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하이에나’, 음악 이젠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싱어 송 라이터들은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낼까. 어쩌면 KBS 추석 파일럿 프로그램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질문이 가진 효용가치는 생각보다 크다. 그건 제작과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음악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늘 결과물로만 접했던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건반 위의 하이에나(사진출처:KBS)'

그런데 제작과정이 싱어 송 라이터들마다 다 다르다. 특히 양분되는 건 이른바 20세기 소년들이었던 윤종신과 정재형의 제작방식과 21세기 소년들인 그레이와 후이의 제작방식이다. 윤종신과 정재형은 물론 디지털 피아노를 활용하긴 하지만 그래도 창작에 있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반면, 그레이와 후이는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작곡하는 정재형의 작업 풍경과 비트를 먼저 쪼개 넣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어 뚝딱 만들어내는 그레이의 방식은 그래서 음악 작업 환경이 최근 몇 년 간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보여준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저마다의 방식이 갖고 있는 장점은 분명이 있다. 정재형의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곡들이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면, 그레이의 디지털 방식으로 나온 곡은 훨씬 트렌디하다.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에서도 흥미로운 차이점을 보인다. 윤종신은 곡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인생작이라는 영화 <길>을 보며 그 감성적인 영감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정재형은 곡을 완성하기 위해 양양으로 가 서핑에 몸을 얹으며 영감을 받는다. 반면 그레이는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영감을 받고, 후이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 장면이 주는 느낌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이런 저마다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곡들은 그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정재형의 곡이 아날로그적 피아노의 우아함을 담아 세련된 발라드의 느낌이 얹어졌다면, 그레이의 곡은 어딘지 힘을 쭉 뺐지만 세련된 힙합의 맛이 물씬 묻어난다. 후이의 곡이 아이돌 특유의 다이내믹함을 매력으로 갖고 있다면 윤종신의 곡은 1990년대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찌질한 남성의 감성이 담긴다. 

사실 많은 음악예능들이 지겹게 느껴지는 건 그 프로그램의 형식과 구성이 이미 시청자들의 눈에 익어서다. 대충 우리는 그 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음악에 스토리를 구성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러니 거의 오디션의 틀을 반복하는 음악예능이 제 아무리 맛있는 상을 차려내도 물릴 수밖에.

하지만 음악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제작과정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기존의 음악예능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것은 노래가 새로워서가 아니라 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해주기 때문에 생겨나는 재미다. 

너무 많은 음원들이 쏟아져 나와서 그런지 우리들의 귀를 스쳐가는 노래들은 그렇게 나왔다 사라지기 일쑤다. 그 음원들에 특별한 애착이 없다면 아무리 좋아도 귀에 달라붙지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는 너무 많은 아이돌들이 쏟아져 나와도 애착 없이 바라보면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프로듀스101>처럼 아예 그들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봐야 비로소 달리 보이게 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건반 위의 하이에나>는 그런 점에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시청자들을 동참하게 해 그 음악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웬만한 영화보다 낫다..OCN 무비드라마 빛 보나

OCN 새 주말드라마 <터널>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첫 회 2.8%(닐슨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2회 만에 3%를 넘겼다. 같은 시간대의 OCN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보이스>가 첫 회에 2.3% 그리고 2회에 3%를 넘긴 후 5%가 넘는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이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터널>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터널(사진출처:tvN)'

<보이스>가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본격 스릴러 장르로 성공적인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비슷한 스릴러 장르를 갖고 있는 <터널>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즉 OCN이 무비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 10여년 간 지속해왔던 본격 장르물에 대한 투자가 이제 그 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스릴러 장르를 통해 보여준 <보이스>의 성공은 그만한 시청층이 이미 존재한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중요한 건 <터널>이 <보이스>와 유사한 스릴러 장르를 그리고 있으면서도 <보이스>가 갖고 있던 단점들을 상당 부분 보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보이스>는 한번 보면 절대 눈을 뗄 수 없는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와 구성은 호평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잔인한 살해 장면들이 반복됨으로서 지나친 자극으로 흐른다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터널>의 경우, 여전히 연쇄살인범의 끔찍한 살인이 보여지긴 하지만 <보이스>처럼 자극적인 느낌은 덜 하다. 이런 차이는 드라마가 갖는 시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이스>가 보다 자극적이고 끔찍한 느낌을 줬던 건 살인자나 피살자의 시점을 자주 차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널>은 같은 살인장면이라고 해도 그 시점이 사건을 추적하는 박광호(최진혁)에 주로 맞춰져 있다. 

여기에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박광호라는 형사 캐릭터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물이라면서도 <터널>이 어떤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tvN <시그널>이 스릴러 장르를 그리면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가장 큰 요인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형사들의 절절하고 뜨거운 이야기들이 드라마적 감성을 다르게 만들어줬다는 것. 

<터널>은 또한 박광호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는 이야기로 타임슬립 설정이 되어 있다. 타임슬립 설정은 자칫 그 시간여행 장치에 지나치게 빠져 게임처럼 활용되어 버리면 이야기만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터널>은 이 부분에서도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있다. 즉 타임슬립을 장치적 재미 자체로 보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벌어지는 인물의 감정선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으로 와버린 박광호와 1986년에 있는 그의 아내 사이의 거리와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터널>에는 중요한 정서로 깔려있다. 

지금이야 영화 같은 드라마들이 많아졌지만 처음 OCN이 무비드라마를 주창하고 나왔을 때만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영화 같은 드라마가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 역시 커졌다. 만일 <보이스>에 이어 <터널>까지 어떤 성취를 가져가게 된다면 이로써 OCN드라마의 브랜드는 의외로 공고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격 스릴러 장르 드라마하면 먼저 OCN이 떠오를 지도.

멀티플렉스 시대, 무주 산골영화제의 특별한 체험

 

무주 산골의 어둠과 정적은 더 깊었다. 그래서 불을 끄면 마치 영화관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영화관은 바람에 묻어나는 나무와 풀 냄새가 났고 간간이 반딧불이가 날아와 은은한 빛을 점멸하며 지나가곤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답답한 건물 천정 대신 확 트인 또 다른 스크린이 펼쳐졌다. 밤하늘이 펼쳐내는 스크린 위에는 도시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별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그것만으로도 영화 그 이상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사진출처: 무주 산골영화제

올해로 4회를 맞은 무주 산골영화제 개막식장 풍경. 내외빈들은 풀밭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어둠 저편 무대에서 펼쳐지는 개막작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주 산골영화제 개막작은 영화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종합 영화 공연이 특징이다. 작년 개막작 <어느 여름밤의 꿈, 찰리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마임으로 새롭게 덧칠한 인상적인 무대를 보여준 바 있다. 올해 개막작인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1961년 방영된 신상옥 감독, 최은희, 김진규 출연의 <성춘향>에 음악감독 손성제의 재즈와 소리꾼 이소연의 판소리가 엮어져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그 오래된 춘향전을 영화로 재현함으로써 과거의 작품을 현재화시켰던 것처럼, <2016 필름 판소리, 춘향뎐>은 이제는 과거가 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을 재즈와 판소리의 퍼포먼스를 통해 현재화시켰다. 낡은 필름이 보여주는 거친 질감과 후시녹음으로 어색한 발성들이 만들어내는 오래된 영화가 관객을 과거의 시간여행으로 이끌고 들어간다면, 손성제의 재즈와 소리꾼 이소연이 눈앞에서 영화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게 펼치는 퍼포먼스는 그 과거를 다시 현재로 소환시킨다. 영화 공연은 그래서 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직선적인 시간을 다시 현재에서 과거로 연결시켜 시간의 고리를 체감하게 해준다.

 

문득 그 오래된 영화가 새롭게 보인다. 낡은 영화지만 그 안에 담겨진 신상옥 감독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들이 보이고 조금은 과장되어 보이지만 그 연기에 담은 최은희, 김진규의 열정이 느껴진다. 왜 하필 무주 산골영화제의 개막작들은 이처럼 옛 영화들을 가져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거기에 현재적인 시선을 담아 다시 들여다보자 현재의 영화들이 주지 못하는 진짜 영화 체험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우리네 춘향전이 저렇게 멋스러운 이야기였었나.

 

이른바 멀티플렉스 시대다. 영화관에 가면 영화들이 넘쳐난다. 너무나 쾌적하고 의자도 편리하며 좌석도 많고 넓은데다 음향은 실감날 정도로 짱짱하고 시각체험은 진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입체적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구획된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아 보는 그 영화들이 어떤 쾌감을 주긴 하지만, 때로는 옛 영화들이 주었던 어떤 정서와 감성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편안한 멀티플렉스가 제공하는 시각과 청각의 자극이 주는 쾌감들 속에서 우리가 점점 둔해지고 잊고 있던 정서와 감성들.

 

무주에는 멀티플렉스가 없다. 무주에 있는 영화관은 그 이름이 산골영화관이다. 과거 소극장 정도의 규모지만 영화제가 있는 기간에는 이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로 붐빈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멀티플렉스가 주지 못하는 감성과 정서가 느껴진다. 무주 산골영화제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밤이 되면 산골 곳곳이 영화관이 된다. 이른바 찾아가는 영화관이다. 멀티플렉스가 사람들을 잡아끄는 상업적인 공간으로서 영화관을 상정한다면, 찾아가는 영화관은 이처럼 상업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어버린 영화관을 온전히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으로 되돌려준다.

 

무주 산골영화제는 여타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영화제들과 달리 소박하다. 거기에는 화려함보다는 부족하고 퇴색하여 오히려 영화가 갖는 진짜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 때로는 영화도 공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영화 자체가 그렇다기보다는 그것을 담는 그릇이 너무나 상업적으로 경도되어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영화관 체험에 어떤 피로를 느꼈다면 무주 산골영화제는 그 피로와 자극을 덜어내 온전한 영화적 체험으로 우리를 되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힐링이 따로 있나. 이것이 힐링이다

타란티노는 왜 <헤이트풀8>에 아날로그를 고집했을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은 결코 일반 관객들에게 쉽지만은 않은 영화다. 그것은 영화가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껏 멀티플렉스관에 상영되곤 하던 빠르게 전개되는 자극적인 영상과 속도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출처 : 영화 <헤이트풀8>

영화 시작에 눈 덮인 예수상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빠져나오며 저 뒤편으로 펼쳐지는 새하얀 설원 위로 말들이 끄는 마차 한 대가 화면 앞까지 달려오는 롱테이크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 속 카메라는 여러 공간과 시간 속 인물들을 넘나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상황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대신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한 공간에 붙박아 놓고 그 안에 담겨진 내밀한 이야기들을 반전에 반전으로 드러내보여주려 한다.

 

눈보라 때문에 한 잡화점에 모이게 된 8명은 저 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그들은 결코 선과 악으로 구분될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다. 무언가 숨겨진 속내들이 있고, 그것은 그들의 출신이나 갖게 된 직업 그리고 나아가 피부색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처럼 저마다의 욕망들을 갖고 모이게 된 8인이 벌이는 죽고 죽이는 살벌하지만 그 타란티노 특유의 농담이 섞인 살육전은 미국의 역사와 절묘하게 중첩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 마치 <저수지의 개들>을 다시 보는 듯한 기막힌 타란티노식 심리극이 총잡이들의 사투로 풀어지는 흥미진진한 긴박감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거의 1시간에 걸친 도입 부분의 인물들에 대한 길고 긴 수다와 농담들은 미국의 문화나 역사를 잘 모르는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놀라운 건 무려 167분에 달하는 런닝타임을 갖고 있는 이 영화가 그 긴 시간 동안 보여주는 이야기의 공간은 좁은 잡화점 한 곳에 거의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단지 타란티노가 이 영화를 울트라 파나비전 70(Ultra Panavision 70) 렌즈에 70mm필름으로 찍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고집스런 선택으로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는 미국의 영화관에 영사기를 세워 돌리기 위한 막대한 투자가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놀랍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카메라와 필름의 질감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아날로그적인 건 서부극이라는 장르가 그렇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그저 총잡이들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심리극을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그 대목이다.

 

울트라 파나비전이라는 어찌 보면 과거의 스펙터클 영화를 찍어내던 방식을 가져오지만 결과적으로는 작은 잡화점 안에 카메라를 세워놓았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다. 아마도 타란티노에게는 울트라 파나비전도 저 <벤허>의 질감이 보여줬던 것처럼 이제는 스펙터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아날로그적 감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헤이트풀8>은 그래서 마치 잘 짜여진 대본을 갖춘 한 편의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란티노의 이 옛 방식을 고집한 촬영은 그래서 지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마찰을 빚는다.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고 또 어찌 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3D에서 4D까지 나가며 관객들을 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아날로그 방식의 <헤이트풀8>은 그래서 마치 일대 대결을 벌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단 몇 초 동안 자극에 자극을 이어가는 작금의 영화들의 시각적이고 순간적인 현란함에 옛날 방식의 어찌 보면 진짜 영화들이 그리워지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충분히 그 감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타란티노식의 핏빛 농담은 덤이다



<응팔>, 평범해서 더 예쁜 안재홍-이민지 커플

 

tvN <응답하라1988>에는 못생김을 연기하는 이민지가 있다. 그녀는 덕선(혜리)의 절친으로 장만옥으로 불리는 미옥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이민지가 못생김을 연기한다면 그녀의 남자친구 정봉 역할의 안재홍은 어눌함을 연기하고 있다. 어딘지 바보스러운 그는 그래서 웃음을 주지만 동시에 짠한 느낌을 선사하는 인물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미옥과 정봉이 만나서 사랑하게 되는 그 과정은 너무나 옛날식의 느낌을 준다. 비오는 날 갑자기 우산 속으로 뛰어 들어온 정봉이 그 만남을 운명이라고 미옥에게 말하는 장면은 과거 구닥다리 멜로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물론 그건 <늑대의 유혹>을 패러디한 장면이지만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그 설정은 지금의 청춘들에게는 어딘지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키워가는 장면도 그렇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얼굴까지 봐가며 화상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에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만 해도 전화기 앞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건 다반사였다. 그런데 정봉과 미옥은 전화보다도 편지를 택한다. 미옥의 편지를 기다리며 우편함 앞을 서성이는 정봉의 모습은 그래서 더 절절한 느낌을 준다.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층이 엇갈려 서로 다른 층에서 기다리는 장면도 지금의 커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 장면이다. 커피 한 잔이 다 식어갈 동안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마음은 휴대전화가 일상화되지 않던 시절을 겪은 이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기다리다 지쳐 돌아온 미옥에게 아직도 그 카페에서 정봉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혜리의 안타까움이나, 그 얘길 듣고 카페로 달려가는 미옥, 그리고 추위에 손이 꽁꽁 얼어도 꽃다발을 꼭 쥔 채 그녀를 꿋꿋이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는 정봉. 이런 풍경들은 아날로그 시대의 아련함을 전해준다.

 

꽁꽁 얼어 벌겋게 된 정봉의 손을 잡아주는 미옥과 그 가슴 설렘이 과연 사랑인가를 시험해보고 싶어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는 정봉의 모습은 그래서 그 어떤 멋진 커플들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거기에는 어떤 삿된 계산도 의도도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사랑 그 자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응답하라1988>이 정봉과 미옥 커플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못생김어눌함은 이 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하나의 미학처럼 보인다. 이 드라마에는 물론 잘생긴 택이(박보검) 같은 인물도 있지만 어딘지 평범해보여도 멋지게 느껴지는 정환(류준열)이나 선우(고경표) 같은 인물이 대부분이다. 이건 단지 젊은 역할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라미란과 김성균, 김선영과 최무성 같은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해보여서 오히려 더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면면을 가진 인물들이다.

 

이것은 못생김과 어눌함의 미학일 것이다. 세상에서 주목받는 이들은 잘생기고 언변도 좋은 인물들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범 그 이하의 인물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평범한 보통의 이야기들은 어딘지 남 얘기라기보다는 우리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이제는 사라져가는 아날로그 정서를 건드리는 것도 상당부분 이 못생김과 어눌함의 미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도'는 왜 이틀을 날아가 음식을 배달했을까

 

"어여 먹어 이 미꾸라지 같은 놈아." 할머니 분장을 한 정준하는 가봉에서 대통령 경호원으로 일해 온 박상철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한참 나이 많은 박상철씨지만 정준하의 그 말에 웃음이 피어나왔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낯선 타향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오면서도 결코 보이지 않았을 눈물. 정준하의 '꾸지람(?)'에서 박상철씨는 어린 시절 되비지를 해주시며 그런 말을 건네곤 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편에서 정준하가 40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가봉으로 날아가 전한 건 단지 엄마의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었고, 사랑이었다. 아들 역시 머리가 희끗희끗해져가고 있었지만 정준하가 배달해준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만둣국과 되비지는 순식간에 시간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4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되는 이역만리에서 꽤 오랜 세월 떨어져 있었지만 엄마의 음식은 그 거리와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해주는 마법 같았다.

 

"음식 먹을 때 엄마 생각하며 울지 말고 먹어라." 노모가 보낸 영상 편지 속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울지 말고 먹으라니. 엄마는 그 순간에도 아들이 울다가 먹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다. 음식을 만든 자신을 떠올리기 보다는 아들이 한 끼라도 잘 챙겨먹길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노모가 정준하를 아들처럼 껴안아주었던 그 따뜻한 온기를 이제 정준하가 그 아들을 껴안아주며 전하는 장면은 '배달의 무도'가 전하고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닌 마음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들은 정준하가 진짜 엄마라도 되는 양 오래도록 꼭 껴안고 있었다.

 

최근 음식은 방송의 주재료가 되었다. 여기저기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게 쿡방이고 먹방이다. '배달의 무도'는 그러나 그 흔해진 음식의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음식이란 본디 그걸 해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고, 함께 먹던 사람의 추억과 기억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엄마의 손맛'이라는 말은 그 음식의 맛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엄마의 자식 생각하는 그 마음이 주는 푸근함과 따뜻함이 깃든 맛일 것이다.

 

<무한도전> 굳이 이틀 가까이나 되는 시간을 들여서 이역만리의 땅으로 날아가 '배달'을 하겠다고 했는지에 대한 의아함은 노모와 정준하 그리고 아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서 거대한 '공감'으로 변모했다. 실로 편해진 세상이 아닌가. 이제 스마트폰만 켜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글로컬(글로벌+로컬)'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것은 그런 문명의 이기들이 아니라는 것을 <무한도전>은 보여주었다.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음식 한 끼에는 그래서 이 글로컬한 세상이 결코 쉽게 전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감동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 있어도 늘 아들이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하는 노모의 마음과 그 마음을 음식 한 끼를 통해서도 그대로 전해 받고 우는 아들. <무한도전> 정준하가 배달한 건 그저 음식이 아니었다.

 

 

가슴에 쥐나는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

 

무모한 시도처럼 보인다. 이 시대에 순애보를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2%를 넘지 못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어떤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겨진다. 이 시대는 이제 이런 사랑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걸까. 그저 즉물적이고 직설적이며 감각적인 사랑의 시대. JTBC <사랑하는 은동아>가 주는 아련함과 그리움은 도무지 공감되기 힘든 걸까.

 


'사랑하는 은동아(사진출처:JTBC)'

제목이 벌써 <사랑하는 은동아>. 세련되지도 않고 어찌 보면 너무 구시대적인 느낌마저 주는 제목. 그래서 선뜻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한 번 보고 빠져들게 되면 이만큼 늪처럼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드라마도 없다. 마치 과거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고 훈훈하게 했던 옛 사랑이야기에 대한 기억들이 방울방울 피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 일드 <러브레터>를 보며 느꼈던 기억 같기도 하고, 윤석호 PD의 계절 드라마가 주던 기억의 숨은그림찾기를 보는 듯한 기억 같기도 한 그런 느낌.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게 된 은동이를 한 남자가 잊지 못하고 20여년 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 몇 차례 만나서 사랑이 깊어갈 즈음,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은동이(김사랑)와 운명처럼 다시 만난 지은호(주진모)가 그 옛 사랑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촘촘히 들어가 있는 장치들은 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에 촉촉한 감성의 비를 내려준다. 자서전이라는 장치는 마치 <러브레터>의 연애편지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에 쥐가 나게 만든다. 은동이 자신이 은동인 줄 모른 채 지은호에게 들은 은동이와의 사랑 이야기를 적어나간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설렘과 먹먹함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옛 사랑의 기억이 자서전의 글귀들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단서가 되어 다시 지은호와 은동이를 이어준다는 설정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상대방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서도 이미 달라진 상황(은동이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다)으로 인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중요한 장치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뭐든 즉각적으로 연결하고 이뤄지고 헤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사랑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이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운 그런 사랑.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맘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가슴 한 켠이 무너지지만 그런 아픔조차 넉넉히 감당해내게 하는 사랑. 어찌 보면 너무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거리가 유지되어 있어 더더욱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

 

시청률은 낮지만 그 낮은 시청률로 모든 걸 평가하기에는 아까운 드라마가 <사랑하는 은동아>. 일단 첫 회를 보게 되면 끝까지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는 그 느릿느릿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진중한 사랑의 이야기로 이 시대에 잊고 있던 진짜 사랑의 기억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지은호가 은동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마치 그녀가 된 듯 가슴에 먹먹함이 느껴졌던 것처럼. 은동이의 잊혀진 기억이 지은호의 순애보로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아이유의 무엇이 대선배들을 극찬하게 하는가

 

서태지는 정규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아이유 덕분에 잘됐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자신을 보컬리스트라기보다는 싱어송라이터면서 프로듀서라 생각한다며 내 노래를 남이 부르면 어떨까를 항상 생각하고 아이유를 떠올렸다고 했다. “10대들에게 영향 미친 건 아이유 덕을 많이 봤다. 아이유를 업고가고 싶다. 나는 아이유 초기 음악을 많이 들었다. ‘’, ‘마시멜로는 댄스가 아니라, 락킹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유의 보이스 컬러는 보물이다. 여자싱어에서 기적이다. 나보다 아내가 더 팬이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이유(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아이유는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되살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즉 본래 김창완의 곡인 너의 의미를 아이유가 리메이크해서 불렀는데 거기에 김창완이 자청해 피처링을 한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그만큼 아이유가 재해석해놓은 너의 의미가 김창완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너의 의미를 부르기도 했는데, 한 인터뷰에서 서로에게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김창완은 아이유를 나의 청춘이라고, 또 아이유는 김창완을 나의 미래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제 가요계는 아이유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성공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이미 정규3모던 타임즈에서 최백호, 양희은 등과 작업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신구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감성의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느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유의 목소리는 서태지의 표현대로 보물이다. 통기타 하나 들고 목소리로만 승부해도 충분할 만큼 깊고도 잔잔한 아날로그적 정서가 그녀에게서는 묻어난다. 물론 그녀의 스펙트럼은 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까지 훨씬 폭이 넓지만.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비롯해, ‘꽃갈피앨범에 수록된 리메이크곡 거의 대부분이 부활된 것은 마치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공존시키는 그녀의 마법 같은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조덕배의 나의 옛날이야기나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또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은 그렇게 흘러간 노래에서 소환되어 우리 앞에 다시 그 명곡의 얼굴을 드러냈다.

 

아이유는 초창기 시절부터 지켜주고픈 아저씨 팬들을 양산했던 가수였다.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단단한 가창력은 아저씨 팬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적으로 어떤 이미지적인 효과 덕분이었다면 지금은 가수라는 본분으로서 아저씨들의 감성을 파고들고 있다. 그녀를 뮤직비디오나 무대에서 확인하지 않아도, 그 목소리만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무엇이 이 어린 소녀에게 이토록 원숙하면서도 단단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능하게 만든 걸까. 영락없는 소녀의 톡톡 튀고 밝은 모습 이면에서 느껴지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은 아마도 그녀가 살아낸 현실의 무게감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그래서일까. 김창완이 너의 의미의 말미에 도대체 넌 나한테 누구니?”라고 피처링한 것처럼, 그녀의 노래를 들은 이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넌 도대체 누구니?

 

나영석 PD의 <삼시세끼>가 흥미로운 몇 가지 이유

 

이명한 CP에게 대놓고 물었다. 이번 나영석 PD<삼시세끼>는 어떨 것 같냐고. 그러자 답변 대신 이런 말이 돌아왔다. “너무 잘 하는 팀이라 제가 관여할 일이 별로 없어요. 저는 기획단계에 조금 참여했을 뿐이죠.” <12> 시절부터 나영석 PD의 사수 역할을 해온 이명한 CP. 그도 이제는 나영석 PD의 감과 능력을 100% 신뢰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러면서 <꽃보다> 시리즈와는 다른 <삼시세끼>의 몇 가지 특징을 얘기했다. 그 첫 번째는 도시 문명과의 격리였다. 필자는 거기서 고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사실 격리든 고립이든 그렇게 긍정적으로 들리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에서 이 단어를 떠올리면 의외로 긍정적인 뉘앙스가 묻어난다.

 

매분 매초마다 울려대는 스마트폰에 어디든 즉각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최첨단의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는 좀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네트워크를 잠시 끊어버리고 좀 더 본질적인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서의 격리나 고립은 결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닐 것이다. 특히 회사에 가족에 수많은 관계 속에 내몰려진 도시인이라면 더더욱. 격리나 고립은 여기서는 하나의 로망이 된다.

 

두 번째 <삼시세끼>의 특징은 그것이 오랜만에 나영석 PD가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이명한 CP“<꽃보다> 시리즈의 기획은 사실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인물 섭외에서부터 해외의 장소 선정까지 꽤 거대한 기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비해 <삼시세끼>는 훨씬 가볍고 그만큼 소박한 프로그램으로 확연한 차별점을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소박한 지점이 오히려 이 프로그램만의 재미요소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넓은 세상 밖으로 한없이 펼쳐져 나가던 카메라는 이제 소소하고 소박해 보이는 시골의 작은 일들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활과 일상 속으로 밀착한 이야기들이 주는 새로운 묘미. 그것이 <삼시세끼>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실 농사를 짓는 예능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이 아이돌들을 시골에 정착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그걸 카메라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어떤 한계를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좋은 세상 만들기><청춘불패>가 담아내는 시선은 도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농촌의 신기함이나 힘겨움에 대한 공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한 CP<삼시세끼>의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즉 지금의 농촌이란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곳을 의미하지 않고 도시인들에게는 살고 싶은 곳의 로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농사를 짓는 것은 맞지만 결코 농사라는 노동에만 집착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농촌의 삶이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주는 그 단순하고 소박하며 편안하게까지 다가오는 그 판타지. 이것이 <삼시세끼>의 세 번째 특징이 될 것이다.

 

사실 사는 건 복잡해 보여도 결국 삼시세끼먹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간단한 것을 어쩌면 잊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이명한 CP와 헤어지고 나오는 길에 한참 마지막 작업으로 정신없을 나영석 PD에게 못 참고 전화를 걸었다. “<삼시세끼>,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죠?” 섣부른 궁금증으로 던진 질문에 나영석 PD에게 결국 돌아온 답변은 직접 확인하시라는 것이었다. 하긴 설명이 어떻게 그 격리와 소박함과 단순함의 로망을 모두 말해줄 수 있으랴. 직접 느껴볼 밖에.

 

아이유로 선 공개된 서태지 소격동’, 그 반응은?

 

서태지의 소격동프로젝트가 아이유의 목소리로 선 공개됐다. 노래가 아니라 다른 것들로 계속 이슈가 됐던 서태지인지라, 음악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어디 노래는 얼마나 괜찮은지 들어보자는 조금은 뒤틀린 심사에, 그래도 서태지니 기대된다는 기대감이 얹어져 반응도 양 갈래로 나뉜다.

 

'소격동 프로젝트(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그렇다면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은 어떨까. 먼저 늘 새로운 장르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줘 왔던 서태지라는 존재감만큼의 특별한 새로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조용히 읊조리듯 부르는 발라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팝에서는 이미 여러 가수들에 의해 시도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장르적인 것을 떠나서 음악 자체로만 들어보면 소격동이라는 노래가 담고 있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기에는 서태지가 예전에 불렀던 발라드들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향수와 추억이 만져진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묻혀진다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트렌디하고 세련된 날카로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아이유가 먼저 소격동프로젝트의 문을 연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7,80년대의 음악을 불러도 전혀 이물감이 없을 정도로 아날로그 감성을 자기 식으로 잘 풀어내는 아이유가 아닌가. 아이유가 부르는 소격동은 그래서 마치 이미 예전에 서태지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듯한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아이유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는 심지어 일렉트로닉이 가진 차가움마저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부조화는 그래서 소격동이라는 곡이 가진 이중적인 특징을 균형 있게 잡아준다. 그 이중적인 특징이란 가벼운 발라드 감성처럼 느껴지면서도 소격동이라는 공간이 주는 시대적 정조가 주는 무거운 비감이 뒤섞여 있는 데서 나온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이 곡의 가사를 거꾸로 들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즉 앞에서부터 들으면 마치 연인이 옛 추억을 되밟는 듯한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지만, 뒤에서부터 가사를 되짚어보면 과거 소격동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시대적 정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음악적 감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향수와 추억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에 되돌아보는 과거란 심지어 시대적 아픔마저도 하나의 그리움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영화 <써니>에서 시위대가 광장에서 전경들과 부딪치는 80년대의 최루탄 뽀얀 풍경 위에 조이(Joy)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가 흐를 수 있는 것처럼.

 

소격동이라는 결과물을 두고 보면 그것이 과거 서태지가 해왔던 파격적인 혁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듣기 좋으면서도 정서를 건드리는 꽤 괜찮은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잘못된 홍보 마케팅으로 신곡에 대한 괜한 호들갑이 만들어낸 논란 같은 것이 없었다면, 노래의 발표만으로도 충분히 역시 서태지라는 소리를 들을 법한 곡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괜한 예능 단독 출연 사실로 만들어진 서태지에 대한 논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아직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은 발표되지도 않았다. 과연 반전은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 <명량>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말처럼, 서태지는 과연 시끄러운 논란마저 긍정적인 화제로 바꿔낼 수 있을까. 시선은 이제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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