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도박으로 풀어낸 왕좌의 게임의 재미와 한계

 

역시 도박이라는 소재는 세다. 이병헌과 송혜교가 주연으로 나왔던 <올인>은 차민수라는 실제 프로갬블러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다. 당시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허영만 원작의 <타짜>19금으로 개봉되어 560만 관객을 동원했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타짜>17.2%(닐슨 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SBS 월화사극 <대박>이 동시간대에 출격한 타 지상파 드라마들보다 한 발 앞선 12.2%로 앞서가고 있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물론 2위로 시청률 11.4%를 기록한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와 근소한 차이지만.

 


'대박(사진출처:SBS)'

<올인>이 도박에 로맨스를 넣었다면 <타짜>는 한 판 승부에 손목을 거는 자극이 있었다. <대박>은 도박으로 풀어낸 왕좌의 게임이다. 첫 회에 인현왕후를 잊지 못하는 숙종(최민수)이 숙빈 최씨가 될 복순(윤진서)를 두고 그 남편인 백만금(이문식)과 도박을 벌이는 장면은 이 독특한 팩션 사극의 많은 걸 얘기해준다. 이 사극은 역사 보다는 상상력쪽에 더 기울어져 있고 모든 역사적 상황들 이면에는 도박에 가까운 선택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숙종의 눈에 복순이 들게 된 것도, 그래서 백만금으로부터 도박으로 그 아내인 복순을 빼앗게 된 것도 이인좌(전광렬)라는 반란을 꿈꾸는 승부사의 도박이다. 아내를 잃은 백만금은 뒤늦게 그 도박에 속임수가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 숙종을 찾아와 아내를 되찾기 위한 승부를 다시 요청한다. 그 날 밤 일기를 두고 벌인 도박에서 백만금은 비가 올 것에 승부를 걸어 이기지만, 결국은 그 도박 자체가 자신의 패배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졸지에 판돈이 되어버린 복순이 숙종을 선택하게 된 것.

 

바로 이런 점들은 <대박>이라는 사극이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즉 직접적인 도박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그 이외의 많은 삶들이 결국은 도박과 비슷한 양상들을 띄면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삶의 도박은 실제 도박을 통해 이긴다고 해서 결코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백만금이 숙종에게 이기고도 아내를 되찾지 못하는 것처럼.

 

<대박>은 또한 저 <타짜>가 도박 한 판에 손목을 거는 자극적인 상황들을 연출했던 것처럼 한판 승부에 아내를 걸고,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의 목숨을 거는 자극을 보여준다. 궁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복순이 낳은 아기는 또 다른 운명을 건 도박에 인물들을 뛰어들게 만든다. 왕의 아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자, 복순은 아기를 살리기 위한 도박을 하게 된다. 전염병으로 죽은 아기와 바꿔치기 해 궁 밖으로 아이를 내보내는 것.

 

하지만 숙종은 이미 이 사실을 간파하고 후환이 될 수도 있는 아기를 죽이라고 지시하고, 이인좌는 왕과 대적할 인물이 될 그 아기를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백만금은 그 아기를 거둬 기르지만 그가 왕이 될 상이라는 얘기에 자신의 아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폭포 절벽에서 아기를 집어던진다. 1편이 아내를 둔 도박이었다면 2편은 훗날 대길(장근석)로 자라날 아기를 두고 벌어지는 도박이다.

 

모든 이야기들과 그 속의 인물들의 선택을 하나의 도박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이 사극이 가진 힘을 만들어낸다. 이미 숙종과 영조 대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많이 사극에서 다뤄졌다. 그 유명한 장희빈을 소재로 한 사극만 몇 편인가. 하지만 <대박>은 이 시대를 가져와 도박이라는 관점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이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과한 설정일 수 있다. 영조의 어머니가 되는 숙빈 최씨를 도박으로 얻는 숙종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는 하나의 허구로서 본다면 <대박>은 왕좌를 두고 벌이는 한판 도박으로서 분명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극성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도박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설정들을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드라마화된 <타짜>가 생각만큼의 반응을 얻어가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본래 도박이라는 소재와 손목을 거는 스토리 자체가 19금으로서 영화에 더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내를 도박에 걸고, 아기의 목숨을 내거는 <대박>은 어떨까. 이것은 극적인가 아니면 자극적인가.

<마담 앙트완>, 엄마 연기도 자연스러워진 한예슬

 

아마도 한예슬의 대표작을 고르라면 여전히 <환상의 커플>을 지목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드라마에서 한예슬은 안나조라는 캐릭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을 터트리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어딘지 가볍고 엉뚱할 것 같은 안나조라는 캐릭터는 한예슬에게 맞춤이었고, 바로 그 점은 한예슬에게 연기생활의 득이면서 독이 되기도 했다.

 


'마담 앙트완(사진출처:JTBC)'

그 이상의 캐릭터를 연기해내지 못한다는 건 연기자로서는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한예슬이 딱 그랬다. 무얼 해도 안나조의 잔상을 털어내지 못했고, 그 캐릭터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타짜>,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는 물론이고 <스파이 명월>, <미녀의 탄생>까지 그녀는 연기변신을 하지 못했다. 연기에서 주목받지 못하자 그녀가 보이는 건 광고 이미지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만난 <마담 앙트완>. 한예슬도 나이를 먹었다. 물론 여전히 예쁜 미모를 갖고 있지만 10년 세월이 드리운 얼굴의 흔적은 아무래도 숨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은 한예슬에게서 비로소 연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늘 나오는 드라마마다 소비되곤 하던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의 연기가 아니다.

 

한 아이의 엄마다. 그것도 이혼해서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남편에게 가겠다는 아이의 엄마. 갓난아기 때부터 집 나간 남편 대신 키워온 애지중지 딸이 그 전 남편과 함께 살겠다는 편지를 읽으며 한예슬은 조용히 숨죽여 흐느끼는 엄마의 절절한 속내를 연기한다. 울다가 온 딸과의 전화에서 한예슬은 마치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처럼 눈물을 숨기는 연기를 한다. 이제 자신의 딸을 키워줄 전 남편의 여자에게 다가가 자기 딸이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고 성격은 어떻고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린다.

 

<환상의 커플>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한예슬이 그간 보여준 연기라고는 코미디적인 웃음이 대부분이었다고 믿었던 시청자들로서는 <마담 앙트완>에서 엄마 역할로 보여주는 눈물 연기가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그 눈물 연기에 대한 깊은 공감까지 갖게 되었으니 한예슬이 달리 보일 수밖에.

 

<마담 앙트완>에서 한예슬의 연기는 확실히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세 남자들과 밀당을 벌이며 보여주는 멜로 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가 한예슬의 엉뚱 발랄한 한 가지 이미지였다면, <마담 앙트완>에서는 그 엉뚱 발랄함에 때때로 보여주는 진중함까지를 덧붙였다.

 

물론 이건 연기자 한예슬의 새로운 시작점일 것이다. 이제 겨우 삶의 폭이 넓어져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일 테니 말이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미지는 이미 한예슬이 10년 전에 확보한 것들이다. 이제 그녀는 조금은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심리 분석을 통해 그 속내까지를 살짝 들여다보는 <마담 앙뜨완>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고혜림이라는 인물은 한예슬이라는 여배우의 새로운 면면들을 충분히 이끌어내 줄 것으로 보인다

스타들은 많아도 연기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또 연기자들은 많아도 다양한 연기변신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연기자들은 많지 않죠. 또 아무리 다양한 연기변신이 가능한 전천후 연기자라 해도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한 연기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거북이 달린다'의 김윤석은 그 몇 되지 않는 연기자에 속하는 배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다채로운 연기변신을 끊임없이 해오면서도 그 속에 우리 식의 정서가 늘 배어 있으니 말입니다.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대중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해가 2006년도 일 것입니다. 그 해 그는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를 통해 먼저 그 얼굴을 알렸습니다. 주말이면 리모콘 쥐고 방바닥 뒹구는 전형적인 뺀질남이지만 속내는 아내를 사랑하는 그가 연기한 강윤호라는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꽤나 울게 만들어버렸죠.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해 그의 존재감을 알린 '타짜'의 아귀라는 변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김윤석이 가진 연기의 폭을 실감하게 됐죠. '그 뺀질남이 저 살벌한 인간?'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김윤석은 폭발적인 연기로 주인공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수더분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은 우리네 가장의 역할과 너무나 잘 어울렸죠. 그래서 '즐거운 인생'에서는 밴드의 꿈을 잊고 택배와 대리운전으로 살아가는 한 아버지의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서글서글한 인상이 또 '추격자'에 와서는 강인한 카리스마로 바뀌었죠. '추격자'의 엄중호는 꽤 건들대는 건달이면서도 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입니다.

김윤석이 그려낸 엄중호라는 캐릭터는 실로 복합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귀차니스트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실에 노회한 그저그런 삼류인생처럼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끈기와 분노의 힘을 내면에 숨기고 있는 그런 인물이었죠. 그 이미지가 깨나 서민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이윤석이라는 배우가 가진 그간의 아우라가 작용한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늘 서민의 아버지 역할을 해오곤 했으니까요.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은 그런 면에서 보면 엄중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엄중호의 어딘지 힘껏 들어가 있는 듯한 긴장감과 힘은, 조필성에 와서는 거의 풀어져 있고 심지어 연기하지 않는 듯한 편안함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충청도 사투리가 가진 적당히 느리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또 적당히 웃기면서도 나름 깊은 의미를 가지는 그 특성은, 조필성이란 캐릭터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조필성은 (충청도의 겉 이미지가 그렇듯)허술해보이지만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입장이 부각되면서 엄청난 의지력(충청도의 힘!)을 가진 인물로 연기되죠.

'거북이 달린다'를 통해서 우리는 김윤석이라는 우리 식의 영웅을 제 옷처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지극히 서민적이면서, 그 서민들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던 잠재력을 끄집어 낸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김윤석이 해나갈 연기의 세계에 많은 기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또한 이것은 이런 배우를 갖게 된 우리 영화의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끼처럼 늘씬하진 않아도, 토끼보다 더 멋진 거북이 같은 배우가 바로 김윤석입니다.

2008년도 드라마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용두사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시청률에서 성공하면 완성도에서 떨어졌고, 완성도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면 시청률이 난항을 겪었다. 또 시청률도 괜찮고 완성도도 괜찮다 싶은 드라마는 초반의 모양새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중반 이후부터 어그러지기 일쑤였다. 물론 최근 들어 시청률과 완성도가 반비례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이처럼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것은 올해 드라마들의 한 특징이 될 것이다.

먼저 완성도에서 성공적이었지만 시청률이 그만큼 따라주지 못한 드라마로 최근 종영한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화원’을 들 수 있다. 그나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김명민 파워를 통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거두었지만 ‘바람의 화원’은 그 훌륭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시청률을 얻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이 두 드라마는 애초부터 마니아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클래식이나 고미술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 비대중적인 소재를 대중적인 틀 안으로 끌어온 그 시도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재에 있어서 대중적일 것이라 생각되었던 ‘그들이 사는 세상’ 역시 이 범주를 향해 가고 있다. 방송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완성도를 높였지만 그만큼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들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것은 역시 드라마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것이 관건이 된다는 점이다.

다음은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시청률은 높았던 드라마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조강지처클럽’이나 현재 방영중인 ‘에덴의 동쪽’을 들 수 있다. 완성도로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설정에 과장된 캐릭터들, 흐름의 비일관성, 앙상한 주제 등등, ‘조강지처클럽’은 전형적인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계보를 이으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에덴의 동쪽’은 상대적으로 세련된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강지처클럽’의 다른 줄기라고 보여진다. 역시 과장된 캐릭터들과 인물설정 등이 시대극을 표방하면서(전혀 그러나 시대극은 아니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드라마들의 특징은 주로 과거 드라마들이 했던 문법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신파를 그 바닥에 깔고 간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 어려운 현실과 맞아떨어지면서 향수마케팅과 함께 TV의 실 시청자로 자리하고 있는 비교적 나이든 시청층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점이다. 이들 드라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드라마의시청률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감지수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드라마 시청률은 단지 상업적인 의미로서 존재하며, 따라서 업계가 불황이 되면 될수록 완성도로의 접근은 더 요원하다는 점이다.

마지막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드라마들이다. ‘스포트라이트’, ‘이산’, ‘왕과 나’, ‘타짜’같은 드라마들을 비롯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종합병원2’나 ‘바람의 나라’같은 드라마들도 이 경향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방영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다가 방영과 함께 고꾸라진 경우도 있고, 또 방영 초기에는 화제를 일으켰지만 차츰 그 불씨가 가라앉은 경우도 있다. 올해 특히 이런 드라마들이 많이 양산된 것은 드라마가 거꾸로 마케팅이나 기획쪽에 더 많이 힘이 실렸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소재로 치면 누가 봐도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끄집어오고, 또 출연진들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타들을 배치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요소들을 작품으로 끌어안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포장은 요란했지만 그 내용물은 볼품이 없었다는 말이다. 올해 유난히 이런 작품들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우리네 드라마 제작에 거품의 요소들이 실체로 드러났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렇게 보면 최근 박신양 사건을 계기로 드라마 제작에 대한 거품을 걷어내자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완성도는 높지만 시청률이 떨어지는 마니아 드라마 경향과, 시청률은 높지만 완성도는 떨어지는 퇴행적인 드라마 경향, 그리고 초기에는 창대했지만 결과물은 앙상해지는 용두사미 드라마 경향. 이것은 올해 우리네 드라마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이자, 내년 드라마들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 원고는 스포츠칸에 게재되었던 칼럼입니다.)

무협지가 된 '타짜'의 실패가 말해주는 것

'타짜'가 드라마화 된다고 했을 때, 흔히들 '흥행 보증수표'란 말을 인용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자 이 기대감은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보증수표가 부도수표가 된 것. 허영만의 만화로 이미 세간의 이목을 받았고,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흥행에 성공한 '타짜'는 왜 드라마에 와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걸까.

성공한 원작의 리메이크 작품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컨텐츠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타짜'라는 컨텐츠의 핵심적인 차별점은 이것이 기존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왔던 도박 컨텐츠와는 결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도박 컨텐츠가 주로 도박이라는 게임이 주는 긴박감을 중심에 놓고 그 욕망을 보는 이에게 전이시킨다면, '타짜'는 도박 그 아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속고 속이는 인간군상에 더 집중한다. '타짜'라는 용어는 단지 도박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를 도박기술로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더 크다.

'타짜', 무협지의 구조를 선택하다
그러나 드라마 '타짜'가 재해석한 것은 '도박(기술)을 통한 복수극'이다. 드라마 '타짜'를 컨텐츠의 내용과 상관없이 구조로만 분석해보면 거의 무협지의 구조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한 선악구도가 있고, 그 선악의 꼭대기는 대스승(평경장)이, 그리고 그 아래 동문수학하던 두 인물(작두와 아귀)이 있다. 엄청난 기술을 전수받았지만 둘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싸우게 되고 그 사이에 작두의 친구인 고니(장혁)의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다.

아버지의 원수이자 작두의 라이벌인 아귀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니는 대스승을 찾아가 기술을 전수받는다. 대스승의 딸은 고니를 좋아하게 되고,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여인 난숙(한예슬)은 아귀 밑에 잡혀 있다가 고니를 다시 만나 사랑을 이어간다. 그리고 고니와 친구 영민(김민준) 역시 작두와 아귀처럼 친구에서 선과 악으로 갈라져 싸우게 된다. 여기서 '타짜'의 기술을 무공으로 바꾸면 이 구조는 무협지의 그것과 똑같아지게 된다.

원작 '타짜'의 메타적 관점에서 내려다 본 도박의 세계가 이 무협지의 구조로 들어가게 되면 스토리는 단순화되고 이야기의 울림은 사라진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속고 속이는 타짜들의 세계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그 자체로 우리네 삶의 축소판으로 읽혀진다. 도박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매력을 따라가다 보면 뒤통수를 치는 삶의 단면을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 이것이 원작 '타짜'가 가진 힘이다.

아무리 좋은 패도 선택을 잘못하면 이길 수 없다
영화 '타짜'는 바로 이 적도 아군도 없는 무자비한 세계를 잘 구현해냈다. 아귀는 보는 이들의 소름을 절로 돋게 만들었고, 정마담은 어디로 붙을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속내를 갖고 있었다. 고니 역시 선악 개념이나 복수의 개념을 넘어서 이 도박이라는 게임 위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가에 충실한 욕망의 대변자였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는 이 무자비한 세계를 선과 악으로 딱 갈라서 정리를 해버린다. 선악구도는 복수극을 지향하게 만든다. 누가 누구를 복수할 것인가. 누가 잘한 것이고 누가 잘못한 것인가. 타짜 아니 '타짜들이 우글대는 우리네 현실 세계' 위에서 그 구분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드라마 '타짜'의 제작진들은 이 매력적인 패를 들고도 왜 이런 패착을 한 것일까. 영화와는 다른 해석을 하려 한 것일까. 혹 TV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라는 장르적 한계가 굳이 권선징악이라는 단순구조를 요구했던 것일까. 좋은 재료와 훌륭한 연기자들을 가져다놓고도 만족스런 결과를 내지 못한 데는, 무엇보다도 기획과 대본에서 치밀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그 명쾌한 선악구도에 빠져들던 무협지의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더 미궁에 빠져드는 복합적인 구도들에 매료되는 리얼리티의 시대다. 무협지 구조를 차용한 '타짜'의 실패가 시사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원작이라도 흥행의 보증수표는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재해석)은 실패를 부른다. 이것은 우리네 경쟁관계의 축소판으로 해석되는 진짜 '타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짝귀, 드라마 ‘타짜’가 가진 선악구도를 깰 수 있을까

‘타짜’에 새롭게 투여된 짝귀(조상구)는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짝귀가 적어도 지금까지 들고있던 ‘타짜’의 패 중 가장 좋은 패라는 것은 분명하다. 먼저 드라마 ‘타짜’가 지금까지 들었던 나쁜 패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진원지는 분명한 선악구도다. 본래 ‘타짜’ 원작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선악구도를 뛰어넘는 인간욕망의 집합체로 도박을 그렸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 ‘도박’이 아니고 ‘타짜(도박판에서 기술로 남을 속이는 자)’인 것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그 상황을 영화는 잘 그려냈다. 주인공인 고니 못지 않게 아귀와 정 마담 같은 욕망의 화신들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는 선악 자체가 불분명한 타짜의 세계에 그 선악구도를 끼워 넣는다. 그것이 드라마라는 한계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은 패착이다. 평경장(임현식)과 고광열(손현주), 그리고 작두 대호(이기영)는 착한(?) 타짜이고, 아귀(김갑수)와 정마담(강성연) 그리고 영민(김민준)은 나쁜(?) 타짜다. 나쁜 타짜들이 돈에 대한 욕망으로 도박에 손을 댔다면, 평경장과 대호는 은퇴한 자이며, 고광열은 생계형 타짜이고, 고니는 복수의 방법으로서 도박에 손을 대게 되는 타짜로 그려진다.

‘타짜’가 도박의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선악 구도를 세워두면 그 결과가 뻔해진다. 결국은 선이 이기고 악은 지게 된다는 스토리가 그 구도 속에서 미리 읽혀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너무 쉽게 패가 읽히게 되는 이 구도는 긴장감을 앗아가 버리는 동시에 리얼리티마저 손상시킨다. 도박이라는 강력한 욕망 앞에는 적도 없고 아군도 없는 그런 상황이 진짜 리얼한 상황이다.

영화 ‘타짜’에서는 정 마담이 그 중간 역할을 잘 해줬다. 즉 아귀와 고니의 대결이 박빙일 때, 그 결정적인 승부의 패를 정 마담이라는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인물에게 던짐으로써 그 결과를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에서 정 마담(강성연)은 그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하지 못하고 있다. 영민을 사랑하는 그런 모습은, 사랑마저도 도박 설계의 한 무기로 사용하던 정 마담의 캐릭터를 약화시킨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짝귀는 저 스스로 고니에게 밝히듯 “적이 같은 아귀일 뿐, 절대로 자신을 믿지 말라”고 할 정도로 어떤 중간지대를 밟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양자 구도는 새롭게 삼자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을 만들게 된다. 마치 삼국지의 조조와 맞서기 위해 유비와 손권이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그런 형국이 되는 셈이다.

짝귀가 진짜 좋은 패라는 것은 그 캐릭터가 ‘타짜’의 재미 그 이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도박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자칫 선악구도는 그 도박의 위험성 자체를 상쇄시킬 수 있다. ‘타짜’가 도박을 내세워 그 위의 욕망에 굴절된 인간군상이 가진 다양함을 그려내고 또 그를 통해 어떤 관조적인 입장까지를 담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욕망 앞에 승자도 패자도 없는 그 리얼한 상황을 그려내야 한다. 선악구도가 만들어내는 영웅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물론 짝귀라는 좋은 패를 가졌다고 해서 ‘타짜’가 그 판을 따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고니의 귀환을 위한 한 때의 캐릭터로 다뤄지다가 은근슬쩍 사라져버리거나 해버린다면 짝귀는 아무 것도 아닌 패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타짜’는 분명 짝귀라는 좋은 패를 잡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레이스(게임진행)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버려지는 패만도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식객’과 ‘타짜’, 드라마와 영화 그 엇갈린 반응 왜?

왜 같은 허영만 화백의 만화이면서 드라마 ‘식객’은 되고 ‘타짜’는 잘 안 되는 걸까. 또 아이러니 하게도 이 상황은 왜 영화에서는 거꾸로, 즉 ‘타짜’는 되고 ‘식객’은 안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두 작품은 그 소재에 있어서 각각 적합한 매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식객’은 드라마가 더 적합했고, ‘타짜’는 영화가 더 적합했다.

‘식객’과 ‘타짜’, 그 다른 이야기 구조
‘식객’이 드라마에 더 적합했던 첫 번째 이유는 그 원작의 특징이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병렬적으로 이어놓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시리즈로 방영되는 드라마가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담기에 더 유리했고, 상대적으로 영화는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소화해내기가 부담이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모두 운암정을 사이에 둔 봉주와 성찬의 대결구도가 그 메인이 되고 그 뼈대 위에 소소한 이야기들이 살처럼 박혀있는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이러한 반응의 차이는 서로 다른 매체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타짜’는 그 이야기 구조가 ‘식객’과는 다르다. 물론 허영만 화백 특유의 취재에 근거한 리얼한 에피소드들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즉 편편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연결고리를 유기적으로 갖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평경장 같은 한 인물의 이야기는 ‘식객’처럼 그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인물들과 계속 이어지게 되어 있다. 이러한 ‘짜여진’ 구조는 드라마처럼 늘여서 보는 것보다 영화처럼 압축적으로 보는 것이 더 흥미진진하기 마련이다.

영화여서 담을 수 있는 것, 드라마여서 못 담는 것
‘식객’은 그 소재 자체가 음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TV 방영에 있어서 부담이 없다. 하지만 ‘타짜’는 다르다. 도박이라는 소재는 여러모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손가락이나 손목을 걸고 하는 도박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영화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다. ‘타짜’가 영화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 홍콩도박 영화들이 가진 선악구도의 개념 자체를 뛰어넘는 도박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타짜’에도 주인공이 있고 그와 대립하는 아귀라는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해서 선한 존재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저 도박이라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이 있을 뿐이다. 영화 ‘타짜’는 바로 이런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아귀나 정마담은 악한 인물이면서도 이 타짜의 세계를 통해 보면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 ‘타짜’에는 분명한 선악 구도가 나뉘어져 있다. 고니(장혁)는 ‘착한 타짜’고 아귀(김갑수)는 ‘악한 타짜’가 된다. 고니가 도박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것이지 도박 자체에 매료된 탓은 아니다. 이것은 드라마로서 도박이라는 사행심리를 자칫 부추기는 결과를 피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타짜’가 영화의 그것처럼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분명한 선악구도를 그 안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타짜라는 소재는 매력적이다. 즉 도박의 세계 자체가 인간의 욕망을 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네 TV에 적합한 소재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시청연령을 제한하는 고지가 나오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방영되는 TV드라마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아직까지 도박과 폭력을 용인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식객’과 ‘타짜’, 모두 좋은 소재의 작품이지만 저마다 적합한 매체는 달랐던 셈이다.

방송3사 복수극, 엇갈린 운명의 늪에 빠지다

지금 드라마들은 엇갈린 운명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MBC 월화드라마 ‘에덴의 동쪽’은 운명의 장난 종합 선물세트(?) 같은 드라마.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의 코드가 들어가 있는 이 드라마는 어린 시절 서로 원수지간인 집안의 아들들, 즉 이동욱(연정훈)과 신명훈(박해진)의 운명을 바꾸어버린다. 이렇게 되자 본래 핏줄로 따진다면 자식과 부모가 맞서고, 같은 형제가 맞서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여기에 이 둘 사이에 끼워 넣은 지현(한지혜)마저 사랑하던 이동욱과 헤어져 신명훈과 결혼하게 되고 이 운명의 늪에 동참하게 된다.

꼬여도 너무 꼬였다
이 드라마가 가진 관계의 복잡함은 우리네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되던 삼각 사각관계와 출생의 비밀 같은 자극적인 설정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러한 설정은 비판받는 것이지만 이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과 특유의 극성은 바로 이 요소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엇갈린 운명 속에 빠져 누구 하나 행복을 누리는 자가 없다. 이동철(송승헌)은 카지노 대부 국회장(유동근)의 딸인 영란(이연희)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국회장의 충복으로서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동생 이동욱은 더 관계가 복잡하다. 동욱은 지현을 사랑하지만 이미 지현은 원수의 자식인 신명훈과 결혼했고, 그래도 일편단심 지현만을 생각하는 동욱을 혜린(이다해)은 사랑한다. 그런데 그 혜린은 또 자신의 언니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것조차 파기해버린 백성현(박성웅)의 구애를 받는 입장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여기에 이동욱이 사실은 신명훈과 운명이 바뀐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일련의 운명의 장난들은 단순한 삼각 사각관계 그 이상의 복잡함을 띄게 된다.

SBS 월화 드라마 ‘타짜’에서는 고교시절 둘도 없던 친구였던 고니(장혁)와 영민(김민준)이 각각 타짜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서로 대결하는 위치에 서게된다. 영민이 아귀(김갑수)의 수하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고니의 여자친구인 난숙(한예슬)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교도소에 들어간 오빠의 형기를 줄이기 위해 아귀 밑, 정확히 얘기하면 정마담(강성연)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는 고니와 둘도 없는 연인관계이지만, 또 하나의 이름 지나로 불릴 때는 고니와 대결해야 하는 운명이다.

복수극의 엇갈린 운명, 그다지 신선한 것이 아니다
KBS 수목 드라마 ‘바람의 나라’에서는 아버지인 유리왕(정진영)과 아들인 무휼(송일국)이 엇갈린 운명에 서 있다. 고구려를 망하게 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어린 무휼을 아버지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버리게 되고, 그 버려진 아들은 먼 길을 돌아 아버지에게 칼끝을 겨누게 된다. 이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바람의 나라’에서 서로 맞서게 되는 부자는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들며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세 드라마가 모두 복수극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왜 이러한 운명의 장난이 모두 활용되고 있는가를 설명해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맞서고, 형제가 맞서고, 친구가 맞서고, 연인이 맞서는 이런 구조는 사실상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꼬아놓은 것이지만, 또한 그 복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에덴의 동쪽’의 복수는 그것이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날아온다는 걸 말해주고, ‘타짜’는 평경장이 말하듯 도박판에서 복수란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며, ‘바람의 나라’에서의 복수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적 한계를 드러내주기 위해 사용된다.

복수극이 가진 이러한 엇갈린 운명 코드는 그러나 지나치게 드라마를 꼬아 시청자의 시선을 묶어두겠다는 의도가 짙다. 어떤 경우에는 이 꼬여진 운명 때문에 드라마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빙빙 도는 경우까지 생기게 된다. 물론 주제의식을 위해 활용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코드가 그다지 신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타짜’, ‘에덴의 동쪽’이 도박을 소재로 하는 이유

‘에덴의 동쪽’은 태백의 탄광촌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동철(송승헌)은 어린 시절, 그 탄광 속에서 죽은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을 돌아서 이동철은 동생 이동욱(연정훈)과 함께 그 자리에 서서 이 불모의 땅을 희망의 땅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사막 위에 라스베가스를 세운 것처럼.

‘에덴의 동쪽’의 배경이 태백인 것과 카지노 대부로 국회장(유동근)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이동철이 카지노 딜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에덴의 동쪽’을 장악하고 있는 정서가 어린 시절 신태환(조민기)에 의해 갈갈이 찢겨진 가족 간의 절절한 그리움, 형제애 같은 것이기에, 이 카지노라는 소재는 그렇게 전면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힘은 분명 이 카지노라는 도박의 세계에 있다.

“당신은 라이어스 포커(Liar's Poker)일 뿐이야.” 국회장의 딸 영란(이연희)이 이동철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딜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라이어스 포커란 말 그대로 내 패를 숨기고 상대방의 패를 읽어 거짓말로 승리를 얻어내는 포커의 생리를 빗대 실제 사업의 세계를 설명한 말이다. 즉 ‘에덴의 동쪽’에서 이동철은 카지노판에서 뿐만 아니라 사업을 두고 벌어지는 신태환과의 대결구도 자체에서도 딜러인 셈이다. 바로 이 욕망을 꿈틀대게 하는 도박의 세계는 이동철의 복수극과 만나면서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에덴의 동쪽’이 카지노라는 배경을 깔고는 있지만 우회적으로 도박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면 SBS의 ‘타짜’는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 보다 적나라한 도박의 세계를 그려낸다.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어느 날 발을 디딘 하우스에서, 새 가게를 얻기 위해 모아놓은 어머니의 돈까지 날려버린 고니(장혁)는 그 돈을 되찾기 위해 도박판을 전전한다. 생활형 타짜인 고광열(손현주)을 만나고 평경장(임현식) 밑에서 수련(?)한 고니는 결국 아귀와 맞설 운명에 처해있다.

‘타짜’를 끌어가는 힘은 사실상 ‘에덴의 동쪽’의 그것과 유사하다. 고니가 결국 하려는 것도 어머니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는 것이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일찍부터 밑바닥 인생으로 내팽개쳐지고 그 바닥에서부터 복수심과 돈에 대한 욕망을 붙들고 한 계단씩 위로 올라간다.

이처럼 월화 드라마가 도박을 다루는 것은 그것이 우리네 실제 삶의 욕망들을 가장 단적으로 끄집어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돈의 세계가 지배한 세상, 바로 그 돈을 장악할 수 있는 고도의 심리게임들은 현대인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하지만 통상적인 것이지만 대부분의 도박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의 끝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도박은 욕망의 질주를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의 좋은 소재이면서, 또한 욕망의 헛됨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월화 드라마들은 지금 바로 그 욕망에 푹 빠져있다.

‘타짜’, 아귀의 손아귀가 말해주는 것

선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지만 ‘타짜’에서 손모가지를 걸고 행해지는 도박은 이 드라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도박이라면 돈만 잃고 나오면 될 일을 어째서 손모가지까지 걸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타짜’가 말하는 이른바 ‘구라(도박판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의 세계가 끼여든다. 즉 ‘구라를 친 것이 발각이 되면’ 그 자리에서 손모가지를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손모가지 자른다고 욕망이 끝날까
도박에 판돈 이외에 신체를 건다는 이 설정은 확실히 자극적이다. 이미 상영되어 대성공을 거둔 영화 ‘타짜’에서 아귀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김윤석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이유에는 그 섬뜩한 캐릭터가 한 몫을 차지했다. 아귀는 상대방의 돈만을 목적으로 도박을 하지는 않는다. 어떨 때는 그가 다른 타짜의 손모가지를 더 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드라마화 된 ‘타짜’에서 아귀(김갑수)는 이 면모를 먼저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인 타짜 대호(이기영)를 끌어들여 손모가지를 걸고 순전히 복수를 위한 한 판을 벌인다. 그리고 그 대호의 손모가지를 자르기 위해 준비된 섬뜩한 도박은 부메랑처럼 아귀에게 되돌아와 그의 손모가지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왜 손모가지를 자르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어볼 만하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도박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는 징벌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연 손모가지를 자른다고 도박을 포기하게 될까. 아귀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손모가지와 도박의 포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는 여전히 하우스(도박장)를 들락거리며 호구(돈을 잃어줄 대상)들의 돈을 갈취한다.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아귀는 직접 패를 들고 싸우는 도박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지만, 이 하우스 전체는 그의 손아귀에 들어있다. 보이지 않는 그의 손모가지가 하우스 전체를 놓고 도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모가지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이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의 손모가지(여기서는 얼굴도 포함된다)를 대신하는 손은 다름 아닌 영민(김민준)의 손이다.

따라서 ‘타짜’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실제 삼팔광땡과 장땡을 들고 팽팽하게 맞서는 현장 도박의 세계가 있고, 그 도박의 세계 위에서 이뤄지는 작전 도박의 세계가 있다. 현장 도박의 세계가 눈에 보이는 손의 세계라면, 작전 도박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손모가지의 세계다. 즉 손이 없어도 도박이 이뤄지는 세계라는 말이다.

‘타짜’가 이 두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도박의 재미만을 추구하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순수한 의미(?)의 도박은 손의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박은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는 빠른 두뇌와 휘둘리지 않고 배팅을 걸 수 있는 배짱의 경기다. 그러나 ‘타짜’의 세계에는 두뇌와 배짱과 함께 손 기술이 들어간다. 물론 그 손 기술은 욕망의 상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손이 없어도 이뤄지는 이 도박의 세계 속에서는 손 기술로 손모가지가 날아가도 여전히 손 기술은 사용된다.

타짜의 세계, 현실의 축소판
‘타짜’가 채용하고 있는 것은 도박이라는 소재, 즉 손의 세계지만, 그것이 말하려는 것은 도박 그 위에 존재하는 손이 없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욕망이라는 괴물이다. 조금 비약해서 말한다면 이들이 드나드는 이 하우스는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돈 한 푼 없어도 일단 사고 싶은 욕망은 늘 존재하며, 사회는 그 욕망을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즉 눈에 보이는 돈(현금)이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돈(신용)이 움직이는 욕망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이 세계 속에는 늘 아귀 같은 존재가 판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당신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당신이 이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호구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쪽쪽 빨려 빈털터리가 될 때에서야 비로소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또 정반대로 당신은 이 시스템 속에 들어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짜가 되는 교육을 받고는 타인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짜’에서의 하우스는 그 안으로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기회라도 있지만, 현실이라는 하우스에서 선택의 기회 따위는 없다. 누구나 다 이 욕망의 수레바퀴 속에 던져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인정해야할 것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 욕망의 하우스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타짜’가 도박을 통해 보여주려는 세계는 바로 여기까지다. 그것은 도박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대신 바로 그 도박의 세계, 그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는 손과 보이지 않는 손, 욕망이 바로 당신이 지금 살아가는 세계의 축소판이라는 것. 그것을 관조하게 하는 드라마가 바로 ‘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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