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사건수첩’, 봉골레 파스타와 봉블리가 사극서 만났을 때

이선균과 안재홍이 아니었다면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가능한 작품이었을까. 사실 이 코믹추리극은 사극의 틀과는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임금 예종(이선균)이 셜록처럼 추리를 하고 자기만의 은신처에서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이 그렇고, 사관 이서(안재홍)가 한번 보면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놀라운 시력으로 그를 수행한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배트맨과 로빈, 혹은 셜록과 와트슨의 코믹 버전 사극판이라고 해야할까. 

사진출처:영화<임금님의 사건수첩>

하지만 이런 부조화를 적절한 긴장감과 웃음으로 유화시켜주는 건 다름 아닌 배우 이선균과 안재홍이다. 이선균은 특유의 그 굵직한 목소리가 갖는 임금님의 위엄(?)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봉골레 파스타!”로 기억되는 코믹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 위엄이 슬쩍 슬쩍 무너질 때 이 예종이란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한다. 

아울러 이선균이 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임금님의 캐릭터를 제대로 연기해낼 수 있게 된 건 다름 아닌 그걸 받아주는 조금은 억울하고 우직하며 선량하기 이를 데 없는 사관 이서를 연기하는 안재홍 덕분이다. 안재홍은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역할로 우리에게는 ‘봉블리’라는 캐릭터 이미지를 갖게 된 배우가 아닌가. 그 봉블리의 매력은 이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퓨전을 넘어 장르 사극이 그러하듯이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조선시대에 벌어졌을 수도 있는 사건을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기이한 사건과 그로 인해 번져가는 소문들, 흉흉해지는 민심 같은 것들이 음모론과 결합하여 임금님을 옥죄는 가운데, 이를 과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예종의 추리가 흥미롭다. 물론 그 과정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건 예종과 이서의 주종관계에서 비롯되는 코미디들이다. 

영화는 초반 여러 사건들과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조금 지루함을 보이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중반 이후가 지나고 나면 스펙터클한 사건들과 연발 터지는 코미디가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의외로 이서의 예종에 대한 충직한 모습이 뭉클한 브로맨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악역으로는 정평이 난 김희원과 최근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우 김홍파가 가벼울 수 있는 이야기에 무게감을 얹어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조선명탐정>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작품들이 그래왔듯이 사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연휴나 명절 같은 시기에 별다른 부담 없이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 적합한 영화다. 대단한 메시지나 의미를 찾기보다는 가벼운 오락 기획물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지금의 시국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적 메시지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다지 문제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임금님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작품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이선균과 안재홍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한 점이 주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연기라기보다는 이들이 가진 독특한 코미디적인 이미지를 사극의 캐릭터와 잘 맞춘 점이 효과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벌이는 한바탕 모험과 웃음. 꿀 같은 연휴에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조선마술사>, 영화라는 판타지가 줄 수 있는 것

 

<조선마술사>라는 제목은 기묘하다. 조선이라는 실제 역사의 무게감에 마술사라는 어딘지 판타지적인 소재가 덧붙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조선시대로 돌아간 장르물이라는 형태로 <조선명탐정>을 필두로 해 <조선미녀삼총사> 나아가 <해적>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들이 시도해온 역사 장르물(?)들이다. 어찌 보면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들을 조선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버무려 새로운 퓨전을 추구한 작품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영화<조선마술사>

제목에서 드러나듯 <조선마술사>는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조선시대에 환술(마술)을 하는 환희(유승호)라는 인물이 있다는 설정도 그렇고, 그가 마술을 하는 곳이 물랑루라는 기루라는 점은 아예 대놓고 물랑루즈를 염두에 둔 것을 드러낸다. 물론 그의 마술쇼에 보조자로 아낙네가 올라와 사랑을 표현한다거나, 신체 토막 마술 같은 걸 시도한다는 건 당대의 윤리적 잣대로서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니 <조선마술사>는 영화의 허구로서 봐야지 현실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그 독특한 재미의 지점들을 모두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일단 인정하고 보면 <조선마술사>는 의외의 다양한 장르적 재미들을 선사하는 영화다. 조선시대를 설정으로 하는 마술은 하나의 예술적인 퍼포먼스처럼 보이고, 그 마술을 통해 신분 차이를 훌쩍 뛰어넘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는 마치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펙과 오드리 햅번의 이야기를 조선시대판 희비극 버전으로 바꾼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들을 옥죄어 오는 복수의 화신 청나라 마술사 귀몰(곽도원)의 등장으로 후반부 벌어지는 마술 무대에서의 한 판은 흥미진진한 액션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따라서 심각하게 현실 문제나 사회적 사안들을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오롯이 이 장르들의 문법 안에서 어떤 재미적 요소들을 찾는 데 더 집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린 시절 학대 받으며 자라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마술사 환희나 나라와 가족을 위해 청나라에 팔려가는 입장이 된 공주 청명(고아라) 그리고 환희 곁에서 그를 사랑하지만 누이로서 현실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시각장애인 보음(조윤희)이라는 세 청춘이 접하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은 지금의 각박한 현실에 내몰려진 청춘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어느 날 저잣거리에 나왔다가 우연히 가게 된 산길에서 배고픈 아이들을 먹여 살리다가 결국은 길바닥에 죽어나가는 엄마를 보게 된 청명은 그 살벌한 현실이 자신만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많은 민초들 전체의 현실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는 이 세상의 아픔을 짊어지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 속에서 잠시 현실을 벗어나 판타지로서 위안을 제공하는 마술의 실체를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유승호와 고아라는 이 이색적인 조선시대의 마술 같은 사랑이야기를 이물감 없이 잘 연기해내고 있다. 특히 아이처럼 좋아하다가 아기처럼 흐느끼는 고아라의 연기는 <응답하라1997> 이후 꽤 안정감 있는 몰입을 보여준다. 여기에 호위무사로 등장한 이경영의 든든함과 유럽의 광대가 조선시대 버전으로 그대로 바뀐 듯한 박철민의 놀라운 감초 연기는 이 판타지를 꽤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어준다.

 

물론 영화도 그 자체로는 하나의 환술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것이 현실을 직접적으로 바꿔주지는 못하니 말이다. 다만 현실에 지친 대중들에게 몇 시간의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환술이 되지 않을까. 저 조선시대에 피폐한 민초들이 환희의 환술을 보며 잠시 간의 고통을 잊으려 했던 것처럼. <조선마술사>는 그래서 영화라는 판타지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많은 것 중의 하나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설 가족영화, 어른들의 눈높이, 아이들의 눈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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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영화들

본격적인 설 명절이 시작되면서 영화관은 벌써부터 북새통이다. 특히 이번 명절에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볼만한 가족영화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주목을 끈다. 1천만 관객 파워를 갖고 있는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와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 김명민의 코믹 명연기로 주목을 끄는 '조선명탐정', 잭 블랙의 코믹 연기와 걸리버라는 소재로 주목을 끄는 '걸리버 여행기', 또 기존의 공주이미지에서 탈피한 모습으로 돌아온 월트디즈니의 애니메니션 '라푼젤'이 그 작품들이다.

먼저 가족영화에 걸맞게 이 다섯 작품은 각각의 장르적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메인으로 코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조선명탐정'은 코믹 연기에도 명품이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김명민이 역시 코믹의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는 오달수와 콤비를 맞춰 말 그대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정조 시절의 아마도 정약용을 모델로 한 추리이야기 속에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 예를 들어 신분의 문제, 종교의 문제, 빈부의 문제 같은 것들을 코믹하게 녹여냈다.

아이와 함께 모처럼 극장을 찾은 어른들이라면 이 다양한 장르적 재미와 팩션이 던져주는 역사적인 의미, 게다가 추리가 주는 즐거움까지 다양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이 웃음의 코드 속에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함의들을 즐기기는 조금 무리일 수 있다. 게다가 후반부에 급한 속도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반전에 반전은 다소 복잡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민과 오달수의 코믹한 연기에 몰두하며 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기존 사극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평양성'은 기존 사극에 익숙한 어른들 입장에서는 다소 가벼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삼국과 당나라와의 심리전은 그리 쉽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중간 중간 빵빵 터지게 만드는 이문식, 류승룡, 윤제문, 정진영의 연기가 압권이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허용한다면 이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평양성'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는 실화를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라는 장르에 충실한 작품이다. 코믹한 설정들이 전면에 깔려 있지만, 중반 이후를 지나면서는 말 그대로 눈물 폭풍을 만드는 휴먼드라마다. 청각장애인 야구단과 사고뭉치에 이제 퇴물이 된 한때 야구스타와의 소통이 절절한 감동을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강우석 감독의 전작 '이끼'에서 보여주었던 정재영과 유선은 이 작품에서는 완전히 다른 훈훈함을 전해준다. 어른과 아이 모두 편안한 작품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실상 장애인의 현실은 그다지 많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상업영화로서의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걸리버 여행기'는 거인과 난장이를 오가며 일상을 벗어난 판타지의 세계를 다룬 원작 스토리가 가진 장점을 영리하게 풀어내, 어른과 아이의 눈높이를 맞춘 작품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 거인이 되는 잭 블랙의 상황 자체가 주는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어른들 입장에서는 소심하게 버텨내고 살아온 잭 블랙의 일상 탈출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어른과 아이들에게 모두 충분한 재미를 주지만, 비판적인 관객이라면 그 지나친 미국 문화 우월의식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라푼젤'은 기존 라푼젤 스토리가 갖는 공주 이야기의 컨셉트를 확 뒤집음으로써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공주는 '엽기적인 그녀'이고 왕자는 좀도둑에 가깝다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현재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어른들이라면 아이와 손잡고 들어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흔히들 가족영화라고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면 각자 반응은 상이하게 나오기 마련이다. 가족영화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본다는 점에서 이 두 시각차를 어떻게 줄여나가는가가 관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올해 설 가족영화들은 비교적 이 시각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연휴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취향에 맞는 영화 한 편 챙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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