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게 없는 수목극에서 드러난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들

볼게 없다. 제 아무리 퐁당퐁당 연휴라고는 하지만 현 지상파의 수목드라마들에 대한 관심은 바닥이다. 시청률부터가 그렇다.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 <추리의 여왕>은 조금씩 추락하며 9%에 머물렀고, 같은 날 종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와 MBC <자체발광 오피스>는 각각 8.2% 그리고 7%로 고만고만한 수치로 끝을 맺었다. 사실 이 정도 수치면 순위를 말하기가 무색해진다. 두 자릿수 시청률도 못 내고 있고, 화제성도 뚝 떨어졌으니.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시청자들은 제발 tvN이나 OCN 같은 채널의 드라마들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현재의 수목극에서 누구 할 것 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나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추리의 여왕>은 물론 일상 소재의 추리극이라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건은 등장하지 않고 너무 서설이 긴데다 인물들의 장황한 신변잡기들만 늘어놓고 있어 심지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가 흐려질 정도다. 

9회는 팬티 도둑이 강도로 돌변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마지막 장면이 갑자기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사실 설옥(최강희)과 완승(권상우)의 이야기는 굳이 드라마에서 다뤄져야할까 싶을 정도로 소소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일상의 이야기와 거기서 드러나는 아줌마 셜록, 설옥의 면면들이 초반만 해도 재미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어느 정도가 아닐까. 이제 10회를 넘어선 상황이면 본격적으로 사건전개를 해나가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높여야 하는 게 정상이다. 이 작품은 16부작으로 이제 겨우 6부를 남기고 있을 뿐이 아닌가. 시청자들이 OCN의 <터널> 같은 밀도 있는 작품과 이 드라마를 비교하는 이유다.

종영한 <사임당, 빛의 일기>는 역시 기획 단계부터 현재와 과거를 엮는 그 구성이 만들어낸 한계점을 마지막까지 지우기 힘들었다. 결국 현재 이야기를 상당부분 덜어내고 과거의 사임당 이야기를 중심으로 재편집하면서 후반에는 내보낼 분량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애초 30부작에서 28부작으로 축소했지만 28회의 분량을 보면 전반부는 사실상 과거 영상들을 짜깁기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결말도 갑작스럽게 개과천선한 갤러리선의 관장(김미경)이 기자회견으로 진실을 밝히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점도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결국 이영애의 복귀작이었지만 실패작으로 남았다. 200억이 넘는 투자가 된 작품이고, 100% 사전 제작되었지만 완성도도 담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도대체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왜 주인공으로 세웠는가가 무색한 이야기 전개는, 역사왜곡의 차원을 차치하고라도 문제를 남겼다. 결국 양류지소라는 고려지를 만드는 과정이 드라마의 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그것이 사임당이라는 실존인물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애초 워킹맘으로서 혁신적인 여성상을 그리겠다던 포부는 현모양처의 보수적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날 종영한 <자체발광 오피스> 역시 지상파 드라마에서 항상 문제로 제기되던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 이 드라마가 애초의 흐름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고 그저그런 드라마로 전락하게 된 시발점은 서현(김동욱)이라는 회장 아들의 갑작스런 흑화에서부터였다. 서현이 본부장으로 하우라인에 들어와 인사권을 쥐고 ‘농단’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뻔해졌다. 서현으로 인해 고질적인 회사의 라인문화가 전면에 등장하고, 이러한 악역을 통해 은호원(고아성)과 서우진(하석진) 캐릭터를 세우려 한 것.

결국 은호원과 서우진은 이러한 핍박에 맞서 싸우는 인물로 서게 되고 또 두 사람은 멜로관계로 얽히는 연인이 되었지만 서현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갑자기 변화한 것에 대해서 드라마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억지로 악을 세워 선을 구축하려는 드라마의 방식은 너무 단선적이라 그다지 감흥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애초 여성판 <미생>이라던 이 드라마는 그래서 오히려 <미생>을 통해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수목극은 사실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이나 다를 바 없다. 다른 시간대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가장 트렌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수목극들을 보면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들만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이러니 케이블 드라마로부터 배우라는 이야기가 나올 밖에.

‘추리의 여왕’, 어째서 스릴러 아닌 휴먼드라마를 선택했나

“뒤통수치는 사람만 있는 거 아냐. 목숨 걸고 당신 구하려던 사람도 있어. 당신 인생 그렇게 후지지 않아.”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에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생매장될 위기에 처했던 호순(전수진)을 구해낸 완승(권상우)은 그녀에게 설옥(최강희)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마음을 줬던 사람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에 황망해하는 호순을 위로하는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끔찍한 살인사건이 소재인데도 불구하고 <추리의 여왕>이 갖고 있는 정서는 어찌 보면 너무나 편안하다. 물론 사람을 생매장하는 범죄자의 범죄 행각은 소름끼치는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그 자극적인 사건에 그다지 카메라를 집중시키지 않는다. 대신 호순을 구하기 위해 살인범의 동선을 추리하는 설옥과 그녀를 도와 범인을 잡고 호순을 구해내는 완승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그렇게 만조가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작은 섬에서 열린 바닷길로 두 사람이 호순과 연쇄살인범을 손수레에 싣고 나오는 장면은 금세 이 스릴러적인 장르를 코미디로 바꿔놓는다. 완승은 은근히 자신이 설옥을 구해줬다는 생색을 내고, 설옥은 뭐하러 구했냐고 툴툴 대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살인사건이 터지는 드라마지만 긴장감보다는 인물들이 추리과정에서 엮어지는 알콩달콩한 관계가 드라마 전체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면서 호순이 겪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완승과 설옥은 ‘사랑의 감정’의 정체에 대한 언쟁을 벌인다. 완승은 사랑은 알면서도 속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옥은 사랑이란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또한 은근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자기도 모르게 완승은 설옥에 대한 감정이 생겨나고 있고, 설옥은 완승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어떤 완강한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점도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밝혀내는 그 자체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는 양상이다. 그리고 사건 속에서 피해 당사자들이 겪는 어떤 인간적인 감정들이 <추리의 여왕>에서는 더 많이 드러난다. 바로 이전에 다뤄진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건의 끔찍함만큼 주목됐던 것은 남겨진 아이와 아들의 허물까지 덮으려 하다 결국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 부모의 그 감정들이다. 

<추리의 여왕>이 이러한 편안한 범죄물의 기조를 유지하는 건 KBS라는 보편적 시청층을 갖고 있는 플랫폼에 잘 어울린다. 끔찍한 사건들을 자극적인 틀로 보여주는 건 케이블에서는 통해도 지상파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고 사건 수사보다는 ‘추리’라는 요소를 넣어 훨씬 더 게임적인 재미를 부가하려 했다는 건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변화나 관계변화를 보여주려다 보니 이야기가 너무 늘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첫 번째 사건으로 등장했던 장도장(양익준)의 마약사건이나 그 이후에 등장했던 보험금을 노린 남편의 아내 살인사건은 어떤 긴박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옥의 시누이이기에 더 몰입될 수밖에 없는 호순의 납치사건은 사건 이야기보다 설옥과 완승의 밀고 당기는 부차적인 이야기들에 너무 많이 집중하다보니 긴장감을 전혀 느끼기가 어려웠다. 

물론 그러한 긴장감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려는 방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늘어지는 전개는 너무 느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편안한 전개는 나쁜 게 아니지만 그래도 시누이가 납치되어 생매장 당할 위기에 처하는 사건마저 별다른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닐까. 휴먼드라마의 방향성을 선택했다고 해도 작품은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추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추리의 여왕’, 최강희 아줌마의 추리를 가로막는 것들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독특한 건 주인공인 설옥(최강희)이 셜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탐정 셜록에서 따온 듯한 그 이름 앞에 붙어 있는 건 탐정이 아니라 아줌마. 설옥이 남다른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데 그 앞길을 가로막는 것도 바로 이 아줌마라는 꼬리표가 가장 크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한 폭력남편을 추리해내는데 있어서 이 아줌마 설옥은 통화기록과 카드전표 등의 수치들과 CCTV 화면을 분석해 조작된 알리바이를 파헤친다. 그 남편의 알리바이였던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친구가 술에 취해 있을 때 아내를 살해하고 돌아와 시계를 되돌려놓음으로써 알리바이를 만들었던 것. 시계에 찍혀진 지문과 미지근해진 맥주 그리고 편의점 CCTV 속에서 그 남편이 친구의 가게로 돌아가지 않고 집쪽으로 향했던 장면 등을 종합해 설옥은 그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걸 입증해냈다. 

물론 그 아내의 직접적인 사인은 남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부모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죽은 줄 알고 강물에 유기했던 며느리가 사실은 살아있었던 것. 결국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며느리를 강물에 유기한 시부모가 직접적인 살인자가 되었다. 

사실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편의 이야기는 액면으로만 보면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추리의 여왕>은 그 사건을 추리해내는 설옥이라는 아줌마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이 과정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믿지 않던 아줌마의 추리가 하나하나 맞아들어갈 때 무시 받던 이 존재의 반짝임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

설옥을 무시하는 존재는 완승(권상우)이라는 형사와 시어머니 박경숙 여사(박준금)다. 완승은 아줌마가 사건 현장을 어슬렁거리는 것 자체를 탐탁찮게 여긴다. 그래서 한 번만 더 현장에 나오면 공무집행방해로 넣어버린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설옥의 추리가 하나하나 맞아들어가는 걸 보면서 이 아줌마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오히려 그녀의 추리에 은근히 기대는 모습까지. 

박경숙은 설옥을 그저 집안일에나 묶어두려는 전형적인 시어머니다. 밥 때 되면 시어머니를 챙겨야 한다며 집으로 달려가는 설옥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어디냐고 묻는 시어머니의 전화. 마침 한창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듯한 시점에 시어머니의 전화가 갑자기 울리는 장면은 설옥은 물론이고 그녀의 추리를 기다리는 완승 그리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답답하게 만든다. 

완승이 설옥의 사회 생활에서의 어떤 편견을 상징하는 존재라면 시어머니는 가정 생활 속에서의 편견을 담아내는 존재다. 그리고 그 종합은 역시 아줌마라는 존재의 삶에 대한 편견으로 뭉쳐진다. 아줌마라고 어찌 꿈이 없고, 또 숨겨진 능력이 없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아줌마라는 이유로 집에서 밥이나 하고 가족 뒷바라지나 하라고 밀어낸다. 

바로 이 지점은 설옥이라는 아줌마 셜록에 시청자들이 푹 빠져드는 지점이다. 딱히 아줌마가 아니라도 아저씨나 사회에서 소외된 청춘들 같은 본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캐릭터에 몰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옥이 놀라운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해가고 그런 그녀의 진가를 슬쩍슬쩍 인정하게 되는 완승 같은 시선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똑같은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추리의 여왕’ 최강희 안에 아줌마·소년·여자가 보인다

이 정도면 최강희를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은 최강희라는 배우를 떼놓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결들이 공존한다. 설옥(최강희)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복합적인 결이 그렇다. 그녀에게서는 아줌마의 모습이 보이다가도 추리하는 소년의 모습이 연상되고 그러다가 또 어떤 설렘을 만들어내는 여자의 모습도 겹쳐진다. 실로 이런 다양한 이미지를 동시에 껴안고 있는 최강희에게는 맞춤옷 같은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다시 생각해보면 <추리의 여왕>이라는 형사물이지만 어딘지 생활밀착형의 추리물 느낌이 나는 드라마가 가능해진 건 다 이 설옥이라는 캐릭터 덕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일찍이 결혼해 남편을 검사가 되기까지 뒷바라지한 전형적인 아줌마다. 남편을 위해 학업도 포기해 고졸이지만, 그런 헌신적인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삶을 친구인 김경미(박현숙) 외에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놀라운 추리의 능력을 갖고 있고, 또한 무고한 이들을 해하는 범인을 잡고자 하는 사명감도 남다르지만, 그럴듯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도 아닌 그녀는 그저 범행현장을 기웃대는 동네 아줌마 취급을 받기 일쑤다. 도움을 주고파서 자신이 추리한 내용들을 알려 주려 하는 것이지만 돌아오는 말은 “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는 말이다. 그녀는 친구 김경미에게 “난 고졸에 살림도 똑바로 못하는 아줌마”라고 자조한다. 

그녀를 그렇게 무시하는 이는 다름 아닌 범인은 몸으로 뛰어야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열혈형사 완승(권상우)이다. 범행현장에 다시 나타나면 공무집행방해로 집어넣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그는 어째 그녀가 한 추리들이 딱딱 들어맞는 걸 보고는 조금씩 그녀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나쁜 놈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건 아니다”라고 한 그 말에서 그녀의 진심을 느낀다. 

그래서 이미 시청자들이 눈치 챘듯이 이 수상한 추리물은 완승과 설옥이 공조해 범인을 잡아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인물은 역시 설옥이다. 형사물이라고 하면 어딘지 쳐다보기도 섬뜩할 정도의 범죄들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설옥이라는 아줌마 탐정이 캐릭터로 들어오면서 이런 부분들은 상당부분 상쇄된다. 게다가 이 인물은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줌마들의 로망을 담고 있다. 

일터로 나가는 이들은 무시할지 모르지만, 아줌마들의 눈썰미나 사람들과 쉽게 교감하는 그 소통능력 같은 것은 의외로 놀라운 면들이 있다. 설옥은 바로 그런 아줌마의 장점을 십분 살려 사건을 수사해간다. 남자로서는, 그것도 범인은 몸으로 뛰어서 잡는 것이라는 지론을 가진 마초형 남자 완승 같은 인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추리의 능력을 보여준다. 자잘한 것들의 조합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아줌마 탐정의 탄생이다. 

흥미로운 건 이 설옥이라는 캐릭터가 아줌마들의 로망을 담는 인물이면서 때론 소년 탐정 같은 아이의 보이시하면서도 똘망똘망한 면을 드러내고 때론 전형적인 며느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완승의 눈을 통해서 매력적인 여자로서의 면까지 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복합적인 캐릭터의 면면은 <추리의 여왕>이라는 드라마의 시청층을 아줌마들만이 아닌 남녀노소로 확장시킨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시 되돌려보면 역시 이런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낼 만한 인물로 최강희만한 배우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워낙 독특한 4차원 매력을 가진 배우가 아닌가. 추리하는 모습이 보여주는 묘미는 물론이고 그러면서 고졸 출신 아줌마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성장과정을 보여주며 동시에 완승과의 미묘한 멜로 관계까지를 담아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최강희가 해내고 있다.

'사임당', 교훈적 대사들 듣기 불편한 까닭

KBS <김과장>이 떠난 자리 수목드라마들 성적표는 고만고만해졌다. 새로 들어선 KBS <추리의 여왕>이 첫 회 11.2%(닐슨 코리아)로 좋은 시작을 알리는 듯 했으나 2회에 9.5%로 추락하면서 9.6%를 기록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계속해서 2위 자리에 머물러 있던 <사임당>이 겨우 1위 자리를 탈환했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그리 좋지 못하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된 건 <사임당>의 1위 탈환이 자체적인 성취라기보다는 타 방송사 드라마들의 부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청률이라는 지표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얘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사임당>은 방송 이래 끊임없이 완성도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왔고, 그것은 타당한 문제제기들이었다. 

이것은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이 드라마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물론 제작발표회에서는 조선시대의 워킹맘으로서 예술인 사임당의 면면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제 드라마 속 사임당(이영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모양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난 게 없다. 예술인으로서의 사임당 이야기는 20부를 넘어서면서 비로소 조금씩 보여졌을 뿐이다. 전체 30부작에서 전반 20부의 내용은 엉뚱하게도 사임당이 고려지를 재현해내는 그 과정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니 좀 더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서의 사임당의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율곡을 키워내는 ‘현모’이자, 심지어 외도로 딴 살림을 차린 남편에게조차 그 마음을 헤아리려 하는 ‘양처’로서의 보수적인 여성상의 이미지를 반복했을 뿐이다. 물론 고려지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유민들을 모아 만든 양류지소라는 공간의 이야기는 혁신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안에서 사임당은 여전히 아씨 마님의 우아한 이미지에 박제되어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사임당>이 보수적인 드라마라는 걸 가장 잘 드러내는 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사임당의 캐릭터가 가진 교조적인 모습이다. 사임당의 대사들은 “-하느니라”라는 식의 교훈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남편을 가르치고 무지한 백성들을 가르친다. 물론 그것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위한 노력이지만 그 태도 속에는 지극히 어르신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는 느낌이다. 현재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교조적인 캐릭터의 교훈조 대사는 거북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이런 태도들은 사임당이 어진화사가 된다는 파격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혁신적 인물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지금까지 방영된 드라마의 내용들을 보면 사임당은 애초부터 어떤 새로운 여성상을 제안할 수 있는 그런 혁신성을 담지 못했던 캐릭터였다. 그나마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설정을 본래 갖고 있었지만, <사임당>은 일찌감치 현대극을 버리고 대신 사극에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선택은 이 드라마가 그나마 9%에서 10% 사이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었다. 충성도 높은 보수적 시청층을 확보함으로써 <김과장>이 펄펄 날 때도, 또 새롭게 <자체발광 오피스>와 <추리의 여왕>이 들어설 때도 변함없이 그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극을 상당 부분 들어내고 사극으로 나머지 부분을 채워 넣는 편집과정에서 드라마는 너무나 평이하고 단조로워졌다. 그 평이함이 편안함으로 느껴지는 시청층도 있겠지만, 보수적 시청층이 아니라면 그 평이함은 지루함이 되지 않았을까. 어쩌다 상황 논리에 의해 시청률 1위를 기록했지만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영 좋지 않은 이유는 드라마가 애초에 추구한다고 했던 새로운 여성상으로서의 사임당이 좀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마 여주인공을 보는 관점, 무엇이 달라졌나

<대장금> 시절 이영애는 단연 당대 최고의 여배우의 위치를 구가했다. 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펼친 <대장금>으로 인해 확고한 스타덤을 구축한 이영애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연기력으로도 우뚝 섰으며 ‘산소 같은 여자’라는 문구로 기억될 정도로 광고 모델로서도 최고의 위치를 구가했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하지만 SBS <사임당, 빛의 일기>로 돌아온 이영애는 여러모로 옛 영광의 흔적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드라마가 가진 완성도 미숙과 사임당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현재적 관점에서 그만큼 매력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 등은 이를 연기하는 이영애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영애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만한 과거의 명성에 비추어 두각을 나타낼 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역시 오랜 만에 드라마 KBS <완벽한 아내>로 복귀한 고소영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완벽한 아내>는 꽤 완성도가 높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심재복을 연기하는 고소영보다 오히려 그 대립구도를 이루는 이은희 역할의 조여정이 더 눈에 띈다.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의 힘이 이은희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재복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문제가 크지만 역시 연기의 문제도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영애는 1990년부터 활동해 현재 27년째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고, 고소영 역시 1992년부터 시작했으니 25년차 연기자다. 사실 이 정도의 연배라면 주연급보다는 주연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주변인물을 연기하는 게 어울릴 법 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한 여전한 외모는 이들이 지금도 주연을 맡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주연 여배우에게 외모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대에서 우리는 이제 꽤 멀리 와 있다. 출중한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드라마 배역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연기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 되었다. 

이영애와 고소영 시절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하나 같이 현실감 없는 외모를 보여줬던 것과 달리 지금의 여주인공들은 훨씬 더 공감 갈 만한 외모의 소유자들로 바뀌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친근한 이미지가 훨씬 대중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나란히 수목드라마에 들어와 있는 MBC <자체발광 오피스>의 고아성과 KBS <추리의 여왕>의 최강희 같은 여배우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굉장한 외모로 주목을 끌기 보다는 친근한 외모가 오히려 만들어내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체발광 오피스>의 고아성을 보면 실로 이 작고 어린 여배우가 가진 잠재력에 놀라게 된다. 그녀는 이 드라마가 가진 코미디적 설정을 통한 웃음은 물론이고, 그 이면에 깔린 청춘들의 아픈 정서를 동시에 풀어내고 있다. 게다가 직장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오피스물의 엉뚱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면서도 동시에 판타지를 자극하는 멜로에도 능수능란하다. 고아성이라는 배우가 향후 얼마나 대성할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자질이 아닐 수 없다. 

<추리의 여왕>의 최강희는 이미 독특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여배우로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발랄함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적 정서까지 끌어내는 배우다. 어찌 보면 평범한 얼굴이지만 그녀가 가진 독특한 매력은 멜로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가진 개성을 연기의 영역으로 잘 살려낸 배우가 바로 최강희다. 

확실히 드라마의 여주인공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물론 여전히 이영애와 고소영에 대한 향수를 가진 시청자들이 있지만, 그보다는 고아성이나 최강희 같은 지금의 세대에 소구하는 여주인공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 이것은 또한 연기자를 훨씬 더 직능적으로 바라보게 된 지금의 시청자들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추리의 여왕’, 자극적 범죄물과는 또 다른 묘미

살벌한 범죄물만 있나? 발랄한 수사물도 있다. KBS 새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이 보여주는 세계는 저 OCN이 고집해온 공포에 가까운 범죄 스릴러와는 다르다. OCN의 세계가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는 미드식의 접근방식이라면, <추리의 여왕>은 일상 속으로 들어와 범죄를 추리하는 일드식의 접근방식에 가깝다. 

'추리의 여왕(사진출처:KBS)'

물론 그렇다고 <추리의 여왕>이 일드 수사물의 재연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추리의 여왕>은 여기에 우리 식의 정서를 깔아 놓았다. 남다른 추리의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찌감치 결혼해 남편을 검사로 만들어낸 내조의 여왕(?)이지만 자신은 그저 고졸에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평범한 주부 설옥(최강희). 그래서 경찰이 되고픈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간간히 파출소장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아쉬운 삶을 버텨내는 인물이다.

CCTV에 찍힌 영상만으로 편의점에서 사라지는 물건이 사실은 그 가겟집 아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건넨 것이란 사실을 찾아내고, 시장 한 귀퉁이에 있는 보관함이 털린 그 모양새만 보고도 그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닌 마약사건이라는 걸 찾아내는 그녀는 이미 준비된 경찰이다. 하지만 실상은 평범한 주부일 수밖에 없는 그녀는 이 동네 파출소장으로 갓 부임한 신출내기 홍준오(이원근)를 돕는 것으로 그 꿈에 대한 갈망을 풀며 살아간다. 

<추리의 여왕>은 그래서 설옥의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가는 묘미를 주면서도 그녀의 진가가 조금씩 인정받는 그 성장담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사건 해결이 주는 지적인 재미와 함께 어딘지 소외된 인물에 대한 심정적 지지가 더해지는 <추리의 여왕>은 그래서 일드의 접근방식과는 다른 우리 식의 정서가 깔린 발랄한 수사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한 축을 만드는 인물은 바로 설옥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게 될 열혈형사 완승(권상우)이다. 설옥이 평범한 주부로서 사건 수사에 머리만을 쓰는 인물이라면, 완승은 정반대다. 그는 첫 등장부터 그 캐릭터를 보여준 대로 일단 몸이 앞서고, 늘 현장에서 범인과 부딪치는 인물이다. 설옥과 정반대의 캐릭터로서 완승은 그래서 이 수사의 콤비를 완성시킨다. 

게다가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멜로의 가능성이다. 설옥은 이미 검사 남편을 둔 주부지만 그 남편은 자신을 그렇게 뒷바라지한 아내에게는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그가 첫 회에 아예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그와 설옥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인물 설명을 보면 설옥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범인 잡는 일에 더 관심을 보이지만, 검사 남편은 현실적인 성공을 더 꿈꾸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니 설옥이 추리를 하는데 있어서 더 동료의식을 가지는 인물은 남편이 아니라 완승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녀의 진가를 알아봐줄 이 역시. 조심스럽지만 어떤 설렘을 갖게 만드는 설옥과 완승의 멜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사실 <김과장>이 예상 외로 큰 성공을 거두고 난 후 그 후속작인 <추리의 여왕>이 가진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과장>이 그랬던 것처럼, <추리의 여왕> 역시 어깨에 힘을 쭉 빼는 것으로서 의외의 선전을 예고하고 있다. 모든 범죄물이나 수사물이 OCN식으로 살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추리의 여왕>은 그 장르를 좀 더 일상으로 가져와 발랄하면서도 쫄깃한 수사물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양면을 소화해낼 연기자로서 최강희만한 인물도 없을 게다. 이것이 발랄한 수사물 <추리의 여왕> 최강희에게서 느껴지는 기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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