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엄마는 아이를, 아이는 엄마를 탄생시킨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엄마도 태어나는 것 같아요.” tvN 수목드라마 <마더>의 수진(이보영)은 그렇게 말했다. 본인은 한 번도 엄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던 수진이었다. 그러던 수진은 결국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진짜 엄마가.

결국 진짜 모녀지간이 된 수진에게 윤복(허율)은 묻는다. “엄마 나 처음 봤을 때 불쌍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수진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난 나 같은 애가 또 있네 그렇게 생각했어.” 즉 수진이 윤복을 데리고 멀리 도망치려 했던 건 아이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되려 윤복은 수진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애들을 무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긴 여정의 마지막 장면에 들어간 이 대사는 <마더>가 하려던 이야기가 그저 아동학대를 받는 한 아이를 구원하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아이를 구해내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엄마를, 세상을 구해내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이 윤복이라는 아이가 그 많은 상처를 겪어내면서 주변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수진이 말하듯 윤복을 통해 엄마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건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걸 증명하는 일이었다. 

수진의 엄마 영신(이혜영)은 진짜 엄마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다른 작은 존재에게 자기를 다 내어줄 때”라고. 하지만 그건 모성애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게 되는 건 엄마가 태어나듯이 타자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인간애를 드러낼 때가 아닌가.

<마더>라는 드라마가 놀라운 건, 마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엄마의 사랑이 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과정을 통해 태어난다는 걸 얘기하려 했다는 점이다. 아이를 두려워하던 수진은 윤복을 만나(그건 어쩌면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이 엄마로서의(혹은 한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그러니 아이는 ‘키워줘야 될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부모를 ‘탄생시키는 존재’가 된다. 그건 다름 아닌 세상이 살만한 건 사람들이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존재로서 아이가 거기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더>에서 윤복은 수진을 구원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구원해내는 존재가 된다. 이 드라마에서 어떤 숭고한 종교적인 느낌 같은 걸 갖게 되는 건 이런 아이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이 윤복이라는 아이가 있어 우리는 울고 웃었다. 수진은 이 아이를 통해 부정했던 자신의 구원을 얻었고, 먼저 간 영신은 큰 위로를 받았으며, 뒤늦게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진(전혜진)과 현진(고보결) 역시 자신들이 분명한 영신의 딸이라는 걸 확인하게 해줬다. 또한 수진의 친모인 홍희의 과거 아이에게 잠금줄을 맸을 때 갇혀졌던 삶 역시 윤복이 열어준 열쇠로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그룹 홈에서 윤복을 돌봐주고 그 아픈 상처를 끝까지 보듬어주려 했던 그룹홈 엄마(오지혜)는 끝내 자신을 엄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윤복을 수진에게 돌려보내는 그 순간에 엄마로 태어난다. 무엇이 윤복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는가를 알게 되고 결국 보내주는 마음은 저 영신이 말했듯 “다른 작은 존재에게 자기를 다 내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 아이는 다가와 그룹홈 엄마에게 말한다. “고맙습니다. 엄마.”

도대체 우리는 아이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었을까. 육아의 현실은 물론 힘겨운 일이고 그래서 그만한 제도적 마련이 절실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라는 존재마저 ‘키워내야만 하는 버거운 짐’처럼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더>는 그런 점에서 아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가 있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축복받고 있는가를. 세상에 많은 엄마들을, 또 진정한 인간애를 태어나게 하는 존재로서.(사진:tvN)

'병원선' 윤선주 작가라면 의사들 멜로로 풀진 않을 거다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은 그 소재가 독특하다. 이 드라마가 소개되기 전까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며 의료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섬을 중심을 의료 활동을 벌이는 이 병원선은 그래서 그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런 배가 있고 그 배를 타고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의료행위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지해주고 싶은 소재니까. 

'병원선(사진출처:MBC)'

게다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상정하는 건 의학드라마라는 우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극적 상황들이 가능한 장르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로서의 병원선이 있기 때문에 바다가 주는 그 풍광이나 때 아닌 자연재해 같은 또 다른 극적 상황이 가능해진다. 물론 섬사람들과 병원선 사람들이 갖게 되는 끈끈한 인간애나 휴머니즘은 당연해지는 기대요소다. 

또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매력과 성장과정 역시 기대요소 중 하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과의 송은재(하지원)가 병원선으로 오기까지 보여준 면면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손을 벌벌 떠는 신참 앞에서 수술 도중 그런 손이 환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고 호통치며 척척 수술을 해내는 장면만으로도 이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충분히 빠질 수 있었던 것. 

최연소 과장이 되고픈 욕망을 가진 인물이지만 섬마을에 사는 엄마가 수술이 필요해 보내는 마을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엄마의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가 병원선으로 자청하여 오게 되는 그 과정은 그래서 성공에 대한 욕망을 좇는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공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치열한 삶이 행복을 찾아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병원선으로 와 섬사람들을 위한 의사로서 살아가는 일은 챙기지 못한 엄마에 대한 부채감으로 시작된 일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 회만으로도 독특한 의학드라마로서 기대감이 넘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남는 불안요소들도 적지 않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멜로가 그것이다. 연애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송은재라는 캐릭터가 병원선에서 만나게 되는 곽현(강민혁)과 결국 멜로관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지점은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갖게 만든다. 

물론 멜로를 원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최근 들어 본격 장르드라마에 대한 요구 또한 적지 않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아버지의 아들로서 곽현은 실력과 외모 평판까지 사실상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와 송은재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커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멜로의 등장이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던 드라마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적어도 <병원선>에서의 이야기만큼은 적절한 선이 유지됨으로써 본래 하려고 했던 휴머니즘과 성장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기대하는 면이 있다. 만일 이 부분의 균형이 깨진다면 이 좋은 소재의 드라마가 평이한 멜로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힘은 <병원선>의 작가가 우리에게는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대왕 세종>, <비밀의 문> 같은 주제의식이 유독 강한 작품들을 내놓은 윤선주 작가라는 점이다. 병원선이라는 특별한 공간 위에서 청년의사들이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예의나 그를 통한 성장기는 그래서 <병원선>에 대한 가장 큰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닥터스>, 상투성을 깨는 하명희 작가의 좋은 시선

 

병원에서의 직진 로맨스와 34각 멜로,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한 대결 구도, 수술대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인에 의혹을 품고 그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한 추적. SBS <닥터스>가 다루는 소재들은 의학드라마에서 늘 봐오던 것들이다. 로맨스야 심지어 가운 입고 연애한다는 비판까지 들을 정도로 많이 나온 소재이고, 권력 대결은 <하얀거탑> 이후 의학드라마의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소재다. 여기에 죽음의 사인을 추적하는 이야기 역시 그리 새롭다 말하긴 어렵다.

 

'닥터스(사진출처:SBS)'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닥터스>는 이처럼 어찌 보면 상투적인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전혀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 들어가면 신선한 느낌마저 준다. 예를 들어 이미 홍지홍(김래원)과 유혜정(박신혜)이 서로 좋은 감정을 드러내고 남녀로서 가까워지고 있지만, 유혜정에게 공공연히 호감을 드러내는 정윤도(윤균상)와 또 그를 좋아하는 진서우(이성경)의 멜로구도를 보자. 이건 틀에 박힌 4각 구도가 아닌가.

 

하지만 그 4각 구도가 보여주는 양상은 여타의 멜로드라마들이 그려낸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정윤도는 유혜정과 홍지홍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연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걸 질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대놓고 틈만 보이면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홍지홍에게 마치 동생처럼 밥 사라고 투덜대기도 한다. 이들의 멜로 관계는 그 속내를 다 알지만 질척임 같은 것도 없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갈등 같은 건 더더욱 없다.

 

정윤도를 좋아하지만 그가 유혜정에게 호감을 보이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진서우라는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밉상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4각 멜로에서 보여주는 그런 식의 폭주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상황과 자라온 환경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 태생적으로 구제불능 캐릭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 주변에 피영국(백성현) 같은 친구가 있어 그녀를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봐주는 건 이 캐릭터에 대해 작가가 역시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드러낸다.

 

병원 권력을 잡기 위해 홍두식(이호재)과 진성종(전국환)이 대립하고 그래서 홍두식은 진성종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본래 친구관계였다는 걸 끝내 버리지 않는다. 재수술을 앞두고 있는 진성종에게 홍두식이 면회 오자 그는 얼굴은 괜찮냐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홍두식은 진성종의 비자금을 알고 있다며 각을 세운다. 사적으로는 친구 관계지만 공적으로는 대립적인 관계라는 게 둘 사이에서는 공존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들 진명훈(엄효섭)수술이 잘못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진성종은 발끈하며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말하냐고 오히려 자식을 질책하는 대목 역시 독특하다. 흔한 병원 권력 투쟁의 이야기라면 이 진성종-진명훈 부자가 권력 쟁취를 위해 막나가는 그런 장면들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그와는 사뭇 다른 양상들을 보여준다.

 

도대체 이런 상투적 소재들 속에서도 상투성을 뛰어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이기도 하면서(이 드라마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명희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남다른 인물관에서 비롯된다.

 

하명희 작가는 심지어 불륜 속에서도 그 사람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애써 찾아낼 정도로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인물들이 폭주하는 그런 막장적인 상황 속에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그려진다. 우리가 그저 극적 전개를 위한 악역으로 치부해온 인물들도 그 속으로 들어가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진서우라는 밉상 캐릭터에게 홍지홍이 난 네 담탱이야. 네가 잘 되길 빌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마치 작가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밉상이지만 그래도 작가는 끝까지 그녀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영향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닥터스>는 그래서 의학드라마지만 환자를 고치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의 의학드라마라기보다는, 의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관계들을 통해 치유 받을 수 있는가를 다루는 의학드라마처럼 보인다. 유혜정은 그렇게 나락에서 홍지홍을 통해 구원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인물의 구원이나 성장이 교사가 학생에게 주는 것 같은 그런 일방향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다시 의사가 되어 유혜정을 만난 홍지홍은 그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홀로 서는 일에만 익숙했던 유혜정의 삶은 그것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홍지홍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혜정은 홍지홍에게 힘든 일도 모두 공유하자고 말한다. 홍지홍 역시 모든 걸 혼자 떠안고 결정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일방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변화하고 성장한다. 뻔한 상투성의 소재 속에서도 <닥터스>가 주는 따뜻함과 위로, 위안 나아가 구원 같은 느낌은 바로 이 하명희 작가의 사람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에서 비롯되고 있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 <삼시세끼>처럼

 

산체와 벌이 없는 <삼시세끼>를 생각할 수 있을까. <삼시세끼> 어촌편이 시즌2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산체와 벌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얼마나 자랐을까. 여전히 차승원과 유해진을 알아볼까. 또 함께 지내는 벌이와는 여전히 툭탁대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제 고양이와 개의 행복한 공존을 이뤄내고 있을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차승원과 유해진이 다시 찾은 만재도의 집이 진짜 집처럼 여겨지게 만들어준 것도 산체와 벌이다. 방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 아이들은 과거의 즐거웠던 시간과 현재를 다시 이어주었다. 몸이 엄청나게 커진 벌이는 이제 산체와 대적할 만큼 힘이 세졌고, 그래서인지 산체는 자주 벌이와 대등한 입장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차승원과 유해진에게 잠시 경계하는 듯 하더니 금세 가까워져 무릎 위에 홀짝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힘이 좋아진 산체는 방이 답답했는지 게스트로 온 박형식이 데리고 산책을 나가자 거의 그를 끌고 다니다시피 했다. 박형식이 산체를 산책시킨 게 아니라, 거꾸로 산체가 박형식을 산책시킨 모양이었다. 그렇게 즐겁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산체를 보면서 벌이가 눈에 밟힌 유해진은 동네에 버려진 나무를 가져와 캣 타워를 만들어주었다. 만들어 놓은 사람 입장에서야 얼른 거기에 올라가는 벌이가 보고 싶을 테지만 유해진은 강요하지 않고 벌이가 스스로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결국 꼭대기에 오른 벌이를 보며 기쁜 마음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산체와 벌이가 함께 방안에서 노는 장면들은 <삼시세끼>의 중요한 에피소드 중 하나를 차지한다. 매번 방영되는 내용들 중 이들이 하는 행동들은 <삼시세끼> 특유의 자막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다. “, , 같은 자막은 마치 사람들이 하는 행동처럼 꾸며지며 산체와 벌이의 캐릭터로 흡수된다. 그러니 시청자들에게 산체와 벌이는 그저 우리와는 다른 동물이 아니다. 거의 사람과 다름없는 가족으로서의 산체와 벌이인 셈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사실 산체와 벌이의 방안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힐링을 안겨준다. 만재도의 환경을 떠올려보라. 따뜻한 여름이야 그나마 찬란한 햇빛을 맞이할 수 있었지만 지난 겨울의 혹독함을 생각해보면 따뜻한 방안에서 뒹구는 산체와 벌이가 그 자체로 힐링이 되어주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섬의 차가운 칼바람에도 만재도가 어떤 따뜻함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산체와 벌이 같은 온기를 나눠주는 존재가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삼시세끼>, 아니 나아가 나영석 PD의 일련의 예능들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꽃보다 할배>의 순대장 이순재가 동물의 친구로 불리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는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만난 비둘기 한 마리에게도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고 말을 걸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행위가 전하는 건 동물에게 먹이를 준다는 단순한 의미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닐 게다. 길거리에 있는 동물에게도 마음을 나눠줄 수 있는 그 마음. 그 따뜻한 마음이 증명해주는 인간애를 우리는 거기서 발견하게 된다.

 

최근 벌어진 가슴 아픈 캣맘 사건으로 생겨난 대립은 이제 우리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걸 말해준다. 길거리 동물에 대해 연민을 보이는 이들이 있는 반면,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연민 혹은 혐오가 인간 대 동물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문제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 인식일 게다.

 

적어도 <삼시세끼>가 산체와 벌이를 보듯이만 한다면 어떨까. 이런 문제의 해결점은 의외로 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온기를 가진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건 동물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가족드라마의 틀 속에 동성애도 있는 것

최근 보수적인 성향의 한국교회언론회는 "동성애 미화,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논평을 통해 '동성애를 미화하는 TV프로그램의 방영은 동성애에 대한 동정심을 넘어 심각하게 비호하는 측면이 있다."는 논평을 냈다. 또 기도운동단체인 에스더 기도운동도 최근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대로 TV드라마를 방치한다면 이 땅의 많은 청소년에게 동성애는 아름다운 것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시청거부운동을 촉구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프로그램을 지목하진 않았지만 최근 종영한 드라마 '개인의 취향',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동성애자를 지목한 것일 게다. 특히 그중에서도 '인생은 아름다워'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성애자 태섭(송창의)에 대한 시선은 극에서 극으로 옮겨졌다.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동성애자 태섭이란 존재에 대한 반감은 어느새 동감으로 바뀌어버렸다.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걸까.

그것은 커밍아웃을 통해서 비로소 태섭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태섭이 차마 가족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철저히 타자였다. 드라마 속에서 가족과 섞이지 않는 태섭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이 땅의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그 시선 그대로였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외계인 같은 존재. 하지만 그가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양엄마인 민재(김해숙)에게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 태섭을, 민재는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 사실을 민재에게 전해들은 병태(김영철) 역시 태섭을 탓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해준다.

외계인처럼 겉돌던 태섭은 그 부모인 민재와 병태가 끌어안음으로써 비로소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바로 이 시점의 변화가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을 극에서 극으로 바꿔놓은 김수현 작가의 마법. 그 마법은 다름 아닌 가족애다. 타인으로만 바라보던 시청자들의 시점을 가족의 시점으로 바꿔놓자, 거기에 외계인이 아닌 우리네 가족 중 하나로서의 태섭이 서 있었다. 그 어떤 가족이 자신의 가족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그저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민재가 태섭에게 '우리가 너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김수현 식으로 동성애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다. 그것은 철저히 가족드라마의 시선으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분명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인 잣대나 사회적인 맥락 같은 것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가족 바깥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즉 가족의 눈높이에서 동성애는 윤리적인 문제도 사회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저 부모 자식사이에, 형제 남매 사이에 놓여진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 드라마라기보다는 김수현 특유의 가족드라마가 맞다. 다만 그 가족의 일원 중에 동성애자가 들어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양병태네 집안사람들이 저마다 문제들을 갖고 옥신각신하면서도 결국에는 가족애로 그것을 넘어서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드라마다. 거기에는 일부에서 제기하는 '동성애에 대한 미화'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애자라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그 가족애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해묵은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접근보다, 훨씬 실질적이고 인간적인 접근방식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다양한 차원을 보여준 '별을 따다줘'

멜로드라마가 사랑을 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별을 따다줘'처럼 사랑의 다양한 차원을 담는 것은 이색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별을 따다줘'의 기본적인 뼈대는 진빨강(최정원)과 원강하(김지훈)의 사랑이지만, 이 뼈대만 본다면 이 드라마의 많은 살점들을 놓치게 된다.

먼저 진빨강의 동생들이 보여주는 동심어린 사랑이 그 첫 번째다. 사실 이 동심은 '있으나 마나 미스 진'을 정신 차리게 만든 사랑의 실체이자,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이 살아온' 원강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한 장본인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그녀에게 옹알이를 해준 막내 남이는 그녀에게 가족이 짐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무도 침입(?)을 허락하지 않고 요새처럼 벽을 쌓으며 살아온 원강하는 어느 날 갑자기 침대로 무단 침입한 파랑(진보근)이에 의해 무장해제된다.

이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상황 속에 놓여있던 문제의 남녀는 바로 이 동심으로 인해 깨어나 비로소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된다. 진빨강은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자르며 난 이제 여자가 아니라고(아이들의 보호자라고) 선언하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사랑의 진짜 실체를 알게 되고, 이 도무지 눈치라고는 보지 않는 아이들의 무차별적인 들이댐을 귀찮지 않게 여길 즈음, 원강하는 마음을 열게 된다. 즉 이 둘의 사랑은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의 귀결만으로 애초부터 귀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밑바탕에는 좀 더 다른 차원의 사랑, 동심의 사랑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다.

멜로가 깊어질 즈음, 등장하는 것이 형제애와 우정이다. 즉 원강하를 차지하려는 정재영(채영인)과 진빨강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원준하(신동욱)로 인해 관계가 복잡하게 치달을 때, 원강하와 원준하의 형제애가 등장한다. 동생 없이는 살 수 없는 원강하와 늘 형의 것을 빼앗지 않고 살아가려는 착한 동생 원준하는, 진빨강을 사이에 두고 결국 두 사람의 형제애를 확인한다. 또한 원강하를 포기한 정재영은 늘 자신 옆에 있어준 원준하와의 우정을 확인한다. 실연을 당한 두 사람이 "우리 오랫동안 함께 술 마셔야겠지?"하고 나누는 대화 속에는 우정을 넘어서는 어떤 발전의 계기까지 감지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원강하와 원준하가 피가 섞이지 않은 배다른 형제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다시 '별을 따다줘'의 사랑은 인간애로 확장된다. 늘 진빨강과 동생들의 할아버지로 주변에 서 있는 JK생명의 회장 (정국)이순재, 어딘지 덜 자란 듯 하지만 여전히 동심을 가진 채 진빨강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우태규(이켠), 그리고 마치 자기 일인 양 아낌없이 진빨강을 도와주는 한진주(박현숙)와 최은말(김지영). 이들은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혈연관계 이상의 유사가족을 형성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정은 이 드라마를 단지 멜로드라마의 사랑타령 그 이상으로 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별을 따다줘'가 우리에게 따다준 것은 바로 이 다양한 차원의 사랑이다. 조금은 투박하고 조금은 트렌디한 느낌을 주면서도 우리가 기꺼이 이 드라마에 '착한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아끼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다양한 사랑들이 드라마 곳곳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신경쓰인다"는 말은 정지우 작가의 작품에서는 "사랑하게 됐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멜로드라마를 그리지만, 그 멜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남녀 간의 관계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인간애를 바탕에 깔고 있죠. 그래서 그녀의 드라마는 '측은지심의 드라마'가 됩니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될 그 마음을 이끌어내는 드라마죠.

변호사 원강하(김지훈)는 스스로 자신을 '마음이 없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드러낼 때마다 맞았다"고 술회하며 그래서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고 말하죠. 그의 집은 그 마음이 없는 원강하의 그 텅빈 공허를 형상화해낸 공간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속으로 진빨강(최정원)과 동생들이 불쑥 허락도 없이 들어오죠. 그러면서 이 '마음 없는 공간'은 질서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원강하의 단단한 방호벽(?)을 뚫고 진빨강과 아이들은 무차별 진격해 들어옵니다. 처음 진빨강은 그 '염치없음'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차츰 과감(?)해집니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간신히 한 달간의 유예기간을 얻은 그녀는 어차피 쫓겨날 거, 이 '마음이 없는 인간'에게 대들기 시작합니다.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가정부로 들어온 여자가 가사일을 전혀 모르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줄줄이 숨겨서 들어와 버젓이 살아보겠다고 주장하는 건 몰염치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타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쿨한 이 집의 원강하 같은 인간에게는 엄청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죠. 그런데 원강하는 이들의 침범에 조금씩 동화되어 갑니다.

몽유병을 갖고 있어 매일 밤 자신의 침대로 침범해들어오는 파랑(천보근)을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 호의를 가진 그에게 그러나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괴롭힙니다. 호의로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시켜주면, 자장면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몰염치는 단단한 원강하의 방호벽을 뚫고 들어옵니다. 그는 자신을 짝사랑해온 정재영(채영인)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지만 진빨강에게는 결국 "당신이 신경쓰인다"고 말합니다.

'별을 따다줘'의 몰염치가 기분좋은 것은 이 '마음이 없어 보이는' 사회를 침범해들어오는 그 인간적인 염치없음이 보기좋기 때문입니다. 쿨한 사회. 상대방을 위해 웃음을 지으면 마치 자신이 지는 것이라도 되는 양 무표정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진빨강과 아이들의 도발은 신선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보험회사라는 설정은 이러한 드라마의 메시지를 잘 보여줍니다. "가족처럼!"을 늘 입에 달고 다니지만, 그 이면에는 돈의 논리가 꿈틀대는 JK생명의 일단은 우리 사회의 차가움을 대변해줍니다. 그 속에 들어간 진빨강은 마치 마음 없이 살아가는 원강하의 마음 속에 들어간 것처럼 사회에 따뜻함을 전하려 합니다.

멜로에서부터 인간애를 얘기하는 것은 정지우 작가 작품의 특징입니다. 조금은 세련되지 못해 보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껴지는 것은 그녀의 드라마만이 갖는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 사회가 얼마나 차가운 것인가를 절감하고 있고 그래서 그렇게 차갑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허락없이 불쑥 발을 디디는 작가입니다. '몰염치'조차 인간적인 매력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애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그 설렘의 순간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 라인은 꽤 복잡한 편이다. 황정음과 이지훈(최다니엘)은 서로 사사건건 다투고 싸우면서 멜로가 이어진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레지던트 3년차 이지훈과, 서운대라는 자격지심에 늘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황정음은 외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바로 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황정음은 이지훈 앞에서 늘 굴욕적인 상황을 연출하는데, 술을 마시고 떡실신녀가 된다거나, 서운대생이라는 게 들통 나 그것을 감추려고 생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좀 더 완벽해지고 싶어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지훈은 정반대다. 완벽하다 못해 건조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는 오히려 빈틈을 많이 보이는 황정음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에게 부재한 부분을 상대방을 통해 찾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관계가 발전해 결국 키스라는 사건(?)으로 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술이라는 매개체다. 술은 황정음이 이지훈에게 마구 들이대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데, 그녀는 그것이 술 때문이라며 핑계를 댄다. 이지훈은 또 그럴 때마다 황정음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 역시 그녀가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한다. 저게 멜로일까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상황은 흔한 멜로가 갖는 직접적인 사랑고백 방식의 상투성을 살짝 벗어나게 해준다.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따뜻한 마음 정도로 처음에는 인식되다가 차츰 그 인간애가 사랑으로 변해가는 식이다.

이것은 이지훈과 신세경이 보여주는 멜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관계에서 이지훈은 신세경의 어려운 삶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신세경의 휴대폰을 사주고 요금을 대신 내준다거나, 그녀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계속 하라고 조언해주고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모습은 따뜻한 인간의 순수한 호의로 다가온다. 그런 호의에 신세경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손수 짠 목도리 같은 정성으로 보여준다. 즉 이 멜로에서도 그저 말이나 몸으로 전해지는 직접적인 남녀 간의 사랑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인간애의 모습이 휴대폰이나 목도리 같은 매개물로 전해질 뿐이다.

한편 황정음과 신세경, 그리고 정준혁(윤시윤)이 엮어가는 멜로는 실로 그 전파되는 방식이 흥미롭다. 신세경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녀의 학업을 도와주려는 정준혁은 자신이 그럴 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성적을 올리고 싶어하고 황정음에게 도움을 청한다. 황정음은 자신을 누나라 부르지 않고 실제로 자신의 보디가드 역할까지 해주는 정준혁을 내심 마음에 둔다. 그런 마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잠까지 설쳐가며 정준혁의 시험을 도와준다. 그렇게 해서 성적이 올라가자 정준혁은 신세경을 찾아가 그걸 자랑하고, 황정음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느낀다.

즉 이 세 사람 사이에 매개로 끼는 것은 바로 공부가 된다. 마치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이 관계 속에서 그것이 흔한 멜로가 보여주는 질투와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서로가 서로의 학업을 도와주는 형식으로 이들의 사랑과 정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정음, 신세경, 이지훈, 정준혁이 보여주는 멜로는 직접적이지 않고 그 사이에 어떤 매개물을 넣음으로써 세련되면서도 훈훈한 인상을 주게 된다. 그 매개물은 때론 술이 되기도 하고, 때론 휴대폰이나 목도리 같은 물질적인 것이 되기도 하며, 때론 학업을 도와주는 식의 무형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한 인간 대 인간의 정으로 보인다.

이 시트콤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렇게 네 사람이 엮어가는 멜로가 인간의 정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래서 그 마음이 오고가는 것을 볼 때, 보는 이의 마음 또한 흡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처음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어떤 거리두기가 가능할 때 유지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애에서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연결되어가는 과정, 이것이 우리가 삶 속에서 알아가는 사랑의 과정이 아닐까.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는 바로 그 지점, 거리두기가 가능한 인간애의 차원에서, 이제 막 거리가 좁혀져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넘어가는 그 곳의 설렘과 떨림을 담아내고 있다.

 ‘지붕 뚫고...’, 시트콤으로 드라마의 한계를 넘다

도대체 이게 시트콤이 맞아? 우리는 아마도 시트콤을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했었나 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다보면 이것이 웬만한 드라마보다 훨씬 재미있고 또 감동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저 웃기기만 하는 것이 시트콤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시트콤은 웃음 위에 진한 페이소스를 얹어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통념을 깨뜨린다. 게다가 이 가볍기만 할 것 같은 시트콤은, 그 경쾌함 위에 실로 진중한 무게가 느껴지는 의미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척척 붙여낸다. 자극을 걷어내고 진실된 웃음과 의미를 붙여, 보는 이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이 시트콤이 보여주는 자세가, 때론 막장으로 치닫는 작금의 드라마들에게 전하는 말은 그래서 결코 작지 않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인간을 마치 인형처럼 마구 다룬다는 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자극적인 상황 속에 인물을 몰아넣고 마치 그 불행을 즐기듯 들여다보는 그 태도는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불쾌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인물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어이없게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은 실로 시청자의 마음을 마음껏 갖고 놀겠다는 작가의 만행에 가깝다. 이 캐릭터에 대한 태도는 바로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작가가 시청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다른 점은 바로 이 인물들에 대한 작가와 연출자의 시선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이순재는 칠순의 나이에도 낯간지러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지만(그래서 때론 엄청난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그것이 주책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나이에도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연애감정에 시청자들은 응원의 마음을 갖게 된다. 세경과 신애의 상황은 어찌 보면 지나친 신파적인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것이 단지 눈물샘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혐의를 벗어난다. 우리는 꿋꿋이 살아가는 그들을 도와주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인들의 바쁜 삶 속에 잊고 살아온 인간애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는다. 고개 숙인 아버지, 아들 앞에서는 그래도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하는 아버지 정보석과, 그렇지만 힘없는 아버지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는 아들 준혁(윤시윤) 사이에는 끈끈한 부자 간의 정이 느껴진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애정은 “빵꾸똥꾸”를 연발하던 해리(진지희)에게서 극적으로 보여진다. 해리는 자기 물건에 손을 댔다며 신애의 뺨을 올려부치는 그 순간에 이 시트콤에서 가장 자극적인 캐릭터로 주목되었다. ‘아내의 유혹’의 패러디로 해리가 민소희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어린 아이가 가진 캐릭터가 그만큼 독한 악역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이 해리가 점차 어쩐지 불쌍한 아이라는 느낌을 주기 시작하고, 때로는 역시 ‘아이는 아이’라는 확신을 주기 시작한다. 신애가 쓰는 동화를 읽기 위해 갖은 일을 대신하면서 빨리 동화를 쓰라고 욕을 해대는 모습이나, 신애가 놀러간 하룻밤 내내 그 허전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만나는 순간 신애에게 달려가는 그 모습은 이 아이가 겉으로는 욕을 해대도 마음은 늘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이 시트콤의 멜로 라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시트콤은 드러내놓고 애정을 과시하는 이순재-김자옥을 빼고는 아직 아무런 멜로 라인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세경과 지훈(최다니엘), 세경과 준혁(윤시윤), 그리고 지훈과 정음, 준혁과 정음의 멜로 라인을 기대하게 된다. 지훈은 따뜻하게 세경의 어려운 점을 몸소 행동으로 챙겨주고, 준혁 역시 세경을 위해 보이지 않게 그녀를 도와준다. 반면 지훈과 정음, 준혁과 정음은 서로 툭탁 거리며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어떤 애정라인이 생겨날 것 같은 기대를 준다.

그런데 실제로 멜로 라인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기대감만 부풀뿐이다. 이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이들은 멜로의 기대감을 높이는 관계들이 중첩되어 있지만, 사실은 다만 멜로만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 거기에는 누가 누구를 도와주든 그 바탕에 남녀관계를 넘어선 인간 대 인간 간의 따뜻한 애정이 깔려 있다. 이 휴머니즘 속에서 이들의 멜로 관계는 단순 사랑 타령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실로 막장드라마들이 쉽게 애정에 몰두하고, 그 애정의 반역과 불륜의 파탄을 자극으로 몰아가는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이미 단순한 시트콤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것은 이 시트콤이 우리에게 주는 웃음의 다양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시트콤은 정통 시트콤이 주는 폭소를 터뜨리게 하면서도, 크진 않아도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러니 폭소에서 미소까지, 풍자가 주는 서늘함에서 인간애를 통해 보여주는 감동까지 주는 이 작품을 어찌 그저 시트콤이라는 수식어로 한정할 수 있을까.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오히려 드라마 바깥에 위치해 있어, 드라마가 가진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 그 곳이 이 시트콤이 서 있는 자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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