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팩트, ‘검법남녀’ 정재영의 묵직한 존재감

좋은 인물 하나는 작품 전체를 살려낼 수도 있다고 했던가.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에서 “소설 쓰지 마”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백범(정재영)이 바로 그런 캐릭터다. 검사인 은솔(정유미)이 사건을 접하고 정황에 따라 추정을 하곤 할 때 백범은 그걸 ‘소설’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오로지 팩트만이 진실을 얘기한다고 믿는 법의관. 어찌 보면 직업적으로 당연한 태도라 생각되지만, 이 캐릭터는 <검법남녀>라는 드라마가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냉철하게 오로지 팩트로만 판정해 진실에 다다른다는 그 캐릭터의 매력.

이를테면 백범의 라이벌인 법의조사과장 마도남(송영규)의 아들이 사체로 발견되고 자살보다는 타살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증거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은솔은 그것이 늘 전교 1등자리를 빼앗겼던 친구들의 소행으로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이것은 시청자들의 심증이기도 하다. 5명의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고 내려올 땐 4명의 아이들만 내려왔으며 몇 시간 뒤 그 한 명의 아이가 아파트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건 누가 봐도 4명의 아이들이 저지른 타살을 의심하게 만든다.

여기에 4명의 아이들 중 전교 2등을 하던 아이의 아빠가 굴지의 로펌의 대표변호사라는 사실이 더해지고, 그 힘을 빌어 은솔의 수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아이의 엄마가 등장하면서 그 심증은 점점 굳어진다. 이 사건에서 은솔이 그러한 것처럼 시청자들도 똑같이 학내 성적을 두고 벌어지는 아이들 간의 갈등과 왕따 그리고 힘 있는 부모의 개입 같은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추정들에 대해 백범은 쉽게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건 ‘소설’일뿐이라고 일축하고 사체가 얘기하는 팩트들을 모아 진실에 접근해간다. 사체 검시를 통해 사망 당일 하얀 음식물만이 있다는 걸 확인한 백범은 그 날 마도남의 아들이 급식을 먹지 않았고 대신 백설기와 우유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음식을 먹고 음식물의 이동시간을 체크하면서 사망 추정시간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다음 회 예고편으로 살짝 등장한 것이지만 결국 아이의 사망은 타살이 아닌 자살로 판정된다. 물론 자살의 동기로서 아이들이 저지른 왕따사건이 있을 거라 여겨지지만.

<검법남녀>의 특별한 점은 사건 속에서 단지 시청자들이 보고픈 걸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내 왕따 문제와 자살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 연루된 힘 있는 부모의 아이가 등장하는 사건에서 시청자들은 은연 중에 가해자로 추정되는 아이의 단죄를 욕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백범이 등장해 이를 가로막는다. 막연한 추정이 아닌 사체가 말해주는 팩트를 들고서. 

<검법남녀>가 흥미진진해지는 건 사건이 추정에 의한 소설들(?)로 인해 한 방향만으로 흘러갈 때 이를 뒤집는 반전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다. 그리고 그 반전은 다름 아닌 사체가 자신의 몸으로 남긴 메시지를 통해서 이뤄진다. 백범은 그 어떤 정황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체의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마치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믿을 수 있는 팩트를 전해준다는 것처럼.

법의학은 사체가 말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체들에는 저마다의 아픈 사연들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죽은 후라도 그 마지막 메시지를 성실하게 읽어내는 백범 같은 법의관의 존재는 그 냉정함 속에 인간적인 면모를 갖기 마련이다.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어쩌면 그 냉정함이야말로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고, 나아가 그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사체에 대한 예우라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 <검법남녀>의 이례적인 성공은 사건전개의 쫄깃함과 반전에 더해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담아내는 백범이라는 캐릭터와 이를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는 정재영의 존재감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진:MBC)

‘검법남녀’, 정재영과 정유미의 쿨&핫 케미가 만든 매력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의 상승세가 심상찮다. 첫 회는 시청률 4.5%로 지상파 3사 드라마 중 꼴찌로 시작했지만 4회 만에 6.5%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2위인 SBS <기름진 멜로>의 6.8% 시청률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SBS <기름진 멜로> 역시 5%대에서 6%대로 올라섰고,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KBS <우리가 만난 기적>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10%대로 떨어진 만큼 지상파 3사의 월화드라마 판도는 향후 어떤 변화가 생겨날지 예측하기가 어렵게 됐다.

하지만 이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검법남녀>다. 최근 들어 MBC 드라마가 월화수목을 통틀어 3%대를 넘지 못했고 심지어 월화에 편성됐던 <위대한 유혹자> 같은 경우 1%대를 전전했던 걸 떠올려보면 <검법남녀>가 이틀 만에 6%대를 회복한 건 놀라운 반전이다. 지난 10년 간 벌어졌던 MBC의 퇴행이 최근 사장이 바뀌며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찮아 드라마의 경우는 연말이나 되어야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일 거라 예측됐던 게 사실이다. 도대체 <검법남녀>의 무엇이 이런 반전을 만들어낸 걸까.

가장 큰 것은 <검법남녀>가 지금의 드라마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장르물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위대한 유혹자>나 <손 꼭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 같은 작품은 그 작품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소재적으로 시청자들의 손이 선뜻 가지 않는 작품이다. 어딘지 지금의 트렌드와는 잘 맞지 않는 옛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검법남녀>가 취하고 있는 검사와 법의관이 등장해 사건을 추리해가는 CSI류의 장르물은 그래도 트렌디한 작품으로 시선을 끈다. 

사실 이제는 장르물 역시 너무 많아져 그저 그런 법정극이나 형사물로는 이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법남녀>가 상승세를 기록한 건 이 작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다름 아닌 이 드라마의 남녀주인공인 법의관 백범(정재영)과 신입검사 은솔(정유미)의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다.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오던 한 여성의 사망을 두고 벌어지는 법정 싸움에서 은솔은 신입검사로서 냉정을 유지하기보다는 분노를 드러내며 ‘촉’을 더 믿는 그런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서 누가 봐도 범인인 남편을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 살인죄로 구속시키려 한다. 사건을 들여다보게 되는 시청자들로서는 바로 이런 은솔의 분노에 공감하며 몰입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가 증거를 찾아 ‘법꾸라지’인 범인을 잡아넣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분노는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주기보다는 오히려 가리는 쪽으로 작용한다. 이 부분을 채워주는 인물이 바로 법의관 백범이다. 법의학은 죽은 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일이라고 했던가. 그는 감정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법의학자로서 사체가 말해주는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인물이다. 그래서 은솔의 분노에 좀체 이 과학적 판단은 쉽게 동조해주지 않는다. 

결국 이 사건은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오던 여성이 자살을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자작극이었다는 걸로 결론이 난다. 쉬운 카타르시스를 전하기보다는 법의학과 법 정서 사이에 놓여져 있는 긴장감을 첫 번째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 것. 바로 이 점은 <검법남녀>라는 법의학을 담은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 대목이다. 섣부른 판타지가 아니라 진실을 밝힌다는 보다 진지한 이 직업의 진정성을 담으려 했다는 것.

<검법남녀>는 뜨거운 신입검사 은솔과 냉정한 법의관 백범의 상반된 캐릭터가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그 상보적 관계로 기대감은 높이고 있다. 물론 냉정한 척 하지만 자신의 법의학적 판단에 의해 범인을 살인죄가 아닌 특수폭행으로 기소하게 된 후, 마치 숨겨진 분노를 풀어내기 위해 사격을 하는 백범은 그 속에 숨겨진 뜨거움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은솔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떤 동조의 감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사실상 ‘저주’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MBC 드라마가 최근 겪고 있는 난항은 쉽게 풀릴 기미를 좀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어서일까. <검법남녀>가 만들어내는 이런 심상찮은 상승세는 미세먼지 가득한 MBC 드라마의 공기를 잠시나마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준 단비처럼 느껴진다.(사진:MBC)

‘라이브’가 집단 트라우마를 겪는 경찰을 담은 까닭

우리는 흔한 형사물에서 사건현장에 끔찍하게 살해된 사체를 아무런 감흥도 없이 들여다보고 심지어는 손을 넣어 만져보기까지 하는 베테랑 형사와 그걸 보는 신참 형사가 막 도망치듯 달려가 토를 하는 장면을 흔한 클리셰로 볼 수 있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장면이지만 그건 현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게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다. 

바로 눈앞에서 사제총에 맞고 쓰러져 죽은 동료와, 계속해서 총을 쏴대는 범인과 대치하며 벌벌 떠는 경찰들. 그리고 가까스로 범인을 제압했지만 그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에 지구대 전체가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를 보이는 그런 모습이 진짜다. 사람의 죽음은 익숙해질 수가 없다. 베테랑 경찰인 오양촌(배성우) 같은 인물조차 그렇다.

그러니 신참 경찰들인 한정오(정유미)나 송혜리(이주영) 그리고 염상수(이광수) 같은 이들이 온전할 리가 없다. “우리 모두 죽는 줄 알았다”며 눈물 흘리는 한정오는 그간 자신이 사건 현장에서 봤던 끔찍한 사체들을 떠올린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사건들을 눈으로 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암담하게 다가왔을 게다.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이 그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 그래서 강남일(이시언) 같은 그래도 경험이 있는 선임 경찰 또한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났다”며 펑펑 눈물을 흘리게 된다. 선임들은 괜스레 그 충격을 잊고자 술이라도 마시자고 나선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순간의 기억은 내내 그들을 멍하게 만들어놓는다.

굉장히 강인해 보이는 오양촌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아내 안장미(배종옥)에게 가장 힘든 게 “내가 안죽어 다행이다. 우리 지구대 애들이 죽은 게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그나마 위안 삼는 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이제 퇴직을 앞둔 이삼보(이얼)에게 기한솔(성동일) 지구대장이 사건에 잘 대처한 일에 대해 “잘하셨다”며 “안 다치신 건 더더 잘 하셨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신참으로 들어온 송혜리나 한정오는 아마도 자신들이 선택한 경찰 일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을 게다. 어디서도 그 실상이 보여지기 보다는 그 막연한 이미지들만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실상을 마주한 그들은 흔들린다. 계속 이 지구대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만두려고도 마음먹고 국비유학으로 해외에 나갔다 돌아와 다른 곳에서 일하고도 싶어진다. 

영화에서나 보던 액션 히어로 경찰? 그런 건 없다.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서 계속 보게 되는 이들은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이삼보가 말하듯, “그래도 어쩌겠어. 경찰인데 사건 사고 나면 가야지”라고 말하며 현장으로 뛰어간다. 아기가 유기되었다는 제보를 듣고 그토록 힘들어 도망치고픈 현장을 뛰고 또 뛰는 모습을 통해 한정오는 어떤 의문을 느낀다. 그건 단지 직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 나오는 행동이 그 트라우마조차 이겨내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사진:tvN)

‘라이브’, 이광수의 성장이 눈에 띄는 까닭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에서 이광수가 연기하는 염상수는 상처가 많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고 실의에 빠져 아이를 방치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 현장에서 방치된 아이를 두고 한정오(정유미)와 설전이 벌어졌을 때 염상수는 형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지도 모른다며 방치하는 엄마보다는 차라리 보육원 같은 시설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처는 있었지만 따뜻한 형의 보살핌 또한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 성장할 수 있었다. 

아픔이 많은 자가 타인의 아픔 역시 더 잘 공감하기 마련이다. 방치된 아이가 다시 엄마에게 돌아가게 된 상황에서 염상수는 괴로워한다. 그 엄마가 수면제까지 모으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염상수는 그 아이가 무슨 일을 당할까 걱정한다. 경찰로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염상수는 아이에게로 가서 먼 발치에서나마 그 아이를 지켜본다.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요. 아무 것도 안 하는 건 못 참겠어서.” 염상수가 아이에게 다가가자 아이는 비로소 엷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런 모습은 그가 한정오가 과거 당한 성폭행 사건 이야기를 듣는 대목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한정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대신 그의 옆을 지킨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는 한정오의 말에 그는 “너무 슬퍼서” 아무 얘기도 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는다. 그 힘겨운 일을 이겨낸 것에 “대견하다” 말하고 싶지만 아무 얘기도 하지 못하겠다고. 염상수의 그 말에 한정오는 속에 있던 그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미투(me too)와 위드유(with you)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염상수의 캐릭터는 한 마디로 말해 힘들지만 진득하게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다.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무슨 일을 해도 그 결과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계속 그 일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진득하게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정오가 잘생긴 사수 최명호(신동욱)를 좋아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염상수가 한정오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는 것도 이런 캐릭터 때문이다. 한정오는 대놓고 “너랑은 친구”라고 선을 그었지만, 염상수는 자신은 자신의 사랑을 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눈앞에서 최명호와 한정오가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서도 염상수는 한정오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싫다는데 달라붙거나 연적이라고 최명호에 대놓고 악감정을 품는 그런 진상은 아니다. 일은 일대로 공조하면서도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편단심의 마음을 갖는 염상수는 늘 한정오를 살피고 챙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결국 한정오의 마음에까지 닿는다. 최명호가 여전히 죽은 옛애인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정오는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고, 점점 염상수가 제대로 된 경찰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한정오는 그가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현장에서 얼굴에 칼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주폭들과의 실랑이에 온 몸이 멍투성이로 파스를 바르며 살아가는 염상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성장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찰로서 살아남기 위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뛰어다녔던 그가 어느 순간 “이 사건 종결시켜 더는 선량한 피해자들 안 생기게 하겠다”고 말하는 인물이 되고 있었던 것. 한정오는 바로 그런 염상수의 진실 된 마음을 보게 된 후, 애정이 담긴 손을 내민다.

염상수의 성장담이 담긴 드라마지만, 흥미로운 건 그 역할을 연기하는 이광수의 배우로서의 성장이 그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사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많이 노출되며 배우로서의 면모를 많이 보여주지 못했던 그다. 하지만 간간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번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로 눈도장을 찍더니 이번 <라이브>에서는 제대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꽤 오래 전 사석에서 만났던 이광수의 모습은 수줍어 말 한 마디를 제대로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과연 이 친구가 배우로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의 <라이브>에 출연하고 있는 이광수를 보면 확실히 눈에 띄게 성장한 모습이 보인다. 거기 등장하고 있는 염상수라는 인물이 그러하듯이, 그 역시 꾸준히 노력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진득하게 포기하지 않고.(사진:tvN)

‘예쁜 누나’ 서정연과 ‘라이브’ 배종옥, 이 멋진 언니들

‘예쁜 누나’ 위에 ‘멋진 언니’가 있다?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예쁜 누나’ 윤진아(손예진)가 있다면, 그 위에는 은근히 무뚝뚝한 척 그를 돕는 ‘멋진 언니’ 정영인(서정연) 부장이 있다. 깐깐하고 빈틈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인물은 이 막돼먹은 회사 남자 상사들로부터 윤진아를 은근히 보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해 다른 남자 상사들(심지어 대표까지)도 쉽게 대하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회식자리에서 윤진아를 위해 보인 모습은 그 속내를 드러낸다. 늘 그러했듯 ‘개저씨’ 공철구(이화룡) 차장이 와서 윤진아를 부르며 고기를 구우라고 지시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를 거부해 싸해진 분위기. 공철구가 회사 내 위계질서가 엉망이라고 대표에게 성토하자, 정영인은 남자 직원을 불러 고기를 구우라 지시하면서 이런 위계를 말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서준희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변화한 윤진아. 회식자리에서 늘 보이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인 윤진아에 대해 정영인은 오히려 “윤진아 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서” 자신이 더 고맙다고 말한다. 그는 윤진아에게 “훌륭하다”며 눈치 빠르게 “너 요즘 연애하지?”하고 묻는다. 예뻐졌다는 것. 정영인이 말하는 예쁘다는 표현은 그래서 중의적으로 들린다. 하나는 실제로 연애하는 사람이 보이는 예뻐짐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달라진 삶의 자세가 보여주는 예뻐짐이다. 

정영인이 윤진아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미루어 그가 이 성차별이 가득한 회사에서 어떻게 버텨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남다른 철저함과 빈틈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일처리, 게다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 얼굴은 그가 부장 자리까지 오면서 겪었을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든든하게 서 있는 정영인이 윤진아에게는 하나의 버팀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의 안장미(배종옥) 역시 정영인 같은 ‘멋진 언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경찰생활에서 악착 같이 일해 여청계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 되었다. 관내에서 벌어지는 연쇄 성범죄를 수사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항상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게는 이제 막 새로 들어온 한정오(정유미)가 그래서 마치 자신의 옛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일 수 있다. 그래서 한정오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면서 안장미는 “너랑 호흡이 잘 맞았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안장미의 ‘멋진 언니’ 역할은 경찰로서만이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도 톡톡하게 드러난다. 그건 이미 과거 한정오가 성폭행을 당했을 시절부터 그를 알고 있던 안장미가 툭툭 던지는 인생 조언 속에 담겨진다. 한정오는 자신이 당한 성폭행으로부터 이제는 멀쩡하다며 트라우마가 없는 자신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자, 안장미는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가 꼭 생겨야 돼? 사건 당한 것도 억울한데 꼭 괴롭기까지 해야하냐고. 난 그것도 다 편견 같은데. 심플하게 생각해. 넌 그냥 그 일이 벌어진 걸로 받아들인 거야. 사건이 났고 넌 잘못이 없고 시간은 지났고 현재 넌 경찰이 된 거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나 <라이브>는 모두 여성 주인공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들만큼 시선이 가는 건 그들 위에 먼저 그 현실을 살았던 선배 언니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한 만큼 부하 직원에게 똑같이 되돌려주는 경우가 현실에는 더 많다. 하지만 자신이 당한 일을 후배들은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어떤 롤 모델이 되어주는 선배 언니들도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그들의 쉽지 않은 노력들이야말로 진짜 세상을 바꿔가는 힘일지도.(사진:JTBC)

‘라이브’를 진짜로 보이게 만드는 명배우 명연기들

단합대회에서 최명호(신동욱)가 한정오(정유미)에게 살짝 볼 뽀뽀를 하고 그걸 멀리서 바라보는 염상수(이광수)의 모습은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에 삼각멜로가 향후 전개될 거라는 걸 암시한다. 아마도 경찰들이 주인공들이고 사건사고가 계속 터지는 이 형사물 같은 장르적 성격을 띤 드라마에서 굳이 경찰들 간의 멜로를 집어넣은 건 ‘그들도 사람’이라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또 한 방식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그 설정 자체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서 더 주목되는 건 이들의 모습을 진짜로 보이게 만드는 명배우들의 명연기들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 바로 오양촌 역할을 연기하는 배성우와 그와 이혼한 아내로 나오는 안장미(배종옥)다. 물론 지구대장인 기한솔 역할의 성동일이나 오양촌의 아버지 역할로 나오는 이순재 같은 말 그대로 ‘생활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미친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지만, 드라마의 구성상 오양촌과 안장미가 그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오양촌은 강력계의 레전드로 이름을 날리는 형사였지만 사수의 사고사와 함께 그 책임을 억울하게 떠안고 지구대로 강등되어 오게 된다. 여기에 아내인 안장미가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그걸 받아들인다. 범인을 잡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좋은 경찰이지만,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내는 물론이고 자식들에게까지 아빠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결국 <라이브>가 그려내려는 경찰의 실제 모습이라는 건 오양촌으로 대변되는 멋진 형사로서의 모습과는 다른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장이자 남자의 모습인 셈이다.

오양촌을 바라보는 안장미의 시선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경찰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담고 있다. 안장미는 차갑게 오양촌에게 “이혼하자”고 말하고 하나하나 이혼의 사유를 또박또박 이야기함으로써 거부하려 날뛰는 오양촌의 눈에서 눈물을 뽑아낸다. 그는 오양촌이 최고의 경찰이라는 건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 남편으로는 최악이었다는 걸 마치 사건을 분석해내는 것처럼 냉철하게 꼬집는다. 그래서 결국 안장미의 요구를 받아들여 오양촌은 이혼도장을 찍지만 그는 여전히 주장한다. 같이 살지만 않을 뿐이지 달라진 건 없다고. 

배성우와 배종옥이 <라이브>에서 제대로 된 연기의 깊은 맛을 드러내는 지점은 이 작품이 가진 경찰을 보는 두 관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배성우는 누가 봐도 딱 그럴 것 같은 다혈질의 열혈형사를 연기하면서, 그런 성정이 일에서는 굉장한 힘을 발휘하지만 인간관계(부부든 동료든)에서는 오히려 불협화음을 낸다는 걸 보여준다. 배종옥 역시 사건 현장에서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베테랑 형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쩐지 가정으로 돌아오면 쓸쓸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라이브>는 전면에서 뛰고 있는 신입 경찰 한정오와 염상수의 성장드라마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오양촌과 안장미가 오래도록 경찰생활을 해오며 성장하긴 했지만 그래서 잃었던 것들을 되새기는 이야기를 담는다. 오양촌과 안장미의 또 다른 성장드라마가 그려지고 있는 것. 청춘 멜로의 설렘도 궁금하지만 이 위기의 중년 경찰 부부가 어떻게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찾아낼 것인가 또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tvN)

‘라이브’가 장르 속 캐릭터들의 클리셰를 깨려는 이유는

tvN 새 주말드라마 <라이브>의 첫 시퀀스는 눈 오는 날 시위현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길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우는 경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배가 고픈 듯 허겁지겁 식판의 밥을 뜨는 염상수(이광수)는 거기 한 켠에서 역시 밥을 먹는 한정오(정유미)와 살짝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오게 됐는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한정오는 자식의 전화를 받고도 그런 사람 모른다며 끊어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열심히 보험영업으로 살아가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남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세상 앞에서 분노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토록 지워버리고 싶었던 아버지에게 찾아가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으로 돈을 요구하고, 그 돈으로 경찰시험을 준비해 경찰이 된다.

염상수 역시 비정규직 건물 청소원으로 일하는 엄마와 약국의 재고정리까지 도와주며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호주로 도망치듯 나가버린 형과 함께 살아오며 어떻게든 취업을 하려 안간힘을 쓴다. 결국 자신이 정규직이 되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회사가 사실은 사기 기업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절망하던 차에 마침 벽보에 붙어 있던 경찰공무원 모집공고를 보게 된다. 고시원생활을 통해 겨우겨우 그는 경찰시험을 통과한다. 

흔히 드라마 속 청춘들의 모습은 ‘힘겨워도 나름 재밌게 살아가는’ 이른바 ‘청춘로맨스’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짠내 나도 ‘청춘이기 때문에’ 밝고 나름 달달한 모습들이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지금의 청춘들의 모습일까. <라이브>가 비추는 청춘의 초상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다.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모집공고에 내걸었으면서 실제로는 스펙 타령만 하고 아예 남성 취업자들만 뽑겠다는 식으로 여성들을 제외시키는 채용관들 앞에서 한정오는 무력감을 느낀다. 

면접 뒤에 함께 모여 술자리도 갖는 같은 처지들이지만 거기서도 남성과 여성이 그 성차별적 면접 분위기를 놓고 싸운다. 그건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그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정오는 스펙이 아닌 실력만으로 뽑는 경찰 공무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합격했다고 그것으로 경쟁이 끝난 게 아니다. 중앙경찰학교 안에서도 경쟁에서 누락되어 탈락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 그래도 이 악물고 그 경쟁을 버텨내려 한다. 

역시 부도를 내고 도망친 회사에 정규직을 희망했던 염상수는 그 절망의 끝에서 경찰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한정오나 염상수나 한가롭게 연애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생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최소한 짐은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 그래서 이 청춘들의 자화상은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 속 인물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클리셰 깨기는 청춘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애초 드라마 시작점에 보여줬던 경찰들의 면면이 진짜 이 드라마가 깨려는 클리셰다. 우리게 경찰이란 촛불시위를 하는 이들 앞에 방패를 들고 막아서던 이른바 ‘공권력’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 심지어 철거현장에서 살기 위해 그 곳을 점거하고 있는 서민들을 무자비하게 해산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비정한 존재들로까지 이미지화되어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늘 뒷북을 치는 무능함의 상징처럼 그려온 게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속 경찰들의 통상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까. ‘공권력’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면 그들은 마치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로까지 여겨지지만, 사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어쩌면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불의한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잘못된 것이지, 그걸 감수해야 하는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오히려 살기 위해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그 무수한 딜레마 속에 서 있어야 하는 이들이 바로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라이브’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이미지로만 그려져 왔던 실제와는 다른 그런 모습과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드라마의 다짐이 이 제목에 담겨있다. 중앙경찰학교에서 마지막 현장투입의 시험대에 들어가는 이들 청춘들에게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상관은 “아무 것도 하지마라”고 반복해서 외친다. 때리면 맞고 밀고 들어와도 그 자리를 지키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에 손을 부르르 떤다. 우리가 생각했던 ‘공권력’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들의 진짜 모습이다.(사진:tvN)

좀비 이어 초능력 ‘염력’, 연상호 감독이 더한 한국적인 맛

뭐 이렇게 소시민적인 슈퍼히어로가 있을까. 아마도 연상호 감독의 신작 영화 <염력>을 본 관객은 조금 당황했을 지도 모르겠다. 흔히 슈퍼히어로라고 하면 멋진 슈트를 차려입고 액션 또한 화려하다고 여기겠지만 <염력>의 석헌(류승룡)은 그런 슈퍼히어로하고는 거리가 멀다. 평범한 은행 경비원 차림 그대로이고, 몸이 붕 떠서 날아오를 때보면 엉거주춤한 자세가 영 슈퍼히어로의 그것과는 딴판이다. 

그가 염력으로 거대한 차를 공중에 떠올릴 때 보면 그 동작은 마치 차력사의 그것처럼 보인다. 입으로는 연실 기합을 집어넣고 양손을 허공에 내젓는 슈퍼히어로의 면면이라니. 그래서 그의 이런 초능력은 놀라움이나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보다는 웃음을 준다. <염력>은 그래서 슈퍼히어로 무비라기보다는 사회극적인 요소들을 담아낸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이 더 하다. 

물론 슈퍼히어로의 면면만 다른 게 아니다. 석헌이 맞서게 되는 적들도 우리가 봐왔던 그런 초능력을 가진 적들이 아니다. 그들은 재개발을 하기 위해 철거민들을 몰아내려 하는 용역업체 사장이고, 그를 고용한 건설업체 상무다.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말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악역으로 등장한 홍상무(정유미)의 대사가 압권이다. “진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기도록 태어난 사람들이라고요. 에네르기파? 그거 아니에요. 대한민국! 국가 그 자체가 능력인 사람들이라고요."

바로 이 대사는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라는 색다른 존재를 끄집어내 하려는 이야기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지구 혹은 나아가 우주를 지켜내는 그런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당장 생계가 막막하지만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들에 의해 삶의 터전까지 빼앗기는 서민들을 지켜주는 그런 인물이라는 것. 

당연히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이 가진 스펙터클과 반전의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염력>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적으로 상정된 존재들이 우리에게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재개발의 폭력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염력>의 지극히 소시민적인 슈퍼히어로가 주는 유쾌함은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도 이런 슈퍼히어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고, 또 그 슈퍼히어로의 면면이 할리우드를 카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해석됐다는 면이 그렇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 <염력>을 통해 확실한 자기만의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외국의 장르물에서나 등장했던 좀비나 초능력자 같은 존재들을 우리 식의 토속적인 색깔을 덧씌워 풀어낼 줄 아는 감독이 된 것. 그의 작품이 오히려 해외에서 더 주목받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그들에게 좀비나 초능력자는 더 익숙한 존재지만, 우리 식으로 해석된 영화가 주는 묘미는 독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펙터클의 함량이 적다는 건 약점이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투입된 자본의 문제일 수 있다. 한정된 물량으로 이런 과감한 시도를 하고 이런 성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상찬받을 만한 일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들의 화려하지만 황당하기 만한 스펙터클에 식상함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이 작품의 블랙코미디적인 서민영웅의 면면이 참신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게다.(사진:영화'염력')

이거 실화? ‘윤식당2’ 첫 방에 14%를 견인한 것들

시쳇말로 이거 실화냐고 물어봐야 할 듯싶다. tvN 예능 <윤식당2>가 첫 회 무려 14%(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마도 지상파, 종편을 통틀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최고 시청률이 아닐까. 보통 한두 회가 나가고 입소문을 탄 후 시청률이 오르는 그 과정이 일반적이라고 볼 때 첫 회 만에 이런 기록은 이례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시작부터 <윤식당2>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게 한 걸까.

먼저 가장 큰 건 <윤식당>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가진 힘이다. 이미 시즌1에서 최고시청률 14%를 찍었던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기대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즌1의 성공이 가져온 이 프로그램의 장점, 이를테면 ‘잘 알려지지 않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휴양지’나, ‘외국인들의 한식 경험 반응’ 같은 요소들이 정확히 파악된 이상, 시즌2는 그걸 제대로 겨냥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스페인의 섬인 테네리페섬 그리고 그 곳에서도 가라치코는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물론 여행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분들이야 다를 수 있지만, 일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받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공항에 도착해 차를 타고 가라치코로 가는 그 길 위에서 보이는 이 5천명 남짓의 주민이 산다는 작은 섬의 그림 같은 풍경들을 보며 감탄하는 윤여정과 이서진, 정유미 그리고 박서준의 모습은 마치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듯 했다.

시즌1에서도 드러났듯 <윤식당2>는 되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이어야 그 특유의 맛을 내는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식당을 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다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색깔 자체를 잃게 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무려 1박2일을 날아가야 하는 그 먼 거리의 외딴 섬까지 간 것이고, 그렇게 멀리 가는 것만큼 시청자들의 마음이 더 깊게 그 판타지 같은 공간에 몰입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장소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일 수밖에 없는 <윤식당2>는 그 곳에서 시즌1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윤스키친을 열고 영업을 준비했다. 이번 시즌에 외국인들에게 선보일 음식은 비빔밥. 시즌1을 경험한 이상 음식 선정도 이제는 우리네 음식의 맛을 대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걸 제작진은 알고 있었을 게다. 지난 시즌에 도움을 받았던 홍석천과 이원일 요리연구가가 제안하고 가르쳐준 건 전채요리로 전을 메인요리로 비빕밥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얹은 호떡이었다. 그 배우는 과정에서도 시청자들은 저 요리가 외국인들에게는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현지에 도착해 풍광에 매료되는 것도 잠시 출연자들은 미리 음식을 만들어보고 시식회를 해보는 등 준비에 돌입한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캐릭터들이 새록새록 리마인드된다. 윤여정은 걱정이 많지만 일단 시작하면 누구보다 몰입하고 무엇보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입맛은 잠시 접어둘 줄 알며, 첫 손님에게 어떻게 비빔밥을 먹는 것인가를 직접 시연해 보여줄 정도로 열정적이다. 이서진은 지난 시즌에서도 보였듯 경영에 있어 남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정유미는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식당 분위기를 명랑하게 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의 한수는 일정이 겹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신구 대신 새로운 알바생으로 들어온 박서준이다. 스페인어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만 착실히 준비해 실제 외국인들에게 척척 사용하는 모습이나, 요리면 요리 서빙이면 서빙 적응을 잘 해내는 센스 있는 인물의 면면을 첫 회만에 그는 각인시켜줬다. 박서준의 출연이 대박이라던 홍석천의 말은 그저 너스레가 아니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번 <윤식당2>에는 <신서유기 외전> 형식으로 만들어졌던 <강식당>의 대성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얹어진 면이 있다. <강식당>이 주는 힘겨운 일터의 실감과는 완전히 다른, 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윤식당>의 그림들은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즌1이 만들어놓은 브랜드에, 가라치코 같은 환상적인 공간 헌팅 그리고 박서준이라는 매력적인 캐스팅에 <강식당>이 만들어놓은 홍보효과까지 얹어졌다. 이러니 시작 전에 이미 승부가 날 수밖에.(사진:tvN)

‘윤식당’, 정유미가 말한 오늘의 삶에 집중한다는 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서, 그런 시간 보낸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사실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거든요. 오늘을 산다. 오늘을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을 먹지만 잘 안 되는데 여기 와서 그걸 쫙 한 거 같아서. 아무 생각 없이.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윤식당(사진출처:tvN)'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종영을 맞아 정유미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오늘에 집중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흔히들 욜로(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사고 싶은 걸 사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걸 마치 시대의 강령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쩌면 진짜 욜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욜로의 정신은 정유미가 말한 “오늘에 집중하는 삶”이 아닐까. 

정유미가 <윤식당>에서 해온 것들을 들여다보면 마음껏 하고 싶은 걸 누리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아침부터 먼저 식당에 도착해 그 날 장사할 재료들을 미리 준비해놓고, 장사에 돌입하면 사장님인 윤여정 옆에서 보조 그 이상의 보조 역할을 한다. 윤여정이 요리를 하기 쉽게 모든 재료들을 미리미리 챙겨주고,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들을 중간에서 정리해 윤여정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물론 가끔 식당을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우유를 나눠주며 잠깐의 여유를 누리기도 하고, 그녀를 은근히 챙겨주는 이서진을 따라서 맥주 한 잔을 마시거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행복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무언가를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더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힘든 주방에서도 늘 밝게 웃었고 신구와 윤여정을 챙겨주고 이서진을 동생처럼 따르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을 게다. 시청자들이 그녀를 ‘윰블리’라고 부르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하게 된 건 그 행동들 하나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들 속에 깃들여진 진심이 느껴져서다. 그것은 그녀가 말한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사실 다른 출연자들이야 이미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인물들이고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익숙하다. <꽃보다 할배>의 신구, 이서진이 그렇고, <삼시세끼>의 윤여정, 이서진이 그렇다. 그래서 특히 예능이 처음인 정유미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그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유미는 <윤식당>에서 그렇게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의식적으로 보여준 것이 별로 없다. 항상 조용히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타인들을 살피고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가를 챙기는 게 그녀가 한 일의 전부였다. 자신이 하고픈 것들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들어주고 따라주는 것. 그래서 항상 뒤편에 있었던 것 같지만 시청자들로서는 그런 정유미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일 수 있고 어쩌면 막내로서 선배들 앞에서의 조심스러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서 그녀가 말한 대로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그런 모든 행동들에 진심어린 행복 같은 것들을 느끼게 한 면이 있다. 

이른바 ‘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너도 나도 하고 싶은 대로 지금 당장 하는 것을 욜로라 착각한다. 그래서 욜로를 소비와 자꾸 연관 짓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삶의 자세다. 복잡한 소비적 삶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진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욜로가 아닌가.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지워내고 바로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진짜 삶의 행복을 되찾는 것. 아마도 정유미가 <윤식당>에서 집중을 통해 경험한 것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윤식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의 실체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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