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 챙기는 코미디언들, 그 묵직한 울림

 

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막식에는 성화 봉송 이벤트가 있었다. 마치 올림픽처럼 성대한 행사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였는데, 그 마지막 주자는 개막식에 직접 성화를 들고 무대 오르게 되어 있었다. 이경규와 김용만이 사회를 맡은 개막식에서 그 마지막 주자가 발표됐다. 바로 송해 선생님이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현역 최고령 코미디언. 당연한 성화 봉송 마지막 주자였다.

 

'전국노래자랑(사진출처:KBS)'

그런데 송해 선생님이 성화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가 뛰어갈 때 문제가 생겼다. 성화의 불이 꺼져버린 것. 주최측이나 진행요원들 그리고 사회를 맡은 이경규, 김용만은 물론이고 거기 있던 코미디언 후배들은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경규는 역시 베테랑답게 이 불이 꺼져버린 성화라는 상황 자체를 코미디로 승화시켰다. 세상에 이런 성화 봉송은 최초라는 것.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송해 선생님이 단상에 오르기 전 김대희가 재빠르게 다가가 라이터로 성화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러자 이경규가 또다시 이런 성화 봉송은 없었다며 꺼진 성화를 라이터로 다시 붙인 성화 봉송의 해프닝을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단상에 오른 송해 선생님은 뜬금없이 노래 한 곡을 부르겠다고 하셨다. 이애란의 백세인생이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을 해야 하니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개사한 곡은 한 마디로 히트였다. 송해 선생님의 그런 모습은 객석에 웃음과 함께 잔잔한 감동마저 주었다.

 

그 자리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건 코미디언들의 선후배 관계가 그토록 돈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선배를 챙기기 위해 후배들이 모두 나서서 호응해주고 받아주고 하는 모습들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또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송해 선생님은 박명수 같은 후배가 디제잉을 선보일 때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7일 오전 159,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님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못 간다고 전해라-”하던 송해 선생님의 노래 한 자락이 무색하게 먼저 구봉서 선생님은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측은 애도의 뜻을 담아 추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일찌감치 조문을 떠난 후배들도 있었고, 현재 부산에 공연이 잡혀 있는 팀들은 공연이 끝나는 대로 조문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찌 보면 공교롭게 하루 사이로 벌어진 일들이지만 거기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코미디언들의 따뜻한 정과 선후배를 챙기는 마음이었다. 구봉서 선생님의 별세를 애도하고 다시금 기억해내려는 후배들의 모습은 요즘처럼 각박한 현실에서 그래도 코미디언들의 선후배들만큼은 살만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송해 선생님이 들고 가다가 꺼진 성화가 후배가 다시 붙여 불을 피우듯, 그들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따뜻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꽃보다 누나>가 그렸던 고 김자옥의 면면들

 

그녀는 우리에게 <꽃보다 누나>로 남았다. 폐암 투병 끝에 별세한 배우 김자옥.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모습으로 각인된 것은 어쩌면 서둘러 떠난 그녀에게도 좋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너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 이미연을 눈물 흘리게 했던 그 모습은 이제 마치 그녀의 유언처럼 우리에게 남았다. 모두를 축복하고 그녀는 떠난 것이다.

 

'꽃보다 누나(사진출처:tvN)'

그러고 보면 그 때 당시 그녀가 왜 그렇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가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여행길에서 모두가 당황해하거나 길을 찾아 헤맬 때도 전혀 개의치 않던 모습. 심지어는 모두가 걱정할 때 느긋하게 벤치에 누워 그 짧은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이 즐기던 그 모습은 생전에 그녀가 대했던 삶의 치열함을 말해줬던 것은 아니었을까.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간다는 건 그래서 어쩌면 진짜 삶에 가까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행 중 발견한 작은 일에도 아이처럼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삶의 소중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분의 진심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때론 귀여운 소녀처럼 깔깔 웃기도 하고, 갑자기 떠오르면 어디서든 춤을 추기도 하는 그런 자유로움이 삶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에서 기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꽃보다 누나>에서 그녀는 죽음을 생각했던 과거를 술회하기도 했다. 암 수술을 한 게 전이가 되면서 이렇게 죽는 것인가하고 생각했다는 것. 그녀가 항암치료를 받았고 또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것은 <꽃보다 누나>의 특별한 여행을 통해 알려졌다. 겉으로 늘 밝게 웃고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행복바이러스였던 그녀의 몰랐던 아픔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그녀가 보여준 건 아픔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이었다. 그녀와 함께 손을 꼭 잡고 걷던 김희애와 그녀에게 팔짱을 끼며 살갑게 다가왔던 이미연을 기억할 것이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두렵고 힘겨워했던 그녀의 모습은 여행 중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꽃보다 누나>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았다.

 

공주는 외로워를 부르며 짐짓 공주병인 척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지만, 사실 그녀의 병이 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그 웃음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행복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또 누군가를 웃게 해준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 저렇게 급하게 저러지? 결국 다 될 건데...” 그녀는 <꽃보다 누나>에서 막 급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이 한 마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루하루를 다급하게 살아가는가. 또 무엇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가.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될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의 말대로 다 이루고 떠나갔다. 우리에게 <꽃보다 누나>의 기억으로 남은 채.

 

음악으로 음악인의 애티튜드로 남은 마왕

 

평소엔 안 그런 형인데, 쫓아 나와서 저를 불러 세워요. “왜요?” 그랬더니 해철아 잘해라”, “?” 그랬더니 잘하라고”, 그래서 했는데요. 나중에 보니 그게 작별인사였던 것 같아요.’ 신해철의 인터뷰집인 <신해철의 쾌변독설>에는 고 김현식에 대한 그의 마지막 기억이 담겨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많은 이들은 이제 그가 고 김현식의 마지막을 기억했던 것처럼 그를 떠올릴 것이다.

 

'고인이 된 신해철(사진출처:KCA엔터테인먼트)'

어떤 이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방송에 나와 했던 말들에서 새삼 신해철을 떠올릴 것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꿈을 이룬다는 성공의 결과보다는 자신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 말은 그저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져 독설가의 이미지가 강한 그의 새로운 면을 느껴지게 할 것이다. 그의 독설은 타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지독히도 비뚤어진 세상에 대한 공격에서 나온 것이며, 고 김현식에게서 배웠다는 본받을만한 음악을 하는 애티튜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식이 형이 나한테 남긴 유언은 잘해라였어요. 그 형이 방송국 들어와서 PD한테 커피 잔 던지고, 마이크 던지고 그런 모습을 너무 사랑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 형이 제 인생의 빛이었어요.’ 아마도 지금은 그가 누군가의 빛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가요계에 남긴 애티튜드역시 남다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 때 대학생으로 신분을 속이고 음악다방 디제이로 일했고, 대학에 와서는 무한궤도라는 팀의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고 다음 해에 팀을 해산했다. 대마초로 입건되기도 했지만 다음 해 보란 듯이 솔로로 데뷔해 모든 음악상을 휩쓸었다. 넥스트로 마왕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음악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거머쥐었을 때, ‘개교 이래 최저 학점(?)’으로 서강대 철학과를 자퇴했으며 결국 잘 나가던 넥스트도 해산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국 멤버와 만든 앨범 모노크롬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나 음악적인 극찬을 받았고, 인터넷 방송으로 시작한 고스트스테이션은 이듬해 SBS라디오를 통해 <고스트스테이션>으로 빛을 보았다. 그의 거침없는 발언은 정치에서부터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악플들이 달렸지만 그것은 음악이 아티스트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많은 행적들보다 더 우리가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다. 그의 1집에 수록된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나 넥스트 2집에 수록된 날아라 병아리의 얄리 이야기는 그래서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기시감처럼 다가온다. ‘이 세상 살아가는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아쉬워하는지 뒤돌아 바라보면 우린 아주 먼 길을 걸어 왔네라는 가사는 이제 우리와 함께 해온 그를 두고두고 떠올리게 할 문구가 되었다.

 

조금은 여위어진 그대의 얼굴 모습 육교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에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1974년에서 어언 40년이 흘렀다. 그는 떠났고 이제 누군가는 얄리를 노래했던 신해철처럼 그를 노래 부를 것이다. 그가 고 김현식의 뒤를 따라갔던 것처럼. 시간은 그렇게 기억을 남기고 흘러간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252)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042)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12,940,098
  • 565653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