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빵생활'이 건드린 '노오력'과 최선 요구하는 사회“나 이제 그만 노력할래.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프로야구 슈퍼스타인 김제혁(박해수)은 의외로 선선히 은퇴를 선언했다. 김제혁 선수가 슈퍼스타가 됐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인내의 아이콘’이고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위기를 맞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인내와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했던 그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깨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재활치료를 통해 재기할 거라 주변사람들은 믿고 있었지만 김제혁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심지어 “야구만 은퇴하면 뭐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김제혁의 이 은퇴선언이 담는 함의는 작지 않다. 대부분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포기보다는 노력을 통한 극복을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왜 이렇게 선선히 포기를 선언하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김제혁이 어쩌다 듣게 된 의사와 팀 매니저들 사이의 대화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그 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만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그 노력의 아이콘이라는 굴레로 스스로 하고픈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결국 은퇴선언 방송이 되어버린 감방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김제혁이 요구한 건 담배 한 대였다. 운동선수로서 모든 걸 절제하고 살아왔던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건 이제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김제혁이 마침 감방 동료들이 벌이는 술판에서 “저도 술 잘 마셔요”하며 합류하는 대목도 그렇다. 그는 담배도 필 줄 알고 술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 다만 ‘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 극도로 절제했을 뿐.

김제혁이라는 인물이 어딘지 느리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아채기 힘들게 된 것도 모두가 그에게 희망하는 슈퍼스타로서의 면면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다. 때 아닌 사건에 휘말려 구치소에 가게 되고 또 거기서 교도소로까지 오게 됐으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야구를 포기하게 된 상황. 이 드라마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제혁은 이처럼 끝없이 현실적인 추락을 거듭하는 인물이다. 어째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성공하는 인물이 아닌 추락하는 인물로 선택했을까.

여기에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가진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그건 섣불리 성공이나 꿈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사회는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꿈과 노력으로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현실인가. 이런 현실을 마주한 청춘들은 그래서 그 노력을 ‘노오력’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김제혁은 자신이 그런 ‘노오력’의 아이콘이 되어 누군가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헛된 희망으로 남기보다는 소소해도 행복한 삶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그동안 절제하며 살아오느라 놓쳐온 많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보려 한다. ‘노오력’을 해오느라 무표정했던 삶에 표정을 찾아보기로 한다.

김제혁의 선택은 사회가 보기에는 바보 같은 선택이고 패배자 같은 선택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최선의 ‘슬기로운 선택’이다. 없는 희망은 애써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빨리 포기하고 현실적인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의 청춘들이 막막한 현실과 맞닥뜨려 갖게 된 ‘슬기로운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도대체 현재를 희생시키고 포기하면서 얻는 미래의 성공과 꿈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도 불확실한 미래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김제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건 ‘부정의 긍정화’다. 즉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이를 깨쳐나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것을 빨리 긍정하는 것이라는 걸 이 인물은 보여준다. 실로 감방생활을 닮은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나름 저마다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따뜻하게도 보여주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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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곤’, 짧아도 묵직한 여운으로 남은 까닭

우리가 희망하는 언론이 이런 것이 아닐까. tvN 수목드라마 <아르곤>은 아쉽게도 8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으로 끝을 맺었지만 여러모로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 엔딩까지 바른 언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줬다. 

'아르곤(사진출처:tvN)'

미드타운 비리 보도에 대한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이 됐던 건 그것만큼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미드타운의 건물이 붕괴되고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현장소장을 희생양 삼아 넘기려는 이들. 그들은 정관계와 경제계, 검찰, 언론까지 뒤얽힌 게이트로 결국 부실공사로 인해 미드타운이 붕괴된 원인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았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한다. 멀게는 성수대교 붕괴와 삼품백화점 붕괴부터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그것은 천재지변이 아니라 비리가 누적되어 만들어진 참담한 결과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건사고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 데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했던 언론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서다. 언론 또한 게이트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드타운 비리를 보도하려 하자 HBC 사장이 나서서 모든 방송들을 사전 검열하려 한다. 그리고 아르곤은 방송 자체가 중단됐고, 기자들은 아르곤 스튜디오 출입이 금지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미드타운 건설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김백진(김주혁) 역시 자기감정에 휘둘려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 일에 일조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는 점이다. 결국 이 사실을 보도하면 그가 지탄받을 일은 뻔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언론상 시상식장에서 자신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과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언론이 잘못한 것은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제대로 고치고 가야 한다는 그 소신을 지킨 것. 결국 그의 자성으로부터 미드타운 비리는 밝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한 적폐청산의 문제가 결국은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을 전제로 한다는 걸 <아르곤>은 보여줬다. 물론 그는 방송사를 떠나야 했지만. 

<아르곤>은 진실을 보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 드라마였다. 섬양식품의 신제품 분유로 인해 아기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런 거대기업과 맞서는 일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그 보도를 주도했던 신철 기자(박원상)는 내부고발을 한 직원의 자살로 인해 오히려 강압적으로 취재를 한 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하지만 그 절망감을 딛고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그래도 꿋꿋이 진실을 사실에 근거해 보도해야 한다는 김백진의 소신이었다. 그는 섬양식품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보도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그것이 설혹 자신들의 과오를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껏 많은 드라마들이 언론을 소재로 했고 또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아르곤>이 달랐던 건 보다 치열한 방송보도의 현장을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은 바로 김백진이었다. 그 같은 인물이야말로 우리네 대중들이 원하는 언론인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에서 그는 언론인상을 거부하지만 그래서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에게 마음속으로 상을 주었을 것이다. <아르곤>은 짧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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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을 그냥 넘길 순...”, ‘저수지게임’ 그 질깃함의 이유

다큐 영화 <저수지 게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무려 5년째 추적해온 주진우 기자는 스스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모든 정황들이 있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사진출처:영화<저수지게임>

그리고 이런 결과는 이미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 들어온 관객들은 알고 있다. 만일 주진우 기자의 추적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를 영화관이 아닌 뉴스를 통해 봤을 것이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민들 대다수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속 시원한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주진우 기자 말대로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저수지 게임>이 담고 있는 것은 속 시원한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담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좀체 시원해지지 않는다.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저 정도라면 포기했을 거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경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진우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5년을 추적했고 지금도 그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결과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담긴 집념을 담는다.

<저수지 게임>의 주진우 기자는 MB의 비자금을 추적하며 하나의 패턴을 발견한다. 해외 투자라는 명목으로 망할 투자를 공기업들이 나서서 하고 그래서 적게는 수백억에 이르는 투자금을 공중분해시켜 버린다. 사라진 돈의 출처가 불분명한 가운데, 이상하게도 손실을 본 투자자인 공기업들은 이를 회수하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고소도 하지 않는다. 주진우 기자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진우 기자가 스스로 “열이 받는다”고 말하고 그 말에 관객들도 공감하는 까닭은 그 많은 돈들이 사실은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이다. 결국 우리 돈을 가져가 망할 투자를 하고 돈을 날려버린 뒤 찾으려는 노력도 또 책임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바보로 전락한다. 정부는 혹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공범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주진우 기자가 끊임없이 관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통해 어려운 진술을 받아내고, 또 해외로 직접 날아가 관련자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에 우리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제발 증거가 나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주진우 기자와 함께 사건을 추적했던 김어준은 말했다. 자금 추적을 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이 일상이었다고.

그러니 5년여의 추적이 실패로 돌아올 이 일을 그들 또한 몰랐을 리 없다. 심지어 고소도 당했다. 그런데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일에 집착하냐고 감독이 묻는다. 기자정신 같은 건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눈앞의 “부정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말한다. 외면할 수는 없다는 거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뒤쫓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것. 

그래서 관객들이 실패담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수지 게임>을 들여다보려는 건 적어도 주진우 기자의 그 질깃질깃한 집념에 동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지지를 표하고 싶어서다. 어떤 안도감이라도 갖고 싶어서다. 보는 내내 화가 나고 허탈한 한숨이 터지지만 그래도 영화관을 나오며 어떤 뭉클함 같은 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그 의아함에 담겨지는 놀라운 집념에서 어떤 작은 희망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 그래서 그의 실패담에는 단서가 붙었다. ‘아직까지는’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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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남궁민이라는 기레기에 희망을 거는 이유

SBS 새 월화드라마 <조작>은 너무나 현실 같은 드라마다. 정관계와 손이 닿아 사건을 은폐하고 사실을 조작하는 거대 권력을 가진 언론사. 그 와중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하는 검사와 기자들. 하지만 정관계와 언론의 커넥션 속에서 희생되는 그들.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뻔히 보이는 그 비리를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그 단단한 적폐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력감을 느껴왔던가. 

'조작(사진출처:SBS)'

<조작>의 한무영(남궁민)은 그 비리 앞에 희생된 형으로 인해 기레기를 자청하며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인물이다. 이석민(유준상)과 권소라(엄지원)는 진실을 밝히려다 권력의 힘 앞에서 속절없이 꺾여버린 기자와 검사다. <조작>이 다루려는 이야기의 그림은 그래서 첫 회에 이미 모두 포진되었다. 이렇게 밀려난 한무영과 이석민, 권소라가 거대권력의 손발이 되어 스스로도 권력이 되어버린 언론과 싸워나가는 이야기. 

한무영이 스스로를 기레기라 부르는 건 자조적이면서 동시에 진짜 기레기들에 대한 비판이 들어가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협박을 하기도 하지만 한무영은 그런 행동의 목적이 분명하다. 진실을 위해 뭐든 실행에 옮기는 인물. 그래서 겉으로는 기자인 척 끝까지 파보라고 등을 두드려주면서도 뒤에서는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구태원(문성근) 같은 진짜 기레기와는 다르다. 그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는 건 그것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세상을 형의 죽음을 통해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상식적인 세상을 만들려는 인물의 주인공으로 남궁민이라는 배우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 지난 작품이었던 <김과장>에서 김과장 역할을 연기한 남궁민은 역시 TQ그룹의 비리와 맞서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식을 동원하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도 해낸 바 있다. 물론 이번 <조작>에서의 한무영은 웃음기를 쪽 뺀 진지한 캐릭터지만 거대 권력과 엉뚱한 방식으로 맞서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김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한무영이 스스로를 기레기라고 부르며, 그런 방식으로 해야 겨우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현실이 얼마나 뒤틀어져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즉 우리는 이미 언론이나 검찰을 잘 믿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검찰이 무슨 발표를 하면 액면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진 정치 역학적인 권력의 대결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언론 보도 역시 그 이면에 숨겨진 내막을 먼저 떠올리고 심지어 음모론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김과장>에서도 그랬지만 <조작>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은 상식을 깨는 인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야 비로소 시청자들이 그 주인공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오히려 그 이야기의 리얼함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기레기라 내놓은 한무영에게 그나마 어떤 희망을 갖는 이유다. 

사실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MBC <스포트라이트>는 손예진이 주연으로 나왔지만 한 자릿수 시청률로 종영했고, 그나마 괜찮은 성적을 가져갔다고 하는 <피노키오> 역시 13%(닐슨 코리아)가 최고 시청률이었다. 이렇게 된 건 드라마 내적인 문제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기자라는 직종 자체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작>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JTBC의 보도와 그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목도한 대중들이 새삼 언론의 올바른 힘이 얼마나 희망을 갖게 하는가를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조작>은 바로 그 현실의 힘과 그래서 생겨난 적폐청산에 대한 희망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드라마다. 남궁민 특유의 돈키호테식 대결의식이 또 한 번 일을 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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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국을 예견한 <밀회>의 소름끼치는 폭로들

 

그 사람들 기분 좋게 돈 쓰게 하고 또 돈 벌고 그런 걸 두루 돕는 게 내 일이야. 먹이사슬. 계급 그런 말 들어봤어?” “꼭대기는 그 여자가 아니라 돈이다. 아니구나. 진짜 꼭대기는 돈이면 다 살 수 있다고 끝도 없이 속삭이는 마귀.” JTBC에서 방영됐던 <밀회>의 대사들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아니 최근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국을 이미 <밀회>는 예견하고 있었다.

 

'밀회(사진출처:JTBC)'

그것은 단지 등장인물의 이름과 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거론되는 이름이나 병원 이름이 소름끼치도록 똑같고, 그 상황도 딱 맞아떨어져서가 아니다. <밀회>라는 드라마가 하려던 이야기가 지금 현재 뉴스에서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회>는 상류층에 기생해 살아가며 스스로를 우아한 노비라 부르는 혜원(김희애)이 선재(유아인)라는 순수한 청춘을 만나 일종의 내부고발을 통해 그 더러운 실체를 까발리고 노비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시국에서 <밀회>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건, 이 드라마가 일찍이 이러한 내부고발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른바 상류사회의 추악한 진면목이 그저 드라마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는 예술재단과 학원까지 운영하는 서한그룹 서필원 회장(김용건)과 그의 아내 한성숙(심혜진), 딸 서영우(김혜은)가 살아가는 첫 번째 세계 상류층과, 서영우의 대학친구지만 지금은 그 밑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혜원이 사는 두 번째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선재라는 전형적인 빈곤층 청춘이 살아가는 세 번째 세계가 등장한다. 이 세 개의 세계를 통해 드라마는 갑질하는 상류층의 삶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포획하고 있는가를 탐구했다.

 

그것은 자본의 종속관계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친구 사이지만 서영우가 혜원을 비서처럼 부리는 것처럼 첫 번째 세계는 두 번째 세계를 종속하고, 또 혜원이 피아노에 천재성을 가진 이선재를 천거하고 지원하려 하는 것처럼 두 번째 세계는 세 번째 세계를 종속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본에 의해 나뉜 수직적인 서열이 존재한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 있는 상류층의 결정은 저 밑바닥까지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예술재단에서 이선재 같은 천재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보다는 자신들이 사실상 돈거래로 상류층 자제들을 입학시켜주고 있는 것을 은폐하기 위함이다.

 

어쩌면 이렇게 날카롭게 현재 우리가 직면하게 된 부조리한 우리네 종속 시스템을 그려냈을까. 물론 드라마는 세 번째 세계, 즉 선재에 의해 균열을 일으킨 두 번째 세계 혜원이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욕망의 도구로 사용했던그 첫 번째 세계를 폭로하는 것으로 상황을 뒤집는다. 지금 현재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 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광화문 광장에 집결한 종속 없는 순수한 세 번째 세계가 비판적 의식을 갖고 있던 언론과 야권의 두 번째 세계와 함께 첫 번째 세계의 부조리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혜원이 빠져든 욕망을 부추기는 마귀의 속삭임을 이겨내고 선재가 말하는 순수한 세계를 복원해낼 수 있을까. “모차르트가요. 어느 날 갑자기 난 이제부터 귀족들한테 주문 안 받는다. 내가 쓰고 싶은 것만 쓸 거다. 그러다가 일찍 죽은 거라면서요. 그러다 미치고 병들고.” 선재가 이렇게 말하자 혜원은 애써 부정한다. “부자들 돈으로 먹고 살면서도 얼마든지 제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다. 선재의 그 한 마디에 마치 노예근성처럼 애써 저 견고한 상류사회의 시스템을 변호하지만 그 이야기는 자신이 예전 한 사이트에서 막귀형이란 이름으로 선재에게 던졌던 말과는 상반된다.

 

그래서 선재가 그 막귀형의 이야기를 혜원에게 들려주자 비로소 그녀는 자신의 양분된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제가 가끔 가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거기 어떤 형이 그러더라구요. 스펙따위 필요 없고 그냥 막 즐기면서 살라고.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끝까지 즐겨주는 거요. 저는 이 곡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비트 16, 32 막 쪼개갖고 그래서 어깨 빠지게 연습하고 변주 8번 스타카토 더럽게 맘에 안 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뻥 뚫려서 기분 째지고 그게 최고로 사랑해주는 거죠. 라흐마니노프랑 파가니니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게 장땡이잖아요. 먹이사슬이고 먹이고 뭐.”

 

매일 쏟아져 나오는 저들의 갑질 이야기와 거기에 복무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를 집단적은 우울증으로 몰아넣는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사태의 끝에서 우리는 <밀회>가 보여줬던 결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해줬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 내 의지로는 못 했을 거야.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혜원이 선재에게 남긴 그 허허로운 말에 담긴 희망. 이즈음 <밀회>라는 드라마가 다시 보고픈 까닭은,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실체를 마주하고 거기서 어떤 것이 희망의 길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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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가 조명한 광화문 집회, 거기서 발견한 희망

 

이번 최순실 게이트JTBC <뉴스룸>을 비롯해 <썰전>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주말 저녁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5%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주목받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최순실 게이트특집으로 1편에서는 최순실 라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먹잇감으로 작업을 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한데 이어, 2편에서는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을 때 터졌던 영남대 사태와 유사한 평행이론을 보여준다는 걸 보여줬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사진출처:JTBC)'

3편에서는 최순실 일가의 재산축적 미스테리를 추적하기에 앞서 지난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집회현장을 직접 찾은 이규연의 시선으로 그 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규연이 거기서 발견한 건 역설적이게도 희망이었다. 분노로 광화문 광장에 나온 것이지만 집회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김제동이 표현한 대로 일등 국민의 면모 그대로였다.

 

묵묵히 바닥에 남겨진 쓰레기를 줍는 한 청년에게 왜 이걸 하고 있냐고 이규연이 묻자, 그는 늦게 도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100만 명의 인파가 몰린 집회 현장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질서정연한 모습이었고, 집회가 끝나고 난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아이들과 손잡고 나온 부모들은 저마다 아이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나왔다고 말했고, 오랜 만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온 딸은 이런 시위 현장에 처음이라며 모두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마음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그 곳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던 세대 갈등은 보이지 않았다. 이규연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그토록 강조했던 세대통합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를 통해 분출된 민심들에 의해 통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규연이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은 달라진 집회 문화였다. 과거 876.10 항쟁 때만 해도 집회가 끝나고 난 거리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광화문에서는 시민들 스스로가 나서 비폭력을 외치는 모습이 보여 졌다. 한 격앙된 시민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자 시민과 전경이 한 목소리로 비폭력을 외치는 장면도 연출됐다.

 

한 고등학생은 시민들과 대치하고 서 있는 전경에게 음료수를 놓고 가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규연이 따라가 왜 우느냐고 묻자, “저 분들도 저러고 싶지 않을 거 아니냐며 전경의 입장을 이해하는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한 아주머니는 전경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대통령 잘못 만나 우리 아들들이 불쌍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목소리를 낼 공간을 내준다면 굳이 서로 완력을 쓰고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규연의 말대로 평화는 힘이 아니라 소통으로 유지됨을 광화문은 알고 있었다는 것. 이규연은 광화문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당당한 미래세대세대공감의 현장”, “풍자로 승화시킨 울분성숙한 시민의식을 봤다며 그것은 새로운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가장 많은 비판을 해온 대목이 바로 불통이라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적인 내용 역시 바로 이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소통해야 할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소통하지 말아야할 사람들과 소통한 데서 비롯된 비극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낸 근본적이 이유라는 것. 그래서 이번 광화문의 촛불은 그동안 막혀 있던 이 소통의 욕망이 분출되어 나온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 양상이 비폭력으로 소통공감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 그건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다는 걸 국민들이 확인해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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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박신혜와 이성경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

 

이제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종영을 앞두고 있다. 20%를 넘긴 최고시청률. 최근 지상파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그 능선을 <닥터스>는 어떻게 넘었던 걸까. 흔한 의학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또 달달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닥터스>는 여타의 의학드라마와도 또 멜로드라마와도 다른 결을 보여줬다. 그건 관계를 통한 인물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의 여자주인공인 유혜정(박신혜)과 그녀와 대립적 위치에 서 있던 진서우(이성경)의 변화와 성장은 이 드라마의 색다른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불량하게 살아가던 유혜정은 할머니인 강말순(김영애)과 선생님 홍지홍(김래원)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좋은 영향에는 친구였던 진서우 또한 일조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 홍지홍과 유혜정이 가까워진 것을 본 진서우는 그 질시가 그녀를 엇나가게 만든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유혜정의 비극(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현실과 마주하게 된)은 그녀가 의사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된다. 드라마는 좋은 영향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도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의사가 된 유혜정은 진서우의 아버지인 진명훈(엄효섭)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되면서 본인도 고통스러워진다. 그런 그녀를 다시 되돌리는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다. 홍지홍은 복수가 그녀 자신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내는 건 진서우의 변화다. 늘 대립하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친구로서의 관계 또한 유지해온 진서우는 유혜정을 통해 아버지의 잘못을 알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사죄한다. 진서우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유혜정 역시 변화하고 성장하게 됐다는 것.

 

사실 이런 화해적인 결말이 조금은 미진함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봐왔던 많은 드라마들 속에서 악역의 최후나 몰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본래 드라마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복수극이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영향을 받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걸 뉘우치면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극적 갈등이 드라마의 관건이라고 얘기되는 현실에서 이 같은 화해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닥터스>는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희망적인 화해를 담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닥터스>가 얻어낸 것은 특유의 따뜻함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던 건 바로 그 위로와 위안의 느낌이 충분했던 따뜻함이 아닐까.

 

무엇보다 연기자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박신혜와 어깨에 힘을 뺌으로써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김래원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 윤균상과 이성경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 그 자체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의 치유를 보여주었고, 멜로드라마지만 남녀 간의 사랑만큼 인간과 인간의 휴머니즘을 보여준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대본의 힘은 힘겨운 현실을 마주한 서민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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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재난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건

 

<터널>이라는 영화의 예고를 잠깐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가질 지도 모른다. 무너진 터널에 갇힌 사람의 처절한 사투를 담은 영화라니! 그잖아도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에 이런 선입견은 영화 <터널>에는 하나의 커다란 진입장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단언컨대 <터널>은 그런 퍽퍽한 고구마 같은 영화가 아니다.

 

사진출처:영화<터널>

물론 <괴물>에서부터 현재의 <부산행>까지 관통하는 우리네 재난 영화의 공식과 메시지가 <터널>에도 여전히 깔려 있다. 재난 상황보다 우리를 더 절망적으로 만들어내는 콘트롤 타워의 부재와 선정적인 언론, 경제적 논리를 내세워 구조를 기다리는 생존자를 저버리는 공직자들, 생존자의 구출보다는 자신이 언론에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 등등.

 

하지만 <터널>은 흥미롭게도 이러한 재난 영화의 공식처럼 등장하는 절망적 현실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재난 영화에서 터널에 갇힌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며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또한 그렇게 갇힌 생존자를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119 대원들의 이야기도 그 절실함과 간절함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 곳에서도 역시 훈훈한 웃음이 피어나고 유머 역시 멈추지 않는다. <터널>에 갇힌 답답한 이야기? 오히려 <터널>은 그런 폐쇄적인 공간에 갇힌 이를 구해내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웃음을 멈추지 않는 영화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매몰된 터널에 갇힌 주인공 정수(하정우)와 그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소방대원 대경(오달수)의 독특한 캐릭터 덕분이다. 정수는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다. 처음 터널이 무너져 내리고 간신히 살아남아 스마트폰으로 119와 연결됐을 때 그는 당연하다는 듯 언제 자신을 구하러 올 거냐는 낙관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 구조작업은 의외로 지난한 사투로 돌변하지만 그 때마다 그는 절망하기보다는 그래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것은 대경도 마찬가지다. 그는 구조작업에서는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며 반드시 정수를 구하겠다고 단언한다. 기자들이 취재를 명목으로 특종만을 노릴 때, 정치인들이 도룡뇽 하나 때문에 건설이 멈춰져 입은 경제적 손실 이야기를 하고 터널 붕괴로 멈춰버린 제2 터널 공사 재개를 얘기할 때, 대경만은 거기 묻혀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이처럼 답답한 터널 속에서도 훈훈한 웃음이 피어나올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은 하정우와 오달수라는 배우들의 저력이 한 몫을 차지한다. 이미 <테러 라이브>에서 두 시간 가까이 그 얼굴만 쳐다봐도 쫄깃한 긴장감과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걸 알려줬던 하정우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물론 신스틸러의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국민배우가 되어가는 오달수의 웃음과 감동을 넘나드는 천연덕스런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결코 시원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무더위처럼 실로 <터널> 같은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 <터널>은 그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터널을 빠져나오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무더위에 답답할 것 같다는 건 선입견이다. 오히려 무더위 때문에라도 그 답답함을 어떻게 이겨내는가를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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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시대>, 가장 찬란해야할 청춘들의 씁쓸한 현실

 

나 좋아해요? 아직도 나 좋아해요? 좋아하지 마요. 누가 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약해져요. 여기서 약해지면 진짜 끝장이에요. 그러니까 나 좋아하지 마요.”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의 윤진명(한예리)은 자신이 알바로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만난 박재완(윤박)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녀는 어쩌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받는 일을 밀어내야 하는 입장에 처한 걸까.

 

'청춘시대(사진출처:JTBC)'

그녀는 맹렬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잡는 중이다. 몇 년 째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은 그녀에게는 아픔이면서 동시에 짐이다. 동생이 위급해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그녀는 오열하던 엄마가 동생이 회복됐다는 이야기에 멍해져버리는 모습을 목도한다. 동생은 그렇게 살아났지만 그건 또한 그 엄마와 누나에게는 지독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윤진명이라는 캐릭터가 <청춘시대>를 통해 전하는 청춘의 단상은 처절하다. 그녀는 거의 웃지 않고 말할 때도 또박 또박 할 말만 던진다. 그리고 알바에서 알바로 넘어가는 삶을 전전한다. 그녀가 그 때 그 때 하는 건 빼고 정기적으로 하는 알바만 3개다. 학생 과외,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그리고 새벽 편의점 알바.

 

손님들이 몰리는 금토일 주 3회를 하는 레스토랑 알바를 그녀가 무려 2년째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주말의 휴식 따위 반납한 지 오래라는 걸 말해준다. 그녀가 유일하게 일주일에 딱 한 번 자신에게 주는 휴식이라고는 맥주 한 잔 혼자 집에서 마시는 정도다. 새벽에 편의점 알바를 하는 까닭은 손님이 별로 없는 그 시간대를 이용해 공부를 하려는 목적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버는 돈은 과외비 30만원, 시급 7천 원 받는 레스토랑 알바비 40만원, 주중 56시간씩 30시간 편의점 알바로 버는 72만원. 대충 140만 원 정도다. 많이 버는 것 같지만 그 중 일부는 동생의 병원비로 들어간다. 그녀는 쉴 새 없이 알바에서 알바로 뛰어다니고 어떤 면으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버텨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간에 갑자기 끼어든 박재완의 친절은 그래서 그녀를 흔들리게 한다. 무심한 표정으로 버텨내던 그녀의 얼굴에 자꾸만 웃음 같은 걸 피어나게 하고 기대감 같은 걸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기대감과 희망이 무너졌을 때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녀가 겪어온 삶 때문이다. 그녀도 한 때는 평범이라는 단어를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토록 죽도록 일해 고작 하고 싶은 것이 대기업 직원이다. 그녀는 평범해지고 싶어 한다. 그녀가 평균 이하의 위치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하고 묻는 박재완의 물음에 그녀는 내 동생이 안 죽었어요.”라고 답한다. 그 말 속에는 이 가녀린 청춘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현실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녀는 박재완에게 이별통보를 해놓고는 뒤늦게 그 아픔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걸 깨닫는다. 밤늦게 홀로 오열하는 그녀를 같은 쉐어하우스에 사는 청춘들이 보듬어 안는다.

 

박재완이 그녀의 마음에 슬쩍 들어오던 날 창가에서 그를 보고 잠시 자신의 견디는 삶바깥으로 나왔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창문에 손가락을 찧어 손톱이 들려버린다. 그 상처 난 손톱은 아마도 그녀가 처한 현실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마치 그렇게 덜렁대는 손톱처럼 아슬아슬하고 아픈 일이라는 걸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결국 손톱을 떼어내고 울먹이며 쉐어하우스 메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손톱이 빠졌는데 이렇게 아플 줄 몰랐어. 아파서 죽을 거 같애. 아파서. 아파서 죽을 거 같애.”

 

손톱이 빠지는 고통. 어쩌면 그것보다 더 아픈 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매일 매일을 버텨내야 하는 그녀의 현실일 것이다. <청춘시대>라는 어딘지 달달할 것처럼 여겨지는 드라마는 이처럼 짠 내 물씬 풍기는 현실로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물론 그 겉모습은 청춘들의 발랄함으로 경쾌하게 그려지지만, 그 청춘의 달콤함만이 아닌 짠 내 나는 현실을 <청춘시대>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이 보다 솔직한 지금의 청춘의 자화상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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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김래원, 그가 의사이자 교사인 이유

 

의사는 환자를 치유하고 교사는 세상을 치유한다. 아마도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의학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홍지홍(김래원)은 교사이면서 의사다. 본래는 의사였지만 자신의 실수로 환자가 죽게 된 후 병원을 떠나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홍지홍은 말한다. 의사나 교사가 그렇게 다른 직업은 아니라고.

 

'닥터스(사진출처:SBS)'

병든 환자를 치유하는 일이 의사가 하는 일인 것처럼,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건 다름 아닌 교사가 하는 일이다. 진정한 선생님은 희망 없고 좌절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꾸게 만든다. 유혜정(박신혜)은 그렇게 홍지홍이라는 교사에 의해 구원받는 학생이다.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재혼 그리고 버려져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는 그녀는 희망 없이 망가진다. 그런 그녀를 홍지홍은 보듬어주고 자극시켜 다시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는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의학드라마가 남자주인공을 굳이 교사로 세워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닥터스>라는 의학드라마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을 명확히 해준다. <닥터스>는 환자를 치유하는 의사만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한다. 물론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의학드라마가 늘 보여주던 피가 철철 흐르고 긴박하게 메스가 움직이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치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이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의술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람이 사람을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보다 큰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병실은 그래서 큰 의미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교실이 되고, 병원은 세상의 학교나 다를 바 없다. 홍지홍과 유혜정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지만 다시 병원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치유해주며 성장시키는 존재들로 만나게 된다. 병원에서는 의사와 환자로 나뉘지만, 비뚤어져 아픈 세상에서 우린 모두가 의사이면서 환자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그를 변화시키고 치유해주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상처주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 입는 환자.

 

<닥터스>가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의학드라마지만 병원이라는 틀 밖으로 이야기가 확장되고, 치유의 의미가 상징화되면서 병원 밖 이야기 역시 의학드라마의 범주로 끌어안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확장된 관점으로 보면 배운 것 없어 욕이나 할 줄 안다며 스스로를 비하하지만, 유혜정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녀를 성장하게 해주는 할머니 강말순(김영애)이야말로 세상을 치유하는 의사다.

 

흔히 의학드라마는 병원을 세상의 축소판으로 그리지만, <닥터스>는 세상을 병원의 축소판으로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아픈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그 고통을 나누고 상처를 이겨내게 해주는 사람들도. 그러고 보면 <닥터스>라는 제목은 병원에 있는 의사들만을 지칭한 것 같지가 않다. 아픈 세상에 빛이 되는 홍지홍이나 강말순 같은 모든 존재들을 포함한 지칭이다.

 

홍지홍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 단지 그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환자를 살려내는 멋진 의사라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 오히려 더 도드라지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의 캐릭터는 <닥터스>라는 드라마가 그 따뜻한 느낌으로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기분 좋은 변화를 주려는 그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 세상을 치유하는 게 작은 위로라면, <닥터스>는 꿈꾼다. 자그마한 힘이지만 의사 같은 드라마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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