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이제 홍일지구대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열라 목숨 걸고 처맞고 일해도 결국에는 그런 놈들 한두 명 때문에 우리 경찰들 다 싸잡아서 비리경찰, 짭새, 양아치 경찰 소리하는 거 한두 번 들어?”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에서 은경모(장현성)는 오양촌(배성우)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부사수였던 이주영(장혁진)이 도박단과 성매매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에 눈이 돌아버려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던 오양촌을 나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양촌의 분노는 공감할만한 일이었다. 그래도 한때 함께 일 해왔던 부사수였기에 배신감이 더 컸던 것이다. 게다가 이주영은 오양촌의 사수가 사고로 죽었을 때 오양촌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증거물이었던 블랙박스를 감사실에 넘기지 않았던 전적이 있다. 결국 오양촌은 이주영을 챙기기 위해 지구대로 강등되는 걸 감수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 배신감이 얼마나 더 컸겠는가.

<라이브>에서 오양촌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 같은 존재다. 그는 사수를 잃었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고, 아내 안장미(배종옥)의 요구에 의해 결국 이혼까지 했다. 젊은 시절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이순재)는 이제 힘이 다 빠져 마치 사죄하듯 엄마의 병실을 다니는 것이 일과가 됐다. 결국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엄마의 연명치료를 끊어버리려고까지 한다. 그것이 자신들 마음 편하려고 하는 짓일 뿐이라고 한탄하며.

알 수 없는 분노가 가득하고, 모든 일들이 꼬여버린 듯한 상황이 바로 오양촌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은경모는 그에게 아픈 이야기를 쏘아댄다. “네가 경찰 레전드라고? 야, 웃기지 마. 넌 아무 것도 아냐. 내가, 동료가 의지할 수 있는 놈도 아니고 안장미가 남편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 놈도 아니고, 너는 그냥 동료, 여편네 걱정이나 시키는 성질 더러운 덩치 큰 애새끼야. 알아?”

그래서 화가 가득한 이 인물에게 어떤 불편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들여다볼수록 이 인물이 가진 아픔이나 분노에까지 공감하게 된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뒤틀어져버린 세상의 많은 이들이 어쩌면 ‘분노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이든 경찰 이삼보(이얼)가 앙심을 품은 고등학생의 사주에 의해 촉법소년들이 벌인 폭력에 가차 없이 당하는 장면은 단적이다. 

이제 나이 들어 대적할 힘이 없어 두들겨 맞은 일을 이삼보는 애써 숨기려 한다. 이제 시보로 부사수가 된 송혜리(이주영)에게조차 그는 사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늙은 사수’ 때문에 사건다운 사건을 맡지 못한다는 송혜리의 푸념에 발끈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과거처럼 혈기 넘치는 젊은 경찰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핸드폰에는 송혜리를 ‘내 마지막 시보’라고 적어놓는 그 마음이 저릿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라이브>가 보여주는 경찰의 모습은 우리가 늘 봐왔던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삼보처럼 나이 들어 두들겨 맞는 경찰의 모습이 그렇고, 오양촌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등되는 경찰의 모습이 그러하며, 안장미처럼 경찰생활이 가진 특징 때문에 가정적이지 못한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같이 살아가는 경찰이 그렇다. 하는 일들도 엄청난 강력 사건만이 아니라 밤이면 주폭들에 의해 벌어지는 시비를 말리느라 온 몸에 멍이 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어딘지 거칠고 현실에 적응을 못하며 날뛰는 듯 보이는 오양촌의 분노와 상처가 불편하면서도 점점 공감하게 된다. 물론 은경모가 말하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게 진정한 레전드 경찰의 모습이겠지만,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에서 어떤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진다. 바로 이 지점이 <라이브>가 그리려는 있는 그대로의 경찰의 모습이 아닐까. 늘 상 아픈 사건들을 들여다봐야 하는 그 직업적 특성상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기 힘들지만 그래도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아픔과 분노를 느낄 수 있는 이들이라는 것.(사진:tvN)

‘라이브’를 진짜로 보이게 만드는 명배우 명연기들

단합대회에서 최명호(신동욱)가 한정오(정유미)에게 살짝 볼 뽀뽀를 하고 그걸 멀리서 바라보는 염상수(이광수)의 모습은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에 삼각멜로가 향후 전개될 거라는 걸 암시한다. 아마도 경찰들이 주인공들이고 사건사고가 계속 터지는 이 형사물 같은 장르적 성격을 띤 드라마에서 굳이 경찰들 간의 멜로를 집어넣은 건 ‘그들도 사람’이라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또 한 방식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그 설정 자체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서 더 주목되는 건 이들의 모습을 진짜로 보이게 만드는 명배우들의 명연기들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 바로 오양촌 역할을 연기하는 배성우와 그와 이혼한 아내로 나오는 안장미(배종옥)다. 물론 지구대장인 기한솔 역할의 성동일이나 오양촌의 아버지 역할로 나오는 이순재 같은 말 그대로 ‘생활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미친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지만, 드라마의 구성상 오양촌과 안장미가 그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오양촌은 강력계의 레전드로 이름을 날리는 형사였지만 사수의 사고사와 함께 그 책임을 억울하게 떠안고 지구대로 강등되어 오게 된다. 여기에 아내인 안장미가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그걸 받아들인다. 범인을 잡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좋은 경찰이지만,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내는 물론이고 자식들에게까지 아빠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결국 <라이브>가 그려내려는 경찰의 실제 모습이라는 건 오양촌으로 대변되는 멋진 형사로서의 모습과는 다른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장이자 남자의 모습인 셈이다.

오양촌을 바라보는 안장미의 시선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경찰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담고 있다. 안장미는 차갑게 오양촌에게 “이혼하자”고 말하고 하나하나 이혼의 사유를 또박또박 이야기함으로써 거부하려 날뛰는 오양촌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낸다. 그는 오양촌이 최고의 경찰이라는 건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 남편으로는 최악이었다는 걸 마치 사건을 분석해내는 것처럼 냉철하게 꼬집는다. 그래서 결국 안장미의 요구를 받아들여 오양촌은 이혼도장을 찍지만 그는 여전히 주장한다. 같이 살지만 않을 뿐이지 달라진 건 없다고. 

배성우와 배종옥이 <라이브>에서 제대로 된 연기의 깊은 맛을 드러내는 지점은 이 작품이 가진 경찰을 보는 두 관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배성우는 누가 봐도 딱 그럴 것 같은 다혈질의 열혈형사를 연기하면서, 그런 성정이 일에서는 굉장한 힘을 발휘하지만 인간관계(부부든 동료든)에서는 오히려 불협화음을 낸다는 걸 보여준다. 배종옥 역시 사건 현장에서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베테랑 형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쩐지 가정으로 돌아오면 쓸쓸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라이브>는 전면에서 뛰고 있는 신입 경찰 한정오와 염상수의 성장드라마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오양촌과 안장미가 오래도록 경찰생활을 해오며 성장하긴 했지만 그래서 잃었던 것들을 되새기는 이야기를 담는다. 오양촌과 안장미의 또 다른 성장드라마가 그려지고 있는 것. 청춘 멜로의 설렘도 궁금하지만 이 위기의 중년 경찰 부부가 어떻게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찾아낼 것인가 또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tvN)

'돈꽃' 명작으로 만든 김희원 PD, 특급 드라마 연출자가 나타났다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돈꽃>은 막장이 아니냐는 의심에서 시작해 명작으로 끝을 맺었다. 사실 우리가 막장이라고 부르는 드라마의 범주는 애매모호하다. 지나치게 자극을 추구한다거나 혹은 만듦새가 엉성해 도무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드라마를 흔히 막장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그저 ‘기업극화’나 ‘복수극’ 혹은 ‘출생의 비밀’ 같은 코드들을 무조건 막장이라는 선입견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막장과 명작으로 가르는 건 결국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만듦새에 있고, 또 그 만듦새가 지향하는 일관된 메시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돈꽃>이 그 흔한 복수극과 기업 내의 권력 투쟁 같은 흔한 소재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명작이 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이 작품이 가진 완성도 높은 만듦새와 일관된 메시지에 있다.

<돈꽃>의 완성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김희원 PD의 연출이다. 김 PD는 여타의 막장 드라마들이 하는 ‘속도’에 대한 강박 같은 걸 애초부터 벗어버렸고, 그래서 느릿느릿 읊조리듯 이어지는 대사들에 대한 집중력을 만들었다. 이 부분은 <돈꽃>이 시청자들을 조금씩 빨려들게 만든 가장 큰 힘이다. 막장드라마들의 경우 그 허술한 개연성을 가리고 자극적인 전개를 앞세우기 위해 빠른 속도의 연출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인물들에 깊게 몰입할 수 없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꽃>은 아주 천천히 장면들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들이 그 인물의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바로 이점은 시청자들이 꽤 많은 <돈꽃>의 인물들에 몰입하게 만들었고, 따라서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감정들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대립구도 속에서도 단순 선악구도로 빠지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주었다.

<돈꽃>의 연출에서 큰 역할을 한 건 배경음악이다. 조금씩 깔리는 선율의 리듬감은 일관된 연출의 묘를 만들어냈고, 드라마에 비장미를 더해줬다. 자본의 세상에서 좋아 보이기만 하는 행복의 실체가 결국 돈으로 좌지우지된다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드러내는 이 작품은 그래서 이러한 비장미가 더해져 비극의 형태를 가능하게 했다. 현대판 비극이 어쩌면 자본이라는 새로운 신에 의해 축조된 욕망이 만들어내는 거라는 걸 드라마는 메시지를 통해 보여줬고, 거기서 장중하고 일관된 배경음악은 그걸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돈꽃>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이러한 쉽지 않은 작품을 잘 소화해낸 연기자들의 공이다. 장혁은 자신까지 파괴해가는 복수극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전하는 처연함 같은 걸 제대로 표현해냈고, 이미숙과 이순재는 역시 베테랑 연기자로서 드라마의 극적 갈등을 만드는 양대 기둥을 세워주었다. 이 바탕 위에서 박세영이나 장승조 같은 젊은 연기자들은 물론이고 임강성, 박정학 같은 배우들까지 어느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촘촘한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에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게 해준 건 역시 김희원 PD의 연출이다.

지금껏 우리는 드라마가 작가의 작품이라고만 생각해온 경향이 있다. 물론 지금도 작가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또 연출자 중에도 몇몇은 작가보다 더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돈꽃>의 김희원 PD만큼 작품에 있어서 연출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연출자는 흔해 보이지 않는다. <돈꽃>이 명작이 된 데 있어서 그의 연출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 면이 있다.(사진:김희원 PD, MBC)


많은 드라마들이 배워야할 ‘돈꽃’의 미학

도대체 이 그리스 비극을 연상케 하는 비장미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이제 2회만을 남긴 MBC 주말드라마 <돈꽃>을 되돌아보면 이 작품이 현재의 드라마 현실에 있어서 독특한 아우라를 남기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세태를 담는 가벼운 소품들이거나 고유의 문법을 따라가는 장르물이거나 혹은 자극적인 코드들로 버무려내는 뻔한 막장극 같은 것들이 안타깝게도 지금의 드라마 세상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간간히 명작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더더욱 그런 명작들이 소중하게 다가오지만.

<돈꽃>은 오랜만에 보는 정통 비극이다. 이 드라마의 서사구조는 그리스 비극의 그것을 거의 닮았다. 세상 밖으로 내쳐진 주인공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오는 과정이고, 자신을 버린 자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이다. 그런데 그 복수의 대상이 친족 간에 벌어진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훨씬 근원적이고 원초적이다. 

이런 점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건 주인공인 강필주(장혁)와 정말란(이미숙) 그리고 강필주와 장국환(이순재)의 관계다. 강필주는 자신의 가족을 모두 비극으로 몰아넣은 정말란에게 복수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가깝게 지내온다. 그건 마치 부모 자식 같은 관계이면서도 연인 관계이기도 하다. 결국 강필주가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면서 이 모든 관계를 깨버린다. 이건 정말란에 대한 복수지만, 그 과정에서 관계의 당사자였던 강필주 역시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된다.

이건 강필주와 정말란의 아들 장부천(장승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오며 형제 같은 우정관계를 만들어왔다. 물론 겉으로는 강필주 스스로 ‘장부천의 개’라고 지칭하며 그를 위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애증만큼 끈끈한 형제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죽을 위기에 처한 장부천을 강필주는 애써 구해낸다. 물론 그들은 청아그룹의 권좌를 놓고 죽고 사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운명이지만.

강필주와 나모현(박세영)의 관계는 더더욱 애처롭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모현에 의해 강필주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자신이 청아그룹과 얽히게 된 것도, 그래서 진짜 사랑이라 여겼던 장부천과의 부부관계도 모두 강필주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라는 걸 확인했고, 장국환(이순재) 명예회장으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가 자살시도까지 하게 된 사실을 확인한 나모현으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강필주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 강필주는 청아그룹의 꼭대기에 오르게 되지만 그건 자신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극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복수극은 자신이 한 평생을 들여 만들어온 관계들을 깨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자신 또한 파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강필주가 정상을 향해 오르고 또 복수극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자신을 파국으로 모는 과정과 동일하다. <돈꽃>이 정통적인 비극의 틀을 갖추고 그 어떤 드라마보다 비장해지는 건 이런 드라마의 비극적 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복수의 완성과 정점으로 오르는 성공의 과정이 동시에 파국의 과정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이 드라마의 제목 속에 그 답이 들어가 있다. 모두가 꿈꾸는 꽃처럼 화려해 보이는 욕망이 사실은 돈으로 만들어진 허상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얘기하고 있다. 그러니 <돈꽃>이 특별한 가치를 가진 드라마라는 것은, 자본이라는 물질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낸 흔치않은 비극이라는 점 때문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자손을 죽음으로까지 몰아넣는 장국환 회장이라는 캐릭터는 이 <돈꽃> 세상의 추악함과 비정함을 현시하는 인물이다. 그는 순혈만을 인정하고 혼혈은 심지어 그룹을 위해 제거해야할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인물이다. 필요하면 정략결혼을 시키고, 또 필요하면 장인에게 자살을 사주하기까지 하는 인물. 갖가지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먹고 모든 걸 말 한 마디로 다 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는 <돈꽃> 세상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그 거대한 괴물과 마주하고 그를 무너뜨릴 신탁을 받은 강필주라는 운명적인 영웅의 서사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로 우리네 드라마에서 오랜만에 보는 무게감 있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비장미 넘치는 연출과 절제미가 뛰어난 연기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돈꽃>의 미학은 갈수록 가벼워지기만 하는 드라마들이 배워야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사진:MBC)

‘돈꽃’, 연출·연기·대본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보기 드문 수작

MBC 주말드라마가 그간 방영해왔던 드라마들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돈꽃>은 시작부터 막장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여기에는 제목도 한 몫을 했다. ‘돈’이라는 단어를 직설적으로 붙여 ‘돈꽃’이라 붙인 제목은 이 드라마에 ‘속물적인 뉘앙스’를 선입견으로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 방영되면서 초반부터 등장하는 기업극화적 분위기와 복수극의 틀은 그런 선입견을 확증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이건 완벽한 선입견으로 인한 오해다. <돈꽃>은 막장드라마가 아니고 오히려 촘촘하게 얼개가 짜여진 완성도 높은 드라마이며, 특히 놀라운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물론 이 드라마 속에는 우리가 막장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출생의 비밀이나 성공을 위한 이전투구와 복수극 코드가 들어있다. 하지만 <돈꽃>이 이런 소재들을 담는 방식은 실로 진지해 막장과는 너무나 다른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마치 같은 코드들을 썼어도 삶의 비의를 담아내곤 했던 그리스 비극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돈꽃>의 주인공인 강필주(장혁)는 친구이자 보스인 장부천(장승조)을 청아그룹 회장에 앉히려는 인물. 그래서 그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목되는 나기철(박지일) 의원의 딸 나모현(박세영) 모르게 모든 걸 꾸며 장부천과 정략결혼시킨다. 하지만 청아그룹 회장 자리를 노리는 장여천(임강성)과의 대결과정에서 청아그룹과 나기철 의원의 유착이 폭로되면서 청아그룹의 실권자인 장국환(이순재) 명예회장의 권유에 의해 나기철 의원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쉽게 흘러갈 것 같은 상황들은 모두 뒤집어진다. 

강필주는 사실 장부천의 모친인 정말란(이미숙)에 의해 강물에 던져졌던 장씨 가문 후처의 아들 장은천이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위해 정말란이 욕망하는 것처럼 장부천을 회장에 앉힌 후 그 꼭대기에서 밀어내버리려 한다. 그것이 가장 처절한 복수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부천 역시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그는 자신에게 장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정말란의 운전기사인 오기평(박정학)이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강필주가 사실 장은천으로 장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자신이 그의 꼭두각시였다는 걸 알아차린다. 

<돈꽃>은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진짜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대사도 굉장히 절제되어 있고, 오히려 영상 언어를 통해 인물의 내적 감정을 표현해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못 어려운 드라마의 선택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건 놀라운 연출력이다. 

막장드라마의 연출들이 빠른 속도에 집착하고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대사에 기댄다면, <돈꽃>의 연출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속도는 유려하게 흐르는 클래식 배경음악에 맞게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대사도 쏟아내기 보다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듯이 끊어서 전달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마치 연극대사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유려함과 절제미 그리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영상들은 시청자들이 충분히 그 장면과 대사를 음미할 시간을 준다. 깊이는 그래서 만들어진다. 

또한 이 작품이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듯 비장미를 갖게 되는 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 선이 굉장히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강필주만 봐도 그렇다. 그는 다름 아닌 정말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가문의 개를 자청한 것이지만,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오면서 그들 사이에 다른 끈끈한 관계들이 이어진다. 즉 정말란과는 애증이 결합된 내연관계의 모습을 보이고, 장부천에게도 친구로서의 우정 같은 것들이 슬쩍슬쩍 드러난다. 

정말란은 자신의 아들인 장부천의 며느리로 들어온 나모현이 그의 아버지의 자살시도로 그 정략결혼 자체가 쓸모없어지자 아들에게 이혼을 하라고 종용하지만, 나모현이 강필주와 남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자신이 준비하던 이혼서류를 찢어버린다. 아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강필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혼재하는 그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 

겉으로는 인자한 경영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살벌한 늑대의 실체를 숨기고 있는 장성만 회장(선우재덕)이나, 그저 자수성가해 뒷방으로 물러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얼굴을 숨기고 있는 장국환 명예회장, 하다못해 그저 운전기사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강필주를 어린 시절 강물에 던진 해결사였고 또 장부천의 숨겨진 친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오기평조차 그 캐릭터가 복합적이다. 그래서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이 새삼 돋보이게 되는 것도 이 작품의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돈꽃>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어째서 이런 속물적인 느낌마저 드는 제목을 달아놓은 걸까. 만일 특별한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부재하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기업극화 복수극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최근 들어 보기 드문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자본의 세상이 사실 한 꺼풀을 열어보면 그 실체가 돈이라는 욕망의 자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조작된 것들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은 바로 나모현이다. 그는 장부천을 만나(물론 강필주가 뒤에서 조작한 것이지만)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그 과정들을 스스로 피어난 ‘꽃’으로서의 진정한 사랑의 결실로 여겨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장부천이 결혼 전부터 알고 있던 여자와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그 ‘꽃’이 ‘돈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보다 강렬한 주제의식이 있을까. <돈꽃>은 우리가 지금껏 그 많은 자본의 환상을 판타지로 그려내던 드라마들에게 그게 ‘꽃’이 아닌 ‘돈꽃’이라 말하고 있는 중이다. 

<돈꽃>은 깊이와 심도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연출력과 복합적인 감정들이 교차되는 캐릭터를 내놓은 대본,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연기가 결합된 보기 드문 수작이다. MBC 주말드라마가 만들어냈던 ‘막장’의 이미지 때문에 늘 존재해왔던 그 선입견을 깨줄 만큼 충분히 완성도 높은.(사진:MBC)

<그래 그런거야>에는 왜 현실 갈등이 잘 보이지 않을까

 

SBS <그래 그런거야>에 등장하는 어르신들, 유종철(이순재)과 김숙자(강부자)의 존재감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많은 걸 겪으며 살아온 이 어르신들은 이 바람 잘날 없는 가족의 크고 작은 갈등들이 사실은 별 거 아니라는 시점을 제공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맏딸이 결혼한 지 일주일만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수절 아닌 수절을 하며 시댁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걸 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런데 둘째딸마저 그 사돈네 아들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그 엄마인 이태희(임예진)는 사돈댁을 찾아와 어르신인 김숙자 앞에서 대놓고 재수 없는 집안이라는 말을 해버린다. 그러니 그 말은 들은 맏며느리 한혜경(김해숙)도 참을 수 없다. 김수자 앞이라 조심조심하면서도 불편한 심경을 이태희에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갈등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다. 이태희가 돌아간 후, 유종철이 김숙자를 부른다. 그리고 애들이 가출한 걸 갖고 뭐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김숙자를 데리고 야반도주 했던 과거를 이야기 한다. 청춘들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유종철은 허허롭게 웃어버린다. “그래 삶이란 그런 거야라는 이 드라마의 갈등 해결법인 셈이다.

 

이 관점이 나쁜 건 아니다. 그간 그토록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수현 작가는 대놓고 이렇게 갈등을 극으로 몰아가는 막장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의외로 가족의 품 안에서, 어르신들이 조금만 욕망을 내려놓거나, 혹은 어르신의 시선으로 인생 전체를 통해 그런 작은 갈등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던짐으로써 쉽게 풀려버린다. 이런 식의 시도는 드라마의 본령이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신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가 이처럼 괜찮은 해결의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은 그 갈등들이 여전히 많이 봐왔던 가족 갈등 이야기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결혼을 두고 양가가 부딪치는 이야기나, 노년으로 홀로 살아가다 갑자기 젊은 처자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 혹은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들은 물론 나름의 갈등을 유발하지만 어쩐지 과거 어떤 드라마에서 봐왔던 것들의 반복처럼 여겨진다.

 

갈등의 해결방식은 다르지만 제시되는 갈등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에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수현 작가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여기게 됐던 이유는 <엄마가 뿔났다><내 남자의 여자>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 속에서 당대 현실과 조응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엄마의 휴직선언과, 불륜에 대한 탐구 그리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그 드라마들 속에는 존재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당대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었다면 <그래 그런거야>가 보여주는 현실은 너무 소소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현실이 어떤가. 젊은 청춘들은 취업 앞에서 꺾어지고,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그래서 대가족은 해체되어 나홀로족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최근 성 갈등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남혐 여혐의 문제도 심각하다. 점점 고령화사회가 되어가며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크디 큰 현실적 문제이다.

 

김수현 작가 같은 중견을 대표하는 작가가 이런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문제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을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들이다. 지금의 가족을 그려내겠다면 적어도 이런 시대적 문제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그저 어르신의 긍정적인 시선만 던진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그래 그런 거야라고 현실을 초월해 소소한 가족갈등을 긍정의 목소리로 화해시켜도 저 밖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 그런거야>, 이렇게 갈등 없는 드라마도 가능하다?

 

세상에 이렇게 갈등이 없는 드라마도 있을까.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소소한 수다와 말다툼은 있어도 가족을 파국으로까지 몰고 가는 갈등은 없다. 사돈지간이어서 사랑할 수 없는(사실 이게 왜 문제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영(남규리)과 세준(정해인)은 마치 야반도주라도 할 듯이 무작정 경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갈등과 해결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즉흥적으로 떠나긴 했지만 이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세준이 나영에게 먼저 서울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리고 진짜 두 사람은 헤어질 것처럼 싸우고 고개를 돌리지만 갑자기 나영이 다시 세준에게 다가와 붙잡자 그는 돌아서 나영을 껴안는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이들이 언제 싸웠느냐고 보일 정도로 또 살가운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갈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갈등의 소지가 있어도 그것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고 그래서 어떤 파국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금세 갈등 이전 상태로 돌아온다. 이것은 세준과 나영의 밀당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부부로 살아왔지만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고 울고불고 하지만 이를 긍정해버리는 유세희(윤소이)의 이야기가 그렇고, 나이는 들어서 여전히 젊은 여자 밝힘증을 보이는 유종철(이순재)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김숙자(강부자)와 가족들 이야기도 그렇다.

 

또 외부에서 보면 오해하기 쉬운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둘이 함께 사는 유민호(노주현)와 이지선(서지혜)의 경우도 그렇다. 이런 외부 시선이 끼어들면 갈등은 커지고 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지선은 시아버지인 유민호가 다른 여자를 만나기를 기원하고 유민호는 죽은 아내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허허웃는 게 유민호의 캐릭터다. 이러니 갈등은 쉽게 봉합된다.

 

집안 간의 격차 때문에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소재다. <그래 그런거야>에도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유세현(조한선)과 결혼한 유리(왕지혜)를 여전히 탐탁찮게 여기는 그녀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또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 자라난 유리가 시집살이하는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갈등은 별로 없다. 그것은 유리라는 캐릭터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솔직하게 모든 걸 드러내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하지만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귀여운 푼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거야>는 이처럼 기존의 갈등들을 끝까지 몰고 나가는 막장드라마들의 문법을 정반대로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갈등이 생겨도 제목처럼 그래 그런거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종의 긍정어법이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사실 막장드라마들이 해체시켜버리는 가족 이야기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의도가 이 드라마에는 야심차게 깔려 있다.

 

물론 그래서 이 드라마는 따뜻하다. 모든 걸 끌어 안아주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김숙자(강부자) 같은 인물이 가족의 중심을 딱 잡아주고, 평생 집안 살림 하느라 친구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했지만 별 불만을 얘기하지 않다가 한 번 떠나게 된 경주 여행에서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한혜경(김해숙) 같은 며느리도 있다. 진짜 가족이 그러하듯이 갈등과 문제가 있어도 이들을 서로를 토닥이며 살아간다. 그것이 가족의 진짜 의미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이상화되고 판타지화된 가족이지 지금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핵가족화되다 못해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현실에 <그래 그런거야>의 대가족은 이제는 낯설게 다가온다.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주는 향수는 있지만 내 얘기 같지 않고 남 얘기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그래 그런거야>의 한계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김수현 작가는 그렇게라도 사라져가는 옛 가족의 한 자락을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 <삼시세끼>처럼

 

산체와 벌이 없는 <삼시세끼>를 생각할 수 있을까. <삼시세끼> 어촌편이 시즌2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산체와 벌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얼마나 자랐을까. 여전히 차승원과 유해진을 알아볼까. 또 함께 지내는 벌이와는 여전히 툭탁대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제 고양이와 개의 행복한 공존을 이뤄내고 있을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차승원과 유해진이 다시 찾은 만재도의 집이 진짜 집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준 것도 산체와 벌이다. 방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 아이들은 과거의 즐거웠던 시간과 현재를 다시 이어주었다. 몸이 엄청나게 커진 벌이는 이제 산체와 대적할 만큼 힘이 세졌고, 그래서인지 산체는 자주 벌이와 대등한 입장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차승원과 유해진에게 잠시 경계하는 듯 하더니 금세 가까워져 무릎 위에 홀짝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힘이 좋아진 산체는 방이 답답했는지 게스트로 온 박형식이 데리고 산책을 나가자 거의 그를 끌고 다니다시피 했다. 박형식이 산체를 산책시킨 게 아니라, 거꾸로 산체가 박형식을 산책시킨 모양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산체를 보면서 벌이가 눈에 밟힌 유해진은 동네에 버려진 나무를 가져와 캣 타워를 만들어주었다. 만들어 놓은 사람 입장에서야 얼른 거기에 올라가는 벌이가 보고 싶을 테지만 유해진은 강요하지 않고 벌이가 스스로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결국 꼭대기에 오른 벌이를 보며 기쁜 마음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산체와 벌이가 함께 방안에서 노는 장면들은 <삼시세끼>의 중요한 에피소드 중 하나를 차지한다. 매번 방영되는 내용들 중 이들이 하는 행동들은 <삼시세끼> 특유의 자막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 “, , 같은 자막은 마치 사람들이 하는 행동처럼 꾸며지며 산체와 벌이의 캐릭터로 흡수된다. 그러니 시청자들에게 산체와 벌이는 그저 우리와는 다른 동물이 아니다. 거의 사람과 다름없는 가족으로서의 산체와 벌이인 셈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실 산체와 벌이의 방안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힐링을 안겨준다. 만재도의 환경을 떠올려보라. 따뜻한 여름이야 그나마 찬란한 햇빛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지난 겨울의 혹독함을 생각해보면 따뜻한 방안에서 뒹구는 산체와 벌이가 그 자체로 힐링이 되어주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섬의 차가운 칼바람에도 만재도가 어떤 따뜻함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산체와 벌이 같은 온기를 나눠주는 존재가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시세끼>, 아니 나아가 나영석 PD의 일련의 예능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꽃보다 할배>의 순대장 이순재가 동물의 친구로 불리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만난 비둘기 한 마리에게도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고 말을 걸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행위가 전하는 건 동물에게 먹이를 준다는 단순한 의미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닐 게다. 길거리에 있는 동물에게도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그 마음. 그 따뜻한 마음이 증명해주는 인간애를 우리는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

 

최근 벌어진 가슴 아픈 캣맘 사건으로 생겨난 대립은 이제 우리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걸 말해준다. 길거리 동물에 대해 연민을 보이는 이들이 있는 반면,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연민 혹은 혐오가 인간 대 동물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문제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 인식일 게다.

 

적어도 <삼시세끼>가 산체와 벌이를 보듯이만 한다면 어떨까. 이런 문제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온기를 가진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건 동물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꽃보다 할배>, 타인이 가족처럼 가까워질 때

 

투덜이 이서진은 포세이돈 신전 앞에 가서도 투덜거렸다. ‘가까이 가 봐야 별 거 없다는 이서진의 이른바 그리스 멀리 이론은 멀리서 봐야 더 멋있다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를 제시했다. 여행 떠나는 걸 꽤나 귀찮게 여기는 이 귀차니즘의 대가(?)는 여행을 짐스럽게 여기는 짐꾼이라는 캐릭터로 역시 <꽃보다 할배>라는 나영석표 예능에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걸 증명해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세상에 여행 즐기는 이가 여행하는 이야기만큼 평이한 것도 없을 게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로 자리한 이서진은 경비에 있어서는 한없이 깐깐한 스크루지로 돌변하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처지를 그토록 토로하면서도 할배들 앞에만 가면 고분고분한 짐꾼으로 돌아가 소소한 것까지 살뜰히 살피는 사람이 된다. 이른바 나영석 패밀리에 이서진이 중심에 서게 된 건 바로 이 지극히 보통사람의 투덜거림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미션이 떨어지면 보통사람 이상의 정성을 쏟아내는 그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이서진의 그리스 멀리 이론은 곧바로 <삼시세끼>로 나영석 패밀리에 합류한 옥택연에게 전달된다. 택연은 그리스 여행을 가서 바로 이 그리스 멀리 이론에 적합한 셀카를 찍어 SNS로 화답한다. 이제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는 각각 동떨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에서 다른 조합으로 나와도 <어벤져스>와의 이야기와 연동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삼시세끼>의 강원도 정선집에 놀러와 밥 한 끼를 같이 챙겨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꽃보다 누나>의 누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지우가 그러한 것처럼 잠시 <삼시세끼>의 게스트로 참여했던 그녀는 <꽃보다 할배>의 신참 짐꾼이 되기도 한다. <꽃보다 청춘>에서 순수 청년으로 등장한 손호준이 <삼시세끼> 만재도편에 갑자기 하차하게 된 장근석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처럼, 이제 이들 프로그램들은 나영석 월드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동되고 있다.

 

그리스까지 가서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게 낫다는 귀차니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서진이,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백일섭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음식점에서 그걸 챙겨오는 이야기는 나영석 패밀리가 대중들에게 주는 훈훈한 판타지의 실체다. 이들은 처음 낯선 타인으로 만났지만 여러 차례 여행을 하면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순재와 한 방을 쓰던 이서진이 아침에 일어나 이순재의 옷매무새를 직접 만져주는 장면은 가족 그 이상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박근형이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하자 셋이 쓰던 방에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신구와 백일섭의 모습이 그려진다. 청력이 좋지 않은 백일섭을 위해 여러 차례 큰 소리로 얘기를 해주고 어색할 수 있는 방 분위기를 친근하게 풀어내주던 박근형의 빈자리를 굳이 이 프로그램이 그려 넣는 건 나영석 패밀리가 이렇게 가족이 된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방식이다.

 

그것은 이서진의 방식과 닮았다. 어찌 보면 여행이라고는 해도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일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는 건 보다 더 깊숙이 가족 같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간만에 나게 된 시간에 나영석 PD는 스텝들을 데리고 이서진을 운전기사로 세워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가 제일 나이 많은데 운전을 해야 된다고 투덜대면서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 이서진과 나영석은 그래서 이제는 형제 같고 제작진들 역시 그 패밀리의 구성원처럼 보인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운 저녁을 나누며 그리스 여행을 회고하는 자리에는 그래서 나영석 PD도 함께 앉아 있다. 물론 그가 처음 화면에 얼굴을 내밀게 된 건 미션을 부여하는 그 역할을 리얼로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화면 안에 들어와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제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일 관계가 아닌 진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이것은 나영석 PD표 예능이 매번 성공하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낯선 타인으로 만나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그걸 계속 봐온 시청자들 역시 가족 같은 친근함으로 이들을 쳐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일섭이 우리는 이제 패밀리가 되었다고 털어놓는 건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꽃보다> 패밀리가 주는 판타지는 이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또 그 분들이 겪어온 세월에 대해 존경을 표하게 되는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꽃할배>, 어른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오는가

 

어르신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나오게 될까. tvN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서 코린토스로 가는 버스터미널까지 가려고 오른 택시에서 작은 사고가 생겼다. 택시 뒷자석 맨 안쪽으로 최지우가 타고 가운데 이순재가 그리고 마지막에 신구가 타면서 문을 닫는 순간 갑자기 이순재가 고통을 호소한 것. 이순재의 손이 택시 문에 끼인 채 닫힌 것이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급히 문을 열고 손을 빼냈지만 신구와 최지우는 어쩔 줄 모르고 이순재의 손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괜찮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며 애써 고통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일부러 지어보이며 심지어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해 보이는 모습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그에게 배어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의 모습은 늘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꽃할배들의 맏형이지만 그는 한 번도 동생들을 불편하게 하는 기색이 없었다. 차를 타도 가장 불편한 맨 뒷좌석에 오르면서 아무 데나 앉으면 어때하고 얘기하는 데서는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택시에서의 사고도 자신이 굳이 불편한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 이순재는 특히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이서진이 알아서 척척 다 하는 유능한 짐꾼(?)이라는 걸 그간 경험해온 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순재도 최지우가 홀로 가이드로 나선 코린토스 여행에서는 늘 그녀의 옆에 자리해 도움을 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길을 잃을까봐 미리 나서서 버스 타는 곳까지를 챙기고 버스 티켓을 끊을 때도 마치 딸을 챙기는 심정으로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먼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최지우가 앞에서 하는 것을 뒤에서 남모르게 도와주려는 그런 모습. 그것은 부모의 마음 그대로였다. 스스로 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도 늘 뒤편에서 지지해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느껴졌을까. 최지우는 인터뷰를 통해 이순재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표시했다. “예전부터 너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왜 모든 후배, 선배들이 이순재 선생님을 존경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런 그녀에 대해 이순재는 딸 같다는 살가운 마음을 드러내주었다.

 

사실 그저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일 수는 없다. 어른이 어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나이에 기대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만도 못한 존재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깊어진 한숨은 그래서 진정한 어른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어른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은 배려심에서 나온다. 그 많은 세월동안 쌓여진 삶의 경륜들이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한 배려로 이어질 때, 그것은 어른이라 내세우지 않아도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어른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맏형이지만 드러내려 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이순재에게서는 분명 이 시대 대중들이 희구하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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