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2’, 주인공급 김무열의 죽음이 예고하는 것

OCN 주말드라마 <나쁜 녀석들2>는 8회 만에 서원시를 쥐고 흔들던 조영국(김홍파)과 그와 결탁했던 비리검찰 이명득(주진모) 검사장이 모두 검거됐다. 우제문(박중훈) 검사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고, 또 희생도 컸던 이 사건이 이제 겨우 중반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마무리됐다는 건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된 우제문과 함께 했던 이른바 ‘나쁜 녀석들’은 그러나 여전히 그 사건 이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양필순(옥자연)의 살해범을 장성철(양익준)은 계속 추적하고 있고, 허일후(주진모)는 제 손으로 조영국(김홍파)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 채 생업을 하며 알게 된 한 소녀의 실종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박창준(김정학)의 죽음이 조영국의 사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진평이 그 사건을 수사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일이다. 그는 죽기 직전 우제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진범을 찾았다.”며 검찰 내부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특히 조영국-이명득 사건을 수사할 때 함께 했던 “특수 3부 사람들”이. 

노진평은 조영국-이명득 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를 맡았던 인물이다. 검찰총장이 이 모든 사건이 조영국으로 인해 생긴 일이라 주장하는 이명득과, 그게 아니라 이명득이 오히려 악의 뿌리라고 주장하는 반준혁(김유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노진평이 던진 한 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쪽팔리지 않게 해달라”며 “법대로만 해달라”고 요구해 검찰총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검찰총장이 반준혁의 손을 들어줘 이명득은 검거되게 됐다.

그래서 사실상 주인공이라 여겼던 노진평이 이렇게 드라마 중반에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16부작으로 아직도 8회 분량이 남은 시점에서 왜 <나쁜 녀석들>은 거의 주인공의 무게를 갖던 노진평의 죽음을 그려낼 수밖에 없었을까. 그건 이 드라마가 나쁜 놈들 몇몇을 잡는 것으로 ‘적폐청산’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인물은 바뀌어도 ‘악의 시스템’은 여전히 공고하다. 그래서 이명득이 나간 자리에 이제 실세로 서게 된 반준혁이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팀이 해체된 이후 ‘범죄와의 전쟁’을 내건 검찰이 특수 3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이 ‘악의 시스템’이 인물만 바뀌어도 되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특수 3부는 이른바 실적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결국 노진평의 죽음은 이 ‘악의 도시’가 갖고 있는 공고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으로서 후반 남은 8부 동안의 싸움이 더 치열해질 것을 예고한다. 그것은 가지를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좀 더 깊은 뿌리를 건드리는 일이 될 것이니 말이다. 

적폐청산이 어려운 건 그 적폐가 외부의 적만이 아니라 내부의 적도 포함하고 있어서다. 그러니 그건 제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나쁜 녀석들>이라는 특수한 위치에 선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소외된 이들이기 때문에 안과 밖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게 된 것.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노진평의 죽음이 이해되는 건 그래서다. 그의 죽음은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사진:OCN)

‘나쁜 녀석들2’의 높은 수위, 드라마 시청자들은

돌아온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는 첫 회부터 상상 이상의 강렬함을 남겼다. 물론 OCN이 무비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것이 과연 드라마가 맞는가 싶을 정도의 유혈이 낭자한 폭력이 거의 첫 회 분량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영화 같은 액션이 주는 몰입감의 즐거움이 그 절반의 반응이라면, TV로 보기엔 폭력과 선정성이 너무 과하고, 반면 스토리는 전편에 비해 너무 앙상해졌다는 지적이 나머지 절반의 반응이다.

<나쁜 녀석들> 시즌1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은 건 다름 아닌 그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와 함께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시대정서 때문이었다. 워낙 지독하게 나쁜 놈들이 많으니 그들과 대적하는 더 나쁜 놈들(물론 속내를 들여다보면 착한 구석이 발견되지만)을 내세운다는 그 이야기 설정이 주는 흥미로움이 존재했다. 일종의 안티 히어로들이 갖는 당대에 대한 풍자적 시선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들 캐릭터들에 기꺼이 빠져들게 했던 것이다.

<나쁜 녀석들2>는 시즌1과는 달리 극명하게 나뉘는 두 조직의 대립상황으로 시작한다. 그 한 조직은 현성그룹 회장 조영국(김홍파)이 이 서원이라는 악의 도시에 구축해놓은 ‘적폐 세력’이다. 조직폭력배와 얽혀 있고 도시의 재개발 사업과도 연결된 이 그룹은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적폐청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또 하나의 조직 검찰과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조영국은 검찰의 이런 위협에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 인물이다. 

적폐청산을 이야기하는 서원지검장 이명득(주진모)에게 검찰 역시 적폐라고 말하는 인물이 바로 조영국이다. 그 누구도 검찰을 믿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이 악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성그룹과 검찰 사이에서 저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지지하는 세력이 나뉜다. 이 곳에 부임하게 된 노진평(김무열) 검사에게 신주명(박수영) 수사관이 재개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뉜 시민들의 모습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냐고 묻는 장면에서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지점이 드러난다. 노진평은 “법대로 하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신주명은 “그러면 저렇게 된다”며 재개발 지역에서 집을 잃고 밀려나는 이주민을 가리킨다. 

법은 이미 서민들의 편이 아니고 서민들 역시 정의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니 이렇게 대립하는 거대한 두 조직(어쩌면 똑같이 적폐라 불리는) 사이에서 당하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법보다 주먹이 된다. 첫 회에 그토록 몰아친 전쟁 같은 조폭과 검찰의 액션은 바로 서원이라는 악의 도시가 처한 상황을 직접 보여주기 위함이다.

선과 악은 더 선명해졌고 액션은 더 강렬하고 자극적으로 연출되어 차라리 영화에 가깝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남는 아쉬움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가 갖는 미묘한 긴장감 같은 것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 TV드라마가 갖는 인물들의 디테일한 이야기가 수위 높은 액션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러한 호불호가 나오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이런 아쉬운 지점들을 채워주는 건 첫 회부터 강렬한 캐릭터로 눈도장을 확 찍어놓은 양익준이나 오랜 만에 드라마 출연 자체로도 화제가 되었고 실제로도 묵직한 연기를 보여주는 박중훈 같은 배우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등장은 <나쁜 녀석들2>를 드라마가 아닌 영화로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쁜 녀석들2>는 무비드라마라는 그 특징에 걸맞게 영화와 드라마가 걸쳐진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가까운 수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아마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질감에서 비롯되는 일일 게다.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오히려 어떤 틀에 박힌 드라마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탄성이 나올 수 있는.(사진:OCN)

‘추리의 여왕’, 어째서 스릴러 아닌 휴먼드라마를 선택했나

“뒤통수치는 사람만 있는 거 아냐. 목숨 걸고 당신 구하려던 사람도 있어. 당신 인생 그렇게 후지지 않아.”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에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생매장될 위기에 처했던 호순(전수진)을 구해낸 완승(권상우)은 그녀에게 설옥(최강희)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마음을 줬던 사람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에 황망해하는 호순을 위로하는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끔찍한 살인사건이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이 갖고 있는 정서는 어찌 보면 너무나 편안하다. 물론 사람을 생매장하는 범죄자의 범죄 행각은 소름끼치는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그 자극적인 사건에 그다지 카메라를 집중시키지 않는다. 대신 호순을 구하기 위해 살인범의 동선을 추리하는 설옥과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고 호순을 구해내는 완승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그렇게 만조가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작은 섬에서 열린 바닷길로 두 사람이 호순과 연쇄살인범을 손수레에 싣고 나오는 장면은 금세 이 스릴러적인 장르를 코미디로 바꿔놓는다. 완승은 은근히 자신이 설옥을 구해줬다는 생색을 내고, 설옥은 뭐하러 구했냐고 툴툴 대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살인사건이 터지는 드라마지만 긴장감보다는 인물들이 추리과정에서 엮어지는 알콩달콩한 관계가 드라마 전체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면서 호순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완승과 설옥은 ‘사랑의 감정’의 정체에 대한 언쟁을 벌인다. 완승은 사랑은 알면서도 속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옥은 사랑이란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또한 은근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자기도 모르게 완승은 설옥에 대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고, 설옥은 완승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어떤 완강한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점도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밝혀내는 그 자체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는 양상이다. 그리고 사건 속에서 피해 당사자들이 겪는 어떤 인간적인 감정들이 <추리의 여왕>에서는 더 많이 드러난다. 바로 이전에 다뤄진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건의 끔찍함만큼 주목됐던 것은 남겨진 아이와 아들의 허물까지 덮으려 하다 결국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 부모의 그 감정들이다. 

<추리의 여왕>이 이러한 편안한 범죄물의 기조를 유지하는 건 KBS라는 보편적 시청층을 갖고 있는 플랫폼에 잘 어울린다. 끔찍한 사건들을 자극적인 틀로 보여주는 건 케이블에서는 통해도 지상파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고 사건 수사보다는 ‘추리’라는 요소를 넣어 훨씬 더 게임적인 재미를 부가하려 했다는 건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변화나 관계변화를 보여주려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늘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첫 번째 사건으로 등장했던 장도장(양익준)의 마약사건이나 그 이후에 등장했던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아내 살인사건은 어떤 긴박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옥의 시누이이기에 더 몰입될 수밖에 없는 호순의 납치사건은 사건 이야기보다 설옥과 완승의 밀고 당기는 부차적인 이야기들에 너무 많이 집중하다보니 긴장감을 전혀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러한 긴장감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려는 방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늘어지는 전개는 너무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편안한 전개는 나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시누이가 납치되어 생매장 당할 위기에 처하는 사건마저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닐까. 휴먼드라마의 방향성을 선택했다고 해도 작품은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추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계춘할망>, 청춘과 어르신에 대한 위로

 

나이가 젊다고 다 청춘이 아니듯, 나이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아마도 최근 들어 가장 많은 키워드로 나오는 단어가 청춘어르신일 게다. ‘청춘이 원치 않았던 힘겨운 현실 앞에 숨가빠하고 있다면, ‘어르신들은 꼰대가 될 것인가 어른이 될 것인가를 사이에 두고 갈등한다. 그리고 이 둘은 연결되어 있다.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 청춘들의 현재 혹은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 <계춘할망>은 이 서로 다른 두 세대 간의 따뜻한 소통이 느껴지는 영화다.

 

사진출처: 영화<계춘할망>

제목에서 보여지듯 <계춘할망>의 배경은 제주도다. 계춘(윤여정)은 이 할망의 이름이다. 어쩌다 손주 혜지를 홀로 키워온 계춘은 어느 날 아이를 잃어버린다. 평생을 아이를 찾아다니는 계춘은 어느 날 나타난 혜지(김고은)로 인해 이제 겨우 허리 펴고 잘 수 있는 행복감에 빠져드는데 그간 혜지가 살아온 삶이 심상찮다. 도둑질은 다반사고 조건만남을 빙자해 돈을 뜯기도 하는 불량한 아이들의 폭력 속에 무심히 살아온 그녀다. 그런 그녀를 계춘은 모든 걸 품어주는 제주의 바다처럼 안아준다.

 

사실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해 보인다. 결국 혜지가 계춘의 사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하지만 영화 속 디테일들은 이러한 당연한 수순의 이야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채워 넣었다. 그림에 재능을 보이는 혜지와 그녀의 아픔을 알면서도 무심한 척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미술선생 충섭(양익준), 청춘의 설렘을 무겁지 않게 영화에 얹어주는 제주소년 한(민호), 그리고 그녀의 삼촌으로 늘 계춘을 걱정하고 돌보는 석호(김희원) 같은 인물들은 영화에 충분한 온기를 더해준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그림자가 아니라 빛을 봐야 한다는 충섭의 말대로 이 주변 인물들은 혜지에게 빛을 던져주는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빛은 계춘이다. 손과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과 마치 옥수수수염처럼 빛이 바랜 머리칼은 그녀의 한 평생을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 그녀가 저 멀리 혜지가 걸어오는 것만 봐도 그 주름이 확 펴지고 달려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뭉클함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가 혜지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살면서 딱 한 명 네 편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내 새끼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맞을 정도로 계춘이 혜지를 대하는 모습은 바다그 자체다. 자신이 평생 물질을 하며 살 수 있게 해준 든든한 그녀의 편.

 

과연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계춘 같은 든든한 편이 있을까. 힘겨운 현실 속에서 그저 생존하기 위해 엇나간 삶을 살아내기도 하는 청춘들이다. 하지만 그 청춘들의 삶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질식하고 있을 뿐. 영화가 제주도까지 달려가 계춘이라는 할망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그래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다. 청춘들에게 저마다 든든한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어른.

 

계춘 같은 진정한 어른이 있어 혜지는 어둠을 비로소 빠져나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아픔은 자양분이 되어 미술이라는 예술로 승화되고 거기에는 고스란히 혜지의 계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과 사랑이 담겨진다.

 

<계춘할망>에서 김고은은 역시 단단한 연기력으로 혜지라는 청춘의 아픔을 때론 퉁명스럽게 때론 따뜻한 눈물로 그려낸다. 윤여정은 늘 도회적인 이미지라는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손끝의 주름 하나로도 어르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놀라운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또 한 명의 연기자는 김희원이다. 늘 악역으로만 나오던 그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줄지 누가 알았으랴.

 

김고은이라는 청춘과 윤여정이라는 어른이 만나 보여주는 건 청춘과 어른에 대한 위로다. 힘겨워도 세상에 한 사람 정도쯤은 자기편이 있다는 걸 청춘들에게 말해주면서, 동시에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어른의 삶이 얼마나 숭고한가를 들려준다. <계춘할망>은 그래서 이들이 서로 소통하는 과정만 봐도 눈물이 나는 영화다. 아파서가 아니라 너무 따뜻해서 나는 그런 눈물.

노희경 작가는 왜 하필 정신분열을 멜로 소재로 삼았을까

 

멜로 소재에 정신분열이라니. 우리 드라마사에 이런 남자 주인공이 있었던가. <괜찮아 사랑이야>의 장재열(조인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왔던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아프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투영된 환시를 볼 정도로 아프다. 심각한 폭력을 겼었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 의해 죽고 형이 대신 교도소에 갔다. 장재열의 집안은 그가 정신분열을 앓듯이 모두가 아프고 분열되어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대신 교도소에서 청춘을 보낸 형 장재범(양익준)은 그 억울함 때문에 동생인 장재범을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그에게서는 불쑥불쑥 내재된 공격성이 밖으로 표출된다. 어찌 보면 그는 심각한 폭력 행사를 해왔던 아버지를 닮았다. 출소한 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쩔쩔 못하게 만드는 그 모습은 아버지의 폭력이 여전히 계속 이 집안에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는 정신과 의사인 조동민(성동일)에 의해 치료받고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장재열의 어머니는 사실은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모른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해를 했지만 기억이 그런 사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 장재열이 아픈 것은 그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형을 희생시켰고 그것에 대한 깊은 죄책감으로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간다. 자책의 끝은 자살이다. 이런 문제적인 가정사에 정신분열이라는 심각한 상태를 가진 장재열이라는 남자주인공은 그래서 단순한 멜로의 주인공에 머물 수가 없다.

 

왜 하필 노희경 작가는 이런 정신분열을 앓는 남자 주인공을 세웠던 것일까. 노희경 작가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작품의 의도를 밝힌 바 있다.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을 했지만 본래 하고픈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사회적 편견에 대한 것이라는 것. 따라서 <괜찮아 사랑이야>는 최근 들어 사적 멜로가 점점 사라지고 점점 늘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멜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멜로로 접근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은 개발시대를 거치며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지표로 포장되며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되던 것이었다. 그 과정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거대한 사회적 트라우마도 있었고 비정규직의 문제에서부터 크고 작은 사회적 아픔들이 존재했다. 외형적인 경제성장으로 겉은 번지르르 해졌지만 속은 상처투성이인 우리 사회는 그래서 장재열식의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버지 시대의 폭력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그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 우리는 정치 현장이든 사회의 사건사고든 또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0년 연속 자살률 1위다.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파괴로 몰아가는 것일까. 자신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장재열은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사회의 안타까운 희생자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의 틀로 아버지의 문제를 살짝 저 뒤편으로 숨겨두고 있지만 장재열의 정신분열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폭력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건 장재열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의 문제 또한 아버지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애를 앓고 있다. 평생 어머니의 병수발을 받아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다.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다닌 것을 그녀는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혐오한다. 그녀에게 남성과 스킨십조차 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생긴 건 어머니의 불륜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근원을 따라가면 무기력한 아버지가 서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그리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이처럼 폭력적이거나 무기력하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이 가정의 비극이 시작된다. 한 가족은 집단적인 정신증을 앓게 되고 다른 한 가족은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간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겪었고 또 지금도 겪고 있는 사회적 병증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사회적 권위들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명량>이나 교황이 신드롬을 일으키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래도 노희경 작가는 이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장재열로 대변되는 우리들에게 괜찮다고 등을 다독인다. 장재열이 정신분열이라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의 주변에서 그를 위해 울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나마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파리한 얼굴로 힘겨워하는 장재열을 껴안아 주는 지해수와 주변인물들에서는 그래서 이 작가가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듯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사랑은 과연 사회적 치유를 얘기할 수 있을까. 흔히들 사랑타령이라 표현하며 사랑의 가치가 경제적 지표 같은 현실적 가치에 비해 사치일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는 그 사랑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할 유일한 길이라는 걸 말해준다. 물론 여기서 사랑은 사적인 사랑 그 이상의 소통이나 공감 같은 사회적 사랑을 포괄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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