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사건수첩’, 봉골레 파스타와 봉블리가 사극서 만났을 때

이선균과 안재홍이 아니었다면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가능한 작품이었을까. 사실 이 코믹추리극은 사극의 틀과는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임금 예종(이선균)이 셜록처럼 추리를 하고 자기만의 은신처에서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이 그렇고, 사관 이서(안재홍)가 한번 보면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놀라운 시력으로 그를 수행한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배트맨과 로빈, 혹은 셜록과 와트슨의 코믹 버전 사극판이라고 해야할까. 

사진출처:영화<임금님의 사건수첩>

하지만 이런 부조화를 적절한 긴장감과 웃음으로 유화시켜주는 건 다름 아닌 배우 이선균과 안재홍이다. 이선균은 특유의 그 굵직한 목소리가 갖는 임금님의 위엄(?)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봉골레 파스타!”로 기억되는 코믹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 위엄이 슬쩍 슬쩍 무너질 때 이 예종이란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한다. 

아울러 이선균이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임금님의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해낼 수 있게 된 건 다름 아닌 그걸 받아주는 조금은 억울하고 우직하며 선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사관 이서를 연기하는 안재홍 덕분이다. 안재홍은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역할로 우리에게는 ‘봉블리’라는 캐릭터 이미지를 갖게 된 배우가 아닌가. 그 봉블리의 매력은 이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퓨전을 넘어 장르 사극이 그러하듯이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조선시대에 벌어졌을 수도 있는 사건을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기이한 사건과 그로 인해 번져가는 소문들, 흉흉해지는 민심 같은 것들이 음모론과 결합하여 임금님을 옥죄는 가운데, 이를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예종의 추리가 흥미롭다. 물론 그 과정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건 예종과 이서의 주종관계에서 비롯되는 코미디들이다. 

영화는 초반 여러 사건들과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금 지루함을 보이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중반 이후가 지나고 나면 스펙터클한 사건들과 연발 터지는 코미디가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의외로 이서의 예종에 대한 충직한 모습이 뭉클한 브로맨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악역으로는 정평이 난 김희원과 최근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 김홍파가 가벼울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얹어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조선명탐정>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작품들이 그래왔듯이 사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연휴나 명절 같은 시기에 별다른 부담 없이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 적합한 영화다. 대단한 메시지나 의미를 찾기보다는 가벼운 오락 기획물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지금의 시국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메시지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다지 문제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임금님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작품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이선균과 안재홍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점이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연기라기보다는 이들이 가진 독특한 코미디적인 이미지를 사극의 캐릭터와 잘 맞춘 점이 효과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벌이는 한바탕 모험과 웃음. 꿀 같은 연휴에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아바>,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면면들

 

과연 불륜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일까.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불륜을 하나의 논제로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 그 내용보다 중요한 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이 제목이 주인공인 도현우(이선균)가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의 제목이라는 점이다. 그건 이 드라마가 불륜이란 소재를 가져와 하려는 이야기가 단지 불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오히려 불륜이라는 한 사안을 보는 여러 사람들의 관점들과 그들이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하며 그래서 어떻게 현실을 바꿔가는 지가 주된 관심사라는 걸.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사진출처:JTBC)'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핀다는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려놓는 순간, 그 사적인 이야기는 공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도현우의 처지를 공감하거나 혹은 그의 아내를 비난하는 글들이 채워졌다. 그리고 그 글들은 어찌 보면 글을 쓴 사람들이 그 글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려 한강에 나가는 한 사내(우현)는 도현우에게 댓글로 한강에서 기다리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달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내(이병진)현장을 덮쳐서 다 엎어버리라고 댓글을 단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는 각자 남편과 아내 입장에서 댓글을 단다. 자신들의 상황을 도현우의 상황에 투영시키는 것.

 

하지만 아내가 집을 나가고 비로소 아내의 힘들었던 삶을 이해하게 된 도현우가 게시판에 아내를 용서했다고 올리자 상황은 갑자기 반전된다. 모두가 그걸 이해해줄 거라 믿었지만 그의 용서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이들도 있었던 것. 그 중 불륜패치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가 아내의 신상을 털었다며 복수하기 위해 그녀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나선다. 사적인 내용이라 생각했던 도현우의 이야기가 이제 그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공적인 사안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도현우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불륜패치의 신상공개를 막아보려 애쓴다.

 

공지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아내를 용서한다는 제목의 글을 게시판에 계속 채워 넣던 그를 보며 견디지 못한 아내 정수연(송지효)이 자신은 비난받아도 되지만 남편과 아이만은 보호해달라고 애원하는 글을 올리자 오히려 분위기는 더 싸해진다. 불륜패치는 계속해서 협박을 하고 노트북 배터리가 나간 사이 도현우는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 되지만 그 때 갑자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게시판 사용자들이 모두 아내를 용서하겠습니다라는 글로 도배를 한 것.

 

게시판 사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불륜패치의 협박 상황에서 도현우-정수연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진심이었다. 게시판 사용자 중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용서하지 말라는 댓글을 남겼던 한 사내는 보안전문가였던 자신의 경력을 살려 해킹을 통해 불륜패치의 위치를 파악해내 도현우에게 알려준다. 해킹을 하는 와중에 아내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사내는 이 일을 계기로 서로 가까워진다. 이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그 사안 자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입장을 투영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 사안의 변화가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도 바뀌게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드라마가 흥미로워지는 건 바로 이 드라마가 상기시키는 현 시국의 한 단면 때문이다. 어떤 잘못된 일들이 공적으로 공표되어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차원이 되었을 때 그건 어떻게 사과되어야 하고 또 용서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거기 담겨져 있다. 물론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를 하고 용서를 하고 공적으로도 그 사과와 용서를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해도 당사자들이 실제로 관계를 회복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내에게 다가가던 도현우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떠올리며 뒷걸음질 치게 되는 상황은 용서가 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하물며 부부 간의 사적인 불륜 같은 사안에도 이처럼 사과와 용서가 쉽지 않을진대 국정운영같은 거대한 공적 사안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그래서 그 불륜이라는 소재를 똑 떼어놓고 바라보면 대단히 흥미진진한 현 시대의 소통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믿었던 사람이 엉뚱한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걸 알게 된 뒤의 그 분노와 허탈감이 어찌 쉽게 풀어질 수 있으랴.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의 진정한 사과와 쉽지 않은 용서의 이야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이아바>, 불륜보다 흥미로운 다양한 관점들

 

결혼생활이..... 어느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봐라.. 안 힘들고 안 버거운 사람 있나... 그만큼.. 책임이 따르고...무게가 있기에 결혼서약을하고, 하는거지.. 버겁고. 힘들다고.. 조그만한.. 바람에 흔들리면.. 세상사람 다 흔들리고 쓰러지지...... 나쁜 ×.. 진짜 힘들었을 때.. 말했어야지.. 다른 사람한테 말고.. 그게 예의지.. 나쁜..’ - 한은정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사진출처:JTBC)'

종종 별 보러 오자던 남편은 어디로 가고~~ 그 남편에게 다른 여자들과 둘이서 영화 보고 차 마시고 술 마실 여유는 있었어도, 독박가사에 독박 육아 하는 맞벌이 아내 마음 헤아릴 여유는 없었던 거지... 이 드라마가 위기를 외면하는 부부에게 예방주사가 되면 좋겠다. 이미 일 벌어지고 수습하기엔 상처가 너무 크잖아...’ - 차연

 

이 드라마를 단지 바람 폈다는 사실만 주목하면 안돼지. 이선균과 송지효가 살면서 서로에게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먼저 따져야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정말 결혼한 다음 서로에게 충실한 것하고는 거리가 먼 사회이지. 잡은 물고기에게 왜 먹이를 주냐 식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드라마 보지마라. 그런 사람들은 욕밖에 할 게 더 있냐?’ - anjfqhkf

 

JTBC 금토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대한 기사에는 이런 댓글들이 빼곡하게 달려있다. 드라마에서는 마침 불륜을 저지른 정수연(송지효)이 자신이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해 힘들었던 자신의 심사를 눈물을 흘리며 남편 도현우(이선균)에게 말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맞벌이 하는 워킹우먼으로서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잘 하기 위해 뛰고 또 뛰었고 그게 누구에게나 있는 일로 치부하던 차에 그 사람이 보여주는 친절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갔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정을 가진 워킹우먼들의 입장에서 그녀의 말이 공감 가는 쪽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시청자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도현우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가끔 애 데리러 가줬고 또 쓰레기도 치워줬다며 자기도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도현우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며 도현우의 입장을 지지하는 분들도.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그 내용 안에 이 불륜에 처한 정수연과 도현우의 상황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들을 담아놨다는 점이다. 게시판에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제목으로 도현우가 글을 올려놓자 거기에 대한 익명의 여러 사람들이 의견들을 계속 덧붙인다. 당장 이혼하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참치마요처럼 차분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대처해나가라는 조언도 있다. 그 참치마요에게 너무 자기 입장에서 입바른 소리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고, 그가 쓴 한 줄 한 줄의 진심에 감동하는 입장이 올라오기도 한다.

 

즉 드라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륜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있고, 그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이 또한 다양한 입장들을 내보이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사실 이렇게 되면서 드라마는 단순히 불륜이 갖고 있는 자극적인 상황들이 무한 전개되는 것을 벗어나 좀 더 결혼이라든가 부부관계라든가 혹은 일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다양한 사안들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들이 서로 개진되는 장을 마련해준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 드라마 속 정수연과 도현우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여러 의견을 달고 때로는 격론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그간 당연히 생각해왔던 결혼과 부부관계 같은 것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가 가진 독특함이 드러난다. 드라마적 상황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고 그 일종의 상황극을 통해 저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드라마.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이 드라마를 불륜극이다 말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찌질함에 대한 공감, <질투> 조정석과 <이번 주> 이선균

 

JTBC 새로운 금토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제목이 말해주듯 아내의 바람을 의심하는 남편의 찌질한 시선이 담긴 드라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온 문자메시지에서 호텔에서 만나자는 내용을 본 도현우(이선균)는 아내 정수연(송지효)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지고 그 문자메시지에 담겨진 호텔에서 만나자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진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사진출처:JTBC)'

10년 차 별 볼일 없는 외주프로덕션 PD로 생활해오고 있는 도현우는 마침 불륜 남녀를 소재로 아이템을 기획하면서 회의에서 나오는 말들조차 참아내기 어렵게 된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기를 내 아내에게 그걸 캐묻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 인터넷 게시판에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라는 글로 조언을 구하게 된다.

 

2007년 후지TV에서 방영됐던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어딘지 우리가 봐왔던 불륜 소재의 드라마와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내의 불륜 징후를 알게 되고 전전긍긍하는 남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륜을 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이나, 또 불륜에 대한 복수나 아픔을 담는 이야기하고도 다르다. 특히 남편의 불륜이 아닌 아내의 불륜을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물론 이런 도발적인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불륜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면서 우연히 그 사연을 게시판에 올리게 되고 그걸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랑과 결혼 같은 부부관계에 대한 새로운 공감대를 발견하는 쪽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어찌 보면 결혼 후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의 관계는 익숙해지는 만큼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배우자가 자신에게 대단한 존재인가를 깜박 잊고 살아간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여기에 일종의 위기상황을 집어넣어 그 반응을 통해 잊고 있던 관계를 다시금 확인시키고 회복시키려는 실험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이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도현우의 찌질한 반응들이다. 아내를 의심하고 괜스레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흥신소를 찾아가 증거를 잡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 이 남자는 지극히 현실적이라 오히려 공감이 간다. 아내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하지도 못하고, 의심스런 행동(이를테면 문자를 주고받는)을 보이면 괜스레 주변을 빙빙 돌며 유도 심문하듯 질문을 던지는 남자. 그러면서도 결혼기념일에 모든 걸 털어내려 선물을 준비하는 남자에게서 어떤 따뜻한 인간미 같은 게 느껴진다.

 

멋지게 포장하기 보다는 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떤 면에서는 찌질함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공감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가 불륜이라는 소재를 갖고 왔지만 어떤 따뜻함 같은 게 느껴지고, 특히 이 남자 도현우가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는 찌질한 남자들에 대한 공감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조정석)이나 MBC <쇼핑왕 루이>의 루이(서인국) 같은 캐릭터들이 대표적인 찌질한 남자들일 것이다. 잘난 척 하기보다는 떼쓰고 잘 삐치고 징징대는 남자. 과거 그 많던 멋진 실장님들이나 현대판 왕자님들하고는 너무 다른 남성상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도현우 역시 바로 그런 캐릭터들 중 하나다.

 

그런데 도대체 그 잘난 왕자님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찌질한 남자들이 차지하게 됐을까. 그것은 아마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 현실을 알게 된 시청자들에게 왕자님 같은 막연한 판타지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된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그보다는 조금 찌질해도 그것이 인간적으로 보이고 나아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런 현실적인 인물들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커져 있다는 걸 이들 캐릭터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JTBC드라마 라인업, 그 기대감

 

<미생>, <시그널>, <기억>, <디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또 오해영>까지. tvN이 최근 내놓은 드라마들의 성취는 놀랍다. 거의 영화적인 영상미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엣지 있는 메시지, 게다가 톱 배우들의 인생연기라 할 만큼 돋보이는 연기까지 높은 완성도를 가진 드라마들을 이렇게 연달아 내놓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tvN 드라마 때문에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이 너무 비슷한 패턴에 묶여있는 지상파 드라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tvN 드라마는 확실히 브랜드를 쌓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이러한 흐름에 따라 최근 눈에 띄는 것이 JTBC드라마의 하반기 라인업이다. 사실 <밀회>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온 JTBC지만 최근 1년 동안 JTBC드라마는 이렇다 할 한 방을 보여주진 못했다. 드라마 편수도 1주에 한 편으로 줄였고 그렇게 라인업된 드라마들도 어떤 건 너무 과해서 어떤 건 너무 약해서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엔 어려웠다. 그나마 <송곳>이나 <욱씨남정기> 같은 드라마가 시대 현실을 날카롭게 찌르며 자존심을 세워줬을 뿐이었다.

 

이렇게 된 건 JTBC드라마가 그간 일종의 숨고르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달라지고 있는 드라마 트렌드에 맞춰나가기 위해 인력을 보강하고 작가와 배우들을 차근차근 섭외해나가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하고 있었던 것. 최근 나오고 있는 JTBC 하반기 드라마 라인업은 그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청춘시대>,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힘쎈 여자 도봉순>, <맨 투 맨> 등이 그 작품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마녀보감>의 후속으로 들어오는 <청춘시대>. 우리에게 <연애시대>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박연선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작년 방영되어 호평을 이끌었던 <사랑하는 은동아>의 이태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연애시대>가 이혼 후 연애라는 당대의 달라진 결혼풍속도의 일단을 감각적인 대본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면, <청춘시대>는 셰어하우스에 동거하는 다섯 명의 청춘들의 연애담이 담겨질 예정이다. 무엇보다 박연선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큰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이선균 캐스팅에 유명한 일드 리메이크로 벌써부터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송곳>을 연출했고 <조선명탐정> 같은 영화 연출로도 유명한 김석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10년 차 PD의 이야기지만, 요즘 시대에 맞게 SNS를 통한 고민상담 같은 트렌디한 요소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게감 있는 주제지만 가벼운 코미디 스타일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박보영 캐스팅으로 내년 1월 방영을 예정하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여성들의 히어로를 담아낼 이 작품은 그 캐릭터가 박보영이라는 배우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질 것인가가 주목되는 드라마다. <사랑하는 은동아>로 감각적인 필력을 인정받은 백미경 작가가 대본을 쓰고 <욱씨남정기>의 이형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연기자 박보영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드라마.

 

<맨 투 맨>은 메가히트를 거둔 <태양의 후예>를 공동집필한 김원석 작가의 작품으로 <치즈 인 더 트랩>으로 중국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박해진이 주연을 맡았다. 배우와 경호원의 이야기로 <태양의 후예>가 보여줬던 액션과 멜로의 또 다른 교집합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를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아직 확정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7급공무원>을 쓴 천성일 작가의 <더 패키지>가 기획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현지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성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스토리라인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연희가 출연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JTBC 하반기 드라마 라인업에서 주목을 끄는 건 박해진, 이선균, 박보영 같은 캐스팅과 박연선 작가, 김석윤 감독, 김원석 작가 같은 스타 제작진들의 면면이다. 드라마를 성공시키는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결국 드라마의 성패는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JTBC 드라마의 하반기 라인업은 확실히 시선을 끄는 면이 있다. 만일 tvN 드라마들이 거둬가고 있는 성과들처럼 JTBC 드라마가 결실을 가져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네 드라마 판도는 또다시 새롭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냉장고를 부탁해>, 특별했던 이선균과 샘킴의 조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샘킴 셰프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막연히 <파스타>의 버럭 셰프를 연기했던 이선균을 떠올린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파스타>에서 이선균이 연기한 최현욱 셰프의 모델이 바로 샘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샘킴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전혀 최현욱 셰프의 그 버럭이 아니다. 늘 조용조용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심지어 소심함까지 보이는 샘킴은 순둥이캐릭터로 불린다. 즉 파스타 장인으로서의 샘킴을 모델로 했다는 것이지 그의 성격을 캐릭터화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냉장고를 부탁해(사진출처:JTBC)'

그래서 처음 샘킴을 프로그램에서 보는 시청자들은 그에게서 기대했던 <파스타>의 버럭과는 너무나 다른 유한 모습에 반색할 수밖에 없다. 수줍게 웃으며 묵묵히 요리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예능과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예능감 쪽 뺀 요리사로서의 진중하고 섬세한 모습의 진정성은 오히려 시청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허세 최현석 셰프가 단박에 입맛을 확 사로잡는 자극적인 맛의 캐릭터라면 샘킴은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변함없는 맛의 캐릭터다.

 

그러니 샘킴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먼저 만들었던 이선균이 게스트로 나오고 그의 냉장고를 털어 그를 위한 요리를 샘킴이 해주는 그 콜라보레이션은 그 조합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만들 수밖에 없다. 너무나 친하기 때문에 이선균은 마치 <파스타>의 최현욱 셰프가 돌아온 것 같은 버럭 오더를 날리고, 그것을 샘킴이 마치 후배 요리사나 된 듯 예 셰프를 외치며 만드는 상황. 이 상황은 게스트로 나온 이선균은 물론이고 샘킴이라는 캐릭터가 모두 살아나는 장면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물론 셰프들이 마치 기록경기를 하는 듯 냉장고의 평범한 재료들로 현란하게 요리를 내놓는 것이 메인 요리가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출연하는 셰프들끼리, 또 셰프와 게스트, 셰프와 진행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와 케미들이 만들어내는 사이드 디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어찌 보면 비슷한 형식이 매번 반복되면서도 그것이 별로 물리지 않는 맛을 계속 낼 수 있는 건 바로 이선균과 샘킴 같은 관계들의 조합이 의외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어깨 너머로 셰프들의 요리를 봐오며 이제는 셰프 못잖은 요리를 내놓는 김풍과 그가 사부로 모시는 이연복 대가의 관계를 떠올려 보라. 마치 감초 역할을 하는 인물처럼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김풍은 요리에 있어서도 다른 셰프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셰프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걸 상쇄시켜주는 건 이연복 대가 같은 인물과 사제지간 같은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허세 최현석 셰프가 최근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오세득 셰프와 크롱셰프 이찬오의 사이에 앉아서 두 셰프를 서로 비교하며 내놓은 멘트들은 이 세 캐릭터들의 관계와 다른 매력들을 부각시킨다. 감성 돋는 이찬오 셰프와 어딘지 무뚝뚝한 매력의 오세득 셰프. 두 사람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아재개그의 신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셰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의 대결구도나 툭탁거림은 그 자체로 친근함의 표시로 다가온다.

 

어디 요리가 한 가지 재료만으로 맛이 날까. 결국 요리의 맛이란 여러 재료들이 저마다의 맛을 내고 그것이 하나로 섞여 조화를 이룸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요리가 여러 번 만들어져도 식상하지 않고 늘 새로운 맛을 내는 건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출연자들이라는 재료들의 조화와 케미가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샘킴과 이선균의 재미있고 훈훈한 콜라보는 바로 이런 <냉장고를 부탁해>만의 묘미를 잘 보여준 사례다.



<삼시세끼>, 왜 김광규만 보면 다 짠해할까

 

시커먼 네 남자들이 파스타를 해먹는 광경을 보여주며 <삼시세끼>는 이들을 캐릭터화 했다. 항상 긍정적인 옥택연은 긍정이, 반대로 까칠하게 툴툴대는 이서진은 까칠이, 드라마 <파스타>에서의 캐릭터가 갓 밖으로 나온 것처럼 버럭 대는 이선균은 버럭이, 그리고 매사에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광규는 소심이라 이름 지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선명하게 다른 이들의 성격을 이처럼 각각의 캐릭터로 분류해 놓자 이들 사이에 의외의 케미들이 더 명쾌하게 그려졌다. 이를테면 버럭이 이선균과 소심이 김광규가 짝을 지어 파스타를 만들 때 마치 죽이 잘 맞는 셰프와 보조 같은 풍경이 그려졌고, 까칠이 이서진과 소심이 김광규가 함께 나란히 차 뒷좌석에 앉아 하품을 할 때도 그 성격적인 차이에 따라 다른 하품하는 모습이 비교되면서 웃음을 주었다.

 

또 김광규와 이서진이 수확으로 번 돈으로 사들인 선풍기를 틀어 놓고 방에 늘어져 있을 때, 불 담당 옥택연이 옥수수를 구워 먹는 장면에서는 그의 긍정이 캐릭터가 제대로 그려졌다. 즉 불이 너무 세서 한 쪽은 타고 다른 한 쪽은 익지 않은 옥수수를 들고 그 중간 줄을 먹으면서 여기가 제일 맛있다고 말하며 웃는 옥택연의 모습은 딱 긍정이캐릭터였던 것.

 

실제로 이 캐릭터들은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만들고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세끼 집에서의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까칠이 이서진은 그 차도남의 성격 때문에 이 시골 삶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더 흥미롭게 그려졌었다. 그 까칠하고 귀차니스트이지만 그렇게 늘 투덜대면서도 또 할 건 다 해내는 성격은, 순사 나영석 PD와 밀당하게 해줌으로써 이 시골 삶에서의 적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옥택연은 긍정이란 캐릭터 그대로 매사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인물. 어려울 것 같은 요리 미션도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일단 만들어보는 모습은, 그래서 폭망한 요리 때문에 웃음의 결과를 주기도 했고 때로는 의외의 성공에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 여름 땡볕 아래서도 늘 가마솥 앞에서 불을 피우는 그는 그 무한긍정을 넘어 심지어 옥빙구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끼 집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소심이 김광규는 그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프로그램의 중심으로 들어오기보다는 늘 옆자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보조로는 형이 최고인거 같아라고 한 나영석 PD의 말처럼 그는 세끼 집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다들 잠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혼자 밭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어떤 짠함 같은 걸 주는가 보다. 게스트로 찾아온 손호준도 또 이선균도 김광규를 짠해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읍내에 나갔다가 동식이가 광고 제의까지 받았다는 얘기에 이서진은 광규 형도 못 찍은 CF를 동식이가 먼저 찍어?”하고 말했다. 김광규는 환하게 웃으며 동식이에게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금 씁쓸한 표정이었다. 세끼 집 남자들은 그날 밤까지 이 동식이와 김광규를 비교하며 웃음을 지었다.

 

사실 뒤늦게 합류한 김광규의 모습은 이서진이나 옥택연처럼 전면에 드러나진 않는다. 그는 이서진과 옥택연보다 나이 많은 형이지만 세끼 집에서는 늦게 들어온 막내로 불리기를 자처한다. 그렇게 전면에 나와 있진 않지만 늘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김광규. 그래서 소심이라고 불려도 그가 있어 세끼 집의 훈훈한 정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이렇게 <삼시세끼>가 캐릭터화한 긍정이, 까칠이, 버럭이, 소심이는 저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 슬픔, 소심, 까칠 같은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한다. 모두가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슬픔이는 늘 일을 망치는 것만 같고 그래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슬픔이 해주는 역할이 없었던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김광규는 당장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도 세끼 집 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누군가의 요리가 만들어질 때 그 심부름을 기꺼이 해주면서 훈훈해지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처럼 그 역할이 가려져 있지만.



게스트로 보이는 <삼시세끼>의 초지일관

 

tvN <삼시세끼>의 가장 큰 특징은 정착형 예능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곳을 계속 찾아가는 여행과는 달리,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변화과정에 집중한다. 늘 새로움을 줘야 하는 일반적인 예능으로서는 그리 유리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워 보이는 풍경이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도시인들의 로망을 건드렸다. 그저 하루 세끼 챙겨먹는 일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인 시간들.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그런 무료함은 어느새 판타지가 되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인지라 <삼시세끼>가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카메라는 옥순봉 세끼집 주변에 자라는 꽃을 벌의 시점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하고, 작물들이 자라나는 장면들을 생명의 신비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경이로운 장면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반복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패턴을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삼시세끼>는 게스트라는 변수를 활용한다. 새로운 손님을 초대함으로써 그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

 

최근 <삼시세끼>의 게스트 활용법을 보면 쿡방 전성시대를 총망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를 배워온 손호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요리 대결을 벌이는 홍석천이 찾아온 데 이어 드라마 <파스타>로 버럭 셰프 캐릭터를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이선균이 다음 게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쿡방의 주역들을 게스트로 출연시키면서도 거기에 <삼시세끼>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명민함이 돋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이 아니라 손호준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냉장고를 부탁해>의 전문 셰프들이 아니라 연예인 요리사인 홍석천을, 그리고 <파스타>의 실제 모델이었던 샘킴이 아니라 그 드라마 주인공인 이선균을 출연시킨다는 건 특별한 선택이다. <삼시세끼>는 전문 셰프들을 출연시키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삼시세끼>가 요리사들의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는 쿡방과는 다른 결을 가진 예능이라는 걸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삼시세끼>는 요리사들의 예능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요리를 해먹는 것이 포인트다. 그러니 백종원보다는 요리 무식자에 가까운 손호준이 낫고, 요리만이 아니라 특유의 흥을 가진 홍석천이 훨씬 낫다. 물론 이선균은 요리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의 버럭 캐릭터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손호준은 <집밥 백선생>에서 배워온 강된장으로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김광규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삼시세끼> 내용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손호준이 김광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그 관계가 훨씬 더 주목되었다. 홍석천이 출연한 방송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선보인 태국식 요리들만큼 흥미를 준 것은 딱딱하게 타버린 빵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제빵왕 서지니의 변명이었다.

 

쿡방이 대세지만 <삼시세끼>는 그렇다고 전문 요리사들을 데려와 화려한 요리 쇼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한 끼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손호준이나 홍석천, 이선균이 모두 요리와는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출연이 화려한 쿡방을 예고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래서 평범하고 보통인 한 끼를 고수한다는 점은 <삼시세끼>가 가진 일관된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일이다



막장드라마들 속 <참 좋은 시절>의 가치

 

착한 여잔 나쁜 남잘 좋아해 왜. 나쁜 남잔 나쁜 여잘 좋아해 왜. 그래서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해. 근데 너는 이런 내 맘을 몰라 왜.’ 최근 발표된 2NE1착한 여자라는 곡이다. 노래가 말해주듯이 요즘 착하다는 것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나쁘다는 것이 쿨하고 세련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한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줄곧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가치로 세워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열광이 더 두드러진다. <학교 2013>에서 이종석만큼 주목을 끈 김우빈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울분 같은 걸 보여준다. 김우빈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상속자들>을 통해서 그 매력을 폭발시켰다. 최근 <사남일녀> 같은 가족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고 있는 김우빈은 오히려 이 나쁜 남자 이미지로 고정되는 자신을 부담으로까지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나쁜 남자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이 진짜 악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나쁘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상처받은 착한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나쁘다는 건 캐릭터의 능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나 <나쁜 남자>의 김남길처럼 재력이든 능력이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쁘게 행동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 즉 나쁘다는 건 성공한 자, 혹은 가진 자의 자신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선의 가치가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착한 드라마들은 독하디 독한 막장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KBS의 새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대해 낯설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거꾸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독한 드라마들에 중독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이전 동시간대 드라마였던 <왕가네 식구들>은 그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 때문에 막장 논란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다. <왕가네 식구들>의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의 이 착함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세컨드와 함께 가족을 이뤄 생활하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서로를 챙겨주기 바쁜 며느리와, 권위라고는 손톱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자애롭다 못해 연민마저 느껴지는 시아버지,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이 집에 맡긴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사는 여인이나, 어찌해 갖게 된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못하고 동생이라 부르며 사는 그 여인의 아들 또한 그 밑바탕에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오로라 공주>처럼 툭하면 작가의 손에 의해 인물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와는 정반대다. <참 좋은 시절>에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이미 <고맙습니다>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경희 작가는 선의 가치를 믿게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마치 세상에 매력적인 착한 남자는 없다는 세태와의 정면대결을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극이고 일일극이고 할 것 없이 막장이 창궐하며 선의 가치보다는 악의 가치를 세련됨의 상징이나 되듯이 보여주는 요즘의 세태에 이 드라마는 어딘지 투박해보여도 정감이 가는 참 좋음의 가치를 새삼 드러내준다. 선하다는 건 진정 한물 간 가치가 아니다. 다만 난무하는 자극이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미스코리아>, 치열한 일과 멜로가 만났을 때

 

역시 서숙향 작가의 멜로는 확실히 다르다. 그저 그런 잘 난 남자와 신데렐라의 이야기 따위는 그녀의 드라마에서는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드라마에는 치열한 일터의 현실이 있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구원하는 왕자 같은 남자? 아마도 여성들은 그런 판타지를 꿈꿀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서숙향 작가의 작품 속 남자들은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있음직한 그런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리얼리티 멜로라고나 할까. <별에서 온 그대>가 심지어 외계인을 등장시켜 여심을 사로잡는 판타지 멜로의 극점이라면 <미스코리아>는 치열한 삶의 현장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리티 멜로의 극점이다. 97IMF 시절, 한창 벤처 붐이 일었던 그 시대의 공기를 <미스코리아>는 제대로 포착해낸다. 순수한 벤처 정신을 가진 많은 창업자들이 한편으로는 조폭 같은 대부업체의 손에 의해 도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벤처 투자가라는 명목으로 된다 싶은 업체를 사냥하는 이들에 의해 회사를 빼앗겼던 시절이다.

 

비비화장품 주변을 맴도는 정선생(이성민)이나 이윤(이기우) 같은 캐릭터는 그래서 당시의 조폭과 벤처 투자가라는 벤처의 위협을 표징하는 인물들이다. 비비화장품 사장 김형준(이선균)은 순수한 벤처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지만 바로 그렇게 곧기 때문에 번번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성희롱이 일상이 된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연희) 역시 이 사라져버릴 직종의 끝자락에서 미스코리아라는 지푸라기를 잡고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다.

 

미스코리아라고 하면 어딘지 부정적인 인상이 먼저 떠오르지만 오지영이 미스코리아를 선택하는 건 그녀가 결국 가진 것이 몸뚱어리 하나뿐이라는 그 절박함을 드러내준다. 하지만 그녀가 미스코리아를 키워내는 마애리(이미숙)가 아닌, 가진 건 없지만 진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미스코리아로 만들어주려는 김형준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단지 멜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상품화되는 몸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몸으로서 오지영이 미스코리아가 되려는 진심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 언젠가부터 멜로는 사랑 하나만이 아닌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성들의 달라진 삶이 반영된 탓이다. 점점 늘고 있는 직장여성들에게 사랑은 일과 무관하지 않고 또 일 역시 사랑과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을 다루는 멜로에서 남녀 주인공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실로 드라마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서숙향 작가의 멜로드라마가 남다른 것은 그 일의 세계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마치 전쟁터 같은 느낌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차별이 존재하고 그러기 때문에 파리 목숨이 되기도 하는 일하는 여성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파스타>가 라스페로라는 이태리 레스토랑의 주방을 사나운 불길과 날카로운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그려지듯이 <미스코리아>의 드림백화점의 엘리베이터라는 폐쇄된 공간은 숨 막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텨내는 감옥 같은 공간으로 그려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 앞에 나타난 남성들이 사랑 그 자체의 마취적인 탈출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일을 지지해지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물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일에서의 성공과 사랑으로의 성공. 이것은 현대여성들이 꿈꾸는 가장 현실적인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별에서 온 그대>에 밀려 조금 저조한 시청률을 냈지만 그렇다고 <미스코리아>가 실패한 드라마는 아니다. 97년의 한 시대적 풍경 속에서 그려낸 서숙향 작가의 일과 사랑은 충분히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서숙향 작가가 여성들의 성장 멜로에 있어서 각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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