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가 발굴한 배우들, <성균관스캔들>처럼 성장할까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종영했다. 끝났지만 보내지 못했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보인다. 그만큼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는 뜻이다. 최고 시청률은 23.3%(닐슨 코리아). 화제성은 단연 갑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남긴 자산은 이 작품이 발굴해낸 만만찮은 배우들의 가능성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박보검을 신인이라 말하긴 어렵다. 그는 tvN <응답하라1988>의 택이 역할로 주목받고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미 그 이전에 <각시탈>, <원더풀마마>, <참좋은시절>, <내일도 칸타빌레> 같은 작품들을 거쳤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가 여러 작품을 통해 쌓고 <응답하라1988>을 통해 단단해진 연기의 결을 비로소 제대로 펼쳐낸 작품이 되었다.

 

여전히 소년 같은 이미지, 하지만 어딘지 소년답지 않은 슬픔 같은 것이 담긴 눈빛, 그래서 그 슬픔이 눈에 머금은 채 환하게 웃을 때 느껴지는 그 복합적인 감정들. 일찌감치 어른의 세계에 들어와 그 아픔을 알아버린 아이 같은 그런 애틋함이 이 예사롭지 않은 가능성을 가진 배우의 결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조정대신들이 만들어내는 살벌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가 제대로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대항하며 성숙해가는 모습을 200% 시청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던 건 그가 갖고 있는 결이 이영이란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박보검의 상대역을 한 김유정은 남장여자 콘셉트를 제대로 소화해낸 여배우들이 그랬듯이 이제 소녀의 틀에서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를 잘 치러냈다. 아역 이미지가 강했던 그녀가 홍라온이라는 인물을 통해 비로소 보다 성숙해진 여성의 느낌을 갖게 됐다는 건 그래서 김유정으로서는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아역시절부터 충분히 쌓아온 연기 공력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이미지 변신과 만나게 된 김유정의 앞으로의 연기가 더더욱 기대되는 지점이다.

 

김윤성 역할을 연기한 진영 역시 B1A4의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연기 소화력을 보여줬다. 사실 아이돌들은 연기에 대한 부담감이 타 배우들보다 크기 마련이다. 게다가 특히 사극 같은 경우는 본격 연기자들조차 적응이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진영이 보여준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단단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연기돌로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면면을 충분히 그는 보여줬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데뷔해 <돌아와요 아저씨>, <피리부는 사나이> 같은 작품을 거치며 조금씩 성장해온 곽동연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주목받았다. ‘갓동연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을 정도. 이영의 호위무사이자 친구로서 그 선을 넘나드는 김병연이란 인물을 그는 괜찮은 액션 연기와 내면 연기를 통해 보여줬다. 역시 향후가 기대되는 배우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 퓨전사극의 틀이 <성균관 스캔들>과 비교되곤 했다. 그런데 그 <성균관 스캔들>이 만든 최대의 성과는 역시 연기자들의 탄생이었다. 그 작품으로 박유천, 송중기, 유아인이라는 만만찮은 배우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모두 한류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 훗날 이런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여기서 발굴된 배우들이 <성균관 스캔들>의 배우들처럼 좀 더 넓은 세계에서 훨훨 날 수 있기를.

박보검과 김유정, <구르미>의 어른 아이들

 

사실 대본만 놓고 보면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이 왜 이토록 화제가 되는 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남장여자 코드의 사극 버전 멜로는 이미 <성균관 스캔들>이나 <바람의 화원>을 통해 충분히 익숙해진 스토리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스토리는 여기서 그다지 새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남장여자로 자신을 숨긴 채 내시로 궁에 들어온 홍라온(김유정)이 왕세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멜로 이외에 사극이 갖기 마련인 정쟁 구도도 그리 신선하다 여겨지지는 않는다. 왕이 있지만 모든 실세를 쥐고 있는 세도가 김헌(천호진)이 그 정쟁의 중심에 서 있다. 대리청정을 받아들인 왕세자 이영(박보검)은 그 김헌과 대립한다. 이미 뽑힐 사람이 정해져 있는 말 뿐인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겠다던 이영은 정약용(안내상)의 조언으로 시험은 치르되 다른 시제를 냄으로써 시험의 초심을 공명정대하게 지켜낸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소소해 보여 이 사극이 보여주는 멜로와 견줘보면 그리 집중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이 사극의 이야기는 이영과 홍라온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가 거의 대부분이다. 남장여자라는 콘셉트는 내시와 여인 사이를 오가는 홍라온을 통해 이영과의 멜로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장치다. 물론 홍라온이 홍경래의 여식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멜로구도는 정치적 사안과 맞물려 긴장감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극의 특성상 그 이야기 역시 정치적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멜로적 긴장으로 갈 가능성이 더 높다.

 

결국 이야기는 익숙한 것들이 어느 정도는 그 향방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그리고 그 뜨거운 반응의 중심에는 박보검과 김유정이 있다. 이 두 사람의 연기에 한 마디로 심쿵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들의 연기가 무엇이 특별하길래 이토록 마법을 부리는 걸까.

 

사실 박보검은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을 정도로 그가 들어가는 프로그램마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응답하라1988>에서 그 연기가 주목받았다면 <꽃보다청춘>, <12>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의 심성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닿았다. 연기력과 심성. 이 두 요소는 요즘 드라마와 예능에서 가장 요구되는 자질들이다. 어린 나이지만 그는 <스틸사진>의 아역에서부터 <각시탈>, <원더풀 마마>, <참 좋은 시절>, <내일도 칸타빌레>를 거쳐 <응답하라1988>까지 꽤 많은 작품들에서 연기공력을 쌓았고, 파산으로 어려운 형편 때문에 쉽지 않은 청소년 시절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연기 경험을 했던 것과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은 점은 결과적으로 보면 연기자 박보검에게는 큰 자산이 됐다고 보인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이영을 연기하는 박보검은 여전히 아이 같은 순수한 눈빛을 갖고 있지만 어딘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슬퍼 보이고 그러면서 때론 서슬 퍼런 왕세자의 눈빛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려보이지만 어른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래서 그것이 꽤 슬픈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김유정 역시 이런 관점으로 보면 박보검과 비슷한 점들이 있다. 그녀는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연기를 하며 성장해왔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거의 3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출연한 그녀는 벌써 연기경력이 10년이 되는 셈이다. 아역의 이미지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녀는 그것을 깨기 위해 최근 무던한 노력을 해왔다. <우아한 거짓말>이나 <앵그리맘>에서의 연기변신은 단적인 사례다.

 

아역이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성장통은 의외로 깊을 수밖에 없지만 놀라운 건 김유정은 아역 시절부터 벌써부터 성인역에 가까운 감정과 내면 연기를 선보였다는 사실이다.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 구미호와 인간 사이의 반인반수인 연이 역할을 연기하는 김유정이 그랬고, KBS단막 스페셜 <곡비>에서 기생 역할을 연기하는 그녀가 그랬다. 그녀에게도 박보검처럼 아이 같은 면면과 동시에 어른스러움이 갖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이런 남다른 필모그라피 덕분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면면을 갖고 있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서서 어른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박보검과 김유정의 눈빛이 더 아련한 느낌을 주는 건 당연하다.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살벌한 어른들 세계에 온전히 아이 둘이 서 있는 듯한 느낌마저 주지 않던가. 두 사람이 서로 애절한 눈빛을 나누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더 쥐어짜는 건 그래서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고 또 찾아보게 만드는 것도.

<구르미> 김유정, 남장여자 캐릭터의 진수

 

박보검 매직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시청률이 19.3%(닐슨 코리아)로 치솟았다. 8.3%로 다소 저조하게 시작했던 시청률은 16%로 뛰어오른 후 이제 20%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경쟁작으로 등장했던 SBS <달의 연인>7.4%로 시작해 5.7%까지 떨어진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달의 연인>은 장르적으로도 또 스타일 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사극이지만 청춘 멜로를 바탕에 깔고 있고 현대극에 가까운 시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한 성격의 두 작품이 이렇게 극적으로 희비쌍곡선을 그리게 된 건 아무래도 연기자들의 몫이 크다.

 

박보검은 아직 사극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의외로 이영이라는 왕세자의 다양한 면면들을 잘도 끄집어내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릴 때면 한없이 아이처럼 슬퍼하다가, 어딘지 무기력한 아버지인 왕(김승수) 앞에서는 반항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권력의 실세로 조정을 농단하는 김헌(천호진)과는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홍라온(김유정)에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끌림을 천연덕스럽게도 연기한다.

 

혹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정통사극이 아니고 현대적인 감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극이 주는 진중함을 가져가면서도 그것을 살짝 무너뜨리며 현대적인 유머와 시각을 집어넣는다는 건 어쩌면 온전한 정통사극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두고 보면 박보검의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그 균형감각은 연기자로서 탁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박보검만큼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다름 아닌 상대역인 홍라온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유정이다. 아직 만 16세로 우리에게는 아역으로 더 많이 기억됐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지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그 아역의 껍질을 깨고 어엿한 여인으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아역 시절부터 이게 과연 아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해냈던 김유정이다. 그녀가 해온 연기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연기공력을 쌓아왔는가가 한 눈에 드러난다. 현대극들은 차치하고라도 사극만, <일지매>, <바람의 화원>, <탐나는도다>, <동이>, <계백>, <해를 품은 달>, <비밀의 문>, <구미호 여우누이뎐>까지 무려 8편에 달한다. 이미 아역 시절부터 사극이 제 옷처럼 잘 맞을 정도로 연기 경험을 해온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도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은 각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남장여자 콘셉트의 사극은 여성 연기자들에게는 연기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다. <성균관스캔들>의 박민영이 그랬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이 그랬다. 기존의 이미지를 남장여자 캐릭터로 가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와 멜로 연기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의 김유정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 같던 이미지는 내시 역할을 하며 슬쩍 친구처럼 다가왔고 그러면서 이영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며 시청자들에게도 그 매력을 드러낸다. 그녀가 연희를 위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춤을 추는 장면은 김유정이 어엿한 여인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한없이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드는 그녀가 아닌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데는 분명 박보검과 김유정이라는 두 배우의 집중력있는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박보검도 놀랍지만, 아이 같은 귀여움과 여인의 설렘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김유정은 더 대단하다. 구름 사이로 교교히 비추는 달빛처럼, 이들이 매력은 어느덧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고 있다.

<옥중화> 정다빈, 이 어린 꼬마가 다 했네 다 했어

 

MBC <옥중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빛나는 인물은 누구일까. 사실 사극에서 초반 극의 무게를 잡아주는 인물들은 통상적으로 악역이거나 주인공에게 어떤 소명의식을 남겨주는 스승인 경우가 많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인물은 그래서 극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옆으로 살짝 비켜나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옥중화>는 다르다. 이 사극은 시작부터 어린 옥녀(정다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옥중화(사진출처:MBC)'

물론 <옥중화> 역시 누이 문정왕후(김미숙)의 권세를 등에 업고 패악질을 일삼는 윤원형(정준호)이 악역으로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윤원형을 통해 어떤 공분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어린 옥녀가 전옥서에서 살아가며 차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그 과정에 더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옥중화>가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이유이기도 하다. <옥중화>는 단 몇 회만에 옥녀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그저 전옥서에서 자라난 작은 아이일 뿐이지만 이 맹랑한 소녀는 세치 혀로 어른들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스승 이지함(주진모)의 추천으로 점을 잘 치는 인물로 내세워진 옥녀는 달콤한 말로 윤원형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한다. 또 자신의 힘이 없다면 차도살인지계를 쓰라는 이지함의 조언을 그대로 실행해 왈패의 수장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어찌 보면 그저 힘없는 작은 아이에 불과하지만 이 아이가 전옥서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그녀가 거의 모든 죄수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죄수들은 그녀의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소매치기에게 그 기술을 배우고 이지함에게는 머리를 쓰는 방법을 배운다. 또 비밀 옥사에 20년 간 갇혀 지낸 박태수(전광렬)를 찾아간 그녀는 다모가 되고 싶다며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감방을 속된 말로 학교라고도 부른다지만 옥녀에게 전옥서는 세상에 나가기 전 그녀를 성장시키는 진정한 학교가 된다.

 

그녀를 거둬 키운 지천득(정은표), 스승이 되는 이지함과 박태수 그리고 향후 그녀와 엮어질 전우치(이세창)나 윤태원(고수) 같은 인물들이 모두 옥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드라마 초반의 힘을 잡아줘야 할 어린 옥녀라는 캐릭터가 이 사극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어린 옥녀 역할을 맡은 정다빈은 200%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병훈 감독의 작품답게 선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으로서 정다빈은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진 소녀이면서 전옥서 수감자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착한 인물이고, 동시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감한 실행력 또한 갖춘 인물이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는 밝은 기운의 소유자라는 건 사극 전체에 긍정적인 힘을 부여하고 있다.

 

<옥중화>라는 제목은 바로 이 옥녀의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준다. ‘감옥에서 피어난 꽃이란 뜻의 이 옥녀는 감옥이라는 비천한 상황 속에서 자라왔지만 보는 이들을 밝게 만드는 꽃의 형상을 그대로 닮았다. 억울하게 살해된 엄마의 아픈 과거를 갖고 있고, 전옥서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어떤 희망과 성장을 느낄 수 있는 인물로서의 옥녀. 이 인물이 현재의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옥중화라는 캐릭터에 들어있듯 힘겨워도 밝게 살아가려는 그 의지가 깊은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보통 요즘 드라마들은 악역이 이끌어가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연기 호평이 악역에게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옥중화>는 악역인 정준호보다 어린 여주인공 정다빈이 더욱 돋보인다. 그것은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병훈 감독이 추구하는 선한 주인공의 밝은 드라마가 가진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남은 문제는 있다. 이 정다빈의 바톤을 이어받는 진세연이 이 힘을 얼마나 더 잘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 그것이 이 사극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민하, 예능보다는 연기에 집중하는 편이

 

단언컨대 영화 <감기>의 지분율이 있다면 그 절반 이상은 온전히 아역 박민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장혁이 시종일관 뛰어다니고 수애가 발을 동동 구르며 전전긍긍하는 건 전적으로 박민하가 연기하는 미르라는 아이 때문이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이 전대미문의 바이러스에 고통스러워하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모두 이 미르라는 아이의 배경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감기>에서 아역 박민하는 이토록 중차대한 역할을 맡았다.

 

박민하(사진출처:영화<감기>)

아이여서일까. 아니면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대로 천재 아역이라서 그런 것일까. 조금은 부담일 수밖에 없는 이 미르라는 역할을 박민하는 아무런 이물감 없이 천연덕스럽게 해냈다. 만일 아역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약간의 틈입을 만드는 연기력 부족이 느껴졌다면 그것은 이 영화 전체의 몰입을 방해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박민하는 틈입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관객들이 더 극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까지 만들어냈다.

 

초반부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모습에서 시작해 차츰 긴장감을 높이는 박민하의 표정의 변화는 이 영화의 고조되는 극과 거의 동일선상에서 움직인다. 연기라고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의 감성을 백 프로 끌어내면서도 어떤 점이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릴 지 알고 있는 듯한 여유마저 엿보이는 이 아역에게서 분명 좋은 연기자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나이에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 심지어 연기 경력도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박민하의 연기는 말 그대로 극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루려는 이야기는 그녀가 <감기>에서 어떤 연기력을 보였는가 하는 그런 점이 아니다. 이토록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아이가 왜 그 동안 심지어 대중들에게 박한 평가를 받아왔는가 하는 점이다. 그녀는 심지어 ‘안티 카페’가 생겼을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그녀가 ‘순수함을 잃고 너무 작위적’이라는 대중들의 반응 때문이다.

 

이제 겨우 만 6세의 아이가 <붕어빵>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목받고 <해피투게더>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어른 뺨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대중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아이의 모습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 즉 연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시키면 몇 초만에 뚝딱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부르며 울먹이고 또 금세 걸 그룹의 섹시 댄스를 흉내 내는 모습을 아이답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모습은 최근 리얼 예능이 추구하는 ‘진정성’면에서는 분명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 6세의 아이에게 예능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것과 연기가 요구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연기적인 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게다가 그녀는 타고난 연기자의 자질을 갖고 있다) 비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비판의 소지가 있는 것은 이제 갓 만 6세의 아이가 가진 잠재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어른들의 배려와 관리다. 박민하라는 아이의 가능성을 알아봤다면 이 아이가 섣불리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이 과연 득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연기는 본업이고 예능은 그저 하는 것이라고 쉽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예능에서 만들어지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연기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연기자는 결국 자신의 이미지에 연기가 영향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이라도 <감기>같은 작품을 통해 박민하라는 장차 촉망되는 연기자를 발견한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이 아이가 가진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로 차근차근 걸어 나가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박민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잦은 예능 출연이 아니라 더 좋은 작품을 만나 연기자로서 경험해가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다.

<보고싶다>의 박유천, 갈수록 물건이 되어간다

 

이건 아역이 아니야. 여진구가 드라마에 나올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해를 품은 달>에서 그가 사라진 연우를 향해 오열할 때 그 감정의 질감은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보고싶다>의 한정우로 돌아온 여진구. 그 연기는 더 깊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로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가는 수연에게 “살인자 딸 이수연. 나랑 친구하자.”고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아마도 시청자들은 그 미소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보고싶다'(사진출처:MBC)

또 다시는 그녀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납치범들에게 겁에 질려 그녀를 혼자 놔두고 도망쳤을 때,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영영 사라져 버렸을 때 그녀가 남긴 일기장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한정우(여진구)의 모습을 보며 똑같이 가슴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보고싶다’라고 담벼락에 쓰고는 사라져버린 수연을 가슴에서 지워버리지 못하는 한정우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가진 아픔과 그리움의 정조를 깔아주었다. 그 한정우를 연기해낸 여진구는 그런 존재감을 남겼다.

 

그러니 그 역할을 이어받는 박유천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역의 지나친 존재감은 성인역으로의 변신에 때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니까. 게다가 <보고싶다>는 어린 한정우가 가진 그 그리움과 순수에게 기인하는 아픔이 궁극적인 주제가 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의 대결을 그린다. 김성호(전광렬)가 정우에게 자신의 꿈이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말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한정우의 시간은 14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진구의 아우라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유천으로 넘어오는 그 과정이 특별한 이물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건 놀라운 일이다. 박유천은 이제 형사라는 어른의 겉옷을 입은 채 여전히 여진구가 보여줬던 그 어린 한정우의 순수한 아이 같은 그리움과 슬픔을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장르적으로는 형사물이 갖기 마련인 추적과 잠적의 이야기와, 숨겨져 있던 과거 사건의 실체를 풀어내는 추리와 스릴러의 이야기가 겹쳐져 있지만, 그 위에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은 한정우와 이수연의 세월을 뛰어넘는 가슴 절절한 멜로다. 따라서 한정우의 끈질긴 수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따라서 이것은 순수를 잃어버린 세상(사건으로 점철된)을 향한 한 형사의 대결이면서 사랑이 된다.

 

<보고싶다>가 점점 더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이 두 지점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정우의 사랑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거기서 아마도 멜로의 차원을 뛰어넘는, 차디찬 세상에 대한 대결의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옛 사랑이면서 어린 순수이면서 따뜻한 정이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방해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부딪치며 달려 나가는 인물 한정우. 어린 시절의 강력한 트라우마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의 세계를 다시 복원해내는 그 역할을 박유천은 특유의 몰입으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여진구가 만들어낸 그 강력한 아우라 속에서도 그 바톤을 이어받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은 박유천이라는 배우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점이다. 박유천, 이 친구 갈수록 물건이 되어간다.

<대풍수>, 주인공이 주목되지 않는 사극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드라마 공감] <대풍수>는 올해 SBS가 야심차게 준비한 사극이다. 이미 이 기획이 방송가에 돌아다닌 것만도 5년여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본래 좀 더 일찍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늦춰지는 바람에 SBS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 편성되기도 했다. <추적자>는 본래 그 대체 편성된 작품이었지만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을 얻을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정작 <대풍수>는 부진의 늪에서 좀체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시청자들은 무언가 확실한 끌림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체 뭘까.

 

'대풍수'(사진출처:SBS)

<대풍수>는 왕이 아니라 왕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사극과는 궤를 달리 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시대 상황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을 풍수를 다루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킹 메이커’라는 소재는 왕보다는 민초들에게 더 관심이 가게 된 현재의 달라진 시청자들의 정서에도 잘 맞는다. 또 풍수라는 지금껏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분야가 나온다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란 신선하기도 하지만 낯설기도 한 게 현실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풍수>가 초반에 부진한 이유는 바로 이 낯선 소재가 갖는 매력을 부각시키지 못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꽤 큰 스케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굉장히 많은 편인데, 그 인물들 속에서 정작 주인공인 지상(이다윗)이 그다지 주목되지 않는 것.

 

복잡한 사극에서 주인공의 초반 역할은 그 사극의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도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소재가 낯설고 설정이 복잡해도 주인공만 주욱 따라가면 쉽게 이해되어야 사극의 몰입도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풍수>는 너무 많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힘을 내지만 그것이 주인공으로 결집하지 못함으로써 그 힘이 흩어지고 있다.

 

주인공 지상의 아버지인 동륜(최재웅)에게 초반 집중되는 듯 하던 <대풍수>는 갑자기 이성계(지진희)를 만나면서 힘이 흩어지게 됐고, 그 후로는 지상의 친모인 영지(이진)와 수련개(오현경)의 대결구도가 사극을 끌어가는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린 지상은 그 큰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어 아버지를 포함해 자신을 키워준 이들이 모두 죽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까지 땅 속에 묻히는 일까지 당하지만 그 일련의 사건들이 지상에 대한 매력 혹은 연민으로 잘 연결되지 않았다.

 

<대풍수>의 초반에 선정성 논란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련개와 이인임(조민기)의 베드신이 몇 번 반복되고, 심지어 단역들조차 베드신이 등장하게 된 것은 초반 스토리가 가진 약한 구석을 자극으로 메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어린 지상이 굳이 땅속에까지 묻혔다가 다시 나오는 장면은 물론 그 땅속과 어머니의 자궁을 연결시켜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자극적인 장면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대풍수>의 초반 부진은 아역들이 너무 힘도 매력도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기존 사극들이 아역에서 초반 힘을 상당부분 만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역의 부진은 또한 이어질 성인역에서 반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마의>가 초반 아역들의 부진을 조승우라는 배우를 통해 털어냈듯이, <대풍수>도 지성을 통해 그 부진을 털어낼 수 있을까. <대풍수>는 먼저 그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세워놓는 작업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성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지점이다.

김순옥표 드라마의 한계, 비약과 과장

 

<아내의 유혹>과 <천사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에게 늘 막장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섯손가락>의 초반부는 분명 어딘지 기존 막장드라마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피아노라는 감성적인 소재가 주는 느낌이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섯손가락>의 피아노라는 소재는 김순옥 작가가 그리던 거친 세상과는 대조적인 감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섯손가락>은 11.2%(8월18일 agb닐슨)로 시작해 일찌감치 14.1%(8월25일)로 정점을 찍었다.

 

'다섯손가락'(사진출처:SBS)

여기에 아역들이 가진 힘이 있었다. 아이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상황들에 노출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기 때문에 막장이라기보다는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김순옥 작가의 진화라는 평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초반 선전을 이끌었던 아역들이 빠지면서 11.8%(9월2일)로 뚝 떨어지더니, 10.8%(9월8일), 10.5%(9월9일)로 끊임없는 하락세를 걷게 되었다. 경쟁작인 <메이퀸>이 아역 분량을 지금껏 이어오면서 꾸준히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과는 대조적이다(<메이퀸> 역시 아역이 빠지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성인역으로 교체되면서 김순옥표 드라마의 고질적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과 우연의 연속, 캐릭터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작가에 의해 인형처럼 조종되고 있다는 인위적인 느낌, 게다가 어디서 많이 봤던 상황들의 연속까지...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아노라는 감성적인 소재와 아이라는 동정적 시선의 대상이 사라지면서 본색이 드러난 셈이다.

 

지금껏 누누이 지적되어 왔던 김순옥표 드라마의 가장 큰 맹점은 개연성 부족과 속도 조절 실패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작가의 성정 때문인지 모르지만,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속도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논리와 개연성이 충분히 녹아나지 않게 되면 시청자들은 저 뒤에 있는데 작가 혼자 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인이 된 유지호(주지훈)와 홍다미(진세연)가 자전거를 타다 부딪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은 김순옥표 드라마의 논리와 개연성 결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제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그렇게 비슷한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것도 지나친 우연이다) 자전거가 바뀌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지만 이 자전거가 바뀌는 사건은 유지호가 스승인 하윤모(전국환)에게 의심을 받게 되는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 스승의 악보를 유지호가 소홀히 관리했다는 것. 게다가 하윤모가 그 악보가 유출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도 홍다미가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된 카페에 그가 우연하게도 거기 있으면서 생긴 일이다.

 

사건이 개연성이 전혀 없고 우연을 반복되는 것이 김순옥표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다섯손가락>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윤모는 결국 이것이 자신의 오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유지호를 제자로 받아들이지만, 그는 또 유지호가 자신의 악보를 훔쳤다는 오해를 갖게 되고(이것은 모두 채영랑(채시라)의 음모지만) 다시 그를 내친다. 이 과정에서 하윤모라는 캐릭터는 마치 감정조절이 안되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토록 신뢰가 돈독하던 사제지간에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제자를 두둔하기보다는 그를 의심하는 섣부른 감정은 캐릭터를 매력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작가의 스토리 전개를 위한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캐릭터 조종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가진 지나친 비약과 과장은, 그녀의 작품이 속도에 집착하는 것조차 시청자들에게 속도의 쾌감을 주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빈약한 논리를 가리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빨리 움직임으로써 우연의 반복과 개연성의 부족을 감추려는 안간힘. 과거의 시청자라면 ‘드라마는 원래 그래’하며 넘어갔을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시청자의 드라마를 보는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벼려져 있다. 작은 개연성 부족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게 작금의 대중들이 아닌가.

 

<다섯손가락>이 개연성과 논리를 버리고 속도에 집착하면서 생겨나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그것은 애초에 이 거친 드라마조차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던 피아노라는 소재가 점점 하나의 소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다섯손가락>은 피아노라는 음악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피아노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와 욕망의 이야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소재가 아깝고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아까운 상황이다. 시청률의 추락은 당연하면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언제까지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를 계속 방치할 것인가. 시청자들의 눈은 정확하다.

명품 아역 연기에 남는 씁쓸한 뒤끝

 

이건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다. 주말극 <다섯손가락>과 <메이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얘기다. 이 두 주말극은 모두 성공에 대한 욕망과 대결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전략을 가진 드라마다. <제빵왕 김탁구>의 성공 이후에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지던 출생의 비밀과 대결, 그리고 성장드라마의 요소를 이 두 드라마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초반부에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이 어른들 못지않은 대결의 날을 세우고 있는 건 이러한 유사한 전략적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메이퀸(좌)'과 '다섯손가락(우)'(사진출처:MBC,SBS)

<다섯손가락>에서 인하(김지훈)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데려온 배다른 형 지호(강이석)를 사사건건 무시하고, 밀어내기 위해 거짓말도 일삼는다. 피아노 대결에서 지호를 이기기 위해 다치지도 않은 손에 깁스를 하고 동정표를 얻어 1등을 차지하는가 하면, 대결 당일 지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지호의 친 엄마를 봤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인하는 어린 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아빠인 유만세(조민기)다. 유만세는 어린 아이들 앞에서 후계 운운 하면서 경쟁 구도를 노골화하는 혹독함을 보여준다.

 

<메이퀸>에서 해주(김유정)는 어린 시절 버려져 천홍철(안내상)의 집에서 자라난다. 천홍철이 바깥에서 데려온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아내 조달순(금보라)은 그런 해주를 구박하고 못살게 군다. 이 드라마에서 해주는 마치 옛 드라마의 억척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낸다. 동생을 챙기고, 가족의 밥을 챙기고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다. 또 이 드라마의 창희(박건태)는 천지그룹의 오너인 장도현(이덕화)의 집에 얹혀사는 아버지 때문에 늘 그의 아들인 일문(서영주)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런데 이 일문은 창희의 아버지인 박기출(김규철)을 창희 앞에서도 하인 부리듯 하는 패악을 저지른다. 역시 아이로서는 보기 힘든 지나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두 드라마가 아역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이들이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라는 얘기는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역들이 어른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섯손가락>의 인하와 지호를 각각 연기하는 김지훈과 강이석이 그렇고, <메이퀸>의 김유정이나 박지빈, 박건태가 그렇다. 특히 김유정은 아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해를 품은 달>에 이어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아역의 선을 넘어서버린 느낌이 있다.

 

이렇게 연기력이 어른 못지않은 아역들이 투입되면서 자칫 막장으로 흘러갈 수 있을 정도로 자극이 강한 이 두 드라마는 확실한 두 가지 이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어른들이 당해도 참혹할 정도의 상황을 아이들이 겪게 됨으로써 그 자극을 더 높여주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막장의 느낌을 상당히 상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아역 분량이 드라마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연기력으로 무장한 아역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드라마로서의 이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장점이 분명하다고 해도 이를 통해 아이들 같지 않은 아이들이 방송에 점점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의 설정이 점점 막장에 가까운 자극으로 흘러가고, 그 속에 아이들이 배치된 상황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현실을 표징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막장 같은 세상에 아이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다섯손가락>과 <메이퀸>의 아역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아이들 같지 않게 배역을 잘 소화하고 있는가 감탄하면서도, 씁쓸한 뒤끝이 남는 건 그 때문이다.


'해품달', 아역만으로 25%, 성인역은?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세자빈으로 간택 받았으나 저주를 받아 원인 모를 병에 걸려버린 연우(김유정)는 결국 궁 밖으로 쫓겨나고, 그걸 바라보는 세자 이훤(여진구)은 오열한다. 간택되기 위한 수많은 궁궐 내의 암투와 그로 인해 사가로 내쫓겨지는 설정은 사극의 오래된 소재다. 하지만 이 닳고 닳은 소재가 이토록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어른이 아닌 아이이기 때문일 게다. 겉모습은 세자와 세자빈이지만, 그 껍질을 벗겨내면 결국 아이들일뿐인 그 어린 상처를 바라보게 만드는 절절함.

그런데 이 아역들이 보통내기들이 아니다. 연우를 연기하는 김유정의 눈빛은 어린 나이에도 연정에 설레는 여인의 태가 제법 느껴진다. 안정감 있는 목소리에서는 그 단정한 기품마저 전해지고, 그런 아이가 세자 이훤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는 때론 소녀 같다가도 때론 성숙한 여인 같은 인상마저 남긴다. 이훤을 연기하는 여진구는 어떤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 속에는 기품이 느껴지고, 때로는 결단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연우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진정 깊은 사랑이 드러난다. 둘이 만나는 장면에 미소 짓게 되고 둘이 헤어지는 장면에 똑같이 마음이 아픈 건 전적으로 이 아이들이지만 아이 같지 않은 연기의 소유자들 덕분이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김유정과 여진구의 놀라운 연기는 '해를 품은 달'이 그 첫 번째가 아니다. 이미 김유정은 '동이'에서 아역을 맡아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해낸 괴물(?) 아역이다. 또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구미호의 딸로 등장해 소름끼치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여진구는 '자이언트'의 어린 강모 역할을 맡아 부모 없이 길바닥에서 생존해가는 연기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긴 아역이다. 연기경력도 화려해서 '연개소문', '일지매', '태양을 삼켜라', '명가', '무사 백동수' 등 수많은 작품의 아역을 거쳤다. 무엇보다 아이 같지 않은 김유정의 눈물연기와 여진구의 강인한 인상은 이 두 연기자를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다.

'해를 품은 달'이 이제 겨우 5회를 끝내고 시청률 25%에 육박하게 된 가장 큰 일등공신들은 다름 아닌 이 아역들의 힘이다. 아이가 가진 특유의 순수함과 그 아이 같지 않은 연기력으로 깊어지는 사랑 연기는 이 청춘 멜로 사극 특유의 색채를 구축해 놓았다. 기존 사극들이 가진 무거운 어른들의 세계와는 차별되는, 아이들 특유의 환상적이고 맑으면서도 두려운 어둠에 대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세계. 이것이 초반 몇 회만에 시청자를 품은 이 사극의 비결이다.

아역들이 이런 발군의 연기로 초반 분위기를 장악해버리자 그 바통을 이어받을 성인역할의 연기자들에게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연우의 역할을 해야 할 한가인과 이훤의 역할을 연기할 김수현은 어쨌든 이 아역들과의 비교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한가인은 물론 절대 동안의 얼굴을 가졌지만, 그 연기를 통해 나이를 뛰어넘는 캐스팅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 아역이라면 그저 성인역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기 위한 짧은 방편으로 치부되었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역은 드라마의 초반 힘을 확실히 세워주고 이끄는 존재들이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아역의 연기력이 점점 성인역을 압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일상으로 살아온 아이들의 카메라에 대한 친숙함과 일찍부터 트레이닝된 연기, 게다가 아이 특유의 몰입이 맞물리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여진구와 김유정은 바로 그 일상의 영상세대가 낳은 첫 번째 수혜자들인 셈이다.

이게 진정 아이의 연기란 말인가. 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이 아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린 어른들은 그래서 당혹감을 넘어서 감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연 '해를 품은 달'은 이 아역들이 보여준 감동을 성인역으로 고스란히 연결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초반 이미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낸 이 사극이 가진 가장 큰 수확이자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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