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맨발의 꿈', 영화보다가 박수치는 영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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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꿈', 영화보다가 박수치는 영화

D.H.Jung 2010. 7. 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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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다가 박수치기?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경험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영화가 여전히 마술적인 어떤 것으로 여겨졌던 탓이겠지요. 영화 속 장면이 마치 실제라도 되는 듯 박수를 쳤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나이들어서 그런 경험은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영화는 객관적인 가상놀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는 '각본없는 리얼 드라마'라는 점에서 놀이를 바라보면서도 박수를 치는 몇 안되는 종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니면 월드컵 시즌이라는 특수한 시기였기 때문이었을까요. '맨발의 꿈'을 보고 있는데, 이제는 잊혀져 가는 그 박수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와- 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서로 반목하던 두 친구가 합심해 골을 넣는 장면에서입니다. 우리는 아마도 잠시 축구경기를 보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월드컵 내내 그 골에 집중하는 훈련(?)을 받아서인지 마치 조건반사처럼 영화를 보면서도 그랬는지 모르죠.

중요한 건 그 골이 들어가는 순간의 기분이 박지성 선수가 두 명의 그리스 선수를 제치고 골을 넣는 순간이나, 박주영 선수가 기가막힌 프리킥으로 골을 넣던 그 순간의 기분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맨발의 꿈'은 물론 작위성이 후반부에 좀 등장하지만 그래도 심리적인 공감대를 계속 유지해가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아이들이 골을 넣는 장면에서 박수가 터질 정도로 말이죠.

동티모르의 아이들은 가난하지만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그 순수함 속으로 축구화를 팔겠다고 들어간 원광(박휘순)은 차츰 장사보다는 이 '가난하다고 꿈도 작게 꿔야 한다'고 강요받는 아이들을 더 꿈꾸게 해주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어쩌면 그 먼 곳까지 날아온 자신의 존재이유를 증명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들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적당한 마이너 감성과 도대체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낙천적인 시선, 그리고 뜻이 있는 자에게는 길이 있다는 지극히 고전적인 스토리.

동티모르의 가난한 아이들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 30회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나가 역전승을 거두는 이야기는 그것이 실화를 그대로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더 큰 울림을 준 것은 이 유소년축구대회에 대한 동티모르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장면입니다. 우리나라였다면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이 자그마한 유소년축구대회에 대한 그들의 폭발적인 응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 작은 것에서도 큰 희망을 찾아내려 하는 그들. 제가 기꺼이 그 영화관 속에서의 박수행렬에 동참한 것은 아마도, 내전과 오랜 가난으로 인해 갖게된 동티모르인들의 깊은 절망감을 그 열렬한 응원 속에서 거꾸로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맨발이지만 여전히 꿈은 남아있었습니다. 영화 보면서 박수치시고 싶으신 분, 혹은 월드컵에 어딘지 미진함이 남으시는 분은 충분히 공감할 영화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