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꽃’, 연출·연기·대본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보기 드문 수작

MBC 주말드라마가 그간 방영해왔던 드라마들의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돈꽃>은 시작부터 막장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여기에는 제목도 한 몫을 했다. ‘돈’이라는 단어를 직설적으로 붙여 ‘돈꽃’이라 붙인 제목은 이 드라마에 ‘속물적인 뉘앙스’를 선입견으로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 방영되면서 초반부터 등장하는 기업극화적 분위기와 복수극의 틀은 그런 선입견을 확증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이건 완벽한 선입견으로 인한 오해다. <돈꽃>은 막장드라마가 아니고 오히려 촘촘하게 얼개가 짜여진 완성도 높은 드라마이며, 특히 놀라운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드라마다. 물론 이 드라마 속에는 우리가 막장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출생의 비밀이나 성공을 위한 이전투구와 복수극 코드가 들어있다. 하지만 <돈꽃>이 이런 소재들을 담는 방식은 실로 진지해 막장과는 너무나 다른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마치 같은 코드들을 썼어도 삶의 비의를 담아내곤 했던 그리스 비극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돈꽃>의 주인공인 강필주(장혁)는 친구이자 보스인 장부천(장승조)을 청아그룹 회장에 앉히려는 인물. 그래서 그는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목되는 나기철(박지일) 의원의 딸 나모현(박세영) 모르게 모든 걸 꾸며 장부천과 정략결혼시킨다. 하지만 청아그룹 회장 자리를 노리는 장여천(임강성)과의 대결과정에서 청아그룹과 나기철 의원의 유착이 폭로되면서 청아그룹의 실권자인 장국환(이순재) 명예회장의 권유에 의해 나기철 의원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쉽게 흘러갈 것 같은 상황들은 모두 뒤집어진다. 

강필주는 사실 장부천의 모친인 정말란(이미숙)에 의해 강물에 던져졌던 장씨 가문 후처의 아들 장은천이다. 그래서 그는 복수를 위해 정말란이 욕망하는 것처럼 장부천을 회장에 앉힌 후 그 꼭대기에서 밀어내버리려 한다. 그것이 가장 처절한 복수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부천 역시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그는 자신에게 장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정말란의 운전기사인 오기평(박정학)이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강필주가 사실 장은천으로 장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자신이 그의 꼭두각시였다는 걸 알아차린다. 

<돈꽃>은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진짜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대사도 굉장히 절제되어 있고, 오히려 영상 언어를 통해 인물의 내적 감정을 표현해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못 어려운 드라마의 선택을 효과적으로 만드는 건 놀라운 연출력이다. 

막장드라마의 연출들이 빠른 속도에 집착하고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대사에 기댄다면, <돈꽃>의 연출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속도는 유려하게 흐르는 클래식 배경음악에 맞게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대사도 쏟아내기 보다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듯이 끊어서 전달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마치 연극대사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유려함과 절제미 그리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영상들은 시청자들이 충분히 그 장면과 대사를 음미할 시간을 준다. 깊이는 그래서 만들어진다. 

또한 이 작품이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듯 비장미를 갖게 되는 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 선이 굉장히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강필주만 봐도 그렇다. 그는 다름 아닌 정말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가문의 개를 자청한 것이지만, 오랜 세월 함께 지내오면서 그들 사이에 다른 끈끈한 관계들이 이어진다. 즉 정말란과는 애증이 결합된 내연관계의 모습을 보이고, 장부천에게도 친구로서의 우정 같은 것들이 슬쩍슬쩍 드러난다. 

정말란은 자신의 아들인 장부천의 며느리로 들어온 나모현이 그의 아버지의 자살시도로 그 정략결혼 자체가 쓸모없어지자 아들에게 이혼을 하라고 종용하지만, 나모현이 강필주와 남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자신이 준비하던 이혼서류를 찢어버린다. 아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과 강필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혼재하는 그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 

겉으로는 인자한 경영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살벌한 늑대의 실체를 숨기고 있는 장성만 회장(선우재덕)이나, 그저 자수성가해 뒷방으로 물러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서운 얼굴을 숨기고 있는 장국환 명예회장, 하다못해 그저 운전기사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강필주를 어린 시절 강물에 던진 해결사였고 또 장부천의 숨겨진 친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오기평조차 그 캐릭터가 복합적이다. 그래서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이 새삼 돋보이게 되는 것도 이 작품의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돈꽃>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어째서 이런 속물적인 느낌마저 드는 제목을 달아놓은 걸까. 만일 특별한 주제의식이나 메시지가 부재하다면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기업극화 복수극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작품은 최근 들어 보기 드문 날카로운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것은 겉보기에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자본의 세상이 사실 한 꺼풀을 열어보면 그 실체가 돈이라는 욕망의 자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조작된 것들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은 바로 나모현이다. 그는 장부천을 만나(물론 강필주가 뒤에서 조작한 것이지만)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그 과정들을 스스로 피어난 ‘꽃’으로서의 진정한 사랑의 결실로 여겨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장부천이 결혼 전부터 알고 있던 여자와 아이까지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그 ‘꽃’이 ‘돈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보다 강렬한 주제의식이 있을까. <돈꽃>은 우리가 지금껏 그 많은 자본의 환상을 판타지로 그려내던 드라마들에게 그게 ‘꽃’이 아닌 ‘돈꽃’이라 말하고 있는 중이다. 

<돈꽃>은 깊이와 심도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연출력과 복합적인 감정들이 교차되는 캐릭터를 내놓은 대본, 그리고 그런 인물들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연기가 결합된 보기 드문 수작이다. MBC 주말드라마가 만들어냈던 ‘막장’의 이미지 때문에 늘 존재해왔던 그 선입견을 깨줄 만큼 충분히 완성도 높은.(사진:MBC)

<그래 그런거야>에는 왜 현실 갈등이 잘 보이지 않을까

 

SBS <그래 그런거야>에 등장하는 어르신들, 유종철(이순재)과 김숙자(강부자)의 존재감은 사실상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많은 걸 겪으며 살아온 이 어르신들은 이 바람 잘날 없는 가족의 크고 작은 갈등들이 사실은 별 거 아니라는 시점을 제공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맏딸이 결혼한 지 일주일만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수절 아닌 수절을 하며 시댁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걸 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그런데 둘째딸마저 그 사돈네 아들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그 엄마인 이태희(임예진)는 사돈댁을 찾아와 어르신인 김숙자 앞에서 대놓고 재수 없는 집안이라는 말을 해버린다. 그러니 그 말은 들은 맏며느리 한혜경(김해숙)도 참을 수 없다. 김수자 앞이라 조심조심하면서도 불편한 심경을 이태희에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갈등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다. 이태희가 돌아간 후, 유종철이 김숙자를 부른다. 그리고 애들이 가출한 걸 갖고 뭐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김숙자를 데리고 야반도주 했던 과거를 이야기 한다. 청춘들은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유종철은 허허롭게 웃어버린다. “그래 삶이란 그런 거야라는 이 드라마의 갈등 해결법인 셈이다.

 

이 관점이 나쁜 건 아니다. 그간 그토록 많은 막장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수현 작가는 대놓고 이렇게 갈등을 극으로 몰아가는 막장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의외로 가족의 품 안에서, 어르신들이 조금만 욕망을 내려놓거나, 혹은 어르신의 시선으로 인생 전체를 통해 그런 작은 갈등들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던짐으로써 쉽게 풀려버린다. 이런 식의 시도는 드라마의 본령이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신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 그런거야>가 이처럼 괜찮은 해결의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은 그 갈등들이 여전히 많이 봐왔던 가족 갈등 이야기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결혼을 두고 양가가 부딪치는 이야기나, 노년으로 홀로 살아가다 갑자기 젊은 처자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 혹은 오래도록 부부로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들은 물론 나름의 갈등을 유발하지만 어쩐지 과거 어떤 드라마에서 봐왔던 것들의 반복처럼 여겨진다.

 

갈등의 해결방식은 다르지만 제시되는 갈등들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에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김수현 작가가 여전히 건재하다고 여기게 됐던 이유는 <엄마가 뿔났다><내 남자의 여자>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작품 속에서 당대 현실과 조응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엄마의 휴직선언과, 불륜에 대한 탐구 그리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 등이 그 드라마들 속에는 존재했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당대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는 것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었다면 <그래 그런거야>가 보여주는 현실은 너무 소소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현실이 어떤가. 젊은 청춘들은 취업 앞에서 꺾어지고,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으며 그래서 대가족은 해체되어 나홀로족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최근 성 갈등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남혐 여혐의 문제도 심각하다. 점점 고령화사회가 되어가며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 간의 갈등 또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크디 큰 현실적 문제이다.

 

김수현 작가 같은 중견을 대표하는 작가가 이런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문제에 대해 왜 침묵하고 있을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들이다. 지금의 가족을 그려내겠다면 적어도 이런 시대적 문제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그저 어르신의 긍정적인 시선만 던진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그래 그런 거야라고 현실을 초월해 소소한 가족갈등을 긍정의 목소리로 화해시켜도 저 밖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 그런거야>, 이렇게 갈등 없는 드라마도 가능하다?

 

세상에 이렇게 갈등이 없는 드라마도 있을까.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소소한 수다와 말다툼은 있어도 가족을 파국으로까지 몰고 가는 갈등은 없다. 사돈지간이어서 사랑할 수 없는(사실 이게 왜 문제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영(남규리)과 세준(정해인)은 마치 야반도주라도 할 듯이 무작정 경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갈등과 해결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즉흥적으로 떠나긴 했지만 이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세준이 나영에게 먼저 서울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리고 진짜 두 사람은 헤어질 것처럼 싸우고 고개를 돌리지만 갑자기 나영이 다시 세준에게 다가와 붙잡자 그는 돌아서 나영을 껴안는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이들이 언제 싸웠느냐고 보일 정도로 또 살가운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갈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갈등의 소지가 있어도 그것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고 그래서 어떤 파국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금세 갈등 이전 상태로 돌아온다. 이것은 세준과 나영의 밀당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부부로 살아왔지만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고 울고불고 하지만 이를 긍정해버리는 유세희(윤소이)의 이야기가 그렇고, 나이는 들어서 여전히 젊은 여자 밝힘증을 보이는 유종철(이순재)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김숙자(강부자)와 가족들 이야기도 그렇다.

 

또 외부에서 보면 오해하기 쉬운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둘이 함께 사는 유민호(노주현)와 이지선(서지혜)의 경우도 그렇다. 이런 외부 시선이 끼어들면 갈등은 커지고 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지선은 시아버지인 유민호가 다른 여자를 만나기를 기원하고 유민호는 죽은 아내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허허웃는 게 유민호의 캐릭터다. 이러니 갈등은 쉽게 봉합된다.

 

집안 간의 격차 때문에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소재다. <그래 그런거야>에도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유세현(조한선)과 결혼한 유리(왕지혜)를 여전히 탐탁찮게 여기는 그녀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또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 자라난 유리가 시집살이하는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갈등은 별로 없다. 그것은 유리라는 캐릭터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솔직하게 모든 걸 드러내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하지만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귀여운 푼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거야>는 이처럼 기존의 갈등들을 끝까지 몰고 나가는 막장드라마들의 문법을 정반대로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갈등이 생겨도 제목처럼 그래 그런거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종의 긍정어법이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사실 막장드라마들이 해체시켜버리는 가족 이야기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의도가 이 드라마에는 야심차게 깔려 있다.

 

물론 그래서 이 드라마는 따뜻하다. 모든 걸 끌어 안아주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김숙자(강부자) 같은 인물이 가족의 중심을 딱 잡아주고, 평생 집안 살림 하느라 친구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했지만 별 불만을 얘기하지 않다가 한 번 떠나게 된 경주 여행에서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한혜경(김해숙) 같은 며느리도 있다. 진짜 가족이 그러하듯이 갈등과 문제가 있어도 이들을 서로를 토닥이며 살아간다. 그것이 가족의 진짜 의미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이상화되고 판타지화된 가족이지 지금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핵가족화되다 못해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현실에 <그래 그런거야>의 대가족은 이제는 낯설게 다가온다.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주는 향수는 있지만 내 얘기 같지 않고 남 얘기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그래 그런거야>의 한계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김수현 작가는 그렇게라도 사라져가는 옛 가족의 한 자락을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 <삼시세끼>처럼

 

산체와 벌이 없는 <삼시세끼>를 생각할 수 있을까. <삼시세끼> 어촌편이 시즌2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산체와 벌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얼마나 자랐을까. 여전히 차승원과 유해진을 알아볼까. 또 함께 지내는 벌이와는 여전히 툭탁대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제 고양이와 개의 행복한 공존을 이뤄내고 있을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차승원과 유해진이 다시 찾은 만재도의 집이 진짜 집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준 것도 산체와 벌이다. 방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 아이들은 과거의 즐거웠던 시간과 현재를 다시 이어주었다. 몸이 엄청나게 커진 벌이는 이제 산체와 대적할 만큼 힘이 세졌고, 그래서인지 산체는 자주 벌이와 대등한 입장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차승원과 유해진에게 잠시 경계하는 듯 하더니 금세 가까워져 무릎 위에 홀짝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힘이 좋아진 산체는 방이 답답했는지 게스트로 온 박형식이 데리고 산책을 나가자 거의 그를 끌고 다니다시피 했다. 박형식이 산체를 산책시킨 게 아니라, 거꾸로 산체가 박형식을 산책시킨 모양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산체를 보면서 벌이가 눈에 밟힌 유해진은 동네에 버려진 나무를 가져와 캣 타워를 만들어주었다. 만들어 놓은 사람 입장에서야 얼른 거기에 올라가는 벌이가 보고 싶을 테지만 유해진은 강요하지 않고 벌이가 스스로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결국 꼭대기에 오른 벌이를 보며 기쁜 마음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산체와 벌이가 함께 방안에서 노는 장면들은 <삼시세끼>의 중요한 에피소드 중 하나를 차지한다. 매번 방영되는 내용들 중 이들이 하는 행동들은 <삼시세끼> 특유의 자막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 “, , 같은 자막은 마치 사람들이 하는 행동처럼 꾸며지며 산체와 벌이의 캐릭터로 흡수된다. 그러니 시청자들에게 산체와 벌이는 그저 우리와는 다른 동물이 아니다. 거의 사람과 다름없는 가족으로서의 산체와 벌이인 셈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실 산체와 벌이의 방안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힐링을 안겨준다. 만재도의 환경을 떠올려보라. 따뜻한 여름이야 그나마 찬란한 햇빛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지난 겨울의 혹독함을 생각해보면 따뜻한 방안에서 뒹구는 산체와 벌이가 그 자체로 힐링이 되어주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섬의 차가운 칼바람에도 만재도가 어떤 따뜻함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산체와 벌이 같은 온기를 나눠주는 존재가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시세끼>, 아니 나아가 나영석 PD의 일련의 예능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꽃보다 할배>의 순대장 이순재가 동물의 친구로 불리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만난 비둘기 한 마리에게도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고 말을 걸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행위가 전하는 건 동물에게 먹이를 준다는 단순한 의미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닐 게다. 길거리에 있는 동물에게도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그 마음. 그 따뜻한 마음이 증명해주는 인간애를 우리는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

 

최근 벌어진 가슴 아픈 캣맘 사건으로 생겨난 대립은 이제 우리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걸 말해준다. 길거리 동물에 대해 연민을 보이는 이들이 있는 반면,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연민 혹은 혐오가 인간 대 동물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문제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 인식일 게다.

 

적어도 <삼시세끼>가 산체와 벌이를 보듯이만 한다면 어떨까. 이런 문제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온기를 가진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건 동물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꽃보다 할배>, 타인이 가족처럼 가까워질 때

 

투덜이 이서진은 포세이돈 신전 앞에 가서도 투덜거렸다. ‘가까이 가 봐야 별 거 없다는 이서진의 이른바 그리스 멀리 이론은 멀리서 봐야 더 멋있다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를 제시했다. 여행 떠나는 걸 꽤나 귀찮게 여기는 이 귀차니즘의 대가(?)는 여행을 짐스럽게 여기는 짐꾼이라는 캐릭터로 역시 <꽃보다 할배>라는 나영석표 예능에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걸 증명해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세상에 여행 즐기는 이가 여행하는 이야기만큼 평이한 것도 없을 게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로 자리한 이서진은 경비에 있어서는 한없이 깐깐한 스크루지로 돌변하고,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처지를 그토록 토로하면서도 할배들 앞에만 가면 고분고분한 짐꾼으로 돌아가 소소한 것까지 살뜰히 살피는 사람이 된다. 이른바 나영석 패밀리에 이서진이 중심에 서게 된 건 바로 이 지극히 보통사람의 투덜거림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미션이 떨어지면 보통사람 이상의 정성을 쏟아내는 그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이서진의 그리스 멀리 이론은 곧바로 <삼시세끼>로 나영석 패밀리에 합류한 옥택연에게 전달된다. 택연은 그리스 여행을 가서 바로 이 그리스 멀리 이론에 적합한 셀카를 찍어 SNS로 화답한다. 이제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는 각각 동떨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어벤져스>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다른 영화에서 다른 조합으로 나와도 <어벤져스>와의 이야기와 연동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삼시세끼>의 강원도 정선집에 놀러와 밥 한 끼를 같이 챙겨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은 <꽃보다 누나>의 누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지우가 그러한 것처럼 잠시 <삼시세끼>의 게스트로 참여했던 그녀는 <꽃보다 할배>의 신참 짐꾼이 되기도 한다. <꽃보다 청춘>에서 순수 청년으로 등장한 손호준이 <삼시세끼> 만재도편에 갑자기 하차하게 된 장근석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것처럼, 이제 이들 프로그램들은 나영석 월드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동되고 있다.

 

그리스까지 가서도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게 낫다는 귀차니즘의 극점을 보여주는 이서진이,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던 백일섭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음식점에서 그걸 챙겨오는 이야기는 나영석 패밀리가 대중들에게 주는 훈훈한 판타지의 실체다. 이들은 처음 낯선 타인으로 만났지만 여러 차례 여행을 하면서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순재와 한 방을 쓰던 이서진이 아침에 일어나 이순재의 옷매무새를 직접 만져주는 장면은 가족 그 이상의 끈끈함을 보여준다.

 

박근형이 일정 때문에 먼저 귀국하자 셋이 쓰던 방에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신구와 백일섭의 모습이 그려진다. 청력이 좋지 않은 백일섭을 위해 여러 차례 큰 소리로 얘기를 해주고 어색할 수 있는 방 분위기를 친근하게 풀어내주던 박근형의 빈자리를 굳이 이 프로그램이 그려 넣는 건 나영석 패밀리가 이렇게 가족이 된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방식이다.

 

그것은 이서진의 방식과 닮았다. 어찌 보면 여행이라고는 해도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일이 아닌 즐거움으로 바꾸는 건 보다 더 깊숙이 가족 같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간만에 나게 된 시간에 나영석 PD는 스텝들을 데리고 이서진을 운전기사로 세워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자기가 제일 나이 많은데 운전을 해야 된다고 투덜대면서도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모습. 이서진과 나영석은 그래서 이제는 형제 같고 제작진들 역시 그 패밀리의 구성원처럼 보인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운 저녁을 나누며 그리스 여행을 회고하는 자리에는 그래서 나영석 PD도 함께 앉아 있다. 물론 그가 처음 화면에 얼굴을 내밀게 된 건 미션을 부여하는 그 역할을 리얼로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화면 안에 들어와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제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일 관계가 아닌 진짜 가족 같은 관계가 되었다고.

 

이것은 나영석 PD표 예능이 매번 성공하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낯선 타인으로 만나 가족 같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그걸 계속 봐온 시청자들 역시 가족 같은 친근함으로 이들을 쳐다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일섭이 우리는 이제 패밀리가 되었다고 털어놓는 건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꽃보다> 패밀리가 주는 판타지는 이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또 그 분들이 겪어온 세월에 대해 존경을 표하게 되는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꽃할배>, 어른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오는가

 

어르신에 대한 존경은 어디서 나오게 될까. tvN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서 코린토스로 가는 버스터미널까지 가려고 오른 택시에서 작은 사고가 생겼다. 택시 뒷자석 맨 안쪽으로 최지우가 타고 가운데 이순재가 그리고 마지막에 신구가 타면서 문을 닫는 순간 갑자기 이순재가 고통을 호소한 것. 이순재의 손이 택시 문에 끼인 채 닫힌 것이었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급히 문을 열고 손을 빼냈지만 신구와 최지우는 어쩔 줄 모르고 이순재의 손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괜찮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며 애써 고통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일부러 지어보이며 심지어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해 보이는 모습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그에게 배어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의 모습은 늘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꽃할배들의 맏형이지만 그는 한 번도 동생들을 불편하게 하는 기색이 없었다. 차를 타도 가장 불편한 맨 뒷좌석에 오르면서 아무 데나 앉으면 어때하고 얘기하는 데서는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택시에서의 사고도 자신이 굳이 불편한 가운데 자리에 앉으면서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이번 그리스 여행에서 이순재는 특히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이서진이 알아서 척척 다 하는 유능한 짐꾼(?)이라는 걸 그간 경험해온 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순재도 최지우가 홀로 가이드로 나선 코린토스 여행에서는 늘 그녀의 옆에 자리해 도움을 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길을 잃을까봐 미리 나서서 버스 타는 곳까지를 챙기고 버스 티켓을 끊을 때도 마치 딸을 챙기는 심정으로 뒤에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먼저 나서는 것이 아니라 최지우가 앞에서 하는 것을 뒤에서 남모르게 도와주려는 그런 모습. 그것은 부모의 마음 그대로였다. 스스로 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도 늘 뒤편에서 지지해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느껴졌을까. 최지우는 인터뷰를 통해 이순재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표시했다. “예전부터 너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왜 모든 후배, 선배들이 이순재 선생님을 존경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런 그녀에 대해 이순재는 딸 같다는 살가운 마음을 드러내주었다.

 

사실 그저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일 수는 없다. 어른이 어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나이에 기대 군림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만도 못한 존재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깊어진 한숨은 그래서 진정한 어른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어른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은 배려심에서 나온다. 그 많은 세월동안 쌓여진 삶의 경륜들이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한 배려로 이어질 때, 그것은 어른이라 내세우지 않아도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어른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맏형이지만 드러내려 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이순재에게서는 분명 이 시대 대중들이 희구하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꽃할배>가 담아내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

 

아이고 최지희가 마흔을 넘겼어?” 박근형은 이름이 가물가물한 듯 최지우를 최지희로 착각했다. 하지만 박근형이 하려고 한 말에서 묻어나는 건 최지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현장 어디에선가 만났을 최지우는 훨씬 더 젊은 시절의 그녀였으리라. 그러니 박근형은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통해 함께 여행을 하게 된 최지우를 통해 세월의 빠름을 실감했을 게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그리스로 가는 경유지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아침 일찍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 나누는 박근형과 신구의 대화 속에는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난다. “학교 같은 덴 안 가실 생각이우?” 갑자기 박근형이 신구에게 향후 계획 같은 걸 묻는다. 그러자 신구가 의외의 말을 꺼낸다. “현장에 있는 게 제일 나아.” 칠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지만 여전히 그 말 속에는 일에 대한 열정 같은 게 느껴진다.

 

그리고 던지는 쓸쓸한 몇 마디. “근데 우리만 해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섭외가 없어. 거의- 지금 불암이 하고... 그리고는 없나? 70대에.” 그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을 <꽃보다 할배>PD는 거기에 이런 자막을 붙여 넣는다. ‘동년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현역에서 왕성히 뛰고 있는 배우들이 어디 흔할까. 그나마 <꽃보다 할배>에 나오는 4인방이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동년배들일 것이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하고 말 꼬리를 흐리는 신구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한없이 느껴진다. 여전히 청년 같은 박근형은 그 아쉬움에 덧붙여져 이런 세태에 대한 쓴 소리가 나온다. “나이 먹은 배우들이 자꾸 없어지니까. 많아야 그냥 쓸래도 야 그 양반 나이 높으니 무시하면 안돼, 이렇게 하지. 에 됐어 됐어. 냄새 나.” 최고의 어르신들이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헛헛함이 있게 마련일 것이다. 우리네 현장이 어디 나이를 챙기던가.

 

그러자 신구는 박근형을 다독이며 애써 긍정한다. “나이 80에 또 뭘 바라.” <꽃보다 할배>의 배낭여행을 통해 술 한 잔 걸치고 그토록 흥에 겨운 모습을 보여주던 신구의 마음 한 자락이 슬쩍 느껴진다. 어쩌면 어르신들은 그렇게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애써 나이 들어가며 점점 사라져가는 동료들과 점점 젊은 친구들에게 밀려나는 듯한 그 기분을 달래셨을 지도 모르겠다.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이 적어지는 서운함.’ 자막이 말해주듯 그 서운함은 나이 들어가며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일 게다.

 

<꽃보다 할배>가 심정적인 지지를 하게 만드는 지점은 바로 이 서운함을 담아낼 줄 아는 예의에서 비롯되는 일일 것이다. 이 어르신들의 배낭여행을 담는 프로그램은 그렇게 두바이에서의 어느 날 아침에 나눈 소소한 짧은 대화 속에서도 결코 지나치기 어려운 그들의 삶과 소회를 담아낸다.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긍정 또한 담겨져 있다.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더 많은 곳을 여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나이 들어가는 삶을 이들의 여행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라져가는 동료들이 주는 서운함과 아쉬움은 그래서 더더욱 놓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을 끄집어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들의 미래일 수 있는 어르신들이 계속 해서 보여지기를. 우리의 마음이 서운해지지 않게.

 

나영석 PD의 연결고리, 이유 없는 출연은 없다

 

시청자분들이 프로그램에 누가 나올 때는 당연히 심리적인 장벽 같은 걸 느끼기 마련이죠. 그래서 왜 그 사람이 나왔는가를 공감하게 하는 건 정말 중요해요.” 오랜만에 만난 나영석 PD에게 그가 가진 캐스팅의 노하우에 대해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굳이 캐스팅 노하우를 묻게 됐던 건 그가 지금껏 프로그램을 통해 보인 출연자들의 면면이 실로 놀랍기 때문이다.

 

나영석 PD(사진출처:tvN)

그는 <꽃보다 할배>를 통해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이라는 지금껏 예능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던 어르신들을 젊은 세대들도 좋아하는 친근한 인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서진이라는 나영석 PD의 페르소나(?)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이 툭탁대는 재미에 이 프로그램을 본다는 시청자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 연결고리는 <삼시세끼>로 이어졌다. <꽃보다 할배>에서 요리 프로그램 운운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강원도 정선으로 가게 된 이서진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투입된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서진은 <참 좋은 시절>에서 함께 출연했던 옥택연과 함께 전원의 유기농라이프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옥택연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삼시세끼>에 안착했다.

 

<삼시세끼> 강원도편은 이후 게스트로 <꽃보다 할배>의 어르신들은 물론이고 <참 좋은 시절>에 함께 했던 배우들, 윤여정에서부터 최화정, 류승수, 김지호, 김광규까지 줄줄이 프로그램에 합류시켰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으로 관계를 맺게 된 손호준도 이때 등장했고, <12> 시절에 인연이 있었던 최지우도 <삼시세끼>에 등장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손호준은 <삼시세끼> 어촌편으로 또 최지우는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으로 이어졌다.

 

나영석 PD의 캐스팅 노하우를 보면 이렇게 하나의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걸 알 수 있다. 즉 거기 생뚱맞게 갑자기 등장한 인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심지어 밍키라는 <삼시세끼> 강원도편에 등장했던 강아지가 어촌편의 산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즉 밍키는 이웃주민이 키우는 강아지로 자연스럽게 강원도편에 들어왔다. 만일 뜬금없이 들어온 강아지였다면 시청자들로서는 심리적인 장벽을 느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 밍키의 자연스러운 등장은 어촌편에서 갑자기 산체가 등장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삼시세끼>의 마스코트 같은 역할을 충분히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나영석 PD는 낯가림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에 그리 쉽게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보통의 대중들이 갖는 타인에 대한 생각과 비슷할 것이다. 바로 이 자연스러운 심리적 저지선은 나영석 PD의 캐스팅에 있어서 하나의 넘어야할 산처럼 다가오는 면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시청자들도 생뚱맞은 인물의 갑작스런 출연을 피하고 있다.

 

<꽃보다 할배>에서 최지우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나영석 PD의 캐스팅 노하우가 투영된 결과다. 최지우는 이미 <삼시세끼> 강원도편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꽤 괜찮은 싹싹한 면을 보여준 바 있다. 여기에 이서진과의 밀고 당기는 썸 같은 분위기도 한 몫을 차지했다. 그러니 그녀가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로서는 심리적 저항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어떤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일 게다.

 

나영석 PD가 말하는 이 캐스팅에 있어서의 연결고리들은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를 섭외하는데 있어서 참고할만한 일이다. 이제 낯선 출연자들의 틈입을 시청자들은 그냥 바라봐주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 대한 간파는 나영석 PD의 승승장구의 상당한 근거가 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착하지>, KBS가 발견한 새로운 성공 방정식

 

결국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수목극을 평정했다. 다중인격의 캐릭터들이 현빈과 지성이라는 연기자의 몸을 빌어 수목극 경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슬며시 들어온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사진출처:KBS)'

이 드라마의 시작은 아주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마치 하나의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왜 이런 가족드라마 구조를 가진 드라마가 주말이나 일일이 아닌 주중에 포진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에는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하고도 신선한 실험을 예감케 했다.

 

또 놀라운 점은 이 평이해 보이는 드라마의 대단한 캐스팅이다. 김혜자, 이순재, 장미희, 채시라, 이하나도 모자라 손창민, 박혁권, 서이숙 같은 쟁쟁한 중견들이 포진하고 여기에 김지석이나 송재림 같은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주목받는 배우까지 들어가 있다. 이 정도면 거의 전세대를 다 커버하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캐스팅이 가능한 건 여러모로 김인영이라는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에 대한 배우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양의 여자>, <적도의 남자>로 김인영 작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내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가족드라마가 아닌 대담한 실험들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기존의 가족드라마 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야기는 그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특별함들을 극적으로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그저 나쁜 여자들이 아니고 <착하지 않은 여자들>인가에서도 드러난다.

 

나쁜 여자착하지 않은 여자는 같은 말 같지만 그 뉘앙스가 다르다. ‘착하지 않은 여자착하다라는 표현이 반어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은 착하지만 여러 사정과 환경에 의해 착하지 않게 된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이 많은 캐릭터들에 주목시키는 방식은 이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깨는 방식과 유사하다. 드라마 초반 김현숙(채시라)은 엄마 강순옥(김혜자)이 평생 번 돈을 사업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려먹고 도박판을 전전하다가 수배되는 입장에까지 처한다. 이 때만 해도 김현숙은 가족드라마가 흔히 그려내는 민폐 캐릭터처럼 보였다. 하지만 차츰 이 착하지 않은 여자의 학창시절 선생님 때문에 당했던 왕따와 퇴학 이야기가 나오고, 때론 대책 없이 정의로운 정 많은 심성이 드러나면서 이런 선입견은 깨져버린다.

 

강순옥은 절망한 김현숙이 죽은 아빠의 무덤 앞에서 자살기도를 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장모란(장미희)이 과거 남편의 내연녀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발로 가슴을 차 기절시킨다. 이때만 하더라도 강순옥은 꽤 모진 인물처럼 그려지지만 어찌된 일인지 깨어난 장모란을 강순옥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지내려고 한다. 겉으로는 모진 척 하지만 그녀 역시 남다른 정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 같은 외피를 갖고 있어 연령대가 높은 세대들을 보다 쉽게 끌어들이면서도 그 안에 미니시리즈의 극적 스토리가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어 젊은 세대들까지 포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조용하지만 당연해 보이는 수목극 평정은 KBS라는 플랫폼에 어울리는 틀을 가져오면서도 거기에 세련된 어법을 구사하는 작품의 완성도에서 나온다.

 

사실 KBS의 주중 드라마들은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것은 타 지상파 방송사들의 장르 드라마 실험을 그저 비슷하게 따라하다 보니 채널의 특성과 부딪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어쩌면 KBS가 찾아낸 주중드라마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은 아닐까 싶다. 꼭 장르를 해야 세련된 것이 아니고 가족드라마라고 해도 구태의연한 것도 아니다.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다. 마치 착하지 않아 보이던 인물들이 다시 보이는 이 드라마처럼.

 

<꽃할배>, 나영석 PD 악역을 자처한 까닭

 

이번 여행에서 나영석 PD는 왜 악역을 자처했을까.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에서 나영석 PD는 어딘지 달라 보인다. 할배들의 용돈을 감축(?)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기도 하고 그러다 할배들의 파업선언에 꼬리를 내렸다가 결국은 착한 리더이순재에게 그 돈을 슬쩍 떠넘기고는 거짓 계약서에 사인까지 받아낸다. 또 굳이 짐꾼 이서진에게 드라마 촬영 핑계를 대게 만들고는 하루 늦게 합류하게 함으로써 할배들끼리의 첫 바로셀로나 숙소 입성까지의 고행을 하게 만든다. 나영석 PD는 왜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악역을.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사실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은 시작하기 전까지 어딘지 단물이 빠진 듯한 느낌을 줬던 게 사실이다. 할배들의 파리와 대만 여행은 물론 대단히 참신했다. 지금껏 그런 예능도 그런 시도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도대체 누가 팔순의 어르신들이 배낭여행을 하며 청춘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줄 알았으랴. 또한 이서진이라는 놀라운 짐꾼의 탄생을 예상했으랴. 그 첫 시도와 느낌이 가진 힘은 대단했다. 심지어 실버 파워가 문화의 새 트렌드로 등장했을까.

 

하지만 제 아무리 참신한 것도 세 번 정도 반복하면 기대감이 줄어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무언가 다른 게 필요했을 게다. 사람이란 누구나 그러하듯이 한 번 같이 여행을 다녀오면 같은 팀이 다른 공간을 간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역할이 비슷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새로운 발견이 예능의 포인트가 되는 나영석 PD로서는 그 역할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나영석 PD의 의도적인 악역은 새로운 여행 이야기를 위해 취해진 연출자로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일단 이 선택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첫 회에서 단박에 눈에 들어온 것은 순대장이순재의 재발견이다. 용돈이 준다는 것에 모두가 거세게 반발할 때 사람 좋은 웃음을 보내고, 나영석 PD의 계략을 다 알면서도 짐짓 받아주며, 리더로서 동생들을 무사히 바로셀로나의 숙소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들 음식을 즐길 때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스페인어와 지도에 몰두하는 순대장. 그는 나이 먹었다고 앉아있기보다는 나이 자체를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실버 세대상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나영석 PD의 함정(?)이 너무 짓궂다 여길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실상 나영석 PD는 지금껏 프로그램을 하면서 늘 이런 변화를 스스로 주도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12> 때도 그는 출연자들과 대립상황을 주도하며 밀당을 해왔고, <꽃보다 할배>를 하면서도 늘 이서진 옆에서 깐족대는 모습으로 그를 도발해왔다. 어찌 보면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는 걸 즐기는 악취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그 결과다.

 

나영석 PD가 악역을 맡으면서 사실은 그 상대방들이 돋보이는 캐릭터의 재발견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12> 때는 그래서 강호동을 비롯한 멤버들이 전부 돋보였고, <꽃보다 할배>에서는 이서진이 돋보였으며, <꽃보다 누나>에서는 이승기가 돋보였다. 이 결과는 나영석 PD의 악역이 자극을 위한 자극이 아니라, 그 상황을 통해 드러나는 인물의 새로운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을 만나야 그 진면목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촌놈 같은 수더분한 얼굴로 다가와 출연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는 나영석 PD는 이제 그 역할이 PD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고 여겨진다. 나영석 PD는 이제 프로그램 바깥에서 진두지휘하던 연출자만이 아니라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와 적극적으로 상황을 만들어가는 출연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것은 PD의 새로운 역할이다. 그저 미션 제시하기 위해 발 하나 담그고 있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여행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그리고 이것은 <꽃보다 할배>의 여행이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찍기만 하는 그런 여행과는 사뭇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순대장을 발견케 한 나영석 PD. PD 역할의 진화가 점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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