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먼저’, 죽은 자, 죽고 싶은 자, 죽어가는 자

죽은 자와 죽고 싶은 자 그리고 죽어가는 자.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어쩌면 이 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드라마는 ‘본격 어른 멜로’를 표방했지만, 어쩌면 어른들의 사랑이란 ‘죽음’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하는 사랑일 수 있으니. 

안순진(김선아)의 딸은 죽었다. 아폴론 제과에서 만든 과자를 먹고 죽었지만 대기업은 그 죽음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안순진은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당시 광고를 만들었던 손무한(감우성)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그 와중에 이혼까지 한 안순진은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눈 오는 날 아무도 오지 않아 자신을 고스란히 닮아버린 쓸쓸한 동물원에서 그는 손을 그었다. 그를 따라온 손무한이 그를 구해주었지만.

손무한은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게 됐다.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왔지만 막상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면서 삶이 다시 보였다. 그가 무시했고 그래서 쉽게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죽음이 고스란히 자신 앞에 놓였다. 그는 비로소 사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자신이 무시했던 죽음들에 대해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로 시작했지만 그 안에 ‘죽음’이라는 주제를 담게 되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들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그토록 죽음을 지워버리려 애쓰며 살아왔던 걸까. 마치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가고 그러다 죽게 되면 마치 없던 사람처럼 쉽게 지워버리는 게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죽음이란 그걸 옆에서 겪은 당사자들에게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경험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은 그래서 억울한 딸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계속 끄집어내 법정에 세운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을 아폴론 제과의 회장 같은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일을 왜 들추려고 하느냐며 오히려 과거의 그 문제가 다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덮으려 한다. 또 다른 죽음을 만들어서라도.

우리의 상처 많은 현대사들이 그랬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가스 폭발이 일어나고 지하철 화재로 참사가 벌어져도 금세 그 죽음의 기억들은 지워졌다. 아니 죽음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죽음이 없는 것처럼 부인하며 살아가다 보면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빨리 잊고픈 마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죽음들이 과연 사라졌던가. 

<적당한 거리의 죽음>이라는 책을 쓴 건축학을 전공한 기세호라는 작가는, 우리 도시에서 이상하게도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며 ‘현재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죽음을 상기시키는 어떠한 사건, 사물과 마주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파리에서 묘지는 도시인들의 공원이지만 우리 도시에서 ‘죽음의 흔적들은 어딘가로 치워져 버렸다’고 한다. 툭하면 밀어버리고 새로운 걸 세우는 도시는 마치 사람의 흔적을, 누군가의 죽음을 지워내려는 강박에 걸린 도시처럼 보인다.

이 관점으로 보면 <키스 먼저 할까요?>는 딸의 죽음을 결코 잊지 못하고 죽고 싶은 한 여인이, 그 죽음을 무시하며 살다 이제 죽음을 맞게 된 한 남자의 사랑 혹은 사죄를 받는 드라마처럼 읽을 수 있다. 죽음을 지워버리려는 자들과 맞서 죽고 싶은 여인과 죽어가는 남자가 서로를 지지하며 싸워나가는 이야기. 죽음을 옆구리에 끼고 하는 진짜 사랑의 이야기.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싫어하고 들여다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만 삶의 달달함만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멜로로 달려가던 이야기가 죽음을 마주했을 때 자못 당혹스러워 한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 삶의 아름다운 빛을 그려낼 수 있는 건, 저 뒤에 암묵적으로 놓여진 죽음의 그림자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죽은 자가 누울 자리는 산 자들이 결정하지만, 산 자들의 삶의 방향은 죽은 자가 제시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의 죽음>을 쓴 저자가 말하듯 이제 죽음을 멀리 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16일은 세월호 참사 4주기였다.(사진:SBS)

'예쁜 누나' 손예진과 '키스' 감우성이 다시 깨운 연애시대

12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멜로는 여전히 설렌다. 2006년 SBS 드라마 <연애시대>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손예진과 감우성 이야기다. 12년 만에 멜로 드라마 주연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지금,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SBS <키스 먼저 할까요?>로 다시 한 번 설레는 멜로를 선사하는 중이다.

한 작품에서 멜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지만, 지금 두 사람이 하는 작품의 멜로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손예진이 열연하고 있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물론 나이가 좀 있는 누나와 젊은 동생 사이의 사랑을 담고 있지만, 풋풋한 청춘 멜로의 색깔을 갖고 있다. 손 한 번 잡는 일이나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이토록 떨리는 순간으로 다가올 수가 없다.

반면 감우성이 출연하고 있는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다. 제목에 이미 담겨 있듯이 스킨십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어른들의 멜로. 그래서 손을 잡고 키스를 하는 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건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말 한 마디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감우성)이라는 인물이 전하는 휴머니즘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멜로다.

두 작품에서 각각 손예진과 감우성의 상대역할을 하는 배우들도 반짝반짝 빛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을 더 젊고 풋풋하게 만들어주는 장본인은 바로 상대역인 정해인이다. 소년 같은 얼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이 배우 앞에서 손예진이 무장해제되는 모습은 그래서 너무나 쉽게 공감이 간다. 사회적 통념 따위는 이 사랑 앞에 별 소용도 없어지는 것이다.

한편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감우성의 상대역할인 김선아는 드라마가 가진 무거움을 때론 비극적으로 때론 코미디로 풀어낼 줄 아는 배우다. 그래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드라마의 무게를 때때로 웃음으로 풀어내주며 힘겨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희비극적인 것들이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두 멜로드라마의 긴장감은 그들의 멜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에서 생겨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장애물은 ‘사회적 통념’이다. 누나의 친구, 친구의 동생이라는 그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정해인이 연기하는 서준희라는 인물은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빠마저 재혼을 해 사실상 윤진아(손예진)의 집안에서는 ‘가족’처럼 여겨지는 인물. 그러니 가족처럼 여겨지던 인물을 윤진아의 집안에서 그의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안순진(김선아)의 딸의 죽음이 손무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의 상황이 이들 사랑의 커다란 장애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두 장애물은 어떤 면에서는 죽음(손무한의)이 죽음을(안순진의 딸의) 상쇄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따뜻해진 봄 날씨에 이 두 작품은 봄 바람 같은 멜로감각을 다시금 깨워놓고 있다. 좀체 본격 멜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즘에 이만한 설렘을 줄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연애시대>에서 만났던 손예진과 감우성은 이제 다시 멜로로 돌아와 더 원숙해진 멜로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사진:SBS)

'키스', 캐릭터에 설득력 부여하는 감우성 진심 담긴 연기

과연 감우성이 아니었다면 이 멜로 가능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초반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처럼 과감한 표현들과 설정들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처럼 보였다. 안순진(김선아)이 처한 힘겨운 상황들도 또 무표정의 삶을 살아가는 손무한(감우성)의 상황도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벼움이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드라마 마지막에 살짝 들어가는 ‘에필로그’는 무언가 이 멜로드라마가 생각만큼 가벼운 건 아니라는 예감을 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손무한의 시한부 삶이 등장하고, 안순진의 딸이 죽게 된 상황과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부서졌던 그 일들이 소개되면서 드라마는 꽤 무거워졌다.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는 걸 <키스 먼저 할까요?>는 드러내고 있는 것.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무한과 안순진의 멜로가 무거움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때론 웃음과 설렘까지 만들어내는 그 균형점을 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손무한이 과거 안순진이 그토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했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는 걸 알게 된 안순진이 그와 결혼까지 하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부부가 됐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안순진은 먹던 걸 토해내듯 자신이 손무한과 함께 한 시간들을 토해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그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겉으로는 재산이 200억이고 혼인신고도 했으니 그 유산을 받아 그가 죽은 후 혼자 빈둥대며 사는 게 ‘복수’라고 말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손무한의 옆에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어찌 보면 손무한이 지금껏 안순진에게 해온 ‘아낌없이 주는 숙주의 삶’에서 느껴진 사랑의 감정을 그 역시 느꼈기 때문일 게다.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러면서도 모든 걸 주고 가려는 그의 마음에서 어떤 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이야기 설정만을 두고 보면 굉장한 논쟁점을 갖고 있는 드라마다. 즉 이 드라마는 어느 제과의 과자 때문에 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내게 된 피해자와, 그 과자의 광고를 내놓고 사고가 난 후에도 피해자를 돕지 않았던 가해자가, 그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접근했던 ‘실수’로 ‘계획에 없던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다. 거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정서의 장벽이 놓여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해자가 어떻게 해야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사과와 용서를 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그러다 덜컥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2차 가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해지는 건 가해자로서 손무한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 죄책감과 부채감 그리고 어쩌다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손무한 역할을 연기하는 감우성은 놀라울 정도로 이런 논쟁을 무화시키는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진심이 가득 담긴 연기가 아니면 이 논점 많은 멜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사진:SBS)

'키스' 감우성·김선아의 사랑은 묘하게도 병을 닮았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사랑, 어딘가 병을 닮았다. 그 병은 거부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전염된다. 손무한(감우성)은 안순진(김선아)에게 이끌리면서도 그 마음을 거부하려 했다. 자신이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안순진을 사랑하게 됐다. 마치 원하지 않아도 병이 찾아오는 것처럼.

안순진은 손무한을 ‘숙주’로, 자신을 ‘기생충’으로 불렀다. 그건 물론 농담 섞인 이야기였지만, 자신의 속내 깊은 곳에 사랑보다 더 절실한 게 삶이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내일은 기대하지도 않는 ‘오늘만 사는 삶’. 그래서 그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부정하고 자신은 그저 손무한에 붙어먹는 병 같은 존재라 치부했다. 하지만 손무한이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안순진은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삶과 사랑에 대한 문학적 상징이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굳이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를 쓴 건 그저 19금의 성적인 의미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제목은 그래서 스킨십을 대놓고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스킨십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진짜 삶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도발이다. 

손무한이라는 인물의 시한부 판정도 마찬가지다. 그건 우리가 늘상 봐왔던 멜로의 시한부 설정이 갖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기 위함이 아니다. 병이 들었을 때 비로소 삶이 보이듯, 언제까지고 이어질 듯한 삶이 문득 끊어질 거라는 걸 감지하는 순간, 진짜 사랑이 보인다. 내일도 필요 없고 당장 지금 눈앞에 있는 그와 즐거운 시간을 갖는 그 순간순간들이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시한부 삶을 알게 된 손무한의 사랑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처음 그가 안순진에게 불쑥 결혼하자고 했던 건, 자신은 안순진을 사랑하지만 안순진은 사랑이 아닌 결혼이 필요한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저 숙주일 뿐이라고. 한 달이면 곧 죽을 몸, 손무한은 그렇게 해서라도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어떤 잘못을 사죄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죄로 시작한 그 마음은 어느새 사랑이 되었고 안순진 역시 단지 ‘손무한에 붙어먹는 병 같은 존재’로 치부했던 마음이 사랑으로 변했다. 그러자 이제 손무한은 빨리 혼인 신고를 하고 안순진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한부 삶은 그래서 이들의 사랑도 시한부로 만들어버리지만, 그래서 그 사랑은 더 진실해진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건 단지 육체적인 끌림이나 종족을 이어가고픈 본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길건 짧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유한한 삶을 짊어진 시한부가 우리네 존재의 숙명이라는 걸 공감하기 때문일 게다. 결국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혹자는 삶이 한 평생으로 이어진 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삶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의 손무한과 안순진의 삶과 사랑은 그래서 더 진실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숙주’의 모든 걸 내주는 사랑이란 ‘무한’일 수도 있으니.(사진:SBS)

‘키스 먼저’가 만일 멜로 그 이상을 숨기고 있었다면

도대체 손무한(감우성)이 안순진(김선아)에게 갖는 죄책감은 무엇 때문일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이 안순진의 아픔을 끌어안고 결국 결혼까지 한 것이 그저 사랑 때문 만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 초반부터 에필로그를 통해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건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었고, 이제 그 사건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어서다.

10년 전 안순진은 무슨 일인지 아이를 잃었고, 그 잃은 아이 앞에서 순진의 어머니는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죄인 같은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묘소에서 아이를 보내는 순진의 모습을 바라보는 손무한이 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건 마치 우연적인 일처럼 보였지만 어찌 보면 자신과 연루된 일로 아이가 죽게 됐다는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는 심증이 생겨난다. 

그런데 손무한의 직업은 광고 카피라이터다. 그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게 했다기보다는 그가 쓴 카피가 그걸 방조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오인시켜 결과적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8년 전 안순진이 손무한을 찾아왔던 회상 장면은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아폴론 제과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한다. 애가 잘못됐는데.”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안순진의 아이는 제과에서 나온 제품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손무한은 그 제품 광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아폴론 제과와 안순진은 법정싸움을 하며 사채 빚까지 쓰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8년 전의 손무한은 냉정한 광고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법원 오갈 시간이 어디 있냐. 그게 내 탓이냐. 차 광고 하고 사고 나면 광고 탓이냐. 아파트 광고하고 붕괴되면 우리 탓이냐. 우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거다.”라며 안순진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 번뜩 떠오르는 사건은 국내에서 벌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잘못된 제품이지만 그 피해가 일파만파 커졌던 건 안전성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상품성만을 강조했던 광고가 일조한 면을 부정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직접 이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가 작동하는 광고의 한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광고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은 안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장면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지지만.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혹시 이 드라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사안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 의제 또한 숨겨놓고 있는 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갖게 되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을 위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 과정들까지를 담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제목이 스킨십 따위는 이들의 사랑에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드러내듯, 인간애의 차원에서 보면 남녀의 사랑이나 결혼 그 이상의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혹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사진:   SBS)

‘키스 먼저’ 감우성·김선아, 종점커플에겐 위로가 사랑이다

버스, 오래된 디스크맨, 김동률의 노래 그리고 같이 앉은 연인. 이런 풍경 속에서라면 누구나 새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 <건축학개론>의 그 아련했던 첫사랑이 절로 떠오르니 말이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이 이 풍경 속에서 주는 느낌은 어딘가 처연하다. 손무한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고 노래를 듣다 잠이 들어버린 안순진과 그를 깨우지 않고 끝내 종점까지 함께 가는 손무한에게서 삶의 피로 같은 게 느껴져서다. 수면제 없이는 잠 못 드는 안순진의 그 피로를 그저 가만히 기대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그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종점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처럼, 그들도 이제 인생의 막판을 향해 가고 있다. 결혼을 했고 배신을 겪었고 이혼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속에는 크디 큰 상처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 큰 집에 손무한은 ‘은둔형 도토리(?)’가 되어 이제 나이 들고 병들어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 별이와 함께 살아간다. 그는 오래된 것들을 좀체 바꾸거나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차도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고, 끝내 저 세상으로 가버린 반려견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다. 기억도 그렇다. 안순진과 10년 전 겨울 동물원에서 겪었던 기억을 그는 지금껏 간직하고 살아간다. 

안순진 역시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아이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고 그 상처는 그 부부의 파경으로까지 이어졌다. 전 남편이었던 은경수(오지호)는 백지민(박시연)을 만나 그 지옥 같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빠져나오지만, 안순진은 그 집안 가득 옛 물건들을 가득 채워 넣은 채 버리지 못한다.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삶. 그저 오늘 하루만 살자는 그런 삶 속에서 그가 원하는 건 단 한 시간이라도 잠드는 일일 게다. 그것이 잠시라도 그 아픈 기억 바깥으로 나가는 길일 테니.

그래서 이 두 사람이 버스를 타고 종점에 다다르고, 버스기사마저 내린 버스에 앉아있는 장면은 ‘세상의 끝’에 서서 비로소 그 앞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 느낄 그런 감정들을 끄집어낸다. 손무한은 그래서 안순진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대신, “사랑할까 해요”라고 말하고, 안순진 역시 “사랑해요”가 아닌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건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세상의 끝’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그 끝의 아픔이나 아련함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 마음을 담아낸다. 

종점에서 돌아오는 길 반려견 별이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물병원을 찾아간 손무한에게 의사는 별이가 아파도 주인을 위해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무한은 그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별이에게 마지막 진통제를 놔달라 말하고, 그 순간 안순진은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그 마음을 안순진 만큼 잘 이해할 수 있는 인물도 없을 게다. 손무한의 그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얼굴 이면에 담긴 아픔을 그는 깊게 공감한다. 그래서 이제 별이를 보내주는 손무한에게 “잘 보내주라”며 그 날 밤은 “같이 자자”고 말한다. “혼자 자지 말고 같이 자자”고.

그 날 밤 초인종이 울리고 인터콤 저편에서 안순진은 토끼 문양이 새겨진 잠옷을 입고 귀엽게 토끼 귀를 들어 올려 보인다. 그 옷차림에서 손무한은 그 마음을 읽어냈을 게다. 별이가 떠난 그 자리에 토끼 같은 모습으로 애써 들어와 그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안순진의 마음을. 그래서 이 텅 빈 공간 속으로 들어와 그저 손무한을 꼭 껴안아준다는 것을. 이 종점커플에게 위로만큼 큰 사랑이 있을까.(사진:SBS)

엄마 아닌 여성, 김남주와 김선아가 그리는 진짜 중년여성상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에서 주목되는 두 캐릭터가 있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의 고혜란(김남주) 앵커와 SBS 월화드라마 <키스먼저 할까요?>의 안순진(김선아)이 그들이다. 언뜻 보면 두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상반된 면면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두 캐릭터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중년 여성들이라는 점이고, 중년이면 으레 등장하는 엄마 캐릭터가 아니라 한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여성 캐릭터라는 점이며, 현직이든 전직이든 커리어우먼이라는 사실이다.

이 두 캐릭터가 주목되는 건 이들이 공통으로 처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미스티>의 고혜란은 커리어우먼으로서 앵커 자리에 오르고 청와대 대변인 물망에까지 오른 인물이지만 사방이 지뢰투성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았지만 그런 선택들이 그에게 위험요소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다행스러운 건 그나마 영향력을 가진 변호사 남편이 그의 편이라는 것이지만, 그의 타협 없는 보도는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까지 이어진 권력의 카르텔의 조직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물론 고혜란이라는 인물 역시 완전히 선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리천장을 넘기 위해 또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싸워가면서도 진실보도를 위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어 그들끼리 공고히 하고 있는 권력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면면은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고혜란이 치열한 사회생활 속에서 당당히 싸워나가는 커리어우먼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다면,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은 베테랑 스튜어디스로서 커리어우먼의 경력을 갖고 있지만 이혼 당하고 소송으로 사채 빚까지 진 여성 캐릭터의 동정을 담고 있다. 특히 퍼스트 클래스의 갑질하는 손님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후, 일자리에서도 쫓겨난 그는 사실상 아무런 삶의 의욕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고혜란이 사랑마저도 성공을 위해 이용하는 인물이라면, 안순진은 벼랑 끝에 몰린 현실 속에서 돈 많은 남자라도 잡아 인생역전을 꿈꾸기도 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런 이용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남자에게 서서히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지만.

고혜란도 안순진도 중년의 커리어우먼으로서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랑에 목매는 여성도 아닌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점은 시청자들이 이 두 캐릭터에 공감하는 가장 큰 이유다. 물론 그 현실을 대하는 서로 다른 방식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들에게 ‘동경’과 ‘동정’으로 나뉘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들이 처한 녹록치 않은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자 중년 커리어우먼이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대목에 대한 공감대가 크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이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남주와 김선아에게 이 작품이 주는 남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들 역시 중견배우로서 작품들이 많이 요구하는 엄마상이나 여자가 아닌 진짜 중년여성상을 그려내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파국이 보이지만 중년여성이라면 동경할 수밖에 없는 커리어우먼 고혜란과, 모든 걸 잃었지만 진짜 사랑을 얻을 것으로 보이는 안순진을 연기하는 이 중견배우들의 아우라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건 어쩌면 중견배우로서 그들이 버텨내는 그 치열함을 그대로 담고 있으니 말이다.(사진:JTBC)


‘키스 먼저’, 김선아는 잊어버린 걸 감우성이 기억한다는 건

‘그는 기억하고 그녀는 잊어버린 것.’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매회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런 제목의 짧은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 이야기에는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의 이미 과거에 얽혔던 사연들이 소개된다. 둘 다 이혼을 하고난 후 흔들리는 기내에서 처음 마주하던 때와, 그 날 아무도 없는 한겨울 동물원을 찾은 순진을 무작정 따라갔던 무한과, 거기서 자살 시도를 했던 순진을 구해냈던 무한의 이야기 등이 그 에필로그에 담긴다.

그 에필로그가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 속에는 무한과 순진이 왜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들이 제시된다. 무한은 이혼 후 세상과 거의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이제 병들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고, 순진은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들을 방치한 채 오랜 법정싸움으로 지게 된 사채 빚 독촉을 받으며 자포자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에필로그에는 순진이 본래 아이가 있었고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사망하게 된 사연이 더해진다. 공원묘지에서 무한은 아버지의 묘소를 방문했다가 아이의 장례를 치르며 오열하는 순진을 보게 된다. 순진이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방치해놓고 있는 건 바로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남편인 은경수(오지호)가 집을 나가자 순진을 찾아왔을 거라 의심한 백지민(박시연)이 그 집안에 들이닥쳐 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다 문득 발견한 아이를 담은 비디오테이프 앞에 멈춰서게 된 건 그 역시 순진이 미우면서도 부채감 같은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경수는 스스로 말했듯 자신은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지민을 만나 빠져나왔지만, 아직 순진은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경수가 지민과 재혼하고도 순진을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너무 아파서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순진은 아이의 죽음이 주는 그 거대한 상처만을 기억하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자신을 바라보던 무한의 눈길은 기억하지 못한다. 눈 내리던 동물원 어느 한 켠에서 눈을 맞으며 오열하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우산을 받쳐주던 무한이 있었고, 버리고 간 캐리어를 대신 끌며 따라왔던 무한이 있었다. 그리고 무한은 어느 벤치에서 순진이 손목을 그었을 때 달려와 그를 응급실까지 데려갔다. 무한은 선명히 그것을 기억하지만 순진은 잊어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들이 무한 같은 새로운 사람과의 기억을 담을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위층 남자 아래층 여자로 만나게 되고, 점점 가깝게 되어 이제는 “자러 올래요?”라는 말에 야릇한 감정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순진은 여전히 무한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런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채 이제 직장에서도 잘리고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 처지의 순진을 지금도 무한은 뒤에서 바라본다. 순진은 그 모든 아픔 앞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를 바라봐주고 다가와주며 손을 내밀어주는 무한이 있었다.

아마도 이 구도는 <키스 먼저 할까요?>가 가진 사랑에 대한 시각이다. 이제 나이 들어 딱히 설렐 일이 있을까 싶은 마음들이지만, 이들은 육체적인 욕망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그 시선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서 아마도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 붙었을 게다. 이들에게는 스킨십이나 함께 자는 것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을 들여다봐주는 것이니. 순진은 잊어버렸지만 기억해주는 무한이 보여주는 그 마음.(사진:SBS)

‘키스먼저’ 야하기는커녕 먹먹한, 독특한 19금 드라마의 등장

“같이 잘래요?” 사실 19금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는 야한 뉘앙스를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는 이 대사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 야하기는커녕 먹먹해진다. 그건 진짜 혼자이기 때문에 솔로의 중년이 겪는 불면의 고통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감우성)이 “자러 올래요?”라고 던진 질문에 1도 기다리지 않고 “네”라고 답하는 순진(김선아)의 모습에서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가 느껴진다. 

바로 이런 점은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멜로의 지점들이다. 청춘의 멜로라면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사랑의 궁극적 결실로서 등장하지만, 이들 중년의 멜로는 키스보다 ‘하룻밤’보다 더 큰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차갑게 식어있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말 한 마디가 된다. 그래서 19금의 상황들이 대담하게도 전개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놀라운 감성들이 포착된다.

‘오늘만 살자’는 문신을 새긴 후, 안 해본 짓을 하겠다며 진창 술을 마시고 오래도록 안 해봤던 ‘같이 자는 일’을 하기 위해 코스프레 무인 모텔을 찾은 그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감성들 역시 이 드라마만이 갖는 멜로의 독특한 코드를 보여준다. 시청 앞 지하철 콘셉트로 꾸며진 방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그 공간이 주는 독특한 에로티시즘을 느끼기보다는 지하철이 주는 남다른 감흥에 젖어든다.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떠오르는 그 모텔 방의 정경 속에서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무한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그들을 같은 시간대의 같은 지하철이라는 공간에 머물고 있는 연인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버린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지나쳐갔을 것이지만, 어느 날 그렇게 한 공간에 서 있게 된 사람들에게서 새삼 느껴지는 기적 같은 느낌을 무한은 말한다. 그래서 그 곳은 지하철 콘셉트의 모텔이 주는 에로틱한 상상이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시간을 달리는 공간 위에서 드디어 마주한 운명적인 만남을 더 떠올리게 한다.

이미 두 사람은 한 차례씩 결혼을 했고 배우자들의 배신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처를 겪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도 딱지가 앉은 채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먼저 두 사람은 단지 남녀의 욕망으로 이끌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아무도 없는 고적한 한겨울의 동물원에서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그래서 무한이 자살을 시도하려던 순진을 애써 구해낸 건 어쩌면 자신을 구해내는 일과 다른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욕망의 이끌림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상처를 공유하고 그 상처가 내 것인 양 다독이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래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의 19금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개되지만, 야하기보다는 먹먹해진다. 19금 상황 속에서도 욕망이 저만치 뒤로 물러나고 대신 그 순간이 주는 따뜻한 ‘기억’을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마음이 더더욱 느껴지기 때문이다. “키스 하면 당신이 오늘도 기억을 지울 것 같아서” 무한은 순진에게 키스 하지 못한다. 

웬만한 일들에 그리 놀라지도 않고, 이제는 밖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별로 없어 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는 과정은 그래서 가슴 시린 느낌으로 다가온다. 19금이지만 먹먹한 이상한 드라마의 등장이다.(사진:SBS)

‘키스 먼저 할까요?’ 감우성과 김선아의 멜로 웃긴데 슬프다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요.” ‘오늘만 살자’며 다짐하듯 손목에 그 글씨를 문신하고 안 마시던 술을 진탕 마셔버린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은 누가 더 절망적인가를 내기하듯 자신의 불행을 하나씩 내놓는다. 안순진은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지만, 늘 미소 짓는 그 웃음이 진짜가 아닌 가식이었다고 말한다. 

“전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어요.” 안순진이 내놓은 불행담에 손무한이 내놓은 불행은 울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그것이 무슨 불행인가 싶지만 그건 그런 감정 자체가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아픔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깊은 상처를 안고 이제는 별 다른 희망 따위도 사라진 어른들은 그렇게 만나 당장 오늘만이라도 모든 걸 잊고 안하던 짓을 한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손무한과 안순진의 만남은 그래서 여타의 멜로드라마가 그리는 설렘과는 전혀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같은 불행 속에서 그 아픔을 공유하며 만났다. 6년 전 흔들리는 기체에서 승무원과 손님으로 처음 만나 서로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죽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토로했던 그들. 이혼한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손무한은 안순진에게 건네며 태워 버려달라고 했고, 안순진은 차마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안순진은 그 때 한 겨울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동물원을 찾아갔고, 손무한은 그가 준 사진 때문인지 아니면 안순진 때문인지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 눈 내리는 동물원, 한 켠에서 오열하는 안순진에게 손무한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건 그의 아픔과 상처를 똑같이 느끼는 자의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사진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줄곧 따라왔다는 손무한에게 안순진은 사진을 버렸다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은 영영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손무한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서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라고 말해주었던 것. 

그 후로 6년이 지난 후 윗층 아래층 이웃으로 다시 안순진을 만나게 된 손무한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그 기억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절망감에 죽음까지 결심했던 안순진을 애써 구해냈던 그 때의 기억을. 하지만 안순진은 그 때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이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겨버린 것. 하지만 손무한의 등장은 그에게 그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놓는다.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때로부터 안순진과 손무한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진짜로 웃어본 일이 없고 다른 한 사람은 울 정도의 감정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먼 길을 돌아온 두 사람은 그래서 ‘오늘만 살자’며 그간 안 해본 일들을 해보려 한다. ‘키스 먼저’ 하는 일도, ‘함께 자는 일’도 그들에게는 그래서 남다른 일이 된다. 그건 각자 버텨내던 삶에서 이제 ‘함께 버텨내는 삶’으로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든 함께 할까요?” 기억을 되살려낸 안순진의 이 제안은 그래서 도발적이면서도 가슴 먹먹한 느낌을 준다. 너무 아픈 기억 속에서 살아와 메말라버린 것 같던 웃음과 눈물이 그 ‘함께 하자는 말’ 한 마디에 다시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다 보면 뭐 새로울 것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 설렘도 기대감도 없는 ‘오늘’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도 서로가 겪고 있는 그 무뎌짐을 공유하고 누구나 가진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으로 새로운 사랑의 문이 열리기도 할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가 중년들에게 주는 공감은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진짜 웃음과 눈물을 점점 찾기 힘들어지는 중년들에게는 더더욱.(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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