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감수성, 멜로의 구도, 스킨십도 달리 보인다

어째서 한편으로는 설레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슬아슬해지는 걸까.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보다 보면 느껴지는 두 가지 감정이다. 이영준 부회장(박서준)이라는 키다리아저씨에 가까운 현대판 왕자님이 비서인 김미소(박민영)에게 서툴러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그 모습이 그렇다. 그 모습에서는 한때 폭력적인 것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었던 벽에 여성을 밀어붙이고 억지로 키스를 퍼붓는 남자 주인공의 장면이 슬쩍 겹쳐진다.

물론 두 장면에 담긴 함의는 사뭇 다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미 김미소에 대한 이영준 부회장의 사랑이 아주 어린 시절 그들이 함께 겪었던 유괴 사건 속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는 걸 전제하고 있다. 그러니 건강한 사랑하는 남녀가 한밤 중에 문을 두드려 “같이 자자”고 말하는 게 잘못됐다 볼 순 없다. 다만 그간 우리가 멜로드라마에서 아무 비판의식 없이 바라봤던 그런 장면들이 이제는 한번쯤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상황을 우리가 맞이하게 됐다는 거다. 

사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그 드라마의 구도에서부터 아슬아슬한 면이 존재했다. 비서와 부회장의 로맨스. 거기서 위계나 권력 구도를 읽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권력 구도에서 벌어진 부적절한 관계들이 신문 사회면에 오르는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아슬아슬한 위계가 갖는 불안감을 몇 가지 장치들로 넘어섰다. 

그 첫 번째는 공적 관계를 깨면서 본격화하는 멜로다. 김미소가 사표를 던지는 순간 시작되는 멜로는 부회장과 비서 간의 관계가 아니라 사적인 이영준과 김미소의 관계로 그려지게 만들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과거 유괴사건을 두 사람이 함께 겪음으로써 이 관계가 이미 공적 관계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시작된 이영준의 순애보에서 비롯됐다는 걸 보여준 대목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치는 이영준이라는 캐릭터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회장이나 재벌2세 캐릭터와는 완전히 상반된 ‘배려의 아이콘’으로 이영준을 세웠다. 

이런 장치들이 있어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그대로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는 아슬아슬함은 여전하다. 두 사람이 연인관계를 선언한 상태지만 두 사람이 사적인 자리에서도 나누는 대화의 모습이 여전히 부회장과 비서의 어투를 사용한다는 점 같은 게 그렇다. 두 사람은 사적 관계임에 틀림없지만, 그 공적인 어투는 두 사람의 관계를 공적 관계로 착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마치 부회장-비서 캐릭터 코스프레를 통한 관계의 새로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어투가 중첩된 부분은 여전히 아슬아슬함을 만든다. 

다행스러운 건 과거의 상처를 이겨내고 그 정체들이 다 밝혀진 이후, 꽁냥꽁냥하게만 흘러가던 멜로가 김미소의 ‘자신의 삶 찾기’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부회장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가 아니라 김비서가 아닌 김미소로서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색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은 몰랐던 비서라는 직능으로서의 성취감이 분명 있다는 걸 그는 발견해낸다. 이제 김미소로서 김비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미투 운동 이후로 우리의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감수성은 많이 달라졌다. 저것이 연애인가 아니면 부적절하거나 불평등한 관계인가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됐다는 것. 그래서 멜로드라마 속 남녀의 사랑이야기는 이제 그 변화를 예고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보면서 그저 그 꽁냥꽁냥한 멜로에 빠져들면서도 한편으로 저런 관계는 적절할까를 생각하게 된 건 여러모로 건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슬아슬함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감수성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달라진 감수성은 거기에 맞는 새로운 멜로의 구도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사진:tvN)

박서준의 정체로 바뀐 '김비서'의 절묘한 멜로 변화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참 절묘한 구석이 있다. 사실 부회장과 비서의 사랑은 보는 눈에 따라 로맨스일 수도 있고 스캔들일 수도 있다. 그만큼 아슬아슬한 경계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 그 공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의 중첩 때문이다. 그 관계를 사적으로 보면 로맨스일 수 있지만, 공적으로 보면 상하관계 사이에서 벌어진 스캔들로 보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런 문제를 김미소(박민영)가 사표를 내는 걸로 시작하면서 손쉽게 뒤집었다. 즉 더 이상 부회장과 비서라는 공적인 관계를 끝내려는 지점에서부터 멜로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순간에 사적 관계로 바뀌어버릴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관계도 역전된다. 부회장과 비서의 관계가 아니라,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쑥맥 이영준(박서준)과 상대적으로 연애 고수의 느낌이 묻어나는 김미소로 서게 되는 것. 이 사적 관계 속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건 김미소다.

그런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멜로 구도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물론 이런 역전된 갑을 멜로가 주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이것만으로 16부작 드라마를 이어간다는 건 너무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김미소와 이영준 그리고 그의 형인 이성연(이태환) 사이에 벌어졌던 과거사다. 과거 유괴되었던 경험이 있는 김미소는 그 때 함께 유괴됐던 오빠가 자신을 챙겨줬던 걸 기억한다. 마치 왕자님처럼 보여 그 어린 나이에 “결혼하자”고까지 했던 오빠.

김미소는 그 오빠가 어딘지 이영준처럼 느껴지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오빠의 이름은 영준이 아니라 성현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돌아온 이성연은 자신이 바로 그 유괴됐을 때 함께 했던 오빠라고 말한다. 이성연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미소는 이영준의 행동과 말에서 그가 과거 자신과 함께 있었던 오빠라는 걸 점점 알아채간다. 그가 입었던 옷도 그렇고 추위를 타는 체질, 자신이 거미를 무서워하는 걸 알고 서둘러 치워줬던 행동까지.

그리고 결국 이영준이 그 진짜 오빠였다는 게 밝혀진다. 잠을 자면서도 답변을 하는 이영준의 습관을 알고 있는 김미소가 슬쩍 “성현”이라는 이름을 부르자 자연스럽게 이영준이 답변을 했기 때문이다. 김미소도 놀라고 그렇게 답변을 했던 이영준도 당황하는 그 순간은 다시 이 멜로의 방향이 바뀌는 기점이 될 법하다.

이영준은 그 어렸을 때 김미소가 “결혼하자”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연애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프러포즈냐”고 묻는 김미소에게 자기는 더 빨랐다는 걸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 이야기는 이영준과 김미소의 사랑이 김미소의 사직서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훨씬 이전부터 이영준이 김미소를 알아채고 가까이 두고 있었고, 마음 속에 사랑을 키워왔다는 것. 그러니 연애 시작하자마자 프러포즈를 한 게 아니고, 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이영준이 용기를 낸 게 된다.

물론 여전히 부회장과 비서라는 공적 관계가 겹쳐져 있어 생겨나는 해프닝도 이 드라마의 재미 포인트 중 하나다. 너무 공적으로 대하는 게 습관화되다 보니 ‘거리감’이 느껴지고 진짜 연인 같지 않아 사적관계를 시작하려는 이영준과 그 공적 관계가 어쩌면 일에 있어서 김미소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거라는 점이 부딪치는 지점은 흥미롭다. 이런 지점 하나로 이영준이 직접 복사를 하거나 다과를 준비해 먹는 에피소드 하나로도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해프닝이 보여주는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만큼, 저 뒤편에 놓여 있는 이영준의 정체와 관련된 묵직한 사랑이 궁금해진다. 그는 왜 성현이 아닌 영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왜 자신이 그 때의 오빠였는데 그걸 굳이 김미소에게 부인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숨기면서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김미소를 옆에서 바라보며 혼자 사랑을 키워왔던 걸까.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이런 요소들은 작은 장치들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멜로의 구도 변화가 실로 절묘하게 느껴진다.(사진:tvN)

‘저글러스’ 백진희, 신데렐라 로코물에 담긴 불편한 현실

보스를 위해 양손과 양발로 수십 가지 일을 해낸다? 우리가 흔히 ‘비서’라고 부르는 지칭을 어째서 KBS 새 월화드라마는 굳이 <저글러스>라 이름 붙였을까. 거기에는 일종의 인식차가 존재한다. 좌윤이(백진희)는 그것이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이라며 ‘저글러스’라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언제 어느 때곤 단물 빠지면 팽 당할 처지에 놓이는 비서일 뿐이라는 것.

좌윤이는 봉상무(최대철)의 비서로서 별의 별 일들을 다한다. 심지어 상사의 애인까지 챙기고 봉상무의 아내(정영주)의 의심으로부터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007 작전 같은 일을 감행하기도 한다. 흔히 ‘오피스 와이프’라고 불릴 정도의 선을 넘어버린 일들을 하고 있는 이유는 상사의 성공이 바로 자신의 성공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결국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의심받으며 팽 당하기에 이르지만.

그 정도면 자신이 저글러스가 아닌 그저 지나치게 충성하는 비서이고 그런 방식으로 자기 성장을 한다는 것이 환상이라는 인식을 가질 만하지만, 회사에서 다시 그를 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점으로 돌아간다. 남치원(최다니엘)의 프락치로 조상무(인교진)가 자신을 그의 비서로 붙인 것이라는 걸 좌윤이도 알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인물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남치원을 잘 보좌하고 하나하나 챙기려는 이른바 ‘서포터 정신’이 아예 습관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결국 <저글러스>라는 드라마는 바로 이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을 위해 수동적으로만 살아오는 것이 타성화되어 버린 좌윤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변화와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물론 그 틀은 조금은 뻔해 보이는 ‘신데렐라’ 코드를 가져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은 좌윤이가 보좌하게 되는 남치원과의 갑을 관계를 넘나드는 말랑말랑한 썸 타기가 이 드라마의 또 한 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뻔한 신데렐라 코드를 조금 다르게 만드는 건 남치원이라는 인물이다. 무슨 일인지 등에 화상을 입고 있는 이 인물은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철벽을 치며 살아간다.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는 결국 이 상처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멜로 코드로서 철썩 달라붙으려는 좌윤이와 철벽을 치는 남치원의 관계가 주는 밀당이 존재하지만, 그것보다 주목되는 건 남치원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자신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로 살아가는 좌윤이에게 어떤 변화를 예고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상사밖에 모르는 삶을 타성화해 온 좌윤이와 자신밖에 모르는 삶을 트라우마 때문에 살아가는 남치원은 그래서 각각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멜로적 관계를 넘어서 서로를 성장시켜줄 수도 있는 상보적 관계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저글러스>가 뻔해 보이는 신데렐라 코드를 가져오면서도 참신해 보이는 지점은 바로 이 캐릭터들 덕분이다. 

사실 <저글러스>의 시작점으로서 좌윤이가 보여주는 비서로서의 삶은 보기에 불편한 지점들이 많다. 모든 비서들이 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사적인 것들까지 상사를 챙기고, 상사는 마치 하인이나 되는 듯 비서를 마구 대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당연한 상사와 비서 사이의 관계인 것처럼 드라마는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극화되어 관계를 다소 과장되게 보여주는 건 그것이 상사와 비서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에서 어디서나 보여지는 상하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 불편함들이 좌윤이가 겪는 난관들 속에서 피어오르고, 시청자들이 심지어 이 인물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답답한 면을 느끼게 만드는 건 사실은 향후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좌윤이는 종속적인 인물이 아닌 보다 능동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인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그저 단순한 신데렐라가 아닌 진짜 이 인물의 성장담을 보고 싶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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