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누구의 편인가, ‘리턴’ 박진희 복수가 던지는 질문

“내가 왜 19년 동안 그 네 명을 직접 죽이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냐?” SBS 수목드라마 <리턴>에서 최자혜(박진희)가 변호인 금나라(정은채)에게 던지는 이 질문은 그의 복수가 단지 가해자에 대한 단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는 19년 간을 말 그대로 와신상담해왔다. 딸이 처참하게 죽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보호대상’이 되어 풀려난 가해자들이 버젓이 살아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드러내기 위해.

당시 ‘촉법소년’이라는 명분을 법적으로 이용해 이른바 ‘악벤져스’들이 빠져나간 건 그들이 가진 재력과 권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갔고 대신 죄 없는 태민영(조달환)이 가난하고 힘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결국 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 되었던 것.

그러니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악벤져스’들의 범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자혜의 어린 딸을 죽게 만든 후에도 김정수(오대환)의 여동생을 성폭행했고 그럼에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빠져나갔다. 오태석(신성록)이 말하듯 그들은 법이 처벌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법을 주무를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최자혜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만을 단죄한다는 것은 진정한 복수가 될 수 없었다. 그가 왜 직접 그들을 죽이지 않고 이렇게 복잡하게 사건을 이끌어왔는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는 염미정(한은정)의 사체를 그들의 차에 넣어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현재로 가져오게 했다. 당시에는 촉법소년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런 끔찍한 선택을 했다고 법이 판단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어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과거에 했던 그대로 똑같이 염미정의 사체를 유기하려 한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고 협박을 해온 자동차 딜러 김병기(김형묵)를 총으로 쏴 잔인하게 살해한다. 죄를 지어도 벌 받지 않았던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마저 둔감해져 버렸다. 물론 이들 악벤져스에 의해 죽을 위기에까지 몰렸던 서준희(윤종훈)는 어디서부터 그들이 엇나가기 시작했는가를 깨닫고 그 잘못을 뉘우치려 노력하지만 번번이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간다.

번듯한 가정을 꾸려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한 강인호(박기웅)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죄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걸 묻어두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강인호는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그 사건을 덮으려는 유혹에 흔들린다. 

법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가. <리턴>이 최자혜의 남다른 복수를 통해 던지고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는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그 법의 부당함을 만방에 드러내려 한다. 과연 그건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 또한 범죄라고 볼 수 있지만, 시청자들은 적어도 그가 하려는 그 일들 속에 담겨진 피해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가해자는 버젓이 잘 살아가고 피해자는 그 상처 속에서 평생을 죽음처럼 버텨내고 있는 현실을.(사진:SBS)

‘마더’의 질문, 대체 누가 진정한 엄마인가

이토록 아픈 웃음이 있을까. 혜나(허율)는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저 멀리 날아가는 철새들을 보며 자신도 같이 가자고 외친다. 아이가 걱정되는 한 어부가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에 너처럼 작은 아이는 바람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며 방파제에 위태롭게 서 있는 혜나를 걱정할 때, 아이는 웃고 있었다. 마치 바람에 날아가면 이 아픈 현실 속에서 벗어나 저리 날아가는 철새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처럼.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자유를 꿈꾸는 아이의 이 웃음은 얼마나 슬픈가.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는 혜나의 비정한 엄마 자영(고성희)은 동거남 설악(손석구)이 아이를 학대하는 걸 방관했다. 비닐봉지에 아이를 넣어 싸매놓고 영화를 보러가는 엄마는 스스로 모성애를 쓰레기통에 버린 셈이다. 대신 혜나의 그 상처들을 남달리 깊게 들여다본 수진(이보영)은 그 학대로부터 아이를 구해내려 한다. 물론 그건 법적인 틀에서 바라보면 유괴라는 범죄가 되는 것이지만.

수진이 이토록 혜나의 상처를 외면하지 못하게 된 건, 자신 또한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 정애원의 문짝에 자전거 자물쇠로 꼭꼭 묶여진 어린 수진을 발견한 글라라 선생님(예수정)은 자물쇠를 풀어줘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수진 옆에서 묵묵히 아이를 기다려주었다. 아마 그 자물쇠는 수진에게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와 이어진 유일한 탯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염없이 그 자리에서 수진은 엄마를 기다렸지만 결국 오지 않는 기다림이라는 걸 알고는 포기해버린다. 

이런 경험을 한 수진이었기 때문에 혜나의 아픔이 남다르게 다가왔을 터다. 정애원을 찾은 수진은 하지만 자신이 과연 혜나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성모 마리아 앞에서 묻는다. 자신은 엄마를 경험하지 못했고 또 엄마가 되기도 싫었고 또 엄마였던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진의 엄마나 다름없던 글라라 선생님은 그가 엄마로서 다시 돌아온 것을 반기고 있었다. 

“저에겐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수진이 성모 마리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던지는 이 질문은 그래서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엄마라고 다 엄마가 아니며, 엄마가 아니라도 기꺼이 아이의 아픔을 보듬어낼 수 있는 이가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건 글라라 선생님이 사실상 엄마로부터 버림받거나 엄마를 떠나보내 이 정애원으로 왔던 아이들의 진정한 엄마였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마더>에서 성모마리아 앞에서 수진이 기도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또 하나의 상징을 담아낸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가슴에 품듯, 수진이 혜나라는 아이를 가슴에 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혜나는 마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우리가 짓고 있는 죄를 현시하기 위해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난 존재처럼 보인다. 폭풍우가 치는 바닷가에서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슬픈 웃음을 짓는 그 모습이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마더>가 가진 연출의 영상미는 이처럼 종교적이고 상징적인 뉘앙스까지를 담아내며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사건들은 아동학대와 유괴 같은 범죄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가 그런 범죄물의 틀을 훌쩍 넘어 인간 본연의 본성이나 죄에 대한 함의까지를 담아낼 수 있는 건 이러한 남다른 이야기전개와 그를 시적으로 담아내는 연출력 덕분이다. 

도대체 누가 진정한 엄마인가. 이 질문은 그래서 보다 확장될 수 있다. 무엇이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고, 본성이어야 하는가. 혜나의 슬픈 웃음을 보며 먹먹함을 느꼈다면, 또 수진의 눈물어린 간절한 기도에서 뭉클함을 느꼈다면, 그건 아마도 <마더>가 전하려는 진정한 메시지를 공감했다는 이야기일 게다.(사진:tvN)

'아이해' 김영철의 절규가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

“왜 제게 벌을 안주십니까? 벌을 주세요 판사님. 죄를 짓지 않았을 때는 잡아서 그 독한 벌을 주시더니 지금 죄를 지었는데도 왜 제대로 벌을 안주십니까? 주세요. 판사님. 죽이지 않았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 때는 안 믿어주시더니 이젠 제가 다 잘못했다는데도 왜? 왜 벌을 안주십니까?”

'아버지가 이상해(사진출처:KBS)'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결국 법정에 서게 된 변한수(김영철)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온 죄의 대가. 그 법정에서 판결을 들은 가족들은 그나마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정상참작이 되어 집행유예를 받음으로써 감옥에 들어가 실형을 사는 것은 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변한수는 왜 벌을 안주냐며 오열했다. 아마도 자신이 살아왔던 힘겨운 삶 전체가 그 판결로 인해 허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게다. 과실치사를 했다는 누명으로 유도 유망주로서의 꿈도 포기한 채 전과자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던 그가 아닌가. 그래서 자신은 원하지 않았어도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우고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와야 했던 삶이다.

가족을 위해 선택한 삶이지만 자신을 떳떳이 내세울 수 없는 그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가슴 졸이는 시간들이었을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가슴 졸이며 숨겨왔던 걸 다 드러내고 이제 벌을 받고 떳떳한 삶을 살겠다 마음먹은 그에게 이런 판결은 너무나 허무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이상해>라는 드라마가 그려낸 아버지상은 지나치게 자기희생을 당연시해온 인물이었다. 법정에 가서 판결을 받으면 혹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미리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챙겨두는 그런 아버지. 배우 안중희(이준)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때조차도 자신은 괜찮다며 가족과 진짜 친아들처럼 대해온 안중희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그런 아버지. 

그래서 그 아버지는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보통의 아버지들과는 다른 지나칠 정도로 자기희생을 하는 그런 모습. 물론 그것은 지금의 우리네 현실에서 달라진 아버지들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 게다. 한때는 가부장적 틀에서 자라났지만 이제는 그 틀을 벗어버리고 가족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려는 아버지상.

<아버지가 이상해>는 거기에 아버지의 ‘원죄의식’이라는 구체적 사건을 담아뒀다. 과거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족들 앞에서도 떳떳할 수 없었던 원죄의식. 그런데 법정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변한수의 절규를 들어보면 이상한 건 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이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것뿐이지만 세상의 잘못된 판결은 그의 삶을 뒤틀어지게 했다. 억울함과 미안함의 교차.

물론 변한수가 겪은 특수한 사건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들의 사정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서적으로 아버지들이 갖는 어떤 ‘원죄의식’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신은 열심히 살았어도 어딘지 나아지지 않은 삶으로 가족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누구나 갖게 되는 그 미안함과 억울함의 양가감정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달라진 세상 앞에 아버지들은 어딘지 이상해졌다. 괜스레 가족에게 미안해지고 그래서 기꺼이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때로는 억울하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건 아버지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때론 노력해도 엇나가게 만드는 세상의 잘못된 판결 같은 것 때문은 아닐까. 변한수의 절규가 남다른 울림으로 느껴진 건 그래서다.

<청춘시대>가 건네는 위로, “살아라

 

내가 아저씨 딸을 죽였어... 그래서 나도 죽일 거야?” 강이나(류화영)는 오종규(최덕문) 아저씨를 찾아가 그렇게 말한다. 사고로 강물에 빠진 강이나가 오종규의 딸과 서로 가방을 붙잡으려 사투를 벌이다 결국 강이나가 살아남게 된 것. 그 깊은 강물 속에 드리워진 죽음의 기억은 강이나의 청춘에 아픈 생채기를 남긴다.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고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막 사는 것. 그건 사고의 트라우마로 인한 죄책감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오종규를 찾아가 그 트라우마와 마주 선 강이나는 그제서야 자신의 죽을 것처럼 살아가는 삶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삶은 사실 여전히 그 강물 속에 멈춰져 있었다.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강이나를 찾아온 오종규에게 그녀는 묻고 싶어진다. 자신이 아니라 그의 딸이 살아남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오종규는 살으라고말하고 싶다고 한다.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살아남은 것에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냥 살라고. 살아가라고.”

 

사실 <청춘시대>에서 강이나라는 캐릭터나 그녀가 겪은 강에서의 사고는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살아가는 다섯 명의 청춘들이지만, 강이나만 대학생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스스로 남자들의 스폰서를 받는 쉬운(?) 삶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청춘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그 바깥에 나와 있는 그녀가 나머지 네 명의 청춘들이 겪는 일과 사랑의 고충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사이다 같은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강이나와 오종규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청춘시대>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드러내준다. 살아남을 것을 죄로 느끼며 살아가는 강이나에게 그건 죄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대목은 사실 지금의 청춘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 개의 가방에 매달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떨쳐내야 하는 상황. 이 강이나가 겪은 트라우마는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잔혹한 현실이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잔혹한 현실을 살고 있는 윤진명(한예리)과 강이나라는 청춘의 공유점이 엿보인다. 윤진명 역시 살아남은 청춘이다. 동생은 식물인간으로 죽지 못해 살아있고, 빚더미에 기울어버린 가세는 그녀가 알바에서 알바로 뛰어다니며 연애 따위는 사치로 여길 만큼 자신에게 혹독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고 나 좋아하지 마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치 죄인 같다.

 

생존, 견딤, 죄책감 같은 단어들이 <청춘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어른거린다. 물론 청춘의 풋풋함을 살아가는 은재(박혜수) 같은 인물도 있지만 그녀 역시 어딘가 집안 문제에 비밀스런 아픔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예은(한승연)은 도저히 헤어질 수 없을 것만 같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더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아픔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가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은 그들이 자초한 일들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버텨내고는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살아가지만, 그건 알고 보면 그들의 죄가 아니다. 살아남은 게, 아니 그저 살아가는 게 어떻게 죄가 된단 말인가.

 

<청춘시대>는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픈 건 청춘의 본질이 아니라 누군가 그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강이나에게 살라고말해주는 오종규의 한 마디는 그래서 깊은 감동을 준다. 그는 강이나와 사투를 벌여 죽은 딸로 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어느새 강이나를 딸처럼 이해하고 다독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혹독한 현실을 만들어낸 이들은 저 편에 숨겨져 있고 대신 피해자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벌레로 살아갈 것인가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 아주 나쁜 놈이야. 당신 말대로 쓰레기고. 동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지옥 같아서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무섭고 두려웠어. 그래서 도망쳤어. 상처를 마주볼 용기가 없어서 있는 힘껏 도망쳤어. 기껏 도망친 곳이 진짜 지옥인지도 모르고 썩은 권력에 기생하면서 그들이 던져준 돈과 권력에 취해서 벌레처럼 살았어. 참 어리석었어. 매순간 진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매순간 그걸 놓치고 더 큰 죄를 지었거든. 그들도 나도 그렇게 살았어.”

 


'기억(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기억>에서 태석(이성민)은 전처이자 뺑소니사고로 죽은 동우의 엄마인 은선(박진희)을 찾아와 참회한다. 그는 자신이 지옥 같은 고통 때문에 기억으로부터 도망쳤지만 그 도망친 곳이 진짜 지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가 일에 빠져 살았던 태선로펌. 그 대표인 이찬무(전노민)의 아들 승호(여회현)가 사실 뺑소니범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것. 게다가 그들은 뺑소니 사고를 덮기 위해 씻을 수 없는 더 큰 죄를 지었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똑같은 어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동우의 어버이와 승호의 어버이는 너무나 다르다. 동우의 어버이인 태석과 은선은 드러난 진실 앞에 분노한다. 그리고 자각한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벌레의 삶이었다는 것을. 가해자들이 준 돈과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하지만 승호의 아버지인 찬무와 할머니인 황태선(문숙)은 여전히 돈과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덮으려 한다. 태선은 찬무에게 태석이 의심을 갖는다고 해도 증명할 건 아무 것도 없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찬무는 깨닫는다. 자신이 아들 승호의 죄를 덮기 위해 했던 일들이 승호에게는 어떤 기분을 주었을 지를. 그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모든 걸 덮으려 했던 어머니 태선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모두 널 위해서 한 일이다.” 태선의 변명 같은 말에 찬무는 답한다. “승호도 이런 기분이었겠군요.” 대물림되는 죄. 진실을 은폐한 대가는 이토록 무겁게 대를 이어 자식을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뺑소니 죄에 대한 응당의 벌을 받지 않고 살아오면서 승호나 그의 아버지 찬무 모두 또 다른 죄를 짓게 했으니.

 

<기억>이 건드리고 있는 건 어른의 삶과 선택이 후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권력에 기생해 살아온 대가가 얼마나 벌레 같은 삶이었는가에 대한 참회이고, 그 권력이 그 과거의 진실을 덮기 위해 여전히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칭해 쓰는 어버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감을 갖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버이는 진정 어떠해야 어버이라 불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어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부끄러운 단어로 오염되어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태석의 참회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도 내가 용서가 안되는 데 누가 날 용서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그를 전처인 은선은 오히려 위로해준다.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현실에 맞서는 태석은 비로소 동우의 아버지로서 어버이라는 자리를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버이들은 어쩌다 보니 부끄러운 존재들이 되었다. 스스로는 열심히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그것이 과거의 죄를 덮어버리고 쉽게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대가에 의해 이뤄졌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참회하기도 한다. 이러니 젊은 세대와 어버이 세대의 골은 깊어져간다.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세대는 친구가 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아픈 현실인가.

 

태석은 자신이 상대방의 약점까지 잡아 변호를 했던 대가로 자살한 김선호 박사의 유서를 젊은 변호사인 정진(이준호)에게 건네준다. 자신이 할 일을 끝내고 나서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이라는 것. 그렇게 되면 자신의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정변호사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정변은 김선호 박사와 관련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유죄라면 유죄야. 그치만 책임질 일은 없어. 내 말 알아들었어?”

 

자신의 죄를 자신이 책임짐으로써 젊은 세대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 태석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건 바로 그것이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짐까지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다는 태석에게 정변호사는 뜬금없이 인디언 말로 친구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그게 친구랍니다. 오늘부터 저 변호사님이랑 친구 먹은 겁니다.” 세대 간의 소통은 이런 식으로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곧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하지만 어버이라는 말이 이토록 창피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는 현실이라니.

<신서유기2>, 이승기 대신 안재현 그 이유

 

웹을 통해 공개된 <신서유기2>를 보면 군 입대한 이승기 대신 들어온 막내 안재현에게 첫 대면 자리에서 나영석 PD가 출연여부를 두고 묻는 질문들이 눈에 띈다. 세금은 잘 내는가, 군대는 잘 다녀왔나, 여자문제는 괜찮은가, 도박은 하지 않는가를 묻는다. 그 모든 질문에 괜찮은답변을 들은 나영석 PD그러면 합격이라고 말한다.

 


'신서유기2(사진출처:tvN)'

이 질문들은 모두 과거 <12> 멤버들이 가졌던 문제와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세금은 강호동 이야기고, 군대는 MC몽 이야기며, 여자문제는 이혼한 은지원 이야기이고, 도박은 이수근 이야기다. 안재현을 캐스팅하면서 나영석 PD가 던진 질문 속에는 지금 현재 <신서유기2>가 갖고 있는 전제가 들어있다.

 

물론 응당한 자숙의 과정들을 거쳤지만 그 남은 이미지들 때문에 여전히 무언가 호불호가 갈리는 이전 <12> 멤버들이 출연자라는 것. 그나마 지난 <신서유기> 시즌1에서 무결점의 존재였던 이승기가 이제 군대를 가서 빠지게 되었으니 <신서유기> 시즌2는 그를 대치할 절대적 호감의 인물을 채워 넣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처음 안재현이라는 예능 새내기가 <신서유기2>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의외라는 반응들이 많았다. 그건 안재현이 물론 SBS <별에서 온 그대> 같은 작품이나 이수근과 함께 JTBC <상류사회>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예능에 많이 나오지 않은 그는 대중들에게 알려진 캐릭터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첫 대면에서 나영석 PD의 질문은 안재현이라는 인물이 일단은 큰 문제가 없는캐스팅인 것럼 보이게 했지만 사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 인물이 이번 <신서유기2>에서는 신의 한수라는 게 금세 드러난다. 첫 대면에 <꽃보다 청춘>인 줄 알고 갑자기 떠날 지도 모를 여행에 대비해 큰 가방을 챙겨온 모습도 그렇고, 강호동과의 첫 인상을 얘기하는 장면에서도 폭력’, ‘피해자같은 단어를 거침없이 구사해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장면이 그렇다.

 

게다가 멀쩡하게 잘 생겼지만 퀴즈에서 신선한 무식을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안재현이 기존 멤버들과 너무나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 <신서유기2>의 촬영지는 특성상 중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낯설게도 느껴지는 안재현이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별에서 온 그대>로 대중들에게 은지원이나 이수근보다 더 잘 알려진 연예인이다. 이런 반전요소들은 안재현에 대한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건 <신서유기2>의 서사는 서유기가 그렇듯이 사람이 되지 못한 말썽장이 요괴들이 삼장법사의 인도 하에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여행이라는 모험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명분하에 <신서유기2>는 아예 대놓고 출연자들의 과거 과오들을 들춰낸다. 그리고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혹독하게 그들을 시험에 빠지게 만든다. 공항에 떡 하니 내려놓고 출연자들에게 카메라만 놔둔 채 도망치는 제작진이다. 과오를 전제하기 때문에 그런 독한 미션들은 통과의례로서 응당 치러야 하는 처럼 공감대를 준다.

 

그런데 안재현은 나영석 PD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드러났듯이 무고(?)한 인물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런데 동시에 이 나영석 PD와 제작진들이 마치 악동처럼 던지는 같은 독한 미션들에 의외로 잘 적응하는 모습이어야 프로그램이 불편함을 주지 않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안재현은 호감 가는 인물이면서도 독한 미션조차 그다지 힘겹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안함마저 주는 인물이다. 물론 의외의 예능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승기는 군대에 가면서도 <신서유기2>에조차 커다란 존재감으로 자리해 있다. 그가 티저로 보여준 우리 형들은요-”하며 <엽기적인 그녀>를 패러디한 대목은 빵 터지는 웃음을 주면서도 <신서유기2>의 캐릭터들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 빈 자리를 채워줄, 첫 공개된 방송 클립을 통해 확인된 안재현에 대한 기대감 역시 적지 않다. 더 독해져 돌아온 <신서유기2>의 이야기에서 그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용팔이>, 주원의 활인검, 김태희의 살인검

 

죄는 어떻게 탄생할까. 그것은 사람이 저지르는 일일까. 아니면 권력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내는 것일까. 깨어나 모든 권력을 쥐게 된 한여진(김태희)이 하고 있는 처절한 피의 복수는 과연 정의일까. 아니면 그것은 또 다른 죄일까. 드라마 <용팔이>가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다.

 


'용팔이(사진출처:SBS)'

병원 VIP 병동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갇혀 있던 한여진은 자신을 그렇게 묶어둔 감옥을 무너뜨리겠다고 했지만, 막상 왕좌에 오르자 그 병동을 복수의 공간으로 활용하려 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한도준(조현재)을 그 병상에 눕혀놓고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려는 것.

 

한여진이라는 인물의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사실상 뻔하게 여겨졌던 <용팔이>의 후반부를 팽팽하게 만든 묘수다. 한여진은 자신을 구원해준 김태현(주원)에게는 뭐든 다 해주려고 하는 천사지만, 자신에게 고통의 감옥을 선사했던 이들에게는 죽음의 공포에 떨게 하는 악마다. 실제로 그녀는 말 한 마디에 사람의 생명을 거둬갈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김태현과 한여진의 대립은 그래서 흥미롭다. 김태현은 분노와 복수가 정의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며 한여진을 막아 세우고, 한여진은 스스로를 악어들의 제왕이라고 칭하며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물어뜯길 것이라는 이 비정한 세계의 생태를 말해준다. 분노와 복수의 기저에는 생존하려는 안간힘이 깔려 있는 것.

 

의학드라마가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용팔이>의 이 후반부는 그래서 김태현이라는 의사가 의술이 아닌 사랑과 설득으로서 한여진을, 아니 세상을 살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여진 한 사람을 구원하고 그 폭주하는 복수를 막으며, 사람 살리는 공간이 아닌 사람을 죽이고 범죄를 저지르는 VIP병동을 없애는 일은 또 다른 세상을 살려내는 일이다.

 

한여진이 든 권력의 칼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이라면 김태현이 든 메스는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다. 김태현은 이 문제가 개개인의 복수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문제를 양산시키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여진을 죽이려 했던 이과장(정웅인)이 사실은 그녀를 살려낸 장본인이고 본래 선량하고 능력 있는 의사였지만 의료사고를 내고 궁지에 몰리자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들을 해왔다는 사실을 김태현은 그녀에게 얘기해준다.

 

그것은 이 비정한 권력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비극이다. 한여진을 살리기 위해 의사들이 다 그곳으로 몰려감으로써 김태현의 어머니가 제 때 수술을 받지 못해 죽게 된 사실을 알고도 김태현이 그 복수와 분노의 칼날을 한여진을 향해 세우지 않는 건 그래서다. 그는 이것이 VIP 병동으로 상징하는 부조리한 권력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용팔이>가 그리고 있는 한신 병원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우리 사회가 가진 권력 시스템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갑과 을로 나뉘어진 채 갑질에 을들이 분노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분노와 복수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용팔이>는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태현이 말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VIP 병동을 무너뜨리고 그 곳이 범죄의 온상이 아닌 빈부귀천과 상관없이 사람 살리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

 

현재의 우리 사회를 분노사회’, ‘보복사회라고까지 칭하게 된 건, 이른바 갑을 정서가 그 끝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 사회면을 가득 메우는 그 많은 갑질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거기에 공분하는 대중들의 욕망들. 하지만 이러한 분노와 복수가 진정한 정의를 세워낼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그것이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라는 점이다. 비록 허구로 그려진 드라마지만 <용팔이>의 이런 관점은 우리네 현실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미세스캅>, 자본기계는 사이코패스와 뭐가 다를까

 

물론 드라마가 극화한 이야기일 것이다. <미세스캅>에 등장하는 KL그룹 회장 강태유(손병호)는 기업의 회장이라기보다는 살인을 사주하는 조폭 두목처럼 그려진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비호하기 위해 비리 경찰을 매수하기도 하고, 자신의 부정을 덮기 위해 살인을 사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그 힘은 모두 돈, 자본에서 나온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미세스캅>이 흥미로운 대목은 이 강태유가 살인을 사주하고 현장을 벗어나다가 같은 동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쫓기는 연쇄살인범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짧은 순간 강태유와 연쇄살인범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한다.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강태유는 자신의 살인 사주를 숨기기 위해 연쇄살인범이 찍힌 블랙박스의 메모리칩을 최영진(김희애) 형사에게 건네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은 이 사실을 알아채고 강태유라는 인물을 자신의 살인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다.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범. <미세스캅>에서는 이 두 인물이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즉 비뚤어진 재벌이나 연쇄살인범이나 사람을 죽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도 별다른 동요나 감정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이렇게 범죄와 결탁된 재벌들이 사이코패스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우리는 자주 봐왔다. 왜 그럴까.

 

물론 재벌은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폭력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그걸 대신하는 건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다. 돈은 모든 걸 덮어버린다. 수치화해버리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거래 관계로 치환해버린다. 자본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4대강 사업처럼 사람의 터전은 물론이고 자연의 터전에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포크 레인을 드리우는 것 같은 그 많은 비인간적인 일들이 가능한 것은 그 앞에 자본이라는 기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 뒤로 숨어 그것이 자신의 죄라는 걸 애써 부정한다. 마치 연쇄살인마가 자신의 살인을 살인이 아닌 하나의 게임으로 치부하듯이.

 

비뚤어진 재벌과 연쇄살인마를 둘 다 상대하는 존재가 그냥 형사가 아니라 미세스캅이라는 건 그래서 꽤 상징적이다. ‘미세스캅을 굳이 이 드라마가 캐릭터로 그린 건 아줌마라는 특징을, 국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형사라는 직업과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그러자 거기에는 마치 엄마가 이 위험천만의 사회 속에 내보내는 딸을 걱정하는 모성애가 겹쳐진다.

 

15일 간격으로 가출한 여자 아이들을 납치해 게임을 하듯 잔인하게 죽이는 연쇄살인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뭐든 거래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비뚤어진 재벌. 그 앞에 서 있는 미세스캅이란 인물은 그래서 다분히 우리네 살벌한 현실 앞에서 가족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끌어낸다.

 

그녀의 분노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내려는 마음에 똑같이 절절함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다. 우리는 모두 자본이라는 무정한 기계 앞에 매일 같이 맨살을 드러내고 떨어야 하는 현실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저 극화된 드라마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치부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몹시도 불편해지는 건 어찌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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