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가 어딘데??’, 사막이어서 가능한 새로운 묘미들

<1박2일> 시절부터 그랬지만 유호진 PD에게 일이 의외로 커지게 되는 건 애초부터 기획된 결과만은 아니다. 사막 탐험 예능이라는 KBS의 새 프로그램 <거기가 어딘데??>도 마찬가지다. “왜 하필 사막이냐?”는 필자의 질문에 유호진 PD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박2일> 시절부터 해외로 나가면 어떤 걸 해볼까 고민해왔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해외여행을 담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져 더 이상 새로운 걸 찾기가 어렵게 됐다고 했다. “결국 새로운 건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사막이 떠올랐고, 막연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녀온 답사여행에서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사막.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러니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피해야할 곳 1순위에 올랐을 공간이 어쩌면 사막이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아예 닿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 오히려 유호진 PD의 마음을 끌었다. 거기에 오롯이 인물들을 투입하고 그들이 마치 빈 도화지에 써나가는 그 행적의 기록들을 담아내는 건 ‘새로운 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 주어야할 재미 부분을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서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하는 걱정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첫 방송분을 들여다보니, 그게 기우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출연진들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만으로도 빵빵 터지는 예능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발대식에서 다들 “어쩌다 낚였다”며 그 자리에 모인 지진희, 차태현, 조세호, 배정남은, 심지어 사막 탐험을 설명하기 위해 탐험가 남영호 대장이 등장하자, “어쩌다 보니 남영호 대장까지 등장한다”며 슬슬 사막 탐험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대장을 맡게 된 지진희는 처음에는 과도한 의욕을 보이다가 조금씩 드는 불안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고, 차태현과 조세호는 어쩌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됐는가를 후회하고 걱정하는 모습으로 또 배정남은 그 와중에 별 생각없이 자신의 역할로 주어진 먹을거리 담당에 충실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물론 그 웃음은 이제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방영될 사막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생고생이 주는 힘겨움과 웃음의 양면은 의외로 희비극을 넘나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쩐지 짠하지만 그래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희비극적 요소는 다름 아닌 우리네 삶을 닮아있는 ‘사막을 걷는 행위’에서 이미 시작된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걷는 행위’는 우리가 도시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감흥을 이끌어낼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도시에서는 늘 보던 일몰 하나도 사막을 배경으로 떨어질 때 전혀 다른 감흥이 생겨나는 것. 또 음식 하나를 먹는 일이나,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일, 또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그 일 자체가 문득 그저 눈앞에 닥친 일들에 바삐 살아가던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같은 진중한 질문을 던지게 하지는 않을까. 

유호진 PD가 그 선택의 이유로 말한 것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빈 도화지 같은 공간이 바로 사막이다. 그리고 그 사막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일 수 있다. 어디로 걸을 것이며 그 빈 곳에 무엇을 그려 넣을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거기가 어딘데??>라고 묻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곳을 향해 걷는다. 그것은 생존의 길처럼 여겨지지만, 때론 그 길은 남다른 삶의 의미들을 만나게 되는 ‘실존의 길’이 되기도 하니.(사진:KBS)

‘청춘시대2’, 생존 위해 거리 두는 청춘의 현실이라니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가 시즌2로 돌아왔지만 여기 청춘들의 삶은 여전히 짠하고 팍팍하다. 시즌1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상사의 갑질에도 버티며 살던 윤진명(한예리)은 드디어 취직이 되었지만, 회사에서의 삶 역시 생존경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시즌1에서 데이트 폭력을 겪었던 정예은(한승연)은 그 트라우마 때문에 혼자 밤거리를 다니는 것조차 힘겨워 한다. 

'청춘시대2(사진출처:JTBC)'

모태솔로의 외로움을 특유의 넉살로 포장하며 살아가는 송지원(박은빈)은 시즌2에도 여전히 혼자였고 남자친구와 헤어진 유은재(지우)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다. 시즌2에서 벨 에포크를 떠난 강이나(류화영)의 자리에 들어온 조은(최아라)이라는 인물 역시 어딘가 어두운 면을 숨기고 있다. 어딘지 주변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복수해 줄 거야’라고 쓰여진 편지가 그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은 청춘이라는 그 지점이 주는 풋풋함과 발랄함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현실의 무게를 동시에 끌어안고 있다. 그저 밝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각각의 청춘이 저마다의 현실 앞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그 생존을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건 타인과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윤진명이 입사한 회사에서 뜨지 못한 아이돌 그룹 멤버로서 살아가는 헤임달(안우연)과 자꾸 얽히게 되지만 계속해서 거리를 두는 건 그래서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나가야할 길을 향해 직진하는 걸 선택한다. 

신입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마련된 회식 자리에서 마시고 싶지 않은 폭탄주를 원샷하고 듣고 싶지 않은 상사의 노랫소리에 애써 박수를 쳐줘야 하는 현실이 버겁긴 하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의 직원카드를 보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통해 지금의 자신의 삶이 그래도 나은 편이라 자위한다. 물론 그렇게 선을 그으면서도 그 아르바이트생의 마음을 공감하기도 하고, 헤임달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해해 먹을 걸 사주고는 도망치듯 가버리기는 하지만.

데이트폭력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정예은은 그래서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이미 폭력적인 현실이 그녀에게 상처를 낸 상태이고 그러니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의 접촉 자체를 피하는 중이다. 하지만 어디 마음도 그럴까.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당하고 있다고 착각한 한 남자가 그녀를 구하려 끌고 나온 사건이 벌어지고, 그 역시 과거 왕따를 당한 상처 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그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모태솔로 송지원이 세상과 거리를 두는 방식은 오히려 넉살로 위장하며 다가가는 방식이다. 그녀는 무언가 과거 기억의 한 자락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보다는 넉살로 숨기는 쪽을 택했다. 임성민(손승원)에게 마음이 있어 보이지만 그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는 오히려 그에게는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녀 역시 무언가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이런 처지는 헤어졌지만 진짜로 헤어지지 못하고 있는 유은재나, 세상과 철벽을 치듯 살아가고 있지만 어딘지 세상이 그녀에게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조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두는 쪽을 택했다. 워낙 상처만 주는 세상이거나 혹은 타자를 신경쓸 만큼 여유를 주지 않는 현실 때문에. 

<청춘시대2>는 그래서 상큼 발랄한 청춘 로맨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현실 공감의 무게감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이 상처받은 청춘들이 잔뜩 닫아놓은 세상과의 단절과 고립이 어느 순간 열리는 그 지점이 주는 짠함은 그 어느 것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한창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밝게 부딪칠 그 시기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두는 청춘의 현실이라니. 이 얼마나 짠한 일인가.


이제훈, 못해도 괜찮아 그게 ‘삼시세끼’니까

“요리 좀 할 줄 아는 거 있니?” “전혀요.”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에서 이서진의 질문에 이제훈은 1도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이어 쏟아진 질문세례. 낚시, 수영, 피아노는 잘 하냐는 질문에 그는 “못한다”며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너무 자신감 넘치게(?) 못한다고 해서 그랬을까. 이상하게도 이제훈의 그 단호함에 세끼 집 삼형제는 모두 깔깔 웃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어딘지 소년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세끼 집이 낯선 이제훈. 그는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이서진의 구박(?)을 받았다. 나름 챙긴다고 땅콩을 사왔지만 이서진은 우리가 원하는 건 이런 땅콩이 아니라 껍질을 벗긴 땅콩이라고 했던 것. 물론 그건 이서진식의 환영인사나 다름없었다. 처음 <삼시세끼>의 세계에 들어오면 뭘 해야 되는지 또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게 과연 괜찮은 것인지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이서진은 그런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그에게 손을 놀릴 일을 준 것이다. 

땅콩을 까고 그것을 갈아서 쌈장을 만들어 청국장을 곁들인 맛있는 보리밥을 뚝딱 해치운 그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바다로 물놀이를 간다. 수영도 못한다고 했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든 이제훈은 신나는 한 때를 보냈다. 새로 가져간 유니콘 튜브에 올라타는 게 잘 되지 않았지만, 그건 오히려 재밌는 놀이가 되었으니. 결국 네 남자가 모두 그 튜브 위에 올라타는 것이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큰 즐거움으로 돌아왔다. 

이미 해가 져 어두컴컴해진 밤, 아직 시작도 안한 저녁 준비를 하며 갑자기 이제훈에게 부여된 임무는 고기 굽기. 사실 그게 뭐 그리 힘든 일일까 싶지만 장작으로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 위에서 호들갑을 떨어가며 고기를 굽는 이제훈의 모습은 허당기가 줄줄 흘러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의외로 잘 구워진 고기를 맛보며 이서진은 “네가 드디어 재능을 찾았다”고 칭찬해줬다. 

낯선 곳에서 새로 만난 이들과 낯선 하루를 보내게 되었으니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게다. 그래서 모든 게 어설프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삼시세끼>는 일상적인 풍경들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누구나 언젠가 집에서 한 번쯤은 해봤을 콩나물 다듬기 같은 일은 그 한가로움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게 해준다. 콩나물 다듬으며 나누는 수다는 그래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들에게는 그 자체로 어떤 편안한 위로가 되어준다.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하루를 너무나 재밌게 놀고 또 맛있는 걸 같이 해먹었다는 사실은 <삼시세끼>가 주는 일상의 위로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잘 보여준다. 치열하게 살아야 생존할 수 있는 도시의 정글에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그 여유와 편안함 같은 것들이 그 공기에서부터 뚝뚝 묻어나기 때문이다. 

잘 해서 좋은 게 아니라 못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삼시세끼>. 아니 나아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더 즐거울 수 있다고 얘기해주는 <삼시세끼>는 그래서 콩나물 다듬기 하나나 땅콩 껍질 까기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제훈의 하루가 누구나 빠져 들고픈 로망이 될 정도로.



<청춘시대>가 건네는 위로, “살아라

 

내가 아저씨 딸을 죽였어... 그래서 나도 죽일 거야?” 강이나(류화영)는 오종규(최덕문) 아저씨를 찾아가 그렇게 말한다. 사고로 강물에 빠진 강이나가 오종규의 딸과 서로 가방을 붙잡으려 사투를 벌이다 결국 강이나가 살아남게 된 것. 그 깊은 강물 속에 드리워진 죽음의 기억은 강이나의 청춘에 아픈 생채기를 남긴다.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고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막 사는 것. 그건 사고의 트라우마로 인한 죄책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오종규를 찾아가 그 트라우마와 마주 선 강이나는 그제서야 자신의 죽을 것처럼 살아가는 삶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삶은 사실 여전히 그 강물 속에 멈춰져 있었다.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강이나를 찾아온 오종규에게 그녀는 묻고 싶어진다. 자신이 아니라 그의 딸이 살아남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오종규는 살으라고말하고 싶다고 한다.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살아남은 것에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냥 살라고. 살아가라고.”

 

사실 <청춘시대>에서 강이나라는 캐릭터나 그녀가 겪은 강에서의 사고는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살아가는 다섯 명의 청춘들이지만, 강이나만 대학생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스스로 남자들의 스폰서를 받는 쉬운(?) 삶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청춘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그 바깥에 나와 있는 그녀가 나머지 네 명의 청춘들이 겪는 일과 사랑의 고충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사이다 같은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강이나와 오종규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청춘시대>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드러내준다. 살아남을 것을 죄로 느끼며 살아가는 강이나에게 그건 죄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대목은 사실 지금의 청춘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 개의 가방에 매달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떨쳐내야 하는 상황. 이 강이나가 겪은 트라우마는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잔혹한 현실이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잔혹한 현실을 살고 있는 윤진명(한예리)과 강이나라는 청춘의 공유점이 엿보인다. 윤진명 역시 살아남은 청춘이다. 동생은 식물인간으로 죽지 못해 살아있고, 빚더미에 기울어버린 가세는 그녀가 알바에서 알바로 뛰어다니며 연애 따위는 사치로 여길 만큼 자신에게 혹독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고 나 좋아하지 마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치 죄인 같다.

 

생존, 견딤, 죄책감 같은 단어들이 <청춘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어른거린다. 물론 청춘의 풋풋함을 살아가는 은재(박혜수) 같은 인물도 있지만 그녀 역시 어딘가 집안 문제에 비밀스런 아픔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예은(한승연)은 도저히 헤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더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아픔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은 그들이 자초한 일들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버텨내고는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아가지만, 그건 알고 보면 그들의 죄가 아니다. 살아남은 게, 아니 그저 살아가는 게 어떻게 죄가 된단 말인가.

 

<청춘시대>는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픈 건 청춘의 본질이 아니라 누군가 그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강이나에게 살라고말해주는 오종규의 한 마디는 그래서 깊은 감동을 준다. 그는 강이나와 사투를 벌여 죽은 딸로 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어느새 강이나를 딸처럼 이해하고 다독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혹독한 현실을 만들어낸 이들은 저 편에 숨겨져 있고 대신 피해자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야기가 산으로 간 <사냥>, 그럼에도 돋보인 안성기

 

그 산에 오르지 말았어야 했다영화 <사냥>의 포스터에 적혀 있는 이 문구는 엉뚱하게도 이 영화의 뒤늦은 후회처럼 들린다. <사냥>의 이야기가 엉뚱하다는 의미로 산으로 갔기때문이다.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하다. 말 그대로 사냥에 비유한 이야기다. 인간의 사냥과 동물의 사냥 그 차이를.

 

사진출처:영화<사냥>

갱도가 무너져 죽을 위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살아남은 문노인(안성기)은 산에서 우연히 금맥을 발견하고 그걸 캐러 들어온 엽사들과 비교된다. 그 질문은 단 한 가지다. 사냥은 무엇을 위해 하는가. 동물의 사냥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지만, 인간의 사냥은 생존과 무관한 욕망 때문이다.

 

문노인과 엽사들의 대결은 그래서 이 두 가지 차원의 사냥이 중첩된다. 문노인의 사냥은 지켜야할 목숨들을 위한 것이지만, 엽사들의 사냥은 금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단순명쾌할 수 있는 대결구도지만 영화는 어찌 된 일인지 자꾸만 곁가지를 덧붙인다. 무너진 갱도에서 벌어진 일들까지야 이야기의 전제로서 기능하기에 충분하지만, 그 이전의 가족관계 이야기까지 괜스레 파고들어 본격 스릴러와 추격전이 갖는 밀도를 떨어뜨린다.

 

물론 문노인에게 숨겨진 비밀스런 설정 역시 인간과 동물의 사냥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으로 보면 문노인의 이러한 비밀은 너무나 과한 느낌이다. 그것이 그려내는 상징적인 의도는 알겠지만 그 의도로 인해 장르가 어떤 기대감을 채워주기보다는 널뛰는 느낌을 만든 건 감독의 지나친 의욕의 결과다.

 

훨씬 더 단순화했어야 했다. 산이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더 집중했다면 저 <최종병기 활>이 보여줬던 긴박한 재미들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냥이라는 의미 부여를 과도하게 하려던 결과, 본연의 스릴러 장르의 재미들은 상쇄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보이는 가족코드 또한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가족 코드를 가져와 문노인의 절박함을 더하려는 의도 역시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굳이 출생의 비밀같은 틀에 박힌 설정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렇게 아귀를 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열어놓고 추격전의 디테일한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최근 <시그널>로 주목받은 조진웅 같은 배우를 데려다놓고 굳이 쌍둥이 설정까지 했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쌍둥이라면 그 설정이 주는 특별한 재미요소들이 있어야 했지만 <사냥>에서는 그걸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이렇게 연기 잘하는 조진웅의 연기 역시 영화는 잘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결함들이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든 건 안성기의 독보적인 연기력이다. 65세의 나이에 람보 영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산을 뛰어다니며 액션 연기를 선보이고, 한없이 흩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의 결함을 섬세한 표정 연기로 일관되게 채워 넣는 그 저력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마치 <사냥>이라는 요령부득의 연기 미션 속에서 홀로 그걸 수행해내는 듯한 모습이라니

<프로듀스101>, 적어도 알게 된 걸 그룹에 대한 몇 가지

 

101명의 연습생들이 <M카운트다운> 무대에서 ‘Pick me’를 부르는 장면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지금껏 이토록 많은 인원이 함께 하는 군무와 합창은 없었을 게다. 그 압도적인 인원이 저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무대 위에서 매력을 뽐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자칭 국민 걸 그룹을 탄생시키겠다고 연 Mnet<프로듀스101>이 출연한 연습생들과 만든 첫 번째 무대다.

 


'프로듀스101(사진출처:Mnet)'

그런데 그들이 서 있는 무대가 예사롭지 않다. 네 개의 삼각형 무대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위쪽과 좌우로 나뉘어져 있다. 그냥 그렇게 서 있는 무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삼각형 중 어느 삼각형에 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 삼각형 속에서도 꼭지점 앞쪽에 설 것인지 아니면 뒤에 설 것인지가 사실은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

 

중앙에 있는 삼각형의 맨 앞자리 꼭지점에 서는 인물이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건 당연한 일. 이건 우리가 무심코 봐왔던 걸그룹의 배치와도 무관하지 않다. <프로듀스101>에 참여한 연습생들은 그래서 어떻게든 이 꼭지점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프로그램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삼각형은 그런 의미다. 꼭지점을 향해 줄 서기. 혹은 무한 경쟁.

 

이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정서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이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시스템 구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사실 그 시스템 구조는 이 삼각형이었지만 그걸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로듀스101>은 다르다. 아예 대놓고 그 삼각 시스템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방출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라고 말한다.

 

특이한 건 <프로듀스101>은 그 많은 연습생들을 세워놓고도 오디션 과정을 통해 그들을 스타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껏 3회가 방영됐지만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몇몇 인물이 있을 뿐, 그 이름조차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워낙 숫자가 많은 데다 등급별로 색깔만 다를 뿐 같은 옷을 입혀 놓으니 개성이 살아날 리 없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첫 회 첫 인물을 세우는 것에 그토록 공을 들이고, 그 인물이 사실상 그 해의 오디션 스타로 발돋움하는 것을 여러 차례 봐왔던 시청자들에게는 <프로듀스101>의 이 같은 진행이 이상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최고의 걸 그룹을 만든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등급까지 나눠 치열한 경쟁을 붙이지만 정작 그 개개인의 인물들은 별로 주목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

 

그러다 보니 <프로듀스101>은 누가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서로 경쟁하고 있고, 그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그럼에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막연한 그림들로 다가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무심코 봐왔던 걸 그룹의 진면목이다. 지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소녀시대나 2NE1, 시스타나 에이핑크 같은 걸 그룹들도 저런 치열하고 눈물 나는 연습생시절을 보냈을 거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오디션의 출연자들이 에이핑크나 소녀시대, 2NE1의 노래를 커버하는 무대를 보면 볼수록 그간 늘 웃고 밝은 모습으로만 봐왔던 걸 그룹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도대체 에이핑크의 정은지는 노래를 얼마나 잘 했던 것이고, 2NE1의 공민지는 얼마나 춤을 잘 췄던 것이며, 씨엘은 랩을 멋지게 소화해냈던 것인가. 춤과 노래가 여전히 어색한 연습생들과 그들과의 격차를 더더욱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어째서 <프로듀스101>은 반짝반짝 빛나는 출연자들의 개성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않는 것일까. 노래를 잘하면 그걸 키워주기보다는 춤도 잘 춰야 한다고 하고, 보이쉬한 매력을 보이는 걸 그룹에게는 여성스러움 또한 잘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성이 아니라 모든 걸 다 잘해야 한다고 말할 때 개개인들의 매력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혹시 걸 그룹이라는 존재의 실체는 아닐까. 혼자 튀기보다는 함께 맞춰야 하는. 그래서 개인보다는 팀을 세워야 하는 그런 존재.

 

우리는 걸 그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도 그 개개인의 멤버들을 알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있다. 즉 걸 그룹들은 팀이 존재를 세우더라도 각자의 개성은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 출연 등을 통해서 알려진다. 물론 그것은 후에 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너무 개개인이 주목을 받다보면 팀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이런 태생적인 딜레마로 자신을 너무 드러내서도 또 너무 드러내지 않아도 힘겨운 게 걸 그룹의 일원이 갖는 고충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프로듀스101>은 그 101명의 한 덩어리가 이미 걸 그룹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삼각형의 무대 위에 서서 꼭지점을 향해 경쟁하면서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한다. 그 살은 그래서 갈수록 추려진다. 이 프로그램이 목표로 세운 인원으로.

 

<프로듀스101>이 주는 불편함은 단지 그것이 상기시키는 경쟁구조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지만 그렇다고 완전체가 되기까지는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걸 그룹이라는 존재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사회생활과 판박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조직에서 열심히 일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존재는 묻혀지기 일쑤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서 퇴출되곤 하는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아닌가. 결국 주목되는 건 꼭지점뿐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있는 연습생들보다 그 과정을 거쳐 스타덤에 오른 걸 그룹들이 새삼 대단하게 여겨지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알 수 없는 분노와 <레버넌트>에 대한 기대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새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필자가 찾아간 극장에서는 외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자리가 없을 만큼 관객들로 가득 메워졌고 그 관객들은 상당히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개봉일 첫날 하루 동안 이 영화는 126599명을 동원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사진출처: 영화 <레버넌트>

도대체 무엇이 이 이국적인 영화에 우리 관객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생존과 복수라는 두 가지 코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서부개척시대 이전 그 혼돈의 미 대륙에서 펼쳐지는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사냥꾼의 놀랍고도 경이로운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휴 글래스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한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 곳에서 사냥을 하던 중 회색곰의 습격을 받아 온 몸이 찢겨진 채 동료들에게 버려지게 되는 것. 그 와중에 함께 사냥을 나갔던 아들 호크는 살해당하고 뒤에서는 인디언들의 추격을 받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은 그 만신창이의 그를 일으켜 세우는 건 다름 아닌 살해당한 아들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안해 보이는 그 상황에서는 그는 놀라운 생존력으로 조금씩 자신을 회복시켜나간다. 자연은 그에게 도전이지만 동시에 그에게 살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주고 때로는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하는 신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동물의 내장을 생으로 뜯거나 뼈 속의 골수를 빼먹고 먹을 수 있는 풀들을 씹으며, 걷지 못하는 몸으로 기어서 다니다가 인디언을 만나 급류에 빠지고 얼어붙을 것 같은 몸을 모닥불에 녹여가며 심지어 절벽에서 떨어져도 버텨내는 그 극한의 생존기는 마치 베어 그릴스의 야생 버전을 보는 듯한 실감을 준다. 글래스를 쫓아다니며 거의 비슷한 눈높이에서 촬영된 영상들은 관객들의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꽃미남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선언하는 듯한 디카프리오의 미친 연기력은 그의 생존을 향한 절절함과 분노 같은 감정들까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는 그런 끝없는 생존의 도전 속에서 글래스가 살아남는 그 과정들은 디카프리오의 온 몸을 던지는 연기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연기도 하나의 노동이라면 이 작품만한 노동 강도가 없을 정도로 힘겨운 연기들을 디카프리오는 진짜 글래스가 되어 보여준다.

 

최근의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보면 알 수 없는 분노같은 것들이 어른거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작년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이나,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850만 관객을 넘어선 <내부자들>이 그렇다. 드라마에서도 <리멤버-아들의 전쟁> 같은 드라마는 그 분노의 코드를 가져와 16% 이상의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 분노의 정서는 <레버넌트>라는 영화가 우리네 관객을 매혹시키는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존과 복수는 흔한 소재들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우리네 대중들의 마음을 가장 끌어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려운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중들은 저 글래스가 겪는 고통과 분노 그리고 그 죽음 같은 생존기에서 어떤 깊은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화정>이 흥미로워지는 지점, 욕망하는 존재들

 

차승원이 연기하는 광해군은 무엇이 다를까. MBC 월화 사극 <화정>이 다루고 있는 광해는 최근 들어 수차례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재평가됐다. 역사에서 광해군은 사후에 이 붙여졌고 죽었을 때 붙는 묘호도 갖지 못한 왕이다. 하지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최근 다뤄지는 광해군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훨씬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화정(사진출처:MBC)'

<화정>의 광해군이 여타의 사극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가 일면으로 그려지기보다는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인 존재로서 그려진다는 점이다. <화정>에서 광해군은 어린 정명공주(허정은)에게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세자저하가 아니라 오라버니라 부르라고 말할 정도로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어린 공주 앞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는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박영규)가 죽어가는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독을 마시고 목이 타는 듯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선조에게 이를 거부하며 그는 외친다. “결국엔 이렇게 될 것을, 어찌 그토록 소자를 미워하셨습니까. 나는 전하와 다른 임금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의 왕은 접니다. 아버지.” 즉 공주와 사적인 자리에서 보여준 광해군의 모습은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죽어가는 선조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광해군의 이런 모습은 <화정>이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화정>은 형제와 남매로 엮어진 사적인 관계에서의 모습과 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공적인 관계에서의 모습이 공존하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광해군과 그의 형인 임해군(최종환)의 관계가 그렇다. 임해군은 광해군을 돕는 인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영창대군(전진서)을 제거하려 해 오히려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신은정)의 숨겨진 생존본능을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광해군에 의해 내쳐진다.

 

임해군은 결국 역모로 붙잡히게 되지만 그를 믿어준 광해군 때문에 명나라 사신단 앞에 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습을 일부러 보여준다. 장자인 자신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 광해군의 즉위의 정당성을 만들어주려 한 것. 이를 고맙게 여긴 광해군이 사적으로 임해군을 찾아가 자신도 그가 역심을 품었다 생각한 걸 미안하다고 말하자, 의외로 임해군은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걸 털어놓는다.

 

부왕의 장자는 나였으니까. 그 자리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더냐. 그래서 나는 네가 보위에 오르면 날 세제로 삼을 줄 알았다. 당연히 다음 자리는 나였을 터. 날 그렇게 내칠 줄은 몰랐다.” 형제로서 눈물을 흘리던 임해군 역시 그 왕좌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 광해군은 이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즉 제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왕좌라는 욕망 앞에서 적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

 

광해군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과 그의 세력들까지 냉혹하게 처리한 인물이다. 그래서 훗날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정>은 광해군을 그리면서 그가 왜 그렇게 냉혹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으로 다루고 있다. 왕좌를 놓고 벌어지는 제거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용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분출은 그래서 사적인 관계의 살가움과는 사뭇 다른 광해군의 모습을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모두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용상은 욕망의 끝 이제 곧 지난 16년의 시간보다 더한 것을 아시게 되겠지요. 인간의 다짐이란 허망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단 것을. 왕좌는 뜨거운 불처럼 강하고 아름답지만 전하를 삼킬 수도 있다는 걸요.” 광해군의 책사 역할인 김개시(김여진)의 이 말은 <화정>이라는 사극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이 사극이 드러낼 각각의 인물들의 욕망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된다.

 

 

<인간의 조건2>, <삼시세끼>와는 다른 관전포인트

 

<인간의 조건2>는 시즌1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일단 출연자의 면면이 다르다. 시즌1은 물론 후반에 와서 살짝 달라졌지만 본래 개그맨들이 주축이었다. 프로그램의 애초 기획 또한 ‘<개그콘서트> 개그맨들이 시도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시작되었다. <개그콘서트>가 무대 위를 비췄다면, <인간의 조건>은 그 무대 아래를 비춰졌던 리얼 버라이어티였던 셈이다.

 

'인간의 조건2(사진출처:KBS)'

<인간의 조건2>는 이 개그맨이라는 자원 대신, 은지원이라는 예능 고수와 봉태규라는 관찰 카메라에 잘 적응하는 인물을 중심에, 맏형으로 윤상현을, 엉뚱한 캐릭터로 허태희를 그리고 귀엽고 예의바른 막내 현우와 김재영을 각각 세웠다. 은지원과 봉태규는 <오늘부터 출근>이라는 예능을 통해 친분이 있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그 관계가 낯설다.

 

게다가 <인간의 조건2>는 시즌1과는 달리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낯선 시골에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그 황토집은 거죽(?)만 있을 뿐, 뭐 하나 갖춰진 게 없는 살풍경한 보금자리다. 그냥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 그 집에서 이들은 이른바 ‘5라이프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자가용, 인터넷, , 쓰레기, 휴대전화 없는 삶. 시즌1에서 각각 하나의 미션으로 수행했던 것들을 시즌2는 아예 묶어놓은 셈이다.

 

도시에서 벗어난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삼시세끼>를 닮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사실 <인간의 조건2>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삼시세끼>는 말 그대로 키워 먹는유기농 라이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2>는 농사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생존실험의 의미가 더 강하다.

 

도시 생활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차, 인터넷, , 쓰레기, 휴대전화 없이 거죽만 있는 낯선 집에서 생존하기가 그 첫 번째이고, 그 생존을 통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확인하며 도시의 삶을 반추하는 실험이 그 두 번째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2><삼시세끼>보다는 뉴욕의 한 창고 같은 집에서 살아남기를 보여줬던 이지원 PD<도시의 법칙>을 더 닮아 있다.

 

물론 <인간의 조건2>의 재미는 시즌1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없는 삶의 실험이 만들어내는 출연자들의 변화에서 나온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은 집에서 발견한 군고구마 통을 어떻게든 집안에 넣기 위해 연통을 이리 잇고 저리 잇는 모습이나, 배고픔에 토스트 한 개에도 민감해지는 출연자들, 그리고 차츰 적응이 되어가며 집안을 꾸미기도 하고 심지어 알까기 같은 놀이를 찾기도 하는 변화는 우스우면서도 흥미롭다.

 

그 실험의 과정에서 마치 형제들처럼 점점 끈끈해지는 관계는 <12>을 그대로 닮았다. 봉태규는 그 관계의 중심에 서 있다. 차가운 겨울 땅을 파 냉장고(?)를 만들려는 봉태규는 맏형 윤상현의 비효율적이라는 말 한 마디로 속상해하지만 바로 그런 부딪침과 갈등은 이들 사이를 점점 가족처럼 만들어내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여전히 악동 같은 은지원을 향한 브로맨스에 가까운 모습도 그렇고, 동생들의 끼니를 묵묵히 챙기는 엄마 같은 모습의 봉태규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관계의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인간의 조건2>에는 꽤 많은 예능의 유전자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삼시세끼>의 유전자도 보이지만, <도시의 법칙>이나 <12>의 유전자 또한 발견된다. 이것은 아마도 예능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것도 없는 낯선 곳의 황토집에서 차츰 진화해가는 출연자들의 면면처럼 예능도 이제는 이런 저런 경험의 유전자들이 하나로 모여 새로움을 구성해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인간의 조건2>는 진화와 성장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시즌1과는 차별된다. 이 황토집은 조금씩 변화해가며 사람 사는 온기를 채워나갈 것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출연자들 역시 생존에서 나아가 없는 생활을 즐기는 단계로 나아가지 않을까. 물론 없어서 새롭게 발견되는 삶의 또 다른 본질은 <인간의 조건2>가 시즌1으로부터 그대로 이어받은 진화의 방향이다. 이 진화의 예능은 과연 어떤 과정과 결과를 보여줄 것인가.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이다.

 

<정법>, 자연스러움을 잃었지만 이야기를 얻었다

 

<정글의 법칙-미크로네시아> 편의 초반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리하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았다. 첫 생존지였던 난마돌에서는 ‘92개 섬의 비밀을 또 코스라에에서는 ‘1617분의 비밀을 찾고 밝히는 것이 그 미션이었다. 사실 이런 미션은 이전 <정글의 법칙>에서도 종종 등장했었다. 이를테면 야수르 화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던가, 아니면 나미비아의 악어섬에서 뗏목을 만들어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 같은 것이 모두 미션의 일부였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미션들이 자연스럽게 정글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반면, <정글의 법칙-미크로네시아> 편이 보여준 미션은 약간은 인위적인 느낌을 주었다. 비밀을 밝히는 것은 실제 먹거리를 구하고 잠자리를 확보하는 것 같은 실제 생존에 필요한 일은 아니다. 물론 미크로네시아 편에서도 병만족은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생존은 기본일 뿐 <정글의 법칙>에서 그다지 새롭다거나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생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추크섬에서 미션으로 주어진 김병만 족장 없이 50시간 분리생존은 이제 <정글의 법칙>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정글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들어가 추위와 폭염, 비바람과 고산지대의 환경 또 벌레와 사투를 벌이며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정글의 법칙>은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언 100회를 바라보는 지금 업그레드된 김병만과 병만족의 생존기는 어느덧 이 프로그램의 기본을 채워줄 뿐이다.

 

이제는 그 생존기 위에 또 다른 스토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김병만 없이 분리해 50시간을 생존하라는 식의 미션은 제작진의 인위적인 개입이 시작됐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분리시켜놓자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병만의 섬에서의 독거생활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뚝딱뚝딱 배를 만들고 바다로 나가 문어를 잡고 조개를 캐 혼자 외롭게 먹는 장면이 가능해진다. 혼자 생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양할 병만족이 없어 여유롭고 풍요롭게마저 느껴지지만 외로움 때문에 입맛까지 잃어버리는 상황.

 

한편 김병만이 없자 임원희를 임시족장으로 하게 되면서 어딘지 부실한 생존기가 가능해진다. 먹을 것을 구하러 김병만이 바다로 나간 틈을 이용해 그 섬을 약탈(?)하는 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들이 약탈해간 흔적 속에서도 오히려 그들이 더 가져가게 먹을 걸 챙겨두지 않은 걸 후회하는 김병만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기도 한다. 즉 인위적으로 부여된 미션과 설정이지만 바로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 이어지는 <정글의 법칙> 100회 특집은 헝거게임을 모티브로 끌어들였다. 지금껏 나왔던 정글 체질(?) 출연자들 예를 들어 추성훈이나 여전사 전혜빈 같은 인물들이 제작진이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해내는 과정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헝거게임>이 그런 것처럼 일종의 게임 미션이 정글이라는 생존 환경 속에서 제시되는 것. 그 게임 상황은 인물들 간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전개될 가능성이 많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렇게 변화된 <정글의 법칙>은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었다. 잃은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가는 공간에 따라 다른 야생의 자연환경과 인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나던 것이 상당부분 희석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얻어낸 것은 새로운 스토리의 가능성이다. 인위적인 설정은 물론 제작진이 부여하는 미션이기 때문에 <헝거게임>처럼 마치 정글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 게임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얼마나 <헝거게임>을 흉내내는 것이 되지 않고 <정글의 법칙>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느냐가 관건이 된다.

 

자칫 잘못하면 정글에서 벌이는 <런닝맨>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뉴질랜드편에서부터 불거져 나온 리얼리티 논란이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현 상황에서 <정글의 법칙>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자연스러움을 잃은 대신 새로운 스토리를 추구하기 시작한 <정글의 법칙>은 향후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대단히 궁금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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