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하는 계모, 출생의 비밀, 신파... ‘하나뿐인 내편’의 진부한 현주소

시간을 한 30년 넘게 되돌린 것 같다. KBS 새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은 아주 오래된 신파극의 설정이 고스란히 재연되어 있다. 병에 걸린 아내를 어떻게든 살리려 돈을 빌리러 갔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두 차례의 살인과 강도, 결국 아내는 사망하고 살인죄로 감옥에 가게 되는 현대판 장발장 강수일(최수종). 그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해 고아원에 보내진 그의 딸을 자신의 딸처럼 키우는 김동철(이두일). 그 집안에서 알게 모르게 구박을 받으며 자란 콩쥐 혹은 신데렐라 김도란(유이), 도란을 구박하고 친딸인 김미란(나혜미)만을 챙기다 결국 그 출생의 비밀을 터트리는 소양자(임예진), 그 충격에 집을 나간 도란을 찾아 나섰다가 사고로 김동철이 죽게 되자 그 집에서 쫓겨나 울며 걸어가는 도란을 우연히 발견해 뒤따라가는 친아버지 강수일...

<하나뿐인 내편>은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아침드라마의 그 흔한 설정들이 뒤범벅되어 있다. 그래서 단 2회가 방영됐을 뿐이지만, 시청자들은 대충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로 흘러갈 지를 가늠한다. 결국 아버지임을 숨긴 채 김도란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돕는 강수일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신파 설정), 김도란과 재벌2세 왕대륙(이장우)이 조금씩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김도란의 친아버지가 살인자였다는 사실은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될 것이다(출생의 비밀 설정).

물론 이런 예측은 말 그대로 예측일 뿐이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 전개가 나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드라마의 대사나 연출을 보면 그런 기대감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하나뿐인 내편>에는 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혼잣말을 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사실 연극적인 연출에서 시작한 독백 혹은 방백은 최근 들어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너무나 현실감을 깨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야 그럴 수 있지만 세상에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혼잣말은 이 드라마의 대본이 너무나 이야기 전달에만 집중하고 있는가를 잘 드러낸다. 인물의 대사와 행동들이 겹쳐지며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이 그 상황을 이해하게 해야 하지만, 이 드라마는 아예 그걸 인물의 혼잣말로 설명한다. 물론 한두 차례 꼭 필요한 상황에서야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드라마는 아예 그것이 하나의 작법처럼 반복적으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작품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가 너무나 전형적이다. 죄책감과 가족에 대한 헌신이 더해져 유일한 ‘내 편’인 딸을 위해 뭐든 해주려 할 강수일이 그렇고, 외로워도 힘들어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 딸 김도란이 그렇다. 왕대륙은 너무나 전형적인 재벌2세의 모습 그대로다. 2회 만에 뒷목 잡게 만드는 소양자 같은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야기 전개도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기보다는 극적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도적 작가의 개입이 너무나 많다. 도란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금옥(이용이) 같은 인물이 등장하게 되면서 김동철은 도란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려 하고, 그 일이 사단이 되어 소양자가 그 출생의 비밀을 터트려버린다. 그 과정은 굉장히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어딘가 의도적인 흐름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다보니 연기도 주목되지 않는다. 연기도 어느 정도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어야 돋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가족드라마로 들어온 최수종도, 너무 주말드라마에 많이 나와 그 캐릭터가 반복되고 있는 듯한 유이도, 또 매력을 좀체 느끼기 어려운 이장우도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 도대체 <하나뿐인 내편>이 하려는 이야기는 뭘까. 그건 이미 제목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세상에 내편 하나 있으면 누구나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신파와 출생의 비밀이 버무려져 결국 그 귀착점은 다시금 오래 전부터 전가의 보도처럼 메시지로 등장했던 ‘가족주의’다. 물론 가족드라마가 ‘가족주의’를 드러내는 건 어쩌면 태생적인 한계일 수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지금의 달라진 우리네 가족의 양태 속에서 어떤 고민 같은 게 담겨져야 하는 게 아닐까. 

만일 그 가족주의가 혈육의 끈끈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신파적 설정으로 그려진다면 <하나뿐인 내편>은 그나마 있는 편들도 잃을 지도 모른다. 그건 너무 알고 있는 이야기, 그것도 아침드라마를 구성하는 달라진 시대와 맞지 않는 틀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KBS 주말드라마가 지금껏 유지되어온 힘은 가족드라마의 틀을 지켜내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우리 시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족의 변화를 담아내고 고민해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별 기대감이 사라진 채 틀어놓고 있는 아침드라마와 다를 게 뭔가.(사진:KBS)

‘우리가 만난 기적’, 김명민이라 더 기대되는 기적들

나는 도대체 왜 나인가. 그것은 내 육체일까 아니면 내 영혼일까. KBS 새 월화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은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 설정을 갖고 있다. 이름과 생일이 같지만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남자. 한 남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냉혹한 사회생활로 신화은행 최연소 지점장이 된 송현철(김명민)이고 다른 한 남자는 고생 고생해 이제 겨우 은행 대출로 중국집 만호장의 주인이 된 송현철(고창석)이다. 두 사람은 같은 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신의 실수’로 죽어야 할 지점장 송현철 대신 만호장 송현철이 죽게 된다. 육체가 사라져버리자 만호장 송현철은 지점장 송현철의 육신을 빌어 겨우 살아나고, 그래서 벌어지는 일이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이야기다. 

육체는 지점장의 몸을 갖고 있지만 영혼은 만호장 주인의 것이 된 송현철. 이 공유된 육체와 영혼은 그래서 의도치 않은 ‘두 집 살림(?)’을 하게 된다. 최근 들어 많이 등장한 영혼 체인지 같은 판타지 설정이지만 이 드라마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건 이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이 너무나 상반된 면을 갖고 있고 그래서 부딪치게 되는 가치관과 정체성의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렇게 다시 태어난 송현철은 지점장의 화려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만호장 주인의 소박한 삶으로 돌아갈 것인가. 

다시 태어난 송현철 앞에는 그래서 두 개의 상반된 삶이 놓여진다. 하나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저 돈의 세계의 이전투구 속에서 냉혹해도 성공한 삶이고, 다른 하나는 굉장히 부유하거나 성공하진 못했어도 노력한 만큼 얻은 작은 성취와 행복을 가진 삶이다. 두 삶에서 당연히 후자가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디 현실과 부딪쳐 생겨나는 욕망들이 그걸 쉽게 결정할 수 있게 해줄까. 

평생 조연화(라미란)만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말하며 또 그렇게 살아왔던 만호장 송현철이지만 막상 지점장 송현철의 아내인 선혜진(김현주) 같은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된 그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사람 일이란 알 수 없어 지점장 송현철과의 결혼 생활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선혜진에게 이 정 많고 착한 만호장 송현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눈에 들어오는 육체의 아름다움 또한 그를 흔들어댈 수밖에.

즉 다시 태어난 송현철은 자신의 달라진 육신과 영혼 사이에서 그 정체성을 두고 갈등하게 되는 동시에, 두 집이 보여주는 외적인 것들과 내적인 것들 사이에서도 갈등하게 된다. 부유한 집, 성공한 삶, 아름다운 아내 같은 누구나 선망하는 외적으로 보이는 남자의 삶과 부유하진 않아도 행복한 삶,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아내 같은 내적인 가치들이 빛을 발하는 남자의 삶.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찌 보면 한 편의 ‘인생극장’ 같은 비현실적인 판타지 설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주는 건 역시 김명민 같은 연기자의 내공 덕분이다. 일과 가정 모두에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차가운 모습을 보이던 그가,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친구 딱풀이(최병모)앞에서는 의외로 친근한 모습을 보이는 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김명민의 남다른 연기력의 공이 크다. 특히 염을 하다 벌떡 일어난 송현철의 표정을 보여주는 김명민의 연기는 압권이다. 거기에는 기묘하게도 김명민의 얼굴과 고창석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영혼이 엉뚱한 육체에 들어간다는 판타지 설정을 무겁지 않은 코미디로 엮어내면서도, 동시에 그 설정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은 과연 육체인가 영혼인가를 묻는 질문에 도달한다는 것. 나아가 그것이 우리가 선택하는 두 가지 삶, 즉 외면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삶과 내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키는 드라마의 발랄한 문제의식도 김명민이라는 든든한 배우를 만나니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향후 그가 보여줄 기적이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걸까.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KBS)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이라는 배우의 탄생

어떤 영화는 실제 주인공을 숨겨야 그 감동의 효과가 커지기도 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 그런 영화다. 이 영화가 시작됐을 때 가장 전면에 나선 배우는 역시 이병헌이었다. 한 때는 동양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한물 간 전직 복서로 스파링 파트너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조하 역할을 이병헌은 천연덕스럽게도 능수능란하게 소화했다. 

사생활 문제로 질타를 받았던 이병헌이지만 적어도 연기에 있어서만큼 관객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였다. <내부자들>의 3류조폭 안상구 역할을 통해서도, <밀정>에서 특별출연이지만 정채산 역할로 확실한 존재감을 세운 면에 있어서도 또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화친을 강변하는 최명길 역할로서도 그는 연기의 공력을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그것만이 내 세상>의 조하라는 캐릭터는 그간 그가 보여줬던 카리스마의 정반대편에서 힘을 쪽 뺀 삼류인생 연기로 이병헌은 더욱 주목되었다. 버림받고 두드려 맞으며 홀로 세상과 사투하며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제는 꿈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가는 조하라는 캐릭터는 이병헌의 연기 스펙트럼이 갈수록 넓어진다는 걸 확인시켰다. 

하지만 이병헌이 전면에 나와 있어 이 영화가 ‘그의 세상’처럼 홍보되었지만, 실상 영화를 보고나면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다른 데 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는 바로 조하의 동생 역할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홍보에서도 의도적으로 그 존재를 숨겨놓은 이 인물은 바로 그것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전율하게 만든다. 

대사하고 해봐야 “네-” 정도가 대부분인 진태를 연기하는 박정민은 마치 진짜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킬 정도로 이 인물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어눌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이 같은 천진함으로 밝은 웃음 같은 걸 함께 주는 인물. <그것만이 내 세상>은 어쩌면 박정민의 ‘연기 세상’이 이제 드디어 꽃을 피웠다는 걸 알리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가 저 배우가 누구야? 하고 질문을 던지고 나면, 그가 바로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옆자리에 든든하게 서 있던 송몽규 역할을 연기했던 바로 그 배우라는 걸 되새기게 된다. 그 때도 사실 동주 역할을 했던 강하늘이 전면에 나와 있어 살짝 가려져 있었던 배우가 바로 박정민이었다. 그러고 보면 박정민은 이제 강하늘이나 이병헌 같은 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연기를 해오며 자기만의 연기 영역을 확보해오고 있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실로 이병헌이 깔아놓는 희비극 위에서 박정민이 깊은 감동의 연기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박정민이 선보인 피아노를 치는 연기는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다. 물론 연출의 힘을 더해 완성된 것이긴 하지만, 실제 연주를 방불케 하는 피아노 연주 연기와 더불어, 서번트 증후군 특유의 독특한 동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로서는 그 연주 무대만으로도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박정민은 주어진 재능도 정말 특별한데 노력과 성실함도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단한 배우다.” 함께 연기한 이병헌의 이 말이 그저 던지는 상찬이 아니라는 걸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게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동주>에서 드디어 자기 존재를 드러낸 박정민이 이제 자기 세상을 활짝 열어젖힌 작품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사진: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리턴’의 숨 막히는 몰입감,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다소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가 없다. SBS수목드라마 <리턴>에 쏟아지는 관심은 호불호로 극명하게 나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몰입감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범죄를 다루는 장르물이 새롭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거기에 변호사와 열혈형사가 공조하는 내용 역시 특별하다 얘기하긴 어렵다. 하지만 <리턴>에는 이 익숙한 소재들에도 시선을 잡아끌게 하는 힘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에게서 나온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주인공인 최자혜(고현정)가 드라마에 중요한 동력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오태석(신성록), 김학범(봉태규)가 주축인 악역들이다. 드라마는 바로 이 오태석과 김학범 그리고 서준희(윤종훈)와 강인호(박기웅) 4인방의 갖가지 문란한 행위와 폭력 그리고 결국 이어지는 살인사건과의 연루로 인해 힘을 얻고 있다. 

그 촉발점은 이들과 아주 오래 전부터 인연을 이어왔고 강인호와 내연관계까지 가졌던 염미정(한은정)의 죽음이다. 아직까지 누가 그를 살해했는가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어느 날 김학범이 오태석에게 보낸 차량 트렁크에서 발견된 그의 사체는 이들을 모두 곤경에 빠뜨린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염미정과 연관되어 끄집어져 나올 수도 있는 악행들 때문에 그들은 신고를 하지 못한다. 대신 염미정의 사체를 묻어버리고, 그의 살해용의자로 지목되어 검거된 강인호를 희생시키려 하는데, 거기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평소 자신을 챙겨줬던 강인호를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한 서준희가 자수를 결심하게 되고 그걸 막기 위해 오태석과 김학범이 나서는 과정에서 오태석은 서준희를 차에 태워 벼랑 끝에서 밀어 버린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그렇게 불타버린 차 속에서 나온 사체가 서준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서준희가 살아있으며 그를 돌보고 있는 인물이 의외로 이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독고영(이진욱)의 파트너인 김동배(김동영)라는 걸 보여준다. 

<리턴>은 그래서 아직까지 이 사건이 어떻게 해서 벌어지게 되었고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양상을 보여준다. 아직도 누가 염미정을 살해했는지 알 수 없다. 또 동배가 어떤 일로 오태석 일당과 연루되어 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궁금증들이 하나씩 밝혀져 나가는 과정이 <리턴>이 주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지루하게 흩어지지 않으려면 전체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동력이 필요하다. 그 힘을 발휘하는 건 다름 아닌 오태석 일당들이다. 특히 오태석과 김학범은 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어내는 악역임에 틀림없다. 오태석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섬뜩한 느낌을 주고, 김학범은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폭력성으로 보는 이들의 불안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공분으로 인해 동력을 얻기 시작한 드라마는, 그 대척점으로서 이들과 대적해 가는 독고영의 존재감을 조금씩 키워내고 있다. 오태석 일당은 그들의 실체에 조금씩 접근해오는 독고영을 일단의 무리를 시켜 그 차량마저 전복시키는 위협을 가하지만 독고영은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서준희의 사체를 검증하지 않고 장례를 치르려 해온 오태석 일당에 맞서 결국 검시를 통해 그 사체가 서준희가 아니라는 걸 밝혀낸 독고영은 향후 이 드라마가 가질 팽팽한 대결구도를 예감케 만든다. 

무엇보다 <리턴>을 기대하게 하는 건 이들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다. 신성록이야 본래 젠틀맨과 범죄자의 양면을 오가는 연기를 자신만의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바 있지만, 코미디 연기로 더 각인되어 있던 봉태규의 살벌한 존재감은 확연히 눈에 띈다. 또한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한 이진욱이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근성의 형사로 열연하는 모습도 주목할 만하다. 

<리턴>은 확실한 몰입감을 주지만 그 자극적인 전개가 불편함을 남기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건 다분히 범죄자의 시선으로 진행된 전반부의 이야기 전개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향후 독고영과 최자혜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이 전면에 나서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이런 불편함을 다소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사진:SBS)

'투깝스', 조정석의 하드캐리 혜리 연기력 논란 잠재울까

MBC 새 월화드라마 <투깝스>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캐릭터가 절대적이다. 웃음기 없이 진지한 강력계 형사. 게다가 형이나 다름없는 파트너 조항준(김민종)이 살해당했다. 그러니 그 범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는 인물이 바로 차동탁 형사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다. 그래서 <투깝스>는 이 인물에 이른바 ‘깝’ 캐릭터를 집어넣는다. 감방에 있을 때도 조항준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던 사기꾼 공수창(김선호)과 의문의 추격자들을 피해 강물로 뛰어들었을 때 차동탁의 몸에 공수창이 빙의되는 것. 그래서 사건 해결을 위해 진지하기만 한 차동탁이라는 인물과 어딘지 뺀질이의 느낌이 강한 공수창이 동거하는 기묘한 캐릭터가 탄생한다. <투깝스>라는 제목은 바로 이 두 인물이 한 형사의 몸에 공존하는 상황을 통해 사건해결을 위해 공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정석은 역시 진지함을 통해 웃음을 주는 코미디 연기의 달인이라는 것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잔뜩 흥분하거나 진지한 얼굴을 보이지만 어딘지 그것이 드러내는 어린아이 같은 면면들이 은근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이제 ‘깝’ 캐릭터까지 겹쳐지면 조정석의 진가인 진지함과 가벼움의 공존을 통한 독보적인 코미디 캐릭터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투깝스>의 이야기는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전형적인 형사물이고 그 안에 복수코드가 담겨져 있으며, 벌써부터 이어지기 시작한 송지안(혜리) 기자와의 멜로가 예고되어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차동탁과 송지안이 서로 툭탁대며 이어지고 그것이 문득 설렘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니 <투깝스>가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으로 내세울 건 결국 캐릭터다. 같은 이야기라도 캐릭터가 독특하다면 새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동탁은 일단 충분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를 연기하는 조정석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고 실제로 첫 회만으로도 그런 매력은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드라마가 한 배우의 힘에 의해 온전히 움직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차동탁의 상대 역할인 송지안을 연기하는 혜리는 첫 방송부터 연기력 논란이 나오고 있다. 기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서 송지안을 보기보다는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를 더 많이 떠올리고 있어서다. 

워낙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남겨서인지 혜리의 새로운 연기는 그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인한 기자와 코믹한 캐릭터 사이를 오가야 하고, 또한 일과 함께 사랑을 연기해내야 하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캐릭터가 바로 송지안이다.

이 부분은 <투깝스>가 향후 넘어서야 할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조정석의 하드캐리가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혜리가 첫 회에서 갖게 된 연기력 논란은 스스로도 또 이 드라마도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았다. 과연 <투깝스>는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향후가 궁금해진다.(사진:MBC)

김원해에 이어 정상훈, ‘SNL’의 숨겨진 배우들

우리에게 그저 tvN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의 ‘양꼬치 앤 칭타오’로 알려진 코미디 배우 정도로 여겨져 왔던 정상훈. JTBC 금토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는 그의 배우로서의 새로운 면면이 있다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줬다. 코미디 연기에도 어떤 수준 이상의 레벨이 있다는 걸.

'품위있는 그녀(사진출처:JTBC)'

그가 이 드라마에서 맡은 우아진(김희선)의 남편, 안재석이라는 역할은 사실상 국민비호감이 될 만한 캐릭터다. 딸의 미술선생과 바람이 나고 결국은 그 사실을 들켜버렸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자신은 그 내연녀와 헤어질 생각이 없고 그렇다고 아내인 우아진과 이혼할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인물. 그래서 우아진을 복장 터지게 하는 그런 인물이다. 

사실상 안재석 같은 캐릭터는 이 드라마가 신랄하게 비판해내려는 ‘도덕적 해이’의 수준이 불감증 단계에 이런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안재석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안태동 회장(김용건)이 해왔던 ‘도덕적 해이’의 삶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도 아무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면서다. 안재석이라는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품위 있는 그녀>는 이런 인물에 대한 비판을 심각한 사회극으로 담기보다는 냉소가 곁들여진 풍자극으로 담아내려 했다. 안재석은 그래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뒷골을 잡게 만드는 인물이지만, 어딘지 그 황당함과 코믹함이 웃음을 터지게 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안재석의 행태를 보며 그 황당함에 실소하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부조리한 저들의 삶에 다가가게 된다. 

흥미로운 건 정상훈이라는 배우가 이 안재석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연기해냈다는 점이다. 미움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밉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면면까지 있는 철부지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흔히들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코미디 연기로서 세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역할의 쉽고 어려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악역과 코미디 연기 중 더 어려운 건 무엇일까. 언뜻 보기엔 악역이 어려울 것 같지만 실상 배우들은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지목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정상훈이 <품위 있는 그녀>에서 해낸 안재석 연기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tvN [SNL코리아]의 고정 크루들 중에는 정상훈처럼 의외로 단단한 연기 내공을 가진 배우들이 있다. 이를테면 김원해 같은 배우가 그렇다. 영화 <명량>에서 배설 장군 역할을 연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아수라>에서 작대기 역할로 놀라운 에너지를 보여준 배우. 코미디 연기로 먼저 대중들에게 다가왔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 배우가 이제 김원해에 이어 장상훈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우리 사회는 코미디 배우를 조금 낮게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편견이라는 걸 깨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김원해나 정상훈 같은 연기자들이 제대로 그 연기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품위 있는 그녀>는 물론 김희선과 김선아의 연기를 보는 맛이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지만, 그 바탕을 깔아준 정상훈의 코미디 연기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시청자들은 김은숙의 로맨틱한 멜로에 이병헌을 허용할 수 있을까

누가 뭐래도 김은숙 작가는 지금 현재 가장 대중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드라마 작가다. <태양의 후예>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보한데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대성공으로 대중성과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사진출처:영화<싱글라이더>

그리고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작품으로 1900년대를 배경삼아 우리가 기억해야할 의병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보도는 그 기대감을 더욱 높여 놓았다. 개항 시절, 그 이질적인 문화들이 혼재하는 시대가 먼저 드라마틱하면서도 로맨틱한 작품을 선보이는 김은숙 작가와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발표와 함께 팬들은 저마다 그 주인공을 두고 가상 캐스팅을 벌이기도 했다. 강동원, 조인성, 김수현 등등 쟁쟁한 연기자들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과 달리, 그 주인공으로 낙점을 받은 연기자는 이병헌이었다. 

이병헌이 <미스터 선샤인>의 남자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는 아직도 지난 사생활 문제로 논란이 되어 생긴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안은 끝났지만, 배우에게 남은 이미지는 쉽게 사라질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논란이 터진 후에도 이병헌은 여러 작품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줘 사생활과는 별개로 배우로서 인정받기도 했다. 실제로 <내부자들>, <마스터> 그리고 <밀정>까지 그가 최근 출연했던 영화들 속에서 이병헌은 확실히 세계적인 배우의 면모를 톡톡히 과시했다. 사생활에 대한 비판 여론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출연한 영화가 그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던 건 그 연기력이 한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시시껄렁한 건달이나 희대의 사기꾼 혹은 독립군 수장 역할은 연기력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아직까지 멜로는 쉽지 않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 <싱글라이더>였다. 물론 대작이라 할 수는 없는 작품이지만 <싱글라이더>는 이병헌이라는 거물 배우와는 상반되게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이 부분이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인 <미스터 선샤인>에 남는 우려다. 과연 시청자들은 김은숙 작가 특유의 로맨틱한 멜로에 이병헌을 허용할 수 있을까. 

김은숙 작가처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작가가 왜 차기작에 분명 논란과 소음이 일어날 이병헌을 캐스팅했는가 하는 데 대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작품의 배경이 이병헌 같은 국제적인(?) 인물과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신미양요 때 의병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훗날 자신을 버린 조국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배우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능적인(?) 요소가 가진 장점만큼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 드리워진 불편한 이미지의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작품이 나오지 않아 어떤 결과가 이어질 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심지어 ‘갓은숙’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인공들을 시대의 아이콘으로까지 만들어놓는 김은숙 작가가 이번 이병헌을 캐스팅해 그 로맨틱한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선배들 총출동 ‘개콘’ 900회 특집, 무엇이 달랐나

900회 특집. KBS <개그콘서트>에는 쟁쟁한 선배들이 총출동했다. 유재석이 축사 콘셉트의 콩트로 포문을 열었고 김대희가 2년 만에 출연해 김준호와 갖가지 옛 인기코너들을 선보였고, 김준현, 신봉선, 김지민, 장동민, 김종민을 비롯한 <1박2일> 멤버들까지 출연해 후배들과 함께 코너를 빛냈다. 900회라는 특집이라는 기대감과 선배들이 총출동한다는 사전 예고 덕분에 <개그콘서트>는 오랜만에 10% 두 자릿수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기록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아마도 이런 좋은 성적표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축하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선전에 취할 상황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선배들의 출연을 통해 후배들이 현 <개그콘서트>가 어떤 점들이 부족한가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옛 코너들을 다시 재연한 것에서부터 기존 코너들 속으로 들어온 선배들의 활약을 곱씹어보는 건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선배 개그맨들이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 점은 저마다의 캐릭터가 확실하고 또 그 캐릭터를 살려내는 연기력이 바탕에 있다는 점이다. 첫 코너로 세워진 <감수성>의 경우, 두드러진 건 김준현의 연기력이었다. 김준호가 중심에 된 코너지만 이 특집에 맞춰 게스트의 성격으로 출연한 김준현은 그간 자신이 여러 코너에서 만들었던 유행어와 캐릭터들을 아낌없이 코너에 녹여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정적으로 연기를 해내는 그 모습은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김준현의 활약은 현재 <개그콘서트>의 코너인 ‘사랑이 Large’에서도 빛났다. 유민상과 김민경이 이끌어가는 이 코너에 민경의 옛 남자친구 역할로 들어온 김준현은 등장하자마자 유민상과 김민경을 은근히 디스하는 대사들을 살려내며 단박에 코너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 놓았다. 김민경에게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며 옛날에 진짜 122kg이었다는 걸 계속 깐족대듯 얘기하고, 유민상에게는 기수가 “20기”이며 입은 옷이 “그레이색”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마치 욕 같은 발음으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선배 개그맨들의 캐릭터와 연기력이 돋보인 건 ‘연기돌’과 ‘쉰밀회’로 반가운 얼굴을 보여준 김지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한 ‘연기돌’에서 김지민은 과거 ‘뿜엔터테인먼트’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를 가져와 여전히 살아있는 유행어들을 터트렸다. “화장 잘 먹으면 살쪄.” “느낌 아니까.” “사랑스럽다는 소리보다 쌍스럽단 소리 더 많이 들어요.” “욕먹으면 살쪄.” 이 같은 그녀의 유행어들은 짐짓 멋진 포즈를 하다 그걸 무너뜨리는 연기를 통해 더 잘 살아났다. 

하지만 이번 900회 특집에서 가장 빛난 건 역시 김준호와 김대희였다. 두 사람은 ‘감수성’, <씁쓸한 인생> 같은 코너에서 역시 웃음을 주기 위해서 연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보여줬다. 특히 김대희는 ‘쉼밀회’에서는 다소 나이든(?) 유아인 역할로 웃음을 주었고, ‘대화가 필요해’에서는 웃음을 위한 눈물 연기까지 선보였다. 웃음 연기가 그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할 때 더 큰 웃음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김대희는 확실히 보여줬다. 

900회 특집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개그콘서트> 무대를 빛내준 선배 개그맨들의 활약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대희는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통해 현 <개그콘서트>가 헤쳐 나가야할 길을 제시했다고 보인다. 자기 캐릭터를 구축하고 거기에 더 깊게 몰입하는 연기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 거기에 <개그콘서트>의 미래도 또 후배 개그맨들의 앞날도 달려있지 않을까.

‘귓속말’이 끄집어낸 숨은 공력의 연기자들

저 배우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그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던 그 돌담병원 원장이 맞아? 연기자 김홍파의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에서의 변신은 놀라웠다. 돌담병원 원장의 이미지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귓속말>에서 그가 연기한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의 그 강렬함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대기업 총수 중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 

'귓속말(사진출처:SBS)'

건들건들 대며 걷는 모습이나 로펌 태백의 최일환(김갑수) 대표와 각을 세울 때 빙글빙글 비웃음을 치며 눈에는 살기가 가득한 모습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귓속말>의 치고 박는 복마전을 흥미롭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강유택 회장과 최일환 대표라는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대립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는 김갑수와 마주 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존재감이라니.

<귓속말>이 끝없이 상황이 바뀌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전투구의 상황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안정감을 갖는 이유는 바로 김홍파 같은 연기자가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권율 역시 그런 연기자들 중 한 명이다. 물론 <싸우자 귀신아>에서도 의외로 섬뜩한 캐릭터 연기를 잘 소화해낸 그였지만 <귓속말>에서는 강유택의 아들 강정일 변호사 역할로 과거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얼굴은, 창백한 낯빛과 무표정으로 ‘악마의 형상’ 같은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최일환과 강유택의 대립구도가 위에서 조종하는 권력다툼이라면 이동준(이상윤)과 강정일의 대립구도는 그 밑에서 직접 실행을 통해 부딪치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악역으로서의 권율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드라마에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김홍파와 권율이 그래도 과거 작품들을 통해 어느 정도 연기 공력을 감지할 수 있었던 배우라면 <귓속말>에서 스폰서 검사로 낙인찍혀 검사복을 벗어 최일환의 비서가 되었지만 그 사건이 결국 최일환의 사주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고는 분노하는 송태곤 역할의 김형묵이라는 배우는 갑자기 시청자들 앞에 나타난 ‘미친 존재감’이다. 물론 목소리를 들으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뮤지컬배우로서 김형묵은 잘 알려져 있지만 배우로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 최일환과 강유택 회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송태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그는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드라마의 힘은 악역이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귓속말>이 발견해낸 김홍파, 권율, 김형묵은 이 드라마가 끝없이 요동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어찌 보면 주인공들보다 더 강렬한 존재감이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 캐릭터가 가진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만만찮은 연기 공력도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향후 이들이 보일 연기의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될 만큼.

‘피고인’,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답답하다’는 것이다. 아니 ‘답답하다’는 걸 넘어서 ‘해도 너무한다’는 것.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드라마 전개가 끝없는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흘러온 구성을 보면 지독하게 당하는 박정우(지성)가 그걸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이 차민호(엄기준)에 의해 그게 좌절되는 상황의 무한반복이다. 

'피고인(사진출처:SBS)'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아내를 죽인 범인이 아닌가 하는 그 충격적인 상황에서 간신히 기억을 찾아 벗어나고, 차민호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딸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는 스스로 칼에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어 딸을 만나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오고, 그래서 결국 탈옥한 후에는 어렵게 딸을 만나 자수함으로서 반전의 기회를 갖지만 차민호가 결정적 증거를 조작하고 심지어 박정우를 돕기 위해 자수한 성규(김민석)마저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한 도돌이표. 게다가 그 이야기 전개는 거의 막장에 가깝다. 차민호의 부친인 차영운 회장(장광)이 힘을 써서 박정우의 무고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인 칼에 대한 국과수의 조사를 조작하는 이야기는 그게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차회장은 그런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게 이 드라마가 던지는 설명이다. 또한 자수한 후 진실을 밝히려던 성규가 구치소에서 살해당한다는 것에도 그다지 그럴 듯한 개연성 있는 설명은 없다. 다만 차민호라면 그 정도 힘은 당연히 발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처리되어 있을 뿐이다. 

즉 이런 개연성 없는 마구잡이식의 반전을 노리는 전개는 사실 시청자들을 낚기 위한 작가의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끊임없이 박정우의 반격을 저지시키고 지연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그래서 뒷부분에 이어질 사이다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키려는 의도. 이건 아침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막장의 기술이다. 

하지만 이렇게 막장 전개가 가속화될수록 <피고인>의 시청률은 갈수록 치솟는다. 25% 시청률을 넘긴 이 드라마는 이제 30%를 넘기지 않을까 조심스런 예측을 내놓고 있다. 시청자들은 어째서 이런 막장드라마가 이렇게 시청률이 높을까 이야기하지만, 해답은 그것이 바로 막장드라마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드라마의 충실한 이야기 전개보다는 시청자들을 잡아끌기 위한 낚시에 몰두함으로써 당연히 가져가는 수치. 그게 막장드라마의 유일한 존재의미가 아닌가. 

<피고인>은 여기에 일종의 위장술 같은 걸 사용한다. 그건 실체인 막장드라마를 가리기 위한 방법이다. 그 첫 번째는 연기에 있어서 믿고 보는 연기자인 지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몰입도를 높여놓았다는 점이다. 설마 지성이 저런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막장이겠어, 하는 착시효과가 이 드라마의 초반 몰입을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지성의 존재감이 드라마에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막장드라마들이 흔한 가족드라마의 변형으로서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덧붙여진 가족복수극을 그려냈던 것과는 달리, <피고인>은 장르물에 막장드라마의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로서는 미드에서나 많이 봐왔던 소재인 감옥이야기라는 장르적 외피를 보며 이 드라마가 주는 몰입감이 막장드라마의 기술 때문이라는 걸 부인했을지 모른다. 

<피고인>이 만들어낸 막장 장르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는 그래서 시청층의 외연을 넓혀놓았다. 막장드라마의 주 시청층이었던 중년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전개를 제공하면서도 이 드라마는 그간 막장드라마에 시큰둥했던 중년 남성시청자들마저 장르의 외피로 위장된 막장드라마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여러모로 <피고인>의 성공은 막장드라마와 장르극의 혼합이라는 새로운 막장드라마의 시대를 예고하게 한다. 장르물이 갖는 미드적인 세련됨에 막장드라마가 갖는 빠른 전개,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으로써 몰입감을 높이는 방식. 그래서 높은 시청률을 가져가지만 시청자들로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어딘가 작가가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있는 듯한 불편함을 주는 드라마. 과연 이러한 변칙적인 드라마의 탄생은 괜찮은 일일까.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72)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61)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132,169
  • 62760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