 말에만 집중하며 행복해한다. 이런 상황은 시청자들이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의 인국두와 도봉순의 관계를 보며 어딘지 잘못됐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두 사람은 너무나 순수해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에 빠져 있다. 인국두가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처럼, 도봉순도 사회가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여성들에게 부가하는 ‘예뻐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그래서 도봉순은 그녀가 안민혁(박형식)과 술을 마시다 만취해 클럽에서 봉을 뽑아 흔든 것이 카메라에 찍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에 창피해하며 책상 아래로 들어가 우울해한다. 사실 이 장면은 여성을 성적으로만 소비하는 세태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하다못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봉 하나를 세워두고 여성들이 봉춤을 추는 장면을 내보내는 시대가 아닌가. 그 봉을 뽑아 휘두르는 도봉순의 모습은 그냥 넣은 장면이 아닐 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극중 캐릭터 도봉순은 이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힘쎈 여자 도봉순>이 그 로맨틱 코미디의 포장 아래 숨겨둔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 이 드라마는 그래서 도봉순이 동네에 출몰하는 사이코를 제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그녀가 스스로 각성하는 일이다. 사이코가 젊은 여성들을 유괴해 자신의 은신처에 가둬두는 비뚤어진 성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도봉순도 또 인국두도 마치 공기처럼 되어버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여성을 성추행하는 치한의 손가락을 비틀어 응징하면서 “내가 힘을 제대로 쓴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도봉순은 그래서 이러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지만, 자기가 만든 편견에 갇혀 그 힘을 공공연히 세상에 드러내는 걸 창피하게 여기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봉순 스스로가 이것이 여성으로서 창피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라는 걸 깨닫고, 나아가 그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은 그녀가 놀라운 힘을 가진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된다. 그것은 이 땅의 여성들이 힘이 없어서 때론 핍박받는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 존재하는 힘을 스스로 인정하거나 각성하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이 도봉순이 ‘힘쎈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될 인국두를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멋진 남성으로서의 자각이 될 테니 말이다. 

이 드라마가 이러한 캐릭터의 함의를 담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역시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길 수밖에 없다. 힘과 여자를 이토록 멋지면서도 귀엽고 러블리하게 봉합해낼 수 있는 이 연기자의 결이야말로 이미 시청자들에게 ‘힘쎈 여자’ 도봉순이 얼마나 예쁜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도봉순’ 박보영, 복스럽고 러블리한 데다 걸크러시까지

도대체 박보영의 무슨 마력이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을 펄펄 날게 만드는 걸까. 4회 만에 8.3%(닐슨 코리아). 애초 3% 시청률 돌파 공약을 내세웠던 것이 무색해져버렸다. 이 정도라면 두 자릿수 시청률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상황. 최근 JTBC가 드라마로 낸 최고의 시청률을 최단 기간에 경신하고 있다. 그간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왔지만 시청률에 유독 갈증을 느껴왔던 JTBC로서는 박보영을 업고 다니고 싶을 지경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런 놀라운 기록이 그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단연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가진 팔색조 매력이다. 이미 <과속스캔들>, <늑대소년> 같은 영화를 통해서 가능성을 보였던 박보영은 tvN <오 나의 귀신님>으로 드라마에서도 ‘시청률 보증수표’로 등극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힘쎈 여자 도봉순>은 박보영을 만나면서 일찌감치 성공의 발판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보영이 가진 매력이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그녀가 가진 남녀노소 거의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울러 호감을 만들어내는 그녀만의 면면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클럽에 놀러간 도봉순이 술에 취해 봉을 잡고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춤을 추다가 갑자기 봉을 뽑아서 놀라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도무지 박보영이 아니면 그만큼 자연스럽게 소화가 될 수 있을까 싶은 면이 있다. 

또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왔지만 마음속으로 짝사랑해온 인국두(지수)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동네 깡패들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어 천연덕스럽게 그들을 제압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어찌 보면 가녀리게만 보이는 그녀가 공기총 테러로 다친 사장 안민혁(박형식)을 영화 <보디가드>의 한 장면처럼 안고 뛰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귀엽고 또 한 편으로는 남녀 관계의 역전이 만들어내는 어떤 기존 관념을 깨는 시원함까지 전해주는 것 역시 그녀가 아니면 이만큼 잘 소화됐을까 싶은 장면들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그래서 그 때론 한없이 러블리하고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는 힘센 슈퍼 히어로로 변신하는 그 다채로운 변신이 캐릭터가 가진 핵심적인 매력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에게는 마치 제 옷을 입은 것처럼 딱딱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박보영이 가진 매력의 실체는 나이든 세대에게는 ‘복스러움’으로 다가오고, 남성들에게는 귀엽고 러블리한 매력이며, 여성들에게는 귀여우면서도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그런 워너비의 면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지나치게 여성적인 이미지를 보이면 오히려 여성들에게는 비호감이 되기 쉽고, 걸크러시를 강조해서 드러내면 나이든 세대에게는 너무 ‘나댄다’는 얘기를 듣기 쉬운 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박보영은 이런 세대와 남녀를 통틀어 호감을 갖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배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렇게 좋은 매력을 가진 배우라고 해도 그것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그 매력을 제대로 끄집어낼 수 있는 작품의 캐릭터를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보영과 <힘쎈 여자 도봉순>의 만남은 연기자와 캐릭터의 시너지라는 점에서 하나의 정답 같은 느낌을 준다. 4회만에 시청률 8%. 그것이 그저 우연이 아닌 이유다.

‘도봉순’이라는 여성히어로의 탄생이 의미하는 것

JTBC 금토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은 KBS <김과장>을 잇는 사이다 드라마가 될까. 밤길 다니기가 무서운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봉순(박보영)이라는 캐릭터가 행패를 일삼는 동네 깡패들을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그 장면만으로도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까. 취업준비생으로 무시를 당해본 이들이라면 그녀가 아인소프트의 젊은 사장 안민혁(박형식)의 보디가드 겸 개인비서로 고용되었지만, 오히려 그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살짝 안민혁의 발을 밟아서 뼈에 금이 가게 되자, 도봉순이 함께 간 병원에 온통 그녀로 인해 심한 부상을 입은 이들이 넘쳐나는 장면은 그 자체로 빵 터지는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안민혁의 비서였던 공비서(전석호)는 꼬리뼈가 깨져서, 동네깡패 김광복은 이가 다 빠져서 또 안민혁은 발에 금이 가서 같은 병원에서 끙끙 앓는 광경이라니. 마침 그녀의 남동생 도봉기(안우연)가 레지던트로 있는 상황에, “누나는 병 주고 동생은 약 준다”는 식의 동네깡패 김광복(김원해)의 대사 역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김광복의 보스인 백탁(임원희)이나 백탁의 오른팔인 아가리(김민교)의 등장은 또 다른 통쾌한 웃음을 예고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 출연하고 있는 전석호나 김원해, 임원희, 김민교는 누가 뭐래도 이렇게 당하고 깨지는 역할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연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자들이다. 박보영이라는 대체불가 러블리와 터프함을 동시에 가진 연기자 앞에 이런 리액션이 남다른 명연기자들을 상대역으로 붙여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도봉순의 캐릭터는 물론 여성주의적인 입장에서 완전히 각성한 인물은 아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냈던 인국두(지수)에게 일편단심이다. 엄청난 괴력을 갖고 있지만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봐 그걸 숨기며 지내온 그녀를 인국두는 ‘가녀린 여자’라며 보호 받아야 할 존재로 취급한다. 인국두는 만나는 여자친구가 따로 있지만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안위를 늘 걱정한다. 도봉순과 인국두의 남녀관계는 그만큼 전형적이다. 일편단심의 사랑을 하는 여성 캐릭터와 여성을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 캐릭터다. 

그래서 <힘쎈 여자 도봉순>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한계를 지목하는 비판적 시선도 존재하지만, 사실 그건 너무 이른 판단이다. 이미 그녀가 괴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인국두가 도봉순의 안위를 걱정하는 말에 웃음이 나오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도봉순은 막 그간 숨기고 있던 괴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단계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잔혹한 살인마와의 일전을 그녀는 예감하고 있다. 

결국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인국두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만을 갈구하던 도봉순이 차츰 각성하고 자신의 ‘힘쎈’ 그 특별함이 숨길 일이 아닌 능력이라는 걸 인정하며 오롯이 자신의 실체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그 편견과 선입견을 깨주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힘쎈’ 여자가 어때서? 하고 오히려 되묻는 드라마.

그래서 <힘쎈 여자 도봉순>은 이러한 폭력적이고 편견과 선입견에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유쾌한 전복을 꿈꾸는 블랙코미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과장>식의 블랙코미디를 닮았다. <김과장>이 조직의 폭력적인 시스템을 독특한 김과장이란 돈키호테를 통해 뒤집는 이야기라면, <힘쎈 여자 도봉순>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역할 구분으로 나누고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폭력에 맞서는 도봉순이라는 여성 히어로의 전복이니 말이다. 답답한 세상, 또 한편의 통쾌한 사이다 드라마의 탄생이다.

귀여운데 통쾌한 ‘도봉순’, 박보영의 저력이다

JTBC 새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제목에 들어가 있듯 캐릭터가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도봉순(박보영)은 행주대첩의 여전사 박개분으로부터 남다른 유전자를 물려받은 주인공이지만 누군가에게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 그 괴력을 숨기며 살아가는 인물. 그래서 그저 겉으로만 보면 평범하고, 심지어 아이 같은 귀여움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 도봉순이 한번 힘을 쓰기 시작하자 갑자기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은 광경들이 펼쳐진다. 밀치기만 해도 장정 하나쯤은 쉽게 날려버리고, 뺨 한 대에 깡패의 치아 몇 개가 부러진다. 타이어가 터진 채 폭주하는 버스를 간단히 멈춰 세우고 논두렁에 처박힌 경운기를 한 손으로 들어 길 위로 세워 놓는다. 

러블리한 귀여움과 살벌하게까지 느껴지는 괴력.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 이질적인 면면을 하나로 엮어놓자 기묘한 색깔이 생겨난다. 한없이 귀여워 달달한 멜로의 향기가 묻어나지만, 동시에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괴력으로 그걸 일거에 해결해버리는 통쾌함이 덧붙여진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는 굳이 이런 러블리와 괴력이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요소를 도봉순이라는 캐릭터에 녹여놓은 걸까. 그건 다분히 멜로라는 틀을 그려내되 동시에 사회에 숨겨진 폭력, 사고, 사건들에 맞서는 액션과 스릴러까지 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선입견으로 남아있는 남녀의 성차에 따른 어떤 역할구분 같은 걸 뒤집어본다는 점이다. 

도봉순과 엮어지는 게임회사 대표 민혁(박형식)은 남녀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민혁은 그녀의 괴력을 목격한 후 그녀를 자신의 개인경호원으로 채용한다. 계속해서 오는 협박전화 때문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것. 그리고 아마도 이 개인경호원과 대표는 그 직업적 관계 이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보통의 보디가드 설정의 이야기라면 남녀가 정 반대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도봉순이라는 ‘힘쎈여자’에 의해 보호받는 남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코미디를 장르로 채용하고 있지만 그래서 <힘쎈여자 도봉순>은 우리 사회의 성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즉 남성은 어떠해야 하고 여성은 어떠해야 하는 식의 통념들이 이 괴력을 숨긴 도봉순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어떤 식으로 깨지는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은 때론 사회 폭력과의 대결이 된다는 점에서(물론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폭력이 대부분 드라마에서 다뤄지지만) 통쾌함을 선사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어찌 보면 사회적 성적 차별에 대적하는 ‘쎈여자’의 면면을 통쾌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을 ‘힘쎈여자’라는 캐릭터로 친근하게 만든 면이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이 역할을 다름 아닌 믿고 보는 배우 박보영이 맡았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첫회만으로도 실로 귀엽고 통쾌한 이 도봉순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는 저력을 보였다. 

최근 들어 사회 문제에 대해 심지어 만화적인 톤의 코미디가 주목을 끌고 있다.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 같은 작품이 그렇다. 도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해내지만 그것이 그토록 통쾌할 수가 없다. 아마도 <힘쎈여자 도봉순>도 그 캐릭터나 장르적 성격으로 볼 때 <김과장> 같은 계보를 이어가지 않을까. 물론 이 작품에는 박보영이 연기하는 귀엽고 러블리한 멜로도 덧붙여질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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