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어째서 이 병원엔 의사가 고수·엄기준밖에 없을까

SBS 수목드라마 <흉부외과>의 박태수(고수)와 최석한(엄기준)은 닮았다. 일종의 평행이론처럼도 보인다. 둘 다 태산병원 흉부외과 전문의지만, 그 곳에서 일하는 다른 의사들과 달리 출신대학이 태산대가 아닌 해원대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일종의 왕따를 당했다. 그럴수록 실력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 그 누구보다 좋은 수술 실력을 갖고 있지만, 둘 다 가족에 얽힌 아픈 사연들을 갖고 있다. 

최석한은 자신의 딸을 잃었다. 그 순간 이사장의 딸 윤수연(서지혜)을 수술하게 되면서다. 박태수 역시 어머니를 잃을 뻔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자신이 내부고발해 정직처분을 받은 황진철(조재윤)은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타 병원들을 수소문 하던 끝에 겨우 태산병원 최석한과 연결이 되어 그 곳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갔지만, 마침 병원장은 자신의 VIP 환자를 바로 수술하라고 최석한에게 명령한다. 최석한은 갈등하다 결국 “너희들이 의사야?”라는 박태수의 절망적인 항변을 듣고는 그 어머니를 수술해 살린다. 그로 인해 그는 병원장의 눈 밖에 나버린다. 

최석한에게 병원장이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보내지 않도록 조처하자, 최석한이 일일이 자기 명함을 뿌려 직접 환자를 영입해 수술을 했던 것처럼, 박태수 역시 태산병원에서 오프일 때도 돈을 벌기 위해 타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 비행기에서 쓰러져 위급하게 온 환자를 당장 살리기 위해 접착제를 쓰는 무리수를 쓴다. 그리고 태산병원으로 이송해 최석한과 함께 수술을 하는 와중에 어머니가 쓰러진다. 박태수는 또 어머니를 향해 달려 가야할 지, 당장 하던 수술을 계속 해야할 지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흉부외과>의 이야기는 이렇게 보면 일종의 도돌이표 같은 느낌을 준다. 최석한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면 다시 그 상황을 박태수가 또 겪게 된다. 그것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위급한 환자가 눈앞에 있는데, 역시 생사를 오가는 자신의 가족이 마침 쓰러져 갈등하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능력 있는 두 의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기득권층으로부터 배척받는다. 심지어 황진철 같은 인물은 박태수가 위급해서 접착제를 쓴 환자의 동생으로 나타나 또 다시 과거의 상황을 반복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흉부외과>의 스토리가 처음에는 굉장히 큰 몰입감을 주었지만, 다음번에는 조금씩 그 몰입이 빠지는 이유가 된다. 가족을 살릴 것인가, 환자를 살릴 것인가의 선택상황만큼 절박한 순간이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는 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이야기 구조나 대립 상황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째서 이 병원에는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이들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것이 진짜 ‘흉부외과’라는 과가 처한 현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위험이 동반되는 과인지라 지원자들이 실제로 거의 없는 현실이 그렇고, 이미 흉부외과 전문의들이라고 해도 워낙 병원 내에서 실적 압박이 크기 때문에 사망 위험이 있는 환자는 실제로도 배척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투영해 들여다보면 <흉부외과>에서 환자만을 생각하는 박태수와 최석한 같은 의사가 반복적으로 ‘선택의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이해가 된다. 실제로 의사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있어도 위험한 수술을 꺼리는 의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 같은 의사들에게 수술이 몰리게 된다. 그래서 <흉부외과>가 앞부분에서 보여준 본인이 실력이 있음에도 가족조차 살리지 못하는 현실은 이 과가 처한 문제를 잘 그려낸다. 의사가 가족도 살리지 못하는데, 타인은 오죽할까. 자본의 관점으로 의사들의 실적을 비교하는 병원의 문제는 이처럼 우리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사진:SBS)

<닥터스> 김래원, 그가 의사이자 교사인 이유

 

의사는 환자를 치유하고 교사는 세상을 치유한다. 아마도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의학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홍지홍(김래원)은 교사이면서 의사다. 본래는 의사였지만 자신의 실수로 환자가 죽게 된 후 병원을 떠나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홍지홍은 말한다. 의사나 교사가 그렇게 다른 직업은 아니라고.

 

'닥터스(사진출처:SBS)'

병든 환자를 치유하는 일이 의사가 하는 일인 것처럼,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건 다름 아닌 교사가 하는 일이다. 진정한 선생님은 희망 없고 좌절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꾸게 만든다. 유혜정(박신혜)은 그렇게 홍지홍이라는 교사에 의해 구원받는 학생이다.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재혼 그리고 버려져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는 그녀는 희망 없이 망가진다. 그런 그녀를 홍지홍은 보듬어주고 자극시켜 다시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는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의학드라마가 남자주인공을 굳이 교사로 세워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닥터스>라는 의학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을 명확히 해준다. <닥터스>는 환자를 치유하는 의사만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한다. 물론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의학드라마가 늘 보여주던 피가 철철 흐르고 긴박하게 메스가 움직이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의술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람이 사람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보다 큰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병실은 그래서 큰 의미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교실이 되고, 병원은 세상의 학교나 다를 바 없다. 홍지홍과 유혜정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지만 다시 병원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치유해주며 성장시키는 존재들로 만나게 된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환자로 나뉘지만, 비뚤어져 아픈 세상에서 우린 모두가 의사이면서 환자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그를 변화시키고 치유해주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상처주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 입는 환자.

 

<닥터스>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의학드라마지만 병원이라는 틀 밖으로 이야기가 확장되고, 치유의 의미가 상징화되면서 병원 밖 이야기 역시 의학드라마의 범주로 끌어안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확장된 관점으로 보면 배운 것 없어 욕이나 할 줄 안다며 스스로를 비하하지만, 유혜정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녀를 성장하게 해주는 할머니 강말순(김영애)이야말로 세상을 치유하는 의사다.

 

흔히 의학드라마는 병원을 세상의 축소판으로 그리지만, <닥터스>는 세상을 병원의 축소판으로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아픈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 고통을 나누고 상처를 이겨내게 해주는 사람들도. 그러고 보면 <닥터스>라는 제목은 병원에 있는 의사들만을 지칭한 것 같지가 않다. 아픈 세상에 빛이 되는 홍지홍이나 강말순 같은 모든 존재들을 포함한 지칭이다.

 

홍지홍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 단지 그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환자를 살려내는 멋진 의사라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더 도드라지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의 캐릭터는 <닥터스>라는 드라마가 그 따뜻한 느낌으로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기분 좋은 변화를 주려는 그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 세상을 치유하는 게 작은 위로라면, <닥터스>는 꿈꾼다. 자그마한 힘이지만 의사 같은 드라마가 되고 싶다고.

<굿닥터>가 보내는 어른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

 

“이제껏 내가 본 박시온은 로봇이었어. 무조건 환자를 고쳐야 함. 이 프로그램이 입력된 로봇.” <굿닥터>의 소아외과 부교수 김도한(주상욱)은 서번트 증후군으로 천재적인 의학적 지식과 진단 능력을 소유한 박시온(주원)을 로봇이라고 말한다. 즉 박시온이 오직 환자를 고쳐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진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나오는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라는 것.

 

'굿닥터(사진출처:KBS)'

이런 김도한의 생각은 병원이라는 곳이 뛰어난 의술만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즉 부교수로서 레지던트들의 책임을 져야 하는 김도한에게 박시온처럼 앞뒤 안 가리고 환자만을 고치겠다는 순수한 영혼은 위험 그 자체다. 병원은 나름의 위계질서 시스템으로 인해 굴러가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소아 외과장 고충만(조희봉)이 접대 골프를 받으러 간 사이, 담당 소아환자가 죽을 위기에 몰려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곳이 바로 병원이라는 곳이다.

 

물론 박시온에게 이런 시스템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병원이라는 곳이 시스템 지키려고 환자를 죽이는 곳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더 냉혹하다. 환자를 고치는 것은 때로는 환자를 위한 일이 아니라 담당 의사의 실적이기도 하고, 반대로 과실은 피해와 고통을 입은 환자보다 해당 의사의 책임회피에 더 몰두하게 만들기도 한다. 병원은 저 <하얀거탑>이 이미 보여준 바 있는 권력 투쟁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환자는 자칫 의사들의 권력 투쟁을 위한 소모품이 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러니 최고의 의술을 가진 의사지만 김도한에게 박시온은 위험한 존재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박시온을 이사회에서 레지던트로 받아들여준 건 사실 그를 천거한 최우석 병원장을 밀어낼 구실을 찾는 병원 내의 적들(?) 덕분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따라서 최우석 원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김도한에게 박시온이 고울 리가 없다. 그는 박시온에게 ‘의사정신’이 없다고 말한다. “서번트 신드롬? 천재성? 아니 이건 뇌의 역기능이고 부작용이야. 자폐의 또 다른 방식이고.”

 

이것은 <굿닥터>가 가진 독특한 문제의식이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소아과 의사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지 몰라도(극중에서 박시온은 끊임없는 치료로 최종 정상판정을 받은 캐릭터로 나온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의사가 환자라는 설정은 이미 <하얀거탑>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에도 나왔고 <브레인>에서도 극대화되어 보여질 정도로 관습화된 설정이다. 하지만 <굿닥터>는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질환의 독특한 특징이 박시온이라는 소아 외과 의사의 긍정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박시온은 뭐든 다 외워버리는 천재적인 의학지식을 갖춘 데다 판단력도 뛰어난 소아 외과 의사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어린 아이의 그것이다. 즉 의학적으로는 뛰어난 의술을 가졌지만, 그 어떤 어른들의 세계, 이를 테면 권력욕이나 성공에 대한 욕망 같은 것들이 전혀 끼어들지 않은 순수한 상태라는 점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의사는 그래서 환자들에게는 하나의 희망일 수밖에 없다.

 

아파서 병원에 가본 서민들이라면 그 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게다. 돈 없고 가난한 이들이 진료를 받는 것과 돈 많고 권력 있는 자들이 진료를 받는 것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그것은 단지 서비스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닐 게다. 누군가는 그래서 의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돈 없고 백 없어 죽는 곳이 병원이기도 하니 말이다.

 

레지던트로 들어와 의국에서의 첫 날을 지내고 돌아온 박시온은 잠결에 어린 시절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형(아이의 모습)이 자신의 등을 두드려주는 꿈을 꾼다. 어린 아이가 다 큰 어른의 등을 두드려주는 이 장면은 그래서 <굿닥터>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상징처럼 보인다. 박시온은 그 어떤 어른들의 세계가 어지럽게 펼쳐지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도 여전히 아이 때 누군가를 살리려 했던 그 마음 그대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만 노력하겠다는 것.

 

따라서 <굿닥터>가 앞으로 보여줄 상황들은 이 박시온이라는 아이의 마음을 가진 인물이 어떻게 어른들의 세상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가 하는 점이 되지 않을까. 박시온이 일으키는 성원대학병원 소아 외과의 일대 소동들은 그래서 우리네 어른들의 세계를 되돌아보게 만들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굿닥터>에 쏟아지는 호평은 그래서 저 심지어 참담하게까지 여겨질 때가 많은 어른들의 세상에 대한 준엄한 경고에서 비롯되는 지도 모르겠다.

<골든타임>의 이성민, 서민들의 희망된 이유

 

세상의 모든 의사가 <골든타임>의 최인혁(이성민) 같다면... 이 의사, 정말 특별하다.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한다. 수술금지 조치가 내려져 수술을 하면 징계를 먹을 것을 알면서도 당장 위급한 환자를 위해 메스를 들고, 쫓겨나듯 병원을 나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응급환자를 걱정한다. 사고 현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중증 부상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까지 이송해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자 본인이 수술을 해서 위기를 넘긴다. 심지어 다른 병원에서 위급한 환자를 도와달라고 하자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 환자를 구한다.

 

'골든타임'(사진출처:MBC)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의사가 최인혁 같지는 않다. 최인혁이 구해놓은 환자가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공표되고 언론에 관심을 끌자, 그 때까지 나 몰라라 했던 외과과장은 그것을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환자를 모두에게 평등한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발판으로 보는 것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과에게 책임을 넘기려고 하는 이 의사 같지 않은 의사들이 꽤 많다는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 응급실의 환자들이 처한 상황은 어쩌면 고스란히 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의학드라마에서 환자들이란 늘 약자로 존재했다. 따라서 그 약자를 치료해주고 새 생명을 주는 의사라는 존재가 더더욱 부각될 수 있었던 것. 바로 이 풍경은 영웅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힘겨운 약자의 목숨을 살리는 영웅들의 고군분투. 의학드라마 하면 늘 등장하기 마련인 천재 의사들은 그 영웅 신화의 재림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의학드라마에서 환자는 종종 소외되기도 한다. <하얀거탑>의 천재외과의 장준혁(김명민)이 그의 라이벌인 해외파 노민국(차인표)과 환자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이렇게 소외되는 환자를 섬뜩하게 그려낸다. 여기서 환자는 그들의 입지와 대결을 위한 하나의 재료가 되어버린다.

 

<골든타임>에서도 환자가 처한 입장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온몸에 중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온 위급한 환자 앞에서 각과의 의사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서로 수술을 미루다가 결국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장면은, 병 때문이 아니라 의사들의 책임회피로 환자가 죽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또 그것은 돈과 권력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VIP 환자가 들어오면 그 실적을 보이기 위해 서로 수술을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그렇다. 이 씁쓸한 현실 속에서 의사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그저 권력자일 뿐이다.

 

<골든타임>의 최인혁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그가 여타의 의학드라마에서 등장했던 천재적인 의사라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의 환자를 살리겠다는 그 의지는 병원이라는 권력 시스템과 체계를 뛰어넘는다. 도대체 그런 시스템이 한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 있단 말인가. <골든타임>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이것은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이야기가 된다. 즉 뜻과 소신을 가지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다만 권력에만 줄을 대는 이들에 의해 쫓겨나는 그 풍경은 이 사회가 가진 불공정함을 그려낸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진짜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 최인혁은 그래서 썩어버린 세상에 유일한 희망처럼 보인다. 이것은 <골든타임>이 의학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안에 상당히 정치적인 함의를 포함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최인혁은 열심히 살지만 힘겨운 서민들이 기다리는 구세주처럼 보인다.

 

<골든타임>이 여타의 의학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의사를 단순히 영웅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의사들은 실수투성이다. 초짜 인턴 이민우(이선균)는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렇게 실수투성이의 이민우가 그저 민폐로만 보이지 않고 어떤 희망으로 보이는 이유는 결국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이 의사로서의 기술보다는 그 의사의 환자를 보는 마음이라는 것이 이 캐릭터를 통해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민우는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무능하지만, 마음만은 이 병원의 과장들보다 훨씬 의사답다.

 

최인혁은 바로 이런 실수투성이지만 의사로서 생명의 고귀함을 포기하지 않는 순수함을 지닌 이민우 같은 존재에게 하나의 멘토가 된다. 세중병원이라는 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부조리한 공간에서 최인혁 같은 의사가 서 있고 그를 바라보는 이민우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최인혁에 대한 열광은 그를 연기하는 이성민에 대한 열광으로도 이어진다. 어찌 보면 이성민이라는 배우 역시 드라마나 영화 판에서 해왔던 필모그라피에 비해 훨씬 평가절하되어 있었던 인물이 아닌가. 겉으로만 화려한 주역들의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해 온 이성민은 그래서 최인혁이라는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세상에 이런 인물들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의사가 환자라니... '브레인'의 기막힌 설정

'브레인'(사진출처:KBS)

초기 의학드라마에서 의사들의 이야기는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했다. 전문적인 소양 없이 주로 멜로가 중심이 되다보니 '가운입고 연애하는' 무늬만 의학드라마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이 호평 받은 것은 좀 더 디테일한 병원의 이야기들이 전문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멜로는 여기서도 빠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병과 그 병을 앓고 치유하고 이겨내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풍부했기 때문에 '무늬만 의학드라마'와는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환자들의 이야기를 미니시리즈로 다루는 것에는 한 가지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결국 에피소드별로 이야기가 뚝뚝 끊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드라마가 어떤 흐름을 타야 시청자들의 이목을 지속적으로 잡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로 지목되었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의사를 다시 중심에 세우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과거처럼 연애만 하는 의사가 아니다. 진지한 의사로서의 고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얀거탑'은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좀 더 보편적인 조직생활의 정치와 시스템, 그리고 그 속에 서게 되는 한 개인의 욕망과 좌절을 담아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봉달희라는 의사가 병원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그 후에 의학드라마는 '뉴하트', '종합병원2'처럼 다시 과거 환자 중심의 이야기로 회귀한 듯 했다. 그 와중에 '카인과 아벨' 같은 액션과 복수극이 뒤섞인 특이한 의학드라마가 등장하긴 했지만 어딘지 의학드라마는 정체기를 맞이한 듯 했다. 적어도 '브레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브레인'의 초기 반응이 소소했던 것은 이 의학드라마가 후반부에 보여줄 반전을 내내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인'은 그저 '하얀거탑'처럼 뇌수술 전문의들의 성공을 향한 욕망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간부터 그 진면목을 드러내면서 '브레인'은 반전을 시작했다. 이 드라마는 내내 이강훈(신하균)이나 김상철(정진영) 같은 의사들이 환자를 수술하는 장면들을 마치 대결하듯 그려 넣고 있지만, 실상 그리려는 것은 바로 이들 의사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였던 것.

즉 의사가 환자가 되는 이 기막힌 설정은 과거 김상철이 이강훈의 아버지 수술에 욕심을 내다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건에서 비롯된다. 이 사건은 이강훈과 김상철을 모두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환자로 만들어버린다. 김상철은 그 아픈 상처를 잊기 위해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리고(없는 일처럼 살아간다), 이강훈은 실력에 대한 집착(진짜 실력을 갖는 것과 그것을 인정받는 것)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거의 사건이 이강훈의 어머니를 통해 다시 현재로 환기된다는 점이다. 뇌 질환을 가진 이강훈의 어머니에 대해 이강훈은 집착을 드러내고(결국 김상철이 과거에 했던 그 경험을 하게 된다), 김상철은 덮어버렸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김상철이 스스로 이강훈에게 "내가 살인자임을 증명하지 않고 도망치느냐?"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기묘하다. 그것은 마치 환자가 의사를 붙잡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강훈이 모든 사실을 밝혀내고 김상철이 가진 죄를 묻는 그 과정은 어찌 보면, 이강훈이라는 의사가 김상철이라는 환자의 뇌질환(기억의 문제)을 수술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따라서 '브레인'이 수술하고 있는 것은 단지 환자들만이 아니다. 거기 의사들의 기억에 종양처럼 자라고 있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이 바로 '브레인'이 진짜 수술하려는 병변이다.

'브레인'이 다소 괴기스럽고 때로는 감정 과잉의 의사들의 면면을 드러내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아픈 기억을 앓는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브레인'이 기존 의학드라마의 계보에서 성취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의사가 갖는 병에 대한 진지한 접근, 그로 인해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기억의 보편적 문제로 의학드라마의 지평을 넓힌 것. '브레인'의 가치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572)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361)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132,073
  • 7261,182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