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빵생활’, 공간은 감방이어도 이야기는 종합선물세트

우리는 감방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에 갖는 편견들이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어딘지 답답할 것 같고 이야기도 수감자들 사이의 대결구도 같은 감방 소재의 장르 안에 머물 것 같다는 것들이다. 하지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면 이것이 한낱 편견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해준다. 감방이야기가 이토록 다양한 감정들을 건드리고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어서다. 

주인공 제혁(박해수)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건 어떤 쓸쓸함과 아픔, 슬픔 같은 것들이다. 겉보기에는 슈퍼스타 프로야구 선수로 추앙받던 그가 굉장히 행복할 거라고만 여겨왔지만, 그는 자신의 생일날 교도소에서 차려준 특별한 야구 이벤트(?)에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토로한다. 교통사고에 재활치료만 한 줄 알았던 그가 사실은 위암 투병까지 해왔다는 것. 포기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버텨온 자신을 사람들은 ‘노력의 아이콘’으로 추앙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나 힘들어 야구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의 울분은 시청자들에게 먹먹함을 주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제혁 같은 ‘세상 제일 재수 없는 놈’이라 스스로를 말하는 인물이 보여주는 슬픈 정서만을 담지는 않는다. 같은 감방에서 지내는 문래동 카이스트(박호산) 같은 인물은 진지한 얼굴에서 나오는 혀 짧은 소리로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준다. 그는 그저 진지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이 캐릭터의 코믹한 설정 하나로 그건 웃음으로 전화된다. 마약을 복용하다 들어온 한양(이규형)은 그 해롱거리는 정신상태가 마치 아기 같은 느낌을 주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진다. 제혁의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이런 캐릭터들이 공존하면서 생겨나는 긴장과 이완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 다양한 감정들을 균형 맞춘다.

장기수(최무성)와 장발장(강승윤)의 이야기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인물들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증거다. 처음에는 어딘지 살벌한 느낌을 주었지만 차츰 장발장이 부르듯 ‘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인물로 다가오는 장기수. 조폭 시절부터 엮인 장발장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부채감 같은 걸 갖고 있는 장기수는 출소를 앞둔 장발장이 자신이 살기 위해 그를 무고한 사실에도 그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준다. 장기수는 그래서 이 감방이야기가 가진 어떤 훈훈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장발장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인물이다. 출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작업을 나가서도 도둑질을 하는 인물. 그리고 감방 검사에서 시계를 찼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자 그게 자기 것이 아니라 장기수의 것이라 거짓말을 하는 인물이다. 장기수와의 관계에서 마치 부자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지만 결국은 자기 버릇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발장에게서 느껴지는 건 어떤 반전의 감정이다. 물론 그가 그렇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의 어깨를 두드려준 장기수는 생각보다 더 큰 인물이다. 그가 했던 행동이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편하자고 한 일”이라는 것.

그러면서 감방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부정과 그로 인해 사필귀정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또한 이 드라마는 빼놓지 않는다. 동료들의 등을 처먹는 작업반장이 가구 만드는 대회에서 1등한 우승자의 상금을 가로채려 한 것이 결국 발각되는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통쾌함 같은 걸 선사한다. 

추락하는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제혁이라는 인물과 그 속에서도 웃음을 주는 카이스트나 한양 같은 동료의 이야기, 인간적인 먹먹함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섬뜩함을 동시에 안겨주는 장기수와 장발장 이야기 그리고 감방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위기와 반전의 이야기까지.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을 한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감방이라는 공간이어서 어딘가 한정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감방이어서 더 다채로울 수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는 역발상. 이것이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웬만한 시청자들을 모두 빨아들일 수 있는 저력이 아닐까.(사진:tvN)

‘해피 데스데이’, ‘사랑의 블랙홀’의 공포 버전이랄까

세상에 이렇게 발랄한 공포영화가 가능하다니. <해피데스데이>는 여러 모로 관객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려주는 영화다. 공포영화라고 해서 봤는데 한없이 발랄해지고 심지어 달달해진다. 게다가 죽는 장면에서 공포가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웃음이 터진다. 통쾌함도 있고 가슴 뭉클한 감동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주는 장르가 퓨전된 영화지만, 그 흐름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아마도 대부분 그 즐거운 당혹감에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게다. 도대체 이 영화 정체가 뭐야?

<해피 데스데이>는 아마도 1993년 작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을 본 관객분들이라면 반색할만한 공포영화다. <사랑의 블랙홀>은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를 지내게 된 남자가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사랑을 이뤄가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해피 데스데이>는 자신의 생일날 의문의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트리(제시카 로스)가 계속 같은 날 깨어나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데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 

‘해피버스데이’를 뒤집어놓은 제목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해피 데스데이>는 공포영화가 갖는 많은 상투적인 방식들을 뒤집는다. 공포영화가 공포스러운 건 죽음 때문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지만, <해피 데스데이>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살아나 다시 그 끔찍한 죽음을 겪는다는 것에 공포가 있다. 즉 죽음은 그 자체로 공포의 끝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 그러하듯이 그 끝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 무한반복되는 상황의 공포를 그린다. 

<스크림>이 그 기괴한 마스크 하나로 공포를 유발하듯이 <해피 데스데이>에도 마스크를 쓴 괴한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만든다. 하지만 마스크는 단지 공포 유발의 장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마스크를 쓴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트리는 계속 죽었다 살아나는 걸 반복하면서 그 범인을 찾으려 노력한다. 

흥미로운 건 이 반복되는 하루를 통해 트리가 조금씩 성장해간다는 점이다. 그는 그 특별한 생일날 계속해서 벌어지는 똑같은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 삶을 바꿔보려 노력하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있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 치유의 방법을 모색하기도 한다. 공포영화 속에서 이런 성찰적 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다.

공포영화가 영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멜로 취향의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는 꽤 특이한 멜로 경험을 하게 해준다. 공포 속에서 조금씩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의외로 발랄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트리를 돕는 순수 청년 카터(이스라엘 브루사드)와 트리는 조금씩 마음을 나눈다. 공포영화에서 이렇게 풋풋한 멜로가 가능하다는 것도 흥미롭다.

영화는 말미에 가서 <사랑의 블랙홀>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을 카터의 대사를 통해 알려준다. 트리의 상황이 <사랑의 블랙홀>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하지만 이를 공포 형식으로 패러디한 <해피 데스데이>의 재기발랄함은 <사랑의 블랙홀>의 장치를 가져왔다고 해도 그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선입견들을 보란 듯이 뒤집는 데서 오는 어떤 통쾌함마저 느껴지는.(사진출처:영화 <해피 데스데이>)

‘부암동 복수자들’, 세상은 넓고 복수할 일들은 넘쳐난다

이 통쾌함과 훈훈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tvN 수목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복수’라는 장르적 틀을 충실하게 따르는 드라마다.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 있고 그들에게 당한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 피해자들이 모여 ‘복수자 클럽’을 만든다. 그리고 응징한다. 전형적인 복수 장르의 틀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사진출처:tvN)'

그런데 <부암동 복수자들>이 주는 ‘복수’의 양태는 그 정서적 느낌이 다르다. 그것은 이 복수자가 된 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이 환기시키는 현실 때문이다. 재벌가의 딸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아들을 들인 남편 때문에 분노하는 정혜(이요원), 서민으로서 자식을 위해 갑질 앞에서도 눈물을 참고 무릎을 기꺼이 꿇는 도희(라미란)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점잖은 교수이지만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 고통 받는 미숙(명세빈)은 각각 외도와 갑질과 폭력이라는 사회적 사안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특히 공분할 수 있는 사안들이지만 크게 보면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이 주는 분노라는 점에서 보면 딱히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이들이 저마다 가진 사안들이 환기시키는 현실들은 이 복수가 사적인 차원의 것 이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복수 자체가 현실에 대한 강력한 풍자이며 비판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복수자 클럽에 이수겸(준)이라는 유일한 남성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물론 이수겸은 아직 고등학생이라는 미성년으로서 그 자체가 사회적 약자다. 그런 점에서 이 여성들과의 연대가 그리 이질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 미성년의 인물이 복수하려는 대상이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을 낳아준 부모들. 이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낳아주기만 하면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자신을 온전히 키워준 할머니가 그에게는 유일한 부모다. 그래서 자신을 낳고는 사실상 버린 부모들은 복수 대상이 된다. 그 부모들이 이수겸을 현재 원하는 이유는 그가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인 이병수(최병모)는 대를 이어 재벌가에서의 입지를 가지려는 것이 목적이고, 생모인 수지(신동미)는 아들을 통해 한 몫 잡으려는 속셈이다. 심지어 수지는 할머니가 있는 산소 땅과 집마저 팔아버리려 한다. 자본의 힘은 자식마저 이용하는 비정함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수겸의 복수가 말해주는 건 자본화된 비뚤어진 세상에서 잘못된 어른들에 대한 응징이다. 

<부암동 복수자들>은 이 네 명의 복수자 클럽이 완성되는 걸 보여주는 첫 복수전으로서 성추행을 일상으로 아는 교장을 그 대상으로 세웠다. 물론 그 복수의 방식은 엉뚱한 면이 있다. 교장의 성추행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 처벌을 받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자에 접착제를 붙이고 설사약을 먹여 곤혹스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그건 이 복수자 클럽이 던지는 경고 메시지였지만 그래도 진정한 복수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암동 복수자들>은 그 몇몇 소극적인 복수의 장면들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라도 어떤 응분의 대가를 받는 이들이 현실에서는 보기가 더 힘드니 말이다. 또한 복수와 함께 이 복수자클럽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그 연대의 모습이 주는 훈훈함을 빼놓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복수 그 자체보다도 <부암동 복수자들>에 시청자들이 매료되는 지점은 바로 그들 간의 연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현실화되기 쉽지 않은 복수보다 서로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큰 힘이 될 수도 있고, 그 힘은 어쩌면 그 복수를 현실화시킬 수도 있으니.

‘귓속말’, 이들의 폭주가 보여주는 통쾌함과 씁쓸함

“법대로 살 수 없어 사는 법을 배웠죠.” 이동준(이상윤)이 태백의 대표 최일환(김갑수)에게 던진 이 말은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드라마는 한 회 한 회 긴장을 늦추고 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끝없는 대결구도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또한 끝없이 새로운 판이 그 때마다 짜지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다시 내일의 적이 된다. 

'귓속말(사진출처:SBS)'

이들이 대립하는 가장 큰 골격은 로펌 태백의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최일환과 보국산업 강유택(김홍파)의 패권다툼이다. 하지만 이 대결구도 속에 틀어 앉은 또 하나의 사건이 방산비리다. 보국산업과 태백이 얽혀 있는 이 비리를 캐던 기자가 최일환의 딸 최수연의 사주로 인해 살해당하고 그녀의 연인인 강정일(권율) 역시 그 살해에 동조한다. 그리고 살인범으로 대신 신영주(이보영)의 아버지 신창호(강신일)가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여기에 판사였던 이동준은 최일환의 위협에 못 이겨 신창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잘못된 판결을 내게 된다. 

비리 기업이 있고 그 비리에 동조하고 있는 로펌이 있으며 그걸 취재하다 죽음을 맞이한 기자가 있다. 그 기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딸 신영주가 나선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관계들은 사건과 비리와 권력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들은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연인 관계보다도 더 앞서있다. 

최일환은 태백을 집어 삼키려는 보국산업 강유택 회장과 맞서기 위해 딸 최수연(박세영)이 사랑하는 강회장의 아들 강정일(권율)을 밀어내고 대신 이동준과 정략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최일환의 발목을 잡는 건 바로 이 딸이다. 강정일이 구속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딸은 모든 죄를 자신이 내린 것이라고 증언하라며 오히려 아버지 최일환을 겁박한다. 

이런 상황은 강정일과 강유택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강유택은 아들 강정일을 태백에 심어놓고 결국 그 태백을 집어삼킬 야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강정일을 밀어내려는 최일환의 공격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 한다. 하지만 그 아들이 최일환의 딸 최수연과 연인 관계라는 사실은 탐탁찮은 일이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강정일을 직접 도와주지 않고 대신 그에게 최수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라고 제안한다. 

가족도 믿지 못하는 얄팍한 인간적 관계인데다, 법이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귓속말>의 세계는 그래서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법 역시 정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건 그래서다. 

<귓속말>이 한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냉혹한 세계가 거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경수 작가가 <황금의 제국>이나 <펀치>를 통해 지금껏 그려온 권력자들의 세상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흥미진진함이고 속 시원함이며 동시에 씁쓸함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세계의 대결구도는 흥미진진하고, 한껏 몰렸던 누군가가 하나의 키를 새롭게 쥐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나 이 싸움판을 보게 되면 우리네 현실이 얼마나 법 정의와는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귓속말>은 법 정의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는 법에만 능숙한 이들의 대결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풍자적 관점 또한 들어 있다. 도대체 저게 뭐하는 짓들인가.

‘김과장’, 입소문이 갈수록 커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나? 김과장!”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김성룡(남궁민)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사실 과장이라는 직급이 회사 내에서 그리 높은 건 아닐 게다. 이 드라마 속 TQ그룹에서는 회장에 사장, 상무, 이사들은 물론이고 회장 아들까지 그 갑질이 일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김과장은 뭐가 그리 폼이 나는지 당당하게 자신을 그렇게 내세우곤 한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김과장이 일하는 경리부서는 TQ그룹에서도 을 중의 을인 부서다. 연말정산 시기가 되면 별의 별 문의가 다 이 부서로 들어와 전화기에 불이 난다. 게다가 TQ그룹 박현도 회장(박영규) 아들인 박명석(동하) 본부장은 사적으로 쓴 비용까지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고 경리부에서 행패를 부리기 일쑤다. 심지어 김과장이 들어오게 된 경리과장 자리는 억울하게 모든 문제를 떠안은 채 자살한 이과장의 자리다. 

그래서 경리부서로 온 김과장에게 경리부장인 추남호(김원해)가 제일 먼저 알려주는 건 일이 아니라 회사 조직도다. 누구에게는 경비 처리하는데 있어서 토를 달지 말아야 하고 누구에게는 적당히 쪼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결국 이 회사는 정상적으로 경영되는 회사가 아니다. 제 멋대로 경비가 처리되고 있고 그것은 직급이나 회장 아들 같은 관계의 권력이 좌우한다. 그런 부조리와 비리를 못 참겠다면? 경리부장은 “힘들면 관둬야지 뭐”라는 한 마디로 이 상황을 정리해준다. 

부조리하게 운영되는 회사. 갑질이 횡행하는 곳. 하지만 거기에 반기를 들면 돌아오는 건 반성문을 쓰거나 대기발령이 나거나 심지어 회사에서 잘리는 일이다. 모두 이 시스템 속에서 힘들어도 참아가며 버텨낸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자료가 잘못 넘어왔어도 그걸 창의적으로(?) 메워 넣지 못하면 회사의 갑들에게 한 바탕 지청구를 듣는다. 

물론 그 속에도 부조리에 나름 저항하는 윤하경(남상미) 같은 인물이 있지만 그녀 역시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한다. 괜스레 전화통화로 외부업체에게 화를 내는 척하는 정도가 그녀의 저항이다. 그래서 이 회사에 다니는 이들은 대부분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사는 것이니 즐거울 일이 없다. 

그런데 김과장은 다르다. 그는 “나 김과장”이라고 당당히 자신을 얘기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뭐가 좋은지 늘 빙긋빙긋 웃고 있고 다들 바쁘게 출근하는 그 길에서도 여유만만인 모습이다. 그가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 그의 회사를 다니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 TQ그룹이라는 회사에 목매고 있지 않다. 애초 목적은 ‘삥땅’이었고, 그 목적이 새로운 재무이사 서율(준호)에게 들키게 되자 선선히 회사를 떠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리고 싶어 그는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다. 회장 아들이라고 툭하면 내려와 부장의 조인트를 까는 박명석 본부장을 대놓고 혼내준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잘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김과장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건 그가 진정으로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굴종하는 그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 밖에서 시스템을 조롱한다. 

김과장이 보여주는 이러한 통쾌한 면면들은 그저 한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설정으로 치부하기엔 그 함의하는 면들이 예사롭지 않다. TQ그룹은 어찌 보면 최근 들어 탄핵 정국과 함께 불거져 나온 기업들의 면면들을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하면 청와대와도 줄을 대고 불법을 저지르지만 권력의 힘은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기업에서 일하는 선량한 샐러리맨들은 어떨까.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힘들면 본인이 관둬야 한다는 패배의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밖에 없다. 더러워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을 수밖에 없는 삶.

이것은 좀 더 확장해서 보면 우리 사회의 면면 그대로이기도 하다. 심지어 ‘헬조선’이라 불리는 부조리함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되는 사회지만 어쩌랴 살기 위해 버텨낼 수밖에 없으니. 김과장의 돌출은 이처럼 수직 계열화되어 있는 부조리한 시스템 바깥에 서있기 때문에 “자른다”는 엄포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조소를 날리는 모습을 통해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행보를 보이는 것. 

그런데 그 행보는 김과장의 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TQ그룹 같은 회사가 자신을 챙겨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없다. 그의 아버지가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았지만 돌아온 건 해고였다는 걸 어린 시절부터 목격하며 자라온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김과장은 회사는 포기했어도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쁜 놈들에게 때때로 피가 끓는다. 시스템 바깥에서 조소를 날리던 그가 어쩌다 보니 ‘의인’이 되고 또 어쩌다 보니 그 시스템과 맞서게 되는 그 과정을 그리게 되는 건 바로 그가 모든 걸 포기했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김과장>의 입소문이 갈수록 커지고 그 반응 역시 폭발적인 건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저 가볍게만 보였던 이 코미디는 의외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건드리고 있고, 그 부조리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아가며 버텨내는 샐러리맨들의 답답한 속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봉이 김선달>의 신스틸러들, 고창석, 라미란, 최귀화

 

봉이 김선달이라는 민담이 나오게 된 데는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으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가 선달이라 불리게 된 것은 과거에 급제 했지만 관직에 임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당대의 현실이 그 캐릭터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셈이다. ‘봉이라는 호가 붙게 된 연유 역시 닭을 봉황이라 팔아먹는 당대 사회의 물욕에 대한 풍자가 들어가 있다.

 

사진출처:영화<봉이 김선달>

물론 이 소재를 지금 굳이 가져온 데는 당대의 사정과 지금의 현실이 어느 정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 여겨졌기 때문일 수 있다. <봉이 김선달>이라는 영화의 제목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탐관오리들과 양반들 뒤통수를 침으로써 잠시나마 통쾌함을 선사할 김선달이란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에 충실하게 진지함을 빼고 가벼운 코미디 속에 세태 풍자를 끼워 넣는다. 호란 이후 조선인들이 청나라에 끌려가 화살받이 노릇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러나 그 비극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 곳에서 김선달(유승호)은 보원(고창석)과 견이(시우민)를 만나 어차피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몸 마음껏 누리며 살겠다고 선언한다.

 

양반들을 대상으로 닭을 봉황이라 속여 팔고, 여장을 한 채 사내를 꼬드겨 돈을 뜯어내고, 그저 평범한 칼을 충무공의 칼이라 속여 팔아먹는다. 그렇게 번 돈을 김선달은 하룻밤 풍류로 날리고 나눠가지라며 저잣거리에 돈을 뿌린다. 물론 이러한 유쾌한 사기극은 중간 지점부터 변곡점을 만들어 후반에는 복수극으로 돌변함으로써 영화의 극성을 높여놓는다.

 

이미 많이 알려진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 때문에 영화 속 사기극은 그 자체로는 기발하다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코믹 연기가 그것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유승호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때로는 꽃미남으로 아낙들의 마음을 빼앗고, 때로는 여장을 한 채 뭇사내의 마음까지 빼앗으며, 심지어 왕 행세를 하기도 한다. 그 옆을 지키며 그와 함께 사기극의 연기를 돕는 보원은 살벌한(?) 외모와 정반대의 귀요미 모습으로 끊임없이 웃음을 준다. 보원과 케미를 만들어가는 윤보살(라미란)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보여준다.

 

후반부에 대동강으로 중심으로 하는 스펙터클보다 사실 <봉이 김선달>을 유쾌하게 만들어내는 이들은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유승호는 물론이고, 고창석, 라미란 같은 이들이 보여주는 코믹 연기는 그들이 왜 신 스틸러라 불리는가를 제대로 증명해보여주었다. 특히 여장한 김선달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양반으로 등장한 최귀화는 이 영화가 주목시킨 연기자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봉이 김선달>은 그 민담이 갖고 있는 풍자적 요소들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이를테면 그가 선달로 불리게 된 이유를 영화에서는 그와 공조해 역적들을 몰아낸 왕이 이야기 해준다. 즉 물질적인 욕망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렇다고 체제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건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봉이 김선달>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 오락물이 되기 위한 감독의 선택인 듯 하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는 조금 밋밋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여름 시장을 겨냥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신스틸러들의 활약 덕분이다. 그것은 고창석, 라미란, 최귀화 같은 인물을 빼놓고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데서 확인된다. 그들이 있어 <봉이 김선달>은 그나마 충분히 유쾌해질 수 있었다.

싸이 행오버의 성취, 순위가 아닌 자기 세계

 

싸이가 새롭게 들고 온 신곡 행오버는 우리말로 숙취라는 뜻이다. 신나게 진탕 마시고 나서 오는 지끈지끈한 두통과 속 쓰림. ‘행오버뮤직비디오는 술 마신 다음날 깨어난 싸이가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쳐 박고 토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번 곡에 함께 참여한 스눕독은 그런 싸이의 등을 두드려준다. 마치 이 장면은 싸이의 구토하듯 쏟아내는 음악과 그 음악을 행오버라는 곡을 통해 다독이며 도와주는 스눕독을 연상케 한다.

 

구토 장면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자세히 보면 음악에 맞춰 싸이의 손이 변기를 마치 박자 맞추듯 두드리고 있으며, 그런 싸이의 등을 마치 변기를 두드리는 싸이처럼 스눕독이 두드리고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토해낸다는 의미와 숙취가 풍기는 나른함과 고통스러움의 뉘앙스, 그리고 변기를 두드리고 등을 두드리는 장면의 의미들을 연결해보면 이 장면이 주는 의미심장함은 싸이를 우리가 바라보는 상반된 느낌과 맞닿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불편함과 통쾌함 사이의 어떤 것이다.

 

사실 싸이의 행오버라는 곡이 노래로서 그리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강남스타일과 비교해 한 방이 부족하다고도 말하고, 그럼에도 받으시오-’ 같은 후렴구나 태평소가 들어가 흥을 돋우는 대목에서는 중독성이 느껴진다고도 말한다. 댄스곡과 본격 힙합이라는 장르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취향 때문에 생겨나는 호불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에 현재 트렌드로 자리한 힙합 장르에 겨냥한 곡이기 때문에 아직은 주저리주저리 랩이 거의 채워진 노래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네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행오버는 싸이라는 가수의 취향이고 개성일 뿐 꼭 모두에게 좋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간 순위를 거론하거나, 유튜브 조회 수가 천문학적이라는 수치를 마케팅적으로 내세우는 난감한 지점이 발생하곤 한다. 물론 팝의 본고장인 미국 본토에 진출한 싸이가 대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가대표 응원하듯 취향 무시하고 싸이를 응원할 필요는 없다. 취향이 맞지 않더라도 개성은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되고 그렇다고 싸이의 곡이 싫은 취향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정답은 없다.

 

분명한 건 싸이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분명히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의 근간은 한 번 놀아보자는 흥을 바탕으로 한다. 그 위에서 젠 체하고 예의 바른 척 하며 억누르고 있는 본성을 그는 음악을 통해 밖으로 표출해낸다. ‘강남스타일의 말춤이나 메뚜기춤 그리고 보기 민망한 저질댄스는 모든 걸 잊고 한바탕 뒤집어지는춤의 흥으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젠틀맨동방예의지국의 예의에 눌려진 억압된 본능을 악동처럼 끄집어냈다. 시건방춤은 예의와는 정반대의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행오버는 이제 우리의 과도하게 흥겨운(?) 술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탄주에 러브샷에 12차를 반복하고 노래방에서 입가심을 하며 진탕 마시고 나서는, 다음날 지끈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편의점 컵라면과 삼각 김밥에 숙취해소음료로 해장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우나에서 마치 알코올을 뽑아내겠다는 듯 땀을 빼는 이 기이하게 흥겨운 술 문화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그대로 느끼듯 현실을 벗어난 통쾌한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다시 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쾌한 숙취를 남긴다. 싸이의 이 일관된 우리문화 비틀기는 그래서 불편하지만 통쾌한 정서를 동반한다. 이만하면 싸이는 확고한 자기 스타일과 취향 그리고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빌보드 차트 몇 위의 수치보다 이번 행오버에서 싸이가 성취한 가장 큰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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