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와 노무현 사이의 거리, <무현>의 슬픔과 위로

 

2000년 겨울 부산의 어느 거리. 차가운 날씨에도 거리 유세에 나선 노무현은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그 짧은 장면 하나만으로도 노무현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주머니에 넣었던 두 손이지만 다가오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할 때는 두 손을 꼭 빼서 정중한 마음을 담았다. 당시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부산. 시민들이 노무현을 반가워할 리 만무했다. 지역감정이 여전히 부추겨지는 선거 속에서 그는 마치 적진에 고립된 적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섬겨야할 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사진출처:영화<무현>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이하 무현)>는 왜 하필 부산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노무현의 이야기를 담았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노무현을 통해 진짜 실패가 무엇이고 진짜 성공이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무현은 당시 낙선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낙선 후 3년이 지나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것 역시 실패가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 세대들이 노무현이 했던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현>이 담고 있는 건 노무현의 그런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다. 당시 부산 거리 유세를 하다 지친 노무현이 한 다방에 들어와 여종업원에게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꼭 유세를 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가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 얘기를 커다란 깨달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건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작은 민의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오히려 커다란 뜻을 읽어내는 진짜 정치다.

 

노무현의 전속 사진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생계를 위해 계속 청와대에 남아있기로 했을 때를 회고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모두가 배신자라고 그에게 손가락질 할 때 100명 중 단 한 사람, 노무현 대통령만이 자신을 지지해줬다는 것. 그 전속 사진사는 이제는 자신을 노무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매년 기일에 맞춰 사진을 찍으러 온다고 했다. 노무현은 정치적 노선이나 당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 바라봤다는 걸 이 사진사 이야기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포장마차에서 노무현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 때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 속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은 그 누가 뭘 하지도 않았는데 저마다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된다. 거기서 느껴지는 슬픔이란 감성 팔이나 신파적 슬픔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역행이 2000년 노무현의 행보와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데서 느껴지는 슬픔이다. 당시 노무현이 연설에 앞서 고치고 또 고친 연설문이 이토록 진중한 울림을 주고 있는 현재가 아닌가.

 

절묘한 시기에 개봉된 <무현>은 그래서 깊은 상실감과 허탈감 그리고 심지어는 시대의 우울을 겪는 대중들에게는 슬픔과 동시에 깊은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서민들에게 다가가 농담을 건네기도 하는 아이 같은 모습의 노무현. 그는 당시에도 이미 낙선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낙담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는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테 2번이 좋다고 말하라는 농담에는 당장의 실패 앞에서 우리가 그럼에도 왜 기꺼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준다. 당시 낙선 후 캠프 해단식에서 노무현이 말했듯이. “역사에서는 실패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정의가 승리한다.”

<공항 가는 길> 김하늘에 대한 깊은 공감이 말해주는 것

 

어쩌다 그녀는 모든 걸 잃어버렸을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에게 남편 박진석(신성록)당신이 생각하는 방식, 움직이는 소리도 싫다.”는 막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침착하다.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싫다는 소리 직접 듣는데 진상 손님 같아. 아무 느낌이 없어.”라고 말한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늘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는 남편의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공항가는 길(사진출처:KBS)'

그녀는 박진석이 자신의 절친인 송미진(최여진)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데 그 절망은 남편에 대한 실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보다 더 오래 알아왔던 송미진이 자신에게 그녀와 남편 사이의 오랜 관계에 대해 숨겨왔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다. 송미진은 박진석이란 인간이 자신과 동거하면서도 최수아를 만나는 나쁜 인간이라는 걸 숨겼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최수아와 송미진의 그 끈끈했던 우정은 금이 가 버린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모든 걸 잊고 빠져들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 때문에 딸 효은(김환희)이 방치되는 걸 새삼 깨닫고 왜 이렇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느껴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러니 이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기댈 곳은 자신을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서도우(이상윤)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 때문에 그에게도 이별통보를 한다. 망쳐진 모든 관계들이 마치 자신이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한 것 때문인 것처럼 여겨져서다.

 

<공항 가는 길>은 애초부터 최수아의 비극적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남편은 그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고 젊은 여자들이나 힐끔거리며 심지어 그녀를 멀리 보내려고만 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의 절친이었던 송미진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딸 효은을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면서, 일하면 일한다고 구박하고 일 그만두면 그만뒀다고 뭐라 하는 시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서도우라는 인물은 위안이자 위로일 수밖에.

 

결국 불륜이라는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공항 가는 길>이 전하고 있는 건 결코 살기가 녹록치 않은 중년의 삶에 어떤 작은 위로와 위안이다. 최수아의 표현대로 하루하루를 미친 년처럼 뛰어다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버텨내는 삶에 던지는 작은 위로. 그것은 그녀를 누군가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때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떤 것일 수도 있고, 피곤한 삶에서 잠시 비껴나 낯선 고택의 아무 것도 없는 방안에서 취하는 잠깐 동안의 낮잠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 가는 길에서 느끼는 그 감정들. 도시의 피곤과 그 속에서 관계들이 만들어냈던 수많은 상처들,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영혼을 잠식해가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들 같은 것들로부터 잠시 동안이지만 떠날 때 느끼는 그 위안. 물론 다시 돌아와야 하지만 그래도 그런 작은 위안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최수아에게 공항 가는 길은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다. 승무원일 때는 그것이 일터로 가는 길이지만, 거기서 서도우를 만나 새벽 내내 이야기를 나눌 때는 힘겨운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일탈의 길이 된다. 그리고 남편도 친구도 잃은 채 딸 효은과 제주도로 가는 길은 아마도 이 도저히 버티기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 그만큼의 거리를 가지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공항 가는 길>이 단순한 불륜 소재가 아니라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는 드라마라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최수아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그래서 최수아의 절망적 상황에 던져진 작은 위로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게다. 그것마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예뻤다>가 재조명한 빼꼼녀 황정음의 진가

 

MBC <그녀는 예뻤다>에 등장하는 르누아르의 작품 시골의 무도회는 이 드라마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무도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춤을 추고 있는 남녀. 남자에게 이끌려 한껏 행복에 가득 찬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무언가 시선으로 말을 건네는 듯한 그림. 그런데 <그녀는 예뻤다>가 주목하는 건 이 여자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발코니 밑에서 춤을 추고 있는 그들을 슬쩍 훔쳐보고 있는 이른바 빼꼼녀에 주목한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주역이 되지 못하고 그걸 쳐다보고 있는 조연. 그녀는 어쩌다 자기 인생에서 주역이 아닌 조연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그녀는 예뻤다>의 혜진(황정음)은 역변한 외모와 보잘 것 없는 스펙과 처지 때문에 어린 시절 첫 사랑이었던 성준(박서준) 앞에 나서지 못한다. 평범한 얼굴이거나 못생긴 얼굴의 여 주인공이 미남에 능력 있는 남자와 어쩌다가 로맨스를 갖게 되는 그렇고 그런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그것만일까. 그 이면에는 이른바 스펙사회로 대변되는 번지르르한 이력서 뒤로 제 진면목을 제대로 드러낼 기회조차 갖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 자체를 포기하는 젊은 세대의 고충이 깔려 있다.

 

누구나 화보 속의 인물이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그 화보 속 인물을 흘낏 흘낏 훔쳐보며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고, 누구나 잡지 속의 멋진 인물을 꿈꾸지만 어쩌다 보니 험하디 험한 그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주인공은 저 편에 있고 우리는 늘 관객의 입장에 서 있다. 저 르누아르의 빼꼼녀처럼.

 

하지만 우리는 모두 누군가 주목하고 바라봐주지 않았을 때 누구나 저 빼꼼녀였다. 훈남이 되어 돌아온 성준도 혜진이 우산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비오는 거리 한 구석에 앉아 과거의 고통 속에 떠는 빼꼼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유학 가는 날 시골의 무도회의 퍼즐에서 그 빼꼼녀부분을 떼어내 혜진에게 건네준 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빼꼼의 존재였던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성준의 시골의 무도회퍼즐에는 그 빼꼼녀의 조각이 빠져있다. 드라마는 성준이 이제 빼꼼녀의 조각처럼 되어버린 혜진을 찾는 이야기다. 달라진 얼굴. 보잘 것 없는 스펙으로 인턴으로 들어와 마치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토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그녀는 더 모스트라는 잡지를 만드는 사무실에서도 빼꼼녀. 그런데 과연 그녀의 진가가 빼꼼녀에 불과한 것일까.

 

사무실에서 그녀의 진가를 먼저 발견한 인물은 신혁(최시원)이다. 호텔 스위트룸 장기투숙객이면서 편의점 컵라면을 즐기는 이른바 스위트룸 노숙자라는 독특한 캐릭터인 그는 사무실 바닥에 떨어진 빼꼼녀퍼즐 조각을 주워 혜진에게 건넨다. 이 사무실에서 마치 빼꼼녀 퍼즐 조각 같은 혜진의 진가를 그가 먼저 발견한 것처럼. 혜진이 예전에는 자신이 예뻤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금도 그래하고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과거형으로 살아가는 혜진을 현재형으로 끌어낸 것.

 

<그녀는 예뻤다>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신분으로 태생으로 학벌 같은 스펙으로 또는 외모로 덮어놓고 있는 많은 진가들을 발견하고 상찬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단지 혜진이라는 인물의 로맨스에만 마음이 심쿵한 것이 아니라, 늘 바닥으로 떨어져도 계속 해서 심기일전하는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저릿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진짜를 느낀 것일 게다.

 

캐스팅의 최적 조건은 그 배우의 입장과 캐릭터가 딱 맞아 떨어질 때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혜진을 200% 생생하게 연기해내고 있는 황정음은 이 드라마에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주목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황정음이라는 배우는 말 그대로 빼꼼녀였다. 어딘지 과장된 연기 때문인지 그녀가 이 정도의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 빼꼼녀는 실로 긍정적으로 역변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를 거쳐 <비밀>에서 연기의 영역을 확장한 그녀는 <킬미 힐미>로 확고한 배우의 위치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예뻤다>는 황정음의 확실히 깊어진 연기의 다채로운 결을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로맨틱 코미디가 가져야할 웃음은 물론이고 그 밑바닥에 깔린 슬픔까지도 느껴진다. <그녀는 예뻤다>. 이건 드라마의 제목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빼꼼녀의 가치를 끄집어낸 연기자로서의 황정음도 그렇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그녀는 예뻤다>, 지금도 충분히 예쁜 청춘들을 위한 위로

 

그녀는 예뻤다. 어린 시절 김혜진은 예뻤다. 그런데 나이 들어 이제 취업 전선 앞에 내몰린 김혜진(황정음)은 역변했다. 그녀는 블링블링한 외모와 스펙을 가진 절친 민하리(고준희)와는 사뭇 대조되는 인물이다. 민하리가 돈 많고 잘생긴 남자들의 끊임없는 구애를 받는 처지라면, 역변한 외모에 초라한 스펙, 면접만 보면 불합격하는 취업준비생인 김혜진은 그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는 처지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그녀는 겉으로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쾌활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다. 어린 시절 그녀와 특별한 관계였던 뚱뚱보 지성준(박서준)이 멋진 훈남이 되어 돌아오자 그녀는 그의 앞에 역변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 어찌 어찌해 회사에 들어가고 그 회사의 핵심부서에서 시키는 일이면 뭐든 척척 해내는 능력도 갖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이 그런 능력의 소유자인 것을 모른다.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는 자신의 가치를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린 채 잔뜩 주눅 든 삶을 살아가는 김혜진과 그녀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지성준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를 담고 있다. 그녀가 진짜 김혜진인 줄 모른 채 상사로 들어온 지성준이 그녀에게 능력 운운하며 독설을 쏟아내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두 사람의 살짝 엇나간 멜로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런데 그것뿐일까. <그녀는 예뻤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드라마가 가진 모든 요건들을 다 갖추고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마음을 잡아끄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멜로라는 틀을 가져와 취업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네 청춘들에 대한 깊은 위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김혜진은 마치 그 청춘들의 초상처럼 그려진다.

 

따라서 제목에 들어간 예뻤다는 표현은 단지 외모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녀가 갖고 있던 가능성들과 감춰진 능력과 매력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어린 시절 뚱뚱보라고 모두가 놀리던 지성준을 감싸주던 김혜진의 따뜻한 마음이 그 표현 속에는 들어있고, 빗속에서 떨고 있던 그에게 이어폰을 끼워주며 카펜터스의 목소리를 들려준 그 예쁜마음이 담겨져 있다. 물론 이것은 더 확장해서 바라보면 청춘이라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것일 게다. 세상에 예쁘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드라마의 제목은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다. ‘그녀는 예뻤다라는 말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뉘앙스도 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과거형의 인물로만 기억되게 만드는 것일까. 나아가 누구나 예쁠 수밖에 없는 청춘들을 그 무엇이 과거의 행복으로만 회귀하게 만드는 것일까. 드라마는 간접적으로 청춘들을 이렇게 내모는 현실을 담고 있다. 스펙이니 외모니 집안이니 돈이니 배경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거기에 과도한 취업경쟁의 현실까지.

 

<그녀는 예뻤다>는 물론 멋지게 나타난 옛 첫사랑과 밀고 당기는 멜로의 맛을 충분히 내는 드라마다. 무엇보다 김혜진 역할을 연기하는 황정음은 제대로 연기에 물이 올랐다. 거의 전편을 그녀의 원맨쇼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그녀는 압도적인 캐릭터 장악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상큼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뒤안길에서 마음 한 구석을 찌르는 저릿한 아픔이 느껴지는 건 이 드라마가 저 밑바닥에 깔아놓은 지금의 청춘들의 정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예뻤다? 왜 과거형인가. 그들은 여전히 예쁘다. 다만 그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들을 모욕주고 있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예뻤다그녀는 예쁘다로 달리 보이는 과정. 이 드라마는 그걸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예쁘다. 우리네 청춘들도 마찬가지다.



<삼시세끼>, 왜 김광규만 보면 다 짠해할까

 

시커먼 네 남자들이 파스타를 해먹는 광경을 보여주며 <삼시세끼>는 이들을 캐릭터화 했다. 항상 긍정적인 옥택연은 긍정이, 반대로 까칠하게 툴툴대는 이서진은 까칠이, 드라마 <파스타>에서의 캐릭터가 갓 밖으로 나온 것처럼 버럭 대는 이선균은 버럭이, 그리고 매사에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광규는 소심이라 이름 지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선명하게 다른 이들의 성격을 이처럼 각각의 캐릭터로 분류해 놓자 이들 사이에 의외의 케미들이 더 명쾌하게 그려졌다. 이를테면 버럭이 이선균과 소심이 김광규가 짝을 지어 파스타를 만들 때 마치 죽이 잘 맞는 셰프와 보조 같은 풍경이 그려졌고, 까칠이 이서진과 소심이 김광규가 함께 나란히 차 뒷좌석에 앉아 하품을 할 때도 그 성격적인 차이에 따라 다른 하품하는 모습이 비교되면서 웃음을 주었다.

 

또 김광규와 이서진이 수확으로 번 돈으로 사들인 선풍기를 틀어 놓고 방에 늘어져 있을 때, 불 담당 옥택연이 옥수수를 구워 먹는 장면에서는 그의 긍정이 캐릭터가 제대로 그려졌다. 즉 불이 너무 세서 한 쪽은 타고 다른 한 쪽은 익지 않은 옥수수를 들고 그 중간 줄을 먹으면서 여기가 제일 맛있다고 말하며 웃는 옥택연의 모습은 딱 긍정이캐릭터였던 것.

 

실제로 이 캐릭터들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만들고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세끼 집에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까칠이 이서진은 그 차도남의 성격 때문에 이 시골 삶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게 그려졌었다. 그 까칠하고 귀차니스트이지만 그렇게 늘 투덜대면서도 또 할 건 다 해내는 성격은, 순사 나영석 PD와 밀당하게 해줌으로써 이 시골 삶에서의 적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옥택연은 긍정이란 캐릭터 그대로 매사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인물. 어려울 것 같은 요리 미션도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일단 만들어보는 모습은, 그래서 폭망한 요리 때문에 웃음의 결과를 주기도 했고 때로는 의외의 성공에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 여름 땡볕 아래서도 늘 가마솥 앞에서 불을 피우는 그는 그 무한긍정을 넘어 심지어 옥빙구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끼 집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소심이 김광규는 그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들어오기보다는 늘 옆자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보조로는 형이 최고인거 같아라고 한 나영석 PD의 말처럼 그는 세끼 집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다들 잠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혼자 밭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어떤 짠함 같은 걸 주는가 보다. 게스트로 찾아온 손호준도 또 이선균도 김광규를 짠해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읍내에 나갔다가 동식이가 광고 제의까지 받았다는 얘기에 이서진은 광규 형도 못 찍은 CF를 동식이가 먼저 찍어?”하고 말했다. 김광규는 환하게 웃으며 동식이에게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금 씁쓸한 표정이었다. 세끼 집 남자들은 그날 밤까지 이 동식이와 김광규를 비교하며 웃음을 지었다.

 

사실 뒤늦게 합류한 김광규의 모습은 이서진이나 옥택연처럼 전면에 드러나진 않는다. 그는 이서진과 옥택연보다 나이 많은 형이지만 세끼 집에서는 늦게 들어온 막내로 불리기를 자처한다. 그렇게 전면에 나와 있진 않지만 늘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김광규. 그래서 소심이라고 불려도 그가 있어 세끼 집의 훈훈한 정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이렇게 <삼시세끼>가 캐릭터화한 긍정이, 까칠이, 버럭이, 소심이는 저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 슬픔, 소심, 까칠 같은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두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슬픔이는 늘 일을 망치는 것만 같고 그래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슬픔이 해주는 역할이 없었던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김광규는 당장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세끼 집 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누군가의 요리가 만들어질 때 그 심부름을 기꺼이 해주면서 훈훈해지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처럼 그 역할이 가려져 있지만.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반색, <인사이드 아웃>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혹은 화가 날 때나 두려움에 떨 때 당신의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인사이드 아웃>은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섯 가지 감정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을 각각의 캐릭터로 보여준다. 그 캐릭터들이 있는 곳은 라일리라는 소녀의 감정 콘트롤 본부.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라일리는 그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감정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진출처 : 영화 '인사이드 아웃'

낯선 환경에서 기쁨이 어떤 자신감을 준다면, 버럭은 용기를 갖게도 해주고, 까칠은 쿨한 모습을 보여주고 소심은 갖가지 위험으로부터 라일리를 보호해준다. 그런데 도대체 슬픔은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영화는 그 슬픔이라는 감정이 가진 비밀스럽지만 신비로운 힘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감정을 캐릭터화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애니메이션의 발상이 남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가 막연히 느낌으로만 갖고 있던 그 감정들을 시각적인 세계로 구현해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곳은 마치 상상으로 그려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가 살 법한 세계들이다. 그 세계의 구조는 우리의 감정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고 그것이 우리가 생존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슬쩍 보여주기도 한다.

 

라일리가 외부의 자극들을 보고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 분노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은 그저 밖으로 표출되는 감정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사실은 그녀가 좀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들이다. 거기에 외부의 자극들이 주는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감정 콘트롤 본부에서는 옛 기억들을 이를 테면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가족과의 추억 같은 소환해오기도 하고, 두렵거나 아팠던 기억은 저 무의식 속으로 집어넣기도 하며, 때로는 빙봉 같은 상상의 캐릭터를 통해 스트레스를 극복하려 한다.

 

사실 라일리가 이 애니메이션에서 겪는 일이란 사건이라고 할 만큼 큰 일처럼 여겨지진 않는다. 즉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 겪는 외로움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 내부로 들어가면 이 작은 라일리의 감정적 사건들은 엄청난 스펙터클로 변모하게 된다. 감정 콘트롤 본부로부터 이탈하게 된 기쁨과 슬픔이 본부로 돌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앨리스나 오즈가 걸어가는 모험의 길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특히 세월호에서 메르스까지 갖가지 사태들은 물론이고 회복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경제나 그로 인해 취업이 어려운 청춘들과 밀려나 퇴직을 걱정하는 중년들에게 이 애니메이션은 각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겪는 감정 상태들을 저 라일리가 겪는 스트레스에 빙의시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감정들 중에서 전면에 나와 있는 건 기쁨이지만, 이 애니메이션이 궁극적으로 들여다보려는 건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후반부에 이르면 뭉클한 감동에 어쩔 수 없이 찡한 눈물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는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메시지일 수 있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지금 이 땅에 사는 어른들에게는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강을 건너는 이들의 사랑

 

무엇이 이런 눈물 폭탄을 터뜨린 걸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가 상영되는 영화관은 의외의 웃음으로 시작해 차츰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오열로 이어졌다. 참고 참던 눈물이 북받쳐 오른 객석에서는 여기저기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사진출처: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입소문이 난 탓인지 독립영화치고 주말 조조의 극장은 거의 가득 메워져 있었고, 그 곳을 찾은 관객들은 이미 눈물을 흘릴 것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손수건과 휴지를 꺼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건 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가 함께 산 세월만 76년이다. 그 긴 세월에 더깨처럼 쌓인 두 사람의 사랑과 정의 세월은 마지막까지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그 연세에도 낙엽이 떨어지면 서로에게 낙엽을 던지며, 눈이 오면 눈을 던지며 또 물을 서로 뿌리며 장난을 치던 두 사람은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혼자 화장실 가기가 무서운 할머니를 위해 문 밖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할머니가 아프다던 무릎에 입으로 호 하고 불어주던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아끼는 모습이었다. 밭은 기침을 해대는 자신 때문에 잠 못 들다 겨우 잠든 할머니의 얼굴을 새벽녘 문득 잠에서 깬 할아버지가 가만히 쓰다듬는 모습에서는 무수한 세월동안 할머니를 아껴온 그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랬던 님이 먼저 강을 건너가려 한다. 할머니의 바짝 마른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는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운 영화지만 그렇다고 눈물샘만을 자극하는 신파는 아니다. 거기에는 마치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의 <러브스토리>를 보는듯한 청춘 멜로와 다를 바 없는 애틋함이 있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관조적인 시선 또한 들어 있다.

 

관객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그래서 복합적이다. 그것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누구나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부모님에 대한 불효자들로서의 새삼스런 후회이기도 하며, 또한 그것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똑같은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공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의 위대함에 대한 깨달음의 눈물이다. 고인이 된 할아버지의 산소를 떠나며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할머니는 불쌍해서 어쩌나하고 오열하며 주저앉는다. “내가 아니면 누가 기억해줄까라는 할머니의 넋두리 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또한 그것은 어쩌면 순간에 머물다 가는 가녀린 인간의 운명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영원히 살아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을 말해준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 그 사랑 속에 할아버지는 영원히 살고 있을 것이니. 강을 건너는 이들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웃다가 짠해지는 김병욱표 희비극의 묘미

 

<감자별>에서 홍혜성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여진구는 좀체 웃지 않는다. 늘 진지한 표정에 때로는 곧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가시고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어쩌다 보니 노씨네 집안의 잃어버린 막내아들 행세를 하고 있다. 빈 집을 전전하며 떠돌던 그에게 생긴 인생 대역전이지만 착한 심성의 그는 늘 불편한 마음이다. 노씨 가족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면 줄수록 그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 생각하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감자별(사진출처:tvN)'

바로 이 홍혜성이라는 인물의 입장과 그래서 연기로 보여지는 여진구의 무표정은 <감자별>이라는 시트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병욱 감독표 시트콤이 지금껏 줄기차게 보여줬던 희비극이 이 인물의 상황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을 때 웃지 못하는 상황이 있고, 모두가 심각해질 때 비로소 웃음이 터지는 상황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나타난다.

 

21년 만에 처음으로 해주는 생일이라며 온 가족이 준비한 특별한 생일파티에서 홍혜성은 좀체 웃지 못한다. 가족들은 모두 박수치고 좋아하지만 그는 그것이 과연 자신이 누려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 이 상황에서 할아버지 노송(이순재)이 준비한 슬픈 곡(?)잃어버린 30이 흘러나온다. 21년만의 생일파티라는 상황과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다소 과장된 상황이 부딪치면서 희극과 비극이 동시에 연출된다. 그들은 웃으면서도 어딘지 슬픈 정조를 동시에 보여준다.

 

아버지의 묘소에서 잃어버린 아들 홍혜성을 찾았다며 그를 안고 과거를 회상하다 눈물까지 흘리던 왕유정(금보라). 이 다소 진지한 상황에서 민망하게 터져 나온 방귀소리는 마치 우리네 삶의 무게를 비웃는 듯하다. 뭐 그리 심각할 필요 있느냐는 것. 하지만 이 민망한 상황 때문에 그녀가 껄끄러워하는 걸 알게 된 홍혜성이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연달아 방귀를 뀌는 모습을 연출하고 그 진심을 알게 된 그녀가 감동하는 장면은 웃음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집도 없어 노씨네 가족 주차장에서 살아가는 나진아(하연수)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알바 인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늘 밝은 얼굴이다. 섹시댄스 경연대회 상금을 타기 위해 안되는 섹시댄스를 연습하는 나진아의 이야기는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또 꽃등심을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녀에게 노수동(노주현)이 준 카드로 고기를 사주면서도 더 시킬 때마다 전화를 걸어 허락을 받는 홍혜성의 모습 역시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고기 한 점에 이토록 쩔쩔 매는 청춘이라니.

 

결혼기념일에 이벤트를 준비하는 김도상(김정민)이 눈치 빠른 아내를 속이기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하자, 응급실로 달려온 노보영(최송현)은 그것이 결국 이벤트였다는 걸 알고 나서도 결코 웃지 못한다. 응급실까지 달려오며 그녀가 느꼈을 끔찍함은 이벤트를 이벤트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든다. 결국 화가 난 노보영에게 쫓기던 김도상은 계단에서 굴러 진짜로 부상을 당하게 된다. 비극이었다가 희극이 되더니 이내 다시 비극으로 끝나는 이러한 희비극의 반복은 바로 김병욱 감독 시트콤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다.

 

이번 <감자별>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장율(장기하)과 노수영(서예지) 커플의 에피소드에서도 이런 희비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모두가 고개를 젓지만 장율이 작곡한 CM송이 좋다며 이곳저곳 기획사를 전전하던 노수영이 카스테레오에서 그 음악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꺼버리는 장면이 그렇다. 장율의 예술가적인 삶과 잉여로서의 삶은 그렇게 순식간에 희극과 비극을 반복한다. 모두가 거품키스니 사탕키스니 하는 것을 비인간적이라고 말하며 쓰레기 국물 키스를 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래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쓸쓸함이 묻어난다.

 

물론 김병욱 감독의 희비극은 이미 <지붕 뚫고 하이킥>의 다소 충격적인 엔딩 논란에서부터 그 전조를 보인 바 있다. 시트콤을 정극의 하위 장르로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아마도 김병욱 감독은 깨고 싶었을 것이다. 즉 그가 보여주는 희비극적 상황은 희극과 비극이 늘 동전의 양면이라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희극이라고 해서 정극과 비교해 낮은 가치로 폄하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아마도 <감자별>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 희비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이상한 분위기를 표현한 것이리라. 마치 보름달이 뜨면 그 기운 때문에 사람들이 로맨틱해지거나 멜랑콜리해진다고 하는 것처럼, 감자별이 뜬 상황 속에서 이 시트콤 속 인물들은 웃다가 슬퍼지고 슬프다가 웃게 되는 기묘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험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웃음과 눈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시트콤 <감자별>의 희비극은 이토록 정극이 절대 주지 못하는 지점에 닿아있다. 무표정한 여진구의 얼굴에서 우리는 이 희비극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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