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의 성공, 영국친구들을 보면 그 답은 출연자다

어쩌면 이토록 훈훈할 수 있을까.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영국친구들이 한국여행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건 ‘배려’와 세대차가 전혀 없는 격의 없는 우정이다. 제임스의 친구로 초대된 이들은 데이비드, 앤드류 그리고 사이먼. 흥미로운 건 데이비드의 나이가 65세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나이가 있으니 생각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이들의 여행을 보면 전혀 나이 차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지는 날씨에 겨울산행을 하기 위해 북한산을 찾은 이들은 보통 사람들도 쉽지 않은 산행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데이비드는 중간 중간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섰고 가끔 미끄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걱정이 없었던 건 앤드류가 바로 뒤에 딱 달라붙어 혹여나 미끄러지면 받쳐주려 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결국 정상까지 오른 후 내려온 데이비드는 이런 산행은 처음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건강 상에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지만 데이비드는 그래도 모험을 계속하기를 원했다. 그러니 앤드류와 사이먼이 있어 든든하게 한국의 산행을 마친 것이 얼마나 보람 있게 느껴졌을까. 

산행 후 잠시 몸에 이상을 느끼자, 앤드류와 사이먼은 제 일처럼 데이비드를 걱정했다. 일단 일정을 접어두고 숙소에 데이비드가 잠시 쉬게 해준 뒤, 그들은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강남의 VR체험을 했다. 그 때 마침 받은 사이먼의 장교시험 합격 소식은 깨어나 다시 그들과 합류한 데이비드도 자기 일처럼 기쁘게 만들었다. 데이비드는 축하주를 건배하며 사이먼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사이먼 같은 인재를 영입한 영국군도 축하한다는 말을 남겼다. 

다음 날 이어진 제임스 투어에서 이들은 인제로 모험여행을 떠났다. 격의 없이 어린 아이들처럼 서로를 놀려먹으며 즐거워하는 제임스는 앤드류에게 처음 번지점프를 경험하게 해줬고, 인제에서 나오는 최고의 한우를 친구들에게 맛보게 해줬다. 그리고 이어진 야간스키. 처음 스키를 탄다는 앤드류는 의외로 빠른 습득력을 보였지만 중급 코스에서는 자주 넘어졌다. 그러자 스키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가 나서 앤드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듯한 그 훈훈한 장면은 고스란히 산행에서 데이비드의 뒤에서 늘 대비하고 있던 앤드류를 떠올리게 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배려심, 그리고 나이 차가 얼마나 나든 격의 없이 농담을 던지고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영국친구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장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연배가 있어도 아이처럼 자신을 낮춰 그들과 어우러지는 친구가 되어준 데이비드나, 그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도 또한 그의 나이를 배려해 사려 깊게 행동하는 앤드류와 사이먼. 이들의 풍경이 이토록 훈훈하게 다가오는 건 아무래도 우리의 풍경과는 너무나 달라서가 아니었을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영화 <킹스맨>의 대사를 던지며 우리에게 처음 소개됐던 영국친구들은 무엇이 진짜 ‘젠틀맨’인가를 이번 여행을 통해 보여줬다. 배려와 예의 그리고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번 영국친구들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인기가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그건 한국여행과 리액션만이 아니라, 그 여행을 하는 이들의 ‘인간적인 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사진:MBC에브리원)

이덕화와 양세형, ‘한끼줍쇼’로 되새긴 친구의 가치

천호동을 찾은 JTBC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의 저녁 풍경. 이덕화와 이경규를 반가이 맞아주신 아주머니는 마침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을 참이었다. 그 날 아는 분이 하는 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는 마음 따뜻한 아주머니. 차가워진 날씨에 거리를 전전하던 이덕화와 이경규에게 선뜻 문을 열어주신 그 분과 친구에게서는 마치 가족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뚝딱 맛난 음식들을 차려 내놓는 아주머니와 친구는 그렇게 낯선 이방인들과 한 끼 저녁을 나누고는 믹스커피 한 잔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불편한 지 연실 다리를 주무르는 친구 분은 서서 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렇게 다리가 시원찮아졌다고 말했고, 아주머니 역시 마찬가지라는 대목에서는 두 분의 삶이 어딘지 닮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두 분 모두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일하며 자식들 키워내느라 안한 일이 없을 정도로 몸을 부리셨던 거였다. 직접 보지 않았어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신산했을 그 삶을 이덕화는 깊이 공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덕화는 홀로 자식을 키워내신 어머니들의 고생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독 과묵하고 결혼 생각은 없다던 아주머니의 아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알고보니 동국대 후배인 그 아들은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버는 대로 집에 내놓곤 했단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아직 안한 것이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아오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온 아들의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지. 삶의 고단함을 애써 숨겨온 것이 아들을 과묵하게 한 건 아니었을지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게 힘들어도 아주머니가 버틸 수 있었던 진짜 힘은 아마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함께 30여년을 지내왔던 친구가 있어서였을 게다. 안한 일 없이 하면서 자식 키우느라 몸은 안 아픈 곳이 없는 두 친구는 그렇게 서로의 대단함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한편 강호동과 양세형에게 문을 열어준 집은 아직 20대 후반의 새댁이었다. 우연치고는 놀랍게도 그 곳 역시 새댁과 친구가 마침 저녁을 먹으려 하고 있었는데, 함께 저녁을 나누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친구들 역시 서로가 너무나 닮아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라는 두 사람은 모두 결혼 전에 아이가 먼저 생겼고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고 했다. 

일요일인데도 남편들이 모두 일을 나가 함께 저녁을 챙겨먹는 친구들은 스스럼이 없었다. 친구 집을 마치 자기 집처럼 속속들이 알고 저녁상을 챙기는 친구의 모습에서 두 사람의 끈끈한 우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일찍 결혼해 아이까지 있으니 하고 싶은 일도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또한 이 친구들은 일찍 아이를 가져 좋을 미래를 함께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줄 수 있는 미래의 풍경을.

같은 날, 천호동에서 만난 두 집안의 이야기는 그래서 마치 따뜻한 우정을 오래도록 가져갈 친구들의 현재와 과거 혹은 현재와 미래처럼 보였다. 홀로 되어 자식들을 키워내신 어머니들의 깊은 우정은 젊었을 시절에도 아마 풋풋한 새댁들처럼 끈끈했을 것이고, 지금 그렇게 한 가족처럼 보이는 새댁들의 우정은 훗날 어머니들처럼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오래도록 변치 않을 것이다. 

이덕화와 양세형이 밥동무로 참여한 천호동의 <한끼줍쇼>는 그래서 우리네 삶에서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를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강호동의 말처럼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이 운명이 되는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가를 그 친구들의 우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으니.

박서준과 지창욱, 멜로가 발견한 대세 현실 직진남

KBS <쌈마이웨이>도 가고 SBS <수상한 파트너>도 끝나고... 특별했던 두 멜로드라마가 나란히 종영했다. 다른 드라마지만 어딘지 닮은 느낌을 가진 두 드라마. 그것은 굉장한 재벌이나 심지어 외계인, 도깨비, 신으로까지 판타지가 확장되던 남자주인공들과 이 두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들이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해 보통의 평범한 남자주인공을 내세웠던 <쌈마이웨이>와 <수상한 파트너>. 이들 드라마가 괜찮은 호응을 얻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쌈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다. 태권도 유망주였으나 가난이 죄가 되어 조작경기를 하게 되고 결국 영구 제명당한다. 그래서 모든 꿈을 접은 채 진드기 잡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단 한 시도 꿈을 잊은 적이 없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초상이지만 이 인물은 그래서 더 현실감 있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상한 파트너>의 노지욱(지창욱)은 검사였지만 살해용의자 누명을 쓴 은봉희(남지현)의 기소를 포기함으로써 검사직에서 물러나 변호사가 된다. 물론 변호사라는 전문직을 갖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남자지만 드라마는 그런 점들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거 부모가 모두 화재로 죽음을 맞은 후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지욱이 은봉희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재력 같은 현실적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그 점이다. 은봉희의 누명을 벗겨주고 그녀의 아버지가 가진 누명 또한 끝까지 벗겨주려는 노력에 담긴 진심. 

멜로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은 당대의 판타지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판타지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차원까지 나가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외계인이어서 죽지 않고 늙지 않는 남자주인공을 세워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여자주인공을 보호하는 판타지를 그려냈다면, 신드롬을 만들었던 <도깨비>는 도깨비와 저승사자가 여자주인공이 원하는 것들을 해결해주는 판타지를 그렸다. 

문제는 이렇게 판타지가 초현실적인 차원으로까지 넘어가게 되면서 생겨나는 현실성의 결여다. 신까지 등장한 마당에 도대체 그 이상의 어떤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을 더 세울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담아내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남자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허공에 붕 띄워져 있던 남자주인공들의 발을 다시 땅바닥으로 내려앉혔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중요한 건 남자주인공들이 이렇게 현실로 내려오면서 여자주인공들의 능동적인 면들이 더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은 결국 여자주인공들로 하여금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지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쌈마이웨이>의 최애라(김지원)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능동적인 존재였고, <수상한 파트너>의 은봉희 역시 변호사로서 자기 성장을 이뤄가는 능동적인 여성이었다.

<쌈마이웨이>의 박서준과 <수상한 파트너>의 지창욱은 이러한 현실 남자친구의 매력을 200% 연기해 보여줌으로써 멜로드라마의 연기장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뭐든 해줄 수 있는 굉장한 능력보다는 남다른 직진 사랑의 면면으로 보는 이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남사친와 남자 사이에서 애매한 관계를 보이던 그들이 더 이상 친구는 안된다고 선을 긋고 직진할 때 아마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은 두근거렸을 것이다. 

그 누가 사랑이 아닌 우정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아닌 남사친 여사친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건 그 친구 관계를 넘어서는 일을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기 때문일 게다. 결혼도 그렇고 육아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적정한 거리에서 남사친 여사친을 주장하며 관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일 지도. <쌈마이웨이>나 <수상한 파트너>가 현실적인 남자주인공으로 건드리고 있는 건 어쩌면 이 우정의 차원을 훅 넘어 들어오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아닐까. 박서준과 지창욱의 그 직진이 우리를 설레게 했던 건.

‘쌈마이웨이’, 이 짠한 청춘들에게 기꺼이 빠져드는 까닭

이건 우정일까 사랑일까. 저건 쌈일까 썸일까. KBS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고동만(박서준)과 최애라(김지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사이.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남녀로서의 연애감정이라는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어 보인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기 일쑤고, 쏘아붙이는 건 일상이다. 

'쌈마이웨이(사진출처:KBS)'

그런데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듯 보이지만 상대방에 곤경에 처하거나 무시를 당하는 걸 보면 그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나선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고 절망할 때도,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가 그녀의 실체가 발각되어 남자들에게 무시를 당할 때도 최애라는 고동만을 찾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고동만은 귀찮아하면서도 최애라에게 달려간다. 그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주는 우정처럼 보이지만, 슬쩍 슬쩍 선을 넘어 사랑 같은 감정이 뒤섞인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아 둘 다 꿈에서 멀어진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있고, 그래서 상대방이 현실 앞에서 무시당할 때 마치 자기가 무시당하는 것처럼 화를 낸다.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라고 상대방에게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마치 자기에게 하는 말처럼도 들린다. 

<쌈, 마이웨이>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현실이 ‘쌈마이’라도 ‘마이웨이’를 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슨 일인지 과거에 저지른 한 번의 실수로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에서 멀어져 버린 고동만은 근근이 살아가지만 여전히 태권도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코치의 도장 주변을 뱅뱅 돈다. 태권도에서 격투기로의 전향을 생각하며. 

한 때는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를 꿈꿨던 최애라는 어쩌다 보니 백화점에서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안내 일을 하고 있다.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이크를 잡고 싶지만 이 청춘에게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고동만의 돌려차기와 최애라의 마이크. 그들이 꿈꿨지만 주어지지 않은 이 두 가지는 <쌈, 마이웨이>가 깔아놓고 있는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낸다. 

짠한 현실 앞에서 이 청춘들은 서로를 지지해준다. 눈물 흘리는 친구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히 우정이라 생각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는 결코 우정의 차원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쌈, 마이웨이>가 갖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에 덧붙여진 멜로가 피어나는 곳이다. 

<쌈, 마이웨이>는 특별한 소재나 대단히 놀라운 이야기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범해 보이는 이 이야기에 마음이 가는 건 아마도 이 청춘들을 지지하고픈 마음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는 저마다 큰 꿈을 꾸고 있었지만 어쩌다 현실에 날개가 꺾인 청춘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지지의 마음은 마치 고동만과 최애라가 서로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빙의하게 해준다. 이것이 짠하지만 설레는 이 청춘멜로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다.

‘사십춘기’, 배우로 볼 땐 잘 몰랐던 인간 권상우의 진면목

“그런데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어?” 어디다 누구와 이야기해야할지 몰라 하던 권상우가 급기야 방법을 찾았다는 듯 촬영하는 VJ에게 대놓고 그렇게 묻는다. 그런 질문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게스트라고 떡 하니 섭외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와 놓고는 막상 자신을 섭외한 정준하는 MBC <무한도전>을 찍으러 새벽 댓바람부터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떠나버렸다. 덩그라니 혼자 남아 있는 권상우는 졸지에 게스트에서 프로그램의 호스트가 된 상황이다. 아무런 계획도 정해진 게 없이. 

'사십춘기(사진출처:MBC)'

MBC <사십춘기>는 7주간의 정상화 기간에 들어간 <무한도전>의 빈자리로 들어왔지만 그렇게 일시적으로 때우고 사라지기에는 아까운 독특한 면이 있다. 무계획이야 <무한도전>도 자주 해왔던 일들이지만 <사십춘기>는 거기에 여행(그것도 미지의 여행)과 함께 가는 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채워 넣었다. 물론 제목처럼 40대 중년이라는 연령대가 주는 연륜과 동시에 여전히 청춘이고픈 욕망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경계가 주는 묘미까지. 

느긋하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정준하와, 뭐든 “빨리 빨리”를 외치는 급한 성격의 권상우는 그 성격 그대로 하고 싶어 하는 일도 너무 다르다. 아침 일찍 일어난 권상우가 눈이 보고 싶다며 나가자고 보채는 와중에도 정준하는 침대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억지로 정준하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눈밭에서 뛰어도 좋을 부츠를 사고 갖고 놀 눈썰매를 산 그들은 눈을 찾아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으로 향하지만 막상 간 곳의 풍경은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거의 등산을 하다시피 올라가 겨우 찾아낸 곳에서 눈썰매를 타는 그들은 문득 깨닫는다. 거기가 러시아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동네 뒷산 같은 곳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 마치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서 주인공들이 그 먼 거리를 떠나와서는 별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주는 느낌을 이들은 고스란히 전해준다. 어딘지 허탈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눈썰매를 타는 중년들. 중년의 나이까지 왔지만 여전한 소년의 모습이 러시아까지 왔지만 동네 뒷산 같은 그 상황과 잘도 맞아 떨어진다. 

권상우는 이 프로그램으로 ‘미지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픈 욕망을 내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제주도까지 갔던 그들이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이국까지 결코 오지 않았을 게다. 그리고 칼바람이 부는 해안가에서 러시아 전통 사우나를 즐기며 눈밭에서 뒹굴지도 않았을 테고. 늘 성격이 맞지 않아 툭탁대는 그들이지만 막상 돌아올 시간이 되자 아쉬워하고, 그래서 정준하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서울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에 퉁명스럽게 “올 때 팩 사와”라고 말해 이 여행이 계속되게 한 장본인도 권상우다. 

홀로 남겨진 권상우가 블라디보스토크 곳곳을 찾아다니며 인터넷 검색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에 실망하기도 하고, 의외로 길거리에 만난 러시아 사람들의 따뜻함에 기분 좋아하기도 하며, 풍광 좋은 곳에서 “준하는 돌아오는 거야”라며 드라마 속 대사를 외쳐보는 그런 장면들은 그렇게 많은 여행 소재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그다지 본 적이 없는 장면들이다. 혼자 여행을 하고, 시행착오로 이상한 숙소를 잡기도 하며 홀로 바비큐를 해먹는 쓸쓸함에 괜스레 찾아온 개에게 맛난 고기를 나눠주는 그런 장면들.

거기 묻어나는 쓸쓸함과 외로움과 더불어 여전히 소년처럼 미지의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권상우의 모습은 우리가 배우로서 작품을 통해 봐왔던 그에게서 좀체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진면목이다. 겉으론 퉁명스럽게 얘기해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진심에는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대목에서는 더더욱. 

<사십춘기>는 목적 없이 떠나는 중년의 여행으로서 웬만한 틀어진 상황 속에서 당황하기보다는 능숙하게 대처하고, 때로는 그런 미지의 상황에 떨어진 걸 즐거워하고 신기해하는 중년이지만 청춘인 그들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권상우의 말대로 게스트라고 초대해놓고 버리고 가도 하루 정도의 고독과 자유 정도는 기꺼이 누리는 그 모습들은 여행 예능의 새로운 결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권상우의 몰랐던 매력이 이렇게 잘 드러난 프로그램이 있었던가.

최여진의 재발견, <공항>의 사랑만큼 진한 우정

 

너 나 결혼할 때 왜 안 말렸어? 뜯어말렸어야지. 박진석, 가족이랑 못산다. 네가 숨 쉬는 것도 지나다니는 것도 싫어할 거다. 나랑 살면서 최수아 너 만났듯이 너랑 살면서 끝없이 딴 여자 만날 거다. 넌 박진석 인생에서 곧 아웃이다. 왜 말 안했냐고? ? ? ?” KBS <공항 가는 길>에서 절친인 송미진(최여진)에게 최수아(김하늘)는 그간 쌓여온 감정을 쏟아낸다. 그 감정에는 자신의 남편 박진석(신성록)과 결혼한 자신에 대한 회한이 더 깊게 자리해있다.

 

'공항 가는 길(사진출처:KBS)'

송미진은 말렸어도 그녀가 박진석과 결혼했을 거라며 그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자신을 드러낸다. “네가 내 말을 들었겠다. 미치도록 사랑해놓고. 너 거기서도 못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치겠지? 잘 살아? 못살아? 그것만 말해. 너 걱정돼서 그래. 어쩌자고 간건지 확실하게 말해.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도울 테니까.” 결국 송미진은 그녀와 다투면서도 그녀를 걱정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녀를 도울 거라고 말한다.

 

친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송미진은 절친인 최수아에게 결국 사과했다. 그녀가 최수아의 남편 박진석과 결혼 전에 동거했었고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이 사사로이 만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박진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건 아니다. 어찌 보면 그녀 역시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건 박진석이라는 애초부터 여성 편력이 있는 나쁜 남자에 의해 생겨난 일이기 때문이다. 박진석은 송미진과 동거하면서 심지어 그녀의 절친인 최수아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남자친구와 절친이 관계를 맺는 아픔을 먼저 겪은 건 바로 송미진이다.

 

최수아 역시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림에도 불구하고 송미진이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과거 남편과 동거까지 했었다는 사실을 숨겼고, 박진석이 그런 인간이라는 걸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 못내 화가 날뿐이다. 그래서 송미진이 사과한 것은 최수아 남편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최수아와의 우정관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우정이 끈끈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우정은 힘겨운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최수아가 결국 서도우(이상윤)의 아내인 김혜원(장희진)을 만나게 되고 그 관계를 들킨 후 뺨까지 맞게 됐을 때 그녀가 먼저 전화를 한 건 바로 송미진이었기 때문이다. 송미진은 유경험자(?)로서 최수아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제주도를 찾아온다.

 

<공항 가는 길>은 이미 결혼한 남녀 사이에 생겨난 인연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그 안에 사랑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관계는 우정이다. 어찌 보면 송미진과 최수아 그리고 박진석의 관계란 미묘하게 얽힐 수 있는 잘못된 만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힘겨운 관계에서조차 어떤 위로를 주는 건 송미진과 최수아의 변치 않은 우정이다.

 

시원시원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는 면면은 송미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보통 멜로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절친은 마치 연애 코치를 하는 듯한 호감을 주기 마련이다. 송미진은 진정성 있는 우정은 물론이고 어딘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최수아 옆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될 것 같은 걸 크러시의 면면까지 갖고 있다.

 

참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최여진이라는 배우가 특히 이번 작품에서 주목되는 건 아무래도 이 송미진이라는 인물이 제 옷을 입은 듯 그녀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일 듯싶다. 복잡한 남녀관계 속에서 명쾌한 우정관계를 드러내주는 인물이 주는 속 시원함과 든든함. 송미진이란 캐릭터를 통해 최여진이라는 배우 역시 달리 보인다

<공항 가는 길> 김하늘에 대한 깊은 공감이 말해주는 것

 

어쩌다 그녀는 모든 걸 잃어버렸을까. KBS <공항 가는 길>의 최수아(김하늘)에게 남편 박진석(신성록)당신이 생각하는 방식, 움직이는 소리도 싫다.”는 막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침착하다.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싫다는 소리 직접 듣는데 진상 손님 같아. 아무 느낌이 없어.”라고 말한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 늘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는 남편의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공항가는 길(사진출처:KBS)'

그녀는 박진석이 자신의 절친인 송미진(최여진)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그러데 그 절망은 남편에 대한 실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남편보다 더 오래 알아왔던 송미진이 자신에게 그녀와 남편 사이의 오랜 관계에 대해 숨겨왔다는 것에 대한 절망이다. 송미진은 박진석이란 인간이 자신과 동거하면서도 최수아를 만나는 나쁜 인간이라는 걸 숨겼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최수아와 송미진의 그 끈끈했던 우정은 금이 가 버린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그녀에게 필요한 건 모든 걸 잊고 빠져들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 때문에 딸 효은(김환희)이 방치되는 걸 새삼 깨닫고 왜 이렇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느껴 회사에 사표를 낸다. 그러니 이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기댈 곳은 자신을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서도우(이상윤)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 때문에 그에게도 이별통보를 한다. 망쳐진 모든 관계들이 마치 자신이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한 것 때문인 것처럼 여겨져서다.

 

<공항 가는 길>은 애초부터 최수아의 비극적 상황을 전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표면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남편은 그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고 젊은 여자들이나 힐끔거리며 심지어 그녀를 멀리 보내려고만 했었고, 이미 오래 전부터 그녀의 절친이었던 송미진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딸 효은을 제대로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면서, 일하면 일한다고 구박하고 일 그만두면 그만뒀다고 뭐라 하는 시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서도우라는 인물은 위안이자 위로일 수밖에.

 

결국 불륜이라는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공항 가는 길>이 전하고 있는 건 결코 살기가 녹록치 않은 중년의 삶에 어떤 작은 위로와 위안이다. 최수아의 표현대로 하루하루를 미친 년처럼 뛰어다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버텨내는 삶에 던지는 작은 위로. 그것은 그녀를 누군가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때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떤 것일 수도 있고, 피곤한 삶에서 잠시 비껴나 낯선 고택의 아무 것도 없는 방안에서 취하는 잠깐 동안의 낮잠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 가는 길에서 느끼는 그 감정들. 도시의 피곤과 그 속에서 관계들이 만들어냈던 수많은 상처들,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영혼을 잠식해가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들 같은 것들로부터 잠시 동안이지만 떠날 때 느끼는 그 위안. 물론 다시 돌아와야 하지만 그래도 그런 작은 위안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닌가.

 

최수아에게 공항 가는 길은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다. 승무원일 때는 그것이 일터로 가는 길이지만, 거기서 서도우를 만나 새벽 내내 이야기를 나눌 때는 힘겨운 일상에서 살짝 벗어난 일탈의 길이 된다. 그리고 남편도 친구도 잃은 채 딸 효은과 제주도로 가는 길은 아마도 이 도저히 버티기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 그만큼의 거리를 가지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공항 가는 길>이 단순한 불륜 소재가 아니라 어떤 위로와 위안을 주는 드라마라 여겨지는 건 바로 이 최수아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버텨내며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그래서 최수아의 절망적 상황에 던져진 작은 위로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게다. 그것마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혼술남녀>, 이 청춘들 왜 이리 짠할까

 

tvN <혼술남녀>에는 노량진 학원가라는 공간을 두고 두 부류의 인물군들이 등장한다. 그 하나는 노량진 학원의 강사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학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이다. 물론 이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는 스타강사인 진정석(하석진)과 열정 넘치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는 풋내기 강사 박하나(박하선)의 일과 사랑으로 얽히는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강사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양념처럼 들어가던 공시생들의 이야기에 점점 마음이 끌린다. 이 청춘들 왜 이리 짠한 걸까.

 

'혼술남녀(사진출처:tvN)'

이 공시생들의 이야기에는 진정석의 동생인 공명과 그의 절친인 기범, 동영이 중심에 서 있다. 노량진 학원가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둘도 없는 친구들로서 공부보다는 같이 노는 데 시간을 더 보내고 있었지만 한 사람씩 저 마다의 이유로 현실을 인식하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동영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그러기 위해서 친구들인 공명, 기범을 멀리한다. 공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 박하나가 시험에 합격하면 자신과 사귈 것을 고려해보겠다는 말에 공부를 시작한다. 기범은 자신만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가족 때문에 공부를 하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공부를 위해 우정을 포기하는 상황이지만 그들을 공부하게 만든 이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건 이 청춘들이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한가를 잘 말해준다. 미래의 거창한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참 친구들을 만나고 연인을 만나 사랑할 때지만 당장의 현실을 위해 모든 걸 접어야 하는 청춘.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들 나름대로 사랑하고 아파하며 질투하는 그들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풋풋하다.

 

공명이 이 학원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정채연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그녀를 스승으로 모시자, 예전부터 그녀를 좋아했지만 거부당했던 기범은 괜스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되도록 빨리 시험에 합격해 이 노량진을 벗어나려는 정채연은 사방에 벽을 세워둔 철벽녀. 그런 그녀지만 공명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나타날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그만 만나겠다고 메시지를 남긴 그녀는 공명이 사실 길거리에서 걸어 다니면서도 암기를 하라고 했던 자신의 말 때문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는 걸 알고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쏟아낸다.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정채연이 그 무표정한 얼굴 이면의 가녀린 심성을 드러내는 이 장면은 공시생들의 짠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민낯을 드러낸다. 같이 놀다가 이젠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잘 만나주지 않는 친구에 대해 배신자라며 툭탁대지만 이 청춘들은 그들이 다치거나 아픈 일을 당했을 때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그들의 순수한 진면목이지만 그들은 공시생이라는 현실의 가면을 쓴 채 어떻게든 공부를 통해 이 노량진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벗어난다고 해도 그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장밋빛 미래는 존재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에둘러 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원의 강사들을 통해 그려진다. 잘 나가는 스타 강사 진정석은 혼자 퀄리티 있는삶을 구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쓰레기라고 부른다. 어떻게 현실에 적응해 잘 살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남기게 만드는 인물이다.

 

박하나는 가정형편 때문에 알바로 학원 강사를 하다가 어찌 어찌 해 노량진까지 흘러 들어온 인물이다. 그녀는 노그래라고 불릴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황진이(황우슬혜)는 학원 강사지만 남자친구와 혼전임신을 해서라도 결혼해 살아갈 꿈을 꾸는 인물. 그녀에게 일에 있어서의 성취감 같은 걸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민진웅은 연예인 패러디를 하며 학원생들에게 웃음을 주는 인물이지만 정작 자신은 이혼하고 홀로 노모를 모시며 살아온 웃기 힘든 삶을 살아왔다.

 

공시생들은 노량진을 벗어나면 뭔가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지만 그 곳을 벗어나 취업을 하게 된다고 해도 그들 앞에는 또 다른 현실이 놓여있다. 그래서 이런 전망을 이미 보여주고 있는 이 드라마 속에서 공시생들의 노력이란 때론 허망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어쩌면 훗날 저 마다의 이유로 혼술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달라질 것이라 여겼던 미래가 사실은 그 현실의 연장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질투>, 조정석표 웃픈 멜로 제대로 터진 까닭

 

사랑해요 표나리그의 방안 가득 채워진 그림들은 아마도 이 짠내 가득한 남자의 마음 그대로가 아니었을까. 이화신(조정석)의 방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표나리(공효진)는 그 그림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간 이화신이 했던 어린아이 투정 같던 그 행동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화를 내고 삐치고 투덜대던 그 모든 행동들이 사실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가 서로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도 억지로 괜찮은 척 하려했던 이화신의 짠내나는 사랑과 우정이었다는 것을.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질투의 화신>처럼 희비극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단번에 보여주는 멜로는 흔치 않다. 표나리를 사이에 두고 친구인 고정원(고경표)과 갯벌에서 주먹다짐을 했던 이화신이 온 몸에 뻘을 묻힌 채 홀로 걸어가는 장면은, 표나리와 고정원이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묻은 뻘을 닦아주는 장면과 교차된다. 그러니 혼자 그들을 위해 자리를 뜨는 이화신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슬프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렇게 걷던 그가 목 뒤에서 꿈틀대는 낙지를 쑥 꺼내놓는다. 그 짠한 장면을 깨는 이 웃긴 상황은 그러나 낙지에게 괜스레 화를 내며 떨어지라고!”를 외치는 이화신의 모습을 통해 더더욱 웃기면서도 짠한 장면이 된다.

 

이렇게 웃픈이야기들은 애초에 이화신이 남자의 몸으로 유방암에 걸리는 흔치 않는 상황을 통해 예고된 바 있다. 아무리 남자라고 하더라도 유방암은 유방암이다. 그러니 수술 받고 항암치료 받는 그의 상황은 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표나리와 함께 수술을 받고 수술 후 가슴이 제대로 자리를 잡게 하기 위해 보정 브래지어를 하는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사망한 형의 장례식장에서 이화신은 깊은 슬픔에 빠지지만 보정 브래지어를 하고 있는 게 엄마에게 탄로나 흠씬 두드려 맞는 장면은 또 웃음을 준다. 웃기면서 슬프고, 슬프면서 웃긴 이 기묘한 희비극적 상황들. <질투의 화신>의 멜로가 독특해지는 지점이다.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 건 이화신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덕분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그는 이 양자를 모두 버리지 못한다. 고정원과 표나리가 가까이 지내는 것에 대해 질투하지만, 표나리가 그에게 잘 해주는 것이 불쌍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화신은 고정원이 생일이라며 그가 뭘 좋아하는지를 줄줄이 표나리에게 알려준다. 그 때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지으려 노력하는 이화신의 표정과 행동들은 짠내가 가득하다.

 

그렇게 갯벌에서의 주먹다짐을 한 후 고정원과 이화신은 관계가 데면데면해지지만, 그들은 동네 슈퍼에서 함께 거하게 소주를 마시며 금세 우정을 재확인한다. 계성숙(이미숙)과 방자영(박지영)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안주를 시켜달라며 두 사람의 양볼에 뽀뽀를 한다. 즉 그들의 우정은 계성숙이나 방자영처럼 남녀 간의 사랑으로 얽혀질 수 없는 대상 사이에서는 그 애정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돈독하다. 하지만 그들 앞에 표나리가 나타나자 관계는 다시 어색해진다. 애써 술에 취한 척 표나리를 연호하지만 그들 밑에 깔려 있는 어색함은 어쩔 수 없다.

 

<질투의 화신>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웃픈 캐릭터 이화신이고, 그 이화신이란 캐릭터를 가능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배우 조정석이다. 화를 내지만 쓸쓸해 보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그게 안쓰럽게 느껴지며, 지독히 슬픈 상황에서조차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건 조정석의 연기가 그만큼 디테일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조정석표 웃픈 멜로.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 웃음도 짠함도 배가시키고 있다.

<질투의 화신>, 안쓰럽고 매력적인 질투하는 조정석

 

정원이는 나 보다 더 자상하고, 나보다 더 돈도 많고, 무엇보다 건강한 놈이다. 정원의 마음을 의심하지 마라.” 이화신(조정석)은 과연 사랑보다 우정을 택한 걸까? 그는 그가 사랑하게 된 여자 표나리(공효진)에게 친구인 고정원(고경표)를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심지어 그에게 바래다준다. 고정원의 모친이 그가 금수정(박환희) 아나운서와 사귄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내버리자 실망한 표나리를 위해 고정원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대신 얘기해준 것.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자주인공은 주로 질투를 하기 보다는 받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남자주인공들은 재력은 물론이고 외모, 스펙까지 빠지지 않는 인물이거나, 그런 것들이 빠져도 또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 적어도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든 남자주인공은 그래서 다른 남자의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은 제목이 아예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질투하는 인물화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표나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도 못한다. 그가 표나리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거라야 고작 주변을 빙빙 돌며 툴툴대면서 걱정을 해주거나 남모르게 질투의 감정을 드러낼 때다.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 가사 구절처럼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 이화신은 그래서 갈등하지만 그는 고정원의 사랑이 거짓일 거라고 오해해 힘겨워하는 표나리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의 마음을 전한다. 거기에는 질투의 감정을 뛰어넘어 표나리를 위하는 사랑이 담겨있고 동시에 친구인 고정원에 대한 우정 또한 담겨져 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고정원과 표나리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를 할 때 먼발치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화신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질투와 상처의 아픔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이화신이라는 인물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투의 화신>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특별한 캐릭터 덕분이다. 질투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 사랑을 드러내는 캐릭터.

 

무엇보다 이 질투하는 인물, 이화신이라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적지 않다. 사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보정 브래지어를 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도 본인은 굉장히 진지하고 나아가 절실하게까지 느껴지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코믹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통해 미친 존재감으로 등극했고, <더 킹 투 하츠>에서는 그와는 상반되는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마치 이 두 캐릭터를 조합해 진지하면서도 인간미 있고 그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한 듯하다. <오 나의 귀신님>을 통해 슬쩍 내보인 그 캐릭터는 이제 <질투의 화신>에서 제대로 매력을 뽑아내고 있다.

 

우습지만 짠하고, 안쓰럽지만 매력적인 인물. <질투의 화신>은 바로 이런 비범한 캐릭터의 매력에 기반해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을 열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캐릭터가 이토록 공감 받을 수 있게 된 건 주인공보다는 주변인이 될 가능성이 훨씬 많아진 현실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제대로 흡수해 200%의 매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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