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네 반찬’에서 노사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노사연이 신곡 발매를 하게 되어서 바쁜 일정 때문에 더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tvN 예능 <수미네 반찬>의 김수미는 노사연의 하차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진짜 바쁜 일정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사연의 하차는 어느 정도는 예견한 일이었다. 시청자들 중 일부가 그가 <수미네 반찬>에서 하는 역할이 없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었던 터다. 

사실 <수미네 반찬>에서 노사연은 별 다른 역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김수미가 만드는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고 리액션을 하는 일과, 빠른 김수미의 요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셰프들에게 레시피를 일일이 복기해주는 일 그리고 가끔 김수미와 옛 이야기를 주고받는 역할 정도가 그가 이 프로그램에서 했던 일들이다. 

액면으로 보면 <수미네 반찬>에서 김수미와 셰프들, 여경래, 최현석, 미카엘은 그 역할이 사제관계로 등장부터 확실히 정해져 있지만, 장동민과 노사연은 일종의 감초 역할이었다. 너무 요리 프로그램으로만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장동민과 노사연이 웃음을 줄 수 있는 포인트를 맡게 된 것. 

장동민은 역시 개그맨답게 재빨리 자기의 역할을 찾아냈다. 김수미의 다소 ‘불친절한 레시피’를 옆에서 중계방송하듯 풀어내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장동민의 멘트 하나하나에 김수미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동민은 김수미와는 물론이고 셰프들과는 밀고 당기는 캐릭터로 프로그램이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유지하게 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장동민이 이렇게 자기 역할을 찾아갈수록, 그 옆에 있는 노사연은 점점 하는 일이 없어보이게 되었다. 물론 ‘요리무식자’로서의 자기 캐릭터를 드러내며 웃음을 주는 포인트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그 상황은 어찌 보면 요리 프로그램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설정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무반주 노래 부르기’ 같은 그만의 역할을 시도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역시 일회적인 것일 뿐 그만의 캐릭터가 되긴 어려웠다. 

그런데 과연 진짜 노사연이 역할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어찌 보면 여기 출연한 모든 인물들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그가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건 ‘교관과 훈련병(?)’ 같은 다소 센 느낌의 그 요리교실 속에서 어딘가 푸근한 편안함 같은 걸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해도 큰 소리로 허허 웃는 그의 리액션은 김수미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의 강한 느낌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어찌됐듯 ‘바쁜 일정 때문에’ 노사연은 얼마 진행되지도 않은 <수미네 밥상>에서 하차하게 됐다. 그런데 그건 과연 득일까 독일까. 물론 프로그램을 더 빵빵 터지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인물이 투입되어 프로그램에 활기를 만들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모두가 빵빵 터트리는 그 센 분위기를 한껏 푸근하게 안아주는 그런 역할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사진:tvN)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이블랙·마리, 이것이 요즘 부부의 삶

등장부터가 심상찮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우리가 다른 부부들에게서 봐왔던 아침의 풍경이 뒤바뀌어 있어서다. 정규 편성되면서 새로 투입된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 이야기다. 알람소리에 먼저 일어난 남편 제이블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하고, 능숙하게 아침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 마리는 늦잠을 잔다. 늦게 일어난 아내에게 서둘러 아침상을 준비하며 권하는 남편의 모습. 

두 사람은 스타일부터가 남다르다. 보라색 레게 머리를 한 마리와 길게 기른 머리를 머리끈으로 묶은 제이블랙. 역시 이름난 프로 춤꾼들이라 스타일도 스웨그가 넘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부부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같은 크루의 동료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또 그것이 반전이다. 어딘지 거칠 것 같은 선입견을 갖게 되지만 이 부부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 아니 존댓말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서로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다. 

아침상으로 제이블랙이 내놓은 건 고수를 잔뜩 얹은 차돌박이 구이에 역시 고수가 들어간 라면 그리고 밥이다. 프라이팬 째로 놓고 먹는 그 밥상에 눈에 띄는 건 즉석 밥. 이 부부가 얼마나 실리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괜한 격식이나 격의에 얽매이지 않는 느낌이지만, 아내 마리가 고수를 좋아해 잔뜩 챙겨 넣은 요리에서는 제이블랙의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마침 그 날은 이들이 시댁을 찾아가기로 한 날이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자주 등장한 것이 시댁 찾아가는 날 며느리들이 뭘 입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다. 정규로 돌아와 방영된 첫 회에도 민지영이 어버이날 선물을 갖고 시댁에 갈 때 역시 조신하게 챙겨 입고 가려는 며느리의 고민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름 조신한 원피스라고 산 옷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시댁을 가기 위해 화장을 하는 마리와 그 시간동안 게임을 즐기는 제이블랙의 모습도 남다르다. 보통 그런 상황이면 으레 등장하는 게 ‘빨리 빨리’를 외치는 남편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아내의 모습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마치 각자의 삶의 방식이 달라도 당연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화장이 다 끝날 때까지 자기 시간을 즐기는 모습에서 이 부부가 가진 여유 같은 게 엿보인다. 

시댁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는 이 시댁도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워낙 제이블랙의 스타일이나 개성이 뚜렷해서 그 부모들도 이제는 익숙해졌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마리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다가왔을 리가 만무다. 살짝 등장한 인터뷰에서 시어머니가 말하듯, 처음엔 “정신 나간 애들” 같은 모습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개성이고 스타일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면 그 안에 담겨진 진짜를 볼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전지적 며느리 시점’으로 바라본 우리네 결혼 생활이라는 ‘이상한 나라’를 관찰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며느리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그 ‘이상한 나라’의 문제들이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이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의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건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이상한 부부’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던 그런 부부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삶의 모습. 

그런데 과연 이들 부부의 삶이 ‘이상한’ 걸까. 어쩌면 그 삶은 요즘 부부들이 꿈꾸는 삶일 수 있다. 오히려 과거 부모 세대들이 살아왔던 그 삶이 ‘이상한’ 것이고.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제이블랙과 마리 부부를 등장시킨 건 프로그램의 균형을 위해서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여도 그것이 요즘 부부들의 새로운 모습이고, 그런 변화된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사진:MBC)

‘윤식당’이 연 새로운 드라마틱 리얼리티의 세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의 사장 윤여정은 주방보조 정유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비와 함께 갑자기 몰려든 손님들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는 재료가 동나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어 문을 닫는 그 기분. 아마도 새로이 가게를 연 식당이라면 이런 날이 꿈 같을 수밖에 없을 게다. 윤여정이 한 말이 실감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실제상황이 아닌가. 

'윤식당(사진출처:tvN)'

돌이켜보면 <윤식당>이 이 발리의 작은 섬에 들어와 보낸 일주일은 드라마틱하기 그지없었다. 첫날 오픈하자마자 몰려든 외국인 손님들이 불고기 메뉴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줘 모두를 한껏 들뜨게 만들었지만, 바로 다음 날 접한 철거 소식에 아연실색했던 그들이었다. 화도 나고 허탈하기도 했을 그들은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다시 2호점을 여는 ‘기적’을 맛봤다. 

하지만 2호점을 열고도 손님 한 명 지나가지 않는 그 곳에서 <윤식당> 식구들은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간간이 오기시작한 손님들로 신메뉴 개발에도 들어가고 라면에 만두 그리고 치킨까지 성공시키며 마침 단비가 내려 몰려든 손님으로 이제는 ‘손님이 너무 많아’ 일찍 문을 닫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은 아침 댓바람부터 문도 열지 않았는데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고 패들보드가 인기를 끌면서 손님들도 덩달아 몰려들었다. 

정말 일주일도 되지 않은 그 짧은 기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그 사건들 속에서 식구들의 감정도 때로는 뛸 듯이 기뻤다가 때로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까워 했다를 반복했다. ‘드라마틱하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런 상황에 딱 어울리는 표현일 게다. 그러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밖에.

그런데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 리얼리티 예능이다. 대본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고 캐릭터 설정 같은 것도 애초에 없다. 그저 발리의 외딴 섬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한식당을 연다는 그 한 가지 미션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윤식당>이 보여준 며칠 간의 기록은 웬만한 드라마를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하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해외의 경우,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화는 드라마와의 경계를 허물만큼 실험적인 단계로까지 접어들었다고 한다. 어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진짜 동네에 있는 가게의 주인과 그 곳의 단골이 매일 들락날락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찍어 편집해 내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윤식당>이 이번에 보여준 세계는 바로 그 드라마틱 리얼리티 세계가 갖는 독특한 맛이다. 

드라마적 관점으로 이 세계를 보면 이 자그마한 섬은 금세 누구나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드라마의 배경이 되어주고, 그 안에 세워진 윤식당은 하나의 세트장 같다. 그리고 거기 들어와 가게를 운영하는 인물들도 하나하나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를 갖고 있다. 물론 그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그 캐릭터들이 주는 진정성과 공감대는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겠지만 <윤식당>이라는 드라마틱 리얼리티 세계에 들어온 인물들이 모두 배우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것은 마치 드라마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그 경계를 허무는 지점에서 배우들 역시 또 다른 경험과 역할을 부여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식당>은 어떤 면에서 보면 예능의 신세계를 연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지점에 생겨난 신세계. 그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세계다.

'민족대표 33인 폄훼 논란' 설민석을 위한 변명

지금 방송가와 출판가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설민석이 아닐까.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특유의 언변으로 역사강의를 하면서 대중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그는 이미 역사강사로서 잘 나가던 그 입지에 날개를 달았다. 그가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강연시장에서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어쩌다 어른(사진출처:tvN)'

너무 유명해진 탓일까. 최근 그는 그가 했던 강의의 내용들 중 과한 표현, 사실과는 다른 정보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을 폄하했다는 것. 그는 강의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장소인 태화관은 지금으로 치면 룸살롱 같은 곳이었다”며 “그들이 거기 모여서 낮술을 먹기 시작했다”고 했고, 그들이 그 곳에 모인 이유가 “마담인 주옥경과 손병희가 내연 관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에 얼마 되지도 않는 택시를 싹 불러서 그걸 타고 경찰에 자진 출두한 게 민족대표들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민족대표 33인 ‘대다수’가 3.1운동 이후 변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당시 민족대표의 유족들은 설민석의 이런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했고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역사학자들도 나서서 그가 강의 중 했던 발언들, 이를테면 태화관이 룸살롱이었다거나, 민족대표 일부가 변절한 것을 두고 ‘대부분’ 변절했다고 진술한 대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설민석은 SNS를 통해 자신이 이들을 폄훼할 의도는 없었다며 ‘룸살롱’이나 ‘마담’, ‘술판’ 같은 지나친 표현에 대한 꾸지람은 달게 받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걸 분명히 했다. 즉 태화관이 룸살롱은 아니었고 모두가 변절했다는 것 역시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당시의 민족대표 33인이 과연 제대로 대표로서의 적절한 행동과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사에 있어서 사실 그 자체의 왜곡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그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역사란 어느 시기에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해지는 ‘관점의 학문’이다. 즉 과거의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재 어떻게 바라보느냐 역시 중요하다는 것. 그러니 설민석이 사실 왜곡이나 지나친 표현에 대한 부분들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갖고 있는 비판적 시각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방송이나 강연은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이 왜곡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당연히 허용된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도 또 청중들도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그걸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건 설민석이라는 역사강사이자 방송인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이다. 그에게서 역사학자의 엄밀한 학자로서의 자세를 애초에 대중들은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효용성을 가졌던 건 지금의 역사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 국정교과서 논란이 그렇게 오래도록 이어져왔던 걸 생각해보라. 지금의 역사교육은 지금의 눈높이에 맞춰져 충분히 흥미롭게 이뤄지기는커녕 교과서조차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역사 자체에 대한 무관심을 방조하거나, 여러 관점을 생각해보는 역사교육이 아니라 한 가지 관점이 전부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이 지금의 역사교육이라는 것이다. 그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던 건 이러한 방치된 역사에 대해 최소한도 다시금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역사강사 설민석에게 기대하는 것은 역사학자들 수준의 엄밀함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지나치게 무관심이 방조되어 있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어찌 보면 건강한 것일 수 있다. 설민석이 끄집어낸 관심으로 역사학자들의 팩트체크가 이어지는 그 과정은 설민석의 역할과 역사학자들의 역할이 동시에 있어주는 그 지점이 지금의 역사교육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왜 김광규만 보면 다 짠해할까

 

시커먼 네 남자들이 파스타를 해먹는 광경을 보여주며 <삼시세끼>는 이들을 캐릭터화 했다. 항상 긍정적인 옥택연은 긍정이, 반대로 까칠하게 툴툴대는 이서진은 까칠이, 드라마 <파스타>에서의 캐릭터가 갓 밖으로 나온 것처럼 버럭 대는 이선균은 버럭이, 그리고 매사에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광규는 소심이라 이름 지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선명하게 다른 이들의 성격을 이처럼 각각의 캐릭터로 분류해 놓자 이들 사이에 의외의 케미들이 더 명쾌하게 그려졌다. 이를테면 버럭이 이선균과 소심이 김광규가 짝을 지어 파스타를 만들 때 마치 죽이 잘 맞는 셰프와 보조 같은 풍경이 그려졌고, 까칠이 이서진과 소심이 김광규가 함께 나란히 차 뒷좌석에 앉아 하품을 할 때도 그 성격적인 차이에 따라 다른 하품하는 모습이 비교되면서 웃음을 주었다.

 

또 김광규와 이서진이 수확으로 번 돈으로 사들인 선풍기를 틀어 놓고 방에 늘어져 있을 때, 불 담당 옥택연이 옥수수를 구워 먹는 장면에서는 그의 긍정이 캐릭터가 제대로 그려졌다. 즉 불이 너무 세서 한 쪽은 타고 다른 한 쪽은 익지 않은 옥수수를 들고 그 중간 줄을 먹으면서 여기가 제일 맛있다고 말하며 웃는 옥택연의 모습은 딱 긍정이캐릭터였던 것.

 

실제로 이 캐릭터들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만들고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세끼 집에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까칠이 이서진은 그 차도남의 성격 때문에 이 시골 삶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게 그려졌었다. 그 까칠하고 귀차니스트이지만 그렇게 늘 투덜대면서도 또 할 건 다 해내는 성격은, 순사 나영석 PD와 밀당하게 해줌으로써 이 시골 삶에서의 적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옥택연은 긍정이란 캐릭터 그대로 매사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인물. 어려울 것 같은 요리 미션도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일단 만들어보는 모습은, 그래서 폭망한 요리 때문에 웃음의 결과를 주기도 했고 때로는 의외의 성공에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 여름 땡볕 아래서도 늘 가마솥 앞에서 불을 피우는 그는 그 무한긍정을 넘어 심지어 옥빙구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끼 집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소심이 김광규는 그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들어오기보다는 늘 옆자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보조로는 형이 최고인거 같아라고 한 나영석 PD의 말처럼 그는 세끼 집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다들 잠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혼자 밭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어떤 짠함 같은 걸 주는가 보다. 게스트로 찾아온 손호준도 또 이선균도 김광규를 짠해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읍내에 나갔다가 동식이가 광고 제의까지 받았다는 얘기에 이서진은 광규 형도 못 찍은 CF를 동식이가 먼저 찍어?”하고 말했다. 김광규는 환하게 웃으며 동식이에게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금 씁쓸한 표정이었다. 세끼 집 남자들은 그날 밤까지 이 동식이와 김광규를 비교하며 웃음을 지었다.

 

사실 뒤늦게 합류한 김광규의 모습은 이서진이나 옥택연처럼 전면에 드러나진 않는다. 그는 이서진과 옥택연보다 나이 많은 형이지만 세끼 집에서는 늦게 들어온 막내로 불리기를 자처한다. 그렇게 전면에 나와 있진 않지만 늘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김광규. 그래서 소심이라고 불려도 그가 있어 세끼 집의 훈훈한 정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이렇게 <삼시세끼>가 캐릭터화한 긍정이, 까칠이, 버럭이, 소심이는 저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 슬픔, 소심, 까칠 같은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두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슬픔이는 늘 일을 망치는 것만 같고 그래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슬픔이 해주는 역할이 없었던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김광규는 당장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세끼 집 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누군가의 요리가 만들어질 때 그 심부름을 기꺼이 해주면서 훈훈해지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처럼 그 역할이 가려져 있지만.



<무도> 음모론, 이런 재미없는 소설은 왜 퍼질까

 

<무한도전> 식스맨에 장동민이 내정되어 있다는 찌라시는 한 보도매체에 의해 단독으로 기사화됐다. <무한도전>측은 펄쩍 뛰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정되어 있었다면 <무한도전>은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셈이 된다. 아무리 찌라시라지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루 간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처럼 보이지만 이런 근거 없는 찌라시의 풍문이 버젓이 단독기사로 올라온다는 사실 뒤안길에는 섬뜩한 면이 있다.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가 아예 사실처럼 둔갑되어 언론에 단독보도 되는 상황. 이건 정상적일 수가 없다. 만일 누군가 사실과 다른 그 풍문의 당사자로 지목된다면 그건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소셜포비아>는 이 네트워크로 얽혀 있는 우리 사회가 가진 집단적인 폭력의 양상을 다룬 영화다. 거기에는 당사자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누군가 믿고 싶은 그럴 듯한 글에 호도되는 군중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모여 진실을 파헤친다는 빌미로 한 사람을 파괴시킨다. 그의 신상을 털어버리는 건 고스란히 알몸으로 세상에 던져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적 살인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이 증권가 찌라시에 어떻게 풍문이 사실로 변신해 올라오는가 하는 그 과정을 담아낸다. 언니가 상류층 자제와 스캔들을 일으키자 동생인 서봄(고아성)은 시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역으로 풍문을 퍼트린다. 그 풍문을 통해 언니가 상류층 자제를 쫓아다녔던 사실은 역전된다. 찌라시라는 게 얼마나 풍문에 민감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이용되기 쉬운가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태임과 예원이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 중 벌어진 반말과 욕설 사건은 무수한 풍문들을 만들었다. 이태임의 욕설 수준이 입에 담기조차 힘든 것이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풍문은 속성상 자극적일수록 더 군중들의 귀에 꽂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사람의 귀로 전달되면서 마치 사실처럼 호도된다. 여기에 언론이 나서서 현장검증까지 해서 못을 박으면 그건 확실한 사실로 둔갑한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은 매장될 수도 있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내용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다.

 

풍문이 사실화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언론이다. 언젠가부터 언론은 정확한 팩트를 검증하기에 앞서 우선 자극적인 내용을 단독보도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인터넷이 뉴스의 장이 되면서 속보전이 가속된 결과다. 과거에는 찌라시로 대변되는 카더라 통신들과 언론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선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중들은 그래서 그저 믿고 싶은 바를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풍문들은 주로 대중문화 관련된 이슈들 속에서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분야 이를 테면 정치나 경제 같은 분야의 이슈들에 카더라 통신이 없다는 건 착각이다. 대중문화 분야는 이를테면 디즈니랜드 효과를 만들어내는 지점일 뿐이다. 대중문화의 소식들이 풍문으로 가득 차 있어서 믿을 수 없게 보여지게 만드는 진짜 의도는 그 바깥의 소식들을 진짜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미 소셜포비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소셜포비아는 풍문이 촉발시키고 언론이 사실화해버리면서 이에 쏠린 군중들이 확산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언론이다. 그 많은 풍문들 중 하나를 콕 집어내는 역할을 해주는 게 언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위에서는 점잖은 글들을 쓰면서도 저 아래에서는 신입 인턴 기자를 앞세워 풍문을 단독 보도시키는 그런 일들도 한다.

 

<무한도전> 식스맨 장동민 내정설은 한 마디로 소설이다.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은 옛날이라면 먹힐지 몰라도 요즘처럼 리얼리티쇼화 되는 예능에서는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고 나아가 프로그램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제 10주년을 맞은 <무한도전>이 뭐가 아쉬워 이런 무리수를 둔단 말인가.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런 내정설을 누군가 만들어 배포한 사람들이 어떤 음모를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 역시 풍문의 시대를 살아가며 생겨난 못된 습관이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언론의 역할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동상이몽>에서 유재석 김구라의 역할은 뭘까

 

유재석과 김구라가 함께 한다는 건 SBS 파일럿 프로그램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가 가진 가장 큰 이슈였다. 유재석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도 화제가 될 수밖에 없지만 김구라와 합을 맞춘다는 건 더 큰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이러한 대중들의 관심을 이미 그들도 알고 있다는 듯, 유재석과 김구라는 오프닝에서부터 서로에게 달라져야 한다고 직설을 내놓았다. 김구라는 유재석에게 박명수, 하하를 버리라고 했고, 유재석 역시 김구라도 이제 바뀌어야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방송에 들어가면서 유재석과 김구라가 왜 이 프로그램에 꼭 필요한지는 점점 애매해졌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사연을 보내온 부모와 자식이 주인공이다. 딸의 화장이 너무 심하다며 걱정하는 엄마와 모두가 다 화장을 하고 다닌다며 그런 엄마가 이해 안되는 딸. 딸과 말다툼이 싫어 메시지로만 대화를 해온 엄마와 얘기를 건네고 싶어도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딸. 형제지간에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아들과 오히려 그 아들이 형의 공부를 방해하고 있다는 엄마. 이들이 사실상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다.

 

프로그램의 재미는 부모와 자식의 서로 다른 관점으로 찍혀진 관찰카메라를 비교하는 지점에서 나온다. 부모의 관점으로 보면 자식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식의 관점으로 보면 부모의 문제가 드러난다는 것. 두 번째 사연으로 나왔던 소통 없는 엄마와 딸의 문제는 <동상이몽>의 재미가 어디서 나오는가를 잘 말해준다.

 

엄마의 관점에서 본 관찰카메라는 딸이 그저 방에만 콕 박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하루 종일 파김치가 되도록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엄마와는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이어서 본 딸의 관점에서 본 관찰카메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사실 딸은 계속해서 엄마와 소통하고 싶어 했지만 엄마가 그것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 동생과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엄마의 뒤편에서 딸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런 관점의 차이를 같이 들여다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는 것은 <동상이몽>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와 의미가 있다는 걸 증명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굳이 스튜디오에 유재석과 김구라를 MC로 세워가며 할 필요가 있었을까. 온전히 사연의 인물들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김구라는 거기에 주석을 다는 일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동상이몽>은 관찰카메라 형식을 통해 일종의 해결책을 보여주는 관계 솔루션 프로그램이 그 핵심이다. 사람 간의 관계는 그 안에 있을 때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찰카메라를 통해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관계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같은 사안이지만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한 동상이몽의 상황에서 그 관계의 실체를 함께 발견하는 일인 공감을 통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주기 마련이다.

 

<동상이몽>은 같은 사안에 대한 다른 관점의 관찰카메라를 비교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괜찮은 프로그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형식 속에서 유재석과 김구라의 확실한 역할을 찾아내는 데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동상이몽>은 그 기획적인 포인트가 가진 가치로서 충분히 정규화해도 될 만한 프로그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러려면 좀 더 유재석과 김구라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의>와 <야왕>, 뒤바뀐 남자 캐릭터 왜?

 

<마의>에서 백광현(조승우)을 보면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하고 노래 부를 법한 캔디 캐릭터다. 어린 시절 버려져 마의로서 자라오지만 그가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주변에 많은 인물들이 그를 도와주고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백광현은 여복(女福)을 타고 난 인물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백광현 바라기일 정도다.

 

'야왕(사진출처:SBS)'과 '마의'(사진출처:MBC)

어린 시절부터 백광현을 그리워했던 강지녕(이요원)은 물론이고, 숙휘공주(김소은) 역시 그에게 연심을 품고 뒤에서 모르게 그를 돕는다. 그로 인해서 병을 고친 서은서(조보아) 역시 마음 한 구석에 그를 품고 사라진 그를 찾아다닌다. 사암도인의 제자였던 소가영(염현경)은 연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늘 백광현 옆에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인물이다. 즉 <마의>는 백광현이라는 남자 캔디 주변에 그를 사랑하거나 돕는 여성들이 배치된 드라마다.

 

이렇게 된 것은 드라마의 구조상 고난에 빠진 주인공과 그를 돕는 인물들을 병치함으로써 드라마가 균형을 잡히게 하기 위함이지만, 또한 달라진 남녀 관계의 세태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활동도 많아진 여성들과 상대적으로 위축된 남성들은 그 남녀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주도적인 여성과 어딘지 소극적인 남성. 한 때는 이것이 <대장금> 같은 여성 영웅의 성장과정을 공감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마의>의 남자 캔디 백광현은 그 역전된 남녀 관계가 점점 고착화되어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마의>의 경쟁작으로 등장한 <야왕> 역시 역전된 남녀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야왕>은 퍼스트레이디가 되는 주다해(수애)와 그를 몸 바쳐 뒷바라지 하지만 버림 받고 복수를 꿈꾸는 하류(권상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고아원에서 자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주다해를 위해 하류는 아낌없이 모든 걸 주는 인물이다. 주다해가 자신을 어린 시절부터 괴롭혀온 양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했을 때 그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려하기도 하고, 그녀의 학비를 벌기 위해 호스트바에서 몸을 팔기도 하는 인물이 바로 하류다.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70년대 전형적인 신파극 속에서 본 적이 있다. 남편 뒷바라지하기 위해 몸을 바치지만 결국은 남편에게 버림받는 그런 여성상. 헌신적인 여성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전형적인 신파극 속의 인물들 말이다. 78년에 김수현 작가에 의해 빛을 본 <청춘의 덫>은 99년에 다시 만들어지면서 심은하의 그 유명한 대사 “당신 부숴버릴거야!”로 우리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런 여성 신파를 뒤집어 놓은 <야왕>의 하류라는 캐릭터 역시 역전된 남녀 관계의 일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야왕>에서 주다해가 끝없는 욕망의 질주를 하는 능동적인 여성이라면, 하류는 그녀에게 종속된 남성이다. 과거 여성 신파극에서 그 여성이 남성에게 복수를 감행한 것처럼, 이제 하류는 주다해를 향한 헌신이 복수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런 남녀 관계의 역전은 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여성 시청층에 주도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시각이 그 안에는 들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나간 듯한 남자 캔디, 남자 신파는 확실히 작금의 남성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지금은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가 아닌가. 남성성의 시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여성성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남성들이 점점 사회적 약자가 되고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앞으로도 많은 드라마를 통해서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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