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글들/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내 마음이 들리나요, 부장님

728x90


'내 마음이 들리니'와 커뮤니케이션

'내 마음이 들리니'(사진출처:MBC)

흔히들 농담 삼아 "회사 일은 참 회의적이야"하고 말하곤 한다. 여기에는 회의에 대한 조직원들의 두 가지 시각이 들어있다. 그 하나는 회사 일에서 회의가 너무 많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회의가 참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 속에는 뼈가 들어 있다. 본래 회의란 놈이 서로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기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정반대의 결과로 흘러가곤 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웬걸? 일방적으로 누군가는 떠들고 나머지는 듣기 일쑤며, 이미 결정된 사안을 가지고 괜스레 확인하고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의견을 묻기가 다반사인데다, 그래서인지 회의를 하고나면 더 심사가 복잡해지는 경우도 많다. 말은 엄청 많이 한 것 같은데, 별로 남는 것도 없고 유쾌하지도 않다면 회의를 해서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회사는 어쨌든 같은 뜻을 모아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회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중요하다. 제 아무리 능력 있는 인재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릴 테니까.

드라마와 커뮤니케이션. 어찌 보면 상관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밀접하다.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드라마는 인물과 인물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인물의 갈등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혹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갈등이 해소되는 드라마의 결말은 이 커뮤니케이션이 재개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때로는 이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드라마의 소재이자 주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내 마음이 들리니'는 그런 드라마다.

진짜 장애는 누구 갖고 있는 걸까
'내 마음이 들리니'에는 두 개의 인물군이 등장한다. 그 하나는 봉영규(정보석)를 중심으로 있는 인물들이고, 다른 하나는 최진철(송승환)로 대변되는 인물들이다. 봉영규는 정신지체를 갖고 있는 반면, 최진철은 영악할 정도로 두뇌회전이 빠르다. 이들은 삶에 대한 목적 자체도 상반되어 있다. 봉영규는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아들(사실 친아들도 아니다), 봉마루(남궁민)를 찾는 게 소원인 반면, 최진철은 자신의 사업 확장을 통한 욕망의 추구가 삶의 목적이다. 이런 대비는 이 두 사람의 주변인물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봉영규네 집안사람들, 즉 봉우리(황정음)는 아무리 힘들어도 늘 밝고 맑은 소녀이고, 봉영규의 어머니인 황순금(윤여정)은 치매인데다 겉으로 보기엔 괴팍해 보이고 욕쟁이 할머니처럼 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다. 반면 최진철의 아내인 태현숙(이혜영)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활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최진철에게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또 최진철의 정부인 김신애(강문영)는 지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최진철의 아내인 태현숙을 밀어내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이 두 인물군은 선과 악, 혹은 동심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상을 대변한다. 이 드라마는 이 두 세계의 대립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두 인물군 중 선을 대표하는 이들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봉영규는 정신지체이고, 그가 결혼했던 미숙(김여진)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던 인물이다. 또 봉영규의 어머니인 황순금은 치매를 앓는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봉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차동주(김재원)는 사고로 청각을 잃는다. 이들의 중심에 봉우리가 서 있다. 어찌 보면 정상적인 소통을 가로막는 이 장애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할 것처럼 보이지만, 봉우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에게 주변인물들의 이런 장애는 그녀로 하여금 말이 아니라 대신 마음을 듣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똑똑한 머리로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지만 속셈은 딴 데 가 있는 최진철과 그 주변인물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과연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면 누가 진짜 장애를 갖고 있는 걸까.

커뮤니케이션,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내 마음이 들리니'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물음표인 것은 이 드라마가 현대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 질문은 당신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마음을 듣고 있는가를 묻는다.

미디어 혁명의 중심부에 서 있는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말들은 미디어가 열어놓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러 저리 흘러 다닌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면 그저 컴퓨터를 켜거나 휴대폰을 열기만 하면 된다. 이제 옛날처럼 종이가 꼬깃꼬깃 해질 정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집어넣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와 얘기하기 위해 굳이 발품을 팔기보다는 스마트폰을 열고 대화를 신청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소통하고 있는 걸까. 말의 홍수가 덮어버린 건 그 속에 담겨진 마음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들리니'는 오히려 귀를 먹게 하고 어딘지 정신을 놓게 한 캐릭터들을 통해 그 잊고 있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말하기 편해져서 오히려 전달이 어려워지고, 너무 똑똑해서 진심이 흐려지는 이 아이러니는 우리의 '회의 많은' 회사 생활 또한 되돌아보게 한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아는 사람이라면 회의는 말이 아니라 서로 간의 신뢰나 믿음, 공감대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소통되는 회의는 회의 바깥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로가 동료로서 서로를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말은 그저 말이 아니라 그 속에 마음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끔 회의가 회의적으로 다가올 때라면 이렇게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너는 얼마나 저들의 마음을 듣고 있는가.
(이 글은 현대 모비스 사보에 연재되는 글입니다.)