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서’, 아쉬움 남는 현지인들과의 보다 긴밀한 접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태국음식 요리사.’ 홍석천은 푸드트럭에 이렇게 새겨진 문구가 못내 불편했는지 ‘가장 유명한’이라는 문구를 빼달라고 했다. 바로 이 지점은 tvN 예능 <현지에서 먹힐까>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내놓은 부분이다. 외국에 선보이는 한식이라면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도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그들이 늘상 먹는 팟타이를 홍석천이 태국에서 내놓는 일은 부담될 수밖에 없다. 태국에서 홍석천이 내놓는 태국음식이 과연 먹힐 것인가?

그래서 그런 제목을 달은 것이고, 그것은 이 프로그램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윤식당>과 관전 포인트를 달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홍석천은 첫 날부터 내놓은 팟타이에 꽤 높은 평점을 받았다. 현지인들도 그 맛이 고급 레스토랑의 팟타이 맛이라고 칭찬했다. 그런데 이렇게 홍석천이 만든 팟타이가 ‘현지에서 먹힌다’는 걸 확인하고 나는 순간부터 프로그램은 새롭게 할 이야기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물론 이것을 뛰어넘기 위해 <현지에서 먹힐까>는 하루 걸러 장소를 이동한다. 치앙마이에서 살짝 선을 보인 후, 님만해민에서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모든 재료가 소진되었고, 뒤늦게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은 내일도 여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다음 날 롭부리로 또 이동했다. 이동은 그들이 내놓는 음식이 어떤 지역에서는 먹혔을지 몰라도 다른 지역에서도 먹힐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긴 장치처럼 보인다. 

메뉴도 조금씩 바뀌었다. 팟타이에서 피시케이크로 바꾸고 시작한 롭부리에서 홍석천이 만들었다는 그 메뉴도 성공적이었다. 물론 현지인들 중에는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이 정도면 홍석천이 태국에서 내놓는 요리들은 현지에서도 ‘먹힌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현지에서 먹히는 게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시청자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이 먹혔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프로그램에서 관심이 가는 건 홍석천의 요리와 그 요리를 맛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여진구가 보여주는 작은 모험담들과 이른바 ‘꽃미남 마케팅’이 현지에서도 먹힌다는 사실이다. 너무 덥고 식사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찾지 않던 푸드트럭에 하교하는 학생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눈에 확 뜨인 여진구의 미소가 그들을 끌어들이는 그 장면들은 요리보다 흥미롭다. 여진구가 만드는 땡모반(수박주스)이 마치 이 푸드트럭의 시그니처 메뉴처럼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무엇이 어긋나 현지에서는 잘 먹히는 것이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게 된 걸까. 그건 애초에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관전 포인트를 내세우면서(그래서 푸드트럭이라는 콘셉트를 세우면서) 상대적으로 적게 만들어진 현지인들과의 보다 긴밀한 접점이다. 만일 계속 이동하지 않고 치앙마이의 숙소에서 지내며 같은 장소에서의 영업(?)을 계속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아쉬움이 남게 되는 건, 롭부리에서 아무도 푸드트럭을 찾지 않자 이민우가 시장 상인 아줌마들에게 다가갔고, 거기서 과일을 주자 푸드트럭 음식을 갖다 주면서 생겨나던 ‘친밀함’을 목격하게 되면서다. 그 상인 아줌마들이 푸드트럭에 다가와 음식을 맛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주는 모습과, 그래서 찾아드는 다른 상인들과의 관계가 좀 더 진척되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으로 남은 피시케이크를 할머니에게 건네는 홍석천의 모습 같은 것에서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해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진짜 관전 포인트로 삼았어야 할 지점은 바로 그 현지인과의 접점이고, 그 관계들이 처음에는 서먹하다가 차츰 친숙해지는 과정들 속에 어쩌면 흥미진진함이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요리 잘하고 수완도 좋은 홍석천에 밝은 에너지가 넘쳐나는 이민우, 게다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꽃미남 여진구가 형제 케미를 보여주고 있어 그 조합은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다만 그 조합이 현지인들과 진정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음식 솜씨가 아니라 타자가 친구가 되는 그 관계의 진전이었을 테니 말이다.(사진:tvN)

'현지에서 먹힐까', '홍식당'이라고 내걸어도 괜찮았을 듯

새로 시작한 tvN 예능 <현지에서 먹힐까>는 여러모로 <윤식당>의 그림자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건 외국에 가서 음식을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평가받는다는 그 형식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첫 방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그래서 <윤식당>의 그것과 장소만 다를 뿐, 큰 틀에서는 비슷한 느낌을 준다. 개업이 주는 부담감과 장보기, 음식을 만들어 현지인이 처음 맛봤을 때 나올 반응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드디어 첫 날 처음 마주하게 되는 손님들이 주는 설렘 등등. 

물론 <현지에서 먹힐까>가 <윤식당>과 다른 지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것은 한식이 아니라 현지식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태국에서 팟타이를 만들어 판다. 종주국(?)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만든 현지 음식이 먹힐까 하는 점이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다. 그래서 아마도 프로그램 제목을 그렇게 잡았을 게다. 

여기에 국내에 태국음식 전도사를 자칭하고 있는 홍석천이 메인 셰프로 투입되었다. 그는 전문 셰프는 아니지만 이미 여러 개의 음식점을 갖고 있고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태국음식은 끝없는 공부와 노력을 통해 현지에 가까운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러니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태국 음식이 태국사람들의 입맛에도 먹히는가 하는 점은 홍석천이라는 인물이 투입됨으로써 더 흥미진진해진다.

식당이 아닌 푸드트럭이라는 점도 <윤식당>과는 다른 지점이다. 푸드트럭은 협소하고 야외 개방형이라는 점이 단점이지만, 또한 이동이 가능하고 다양한 공간에서의 영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 먹힐까>는 치앙마이부터 시작해 태국을 훑어 내려오며 여러 다른 공간에서의 장사 풍경들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차별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먹힐까>를 보며 <윤식당>의 잔상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푸드트럭을 함께 하는 홍석천과 이민우, 여진구가 만들어가는 형제 케미 같은 나름의 재미 지점들이 충분히 있고, 첫 날 온천 유원지에서 푸드트럭을 오픈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들이 향후 어떻게 개선되어가는가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 이야기의 흐름은 이미 <윤식당>에서 어느 정도 봤던 패턴이다. 

같은 방송사인 tvN에서 하는 것이고, 나영석 PD와 <신혼일기>를 함께 했던 이우형 PD의 프로그램이니 <윤식당>의 노하우가 이어지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시청자들로서는 비슷한 포맷을 다른 이름으로 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윤식당>의 패러디 혹은 스핀오프라는 걸 정면에 내세워 <강식당>이 탄생했듯, 홍석천을 전면에 세운 <홍식당>으로 내놓고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윤식당>이 너무 다양한 버전으로 여기저기 소비되는 것이 저어되는 일일 수 있지만, 성공한 프로그램의 스핀오프들이 다양하게 나오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수 있다. <현지에서 먹힐까>는 이 프로그램만의 차별성들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좀 더 어필하기 위해서는 <윤식당>과의 유사성을 먼저 끄집어내놓고 “우리는 이렇다”고 하는 편이 더 먹히지 않았을까. <윤식당>과의 고리를 어떻게 잇고 그걸 확장시키는가 하는 점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향후 자리를 잡는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이거 실화? ‘윤식당2’ 첫 방에 14%를 견인한 것들

시쳇말로 이거 실화냐고 물어봐야 할 듯싶다. tvN 예능 <윤식당2>가 첫 회 무려 14%(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마도 지상파, 종편을 통틀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최고 시청률이 아닐까. 보통 한두 회가 나가고 입소문을 탄 후 시청률이 오르는 그 과정이 일반적이라고 볼 때 첫 회 만에 이런 기록은 이례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시작부터 <윤식당2>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게 한 걸까.

먼저 가장 큰 건 <윤식당>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가진 힘이다. 이미 시즌1에서 최고시청률 14%를 찍었던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기대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즌1의 성공이 가져온 이 프로그램의 장점, 이를테면 ‘잘 알려지지 않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휴양지’나, ‘외국인들의 한식 경험 반응’ 같은 요소들이 정확히 파악된 이상, 시즌2는 그걸 제대로 겨냥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스페인의 섬인 테네리페섬 그리고 그 곳에서도 가라치코는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물론 여행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분들이야 다를 수 있지만, 일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받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공항에 도착해 차를 타고 가라치코로 가는 그 길 위에서 보이는 이 5천명 남짓의 주민이 산다는 작은 섬의 그림 같은 풍경들을 보며 감탄하는 윤여정과 이서진, 정유미 그리고 박서준의 모습은 마치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는 듯 했다.

시즌1에서도 드러났듯 <윤식당2>는 되도록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이어야 그 특유의 맛을 내는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식당을 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다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색깔 자체를 잃게 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무려 1박2일을 날아가야 하는 그 먼 거리의 외딴 섬까지 간 것이고, 그렇게 멀리 가는 것만큼 시청자들의 마음이 더 깊게 그 판타지 같은 공간에 몰입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장소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일 수밖에 없는 <윤식당2>는 그 곳에서 시즌1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윤스키친을 열고 영업을 준비했다. 이번 시즌에 외국인들에게 선보일 음식은 비빔밥. 시즌1을 경험한 이상 음식 선정도 이제는 우리네 음식의 맛을 대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걸 제작진은 알고 있었을 게다. 지난 시즌에 도움을 받았던 홍석천과 이원일 요리연구가가 제안하고 가르쳐준 건 전채요리로 전을 메인요리로 비빕밥 그리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얹은 호떡이었다. 그 배우는 과정에서도 시청자들은 저 요리가 외국인들에게는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현지에 도착해 풍광에 매료되는 것도 잠시 출연자들은 미리 음식을 만들어보고 시식회를 해보는 등 준비에 돌입한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캐릭터들이 새록새록 리마인드된다. 윤여정은 걱정이 많지만 일단 시작하면 누구보다 몰입하고 무엇보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입맛은 잠시 접어둘 줄 알며, 첫 손님에게 어떻게 비빔밥을 먹는 것인가를 직접 시연해 보여줄 정도로 열정적이다. 이서진은 지난 시즌에서도 보였듯 경영에 있어 남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정유미는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식당 분위기를 명랑하게 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의 한수는 일정이 겹쳐 출연하지 못하게 된 신구 대신 새로운 알바생으로 들어온 박서준이다. 스페인어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만 착실히 준비해 실제 외국인들에게 척척 사용하는 모습이나, 요리면 요리 서빙이면 서빙 적응을 잘 해내는 센스 있는 인물의 면면을 첫 회만에 그는 각인시켜줬다. 박서준의 출연이 대박이라던 홍석천의 말은 그저 너스레가 아니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번 <윤식당2>에는 <신서유기 외전> 형식으로 만들어졌던 <강식당>의 대성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얹어진 면이 있다. <강식당>이 주는 힘겨운 일터의 실감과는 완전히 다른, 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 <윤식당>의 그림들은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시즌1이 만들어놓은 브랜드에, 가라치코 같은 환상적인 공간 헌팅 그리고 박서준이라는 매력적인 캐스팅에 <강식당>이 만들어놓은 홍보효과까지 얹어졌다. 이러니 시작 전에 이미 승부가 날 수밖에.(사진:tvN)

게스트로 보이는 <삼시세끼>의 초지일관

 

tvN <삼시세끼>의 가장 큰 특징은 정착형 예능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곳을 계속 찾아가는 여행과는 달리,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변화과정에 집중한다. 늘 새로움을 줘야 하는 일반적인 예능으로서는 그리 유리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워 보이는 풍경이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도시인들의 로망을 건드렸다. 그저 하루 세끼 챙겨먹는 일이 해야 할 일의 전부인 시간들.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그런 무료함은 어느새 판타지가 되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래도 예능 프로그램인지라 <삼시세끼>가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카메라는 옥순봉 세끼집 주변에 자라는 꽃을 벌의 시점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하고, 작물들이 자라나는 장면들을 생명의 신비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경이로운 장면들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반복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패턴을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삼시세끼>는 게스트라는 변수를 활용한다. 새로운 손님을 초대함으로써 그들과의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

 

최근 <삼시세끼>의 게스트 활용법을 보면 쿡방 전성시대를 총망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를 배워온 손호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요리 대결을 벌이는 홍석천이 찾아온 데 이어 드라마 <파스타>로 버럭 셰프 캐릭터를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이선균이 다음 게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쿡방의 주역들을 게스트로 출연시키면서도 거기에 <삼시세끼>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명민함이 돋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이 아니라 손호준을 게스트로 출연시키고, <냉장고를 부탁해>의 전문 셰프들이 아니라 연예인 요리사인 홍석천을, 그리고 <파스타>의 실제 모델이었던 샘킴이 아니라 그 드라마 주인공인 이선균을 출연시킨다는 건 특별한 선택이다. <삼시세끼>는 전문 셰프들을 출연시키지 않을까.

 

아마도 그것은 <삼시세끼>가 요리사들의 화려한 요리를 선보이는 쿡방과는 다른 결을 가진 예능이라는 걸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 <삼시세끼>는 요리사들의 예능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요리를 해먹는 것이 포인트다. 그러니 백종원보다는 요리 무식자에 가까운 손호준이 낫고, 요리만이 아니라 특유의 흥을 가진 홍석천이 훨씬 낫다. 물론 이선균은 요리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의 버럭 캐릭터가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손호준은 <집밥 백선생>에서 배워온 강된장으로 이서진과 옥택연, 그리고 김광규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삼시세끼> 내용 중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손호준이 김광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그 관계가 훨씬 더 주목되었다. 홍석천이 출연한 방송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선보인 태국식 요리들만큼 흥미를 준 것은 딱딱하게 타버린 빵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제빵왕 서지니의 변명이었다.

 

쿡방이 대세지만 <삼시세끼>는 그렇다고 전문 요리사들을 데려와 화려한 요리 쇼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한 끼에 더욱 골몰하는 모습이다. 손호준이나 홍석천, 이선균이 모두 요리와는 관련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출연이 화려한 쿡방을 예고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래서 평범하고 보통인 한 끼를 고수한다는 점은 <삼시세끼>가 가진 일관된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일이다



지상파가 연예인 토크쇼에 연연할 때 <냉장고>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스튜디오물이다. 구성만으로 보면 전형적인 토크쇼 형태다. 매회 새로운 게스트가 출연하고 정형돈, 김성주 같은 고정 MC들이 있으며 8인의 쉐프들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들이 있다. 하지만 이 전형적인 토크쇼 구성을 통해서도 <냉장고를 부탁해>가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비법은 뭘까.

 

'냉장고를 부탁해(사진출처:JTBC)'

그것은 같은 공간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안에서 완전히 다른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걸 <냉장고를 부탁해>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토크쇼 형태로 게스트가 출연하지만 이야기가 괜한 연예인 신변잡기로 흐르지 않는 건 거기 함께 출연(?)하고 있는 냉장고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게스트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냉장고의 재료들에서 나온다.

 

이규한이 공개적으로 밝힌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도 <냉장고를 부탁해>에 들어오면 냉장고 속 식재료 이야기로 이어진다. 몇 년 전 식재료가 나오면 거기서 이전 연애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뉘앙스를 정형돈이 풍기자 이규한이 긴장하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만의 음식을 통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잘 말해준다.

 

탈모를 방지하기 위해 렌틸콩을 환약 먹듯이 먹어왔다는 우스꽝스런 이야기나 부패해버린 양파를 김치로 알고 놔두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규한의 인간적인 면모를 읽어낼 수 있다. 냉장고 안의 재료들은 일종의 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유추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 재료들이 그리 특별하다기보다는 누군가의 냉장고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처럼 일상적일 때 <냉장고를 부탁해>는 일종의 마법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이규한은 자신의 평범한 냉장고에서 홍석천이 만들어낸 렌틸콩 요리 털업 샐러드나 이연복 대가의 완소 짬뽕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 점은 여기 출연하는 셰프들에게 연금술사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이고 최근 이들 셰프가 스타덤에 오르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일상 속에서 마법 같은 특별함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음식을 통한 것이라면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들은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지니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음식은 15분이라는 제한시간을 둠으로써 프로그램에는 쇼적인 성격을 부여하고(허세 최연석 셰프의 현란한 동작과 이연복 대가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칼질을 떠올려 보라!) 또한 일반인들도 왠지 그 마법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셰프들의 등장은 이 프로그램이 연예인의 신변잡기를 벗어나 실용적인 느낌마저 부여한다. 실제로 여기 등장한 레시피들은 일반인들이 직접 시연해 프로그램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양방향적인 소통체계에 얹어진 실용성은 이 프로그램이 정보적으로도 유용하다는 걸 말해준다.

 

이렇게 게스트와 셰프를 연결해 하나의 음식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부여하자 메인 MC들의 역할 또한 여타의 토크쇼와는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호들갑 콤비로 이미 정평이 난 정형돈과 김성주의 시너지는 게스트를 콕콕 찔러 요리(?)해버리는 정형돈과 셰프들의 요리를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하듯 풀어내 긴박감을 만들어내는 김성주에 의해 활활 타오른다. 이들은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는 흔하디 흔한 토크쇼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 버라이어티한 상차림이 이미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각자의 주석을 다는 토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냉장고를 부탁해>웰 메이드의 성공이다. 혹자는 최근 쿡방이라는 트렌드와 맞아 떨어졌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소재나 기획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촘촘한 재미로 완성시켜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흔히들 현장으로 나가는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토크쇼나 스튜디오물은 한 물 갔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스튜디오물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소재나 구성보다 그것을 어떻게 잘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것은 현재 고전하는 지상파 주중 예능들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비정상회담>,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그들

 

전현무는 <비정상회담>에서 소유와 정기고가 부른 을 패러디해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너-”라고 부른다. 농담 같지만 이 노래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 그것은 아마도 실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문화적 차이와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것일 게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왜 결혼을 주제로 하면서 굳이 홍석천을 게스트로 앉혔는가 하는 점이나,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동성 결혼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간 점은 <비정상회담>의 이야기 폭이 거칠 것이 없다는 걸 말해준다. 오히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그 지점에 놓여진 이야기 소재는 <비정상회담>이라는 특별한 토크쇼에서는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고부갈등을 얘기하면서 터키 대표 에네스 카야와 이탈리아 대표 알베르토가 설전을 벌이는 대목은 흥미롭다. 에네스 카야가 무조건 어머니 편을 먼저 들어줘야 한다고 하는 반면, 알베르토는 아내를 지켜주는 게 남편의 의무라며 먼저 아내를 챙겨주고 나중에 엄마랑 얘기하면 된다는 입장으로 각을 세운다.

 

사실 고부갈등은 <사랑과 전쟁>의 단골소재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문제다. 최근 들어 조금씩 문화가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어머니 편인지 아니면 아내 편인지 하는 문제를 두고 어느 게 정상적인가를 질문하는 건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이 안건이 <비정상회담>에 오르자 흥미로운 관점이 생겨난다. 즉 그것이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입장을 보인다는 것. 결국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것이 정답이라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해체시켜버린다.

 

동성결혼에 대한 안건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대중문화 등을 통해 성소수자들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이 생겨나고 있지만 실제 현실은 여전히 넘지 못하는 편견이 많다. 벨기에에서는 이미 결혼과 입양까지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동성결혼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벨기에 대표 줄리안의 이야기는 그래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럽이라면 상당히 개방적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동성결혼이 캐나다에서는 합법이고,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으며, 또 벨기에는 국무총리가 동성애자이고 독일의 외무장관도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낯선 외국의 문화차이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터키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에네스 카야의 증언은 우리보다 어쩌면 더 보수적인 터키의 문화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타르칸이라는 유명한 배우는 해변에서 남자와 손 잡은 장면이 사진에 찍혀 무려 3년 간이나 활동을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문화적 차이를 보이는 그들도 만일 내 자식이라면이라는 가정 앞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힘들겠지만 자식의 선택을 지지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 물론 그 와중에도 정말로 슬프지만 지지해줄 수 없다는 에네스 카야의 확고한 이야기는 넘어설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걸 말해주었다.

 

바로 이렇게 한 테이블 위에서 서로의 문화적 차이가 토론되고 때로는 격렬하게 설전을 벌이다가 때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입장을 반복하는 것. 이것이 <비정상회담>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서로가 자기 문화 안에서 정상이라고 우겼던 것들이 다른 문화에서는 비정상으로 바라보이는 것을 한 테이블 위에서 발견한다는 것. 그래서 그것은 결국 문화적 차이일 뿐, 실체적인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건 아니라는 것. 이 다양성의 관점을 마치 문화적 썸을 타듯이 외국인 대표들이 때론 지지하고 때론 반대하며 밀고 당기는 토크쇼. <비정상회담>이 다른 토크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흥미로움과 훈훈함을 주는 이유다.

 

신동엽의 게이 연예인 언급이 돌 맞을 일인가

 

저는 심지어 연예인 중에서 어떤 여자가 결혼을 해요. 그런데 이 남자 게이에요. 근데 이 여자는 자기가 결혼할 남자가 게이라는 걸 몰라요. 게이 중에서 결혼한 남자들 굉장히 많거든요. 애도 낳고... 근데 이거를 얘기를 해줘야 되는 건지...”

 

'마녀사냥(사진출처:JTBC)'

<마녀사냥>그린라이트를 꺼줘라는 코너에서 신동엽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연예인이야기를 꺼냈다. 이 내용은 한 매체에 의해 신동엽 게이 숨기고 결혼한 연예인 홍석천과 나만 안다”’는 제목으로 기사화 됐다. 기사 제목도 그렇고 이 기사의 내용만을 들여다보면 마치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의도적으로 꺼내놓은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한편 기사의 말미에 쓰여진 신동엽은 해당 남자 연예인 성 정체성에 관해 홍석천과 나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은 오보다. 방송에는 아예 그런 내용 자체가 들어 있지 않다. “홍석천과 나만 알고 있다는 멘트는 홍석천씨랑 저만 (그린라이트를) 안 껐네요.”라는 말을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오보를 적시하고 그걸 제목으로 뽑아내자 기사는 마치 신동엽이 자극적인 멘트를 하기 위해 영리한 방식으로 폭로를 한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예상대로 기사 밑에 달려진 댓글들은 온통 신동엽에 대한 비난과 욕으로 가득 채워졌다. 댓글 속에는 신동엽이 이 멘트를 한 후 (아버지가 게이임을 밝혔던) 샘 해밍턴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전혀 방송 내용과 다른 글들도 덧보태졌다. 비난이 전혀 다른 사실들을 더하면서 심지어는 신동엽 자신이 그 연예인이 아니냐는 비상식적인 말까지 덧붙여졌다.

 

늘상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러려니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것을 폭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 날 선배가 밝힌 남자친구의 외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내용의 사연 때문이다. 즉 후배의 남자친구가 외도를 한 사실을 알고 있는 중간입장에서 이걸 밝히는 게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았던 것뿐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오로지 게이 연예인이야기 폭로에만 초점이 맞춰진 기사는 앞뒤의 맥락을 뚝 잘라버림으로써 전혀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게다가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게이 이야기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기사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즉 거기에 홍석천이 이른바 게이 대표로 버젓이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신동엽이 게이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홍석천이 거기 앉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녀사냥>이 다루는 성담론의 수위는 높다. 그래서 19금 딱지를 붙인 것이고 성인들을 위한 솔직한 남녀 간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게이 이야기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 날 게이 연예인 언급을 하면서 신동엽이 굳이 덧붙인 멘트 역시 성 소수자에 대한 그의 배려가 묻어난다. “그런데 그런 게 힘들죠. 진짜 그런 상황이 되면은... 게이분들의 장점이 굉장히 많거든요. 굉장히 따뜻하고 섬세하고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가.”

 

물론 이 성에 있어 개방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와 취향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오보에 앞뒤 맥락을 끊고 자극적인 부분만을 끄집어내 이상한 뉘앙스를 덧붙인 기사는, 물론 그 기사 내용이 방송 내용을 그대로 붙인 것이라고 하더라고 그 편집 때문에 전혀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다. 이제 사실왜곡만이 오보인 시대가 아니다. 사실을 달리 편집하면 오보가 되는 시대라는 얘기다.

 

물론 오보는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인터넷에 뜨는 기사들을 보면 이것이 실수인지 의도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지난 올해의 영화상에서 이정재와 송강호의 인사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 논란이 만들어지고 결국은 한국영화기자협회가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의도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으나 그 결과와 파장은 적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마녀사냥이 대단한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소해 보이는(사실은 소소하지 않은) 사안들에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흥미롭게도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마녀사냥>이다. 물론 여기서 마녀란 마녀사냥의 마녀를 뒤집는 이야기다. 당당해진 마녀의 이야기랄까. 그러니 <마녀사냥>이 당하는 마녀사냥은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 편견 깨준 대중문화 콘텐츠의 힘

 

5월은 결혼의 달인가. 백지영과 정석원, 한혜진과 기성용, 장윤정과 도경완, 그리고 서태지와 이은성의 깜짝 결혼 소식이 발표된 데 이어, 눈에 띄는 것은 그 대열에 김조광수와 동성연인인 김승환과의 결혼발표 기자 회견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식 보도 사진 속에서 당당하게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두드림(사진출처:KBS)

동성애자들이 공식석상에서 결혼발표를 하고 입맞춤을 하는 사진 한 장의 의미는 크다. 1996년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본격 동성애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을 본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들의 사랑을 서로 주먹을 입에 대고 입을 맞추는 장면으로 대신했다. 영화 속에서마저도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려 했던 것. 하지만 이번 김조광수의 결혼발표는 이제 영화도 아닌 실제 현실에서도 동성애자의 애정표현이 그만큼 당당해졌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몇몇 용기 있는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가져온 변화가 크지만, 동성애에 대한 대중들의 달라진 시각에 일조한 것으로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빼놓을 수 없다. 과거에는 <크라잉 게임>이나 <해피투게더>,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해외영화를 통해서나 겨우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로드무비>나 <후회하지 않아>,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같은 우리네 동성애 영화들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야 한정된 공간에서 보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치지만, TV 드라마가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게 된 것은 이제 이러한 달라진 시각이 일상화 단계로 넘어오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커피프린스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같은 이른바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는 큰 화제가 되면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데 일조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드라마였지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실로 파격적인 시도라고 여겨진다. 동성애를 직접 다루면서 그것을 가족드라마의 틀로 엮었다. 즉 동성애자인 아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처럼 보였다. 드라마가 가족애를 통해 동성애자를 받아들였듯이, 사회는 인간애를 통해 그들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달라진 시선이 이제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가장 확연히 보여주는 건 예능 프로그램 속에 자연스럽게 유머의 한 부분으로 자리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홍석천은 이른바 게이조크로 불리는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를 끄집어낸 인물이다. <라디오스타>에 나와 거침없이 김국진의 얼굴을 쓰다듬고 동성애를 유머 코드로 올려놓는 홍석천은 그런 점에서 대중과 성소수자 사이에 훨씬 편안한 가교역할을 해주었다.

 

<라디오스타>에 나온 2PM의 준호가 한 프로그램에서 홍석천에게 돌발 볼 뽀뽀를 당했다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준호로 하여금 원빈과 이병헌을 세워두고 이상형 월드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 홍석천의 선구적인 게이조크 덕분이라는 얘기다. 게이조크는 아직 예능에서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지만, 웃음을 코드로 한다는 점에서 좀 더 대중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는 힘을 발휘한다. <SNL 코리아>의 신동엽이나 김민교가 하는 게이 코드의 콩트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편견은 여전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응원의 목소리도 많다. 무엇보다 다른 성적 취향을 이해해주자는 시각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동성애에 완강히 반대하던 기독교측에서도 이제는 논쟁이 되는 양상이다.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식인데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냐는 것. 이러한 변화는 동성애의 편견을 자연스럽게 깨준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성이란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지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라스>, 편견과 맞설 때 더욱 빛나는 이유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났던 <라디오스타>였습니다.” 김국진의 정리 멘트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심장했다. 새해 첫 해를 맞아 내보낸 첫 번째 아이템으로는 너무 소소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던 이른바 민머리(?) 특집이 사실은 진정한 <라디오스타>만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새해를 기념한다는 조금은 억지스런(?) 짜 맞추기에 출연한 민머리 연예인들은 홍석천, 염경환, 숀리, 윤성호. 그다지 핫(hot)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게스트들이다. 하지만 막상 방영된 이 특집은 민머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각종 편견을 뒤집는 통쾌한 유머의 장으로 이어졌다. 그 방식이 흥미로웠던 것은 일단 대머리라는 공통점(?)으로 모여진 이들이 그 대머리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차츰 또 다른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는 점이다.

 

먼저 주목됐던 건 홍석천을 통해 알게 된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었다. 우리가 흔히 막연하게 갖고 있던 편견을 홍석천은 과감하고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들었다. 용산구청장을 꿈으로 꼽으며 그 이유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편견을 끄집어낸 건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본래 범죄 같은 것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이태원이었지만 자신의 가게를 포함해 차츰 예쁜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홍석천 자신이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동일시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이 가게를 이태원에서만 많이 하는 이유 역시 ‘좋은 표본’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는 것. “손가락질 받는 우리도 뭔가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표본을 만들고 싶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고 홍석천은 말하기도 했다.

 

홍석천은 커밍아웃 이후에 그저 편하게 술 한 번 마시기도 어려운 편견에 시달렸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자신을 제정신으로 보지 않는 시선들 때문이었다는 것. “열심히 살고 싶은데 의욕을 꺾는 분들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어찌 실제 상황이 그렇게 허허로운 일만이었을까.

 

<라디오스타>와 홍석천의 만남이 특히 주목된 이유는 그 대화의 공간이 너무나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흔히 성 소수자라는 편견 때문에 던지기 힘든 질문들이 스스럼없이 던져졌고, 거기에 대해서 홍석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유머로 승화시키는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그 자체로 <라디오스타>는 성 소수자와 대중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 셈이 되었다.

 

다이어트 전도사로 유명한 숀리가 다이어트에 대한 편견을 깨준 것도 이번 특집의 또 하나의 의미였다. 다이어트를 하면 닭 가슴살만 먹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숀리는 먹고 싶은 것을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했고, 흔히들 작심삼일을 하는 걸로 다이어트를 포기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매번 작심삼일 하는 마음으로 해야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염경환은 김구라에 의해 자주 언급되면서 갖게 된 자신의 이미지를 특유의 넉살좋은 입담으로 풀어냈고, 오랜 만에 나온 개그맨 윤성호는 홍석천과의 대립구도를 살짝 넣으면서 <라디오스타>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무엇보다 어딘지 개그에서 멀어진 듯한 윤성호의 의외로 재밌는 모습들은 역시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홍석천을 발견한 것은 이번 <라디오스타> 특집의 최대 수확이면서 동시에 전체 예능의 성과이기도 했다. 성 소수자의 편견을 깬 것은 물론이고 홍석천만이 구사할 수 있는 유머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단 둘이 있으면 오해를 받기 일쑤일 정도로 사실은 평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일도 누릴 수 없는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라디오스타>만이 가진 개방적인 분위기 덕분이었을 게다.

 

<라디오스타>는 지금껏 수많은 숨은 예능인들을 발굴해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흔히 어떤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어 그 면만을 보아온 대중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이미지가 만드는 편견을 벗겨버리는 역할을 해왔던 것. 새해를 맞아 소소하게 보인 민머리 특집은 그래서 <라디오스타>가 올해에도 이 무대를 통해 꾸준히 이미지의 편견을 벗겨내고 새로운 면모들을 찾아낼 수많은 예비 예능인들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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