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약치기 드라마'라고 불러도 과언 아니다

“어지간히 좀 해요!” 참다 참다 못한 김과장(남궁민)이 직장상사인 서율(준호)에게 소리친다. ‘구조조정 없는 회생안’을 만들어보겠다고 경리부가 나서자 직장상사인 서율은 도와주기는커녕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에 마무리하라 통보하고 만일 제대로 된 회생안이 나오지 않으면 경리부를 공중분해 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경리부 직원들이 동요되는 걸 막으려 그 통보를 쉬쉬하던 차에 이제는 아예 서율이 나서서 경리부 직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제 아무리 직장상사라지만 김과장의 입에서 ‘어지간히 좀 해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과장(사진출처:KBS)'

드라마 <김과장>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김과장 같은 대꾸는 입 안에서만 뱅뱅 돌 뿐, 입 밖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김과장이 터트리는 이 사이다 같은 일갈은 속 시원하긴 하지만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같은 회사의 부하직원이 회사 잘 되자고 하는 짓을 대놓고 막는 서율 같은 직장상사는 비현실일까. 그렇지 않다. 이사급의 임원들 중에 일부는 회사 잘 되자고 어떤 일을 도모하기보다는 자신이 좀 더 오래 버티기 위해, 또 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러니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 등 터지는 건 애꿎은 직원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괜스레 쓸데없이 야근을 하는 일도,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회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도 때론 상사의 요구에 해야 하는 샐러리맨들은 넘쳐난다. 샐러리맨들이 힘겨운 건 업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이런 갖가지 비합리적인 일들을 괜찮은 척 웃으며 견뎌내야 하는 게 더 큰 스트레스다. 

최근 직장인들의 애환을 속 시원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른바 ‘사이다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약치기 작가’로 불리는 양경수 작가의 <일하기 실어증>이라는 한 컷 짜리 웹툰도 그 중 하나. “보고서가 개판이네”라는 상사의 말에 속으로 ‘개처럼 일만 시키니까요’라고 응수하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에 상사의 뺨을 때리며 “못 피했으니 즐기세요”라고 하는 이 웹툰 속 인물이 주는 공감은 샐러리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웹툰이 가진 힐링적 성격 때문에 직장인들에게는 일종의 약이 된다는 의미에서 팬들이 그에게 ‘약치기’라는 예명을 붙여줄 정도.

<김과장>의 엔딩에 들어가는 웹툰이 바로 이 약치기 작가 양경수의 그림이다. 드라마와 웹툰이 이렇게 완벽한 콜라보를 이루게 된 건 둘 다 직장인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라는 유사점 때문일 게다. <김과장>이 상상 이상의 엄청난 열광을 이끌어낸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화제가 된 바로 그 약치기 콘텐츠의 명맥을 드라마로 제대로 이어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실로 <김과장>은 그런 의미에서 ‘약치기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월급 로그아웃, 직장살이, 메신저 감옥, 야근각....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이런 신조어들을 보면 지금의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겨운가를 잘 말해준다. <김과장>이 보여주고 있듯이 그들이 힘겨운 건 업무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비상식적인 일들로 인해 그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다. 

하지만 어쩌랴.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말 한 마디 못하고 그 답답한 속내를 꾸역꾸역 안으로 삼킬 수밖에 없는 샐러리맨의 처지. 그런 그들에게 김과장이 마치 갑질 하는 직장상사와 회사를 비웃듯이 골려주고 비아냥대고 때로는 속 시원히 일갈하는 그 모습이 어찌 마음에 닿지 않을까. 직장인들이 김과장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격하게 공감하는 까닭은 하루 종일 시달리고 견뎌내던 그들이 이 드라마를 볼 때만큼은 그 힘겨움을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에게 특히 <삼시세끼>가 주는 로망이란

 

하루쯤 아무 것도 안하고 저런 산골에 푹 파묻혀 삼시세끼나 챙겨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영석 PD는 과거 회의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이런 생각에 <삼시세끼>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은 아마도 지금 현재 직장인들에게도 하나의 로망처럼 다가오는 일일 것이다. 일주일 내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아빠들이나 워킹맘들은 그래서 <삼시세끼>를 본다. 거기에는 일조차 즐거움이 되는 시간이 있으니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나영석 PD는 이 <삼시세끼>에서 유일하게 업무지시를 내리는 상사다. 그런데 그 업무라는 게 고작 점심으로 다슬기 비빔국수를 해먹으라는 거다. 물론 이 정도의 업무에도 이서진은 툴툴거린다. 때론 쓸 데 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그러기도 하고 때론 자꾸 이상한 걸 시켜?”라고 상사(?)를 질책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서진은 앞장서서 다슬기를 잡으러 개울로 나서고, 의외로 열심히 그 일에 빠져든다. 그건 사실 일이 아니다. 김광규는 흐르는 개울물에 웃통을 벗고 뛰어들어 다슬기를 잡지만 그건 미역 감는 일이나 마찬가지. 시청자들조차 그 장면에서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게 물 속에 몸을 담글 때마다 한 웅큼씩 다슬기가 올라온다. 물놀이가 진짜고 일은 덤이다.

 

직장에서의 일을 떠올려보자. 하기 싫은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한다. 못하면 퇴근 시간이고 뭐고 늦게까지 남아서라도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일이라는 게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도통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는 분명 이득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왜 이렇게 늦게까지 앉아 일을 하고 있지?

 

하지만 정선의 <삼시세끼> 집에서는 그 일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나영석 상사가 지시한 다슬기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게 되도 그러려니 한다. 게다가 이 일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맛좋은 비빔국수를 허기를 반찬으로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회사의 업무를 떠올리는 직장인들이 <삼시세끼>라는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시세끼>라는 일터(?)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괜히 택연이 좋은 지성이 그 같은 동생이 갖고 싶다고 말하고, 상사인 나영석 PD가 그럼 택연과 이서진을 1+1;으로 싸가라고 하는 관계다. 직장 내에서 이른바 정치라는 것을 느껴본 직장인들이라면 이들의 이 따뜻하고 즐겁기 이를 데 없는 관계를 보며 어떤 기분을 갖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들이 하는 삼시세끼 밥을 챙겨먹는 일은 그래서 건강하고 즐겁다. 굳이 양봉을 하기 위해 벌통을 갖다 놓으면 우리가 그냥 회사 일도 번 돈으로 꿀을 사먹는 것보다 더 건강하고 즐거운 꿀을 먹을 수 있다. 그 벌통의 꿀은 동네 곳곳에 피어난 꽃들이 제공한 것이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는가.

 

그들이 하는 건 놀이고 우리들이 하는 건 일이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늘상 입에 달고 다니듯 하는 말처럼, 그들이 하는 일이나 우리가 하는 일이나 매한가지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죽어라 일을 하는 우리라고 해서 하루 네 끼를 먹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아무 것도 아닌 단순한 진리. 이것은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삼시세끼>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저 나영석 PD가 과중한 업무 속에서 떠올렸다가 후에 실제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가끔은 일을 훌훌 벗어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삼시세끼 챙겨먹는 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의외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이 단순한 삶에 이토록 열광한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어떤 갈증이 분명 있다는 얘기일 것이니.

 

잘 나가는 예능 PD? 알고 보면 그냥 직장인

 

KBS <프로듀사>가 그리는 건 예능 PD들의 세계다. 최근 들어 예능 PD는 드라마 PD보다 더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 <프로듀사>에서도 실명이 나오듯 <무한도전> 김태호 PD는 모두가 인정하는 예능의 신이고 <삼시세끼> 나영석 PD는 망하는 설정처럼 보이는 프로그램을 척척 살려내 심지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까지 만들어내는 영향력의 소유자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하지만 이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고, 실제 삶은 여느 직장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상사에게 까이고 밑으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위협받으며 매일 같이 시청률표를 성적표 들여다보듯 집착하고 프로그램을 위해 출연자들에게 사정사정을 하는 그런 직장인. 예능이라는 분야에서 일하니 그 일도 놀이 같을 것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치열하기만 하다.

 

물론 잘 나가는 스타 PD들이야 말이 다르겠지만 보통의 예능 PD들이라면 출연자를 모셔야하고 시청률 눈치를 봐야 하며 또 프로그램이 언제 폐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전전긍긍하며 살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판타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듀사>에 출연하는 예능 PD들이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로 그려지는 건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백승찬(김수현)이라는 신입 PD<미생> 장그래의 예능판 버전 그대로다. 토너 하나를 교체하는데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며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존재.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하듯 떠밀려 최고참 출연자에게 프로그램에서의 하차통보를 하라고 지시받는 그런 위치. 제 딴에는 예의를 차린다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통보를 하지만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출연자 때문에 팀 전체를 곤혹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미생’.

 

라준모(차태현)도 탁예진(공효진)도 중견 PD지만 생활인이기는 마찬가지다. <12>이라고 하면 늘 즐거운 예능 아이템 회의가 이어질 것 같지만 이는 현실과는 다르다. 시즌4 PD인 라준모는 예능 아이템 회의 대신 출연자 전원 교체 통보를 어떻게 하면 기분 상하지 않게 할까를 고민하는 회의를 한다. <뮤직뱅크> PD라면 가수들에게 슈퍼갑일 것만 같지만 요즘처럼 기획사의 힘이 커진 상황에서 탁예진은 잘 나가는 아이돌 신디(아이유)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능국 CP인 김태호(박혁권)는 여느 회사의 생존만 남은 중간 관리자와 다르지 않다. 상사 앞에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갖은 입바른 소리를 하고, 어려운 일이나 위험한 일은 후배들에게 슬쩍 떠넘긴다. 하지만 그 역시 생활인의 체취가 묻어난다. 그 복잡하게 인간관계가 얽혀있는 방송사의 일들이 사실은 그 관계의 역학 속에서 굴러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그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보다 회식으로 갈 음식점이나 그 음식점에서 잘하는 음식 같은 자잘한 일상에 더 관심을 보인다. 이 얼마나 슬픈 모습인가.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예능 PD들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한 모습이 판타지에 가깝다면 이들의 현실은 알고 보면 그냥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차 사이에서 느껴지는 페이소스 같은 것이 이들의 삶에는 묻어난다. 웃음을 주는 직업이지만 그들은 결코 늘 웃으며 살지 못한다. 한없이 화려해 보이는 방송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다.

 

<프로듀사>는 그래서 예능 PD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직장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예능 PD라는 직업은 직장인의 삶을 더 극화시키는 면이 있다. 그들이 웃음 바로 옆에 서 있기에 더 짠해지고, 화려함 옆에 서 있기에 더 초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고시로 불리며 검사, 판사 같은 위상으로 프로듀사라 쳐다보지만 실상은 직업인 프로듀서인 그들을 이 드라마는 다루고 있다.

 

강호동보다 최대리, <투명인간>의 가능성

 

대중들은 특히 강호동에게 인색하다. 한 때 국민 예능이라고도 불렸던 <12>로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그 기억이 여전히 그에게는 꼬리표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첫 회 4%를 기록한 강호동의 <투명인간>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급한 이들은 강호동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을 그대로 실패로 단정하곤 한다.

 

'투명인간(사진출처:KBS)'

이것이 강호동의 딜레마다. 다른 출연자가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첫 회에 4%를 기록하면 요즘 같은 지상파 상황에서는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강호동은 다르다. 이것은 그와 쌍두마차를 이뤄 한 시대를 구가해온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한때 최고의 시청률로 기억되던 그들을 시청자들은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 이들을 섭외하려고 줄을 섰던 방송가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이들에 대한 매력은 분명하지만 또한 부담감도 그만큼 크다는 걸 일선의 제작진들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은 올해 강호동이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으로서 주목됐다. 하지만 첫 회에 4%, 2회에 3.5%(닐슨 코리아)로 떨어지면서 벌써부터 실패를 단정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 회와는 조금 달라진 2회의 변화를 통해서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첫 회가 문제가 됐던 것은 웃음과 재미의 포인트가 약했다는 점이다. 웃음을 잃은 직장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준다는 그 취지와 의도는 대중들이 공감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회사에서 억지로 웃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진짜 웃음의 포인트들이 별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문제로 지목되었다. 웃음은 상당부분 리액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웃지 않으려 작정한 직장인들을 웃긴다는 건 전문 예능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2회는 첫 회와 달리 그냥 무작정 웃기는 게 아니라 어떤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약간의 준비를 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호동에게 김우빈의 극중 대사를 하게 하고, 강남에게 노래를 통해 반응을 이끌어내게 하며 또 게스트로 출연한 이유리에게 국민 악역 연민정의 연기를 하게 하는 설정은 확실히 준비 없이 웃기는 맨땅의 헤딩식의 첫 회보다는 더 많은 웃음의 포인트를 찾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를 떠나서 그 과정 자체가 훨씬 나아졌다는 점이다. 웃기려는 투명인간과 웃음을 참으려는 직장인의 대결 그 자체를 통해 보는 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성패는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빛난 건 로션 최승진 대리가 하하와 정태호의 로션 공격을 막아내면서 준 큰 웃음이다.

 

소개에서부터 학창시절 부처라 불렸다는 최승진 대리는 삼둥이를 닮은 외모에 어딘지 초탈한 듯한 평정심을 보이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최대리의 얼굴부터 머리까지 로션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하하와 정태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콩트 코미디를 구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웃음은 하하나 정태호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래 그 와중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최대리에게서 나온다.

 

이것이 <투명인간>이 발견해낸 새로운 웃음의 포인트다. ‘부처 핸섬이 된 최대리의 모습은 <투명인간>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만들어낸다. 우스운 상황에서 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웃긴 일인가. 그 사실을 묵묵히 버텨내는 직장인들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도 재미도 거기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4%에서 3.5%로 떨어진 시청률의 수치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또 지나친 강호동에 대한 의지는 강호동 본인에게도 또 프로그램에도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연예인과 직장인이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 대결과정 속에서도 하나의 팀이 되어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호동보다 더 최대리가 <투명인간>의 가능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오만>, <미생>, <피노키오>가 꺼낸 칼끝이 향하는 곳은

 

멀리서 보면 그럭저럭 살만해 보인다. 아니 심지어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다. 한 걸음만 다가가면 온갖 뒤틀어진 욕망과 부조리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직업의 세계. 이런 의미로 보면 지금껏 대충 직장을 하나의 배경으로 다루고 그 위에 멜로 같은 이야기를 덧붙인 드라마들은 실수의 차원을 넘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누가 막연히 직장인의 로망을 말하는가.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제 전문직 드라마라는 표현은 구태의연해진 지 오래다. <오만과 편견>의 검찰, <미생>의 종합상사, <피노키오>의 언론사. 지금 현재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들을 들여다보면 과거 전문직 드라마라고 불리던 드라마들의 호칭 자체가 무색해진다. 과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은 직업의 세계를 표방하기는 했으나 그 디테일을 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보면 직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만들어냈던 것이 사실이니.

 

물론 의학드라마는 예외다. 무수히 반복되어오면서 디테일 역시 깊어진 게 의학드라마다. 하지만 검사나 기자 혹은 직장인을 다루던 전문직 드라마들의 디테일은 요즘 방영되고 있는 MBC <오만과 편견>이나 tvN <미생>, 혹은 SBS <피노키오>를 따라잡기는 어렵다. 이들 드라마들은 좀 더 심층적인 취재가 아니라면 도무지 나오기 어려운 직업의 디테일들을 다룬다.

 

과거라면 이런 디테일은 시청률을 가로막는 저해요소가 됐을 것이다. 적당한 디테일에 조미료처럼 처지는 멜로가 드라마의 흥행공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당한 디테일은 이제 대중들에게는 리얼리티의 부족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니 거꾸로 깊어진 디테일은 실감으로 공감을 만들어낸다. 디테일이 깊어진 이들 세 드라마가 시청률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오만과 편견>이 다루는 검찰은 막연히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를 깨는 디테일들이 들어가 있다. 문희만(최민수)같은 부장검사를 보다보면 전형적인 비리 검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가도 검찰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의 안간힘을 쓰는 현실적인 검사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검찰의 일원이 될 것인지 개인으로 남을 것인지를 구동치(최진혁) 수석 검사에게 묻는 문희만의 모습에는 시스템과 개인으로서 검사의 소신이 어떻게 부딪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미생>은 지금껏 우리가 종합상사라고 하면 해외에서 물건 떼다 파는 정도로 생각했던 그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린다. 또 직장인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샐러리맨의 애환 같은 통상적인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일중독자들처럼 보이는 <미생> 상사맨들의 깊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네들의 삶이 가진 아픔과 기쁨을 모두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공감의 폭은 바로 이 디테일로 인해 커질 수밖에 없다.

 

<피노키오>는 그저 기레기로 치부되던 드라마 속 기자들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다. ‘진실을 두고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 보도경쟁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단독을 잡기 위해 별의 별 짓을 다하는 현장 이야기가 들어간다. 기자가 나오면 으레 등장하는 클리쉐들은 디테일 속에서 무색해진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디테일에 승부하는 이들 직업 드라마들 속에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모두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이 주인공이라는 점이고, 그 사회 초년생에게 어떤 지침을 알려주는 직장의 멘토가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의 한열무(백진희)라는 초년생을 이끌어주는 수석 구동치가 그렇고, <미생>의 장그래(임시완)라는 계약직을 끌어주는 오차장(이성민)이 그렇다. <피노키오>의 신입 기자 최달포(이종석)에게는 YGN 사회부 시경캡인 황교동(이필모)이 있다.

 

사회 초년병들과,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은 멘토들은 함께 힘을 합쳐 부조리한 현실과 맞선다.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조직 시스템이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의 적은 검찰시스템이 되고, <미생>은 샐러리맨들의 직장 시스템이며, <피노키오>는 보도 경쟁에 내몰려진 방송 시스템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이 직업을 다루는 세 편의 드라마는 다른 것 같아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직업이 갖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항하는 청춘과 멘토의 공조체계가 그것이다. 어째서 서로 다른 직업을 다루면서도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 구조가 나오게 된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접하는 직업의 세계가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취업도 어렵지만, 막상 들어가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스템의 현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비극들이 어떤 직업 속에서도 상존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꾼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궁금해진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덮어버리고 갔을 때는 좀체 정체가 드러나지 않던 막막하고 먹먹한 현실이다.

 

<무한도전>과 차승원의 만남, 왜 늘 특별했을까

 

무려 9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무모한 도전>에 나왔던 차승원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대중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연탄을 옮겨 쌓는 당시의 미션에서 차승원이 던진 연탄을 노홍철은 끝없이 받아냈다. 잘 생긴 모델에 잘 나가는 배우가 우스꽝스런 쫄쫄이복을 입고 얼굴에 탄칠을 잔뜩 한 채 그게 뭐라고 그리도 열심히 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그건 마치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된 <무한도전>이 지향하는 세계의 전조를 보는 것만 같았으니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리고 9. 차승원이 다시 돌아왔다. 역시 그답게 그의 앞에 놓인 건 극한의 일의 세계였다. 이름 하여 극한 알바’.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극한직업의 패러디다. <무한도전>극한 알바라는 특집을 기획한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가 있다. 그건 물론 최근 <미생>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직장인콘텐츠가 보여주는 일의 세계를 다룬다는 면도 있고, 또 최근 <카트> 같은 영화가 보여준 비정규직의 문제(여기에서는 알바의 문제도 다뤄진다)를 환기시키는 의미도 있다.

 

250미터 상공에서 63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일을 무려 10년 간이나 해온 분이 던진 높은 곳보다 돈이 가장 무섭다는 말 한 마디에는 그 살풍경한 일의 세계 속으로 살기 위해 매번 뛰어들어야 하는 생업인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고소공포증을 말하는 출연자들에게 힘이 드니까 아무 생각이 안 난다는 생업인의 한 마디는 그래서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무한도전>극한 알바라는 아이템을 들고 온 것에는 이런 외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올 한 해 길과 노홍철이 모두 음주운전으로 하차하는 내홍을 겪은 <무한도전>이 다시금 초심을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시작했던 그들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결국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그 꼭대기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위기가 된 셈이다. <무한도전>이 갑자기 <무모한 도전>으로 되돌아간 데는 그 초심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차승원은 그 <무한도전>의 초심을 떠올리게 하는 <무모한 도전>의 아이콘처럼 떠오르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진지함 속에는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가장의 짠함이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어. 또 탄광이야.”라고 탄식하는 차승원의 모습은 그래서 웃음과 애잔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온 몸을 던져 웃음을 주면서도 그 성실하게 망가지는 모습 속에 어떤 페이소스를 만드는 그런 인물. 그가 바로 차승원이다.

 

차승원은 최근 뜬금없이 친자 확인 소송으로 아픔을 겪기도 했다. <최고의 사랑> 독고진으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차승원에게는 뼈아픈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차승원은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공식입장을 밝혀 오히려 대중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해도 차승원 역시 상처받는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에게 <무모한 도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극한 알바라는 세계는 그래서 어쩌면 차승원 스스로 자신의 초심을 다잡는 계기일 수 있다.

 

차승원은 노홍철의 빈 자리를 확실히 채워주었다. <무한도전>은 차승원과 함께 연탄을 나르던 그 <무모한 도전> 시절로 돌아가 초심을 되새길 수 있었고, 차승원 역시 그 때의 그 경험 속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초심을 저 살풍경한 극한의 일터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통해 찾으려 했다는 건 <무한도전>의 진심을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그 마음은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것. 거기에 <무한도전>의 초심이 있으니 말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제 비오는 날이면 나영석 PD의 <삼시세끼>가 먼저 떠오릅니다.

<삼시세끼>에서 비오는 아침의 풍경을 소리만으로 묘사한 장면.

암전된 화면에 자막만으로 '다음 빗소리는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요?'하고 묻고는

그 빗소리가 어디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라는 걸 하나 하나 알려주는 장면은

같은 빗소리라도 그렇게 다 다를 수 있다는 걸 새삼 보여주었죠.

그리고 분할화면으로 그렇게 나누어 들려준 빗소리를 한 화면에 모아

오케스트라처럼 들려준 그 장면은 아마도

예능 역사상(?) 가장 인상적이고 정서적인 풍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 주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북콘서트에서 나영석 PD에게

그 장면을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거냐고 물었더랬습니다.

그랬더니 이 PD 하는 말.

출연자들이 안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빗소리가 갑자기 귀에 들리더라는 겁니다.

이런 날은 빗소리 들으며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낮잠이라도 잤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유지태 주연의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가 떠랐다고 하더군요.

그 영화에서 유지태가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그 빗소리를 그렇게 담아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음향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마치 아이들처럼 그 소리들을 담아봤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그 인상적인 빗소리 장면이었다는 것.

 

이 이야기는 나영석 PD가 일을 접하는 방식을 잘 말해줍니다.

그는 일을 일로서 대할 때 사실은 일이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회의를 할 때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진행하는

이른바 놀이터 회의를 한다고 했습니다.

 

흔히들 직장생활의 대부분은 회의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과연 회의는 효과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을까요?

회의가 회의적이지 않고 즐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영석 PD의 <삼시세끼> 같은 유유자적 속에 흥미진진함이 담긴 프로그램이

탄생할 수 있던 것은 혹 그가 한다는 그 '놀이터 회의'의 산물은 아닐런지요.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생각하는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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