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파’, 장혁은 공감 가는데 어째 손여은은 영

한 때는 존경받던 챔피언이었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협회에서조차 영구제명 된 권투선수 유지철(장혁).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이 인물은 그 약물이 가진 괴력을 도박 격투기장에서 경험한다. 부작용 때문에 피실험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걸 이겨낸 유일한 그는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며 다시 격투기 선수로 링 위에 오른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는 몇 가지 이야기 코드들이 합쳐져 있다. 하나는 한 집안의 남편이고 아빠라는 ‘가장’의 무게감을 담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격투기 소재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아드레날린24>처럼, 약물 투여를 통해 변신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이미 헤밍웨이가 매료됐던 것처럼, 사각의 링은 하루하루 세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가장들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기에 적당한 장소다. 그 위에 선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두드려 맞아도 결코 쓰러질 수 없다.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 가족이 무너진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자신이 욕을 먹어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족의 행복은 딸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또 아내가 그 글 쓰는 재주를 돈을 벌기 위해 야설을 쓰는데 소모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다.

이것은 다소 과장되게 그려진 ‘가장 판타지’다. 돈이 좋은 가장의 최우선 조건으로 대두되는 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들 중 하나인 친구에게 재산을 전부 투자했다가 망했고, 딸은 이미 연예인급으로 알려진 친구와 다투다 그를 다치게 해 그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아내에게 옛 친구이자 자신의 라이벌인 성공한 격투기 선수 이민우(허준)가 자서전을 미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지철을 둘러싼 이 모든 불운들은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지철은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부정한 방법을 쓰기로 한다. 해서는 안 될 신약을 복용한 후 그 힘으로 경기에서 이기는 것. 무슨 일인지 종합격투기 프로모터인 주국성(정만식)은 그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7번의 경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치 유지철 앞에 나타난 구세주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딘가 유지철의 뒤통수를 칠만한 사연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신약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 약의 부작용을 유지철이 이겨냈다는 걸 알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돈에 의해 불운해지고, 그 돈을 벌어 다시금 행복을 찾으려 링 위에 오르는 유지철이라는 가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소 과장되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마도 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들이라면 이 유지철이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선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바로 이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대한 짠한 공감을 위해 희생되는 주변인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주변인이 바로 그의 아내인 최선주(손여은)다. 다시 시작하려는 남편을 말리는 최선주가 이민우의 자서전을 빌미로 강릉까지 함께 가고, 바닷가에서 서로 물을 끼얹으며 까르르 웃는 장면은 이 인물이 유지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불륜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을 세우는 건, 유지철과 이민우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함이다. 

또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름만 올라와도 구설에 시달리는 아빠 때문에 발레를 포기했지만, 댄서의 꿈을 꾸고 있는 딸 유영선(신은수)도 마찬가지다. 명품가방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딸의 이야기는 사실상 유지철이라는 가장을 위한 에피소드로만 처리된다. 모든 이야기가 ‘배드파파’ 유지철에게 집중되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주변인물들이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비되는 건 너무 작위적인 느낌을 만든다. 

시청자들이 장혁 때문에 보긴 보는데, 불륜 설정까지 들어가 있는 것에 영 공감하지 못하는 건 그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작위성의 문제 때문이다. 최선주라는 인물이 능동적인 선택으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지철의 이야기를 전제로 해서 이리저리 동원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가장의 이야기라 반가운 면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 남는 아쉬움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링 위의 극적인 이야기로 담겠다는 그 의도는 좋지만, 그러기 위해 지나치게 그 가장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주변인물들을 거기에 맞춰 배치하는 건 전체적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공감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이다.(사진:MBC)

검경과 언론의 ‘조작’, 진실에 다가가려는 역발상

여론조작. 사실 이 만큼 우리네 대중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건 없다. 그 여론조작에 관여하는 건 검찰과 경찰 그리고 거대 언론이다. 이들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조하며 권력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사건을 조작한다. 검찰이 밑그림을 그리면 경찰은 행동하고 거대 언론은 그럴 듯한 소설(?)로 여론을 조작한다. 이런 일이 과연 현실에 있을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네 현실은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가 가끔씩 실제로 벌어지기도 한다. SBS 월화드라마 <조작>이라는 드라마가 그럴듯한 이야기로 들리는 건 그래서 이러한 현실이 만들어낸 갈증 때문이다. 

'조작(사진출처:SBS)'

<조작>의 맨 꼭대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언론 대한일보의 구태원(문성근)은 현재까지 이 적폐 시스템의 머리 격이다. 구태를 상징하는 이 인물은 권위 있는 언론인 척 하면서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호도한다. 여론조작을 위해 검찰을 마치 제 수하 부리듯 좌지우지한다. 임지태(박원상) 검사 같은 인물은 대한일보의 뒤를 봐주면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한다. 그는 자신들이 충실한 개라고 말하며 짖으라면 짖고 덮으라면 덮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고 말한다. 한편 전찬수(정만식) 같은 부패경찰 역시 구태원의 수족이 되어 여론조작의 한 축을 담당한다. 

이런 그림은 우리가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것들이다. 적폐세력이라고 자주 등장하는 부패한 검찰과 경찰 그리고 언론의 공조는 이미 <내부자들> 같은 영화를 통해 많은 대중들의 공분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래서 <조작>이 그리고 있는 현실이 특별할 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적폐세력들과 대적하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그것은 저들이 하는 방식의 역공조를 통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일보의 구태원이 있다면 그에 대적하는 인물로 스스로를 기레기라 자청하며 오히려 그런 변칙적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해가는 애국신문의 한무영(남궁민)과 바보행세를 하며 대한일보의 스플래시팀을 부활시키고 그래서 마지막 반전을 도모하는 이석민(유준상) 기자 있고, 임지태 같은 부패 검사가 있다면 그가 덮으라는 진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파헤치려는 권소라(엄지원) 같은 검사가 있다. 전찬수 같은 행동대원격의 부패경찰이 있다면 그와 대적하는 양추성(최귀화) 같은 애국신문을 돕는 의리파 깡패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저들과 대적하기 위한 역공조 팀을 이룬다. 영세하지만 진실을 위해 할 짓 안할 짓 다 하며 파헤치는 한무영과 애국신문이 권소라 검사 같은 인물과 공조하며 저들의 커넥션과 싸워나가는 이야기는 같은 방식을 통한 대결이라는 점에서 흥미진진해진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대적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역공조는 어떤 공감대를 갖게 만든다. 

그 끝에 서 있는 건 결국 대중들이다. 부패 언론에 의해 호도되는 진실이 여론을 조작하는 그 흐름이 있다면, 그 흐름과 맞서 그 여론 조작의 실체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그 사이에서 대중들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태원이 말하는 대중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여론 전쟁이라는 표현은 이 드라마를 가장 잘 설명하는 대목이다. 

조금 뻔할 수 있는 현실적 문제의식을 가져왔지만 <조작>이 흥미로워지는 대목은 바로 그 문제의식과 맞서는 방식으로서 저들의 방식을 정반대 방향으로 활용한다는 그 지점이다. 부패한 검경과 언론을 무너뜨리기 위해 모인 조직에서 소외된 검사와 기자 그리고 기레기 언론의 공조. 물론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이런 판타지적 구도만으로도 흥미롭게 응원의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네 비뚤어진 현실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뜻이니까.

‘맨투맨’의 브로맨스, 멜로와는 다른 휴머니즘이 보인다

다크데스 여운광(박성웅)과 김가드 김설우(박해진). 닉네임만으로 보면 이 조합은 B급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배우로서 영화 속에서는 ‘나쁜 놈’으로 불리는 다크데스지만 실제로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와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남자 여운광.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특명을 받고 접근한 코드명 K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의 조합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두 남자들을 중심에 세우고 있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대놓고 브로맨스를 그려보겠다는 건 <맨투맨>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지할 수 있는 일. <맨투맨>은 보디가드와 배우라는 직업적 관계로 만난(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만난 것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여운광이 방문하기로 한 러시아의 빅토르 저택에서 목각상을 빼오는 것이 김설우의 임무지만,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며 조금씩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운광이 연기 연습을 하겠다며 김설우에게 여자 역할을 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코믹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져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의외로 여자 역할을 잘 연기해내는 김설우는 연기 연습이 끝난 후에도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몰입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이건 웃음을 위한 코미디 설정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또한 연기로 시작한 김설우의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과도하게 몰입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에서 멜로 관계는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운광의 1호팬이며 그의 매니저인 차도하 실장(김민정)은 물론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관계처럼 보인다. 여운광이 살뜰하게 차도하를 챙기지만 거기에 사랑의 감정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광은 한 때 그가 사랑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이별통보도 없이 모승재(연정훈)와 결혼을 해버린 송미은(채정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지만 아직도 그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광과 이미 결혼한 송미은 사이에 멜로 관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맨투맨>에서 집중되는 건 멜로가 아니다. 대신 여운광과 김설우의 관계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김설우를 처음부터 스토커로 오인했던 차도하가 여운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된다. 또 여운광과 차도하 사이에 흐르는 오누이 관계 같은 훈훈함이나, 김설우와 그의 국정원 담당관인 이동현(정만식) 사이의 형제 같은 모습도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이동현과 목각상 프로젝트의 국정원 팀장인 장팀장(장현성)의 관계도 사무적 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국밥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맨투맨>은 그래서 멜로 관계를 살짝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느껴지게 하는 그 훈훈함이 드라마의 중요한 정서로 깔려 있다. 멜로를 넘어선 휴머니즘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의 의미는 단지 여운광과 김설우라는 ‘남자 대 남자’의 의미에만 머무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혹 형식적 관계를 벗어버린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연기신들도 <무도> , 곽도원 애청자의 팬심 인증

 

병정게임에 기반한 추격전을 하는 와중, 상암동 MBC 사옥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주지훈은 뜬금없이 <무한도전>의 대폭망 사례인 좀비특집이야기를 꺼낸다. 수백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준비했던 특집이 박명수가 사다리 하나를 치워버림으로써 그대로 끝나버렸다는 이미 <무한도전> 팬들에게는 전설이 되어버린 실패사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정우성, 황정민, 정만식, 김원해 같은 연기신들도 황당해한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러더니 이제는 황정민이 슬쩍 자신이 봤던 퍼펙트센스에서 박명수가 눈이 가려진 채 승합차에 태워 헬기처럼 꾸며냈던 몰래카메라 이야기를 꺼낸다. 그걸 보며 웃겨 죽는 줄 알았다는 것. 그 이야기에 다른 연기신들도 맞장구를 쳐준다. 영화 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존재감이 강렬한 연기신들이지만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 웃는 자신들을 이야기하며 스스럼없이 <무한도전>의 팬임을 인증한다.

 

출연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그것이 겨우 오프닝에 불과하다는 걸 안 연기신들은 은근히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춤이면 춤, 연기면 연기, 순발력 있게 들어와 웃음을 빵빵 터트리게 만드는 그들이 바로 예능신이라는 걸 확인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방인처럼 어색했지만 어느새 <무한도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능 출연이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곽도원은 심지어 덩치에 걸맞지 않은 귀여운 춤을 추고 곽블리라 불리면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리액션을 보여준다.

 

본 게임에 들어가 추격전을 하면서도 그들은 이렇게 뛰고 또 뛰고 하루를 온전히 고달프게 보내는 <무한도전>의 노동을 실감한다. 일찌감치 <무한도전> 팀들에게 잡혀 포로가 된 곽도원은 그 현장을 가까이서 목격하는 시청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게임의 룰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광희에게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주고, 유재석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묻는 양세형에게도 친절하게 그 이유를 밝혀준다.

 

가까이서 그 장면을 보는 곽도원은 새삼 유느님의 진가를 실감한다. 이렇게 11년 간을 이끌고 온 그의 저력을. “형 도 닦아!”라고 말한 대목은 그래서 단지 농담만이 아니다. 물론 광희도 양세형도 모두 새내기에 가깝기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여러 추격전 속에서 갖가지 상황들을 경험한 베테랑 유재석에게는 비교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는 모든 걸 설명해주고 새내기들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MBC 사옥에 도착해 왕을 잡는 마지막 추격전을 벌일 때 이제 버려진 곽도원은 “<무한도전>을 이렇게 빡세게 만드는구나하고 의자에 누워버린다. 그리고 다른 동료 연기자들이 나타나자 무얼 아침부터 이렇게 힘들게 찍어대냐고 넋두리를 한다. 그들은 물론 재밌게 <무한도전>을 시청해 왔지만 그것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온다는 걸 직접 그 안에 들어와서야 실감했을 것이다.

 

이 날은 <무한도전>500회를 맞는 날이기도 했다. 500회 동안 그들은 아마도 연기신들이 추격전을 통해 느꼈던 그 노동의 강도로 쉬지 않고 달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동의 진정성들은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방송을 통해 조금씩 느껴졌을 것이다. 연기신들조차 <무한도전>의 팬임을 자처하게 되는 건 그들마저 놀라게 만드는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남다른 노력이 쌓여진 결과다. 이러니 팬이 될 수밖에.

<아수라>의 호와 불호를 나눈 것들

 

영화 <아수라>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안남시의 집들을 부감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집들에는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는 물러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곧바로 이 안남시장 박성배의 가 되어 일하고 있는 형사 도경(정우성)으로 옮겨간다. 재개발, 시장, 비리형사, 조폭. 시작 부분의 몇 장면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걸 대부분 이야기해준다. 재개발을 하기 위해 조폭들과 비리형사들까지 싸그리 제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대는 절대 악 박성배의 갖가지 비리들을 덥기 위해 도경은 손에 피를 묻힌다.

 

사진출처:영화<아수라>

그런데 그의 앞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성배를 끌어내리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나타나면서 그는 박성배와 김차인 양자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린다. 도경은 회복되기 어려운 병으로 병원생활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아내를 위해 박성배의 손을 잡고 있지만, 그의 비리를 꿰고 점점 압박해 들어오는 김차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시키는 일들을 한다. 결국 중간에 끼어 양쪽에서 두들겨 맞는 도경의 얼굴은 갈수록 망가져간다.

 

<아수라>가 보여주려는 건 그래서 명확하다. 시장도 깡패도 검사도 형사조차도 믿을 수 없는 아수라판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정치와 손을 대고 있는 시장과 검사의 권력 다툼 사이에 끼어 새우등이 터지는 도경의 현실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의 극화된 상징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흔히들 말하는 하라는 민생은 안하고 쌈질들이나 하고 서민들만 죽어나가...”는 현실.

 

이처럼 <아수라>가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영화는 스토리적인 개연성에 있어서는 많은 허점을 보인다. 즉 액션이 보여주는 막연한 현실 환기는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갖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나 근거 같은 것들이 별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성배는 왜 재개발을 하기 위해 그토록 극악한 짓을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이는 또한 김차인이 그토록 박성배를 잡으려고 하는 이유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그나마 구체성을 띤 인물은 도경이다. 그는 병으로 죽어가는 아내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절실해진 캐릭터다.

 

이렇게 좀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개연성들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을 이 영화는 이러한 누아르가 가진 클리셰로 넘어가고 있다. 첫 장면에 등장한 재개발, 시장, 조폭, 형사 같은 누아르물이 으레 우리에게 전하는 클리셰들. 대신 영화는 그 클리셰들을 김성수 감독 특유의 피가 철철 흐르는 잔혹함과 동시에 미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상 연출을 통해 넘어서려 한다.

 

실제로 이번 <아수라>에서 김성수 감독이 보여준 액션 연출은 독보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추격신에서 카메라가 차에서 차로 넘나드는 장면은 지금껏 우리네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액션 연출이었다. 하지만 개연성이 잘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 겹쳐지는 과할 정도로 피가 튀는 살벌한 장면들은 영화에 빠져들게 하기 보다는 어떤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그나마 이러한 빈약한 개연성을 온전히 채워주는 건 연기자들의 명연기다. 황정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김원해... 한 명만 데리고도 티켓파워가 어마어마할 그들은 <아수라>에서 한 마디로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줬다. 보는 이들을 치가 떨리게 만드는 악역을 완성한 황정민, 어설픈 형사에서 점점 조폭의 잔인함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제대로 연기한 주지훈, 황정민과 대응해 전혀 밀리지 않고 압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 곽도원이나 마치 마동석 같은 단단한 액션을 보여준 정만식, 그리고 이 영화의 작대기라는 캐릭터로 초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원해가 그렇다. 물론 주인공인 정우성의 미친 듯한 신들린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즉 영화는 호불호의 요소들이 분명하다. 김성수 감독 특유의 누아르 연출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끝점을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가 제 취향이 아닌 분들이라면 그 액션들이 너무 과하다 여겨질 수 있다. 영화가 말하려는 서민들만 등터지는현실 이야기에 대한 공감이 있고 무엇보다 명배우들의 명연기는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남는 구체성이 결여된 개연성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다. <아수라>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연기신들 초대해 의자뺏기 놀이? <무도>의 놀라운 자신감

 

정우성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그가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모습을 정준하가 과장된 표정으로 흉내 내자 정우성은 되레 정준하의 그 모습을 흉내 낸다. “본인이 잘 생겼다는 거 알고 계시죠?”하는 유재석의 질문에 거침없이 라고 답하는 정우성. 흔히들 잘생김멋짐이 폭발하는 이 배우가 어찌된 일인지 <무한도전>에서는 웃기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는 저도 웃길 수 있어요. 웃기고 싶어요라며 의욕을 드러냈고, 그런 색다른 면면은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어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이번 <무한도전-신들의 전쟁>편은 영화 <아수라> 제작팀 막내들과 했던 경매쇼가 인연이 되어 이뤄진 것이다. 황정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김원해. 한 자리에 이런 배우들이 함께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역대급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아수라>라는 영화에 이들이 모두 출연했고, 이 영화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어 홍보시점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홍보와는 상관없이 <무한도전>에 출연한 이 연기신들은 의외의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이런 역대급 게스트들이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이 한 일련의 미션들이 너무나 소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명장면들을 재연해 보여주고, 예능식의 춤 대결로 슬슬 분위기를 고조시키자 이 연기신들의 의외의 면들이 조금씩 드러났다. 정우성은 웃기기 위해 승부근성을 보였고, 황정민은 이에 질세라 춤을 추다 박명수에게 뽀뽀를 하는 무리수로 웃음을 주었다. 곽도원은 의외의 귀여움이 터지며 곽블리라는 애칭까지 갖게 됐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본 게임인 추격전에 들어가기 전에 일종의 적응훈련이라며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의자 뺏기 놀이였다. “쌀과 보리가 자란다-”를 고급진 재즈풍으로 가수가 불러주는 가운데, 의자를 가운데 놓고 돌면서 유재석의 진행에 따라 갖가지 동작들을 선보이는 장면은 그 언발란스한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이게 추격전에 진짜 도움이 되느냐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진지한 모습으로 의자 뺏기 놀이를 하고 있다니.

 

추격전에서는 병정게임을 응용해 누가 왕이 되고 누가 조커가 될 것인가를 두고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무한도전> 팀들이 뽑기로 그냥 정하자며 뽑았다가 왕이 마음에 안들고 조커가 마음에 안든다며 무한 반복해 뽑기를 하는 모습 역시 이 추격전이 얼마나 장난스러운 것인가를 잘 보여줬다. 하지만 이 장난스러움을 이런 역대급 배우들과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웃음의 포인트가 되었다.

 

사실 이 정도의 배우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면 어떤 굉장한 미션을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정반대로 나갔다. 굉장하다기보다는 너무나 장난 같은 미션들을 제시하고 그걸 의외로 열심히 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웃음을 뽑아냈던 것. 물론 이번 특집이 역대급이 된 데에는 역시 연기도 잘하는 배우들이 예능도 열심히 함으로써 의외의 면면들을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배우들을 데려다 소소한 게임을 시키는 <무한도전>의 놀라운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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